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성포도서관에서 빌려온 주강현 씨의 <관해기>라는 책을 보다가 재미난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조선지지자료략>이라는 책에 나온 지도를 찍어서 참고사진으로 올린 것입니다. 안 그래도 지난해부터 일본자료를 보고 있어서 더 관심 있게 꼼꼼히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옛날 땅이름을 일본식으로 표기하는 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일본자료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우리나라 땅이름이나 농기구 이름을 일본식으로 적어 놓은 것을 다시 우리말로 푸는 일입니다. 그래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지요. 한 예로 신기新基라는 땅이름이 나옵니다. 이걸 セット샛터라고 했더군요. 이러한 것이 몇 가지 더 나오지만, 이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더 찾아보려고, <조선지지자료>라는 책이 없나 이곳저곳 쑤시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출판된 책을 살피니, <강원도의 땅이름>이라는 책은 있는데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대학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일본책을 볼 수 있었지만, 제가 원하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사회과부도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을 뒤졌습니다. 그랬더니 좋은 자료가 있더군요.
제가 보고 있는 자료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자료는 아니지만, 제가 살고 있는 곳을 더 잘 아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였습니다. 그럼 이제 입은 그만 놀리고 그 자료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목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입니다. 언제인지, 누가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저 대략 1910년 무렵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은 땅이름을 조사한 것입니다. 산, 들, 강, 마을, 역, 유적, 특산물 등을 ‘한자/우리말/비고’의 형식으로 꼼꼼히 조사했습니다. 이런 것까지 조사해 놓았나 싶어서 참 기가 찹니다. 덕분에 재밌게 보기는 하지만 씁쓸하네요.
그러면 제가 사는 안산, 성호 이익 선생님이 잠들어 계신 이곳의 지명을 소개하겠습니다.
고종 33년(1896) 경기도는 크게 3부 36군의 행정조직이었습니다. 일등부윤은 3곳으로 경성, 개성, 강화입니다. 일등군수는 1곳으로 양주입니다. 이등군수도 1곳으로 수원입니다. 나머지 30곳은 사등군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안산시는 이 당시 “안산군安山郡”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산 이름이 나옵니다. 안산의 산이라 하면 당연히 수리산이죠. 안산과 붙은 수리산은 바로 “수암봉秀岩峰”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수암리秀岩里 뒷산으로 수리산 서쪽 맥脈이다.” 다음은 “응봉鷹峰”입니다. 이곳에는 “l봉ㅣ” 곧 매봉재라는 우리말 땅이름이 나옵니다. 설명은 “서정리西亭里 뒷산, 곧 수암봉 서쪽 맥이다.” 그런데 저는 서정리가 어디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은 하천입니다. 하천은 “판천板川”이라는 곳만 나옵니다. 한글 이름은 없고, “동곡리東谷里 앞에 있다”라는 설명만 나옵니다. 동곡리는 뒤에 나오겠지만, 동막골을 말합니다.
다음은 가장 많은 동네 이름, 마을 이름입니다. 번호를 붙이며 소개하겠습니다.
1. 수암리秀岩里. 별 다른 설명은 없습니다.
2. 서정리西亭里. “독슈리”, 곧 독수리라는 우리말 이름이 있습니다.
3. 장상리章上里. 지금의 장상동이겠죠. 우리말 이름은 “노리울”이라고 합니다. 이 이름은 장章과 깊은 연관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고구려와 신라 때 안산의 이름이 장항구獐項口와 장구獐口였다고 합니다. 장章은 장獐을 잘못 쓴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옛 이름에는 모두 ‘노루 장獐’이 들어가지요. 그래서 ‘노루→노리’로 변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4. 장하리章下里. 우리말 이름은 “벗말”입니다.
5. 동곡東谷. 우리말 이름은 “동막골”이라고 합니다. 안산 텃밭에서 산 하나 넘으면 나오지요.
6. 신리新里. 우리말 이름이 “시랑골”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시랑 초등학교’가 있는 걸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거 관공서에서 표지판에 잘못 표기해 놓았습니다. 아마 이런 저런 유래는 모르고 로마자 표기만 따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나다니면서 눈 여겨보셨다면 아실 텐데, ‘시낭’이라고 되어 있지요. 이거 더 이상 굳어지기 전에 고쳐야 하는데 어디에 신고하면 되는지 몰라서 그냥 있습니다. 누가 대신 신고 좀 해주세요. 시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곳 출신인 진주 유씨의 한 분이 이부시랑이라는 벼슬을 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7. 점성리占星里. 제가 가장 관심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안산을 계속 ‘일리, 이리, 사리’가 기원이라 ‘일동, 이동, 사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얼마나 재미없고 멋없는 이름입니까. 저는 그게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익 선생님이 살다 가신 마을 이름이 ‘첨성리’ 아니면 ‘점성리’인데, 이곳이 어떻게 일동이겠습니까. 그래서 전부터 일동에 강한 의구심을 품고, 점성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이 자료에 점성리라는 이름이 나오는군요. 제가 필명으로 쓰는 ‘점성골 김서방’이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이곳의 한글 이름은 “졈셩”이라고 합니다.
8. 성포리聲浦里. 안산에서 이름을 잘 지은 곳 가운데 한 곳입니다. 옛 숨결이 살아 있는 ‘성포동’입니다. 한글 이름은 “셩머리”라고 합니다.
9. 양상리揚上里. 지금의 양상동입니다. 우리말 이름은 “윗버l” 곧 “윗버들”입니다. 양상보다 참 예쁩니다. 일본이 자기네 식으로 만든 이름 대신 이런 이름으로 바꾸면 안 될까요? 이제 전산화도 됐고 그리 힘들지 않을 것 같은데. 생각 있는 지도자가 나오길 기다립니다. 그때까지 이런 걸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꼭 붙들고 있어야지요.
10. 양하리揚下里. 이 이름은 지금의 양하동이지요. 한글 이름은 “아ㅣ버l" 곧 ”아랫버들“입니다.
다음은 역 이름입니다. 당시 지하철이나 기차는 없었고, 말 타고 달려와 쉬던 곳이었겠지요. 안산에는 “석곡역石谷驛”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글 이름은 “버l역말” 곧 “버들역말”입니다. 설명에 “양상, 양하의 서쪽이고, 예전에 대월면大月面 석곡리에서 부르는 옛 역 이름을 썼다”고 합니다.
다음은 원院입니다. “쌍록원雙鹿院”이 있었다고 합니다. 관청은 아닌 것 같은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설명을 보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장하리에 있다. 고려시대에 송도로 가는 길이 그곳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터도 알 수 없다.” 장하리를 지도에서 찾아보면 지금은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옛날부터 아주 중요한 길목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원래 길은 이렇게 사람이 잘 다니는 곳, 사람은 다니기 쉬운 곳이 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길은 그걸 뛰어넘었지요. 하늘 높이 길을 뚫지 않나, 산에 구멍을 뻥 뚫지 않나.
다음은 장입니다. 안산의 장은 “수암시장”이라고 합니다. 텃밭의 어르신 말씀을 들어보아도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수암장이 가장 크고, 다들 거기서 장을 보았다고 하십니다. 이곳의 한글 이름은 “읍ㅣ장” 곧 “읍내장”입니다. 설명은 “수암리에서 상인이 출시하지 않고, 지금은 폐장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포구입니다. “성포聲浦”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글로는 “셩머리”라는데, ‘소리곶’으로도 유명하지요. “성포리 앞에 있다.”
다음은 산봉우리입니다. 산봉우리라고 해도 안산에는 험한 곳이 없지요. 수리산만 해도 600m가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산봉우리 이름도 “소기小崎”입니다. 한글로는 “작은ㅣ” 곧 “작은재”라고 합니다. 설명은 “수암리의 뒷산에서 과천으로 가는 길이다.”
다음은 고개입니다. “장명현長命峴”입니다. 아쉽게도 한글 이름은 적어 놓지 않았습니다. 설명은 “점성리 뒷산에서 광주로 가는 길이다”라고 합니다. 저희 집 뒷산이지요. 요즘 하루에 한두 번씩 꼭 산책을 다니는 길이기도 합니다.
또 “풍현風峴”이 있습니다. 얼마 전 지하철 역에 붙어 있는 지도를 살펴보다 재미난 걸 보았습니다. 수암봉에서 텃밭으로 오는 능선에 ‘바람고개’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여기가 예전부터 바람이 많이 불던 곳이라 그런지 이름도 바람고개라고 한다며 재밌어 했지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정용수 선생님께 했더니, 예전부터 그곳을 ‘바람개비고개’라고 했다고 하셨습니다. 역시 걸어다니는 영상실록이십니다. 이 기록에도 한글로는 “바람ㅣ비고ㅣ”라고 합니다. 설명은 “동막골 뒷산으로서 북쪽으로 향하는 통로이다.”
그리고 “항현缸峴”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항아리고ㅣ”라고 합니다. “양상리 뒤쪽에 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절 이름도 나옵니다. 먼저 “원당사元堂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수암리 뒷산에 아직도 흔적이 있다.” 또 ”수암사秀岩寺“라는 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수암리 뒷산에 아직 흔적이 있다.“
다음 명승고적입니다. 앞서 말했던 “장항獐項”이 명승고적이라고 합니다. 경치가 좋다는 말이겠지요. 지금도 산에 올라 보면, 너른 들에 멀리 물결치는 산이 펼쳐져 보기 좋습니다. 몇 개는 못 본 척 눈을 감으면요. 한글 이름은 “노리울”입니다. 설명은 “장상, 장하, 동막 모두를 말한다. 고구려와 신라시대의 읍터였다. 그 시절 읍 이름이다.”
“망해정望海亭”이라는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서정리의 뒤이다. 옛 연성군蓮城君 김정경金定卿의 루樓인데, 겨우 터만 남아 있다.” 김정경(1345~1419)은 안산 김씨로 조선 전기의 무신입니다. 태조 5년(1396) 전라도와 충청도 각지에 성을 쌓고, 군비를 점검하며, 병선을 살폈다고 합니다.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월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오르고, 연성군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태종 6년(1406)에는 명나라에도 다녀오고, 삼군절도사를 거쳐 이조전서가 된 인물이라는군요. 안산이 연으로 유명하긴 했나 봅니다. 강희맹이 중국에 다녀와 가져온 연을 심은 곳도 이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안산 김씨 가운데 호에 연蓮을 쓴 인물들이 꽤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산의 특산물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가장 솔깃해 할 순서입니다. 번호를 세며 소개하겠습니다.
1. “미米”. “쌀”입니다. “군의 모든 곳에서 산출한다”고 합니다.
2. “맥麥”. “볼이” 곧 “보리”입니다.
3. “대두大豆”. “콩”.
4. “시柿”. “감”.
5. “율栗”. “밤”.
6. “梨”. “ㅣ” 곧 “배”입니다.
7. “행杏”. “살구”. 안철환 선생님 댁에 멋진 살구나무가 있지요. 그것이 괜히 잘 되는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어떻게 알고 심으셨는지 선견지명이시네요.
8. “철정鐵鼎”. “솟졍” 곧 가마솥이지요.
지금까지 1910년대 안산을 살펴보았습니다. 꽤 기네요. 길지만 재미있으셨길 바랍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졸립니다. 오늘은 이만 자려고 합니다. 다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