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농-문화

일본의 메밀국수

石基 2024. 10. 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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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먹었던 서민의 면

 

 

냉해에 강하고 영양가 높은 서민의 편

현재의 '세련된' 이미지로는 상상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메밀은 원래 가난한 농민들의 일상식이었습니다. 

옛날 농민들이 재배하던 쌀은 그 대부분이 공물로 빼앗기는 데다, 냉해 등이 일어나자마자 흉작이 되었기에 농민들에게는 거의 먹을 수 없는 고급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후의 변화에 강하고, 안정되게 수확할 수 있는 먹을거리의 재배를 생각해 퍼진 것이 메밀이었습니다. 메밀은 냉해에 강하고, 토지가 척박해도 재배할 수 있기에 매년 안정된 수확을 내다보았습니다. 게다가, 메밀은 영양가가 높고, 일상식에 적합했습니다. 

메밀 재배의 역사를 살펴보면, 죠몬 시대 지층에서 메밀 씨앗이 출토되고 있어 재배 자체는 꽤 일찍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8세기에는 조정이 메밀 재배를 장려해 안정되게 수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 지금처럼 면으로 만들어 먹던 것은 아닙니다. 메밀국수는 메밀가루만으로 만들면 끓는 물에서 끊어져 흩어지기 쉽고, 찰기를 보충할 재료를 넣을 지식이 없었을 때는 면으로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메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해 경단 모양으로 만들어 국물에 넣은 '메밀떡(そばがき)'처럼 먹는 방법이 주류였습니다. 헤이안 시대에는 메밀의 경단을 넣어 수제비로 만들거나, 불에 구워서 떡구이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아다치 긴코우安達吟光 그림, <에도의 연극 연중행사 풍문(大江戸芝居年中行事 風聞きゝ)>에서. 에도 삼좌三座의 하나 '이치무라자市村座'의 앞에 나와 있던 메밀가게의 포장마차를 그린 것. (国立国会図書館所蔵)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면의 등장

메밀면이 등장한 것은 에도 시대 전기의 일. 이 무렵에 드디어 조선반도에서 메밀에 찰기를 보충할 재료를 사용하는 지혜가 전해집니다. 

이윽고 현재의 나가노현 시오지리시塩尻市의 모토야마쥬쿠本山宿 또는 야마나시현의 야마토손大和村에서 메밀을 늘여서 자르는 제법이 고안해 냈습니다. 그것이 에도에도 전해져, 17세기에는 메밀가루 80%에 대해 찰기 보충 재료를 20% 섞은 '28 메밀국수'가 정착합니다. 이 메밀국수가 멋을 사랑하는 에도 사람이 즐겨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메밀국수는 세련된 먹을거리로 펴졌습니다. 

메밀국수는 고급품이었던 쌀 대신에 농민들의 일상식으로 퍼지고, 이윽고 경단에서 면으로 발달했습니다. 이처럼 어쩔 수 없는 사정에서 생각하지 못한 식문화가 탄생한 예는 해외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옛날 서양에서는 주식과 부식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빵의 원료가 되는 밀가루를 기르기 어렵고, 식사의 메인이 될 정도로 많은 빵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고기나 유제품을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구미에서는 고기 요리나 유제품을 사용한 요리가 발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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