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작물의 성장과 환경' 이라는 주제로 이완주 박사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내 방식대로 땅 갈고 파서 심으면 된다'는 주먹구구식이 아닌, 과학적으로 식물은 이렇기 때문에 이러이러하게 해야 한다는 설명을 참 재미나게 들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성함을 들어왔던지라 어떤 분이실지 궁금했는데, 잠바를 걸치고 오신 모습이나 지하철 타고 오셨다는 말씀이나 그냥 옆 집 아저씨나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셨습니다. 모습은 그러하셨지만 역시나 강의에는 연륜과 관록이 묻어 있음을 대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지루하고 재미없을 수 있는 주제의 강의를 어찌나 재미나게 말씀하시는지 강의 중간 중간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식물의 기본 구조가 어떻고 그렇기에 농사는 어떤 원리로 짓는 것이라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 중간에 말씀해주신 오십견 방지 체조와 감기 예방법도 확실하게 배웠으니 박사님 말씀처럼 이번 강의로 얻은 바도 큽니다.
그런데 이번 강의로 저는 무엇보다 제 좁은 소견이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강의 마지막에 '유기농업만이 해답인가?' 라는 질문이 바로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유기농업만이 답이다'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던 저에게 그 질문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박사님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지 않고 유기질 퇴비를 통해 농사를 짓는 것이 유기농업이라고 정의하시면서 관행농의 문제점을 짚으셨습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해로운 것이 아니라, 10을 넣어야 적당한 양인데 그 2배, 3배로 투여하는 오남용이야 말로 문제가 되고 환경을 파괴하는 행동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유기질 퇴비를 넣어준다고 해도 어차피 식물이 먹는 것은 그 하나하나의 성분이기에 유기질 퇴비를 넣어주나 화학비료 적당량을 투입하나 별 차이가 없다고 하시는 말씀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어떤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 유기질 퇴비는 300kg 넣어주어야 하는데 화학비료는 1kg만 넣어도 된다는 점을 말씀하시며 이런 것이 과학의 힘이라고 하시는 부분에서는 과학을 우습게보거나 도외시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식물이 먹는 영양분은 정해져 있기에 유기질 퇴비를 주나 화학비료를 주나 마찬가지라는 점과, 유기질 퇴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화학비료는 과학의 힘으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작물이 제 맛을 갖기 위해서는 미량 원소들이 필요한데 현재 행하고 있는 수경재배가 깨끗할지는 모르지만 작물의 제 맛을 낼 수는 없다고 하시는 말씀 또한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미량 원소는 굳이 유기질 비료가 아니라도 식물이 알아서 흡수한다고 하셨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넓은 안목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개별 식물과 그 식물이 생장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이라는 것만을 따로 분리해서 보면 적정량의 화학비료나 농약을 주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정말 박사님 말씀처럼 그런 것들이야 말로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이 이룩한 놀라운 과학의 업적이고 인간의 배고픔을 해결한 녹색혁명의 전도사 입니다.
분명 작물은 인간이 먹기 위해서 재배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보다 쉽고 편하게 많은 생산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농약이나 화학비료, 각종 농기계의 사용과 같은 과학적 영농이 강조되는 것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엮여 있지 않은가 합니다. 현대는 예전과는 달리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도 얼마 되지 않는데 그 얼마 되지 않는 분들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책임져야 하는 실정입니다. 이농 현상이 활발해지고 그래서 적은 노동력으로 최대의 생산을 얻어야 하는 이런 현실은 산업화, 자본주의화라는 현실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아파트와 공장을 부수고 싹 걷어낸 후 농사를 지어라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겠지만, 여하튼 바로 이 부분이 도시농업이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또, 아무리 적당한 량의 농약과 화학비료가 자연적으로 분해가 되고 피해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작물의 관계만을 따로 분리하여 바라본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자연생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그래서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도 무궁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생태계라는 것은 태어나 자라서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순환 속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환의 핵심은 바로 공생공존일 것입니다. 제가 그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도 아니고 하니 적정량의 농약과 화학비료는 자연분해 되어 다른 식물과 동물에게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도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무언가 아직 우리에게 밝혀지지 않은 알지 못하는 세계가 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신비주의나 허황된 망상으로 빠질지 모르지만 저는 올 해 제가 일궈야할 땅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
올 해 제가 경작해야 하는 땅은 작년 가을에 복토한 곳으로 아무런 생물도 살지 않을 것 같은 황토밭입니다. 그 땅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은 잡초라도 좋으니 무언가 생명이 살아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라도 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무엇이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내린 해답은 역시 땅의 건강함이 아닐까 합니다. 땅이 비옥하다 라든지 땅이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마을에 심보 고약한 사람도 있고 미친 사람도 있고 거지도 있지만 서로 어울려 사는 모습이 해답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을에 착한 사람들만,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사람들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합니다. 짧은 생각이지만 도시농부학교에서 이야기하고자 것이 이러한 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박사님이 강조하신 과학의 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과학은 실로 대단하고 인간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과학의 힘을 우리는 오남용을 하게 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 읽고 있는 맹자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의는 사람 마음의 고유함에 근거하니 천리의 공됨이요. 리심은 나와 남을 서로 드러냄에서 생기니 인욕의 사사로움이다. 仁義, 根於人心之固有, 天理之公也. 利心, 生於物我之相形, 人欲之私也.'
이 말에 나오는 것처럼 오남용하게 되는 것은 주변을 생각하지 않는 사사로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무지함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또 그로 인한 습관에서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 무지가 문제라면 교육과 홍보를 해야 하고, 습관이 문제라면 고쳐야 할 바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내가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가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남을 가르고 남은 나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만 생각하여 내 욕심만 채우려는 데에서 오남용이 생기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과학과 과학자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과학 그 자체로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그저 과학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과학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아인슈타인이나 노벨이 그러한 경우겠지요. 과학 그 자체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해서 과학자도 그러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과학을 사용하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 통할 수 없는 만큼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 얻게 된 힘을 잘 사용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 잘 사용함에는 바로 가치의 문제가 걸려있습니다. 도시농업을 이야기 하는 우리에게 그 가치는 앞에서 이야기한 공생공존이라는 관점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곳곳에는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유기농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 중에는 외람되지만 너무 원리원칙만을 강조하는 분들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이완주 박사님이 말씀하신 과학의 힘을 너무 맹신하고 오남용 하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 반대로 그 과학의 힘을 너무 불신하고 배척하는 자세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과학의 힘은 부정하기 보다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힘을 인정하고 적절히 사용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앞서 말한 가치기준에 대한 고민과 나눔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가 적당한 선이냐 하는 것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인 기준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파시즘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농사만 해도 맨 손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작은 밭에서 트랙터를 몰고 다닐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적당한 도구가 없다면 새로 고안하고 만들어서 이용할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하고 그에 걸맞는 새로운 농법도 필요합니다. 그러한 고민과 기술이 축적되었을 때 우리의 현재 상황에 맞는 새로운 농법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과학의 힘이란 이런 측면에서 유의미 할 것입니다. 아무리 옛 것이 좋고 도구는 사사로운 마음을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런 입장만 고수한다면 그저 고집불통 독불장군 밖에 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이 또한 도시농업을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제 이론 수업이 끝나려면 얼마 남지 않습니다.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도 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부족한 용량으로 많은 것을 담게 되니 머릿속도 그만큼 복잡해집니다. 오늘은 어제 이완주 박사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 드는 생각을 근질근질해서 쭉 적어보았습니다. 한참을 써내려가다 보니 똥오줌도 못 가리는 놈이 주절주절 떠든 꼴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슬슬 서울 올라가는 일이 귀찮아지기도 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11월 모두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사뭇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