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구술취재팀은 봄기운이 차오르는 2월 23일 강원도 홍천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조금씩 농사지으시며 토종 종자를 지키신 박기혁(73) 선생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집에서 먹으려고 했다 하시지만 얼마나 고마운 분인지 모릅니다. 손재주가 좋으신 선생님께서는 그저 심심풀이로 이런 저런 연장을 손수 만들고 계셨습니다.
지금도 토종 종자로 농사를 지으시나요?
지금은 몸도 불편하다 보니 토종 종자가 대부분 없어졌어요. 사람들도 이게 수확량이 적으니까 잘 안 해요. 토종은 뭐든지 그렇게 수확이 적어요. 좋은 점이라면 한 가지, 맛이 좋아요. 요즘은 집에서 먹는 거나 조금씩 해요. 10년 전만 해도 꽤 있었어요. 요즘은 농사도 줄고 한 대여섯 가지밖에 없어요. 콩 세 가지하고, 옥수수는 찰옥수수하고 메옥수수 두 가지 있어요. 지금 사람들이 심는 건 말짱 개량종이래요.
옥수수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메옥수수는 8줄백이1)라고 해요. 8줄이 생긴다고 8줄백이라고 해요. 이게 알이 굵고 참 좋아요. 큰 건 12줄, 15줄도 있어요. 이걸 심으면 열 포기 중 여덟아홉은 8줄백이가 나와요. 이건 강밥 같은 거 튀겨서 먹고 할 때 좋아요. 강밥을 튀겨도 맛이 좋고요, 옛날에는 옥수수밥도 많이 해먹었어요. 밥할 때는 메옥수수가 좋죠. 그것 말고도 이걸 갈아서 올창국수라고 있어요. 요즘은 노란 것도 있던데 그것보다는 이걸로 해 먹는 게 더 맛있어요. 풋강냉이를 먹으려면 찰옥수수가 맛있어요. 그런데 찰옥수수는 메옥수수보다 수확이 적어요. 6.25 전만 해도 한 집에서 몇 천 평씩 심어서 먹었어요.
옥수수는 거름이 많이 들지 않나요?
옛날에는 퇴비로 했지요. 요즘 같이 비료가 어디 있어요. 소를 키우는 집에서는 풀을 베어 들여서 집더미처럼 쌓아 놓고서 소한테 밟혀요. 그게 좋은 거름이죠. 그걸 한 움큼씩 한 구덩이에 넣는 거예요. 전부 뿌리면 아까우니까 한 군데 넣어야 거름을 아낄 수가 있죠. 지금처럼 비료도 없고 그래서 농사는 많이 지었지만 요즘처럼 수확이 많지 않았어요. 2천 평으로 5~6식구만 먹을 수 있는 정도였어요. 옥수수 20가마면 농사 잘 지었다고 했지요. 요즘은 비료 때문에 엄청나요. 한 100가마씩 나와요.
옛날에는 요즘 같은 수확은 나오지 않았어요. 감자도 토종 감자는 알이 달리긴 많이 달리는데 작고, 개량종은 커요. 그래서 수확량 때문에 요새는 다 개량종을 심는데 그게 맛이 없어요. 먹어봐도 맛이 없어 먹을 수 없어요. 토종 감자는 물기가 많고 잘더라도 밥에 앉혔다가 다지면 분이 펄펄 나요. 팍신하고 단 게 아주 맛있어요. 서울 사람들이 그걸 맛보면 아마 더 비싸도 그것만 찾을 거래요.
토종 감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색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도라지꽃 같은 색도 있고, 돼지감자도 있고 그래요. 여하튼 개량종은 맛이 없어요. 그 좋던 토종 감자가 수확량 때문에 다 없어졌죠. 지금은 맛이 있네 없네를 더 따지잖아요. 처음에 개량종을 심던 그때는 가격도 좋고 수확량도 많아서 논에 벼 심는 것보다 오히려 감자를 심는 게 더 나았어요. 그래서 너도 나도 개량종을 심었죠. 그런데 참 맛이 없어요.
나도 감자가 한 가지 있었는데, 못 쓰게 됐어요. 올 겨울에 창고에 넣어 놨는데 다 얼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남한테 얻어야 해요. 그 사람들도 많이 하지 않아서 별로 없어요. 감자는 이제 많이 심지도 않아요. 쌀도 남아도는데 그걸 먹겠어요. 그 사람들도 옛날 맛을 못 잊어서 계속 심는 거지요.
왜 토종 농사를 지셨나요?
집에서 먹을 것만 하느라 그랬죠. 젊어서는 먹고 살려고 농사를 애써 짓지 않았어요. 그래도 옛날 맛이 생각나고 하니까 놓지 못하고 조금씩이라도 계속 했죠. 젊어서 군대 가기 전에는 3~4천 평 농사를 지었어요. 그때는 비료도 없을 때래요. 고작 1반에 몇 포를 나눠주면 그걸 가지고 배급을 받았지요. 그걸 되로, 말로 나눠 받아서 조금씩 주면, 그래도 효과가 엄청 났어요. 그러다가 차츰 비료가 많이 나왔어요. 요즘은 비료를 옛날에 퇴비 주듯이 줘요. 그러다 보니 땅이고 뭐고 다 망가지는 거래요. 옛날 어른들께서는 “비료 치다 빌어먹는 세상이 온다”고 그러셨어요.
심으시던 토종 종자는 어디서 구하신 건가요?
대대로 내려왔지요. 우리는 여기서 계속 농사짓고 살았어요. 또 어디에 어떤 것이 괜찮다고 소문이 나면 그 마을에 가서 얻어다가 좀 심고 그랬어요. 시골 사람들끼리는 더 잘된다고 소문나면 서로 바꿔 심어요. 그래도 농사가, 같은 종자라도 여기서 잘되는 기 경상도 가면 그렇지도 않아요. 언젠가 방송국에 여기 한아가리콩이 있다고 나온 걸 보고 누가 연락했길래 보내줬더니 잘 안됐다고 해요. 뭐든지 그 고장에 맞는 씨앗이 있어요. 일단 기후가 비슷한 데라야 해요. 하마 원주만 나가도 여기랑 20일 차이가 나요. 거기 걸 여기에 심으면 늦어요. 여기는 빨리 피는 걸 심어야 해요.
요즘은 봄도 빠르고 서리도 늦지만 옛날에는 원주, 홍천만 해도 여기랑 엄청 차이 났어요. 그런 걸 감안해서 심어야지요. 여기는 보통 망종 때 모심기를 하고, 입하에 콩, 팥, 옥수수 막 심고, 소만에 늦게 심으면 좋다고 해서 팥을 심었어요. 요즘은 말짱 온상에서 하니 별 신경 안 쓰지만 절기에 맞춰서 했어요.
한아가리콩은 뭔가요?
맨 메주콩이래요. 그게 알이 여느 콩보다는 굵고 더 많이 나와요. 그렇다고 아주 큰 것은 아니고, 이걸로는 두부나 메주를 만들어 먹지 밥에는 넣지 않아요. 밥에는 까만콩이나 파란콩을 넣어 먹어요. 파란콩은 푸르대콩이라고 해서 껍질도 푸르고 속도 푸르고 좀 잘아요. 까만콩은 뭔지 모르겠는데 옛날부터 그냥 까만콩이라고 했어요.
여기서는 콩농사를 어떻게 짓나요?
입하 때가 콩 심기에 가장 적기예요. 콩은 서리 오기 전에 여물기만 하면 돼요. 그렇다고 너무 일찍 심으면 관리하는 일만 많아요. 옛날에는 콩에 거름을 안 했어요. 언제 한 번은 거름을 해보니 잘 안됐어요. 크기만 계속 크고 서리 올 때까지 익을 생각을 안 해요. 콩은 거 뿌리에 도톨도톨한 것이 자기가 비료를 맹글어서 쓴대요.
콩은 모래와 자갈이 많은 곳에 심고, 진흙이 있어도 자갈이 박힌 곳에서 잘 돼요. 옥수수는 뻘건 흙에서 잘 되요. 심을 데가 마땅치 않으면 계속 한 자리에 심기도 했지만 그러면 잘 안 돼요. 작물을 안 심던 데 심으면 거름을 안 해도 잘되는데, 그게 아니면 무슨 곡식이든지 자리를 바꿔가며 심어야 해요.
옛날에는 콩에 노린재 같은 벌레 피해는 없었나요?
옛날에는 벌레가 별로 없었어요. 요즘은 벌레가 많아서 꼭 농약을 치더라고. 어떻게 된 것인지 점점 벌레가 많아져요. 요 앞 개울에도 옛날에는 고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씨가 마르고 없어요. 그만큼 오염이 된 거죠.
옥수수도 직파했을 텐데 새피해 같은 것은 없었나요?
왜 없어요. 짐승도 먹고, 외딴 데 심으면 돼지떼가, 산돼지떼가 와서 절단을 내요. 그래서 올가미도 놓고, 밤이면 막을 치고 밤으로 잠도 안 자고 뭔가를 두드려서 쫓았어요. 그러다 틈이 나면 조금씩 자고, 참 힘들었죠. 요즘은 말짱 모종하니 편하죠.
이제는 지게를 지는 사람도 없어요. 그때는 거름도 지게에 져서 산을 몇 개를 넘어 옮기고 했어요. 리어카가 처음 나와서 편하다고 깜짝 놀랐는데, 요즘은 비알밭도 세렉스로 거름 실어다 나르지, 로타리는 트렉터로 치지, 그래도 요즘 사람들은 농사가 힘들다고 해요.
팥도 몇 가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것이 있나요?
팥은 두 가지가 있는데, 참팥이라고 빨간 거하고, 가래팥2)이라고 알록달록한 것이 있어요. 가래팥이 밥에 넣으면 맛이 더 좋아요. 참팥은 며칠 담가놓거나 삶아야 하는데, 가래팥은 몇 시간만 담갔다가 밥을 해도 돼요.
가래팥은 땅을 나물르지 않고 잘 돼요. 수확도 괜찮아요. 그런데 장사꾼이 값을 잘 안 쳐줘요. 참팥은 앙꼬나 고사떡처럼 용도가 많은데 이건 그렇지 않아서 그런가.
다른 농사 이야기 좀 해주세요?
조도 더러 했는데, 많이 하기만 했지 수확은 별로였어요. 조는 화전을 많이 했어요. 예전에 어른들 보면 아무데나 가서 그러모아 막 불지르고 해먹더라구요. 사람도 적었는데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농사를 지었는지 몰라요. 새로 땅을 만들어서 하면 더 나아서 그랬는지. 조에다가 몇몇은 부룩3)을 치기도 했어요. 조가 쭉 자라고 있으면 그 옆에 콩을 심었어요.
요즘은 조를 온상에서 모종을 하니 김매기도 좋고 수확도 많잖아요. 옛날에는 그냥 뿌리니까 김매기가 참 힘들었어요. 지난번에는 마당만큼만 했는데 1가마를 수확했어요. 이제 농사는 집에서 먹으려고만 생각하고 하면 누워서 팥떡 먹기죠.
또 청밀4)이라고 있었어요. 70년대 이전까지는 많았는데 그 이후 차츰 없어졌어요. 버릴 사람은 아주 버리고 그래도 맛이나 보려는 사람은 조금씩 하고 그랬죠. 이 청밀은 푸름한 기가 있어요. 앞때5)에서 하던 것과 비슷한데, 이건 키가 더 커요. 깔씨6)도 있고. 이걸로 지붕도 해 이고, 일찍 먹을 수 있으니까 했어요.
밀을 심고 난 다음에는 메밀을 심었어요. 이건 아주 늦게 중복 때 심었어요. 메밀은 늦게 심어도 일찍 베요. 베는 건 서리 맞기 전에 베야지, 서리를 맞아도 되지만 막 쓰러지고 헝클어져서 힘들어요. 잘 마르지도 않고. 이것도 요즘은 안 심고, 평창이나 봉평에서 많이 심어요. 진짜 메밀국수를 먹으려면 거기로 가야 해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해주세요?
우리 세대는 왜놈 시대부터 6.25때 인민군, 중공군까지 별 놈들 다 치우고 만고풍상을 다 겪었어요. 어떻게 지금처럼 시대가 발달했는지 그때로서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예요. 새롭게 연구하는 게 아니라 남들 것을 모방만 하니까 빨리 발전한 것인지, 살기는 좋은 세상이에요. 우리 세대는 이상한 풍상을 겪었어요.
우리 때는 오래 산 사람도 있지만 흔하지 않고 90세는 아주 드물었어요. 몇 백호는 되어야 한 분 있을까. 그때는 칠십 노인이면 아주 기가 막히게 오래 산 거예요. 우린 그저 어른들 밑에서 엄하게 크고, 어른들 모시고 사는 게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고 살았는데, 요즘은 늙은이들 알아주지도 않는 세상이지요. 참 요지경 세상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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