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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텃밭농사

봄날은 왔다

by 石基 2008.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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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왔다



석장골을 떠나 안산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오늘은 가만히 앉아서 작년 한 해를 돌아보니 꿈결같이 지난 일들이 스쳐간다. 지난 해, 참으로 많다면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귀농을 결심하고 석장골로 내려간 일부터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맞았던 일, 그리고 평생을 같이 할 반려자와 하나 된 일까지 남들이 몇 년에 걸쳐서 겪게 될 일을 불과 1년 새에 모두 경험하였다.


그 중에서 석장골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온 일은 지금 나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석장골로 가게 된 것은, 그곳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어느 분이 제의해서였다. 그런데 그 분이 맡고 있던 일이 너무 커져서 그 계획은 유보가 되었고, 나도 다시 올라오게 되었다. 솔직히 그 분의 사정 때문이라기 보다는 준비 안 된 귀농을 강행했던 나에게 더 큰 책임이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결심도 하고 준비도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려가서 살아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귀농을 하게 된다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골에서 홀로 생활하는 즐거움을 맛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사람끼리 어울려 살아야 한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괴롭더라도 어울리지 않고는 살기 힘든 것이 사람이다. 도를 닦는 수도자이면 모를까, 아니 수도자라도 그들을 뒷받침하고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홀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제 다시 세간으로 돌아왔으니 여기저기 부딪치고 더욱 성장할 준비를 해야겠다.


이제 계절도 바야흐로 다시 봄이 찾아왔다. 거리에는 봄내음이 가득하고, 햇살은 따사롭기만 하다. 몇 일 전 차가웠던 바람조차 이제는 포근하게 느껴진다. 산과 들에는 겨우내 숨죽였던 나무들이 새 잎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얼었던 땅을 조금씩 비집고 초록의 풀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봄은 비단 식물에게만 온 것이 아니다. 동물들도 봄이 왔음을 알고 부지런히 한 해 살이를 채비한다. 까치는 여기저기서 나뭇가지를 옮겨다 새 집을 짓느라 정신없고, 개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情이 동하여 交接 중이다. 팔자 좋은 어떤 개들은 이도 저도 귀찮은지 길바닥에 누워 스르르 낮잠을 즐긴다. 성큼 다가온 봄에 어리둥절한 산새는 갈 길을 잃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날아들어 옆 밭 이씨 아저씨께 잡히고 만다.


저 멀리 남녘에서는 벌써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남도여행 중에 보았던 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봄갈이를 마치고 씨를 뿌리려 하고, 매서운 겨울을 이겨낸 푸르른 보리싹은 드디어 위로 위로 쑥쑥 자랄 차비를 마쳤을 것이다.


안산 밭에도 봄이 다가와 언 땅이 녹아 발 밑에서 질척거리고, 나무마다 새순이 달려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하우스에서는 고추들이 자라고 있으며, 조금 있으면 밭을 갈고 구획을 나눠 봄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올 한 해 농사는 어떨지 상상해 본다.


앞으로 한 달 후면 산은 언제 그랬냐는듯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을 터이고, 안산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쉴 틈 없이 시간이 지나갈 것이다. 나는 여전히 농부 수업과 공부를 하며, 안산 밭에서 낮에는 땀 흘리며 밭을 갈고 밤에는 글공부 하는 생활을 하고 있겠지.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고, 때를 놓치면 하루가 아니라 한 해를 놓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처음으로 꼬아 본 새끼줄을 보면서 웃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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