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종 종자에 대해서 두 번의 취재 후에 종합 정리하는 의미로 선생님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찾아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토종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내가 10살 때 6.25가 났는데 그때 인천 살다가 신갈로 피난을 갔어요. 그때 거기서도 학교를 다녔어. 5리 넘게 걸어 다니는데 어느 집을 보니까 장독대 옆에 뭐가 나온 게 예쁘단 말이야. 그걸 학교 갔다 오다가 싹 캐서 집에다 심어놨어. 거기서 꽃이 핀 게 백합이라. 참 향기도 좋고 했는데 어려서 몰랐어. 그때부터 ‘내가 식물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지.
그 후에 고등학교 때는 원예반을 했는데 여름방학 때 변산반도를 가게 됐어. 그때는 변산에 가면 배롱나무가 많아요. 그걸 보니까 꽃이 만발을 했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세상천지에 처음본거야. 나무가 아주 잘 생겼는데, 그 밑에 보니까 둥치가 있고 그 옆에 가지가 나오길래 적당히 파서 가지고 와서 깡통에다 심었지. 그때는 화분 같은 것도 없었어. 그랬더니 다시 살아나서 나무가 예쁘게 되는데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 그렇게 식물을 좋아하는걸 알게 됐고, 그래서 농대를 다니게 된 것 같아.
농대를 졸업하고 일반 임시직으로 농진청 실험실에 가서 도와주다가 헌병으로 군대를 갔어요. 뭐야 보충대를 갔는데 차가 와서 여기 나무 만질 줄 아는 놈 손들라고 해서 손을 들었더니 차에 타래. 가니까 사단사령부 앞에 사단장이 가위로 소나무를 자르고 있더라고. 군기가 바짝 들어서 신고했더니 ‘너, 이런 거 할 줄 알아?’ 하더라고 그날부터 거기 가서 20사단사령부 조경을 전부 만들었어. 거기 가서 헌병대에서는 욕도 많이 먹었지. 헌병이라는 놈이 거기서 그거나 하고 있다고 말이야. 그래도 내가 좋은걸 어떻게 해. 그렇게 지내다가 석 달 남기고 마지막 휴가를 나왔는데, 선배가 농진청 시험이나 보고 가라 해서 한 열흘 공부해서 시험보고 들어갔어. 그러고 합격했어요. 그래서 제대하고 나서 한 보름 있다가 일을 시작을 했어요. 그렇게 진흥청에 들어온 것이 69년도야.
일을 시작해서 뭘 했냐면 밀․보리 육종을 했어요. 그걸 한 15년 정도를 했어요. 멕시코에 국제맥류연구소라는 곳에서 한 일 년 정도 있다가 와서 밀 육종을 했는데, 여기 진흥청에는 종자은행이란 곳이 따로 없었어요. 종자를 현장별로 다 가지고 있었어요. 그걸 74년도에 함께 모을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76년도에 진흥청 입구에다 저장시설을 조그맣게 만들어서 전부 모았어. 85년까지는 그런 식으로 갖다 저장만 해놨는데, 1985년도에 와서 유전자원이라는 걸 해야겠다고 하면서 저장시설도 관리할 겸 유전자원을 관리할 사람을 찾는 거야. 내가 그 전에 맥류연구소에 있었고, 83년도에는 일본에 가서 유전자원을 연수를 했거든 그래서 내가 적당하다 싶어서 날 거기다 앉혀놨어. 그때 당시에는 나 하나하고, 직원 하나하고 갖다 놓고 관리를 하라고 하니 뭔 수로 해.
그래 거기서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내가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무얼까?’,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토종이다. 우리나라 종자부터 수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야. 그때 진흥청에 농촌지도국, 시험국, 기술보급국이 있었는데, 지도국에 전국적으로 지도원이 8천명이 있었어요. 지금은 얼마 안 남고, 기능도 안 되는데 그때 당시는 그것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래서 내가 뭘 생각했냐면 ‘이걸 내 발로 뛰어서는 안 되니까. 이 사람들을 동원해야겠다.’ 생각한 거야. 지금 생각해도 그걸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유전자원을 어떻게 수집하는지, 뭘 수집하는지 이런 수집요령 책자도 몇 천부를 만들고, 수집하는 봉투도 한 2만 5천장 만들어서 전국적으로 돌린 거야. 그때 그렇게 10000여점 정도를 수집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뭐가 토종인지 잘 모르지. 교육시킬 때는 들었지만 실제로 수집해올 때는 옛날부터 한 집에서 심던 것을 모아서 봉투에다 보낸 거야. 그걸 갖다 저장을 하고 지금까지도 평가를 하고 있는 거지.
그걸 85, 86년 두 해에 걸쳐서 하고, 그 후에도 조금씩 계속 들어왔어. 그때 수집한 것이 지금 가지고 있는 토종의 대부분이에요. 그러고 나서 8년 후 93년에 그때 수집했던 똑같은 동네에 가서 똑같이 수집을 해봤어. 그렇게 보니까 24% 정도만 남았더라고. 8년 동안 76%가 없어진 거야. 그러니까 얼마나 빨리 없어졌다는 거야. 사회상도 전부 서울로, 서울로 하니까 시골에는 노인들 밖에 없고, 노동력도 부족하고 하니까 안 심고 없어진 거야. 그 후에도 또 해봤는데, 그때만큼 급격하진 않지만 또 그만큼이 없어졌어. 지금은 가봐야 많지 않아요.
-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토종에 대한 인식이 없었을 때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그래서 그때 그 일한 걸 잘했다 생각하고, 이 일을 평생해 왔다는 것이 참 고마워요.
- 원래 토종에 대한 생각이 있으셨던 것이 아니라 어떤 영감 때문에 하셨던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지요. 그때 내가 육종을 했지만, 토종이 중요하다 생각해서 수집할 생각을 못했어요.
- 그때는 정책방향이 다수확 신품종 위주였나요?
그렇죠. 그것 때문에 토종이 다 없어진 건데.
- 그럼 선생님이 모으기 전에도 없어졌겠네요?
그렇게 봐야지. 사실은 왜 그 전에 생각을 못했는지 후회가 돼요. 60년대만 해도 대부분 남아 있었을 텐데. 뭐 후회해도 소용없지. 그래도 그 당시에 한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 육종 일을 하실 때 토종을 바탕으로 하시지는 않았나요?
내가 밀․보리를 육종했는데, 원래 밀․보리는 우리나라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밀․보리는 토종으로 한 것이 없었지. 주로 바탕이 외래종 이예요.
- 우리밀은 없어졌을 때인가 보죠?
그 당시 우리밀이라는 건 1900년대 초에 육종한 품종들이 있어요. 그것들은 대부분이 일본에서 육종한 품종들을 기본 바탕으로 해서 우리가 한 거예요. 그런 것들이었지 재래종으로 한 건 없어요. 우리 토종을 기본 바탕으로 육종을 하는 일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원산지인 작물이 많지 않거든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것은 콩․팥․녹두 그런 것이 있고, 참깨․들깨는 100% 우리 것이지. 들깨를 먹는 나라가 우리나라하고 중국․일본의 극히 일부밖에 없어요.
- 토종을 복원하고 살린다는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토종을 살려서 농민이 토종으로 재배하고 품종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 경제적 가치는 높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토종이란 것이 병에 걸려도 많이 걸리지 않고 잘 죽지 않는 것이지 수량이 엄청 나는 것은 아니거든.
그렇지만 신품종이라는 것은 수량이 엄청나고 내병성도 강하지만, 어떤 상황에 따라서 왕창 망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어요. 옛날에 노풍․내경이란 품종이 있었는데, 그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육종하는 사람을 우대해주기 위해서 품종에 자기 이름을 붙인 거야. 그래서 박노풍, 박내경 두 사람이 만든 품종이야. 그런데 그 당시에는 좋았는데 몇 해 지나서는 병이 들어서 완전 망했어.
그게 이렇게 생각을 해야 돼요. 토종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내려오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병충해 같은 것들과 저항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저항성이 있지만, 병충해에 아주 안 걸리는 것도 아니고 다만 걸리면서 저항이 있는 거야. 이런 것을 수평저항성이라고 해.
그런데 신품종은 수평저항성이 아니라 수직저항성이라고 해. 이건 금년도에 나타나는 어떤 race 때문에 작물이 싹 망하는데, 그 race에 강한 인자만 뽑아서 집어넣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race 몇 가지에만 강하게 선발되니까 당시에는 수량도 잘 나데, 몇 해 지나면 race라는 건 독감처럼 금방 변해요. 그렇게 되면 이게 왕창 망하는 거야. 토종은 그렇게 왕창 안 망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신품종의 문제점이 있는 거야.
그래서 토종이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 어떤 우리나라 기후풍토와 또 어떤 병충해 같은 이런 모든 것과 같이 살아온 것이지. ‘농민들이 육종가’거든. 그게 뭐냐면 지금은 안 그런데, 지금은 고추를 심어도 다 사다가 심잖아. 그런데 옛날 농부들은 고추를 심으면 그 중에 제일 크고 좋은 건 따다가 놔두고 내년에 종자로 쓴다고. 그게 뭐냐면 그 환경에서 제일 잘 된 것, 즉 그 환경에 적응이 잘 된 것을 심는 것이지. 그게 바로 육종이야. 그렇게 육종을 해온 것들이 토종으로 남아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런 특성들을 기본바탕으로 해서 이것을 외국에서 들어온 좋은 특성들, 맛이나 질, 수량 같은 특성들을 집어넣어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거예요. 그게 육종인데, 그렇게 보면 토종이라는 것은 육종하는데 기본 바탕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농민들한테 직접 보급하는 것은 수량이 떨어지니까 문제가 있는 건데, 그러나 지금 토종을 농민들이 재배하고 유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그게 몇 년 안 됐는데 “토종의 농가보전”이라고 있어요.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토종이라는 것을 내가 85년도에 수집해서 저장고에 넣어놨단 말이야. 그러면 그 종자는 잠을 자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 100년도 가는 게 있겠지. 그걸 100년 후에 꺼내면 100년 전 상태하고 똑같은 거야. 그러니까 같은 식물이란 말이야. 그런데 그때는 기후환경도 바뀌고 race나 병해충도 다 바뀐다고. 그러면 100년 전에 있던 것과 맞아 들어가지 않잖아. 그러니까 농민이 현지에서 보전을 한다는 건 100년 동안 기후환경이나 풍토에 적응한 것을 자꾸 선별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100년 전에 저장해 놓은 것 자체도 상당히 큰 가치가 있어요. 왜냐하면 race는 자꾸 변하잖아. race가 자꾸 변하는데 100년 전에 있던 race는 지금 것하고는 완전히 다른 게 될 수 가 있어.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아주 저항성이 없어서 전부 죽었는데, 100년 후에 와보니까 그것이 강한 저항성이 될 수 있어요.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대로 중요하다는 거지. 그래서 지금 국제식물자원연구소에서도 그런 것을 상당히 가치 있게 보고 강조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도 농민에게 꼭 그렇게 하라고 강요는 못하지만 많은 농민들이 재배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농민들이 손해 보면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손해 불 수 있는 문제점들을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떤 토종마을 식으로 지정한다던지 해서 그 마을에 가면 이런저런 토종들도 볼 수 있고, 방학 동안 학습이나 학자들이 공부도 할 수 있게 하면서 일정한 지원도 하면 상당히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떻겠느냐 하고 있어요.
- 그런데 토종은 근본적으로 수확량이 적나요? 옛날에는 다수확을 목적으로 육종한 것이 아닌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 그리고 육종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하는 거지. 어떤 사람은 다수확이고, 어떤 사람은 맛 같은 품질이고.
- 토종을 농가에 보급한다고 할 때 농가에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는 없을까요?
내가 생각하는 것은 뭐냐면, 근래에 와서 웰빙 바람 때문에 토종이 떴잖아요. 이걸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 자체가 토종이니까 한반도에서 옛날부터 있었던 토종을 먹고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 예를 들면 콩만 해도 옛날에 우리가 원산지니까 토종을 먹었는데, 지금은 전부 미국에서 신품종으로 육종을 하고 그것만 하면 좋은데 유전자 변이 콩이 엄청 많잖아. 그럼 유전자 변이 콩을 먹어서 좋을지 나쁠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요즘 유전자 변이 옥수수를 먹었더니 어떻게 됐더라 하는 얘기가 많은데, 우리같이 농업을 연구한 사람들 중에는 유전자 변이 농산물이 우리 몸에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모르거든.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토종을 먹는 것이 해로울 건 없을 것이고 좋지 않겠냐. 그리고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을 하니까 농민들은 그런 토종을 재배를 해서 그 토종을 많은 사람들이 먹게 하면, 소비자도 좋고 농민도 좋다고 보는 거야. 그렇게 하면 우리는 우리대로 토종을 현지에서 보전할 수 있으니까 좋은 거지.
- 그러면 토종과 토종 아닌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토종연구회에서 전부터 토종인증제를 하나 만들자고 했어요. 그런데 이게 생각은 좋은데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또 있어요. 우리가 인증제를 해서 그냥 인증해주면 너도 나도 다 해달라고 할 거 아니야. 그럼 그것보다는 일정 액수를 받아서 사용은 연구에 쓰던지 정부에 줬다가 받아서 쓰던지 아무튼 그건 나중 얘기고, 돈이 왔다 갔다 하면 거기에서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고, 인증하는 자체도 누가 어떻게 인증을 해주냐는 문제가 있어요. 토종과 육종된 것이 어떻게 다른가 구별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찾기가 쉽지 않아.
그래서 내가 책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가 있어요. 지금 보전되는 토종이 4~500가지가 되는데 워낙 많아서 사진을 다 못 찍었어요. 그런데 그걸 전부 사진을 찍고 책을 만들어서 ‘이런 것이 우리 토종이다.’ 하는 걸 보여주고 남기기 위해서 하는 거야. 이제 자꾸 세대가 지나가면 앞으로 사람들은 모르지. 시골에 가본 적도 없고, 시골에도 없어졌는데 어떻게 알아.
그러니까 그런 문제를 책을 만들고, 또 보전된 것을 유전자 지문을 만들어야해. 이건 유전자를 감식하는 방법이 있잖아요. 어떤 토종의 DNA는 그 내용이 어떻다는 걸 품종마다 전부 만들어 놓는 거야. 그래서 비교해보기만 하면 돼. 이것이 우리 것이라는 걸 만들어놔야 외국에 나갔을 때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거지. 이건 지금 농진청 종자연구소에서 하고 있어요.
- 그럼 그런 내용은 세계 어느 기관에 등록해서 저작권처럼 사용하는 건가요?
그것은 아니고, 일단 우리 걸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주장할 수 있지. 그렇다고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어떤 품종들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지금 검증할 수 있는 건 신품종 보호법이 있어서, 신품종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종자관리소에서 신품종을 만들면 ‘이 품종은 내가 만든 것이니 쓰는 사람은 로얄티를 내라.’ 뭐 이런 것이지.
그건 이런 거야. 나는 돌아다니면서 식물을 많이 훔쳐오는데 내가 어디에서 장미를 가져왔다고 하면, 내가 잘라다가 심어서 내가 보는 건 문제가 없어. 내가 잘라서 심다가 아는 사람한테 주는 것도 상관없지. 상업적이 아니면 괜찮다고. 그런데 이걸 갖다가 많이 만들어서 시장에서 팔면 그때는 로얄티를 내야하는 거야. 그리고 국내에서 하면 큰 문제가 없는데, 외국으로 수출하면 문제가 되는 거야. 이게 장미전쟁이니 하는 그 얘기야.
그런데 그것을 육종에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안 돼. 그걸 이용해서 신품종을 만들어서 등록하면 돼지.
- 토종이 그렇게 이용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토종의 정확한 정의가 무엇인가요?
토종의 정의가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토종연구회 홈페이지에 있어요. 말하자면 토종은 한반도에서 대대로 재배되거나 또 사양되거나 또는 자연생태계에서 대대로 살아온 생물을 얘기하는 거야. 식물, 동물, 미생물을 다 포함한다고 정의가 되어 있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대로’라는 의미가 몇 년이냐는 거야. 딱 잘라서 100년 이상이라고 하는 것이 참 어렵더라고. 그래서 대대로라고 표시해놓았지. 왜 그렇게 했냐면 가급적이면 많은 걸 우리 토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좋지, 이걸 300백 년 전부터 내려온 것이 토종이라고 하면 제한이 되잖아. 그래서 그렇게 했지. 그러니까 어떤 동네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심어서 내려왔다고 하면 그건 토종이지 그걸 어떻게 해.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많은 작물의 원산지가 아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작물이 외국에서 들어왔다고. 어떤 작물은 1000년 전에 들어온 것도 있고, 100년도 안 된 것들도 있다고. 예를 들면 산삼은 원래 우리가 원산지야. 그런데 근래 들어온 담배 같은 것도 그렇고, 고추, 고구마도 그렇고. 양파, 당근, 딸기 이런 것들은 토종이 거의 없어.
- 토종은 작물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군요.
그렇지. 토종은 우리나라 사람도 토종이지.
- 만약 육종된 품목을 계속해서 씨를 받아서 사용했다면 그것도 토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엄밀하게 얘기하면 토종은 아니에요. 그런 게 있어요. 벼는 자가수분을 해서 한 가지만 심으면 대대로 똑같은 것만 나와야 원칙인데, 육종을 하다보면 순도가 99.9%라도 0.1%가 변형이 돼요. 논에 가보면 삐죽 나온 것들이 더러 있어요.
그런 것들도 있을 수 있고, A라는 품종 옆에 B라는 품종이 있으면 0.1%니 이런 정도는 꽃가루 수분이 돼요. 벼는 자가수분 작물이지만 몇 년이 지나면 잡종이 많이 생겨요.
그래서 농진청에서 육종할 때는 이렇게 했어요. 제일 먼저 육종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품종을 기본식물이라고 하는데, 내가 A라는 품종을 육종하면 그 특성이 있잖아요. 그에 따라서 해마다 이삭으로 심어요. 그러고 보면 엉뚱한 것이 나올 수가 있어요. 그럼 그건 밟아버리고 나머지만 채종을 해서 원원종이라고 해서 도진흥원으로 보내던가 해요. 그럼 거기에서 증식을 해서 농가에 보급을 했어요. 그럼 벼 같은 것은 4년에 한 번 새로 심는다던지 하여튼 몇 년에 한 번씩 바꿔줘야 돼. 그렇지 않으면 잡종이 생기고 그래요.
그래서 아까 얘기하신대로 오래 전에 어떤 품종이 있었는데 계속해서 농민이 심었다고 하면 잡종으로 생각을 해야 돼요. 왜냐하면 벼나 콩은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데도 그런데, 옥수수 같은 것은 더 심하잖아요.
- 그럼 지역마다 수비초니 하는 작물들은 순도가 유지가 된 건가요?
유지가 된다고 봐야지. 유지가 되면서 좋은 방향으로 계속 육종이 된 거야. 영양에 가면 수비초가 있잖아. 거기는 수비초가 잘 되는데 다른 곳에 가면 잘 안 돼. 농민들이 수확을 할 때 거기서 제일 좋고 잘 된 거를 따서 모아 그것만 씨를 받아서 다음에 또 심은 것이지. 그게 농민이 육종가라는 말이지.
- 토종은 전국 어디서나 다 되나요?
아니지. 지역마다 다르지. 그래서 벼 같은 경우 육종을 하면 일단 각 지역마다 다 심어봐. 그걸 지방적응연락시험이라고 해요. 처음에 품종을 육종하기 전에 계통을 육종해서 제일 처음에는 어떤 병해에 강한가 먹을 만한가 생산력 검증시험을 해요. 거기서 통과하면 지방적응연락시험을 해. 목포에도 심어보고, 강릉에도 심어보고, 이리에도 심어보고, 태백에도 심어보고. 각 작물마다 그 시험지가 따로 있어요. 그 작물이 중요시 되는 그 지역에서 2~3년의 시험을 거쳐서 그 지방에 좋다고 하면 그 지방의 작물로 되는 거예요.
- 토종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는 얼마나 되나요?
거의 없다고 봐야 해요. 아주 일부 토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신림 같은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지.
- 아까 선생님 말씀 중에 토종마을은 괜찮은 생각 같습니다.
그게 앞으로 이뤄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밖에 지금 토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또 근래에 와서 생각하는 것인데 옛날부터 심던 토종을 귀농해서 사는 분들이 몇 가지씩이라도 심으면 상당히 좋지 않을까 해요.
아침에 지리산에 스님과 통화를 했는데, 이 분이 서점에서 우연히 우리종자 책을 보고 나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내가 종자를 구해서 보냈었어요. 그 양반은 토종을 엄청 좋아하는데 자기가 있는 곳은 산 중간이라서 덜 되는 것 같아서 여기저기 아는데 좀 보내서 그 사람들이 심게 해야겠다고 하면서 자기도 토종 때문에 다른 데로 옮겨야겠대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한테 내가 가지고 있거나 구할 수 있는 것을 자꾸 주면 꼭 필요한 사람들한테 가니 그게 좋은 거죠.
- 지금까지 토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토종이 갖고 있는 단점은 없나요?
단점은 경제적인 거예요. 수량이 떨어지는 것.
- 토종 잡곡의 경우 몇 군데에서 하는데 토종 과수나 채소류를 하는 곳은 없나요?
과수는 거의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하더라도 소규모겠지. 과수는 근래에 나온 과수들이 워낙 좋으니까. 채소는 하더라도 텃밭 정도겠지. 약초는 거의 토종일거예요.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약초재배는 많이 한다고 해요.
- 토종 잡곡의 경우 경쟁력이 있을 것 같은데 토종 채소나 원예 작물들은 어떨까요?
글쎄요. 하나하나 다른데 얘기하자면, 상추 같은 것은 봄에 심으면 일찍 추대를 해서 못 먹잖아요. 그런데 작년에 심었던 것은 산청에서 가져왔는데 추대가 굉장히 늦어요. 그런데 충청도에서 나왔던 새꽂이 상추라고 있어요. 그건 굉장히 추대가 늦어서 우리나라 상추 육종하는데 많이 썼다고 그래요. 본래 빨리 추대하는 문제점을 고친 거죠. 그런 옛날 토종상추 같은 것도 될 수 있겠고.
토종오이 같은 것도 재배해서 먹어보면 맛있잖아. 그런데 요새 나오는 것은 오이 하나에 크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맛이 없거든. 그러니까 비싸더라도 작고 맛있고 옛날 우리 것을 찾는 사람들을 찾아서 어떻게 토종마을 같이 생산하는 곳과 도시에 아파트나 어디가 됐든 소비하는 곳을 맞춰서 공급을 하는 걸 연결하면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 선생님 오랜 시간 말씀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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