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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에 만연한 '상호불신 문화'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에 대해 분석한 연구가 있다고 한다. 이거 한국도 해당하는 것 같아서 찌릿찌릿하다.

언어의 한계 때문에 정확히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악명 높은 노예 무역이 횡행했다. 그런데 노예 무역 말기가 되면, 유럽인에 의해서만이 같은 마을의 사람이나 이웃, 게다가 친척과 가족에 의해서도 노예가 되어 경매에 부쳐졌다고 한다. 어떤 방법을 통해 노예가 조달되었는지에 대한 체계적 자료는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않지만, 1840년 어느 독일인 선교사가 시에라리온에서 거래되는 노예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긴 자료가 있다고 한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144명의 노예 가운데 40%가 납치, 24%가 전쟁, 20%가 친척과 친구에 의해, 16%는 재판에 의해 노예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건 마지막 두 방식으로, 이것이 바로 '지역사회 내부의 사람'에 의해 노예화가 자행된 결과이다. 이러한 가까운 사람에 의한 배신이 시에라리온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의 노예 공급지에서 널리 행해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예가 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홉스가 이야기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나 게임 이론의 '죄수의 딜레마'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신이 최적의 생존전략이 되며, 사회적으로는 상호불신이 이른바 '균형' 상태가 되어 안정화된다. 일단 그러한 균형 상태에 이르면, 거기에 강한 외부 충격이 주어지지 않는 한 그 상태는 변화하지 않으며 지속되어, 그것이 결국 '문화'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는 세대를 넘어 계승되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연구는 이처럼 노예 무역의 결과 지역사회 내부에서도 '노예 사냥'이 행해졌고,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며 경험적으로 정착된 상호불신이 지금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널리 관찰되는 것임을 입증한 것이다.



조선 말기의 극도로 혼란한 상황, 일제강점기의 민족 탄압, 한국전쟁의 동족 상잔, 이후 군부독재 시기라는 100년의 세월을 거치며 한국 사회에는 어떤 크나큰 상처가 남은 것일까?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문다고 하지만 그 흉터까지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명목상 문민 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부터 조금씩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이제 불과 30년 정도 되었을 뿐이다. 이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관리를 잘해야겠다. 아직도 상처가 제대로 아물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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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즐겨 먹는 유명 기업의 달콤한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여전히 아동노동에 의해 생산된다는 사실. 너무나 씁쓸하다. 

https://www.washingtonpost.com/…/hershey-nestle-mars-choc…/…



<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를 함께 읽어 볼만하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0672612


이외에도 관련된 책이 국내에도 많이 출간되어 있다.


<나쁜 초콜릿>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866454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말해주지 않은 것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7939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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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de van Andel 씨가 수리남의 Paramaribo에 있는 시장에서 도정하지 않은 쌀 한 봉지를 구매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노예제의 가거를 새롭게 검토하게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현재 네덜란드 Leiden에 있는 Naturalis Biodiversity Center의 민족학자는 2006년 수리남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약용 및 제례용 식물을 조사했다. 그녀는 쌀을 포함한 약초와 제례용 식물을 판매하는 수백 명의 마룬Maroon 여성들로 붐비는 수도의 시장을 발견했다.

수리남의 마룬은 그 국가의 내륙에 있는 열대우림을 피난처로 정하며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도주 노예들의 후손이다. 이질적인 경관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초기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마룬들은 살아남아 그 문화를 지속해 올 수 있었다. 오늘날 20만 이상의 마룬들이 있고, 대부분은 수리남과 프랑스령 기아나에 살고 있으며 네덜란드에도 적은 수가 있다.  

역사가들은 350년이란 대서양 횡단 무역 기간 동안 12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이 강제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야 했다고 추정한다. 이 항해에서 살아남은 1070만 명 가운데 약 30만 명의 노예들이 1668년부터 1823년 사이에 라틴아메리카 북동부에 있는 수리남의 네덜란드 식민지로 이송되었다. 거기에서 그들은 급증하는 커피와 설탕 플랜테이션에서 강제로 노동해야 했다.  

수리남에서 van Andel 씨는 노예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론 -쌀을 포함하여- 이 논의되고 있는 걸 알지 못했다. 아프리카인 노예가 북미의 수익성 좋은 쌀 플랜테이션을 도왔던 벼와 농사법을 가져왔는가? 기존 이론의 대부분은 노예는 주인이 시킨 일을 수행한 무지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벼 해안"에 있는 국가에서 잡혀온 노예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작물에 대한 지식을 가져왔다. Wageningen University


그 논쟁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번서아는 벼 경제를 책임지고 있던 아프리카인 노예의 사례를 제시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벼 역사학자이지 지리학 교수인 Judith Carney 씨가 2002년 저술한 책 Black Rice에 의해 촉발되었다. 벼는 식민지 시대 초기의 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작물의 하나였으며, 최대 25%의 수익을 올렸다. 아프리카의 쌀은 짙은색의 겉껍질이고,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3개월의 항해 동안 배에 가득 실린 노예들을 먹이기 위해 사용된 단단한 곡물로 제공되었다. 다수확의 아시아의 벼가 결국 플랜테이션을 장악하였지만, 아프리카의 쌀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도 안정적으로 재배되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은 신세계에서 탄탄히 뿌리내리기 위해 필요한 경작술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들이 오랫동안 활용하던 전통적 벼 농사법을 문서화하며 서아프리카에서 시간을 보낸 Carney 씨는 신세계에서 벼농사의 과정을 분석할 수 있는 객관적 방법이 있음을 깨달았다.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들이 파종, 도정, 요리하던 방법만이 아니라 벼를 경작한 미소환경을 아프리카 여성들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그녀는 노예 소유주들의희소하고 편향된 역사적 기록에 의존하지 않고서 신세계와 구세계 사이의 흥미로운 유사점을 공들여 짜맞추었다."미국 혁명까지 노예들은 아프리카의 농촌 지역처럼 절구와 절구공이로 도정을 했다."고 그녀는 지적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전설에서는, 배를 타기 전에 여성들이 머리카락 속에 아직 도정하지 않아 씨앗으로 쓸 수 있던 볍씨를 어떻게 숨겼는지 알려준다. 그녀의 연구는 "아프리카 대리인(African agency)"이라는 개념 -노예들이 적어도 그들의 행동에 대한 언어 구사력을 가졌다는 개념- 을 뒷받침했다. 

Carney 씨의 조사는 최초로 노예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농업의 성공을 위해 더 많은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주장한 듀크 대학의 노예사학자 Peter Wood 씨의 연구에 기초한다. "1974년에 그것은 진보적 개념이었고, 수십 년 동안 열띤 반응이 나타났다."고 Carney 씨는 이야기한다.

Carney 씨 역시 학술적 비판에 시달렸다.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없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노예 소유주는 아무도 자신의 노예가 벼를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그녀는 덧붙인다.

그러다 van Andel 씨의 연구에 관한 말이 나왔다. 2006년 그녀의 수리남 여행에 관한 강연을 한 이후에 van Andel 씨는 Black Rice를 읽은 대학원생 청중에게 그곳에서 벼를 수집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녀가 잠시 생각해 보니, 사실 어딘가에서 제례용 쌀 봉지를 가지고 온 것이 있었다. "여기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는 그 샘플이 아프리카의 쌀이라고 결정되었을 때 나중에 외쳤다. 명백한 증거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추적이 가능한 총알이었다. 


마론으로 알려진 도주 노예들은 수리남의 열대우림에 숨어서 독립을 유지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공동체와 문화를 확립했다. Tinde van Andel


van Andel 씨를 비롯한 학자들은 북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친숙한 흰쌀인 아시아의 벼가 미국의 플랜테이션에서 재배되고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널리 믿었다.  Van Andel 씨는 아프리카의 벼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식물 자체가 수리남에서 재배되었으며 쌀이 수입되지 않았다는 걸 문서화해야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그녀는 수리남의 약용식물에 대한 현지조사를 끝마쳤다. 

운이 좋았는지, 그녀는 2008년 Paramaribo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할 계획이었다. 표본을 찾기 위해 하루 만에 그녀는 약용식물 목록을 조사한 마을인 Mundje Kreek에 사는 친구 Berto Poeketie 씨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지역에서 검은쌀을 재배한다고 알려진 여성인 Emelina Koese 씨와 연결해 주었다. Koese 씨는 —그 지방에서 가장 널리 믿는 Winti 같은 종교를 지닌 여러 마을 주민들처럼— 외부인을 의심했고, 따라서 그녀의 지식을 낯선 이와공유하길 주저했다. 숲에서 오랫동안 산책하면서 Koese 씨의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했다고 van Andel 씨는 이야기한다. 

농지로 가는 길에“나무에 걸어 놓고 도난 방지용으로 쓰이는 약초, 뼈, 천조각 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van Andel 씨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논 밖에서 큰삼각머리독사와 맞닥뜨리면 백인은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는 신호라고 Koese 씨는 해석했다. 결국 van Andel 씨는 식물체 하나와 사진 한 장만 원하며 댓가를 지불하겠다고 하면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곳은 내가 모든 중요한 제례용 식물이 뿌리째 뽑혔다고 생각했던 똑같은 마을의 바깥에 있었다."고 van Andel 씨는 회상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 쌀의 활용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량의 아프리카 쌀이 조상에게 제물로 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이 '마법' 식물과 어떻게 작용하는지. 당신이 특별하게 하나에 관해 묻는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을 기꺼이 나누고 싶어한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그들이 당신도 무언가 알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면 당신과 대화하는 걸 가치 있다고 결정한다." 

van Andel 씨가 수리남에서 현재 아프리카 벼를 재배한다는 걸 확인했을 때, 아프리카의 벼가 노예 무역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고 그와 관련된 쌀 농사법이 아프리카인에 의해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 Carney 씨의 이론이 지지를 받았다고 2010년 그 발견에 대해 발표한 Economic Botany의 편집장 Robert Voeks 씨는말한다. 

그러나 그 발견은 시작에 불과했다. 벼가 어떻게 수리남에 이르렀는지 탐험하고자 했던 van Andel 씨는 언어학과 벼 유전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노예들의 이동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창이 열렸다.

van Andel 씨가 수리남에 있으면서 떨칠 수 없던 한 가지 질문이 있었다. 왜 마룬들은 인근의 토착민들과 비교하여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식물을 이용했을까? 그녀는 다른 이름과 응용법 및 준비는 아프리카의 유산과 혼합되었을 가능성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고 추측했다. 2010-2012년, 그녀는 가나와 베냉, 가봉을 방문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았다. 수백 만 명의 노예가 강제 이주된 350년 동안 식물학적 이해에는 무엇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무엇을 잊었으며, 무엇을 기억했고, 어떤 적응이 필요했는가?


Tinde van Ande 씨의 수리남의 벼에 대한 연구는 그녀를 서아프리카의 해안으로 데리고 갔고, 수리남에서 아직도 사용되는 식물의 이름과 비슷한 이름들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Christiaan van der Hoeven


서아프리카의 국가들을 다니면서 van Andel 씨는 수리남의 식물 이름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수리남의 수많은 식물명은 아프리카에 기반하고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전체적으로 그녀는 수리남의 식물명 2350개를 서아프리카의 그것과 비교했다. 마룬의 토착어 가운데 40% 이상이 소리, 구조, 의미에서 아프리카의 식물명과 닮았다. Van Andel 씨는 "아프리카인의 눈을 통해" 식물군을 보았다고 한다. 학술 문헌을 활용해 그녀는 다른 나라의 식물명과도 비교했다. 가장 이목을 끄는 유사함은 네덜란드가 노예를 구매한 주요 지역인 가봉과 앙골라의 식물명에서 발견되었다. 2014년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된 그녀의 논문은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이 아메리카 식물군의 상당 부분을 인지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노예가 신세계에 왔고 아무 역사가 없으며 텅빈 석판이었다는 건 구식의 사고방식이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van Andel 씨는 말한다. 당신이 기억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가져올 수 없다면, 그것이 당신의 정체성이 된다. 열대의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매우 다르지만, 식물 군집에는 겹치는 부분이 조금 있다. "열대우림의 종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지식이 마룬이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van Andel 씨는 말한다. Voeks 씨도 동의한다. "아프리카 노예들은 그들 자신의 전통을 가져와서 남아 있는 종이나 속과 유사한 것들을 이에 겹치게 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들은 생태학적 변화의 중요한 대리인이었다."

Van Andel 씨는 마룬의 벼가 유전자만 얻을 수 있다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걸 추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15년 남아프리카 Western Cape에서 열린 회이에서 van Andel 씨는 뉴욕대학의 박사후 연구원 Rachel Meyer 씨를 만나 마룬과 아프리카의 토종 벼의 게놈의 염기서열이 일치하는지 함께 확인하기로 약속했다. 2016년 10월,  Carney 씨를 포함한 연구진은 마룬 벼의 기원이 기니아 고원의 국가들, 특히 코트디부아르 서부에 있다고 제시하는 연구결과를  Nature Plants에 발표했다. 네덜란드는 가나와 베냉, 중앙 아프리카에서 노예의 대부분을 잡아들였다. 그리고 노예선의 기록에 의하면, 서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항해하면서 식료품을 확보했다고 나온다.

"우리의 연구는 인구 이동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해 식물의 염기서열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그녀는말한다.

마룬 벼의 기원에 대한 발견은 싹트기 시작한 새로운 분야 -역사학에 빛을 비추기 위해 식물을 활용- 의 흥미로운 사례이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생물분자 고고학자 Terry Brown 씨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노예의 작물의 기원을 정확히 찾아내고자 유전학이 사용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인간 이주에 대한 대용물로 식물이 사용된 건 처음은 아니라고 한다. 


마룬이 재배하는 수리남의 여러 벼 품종은 서아프리카에 유전적 뿌리를 두고 있다. Tinde van Andel


인간의 이주를 추적하고자 식물의 유전학을 활용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식물의 재생산은 인간의 그것보다 덜 복잡하며, 경작의 흔적은 인간에게 식물의 가치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 "인간은 '토요일 밤의 효과'가 있다. 수컷은 짧은 거리를 가서 이주하지 않고도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러나 식물은 땅에 붙어 있어 식물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가 어떻게 확산되는지 보여준다. 

노예가 경작한 신세계의 벼와 아프리카에 있는 그 기원 사이의 연결고리를 밝히는 일 외에도, 새로운 유전적 기술들은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서 농업의 기원이 갑자기 발명도었다는 개념을 뒤집었다. "우리는 이제 농업의 기원이 초기의 수렵채집민이 야생 식물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루기 시작하면서 농업이 확립되기까지 8000-9000년이 걸린 오래 계속된 과정이라고 믿는다."고  Brown 씨는 말한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작물화된 보리와 밀의 게놈을 이용하여 그것이 단일한 근원의 개체군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그 지방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 교잡된 것임을 증명한다. 

van Andel 씨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노예제의 이야기가 더 많이 있다. 그녀는 오크라부터 얌과 바나나에 이르기까지 더 노력하여 다른 작물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수리남의 마룬들은) 자신의 조상에 대하여 정말로 알고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더 많이 물어봐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그녀는 마룬이 자신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일을 돕길 희망한다. 

이를 위하여 van Andel 씨는 최근 프랑스 국립 자연사박물관의 민족식물학자 Marie Fleury 씨와 함께 수리남 동부에 이웃한 프랑스령 기아나의 마룬 공동체를 탐사하기 위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과학 및 탐사 프로그램 기금을 지원받았다. 이 연구진은 올해 여름 벼가 익었을 때 현지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마룬의 문화는 그녀가 연구를 시작할 무렵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수리남 마룬의 작은 집단이 네덜란드에서 그녀 근처에 살고 있다. 사실, 제례에 사용된 신성한 식물은 두 나라 사이에서 활발히 교역되었다. 예를 들어 Winti가 1971년까지 금지되었기 때문에 그 관습이 살아 있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수리남의 마룬들은 차별을 당했고, 때로는 숲에 살고 있는 퇴보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고 van Andel 씨는 이야기한다. 그녀의 노력이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밝혀준다면, 마룬은 식물에 대해 세대를 뛰어넘는 특별한 지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더구나 이들 간과된 작물 품종은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마룬의 경우, 벼 재배는 전통 종교 뿐만 아니라 역사도 살아 있어 사람들이 역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노예 국가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https://www.sapiens.org/culture/african-rice-new-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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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에서 최근 그 효과가 입증된 사이짓기, 섞어짓기 농법의 사례.

 

영어로 push-pull이라 하여 밀당이라 옮겼다.


이전에 올린 글은 여기를 참조... http://blog.daum.net/stonehinge/8728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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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tomologytoday.org/2014/08/25/study-finds-honey-bees-originated-from-asia-not-africa/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연구진이 꿀벌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인류와는 달리 아프리카가 아닌 아시아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해서 세계 여러 곳으로 이동하여 확산되었다는 것이 정설인데, 이와 달리 꿀벌은 아시아에서 기원하여 약 30만 년 전에 유럽과 아프리카 쪽으로 빠르게 퍼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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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해외농업 투자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 기사가 있어 옮겼다.

그러니까 중국이 먹을거리 확보를 위해 처음에는 개발도상국에서 원재료를 생산하여 운송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그것이 여러 난관 -토지수탈 문제, 지역민의 반발, 해당 국가의 농산물 무역 규제, 들쭉날쭉한 생산량 등- 에 부딪치면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미 잘 알려지고 품질이 확보된 선진국의 식품 관련 업체들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그것이 현재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중산층에게 판매하는 데 더 이득이라 판단한 것이겠지. 역시 중국인다운 사업수완을 잘 보여준다. 난 중국이 역사적으로 도덕이나 이상을 위해 움직이기보다는 먹고사는 문제, 특히 상업을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진시황을 만든 여불위도 상인이었고 한비자의 엄격한 유가주의나 관자의 사상도 그러한 상인들을 잘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하여 중국이 요즘 열을 올리고 있는 건 중국의 중산층에게 잘 팔아먹을 수 있는 관련 사업체들을 인수하는 일이라고 한다. 물론 해외의 농지를 사들이거나 개발도상국에 원조와 협력의 형태로 농지와 농산물 등을 확보하는 방식도 완전히 버리지는 않은 채.

"누가 중국을 먹여살릴 것인가?"라는 이야기가 나돈 적이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중국을 좀 내려다보며 하는 말 같다. 중국은 중국이 알아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 인해 생기는 험난한 파도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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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개발도상국에 농장을 설립함에 따라 국가의 식품회사들이 고급 제품을 찾아 세계를 헤매고 있다.


중국의 만보Wanbao 곡물과 오일 회사가 모잠비크 림포포 계곡에서 쌀을 가공하고 있다.



무장 경비원이 순찰하는 문 안쪽으로 커다란 탑과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판을 굽어보고 있는 곳은, 예전에 실바 무템바Silva Muthemba 씨가 옥수수를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하던 곳이다.


모잠비트 남부 귀퉁이의 곡물창고와 감시카메라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려고 하면서 토지수탈이란 비난을 일으킨, 중국의 10년 전 해외 농장과 농업회사에 대한 투자의 물결 가운데 일부였다. 




모잠비크 정부는 아프리카 국가의 16년 내전 이전의 수준으로 생산성을 회복시키기를 희망하며, 그 지역을 개발하고자 중국 후베이성과 협력했다. 후베이에 본사를 둔 만보 곡물과 오일 회사는 관개와 농기계 및 쌀과 옥수수 재배를 위한 2만 헥타르의 농지 준비에 2억5천만 달러를 들였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는 빈곤국에서 대규모 농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는 일의 어려움과 정치, 시위 및 자연재해에 대한 에 대한 교훈이자, 중국이 왜 해외 농업투자 모델을 선진국에서 기존 상표를 구입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정치, 시위, 자연재해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다.


"우린 중국인에게 목초지를 잃었다."고 무템바 씨는 말한다. 그의 집은 림포포강 근처 가자Gaza 지방의 너른 들판에 서 있다. "그들은 우리가 벼농사로 일자리를 구할 것이라 했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모잠비크 샤이샤이의 외곽에 있는 만보의 논. 내전 기간에는 주로 버려졌던 곳이다. 



좋은 경작지가 줄어들고 14억 인구가 더 많이 먹는 일에 직면하여, 중국의 농기업들은 수십 년 동안 해외의 농장을 사들이거나 임대해 왔다. 세계 식량위기 이후 2006-2008년 곡물 가격이 급등하자 이러한 투자는 더욱 과열되었다. 그러나 많은 프로젝트들이 부패와 불신, 지역의 저항 및 거래 제한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체로 그들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상하이 인근 농장에서 자라 현재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 식량정책연구소의 책임자인 판쉉건Fan Shenggen 씨는 말한다. "일반적인 결론은 좋은 투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너무 성급했다."


가자 지역의 약 270개 비정부기구들로 구성된 상부단체인 폰가Fonga 책임자 아나스타시오 마타벨Anastacio Matavel 씨에 의하면, 무템바 씨의 가족은 5년 전 시위를 촉발시킨 림포포 저지대의 농지에 접근할 권리를 잃은 8000명 가운데 한 명이다. 


림포포강에서 만보의 논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중인 양수장



림포포 계곡을 관리하고 만보와 계약을 맺은 모잠비크 국영기업의 회장인 아르만도 우시바네Armando Ussivane 씨는 내전 이후 토지가 버려지고 집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인들이 관개를 재건하고, 수확량을 증대시키며 지역의 농민들을 가르칠 기술과 투자를 가져와, 옛 포루투갈 식민지가 수입에 덜 의존하도록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한다. 만보는 지역사회를 위해 학교와 도로를건설했고, 300명의 지역 농민들을 훈련시켰다고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만보의 중국 사무소에 전화했지만 답을 듣지는 못했는데, 후베이성 정부는 림포포 계곡의 상황에 관한 일절의 언급을 거절했다. 이 프로젝트의 직원들은 언론에 이야기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중국 농업부는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무템바 씨는  가족들이 공유하는 6개의 오두막집 밖으로 나와, 정부가 농사지을 더 나은 땅을 약속했기에 그 프로젝트에 동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녹색과 노란색의 번쩍이는 존디어 트랙터 무리는 여전히 중국인 노동자들이 몰고 있는 한편, 가자 지역의 인구 중 2/3는 빈곤하게 살고 있다. 작물이 재배되지 않는 중국 프로젝트의 일부 지역에서는 농사와 가축 방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마타벨 씨는 말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본국으로 옥수수와 쌀을 재배해 돌아오고, 거대한 곡물저장고를 건설하는 자국의 농민들에게 수입에 따른 부담을 줄이고자 막대한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다. 그리고 만보의 농장 같은 해외의 농장들은 세계 곡물시장의 다른 무역업자들처럼 똑같은 의무와 제한을 받았다.

  

샤이샤이 근처 창고에 놓인 만보의 쌀자루 대부분은 중국으로 가지 못한다.



국제 식량정책연구원의 판 씨는 "한 가지 기대는 이들 기업들이 이 곡물 모두를 중국으로 재수출할 수 있을 것이란 점이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국가에서 곡물을 옮기려면 -심지어 그 곡물을 생산했어도- 해당 국가의 무역 정책에 따라야 한다. '그건 내 것이니 내가 바라는 곳으로 옮길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더 많은 먹을거리와 더 나은 품질 및 종류를 요구하는 중산층의 수요 때문에 해외에서 점차 많은 양의 먹을거리를 공급해야 한다. 중국은 이미 세계 돼지고기와 분유의 절반을, 그리고 대두와 쌀의 약 1/3을 소비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의 식량위기가 완화됨에 따라 중국 기업들은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다.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판매할 고급제품을 보유한 선진국에서 양질의 생산자가 있는 농장을 찾았다.


"중국은 이제 막 시작이다"라고 농부권에 초점을 맞추어 중국의 농장 거래를 추적하는 비영리단체 그레인Grain의 아시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카르티니 사몬Kartini Samon 씨는 말한다. "그들은 천천히 자신의 힘과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 기업연구소와 헤리티지 재단이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중국의 기업들은 2005년 이후 해외 농업 거래에 약 520억 달러를 지출했으며, 식품산업 관련 거래는 지난 6년 동안 4배가 증가했다.


"우리가 점점 더 많이 보고 있는 건 중국 기업들이 그냥 식품 사업체를 구매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정말로 좋은 식품 사업체를 구매하길 바란다는 겁니다."라고 오클랜드에 본사를 둔 다국적 농기업 KPMG의 책임자 이안 프라우드풋Ian Proudfoot 씨는 말한다.   


미주리 주 스미스필드의 돼지고기 가공시설.



WH 그룹은 2013년 버지니아에 소재한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 생산자인 스미스필드 식품회사의 지분을 인수하고, 스위스의 농약 제조업체인 신젠타 농업을 인수하기 위해 43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2월 공산당이 발표한 주요한 농촌 정책 성명에서, 정부는 생산과 가공부터 저장과 물류에 이르는 해외의 농업에 투자하는 중국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단지 생산시설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상표를 찾고 있을 것이다"라고 프라우드풋 씨는 말한다.


지난 2년 동안 중국 기업에 의해 이루어진 17건의 농업 거래 중 단 2건 -캄보디아와 브라질- 만이 개발도상국에서, 그리고 6건은 호주에서 이루어졌다고 미국 기업연구소와 헤리티지 재단의 자료에 나온다.  


뉴질랜드의 낙농업과 브라질의 곡물무역업에 관심이 있는 상하이 펑씬 그룹은 선진국에서 상하이 같은 시장에서도 빠르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유명 상표를 찾고 있다고 대변인이 말했다. 회사의 정책에 따라 그가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확립된 품질의 중심에는 슈퍼마켓으로 항공운송 할 수 있거나 가축과 사료에 넓은 땅을 필요로 하는 육류 등 신선 농산물 같은 고수익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리고 중국의 거래는 확대되고 있다.


호주 태즈매니아에 있는 중국인 소유의 판 디멘 랜드사에서 운영하는 목장의 회전식 착유기.



2016년 3월, Moon Lake Investments Pty는 호주 최대의 낙농시설인 태즈매니아에 있는 판 디멘 랜드사를 2억8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들은 섬의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활용해 중국 동부 닝보로 신선한 우유를 항공운송할 계획이다.


문 레이크가 하고 있는 일은 선구자적인 일로서,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고 태즈매니아 농민과 목축인 연합의 최고책임자 피터 스킬런Peter Skillern 씨는 말한다. 그는 주민들이 처음에는 19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가 중국인 소유로 넘어가는 걸 염려했다고 한다.


대중의 회의와 정치적 압박 속에서, 중국 기업들은 협력을 통하거나 도살장과 가공업체, 곡물무역업체 같은 상위사업체를 사들여 투자하는 방법을 배웠다.


호주 정부가 상하이 펑신이 쇠고기 생산자인  S. Kidman & Co.을 인수하겠단 제안을 거절한 뒤, 또 다른 중국 기업인 상하이 CRED 부동산 주식회사는 호주 최대의 부호인 지나 리네하트Gina Rinehart와 지분이 적은 협력자로 팀을 이루어, 한국보다 더 큰 면적을 차지하는 역사적인 목장을 획득했다.





인구와 부의 증가와 함께 중국의 농업 및 식품산업 진출은 가속화될 것이다. 모잠비크의 만보 농장 같은 프로젝트는 중국이 앞으로 적절한 영양을 확보하려면 20억 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급성장하는 인구를 먹여살릴 만큼 충분한 잉여생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중국에 있는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대표 빈센트 마틴Vincent Martin 씨는 중국이 현재 투자하고 있는 방식에서 "진정한 의미의 책임감"을 창출하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지역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고, 탄력성을 높이며, 식량안보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한다."


일부 지역 농민들이 예전 자신의 방목지였다고 하는 모잠비크 만보의 논.



그러나 만보의 프로젝트 같은 건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모잠비크에서 홍수가 일어나 2012-2013년 수확량이 쓸려갔으며, 뒤를 이은 가뭄으로 수확량이 약 70% 감소했다고 지역 정부의 자료에서 밝히고 있다. 투기 사업에 배정된 2만 헥타르 가운데 단 7천 헥타르에서만 농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적어도 무템바 씨는 어떤 혜택도 받지 못했다.


"이 땅들은 나의 아버지가 그 아버지에게 받고, 내가 물려받은 것이다."라고 천천히 흐르는 림포포강을 가로질러 있는 정미소를 바라보며 생계농은 말한다. "그러나 정부는 그걸 외국인들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https://www.bloomberg.com/news/features/2017-05-22/china-spins-a-global-food-web-from-mozambique-to-misso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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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쌀>이란 책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과 함께 볍씨가 건너와 재배된 이야기입니다.  http://www.hup.harvard.edu/catalog.php…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책으로, <깊은 뿌리: 서아프리카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벼농사>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http://www.iupress.indiana.edu/catalog/807471


이런 이야기가 비단 아프리카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근대 조선인들도 겪은 일이지요.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된 고려인들의 벼농사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다음과 같이 일제강점기 만주로 떠나 벼농사를 지은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있겠구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6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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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식생활의 변화.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은 아시아 대륙의 사람들처럼 쌀 소비가 늘고 있는 한편, 아시아 대륙의 사람들은 서구인들처럼 밀의 소비가 급증하고 있단다. 

음식 문화는 변하는 것이야. 그런데 그 음식이 재배되는 환경은 크게 변화하지 않으니 국제무역에 의존하는 비중이 더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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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빈곤층의 아이들이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뜻으로 골든라이스라는 유전자변형 벼를 홍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선, 그건 유전자변형 작물을 퍼뜨리려는 숨은 의도일 뿐이지 그러한 방식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빈곤 문제도 해결하고 영양 문제도 해결하고 여러 사람이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빈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영양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전자에 선 사람들은 한발 더 나아가 유전자변형 수수를 개발하여 또 선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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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조밤나방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것이 최초로 발견되었다. https://theconversation.com/why-its-hard-to-control-the-fall-armyworm-in-southern-africa-72890


이놈의 애벌레는 멸강충(나라를 망하게 하는 벌레)이라 불릴 정도로 작물에 해를 끼치는데, 특히 옥수수 같은 작물에 치명적이다. 

그래서 식량안보가 위태로운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앞으로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어떤 안을 내놓을까? 
일단은 가장 손쉬운 방법인 화학 농약의 사용을 권장할 테고, 다음으로는 유전자변형 작물을 권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유전자변형 작물 가운데 BT 작물이 그런 목적으로 개발되어 미국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으니 말이다.  http://bit.ly/2kuLdR9



과연 아프리카의 농업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걸 호재라 여기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다국적 농기업들이 침을 흘리며 잡아먹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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