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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문서자료

성호사설 8권 인사문 - 요기분전溺器糞田

by 石基 2008.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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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통을 메고 밭에 거름을 준다.

 


동중서董仲叙가 상上(한무제漢武帝)을 설득하기를 “《춘추春秋》에 다른 곡식의 흉작凶作은 기록하지 않고 보리와 벼의 흉작만 기록했으니, 이로써 성인聖人(공자孔子)이 보리와 벼를 가장 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관중關中의 풍속은 보리 갈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이는 《춘추》에서 중히 여긴 것을 상실함이고, 백성의 생활을 손상함입니다. 원컨대 대사농大司農에게 조서를 내려 관중 백성에게 숙맥宿麥을 더 많이 갈도록 하여 시기를 잃지 않게 하소서"라고 했다.
대개 (오행五行으로 말하면) 벼는 목木이기 때문에, 목이 왕성旺盛하면 나고, 금金이 왕성하면 죽는다. 보리는 금金이기 때문에, 금이 왕성하면 나고, 화火가 왕성하면 죽는다. 그러므로 가을에 벼를 거두어 겨울과 봄에 먹고, 여름에 보리를 거두어 여름과 가을에 먹는다.

가난한 백성은 저축이 없으나, 식량이 떨어질 때가 되면 문득 새 곡식이 나서 호구糊口한다. 그래서 보리와 벼 농사 가운데 하나만 흉작이어도 백성은 굶주린다. 그러므로 성인이 보리와 벼를 중히 여긴 것이다.
보리에는 봄보리와 가을보리 두 종류가 있다. 그러나 당초에는 같은 종자였던 것을 사람들이 심는 시기를 달리하다 보니, 세월이 오래되며 두 종류가 된 것이다. 그러나 봄에 심은 것도 여름이 되면 마르는 것은 가을보리와 같으니, 이는 본성이 금金이기 때문이다.
《맹자》에 "일지日至 때에는 익는다"라고 한 것을, 주註에서 ‘일지 때는 익을 때이다'라고 한 것은 아마도 틀린 것 같다. 《맹자》에 일지를 말한 곳이 두 군데 있는데, "천세千歲의 일지"라 한 것은 동지冬至이고, 여기서 말한 일지는 하지夏至이다.

주나라가 동천東遷한 뒤 시월時月의 명칭이 바뀐 것은 《춘추》에서 상고할 수 있다. 지금의 11월은 주 나라의 봄 정월[春正月]이고, 지금의 5월은 주 나라의 가을 7월[秋七月]이므로 동지와 하지란 명칭이 드디어 없어졌으나, 춘지春至와 추지秋至라고는 할 수 없어 다만 일지라고 칭했을 뿐이다. 하지는 곧 보리가 익는 시기이다.
가을에 파종하는 것을 숙맥宿麥이라고 한다. 지금 경기京畿 백성 가운데 가을보리를 파종하는 자의 1/3은 그 밭이 메마르기 때문에 오줌을 주지 않으면 무성하게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남쪽 지방에서도 다같이 가을보리를 파종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오줌 주는 걸 알지 못한다. 오줌은 보리를 더욱 무성하게 하므로, 오줌 주는 것은 이미 변할 수 없는 풍속이 되었다.

원나라 호안락전胡顔樂傳에 “백성들이 오줌 통을 메고 밭에 거름을 준다”고 했으니, 이는 반드시 가을보리에 주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중국도 우리나라와 풍속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일은 《이학통록理學通錄》 외편外篇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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