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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 옮겨심기



장모님이 시골에서 얻어다 주신 대파를 옮겨 심으려고 아침부터 서둘러서 밭에 갔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이 흐린 게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아서 비가 오지 않는 틈에 잽싸게 일을 마치려고 서둘렀다. 아내는 어제 늦게 잤다며 집에서 잠만 자고 있다. 아침잠이 많아 일이 없으면 으레 아침에는 늦게까지 잔다. 마음 같아서야 늘 함께 밭에 가고 싶지만 적당히 눈치껏 맞춰야 한다.

장모님께서 대파를 주시며 어떻게 심는다고 일러주셨는데, 가물가물해서 밭으로 가며 다른 밭에는 대파를 어떻게 심었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서로 얼마나 떨어뜨리고, 어떤 식으로 심었는지 자전거를 타고 지나면서 쓱~. 그렇게 대충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밭에 이르렀다. 때마침 텃밭 형님이 밭을 둘러보고 나가시는 길에 마주쳤다. 오늘 대파를 심으려고 한다니, 어떻게 심는지 아느냐고 물으신다. 벌써 몇 년인데 자신 있게 머릿속에 들어 있다고 대답하니, 잘 심으라고 껄껄 웃으시며 가신다. 뚜벅뚜벅 걸어서 밭으로 가니 마을 아저씨가 벌써 나와 계셨다. 아저씨는 어느 틈에 놀고 있는 땅을 싹 고르고 뭔가 심으려고 돌을 골라내고 계셨다. 정말 부지런하시지. 꾸벅 인사를 드린 뒤 대파를 심으려고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리 가져오라고 하신 뒤 하나하나 빠짐없이 설명해 주신다.


"땅은 이 정도 파서 대파를 하나씩 기대 놓으면 돼요. 이렇게 놓으면 죽을 것 같아도 나중에는 지들이 다 알아서 위로 쭉쭉 서서 자라니까 걱정하지 말고. 대파를 이 정도 간격으로 하나씩 놓고 흙은 뿌리를 살짝 덮을 정도로만 덮어야 해요. 흙을 너무 많이 덮으면 곪아서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요. 대파는 땅에 던져만 놔도 사는 작물이니까 굳이 흙을 많이 덮으려고 하지 말아요.

이렇게 어느 정도 큰 걸 갖다 심을 때는 잎을 탁탁 쳐내는 것이 좋아요. 안 그러면 나중에 위로 설 때 무거워서 제대로 못 서지. 어차피 이 잎들은 나중에 다 말라 비틀어져서 못 먹고, 나중에 여기서 새로 나오는 것들을 먹는 거야."


그러면서 어떻게 하는지 몸소 보여주신다. 그러고 여기 있으라고 하시더니 낫을 가져다 잎까지 손수 다 쳐주신다. 어찌나 고마운지 나도 뭐 도와드릴 일이 없나 해서 골라 놓으신 돌을 날랐다. 놔두라고 하시지만 우리네 맘이야 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선물을 주면 괜찮다고 두세 번 손사래 치는 게 맛이고, 도와준다고 나서면 됐다고 괜찮다고 해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네 아닌가. 내가 겪은 우리 어르신들은 다들 그러셨다. 마을 아저씨도 됐다고는 하시는데, 거들고 나서니 말리지는 않으신다. 그렇게 돌 고르는 일을 마무리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대파를 심으러 갔다.

어느 땅에 심을지 돌아보다가 딸기를 파내고 그곳에 심기로 했다. 딸기에겐 너무 미안하지만 그곳이 아니면 마땅히 심을 곳이 없다. 요즘은 사람도 농산물도 철이 없어서 겨울에도 딸기를 먹는데, 한데 딸기를 심으면 어디 겨울에 딸기를 구경할 수 있나. 옛이야기의 효자들이나 엄동설한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구해 오겠지. 그렇다고 한데서 겨울에 딸기가 얼어 죽지는 않는다.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이 되면 어김없이 되살아난다. 그럼 5월 중순 이후에나 따 먹을 수 있다.

눈 질끈 감고 딸기를 파낸 뒤 주변에 풀들을 열심히 뽑고 흙을 고르고 나서 아저씨가 알려주신 그대로 호미를 쥐고 따라 했다. 아저씨는 호미로 쓱쓱 쉽게 잘만 하시던데, 나는 왜 이리 안 되는지. 영 폼이 나오지 않는다. 어르신의 내공을 따라가려면 더 경험을 쌓아야 하나 보다. 아무튼 나름대로 열심히 아저씨가 알려주신 대로 심었다. 특히 너무 깊이 심어서 곪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어 흙으로 덮을 때는 더욱더 신경 썼다. 다음에 오면 대파가 제대로 살았는지 가장 먼저 봐야지.

대파는 생명력이 강하다고 여러 사람들이 칭찬했으니 내가 아주 잘못 심지만 않았다면 모두 살 거라고 믿는다. 농사를 짓다 보니 냄새가 강한 식물일수록 야생에 가깝고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대표적으로 이번에 심은 대파가 그렇고, 또 들깨와 토마토가 그렇다. 정말 흙에 던져만 놔도 살 정도로 끈질기다. 가만히 보면 그런 이치는 사람도 비슷한 것 같다. 흙냄새 풀풀 풍기고 촌티가 팍팍 나는 사람이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굽히지 않고 버티지 않는가.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를 흙에서 자란 사람들이 이만큼 일으켜 놓았다.

그런데 온실에서 자라는 화초 같은 요즘 우리 도시 사람들에게도 냄새가 있을까? 향수나 화장품, 샴푸, 비누 냄새는 코가 비틀어지도록 나는데, 그런 냄새는 전혀 그 사람만의 것 같지 않다. 아무런 냄새가 없기에 그런 용품에 의존하는지도 모르겠다. 십 몇 년 전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사람의 [향수]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기억난다. 그 책의 주인공은 남들과 달리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이다. 그 덕분에 괴물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 사람은 결국 남들처럼 냄새를 가지려고 급기야 사람을 죽여 사람 냄새 나는 향수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오늘 방바닥에 누워 가만 생각하니 그 사람이야말로 전형적인 현대인을 상징하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냄새가 아니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그만의 파장, 표정, 분위기가 풍긴다. 믿거나 말거나 깨끗한 사람에게는 깨끗한 기운이 강해서 깨끗한 것만 들러붙는다고 한다. 지금 나한테는 무슨 냄새가 나는지 킁킁대며 맡아봐야지.


 

후기 

육경영 선생님 잘하고 가셨나요? 오랜 시간 걸려서 오셨는데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황급히 헤어져서 죄송해요. 그냥 옥금이 먼저 보내고 자전거 타고 갈 걸...

주말농장의 똑같은 밭에서 어디는 잘되고 어디는 안 되고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드디어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이 씨 어르신에게 물었는데,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시며 해주신 말씀에 따르면, 산에서 흙을 퍼다가 객토를 했는데 흙이 좀 부족해서 지금 잘되는 쪽에 다 덮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은 예전에 농사짓던 곳이라 잘되는데 객토한 곳은 지금은 거름기가 없어서 안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나중에 객토한 땅이 더 거름질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대단한 내공이십니다. 언제 안산으로 찾아오시는 분 중에 정말 운이 좋으시다면 이 씨 어르신을 한 번 만나보시면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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