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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뭄! 말로만 들어봤지 몸소 체험하기는 처음이다. 도시생활을 할 때는 구질구질하게 비오는 날보다는 화창한 날씨를 더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시원하게 비가 내리길 바라고 있다.


올 해 유독 비가 안 오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때에 맞춰 비가 오지 않는 일은 빈번하였다. 그런데 작년, 재작년 까지는 비가 오지 않아도 걱정이 없었다. 오히려 비가 오는 것을 더 걱정했다. 그때 농사를 지은 밭은 축축하다 못해 질척거리는 땅이었다. 그래서 비가 오는 것보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이 더 좋았다. 헌데 지금은 거꾸로 이다.


지금 농사짓는 땅은 작년 가을 공사장에서 나온 흙을 갖다 부은 곳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생황토이다. 아무런 거름기도 없고, 그렇다고 물이 잘 빠지는 것도 아니고 물을 잘 머금고 있는 것도 아니다. 비가 오면 물이 잘 안 빠져서 질척거리고 비가 안 오면 말라서 쩍쩍 갈라지고 만다. 흙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흙의 떼알구조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떼알구조는 물을 잘 머금으면서 물이 잘 빠지는 흙이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비가 많이 올 때는 물이 잘 빠져서 질척거리지 않고, 비가 오지 않아도 겉은 말라보여도 속은 물기를 머금고 있는 흙이 바로 떼알구조를 가진 흙이다. 이렇게 흙의 떼알구조를 만드는 것이 바로 흙 살리기의 핵심이다. 흙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흙 속에 미생물도 많이 살고, 흙을 기반으로 하는 생물들이 균형을 이루고 살아갈 때 흙이 살아있다고 한다. 이렇게 흙을 살리기 위해서는 미생물이나 생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양분이 풍부해야 한다. 그런 양분은 우리가 아는 퇴비나 액비 같은 거름과 특약처방을 하듯이 주는 미생물재제들이 만들어 준다. 그런데 화학비료는 흙을 살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물을 키우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화학비료를 오래주면 흙이 척박해지는 것이다. 또 화학비료를 남용하면 토양과 수질이 오염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항생제처럼 화학비료도 오남용을 하면 큰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퇴비 같은 거름은 한약에 비유할 수 있다. 이것은 꼭 작물을 잘 키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상태의 흙과 그를 둘러싼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것 밖에 사용할 수 없어서 썼던 것이지만 거기에는 이런 깊은 철학이 숨어있다. 과학의 힘이 대단하고 편리하고 효과가 빠르기는 하지만 철학이 바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학의 힘을 맹신하고 사용하는 것은 이런 것처럼 위험이 있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그런데 지금 농사짓는 땅은 살아있지 않은 곳이다. 지난 번 봄장마처럼 한바탕 비가 쏟아진 후에는 비다운 비가 한 번 오지 않았다. 그저 겉흙이나 살짝 적셔주는 정도의 비만 몇 번 오고 말았다. 세종실록에 세종대왕이 내리는 비의 양만 측정하지 말고 얼마나 깊이 물이 스며들었는지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겉흙만 적시는 비는 농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다. 세종대왕의 혜안이 빛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흙이 습기를 머금지 못하고 말라서 쩍쩍 갈라질 정도가 되면 그 딱딱함은 갑옷과도 같다. 그렇게 되면 새싹이 나오기 힘들어진다. 콩이나 감자같이 큼직큼직한 놈들은 그만큼 힘이 세서 어떻게든 뚫고 나오기는 하지만 뚫고 나오는데 힘을 다 쓰니 제대로 자랄 리가 없다. 그리고 뚫고 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자라는 데에는 때가 있는 법인데 그 때를 놓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큰 놈들이 이 정도인데 작은 놈들은 오죽하랴. 작은 놈들은 거의 절반치기이다. 겉흙이 너무 단단해서 갈라진 틈새로나 나오지 딱딱한 곳으로는 전혀 나오고 있지 못하다. 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힘겹고 안쓰러운지 모르겠다. 호미로 탁탁 쳐서 단단한 흙을 깨보고도 했는데 별 도움이 못 되었다.


오늘은 보다 못해서 물을 주기로 했다. 거름기도 부족하고 풀이나 부엽토로 습기를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도 듣고 해서 급한 대로 물을 주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강하게 키운다는 방침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봐도 애써 못 본 척 했는데, 오늘은 그런 말을 들으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조루로 물을 퍼다 뿌려주니 나와 있는 싹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힘없이 흐늘흐늘 거리던 놈들이 물을 주고 나니 대번에 고개를 바짝 쳐들고 생기를 되찾는다. 땅도 물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기갈 들린 사람처럼 꿀꺽꿀꺽 소리를 내면서 물을 받아먹는다. 신기하게도 땅이 물을 받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단단하던 흙도 물을 머금을 수록 부드러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부드러워지면 싹들이 다시 힘을 내서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집에 돌아갈 시간은 촉박해 오고 물을 줘야하는 놈들은 잔뜩 남아 있는데 도무지 그냥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다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놈들인데 어느 놈은 주고 어느 놈은 안 줄 수 없지 않은가. 처음에는 걸어서 오가며 물을 퍼다 날랐는데 시간이 촉박해져서 나중에는 뛰어서 오갔다. 덕분에 옷은 젖었지만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놈들에게 물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냥 뛰었다.


그렇게 두 시간 반을 줬는데도 아직도 다 주지 못했다. 그래서 중간에 급하니까 약한 놈들부터 주기로 했다. 작은 씨앗들이 많이 힘겨워 하니 그 놈들부터 주고, 어제 심고 무심히 돌아섰던 애호박과 오이에게도 물을 주었다. 이놈들 뿌리를 보니 바싹 말라있고 잎도 축 쳐져있던 것이 물을 주고 나니 기운을 차리는 모습이었다.


작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강하게 키우는 것도 좋은데 내가 너무 방치했구나 하는 미안함이 몰려왔다. '내가 아직은 초보라서 그렇다. 이거 먹고 기운내.' 하며 힘을 북돋워주었다. 자유스러움을 보장해 준다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인도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자유만 강조한다거나 의무만 강조하는 것 또한 중도를 벗어난 것임을 뼈저리게 배웠다. 작물을 키우는 것도 이런데 사람간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적당함' 이라는 말이 얼핏 들으면 그만큼 무책임할 수도 없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다.


내일도 모레도 자세히 살피고 물주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흙이 살아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아직 흙은 살아있지 못하고, 작물들은 힘겨워 하고 있다. 씨를 뿌린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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