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소는 부리고 말은 탄다[服牛乘馬].” 했는데, 복服은 바로 수레에 멍에를 메우는 것이니, 승乘은 어찌 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를 해설한 자는 《좌전》에 있는 말을 인용하여 증거했으나, 나는 “저 높은 언덕으로올라가려 하나, 나의 말이 병들었다[陟彼高崗 我馬玄黃]” 하는 시를 근거로 볼 때 저 높은 언덕에는 수레를 타고 올라갈 곳이 아니므로 말을 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혹 먼 길을 가자면 말을 타고 가는 것이 빠르다는 것은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닌데, 어찌 말을 수레에 메운다는 것만 알고 그냥 타는 이치는 몰랐다 할 수 있겠는가?
소로 밭을 가는 것이 비록 조과趙過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나, 염경冉畊의 자를 백우伯牛라 했고 사마우司馬牛의 이름은 이犂라 하였으니, 이는 모두 어디에서 뜻을 취한 것이겠는가? 《회남자淮南子》에 “밭가는 자는 날로 줄어들고 베짜는 자는 날로 늘어난다” 한 것은 소로 밭간다는 것이 아니다. 추측컨대 혹 소로 밭을 갈았다 하더라도 그 제도가 갖춰지지 않아서 매우 불편한 점이 있었고, 혹 산골에 있는 묵은 밭은 소로 가는 것보다 사람 혼자서 괭이로 가는 것이 도리어 편리해서 그렇게 했던 것인 듯하다. 지금 풍속에도 갈기 쉬운 밭이 아니면 반드시 괭이를 사용하니, 회남자가 가리킨 바도 이와 같은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무릇 농사에 첫째로 써야 할 것은 똥만한 거름이 없다. 《주례》에 분종糞種의 방법이 있는데, 이는 짐승 똥을 물에 풀어서 곡식의 씨를 적시는 것이다. 이미 곡식의 씨를 똥물에 적시는 것이 곡식에 유익한 것을 알았다면, 어찌 우마牛馬의 똥이 밭을 비옥하게 만든다는 이치는 몰랐겠는가? 밭을 걸우는 데는 쇠똥만한 것이 없으니 농사를 짓자면 소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맹자》의 분전糞田에 대한 주에 '곡식에 거름을 주고 흙으로 북주는 것이다' 하였고, 《예기》에는 “어른을 위해 똥을 쓸어 버린다[爲長者糞之]”라는 대문이 있는데, 이 분糞자는 분자와 통용되는 것이니, 분종糞種ㆍ분전糞田의 뜻과는 서로 따질 것이 아니다.
무왕은 말은 화산華山 남쪽으로 돌려보내고, 소는 도림桃林 들판에 놓아 먹였는데, 난리가 끝난 뒤에 군사들은 모두 돌려보내어 농사짓게 하면서 소와 말만은 어찌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성인聖人은 반드시 쓸모있는 것을 쓸모없는 데로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상자商子》에 “말은 화산 남쪽에 풀어 놓고, 소는 농택農澤에 놓아 먹인 것은 탕무가 백성에게 상을 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서경》에 도림桃林이라 한 것을 《상자》에는 농택農澤이라 하였으니, 소가 모두 농사로 되돌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소가 농사로 되돌아갔다면 밭갈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에 “추鄒 목공穆公이 이르기를 '소를 배불리 먹여 밭을 갈고, 등에 햇볕을 쪼이면서 김맨다' 했다” 하였으니, 이로 본다면 소로 밭을 갈았다는 것을 더욱 증명할 수 있다. 마땅히 이 모든 말들을 서로 참고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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