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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농-문화

교토의 식문화 -제5장 교토의 식문화, 그 미래

by 石基 2024.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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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먹을거리의 행방

 

공동화하는 교토의 먹을거리

젊을 무렵부터 현장조사에 몰두해 온 나에게 음식의 지역성은 좋든 싫든 궁금한 문제의 하나였다. 세계만이 아니라 일본 국내를 보더라도 지역에 따른 갖가지 음식이 있고, 그리고 그 배경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지금 음식의 지역성이 점점 옅어져 가고 있다. 게다가, 제철의 감각도 옅어져 가고 있다. 언제 어디에 가더라도 똑같은 것이 나온다. 음식점만이 아니다. 슈퍼마켓이나 최근에는 신선식품도 팔고 있는 편의점에서도 사정은 전혀 다르지 않다. 바닷물고기가 바다가 없는 현에서 양식되는 시도도 있어서 지리적, 계절적인 획일화가 착실히 진행되어 가고 있다. 

또 하나, 먹을거리의 공업화가 진행되고 있다. 겹겹이 가공되어 인공적으로 합성된 조미료 등으로 맛을 내며, 보존과 발색, 증점 등을 위한 첨가물이 더해져 플라스틱 용기나 종이상자에 담겨 판매되는 먹을거리들이다. 물론 제철도 지역성도 잃어 간다.

이전이라면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며, 어떻게 등장하는 데 이르는지 전모가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차츰 보이지 않게 되어, 지금은 자신이 먹는 것이 무엇으로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 주목을 받는 편집육. 육식이 환경에 큰 부하를 주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대두나 밀의 단백질을 가공해 고기 같은 식감이나 풍미를 준, 지금까지는 없었던 식재료이다. 말하자면 현대판 '흉내'라고 했던 바이다. 그렇지만 밭의 대두가 어떠한 공정을 거쳐 편집육이 되는지는 '특허'의 베일을 쓴 블랙박스에 담겨 있다. 예전에는 마음만 먹으면 자작도 가능했던 음향기기가 지금은 희귀금속을 쓴 클린룸 안에서 특수한 기기를 써서 만들어지는 프린트 기판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능은 확실히 향상되었지만, 우리들은 원리를 이해하는 권리나 제작에 스스로 개입할 권리를 빼앗겼다고도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환경 부하가 작은지는 제대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음식의 변화가 사람들의 생존이나 행복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검출할 수 있는, 영양가와 독성 등의 면조차 평가는 양분되고 있다. 요리하는 것, 계절이나 풍토를 느끼는 것, 함께 식탁을 둘러싸는 것 등의 인문, 사회과학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장기적인 시야로 서서 보면 인간 사회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해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된다, 아니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만들어 낸 이러한 것이나 풍조에 유유낙낙하게 따를 뿐이라고 하는 것도 울화가 치미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러한, 아마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움직임은 교토의 음식만을 예외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교토의 경우 다른 도시와는 크게 다른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교토가 '일정식의 도시'라는 간판을 등에 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토는 일정식의 식재료부터 식기, 장식, 그리고 주변에 있는 문화 요소의 메카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정수를 모은 '초超'란 글자가 붙은 일류 일정식집이 몇 곳이나 있다.

이들 가게의 주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의 어려움이다. 앞에 나온 무라타 요시히로 씨(키쿠노이 주인)도 이것을 반복해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정신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식재료나 식기, 조리기구, 실내 장식의 생산자들이 후계자 부족이나 업적 부진을 이유로 차례로 폐업해 간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환경이 변화해 지금까지 잡았던 물고기 등의 식재료가 충분히는 잡히지 않게 된다. 그것에 분명히 지구온난화 등 전 지구 수준의 환경 변동도 관계되어 있다. 주인들도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만 있지 않다. 대신할 것을 찾고, 어떻게든 헤쳐 나아가고 있다. 전통은 그렇게 하는 것에 의하여 간신히 계속 지켜 왔다. 

덧붙여, 전통이란 옛날을 그대로 지금에 전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전해야 할 것은 '옛날 그대로' 즉 '옛날'을 이어가도 지금의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또는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이 교토인의 일정식 기피이다. 앞에서도 적었는데, 예전에는 '교토의 부엌'이라 하던 니시키 시장에서도 전통 일본 식재료는 점점 팔리지 않게 되었다. 바로 곁의 시민들이 일정식에 대한 관심을 희석해 가는 상황에서 과연 일정식에 미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이 보면, 일정식의 바로 곁에는 지금, 뻥 큰 구멍이 열려 있다. 결코 안온할 상황이 아니다. 

 

 

 

교토의 먹을거리를 지켜라

일정식의 도시 쿄토는, 그 전통 음식을 어떻게 지키면 좋을까? 이 물음은 전통 문화의 계승을 어떻게 도모할 것이냐는 물음이기도 하다. 해결책의 하나는 교토인 모두가 일정식을 먹는 것이다. 그것도 누가 말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먹는 것이다. 소비가 늘면 수요도 늘어난다. 수요가 늘어나면 생산도 회복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폐업한 장인들도 돌아올지 모른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사자 의식'과 '자각과 긍지'이다. 당사자 의식은 쿄토인의 일원으로서 스스로도 매일 일정식에 친숙해지려는 생각이다. 교토의 일정식 문화를 지키자고 말하면서, 그러나 우리집의 음식은 날이면 날마다 파스타다, 피자다, 편의점 도시락이다 라고 하면 곤란하다. 연 1회는 어느 가게에 가 보자, 배달 도시락 받아 보자, 설날 요리를 예약해 보자 ··· 그러한 의식의 양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게 쪽에서도, 그러한 수요 환기를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앞에도 적었듯이, 교토인은 특별한 날을 제하고 별로 외식을 하지 않는다. 超가 붙는 유명 요리집의 단골이 시내에 그만큼 있을리는 없다. 그들 요리집이나 번화가의 음식점을 지원해 왔던 것은 주로 외부에서 온 손님들이다. 이러한 가게에 교토인이 다닐 수 있는 구조를 생각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2022년 현재, 일본 전역이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에 의해 사람의 움직임이 강하게 제약을 받는 중, 이러한 가게를 구하는 것은 교토인 이외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시점이 있다. 그것은 식재료를 비롯해 관련되는 것을 만드는 환경을 지키는 시점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소비하는 식재료의 약 60%를 수입하고 있다. 그 모두를 그만두고 국산으로 한다고 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지만, 적어도 국산, 그것도 근처에서 생산된 것을 쓰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지는 점점 더 황폐해지고, 그곳에 야생동물이 들어와 조수 피해를 확대시키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생산지인 마을이 점점 더 위축된다. 마을의 위축이 진행되면 강을 통하여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미네랄이 줄어 간다. 그에 더하여 최근에는 배수의 정화가 과도하게 진전되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미네랄이 줄어들었다. 세토 내해를 비롯해 일본 각지에서 여러 가지 어종의 만성적인 흉어가 전해지는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미네랄의 감소도 만성적인 흉어의 원인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의 소비가 줄고 활동이 저하되면, 바다의 자원량도 줄어 어획이 떨어진다는, 이것 또한 악순환에 빠지고 있는가 생각한다. 국산 쌀이나 채소를 먹지 않는 것은 돌고 돌아 물고기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각하는 '순환'의 이해를 깊이 있게 하고 싶다. 

 

 

 

관광과 먹을거리

 

관광객으로 넘치는 교토의 도시

 

교토는 관광의 도시이다. <일본 경제신문>에 의하면 교토부 안의 관광 소비액은 부 내 GDP의 13%에 해당하는 1조 3000억 엔을 넘는다(일경신문 전자판 2020년 3월 6일). 이것만을 보면 교토부는 요지부동의 거대 관광지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21세기 시작 무렵의 교토는 이만큼 혼잡하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2월과 9월은 도산이 많다'고 하는 언설이 있었듯이, 여름방학 뒤, 정월 뒤의 비수기에는 도시가 텅텅 비었다. 성수기에는 북새통을 이루던 관광지도 비수기에는 사람의 왕래가 끊기고, 기온 등의 번화가도 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21세기가 진행되자 수학여행의 시기 분산화가 시작되고, 덧붙여 외국인 방문자가 급증하게 되었다. 주민의 감각으로도 2015년 무렵부터 JR교토역은 외국인이라 생각되는 사람으로 넘쳐나게 되었다. 관광지인 기요미즈데라, 후시미 이나리, 기온, 킨카쿠지 주변, 아라시야마 등은 1년 내내, 시민 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북새통이 되었다. 쓰레기는 방치되고, 시민은 공공 교통기관을 만족스럽게 이용할 수 없으며, 소음이나 민폐 행위로 연중 시달리게 되었다. 지나치게 많은 방문객에 '오버 투어리즘'이라든지, 급기야 '관광 공해' 등이란 말까지 나타났다. 시민의 불만은 행정에도 향하고 있다. 시는 관광객 수를 늘릴 생각만 하고, 그 결과 생기는 일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많은 비판에 관광을 추진해 왔던 시장도 2020년 2월의 시장 선거에서는 관광 정책을 크게 재검토하겠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민의 불만은 크게 말하면, 다음의 세 가지 점으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관광으로 인한 이익을 실감할 수 없다는 점. 가령 AI 등의 도입에 의해 혼잡이 완화되어 '시내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시민의 이익 등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원래 시내 버스는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어, 시민이 보통으로 탈 수 있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관광객이 줄어 버스 이용자가 줄면서 시는 곧바로 감편과 운임 인상을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또 하나는 교류의 장이 상실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일본에서는 외국어가 통하기 어렵다. WiFi를 비롯한 인터넷 환경의 정비는 진행되었지만, 그에 의해 시민과 방문객과의 교류는 끊어지고 있다. 시는 해외 관광객이 늘어나면 시민과의 교류가 깊어져 시민의 시야가 넓어진다고 하지만, 관광객은 주민과 교류하지 않고도 관광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주민에게 무언가 물어 불확실한 정보를 얻기보다 버스 정류장 등에 있는 무료 WiFi를 써서 정보를 얻는 쪽이 간단하고 정확한 것이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큰 불만은 관광객이 시민의 거주 공간에 서슴없이 파고드는 것이다. 그렇게, 시민의 눈에는 관광객이 자신들의 생활을 견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비추어진다. 그림엽서에 있는 것 같은 유명 스폿의 사진이라면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다. 그보다 일반시민의 생활의 장은 알맞은 사진 스폿이다. 우리들도 외국을 여행하면 시장에서 사진을 찍거나 한다. 그러나 찍히는 쪽으로 치면 그것은 민폐란 이야기이다. 아라시야마에 사는 지인이 정원의 사진을 찍힌다, 문패의 사진을 찍힌다고 푸념했다. 찍는 쪽으로 치면 이국적인 시민생활을 기록에 담을 뿐이겠지만, 정원에는 세탁물도 말리고, 정원이 좁으면 집 안까지 찍힌다. 문패의 사진이 SNS에서 확산되는 것도 민폐란 이야기이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시민은 납득하지 못한다. 행정은 내방인 수를 늘리는 것과 부유층 전용으로만 호소하는 데 눈을 돌리는 게 아니라, 이제 적당히 긴 안목으로 보고 교토의 도시와 시민에게 이득이 되는 관광행정을 전개해야 한다 부유층 관광객을 늘리는 것이라면 그들에게서 더 고액의 세금이나 경관료 같은 요금을 걷으면 좋다. 다시 이야기하면, 이대로라면 과거로부터 계승해 왔던 자연이나 문화 자원을 상실할 우려가 없지 않다. 문화 자원의 상실이다. 즉 지금의 관광 정책은 지속가능한 관광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식문화라는 관점에서는 교토 시민이 교토의 음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중요하게 여기며, 그에 의하여 유지되는 높은 수준의 식문화를 장래에도 방문객에게 나누어 준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지금의 관광 행정에서는, 이 부분이 완전히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관광객의 먹을거리

관광 피해는 먹을거리의 분야에 두드러진다. 시내의 많은 가게는 외국인에게 '점거'되어 버렸다. 그러한 곳에서는 서비스도 맛도 저하되는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손님이 넘쳐나서 벌이가 되겠지만, 해외에서 온 관광객도 언젠가는 교토에서 멀어져 버릴 것이다. 가게 입장에서 보면 한 번 오는 손님, 다시 오지 않는 등 기대도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교토라는 도시의 먹을거리 상표를 훼손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온 등에서 이전부터 행해지고 있던 '한 번 오는 손님 사절'이란 손님 대접도 이치에 맞는 것 같다고 생각된다. 그건 식문화라는 문화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방책이기도 했다. 

자, 그 방일 외국인의 먹을거리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일정식이란 무엇일까? 많은 방일 외국인이 관심을 기울이는 '일정식'이란 초밥, 메밀국수, 튀김, 닭구이, 라멘 등이라 한다. 이들 메뉴는 닭구이와 라멘을 별도로 하면 에도 태생의 패스트푸드이다. 실제, 교토를 방문한 방일 외국인을 보더라도, 이 경향에 변함은 없을 듯하다. 니시키 시장은 잠시 테마파크화되어 있지만, 그곳에서 인기있는 길거리 음식의 식재료는 현지 음식의 라인업과 많이 비슷하다. 교토다운 식재료를 쓴 것도 없지는 않지만, 문어빵, 꼬치튀김, 아이스크림 등 지금이야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먹을거리 뿐이다. 그리고 길거리 음식의 문제는 교토인들의 니시키 시장 거리두기를 가속시켜 왔다. 

방일 외국인의 내점이 늘어나면, 단골 손님의 발이 멀이지는 건 일반적인 경향이다. 특히 음식점에서느느 그 경향은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가게는 마치 외국인 전용점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에 대해서 의견은 양분된다. 교토 요리는 이른바 교토통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평가가 높다. 외국인 지인 -나의 경우는 그 대부분이 연구자들- 은 교토 요리를 절찬한다. 빛깔이 예쁘고, 건강하고, 맛있고, 가게의 분위기가 좋다 등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교토 요리를 칭찬한다. 물론 그 이야기 속에는 또 데려와 달라고 하는 생각이 숨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들은 마음속은 교토 요리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건 당연한 것이다. 교토의 문화가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은 기회를 봐서 교토를 방문한 것이다. 그리고 교토의 요리가 마음에 들었기에 교토에 와서 식사하는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방일 외국인은 결코 많지는 않다.

한편, 방일 외국인 중에는 교토 요리를 '번거롭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일본인에게도 차의 작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다도의 자리는 귀찮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작법도 모르는데 그와 같은 곳에 가면 작법 없음을 비웃는 것 아닐까? 얼굴을 마주하고 바보 취급을 당하지는 않겠지만, 나중에는 그 말을 듣지는 않을까? 이러한 불안이 다도에 참석하는 걸 망설이게 한다. 일부 방일 외국인의 교토 요리나 가이세키 요리에 대한 '번거로움'이란 감각에는 이와 비슷한 감각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방일 외국인 쪽이 수적으로는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포스트 코로나의 교토 먹을거리

재해의 세기 오다

 일본 열도는 재해 열도라고도 이야기된다. 그리고 21세기는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에서 발단하는 재해의 세기라 봐도 좋을 듯하다. 최대 진도 7을 기록한 큰 지진도 늘 일어난다. 그외에도 기록적인 단시간 강우나 태풍에 의한 홍수나 토사 재해 등의 재해가 빈발한다. 

재해의 세기라고 부르는 재해 다발의 시대는 과거에도 있었다. 8세기부터 9세기에 걸쳐서, 또는 11세기 말부터 12세기에 걸친 시대가 그렇다. 교토란 도시의 피재 상황은 카모노 쵸메이鴨長明의 <방장기方丈記>에 소상하다. 잇따른 재해로 사회는 피폐했다. 먹는 것도 변변치 않고, 사람들은 픽픽 쓰러져 갔다. 아마도 체력을 잃은 사람들의 신체에 마치 종지부를 찍듯이 질병이 덮여 왔을 것이다. 이 시대 '말법末法 사상'이 퍼진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어서였다. 

그것이 불교가 사람들 사이에 퍼진 원인이 되었다. 그 뒤, 기존 종파에 만족하지 않은 승려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이윽고 선종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 선종이 사찰 요리나 그 사상을 만들어 간다. 또한, 승려들이 가지고 들어온 차와 차 마시는 문화가 일본 고유의 다도 문화를 탄생시켜, 그것이 차 가이세키로 이어져 간다. 너무 교과서적인 설명이지만, 이처럼 생각해 보면 다발한 재해가 일정식의 기초를 만들어 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염증은 다른 재해와는 달라 장기화하는 일이 많다. 특히 지역 전체를 유행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게 하는 에피데믹으로 발전하면 종식에는 년 단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아가, 유행이 전세계에 만연한 팬데믹 상태가 되면 영향은 100년 단위로 지속되고, 사회 구조 전체를 바꾸어 만들 수도 있다. 페스트의 유행은 바로 그러한 사건이었다. 

 

 

 

 

코로나 재앙

2020년 2월 무렵부터 일본 각지에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 확인되어, 2022년 9월 단계에서 누계 2000만 명 이상의 감염자, 4만3000명 이상의 사망자 수를 기록하는 거대 재해가 되었다. 그러나 성가신 것은 감염력도 치사율도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을 정도로 높지 않다는 점이다. 덧붙여 발병율도 결코 높지 않다. 즉 무증상인 채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전파자가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감염은 좀처럼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바이러스의 성가신 바는 먹을거리를 직격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더라도 노로 바이러스처럼 소화기를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비말이나 접촉에 의한 입, 코, 눈 등으로 침입해, 호흡기나 순환기를 비롯해 여러 장기에 손상을 입힌다. 눈이나 코는 고사하고 입은 호흡기의 입구임과 동시에 소화기의 입구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람은 먹을 때 타자와 함께 먹는 습성을 계속 가져 왔다. 이 습성은 '함께 먹음(共食)'이라 부르고 있는데, 함께 먹음이란 습성은 단순히 식탁 위의 일로 한정하지 않고, 먹을거리의 생산과 유통 단계를 포함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지구에서 살아기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으로서, 자신만의 힘으로 자신의 먹을거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함께 먹음이란 인류의 습관이 이 감염증의 종식을 곤란하게 한다. 이 바이러스는 실로 싫은 부분을 찌르고 있다. 타자와 함께 먹음이 뚜렷하게 제약을 받았다. 사람들의 행동은 크게 변용되었다. 2020년 봄에 나왔던 긴급 사태 선언 때에는 음식점의 영업 자숙이나 영업 시간의 단축이 요구되었다. 또한 '원격 노동'이 권장되는 등 특히 도시부에서 사람들의 외출이나 행동이 크게 줄었다. '집콕 수요' 등이라는 말이 생겨, 가정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늘었다. 외식 수요는 크게 떨어졌다. 지금까지라면 점심은 밖에서 도시락 등을 사 오거나, 구내식당이나 외식점에서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밤은 동료나 업무 관계자와 함꼐 먹는 일이 많았다. 그 습관을 이 바이러스는 찌르고 있다.

나가지 않기에 외식할 기회는 당연 감소한다. 게다가 외식이란 행위가 위험한 대상으로 거론되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외식 그것이 위험도가 높은 행위인 것은 아니다. 확실히 도시의 음식점은 좁다. 테이블도 작고, 테이블과 테이블의 간격도 좁다. 하지만 그것은 외식 그것의 속성은 아니다. 외식점은 감염증 대책을 하고 손님을 맞이하려 했지만, 애초에 인파가 줄어서 정체하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대부분의 외식점이 취한 것은 배달이나 주문요리 배달, 또는 도시락 판매 등이었다. 말하자면 중식화가 일어났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국내에서 오는 방문객도 방일 외국인도 격감했던 바, 교토에서도 음식점을 포함한 관광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외식점은 궁지에 몰렸다. 소규모인 곳에서는 폐업, 도산한 곳도 많았다. 음식점의 폐업, 도산은 연쇄 반응을 일으켜, 가게의 종업원은 물론, 식재료를 납입하는 회사, 그것을 운송하는 운송업자, 농가나 어업인 등 관계되는 많은 관계자를 연쇄적으로 괴롭혔다. 코로나 재앙은 먹을거리의 생산, 유통의 단계에서도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끊었다. 감염의 제7파는 감염력이 지금까지의 어느 계통보다도 강한 바이러스에 의해 초래되었다. 발증하면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일정 기간의 격리가 요구되었다. 여러 업계, 분야에서 감염자나 밀접 접촉자의 급속한 확대로 의해 빗살이 빠진 것처럼 요원이 빠져 버린다. 의료 종사자의 감염은 의료의 힘을 꺾어 간다. 마찬가지로 유통 종사자의 감염은 유통의 힘을 꺾어 간다. 일본에서는 그만큼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국외에서는 감염의 급격한 확대가 식재료를 비롯해 자재의 운반을 저해한 사례가 여럿 있다. 

 

코로나 재앙의 니시키 시장(2022년 1월)

 

 

 

주문요리 배달 문화의 부활을

외식이 제약되면 외식점에는 택배나 포장 영업 형태를 취하는 곳이 나온다. '딜리버리' '테이크아웃' 등의 외래어로 부르는 일이 많은데, '주문요리 배달'은 외래어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교토에는 이전부터 주문요리 배달의 문화가 있었다. 주문요리 배달은 어딘가 전능함이 있다. 평소의 '일상' 식도, 무언가 행사가 있는 '경사'날의 식도 담당했다. '일상'식에서는 지금 이야기하는 '딜리버리'나 '테이크아웃'의 역할을 담당했다. 결혼식이나 입학식 등의 '경사'날의 식도 주문요리집이 담당했다. 다 먹을 수 없을 만큼의 요리가 나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남은 건 포장해서 가지고 돌아가, 부재중이었던 가족에게도 제공했다. 

주문요리집의 업무에는 준비한 식재료를 가지고 고객의 집이나 호텔, 사원 등 지정한 장소로 나가서 그곳에서 최종적으로 맛을 내고 담는 출장요리 같은 것도 있다. 

주문요리 배달의 문화는 외식에 '가동화'와 '분산화'를 가져온다. 가동화란 예를 들면, 외식점이 포장이나 배달, 등으로 전환하는 현상이다. 도시락도 여기에 포함된다. 회식 요리처럼 코스 요리도 앞의 출장요리라면 가능하다. 

분산화도 또한 재해가 다발하는 사회나 시대에 적응하는 움직임이다. 코로나 재앙에서는 '밀접, 밀폐'의 회피가 시끄럽게 이야기된다. 전염병은 병원체의 종류에 의하지 않고 인구 밀도가 높으면 큰 유행을 일으킨다. 면적당 인구라는 본래의 숫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한 번만 모이는 기회도 많은 인구 밀도에 상당한다. 분산화는 넓은 의미에서 인구 밀도를 낮추는 움직임으로, 예를 들면 푸드트럭이나 포장마차 등이 적응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교토 시내는 토지가 좁고, 에도의 '불막이 땅'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교토 교엔 등 상당한 공터가 있다. 그러한 토지를 유효하게 사용하든지, 또는 휴일의 '보행자 천국'을 이용해 푸드트럭이나 포장마차를 세우는 등을 하면 궁지에 몰린 외식점 등의 구제책도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교토의 식문화를 견인하는 기관차 역할도 할 것이다.

주문요리집 중에는 아직도 옛날 그대로의 방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도 있다. 플라스틱제 용기나 포장은 사용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의 '배달통'이나 '찬합'이 아직 현역인 가게도 있다. 기온의 찻집 '나카타니ナカタニ'나 고등어 초밥의 '이즈우'에서는 배달에 지금도 옷칠한 배달통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환경에 친화적인 대응이 된다. 이러한 가게,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교토의 비상식

몇 번이나 기술했듯이, 교토는 수도가 설립되고부터 계속해서 액재에 시달렸다. <방장기>에 묘사된 12세기 말의 혼란, 오닌의 난 이후의 동란(15-16세기), 그리고 단발적인 재해에서도 케이쵸우慶長 후시미 지진(1596), 호우에이宝永의 화재(1708), 텐메이의 화재(1788), 그리고 교토인들이 '돈돈야케どんどん焼け'라고 부르는 합어문蛤御門의 변(금문禁門의 변)에 따른 화재(1864)가 반복되어 왔다. 

그 때문에 교토의 도시에는 대재해의 피해를 최소로 하려는 방재, 감재의 지혜가 축적되어 왔다. 그리고 그 하나가 비상식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원래 교토는 식재료가 부족한 도시이다. 그런 곳에서 그 시대로서는 가장 높은 인구 밀도의 도시를 만들었기에, 그 인구를 지탱하는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데에는 나름의 궁리가 필요했다. 

우선은 보존성이 높은 식재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단 점, 그 다음에 비상시에도 기능하는 유통 시스템을 확립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대구포나 말린 청어 등의 소금 말림한 것, 식물성 소재로는 절임이나 곶감, 토란 말림, 황밤을 비롯한 보존식이 개발되어 왔다. 게다가 달달한 생선 조림 등 미리 만들어 두는 식재료의 비축 등이 시민의 일상의 삶 속에서 행해져 왔다. 그리고 후자에 대해서는 전술한 주문요리 배달 등이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앞에서 외식의 중식화라고 적었지만, 애초에 외식과 중식이 준별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두 가지 업태는 미분화되고, 또 서로 오거니 가거니를 반복해 왔다. 그것이 교토 먹을거리의 한 특징이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재해의 세기에는 교토의 도시에 축적되어 왔던 지혜를 모아서 이와 같은 시스템을 가동시켜 재해 때의 먹을거리 시스템을 확립하는 일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재해가 닥쳤을 때에는 피난소에 피난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피난소에서 배급되는 식사가 비상식이었다. 비상시이기에 조금 불편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해 왔기에, 비상식은 피난의 최초 시기에는 빵과 음료, 이윽고 주먹밥이나 도시락이 나온다는 양식이 많았던 듯하다. 

하지만 이만큼 재해가 빈발하게 되면,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랜 시간 피난소 생활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자택과 피난소의 사이를 오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피난이 장기화되면 재해 관련사가 늘어난다고 한다. 다행이면 죽지 않고 끝나지만, 건강 상태의 악화는 피할 수 없다. 머지않아 일본인 전체의 평균수명이 짧아지는 사태도 일어날지 모른다. 21세기는 새로운 비상식의 이상적인 상태를 생각해야 하는 세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교토의 먹을거리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토의 식문화는 어디로 가는가?

메이지 이후 교토의 식문화는 2번, 큰 변혁의 시기를 경험해 지금에 이른다 -이것이, 이 책에서 명확히 한 점의 하나이다. 지금부터 대략 100년 정도 전, 연호로 하면 다이쇼 연간의 일이었다. 이 시기는 러일 전쟁에서 발단하는 빵 문화의 큰 파도가 교토에 밀려왔던 시기였는데(1910년대), 이 시기는 또한 찻집이 시중에 정착한 시기와도 겹친다. 덧붙여서, 토우카사이칸東華菜館이나 하마무라ハマムラ의 개점 등으로 대표되는 중화요리의 파도가 밀려왔다. 즉 이 시기는 교토에 밀, 우유(유제품), 유지, 커피 등의 새로운 식재료가 유입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들 식문화는 재래의 식문화와 융합해, 정식집 같은 스타일의 외식 문화의 융성을 가져왔다. 양식집도 그 일부이다. 양식 붐은 전국의 대도시에 공통 붐이었는데, 교토에서는 특히 그 '농도'가 짙다고 생각한다. 양식집 중에는 하이칼라 양식 도시락을 팔기 시작한 '레스토랑 키쿠수이菊水' 같이 기온이나 카미시치켄 같은 유곽 근처에 전개한 가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캐피탈 토우요우테이東洋亭'(1897, 가와라마치 산죠에서 창업 그 뒤 기타야마로 이전), '노라쿠로のらくろ'(시모가모에서 창업, 2020년 폐업)처럼 예전부터 주택가에 있는 가게도 있어서, 양식 문화가 교토의 도시에 침투했단 것을 알 수 있다. 덧붙여, 교토의 양식에 대해서는 조사도 충분하지 않아 앞으로 할 연구 과제라 하고 싶다. 

그리고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100년 전에 일어난 1차대전(1914-1918), 그에 기인해 일어났던 스페인 독감(1918-1920)의 대유행 시기, 또는 그 직후의 시기에 해당한다. 전쟁이나 팬데믹이 식문화를 크게 바꾼다고 하는데, 교토에도 바로 그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메이지 시대와 함께 화려하게 데뷰한 양식이나 중화식 문화는 근세까지의 전통에 기반한 일정식에 큰 자극을 주었지만, 일정식의 기둥을 흔들거나, 또는 건물 자체를 쓰러뜨려 버리는 듯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양식처럼 서양 식재료와 조리의 문화가 주요 반찬의 자리에 남아 '1국 3찬'의 기둥은 남았던 것이다. 

교토의 식문화는 그 뒤에도 큰 변화의 파도에 부딪쳐 왔다. 2차대전의 통제와 직후의 식량난이란 파도(190-1946), 그리고 전후의 새로운 세계화의 파도이다. 교토는 빵이나 커피 문화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교토풍 중화를 정착시키는 등으로 교토에 고유한 식문화를 정착시켰다. 교토 채소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교토 요리를 진화시켜 전국적인 일정식 붐을 견인했다. 교토인과 그 도시는 이 파도를 어떻게든 이겨 내어 교토의 독자성을 지켜온 것처럼 보인다. 

1국 3찬의 기둥은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쇠퇴 경향에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젊은 세대의 일상 식에서 밥공기와 국그릇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지금은 쌀밥이 식탁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코로나 재앙에 의해 단숨에 가속되었다. 그리고 이 흐름이 교토의 도시에서도 멈추지 않고 있다. 잠시는 1위의 자리에 있던 빵까지도 침체의 기미가 있다.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 무렵부터, 일본 열도의 재해가 늘어났다고 느껴진다. 재해의 세기가 재래한 것일까? 갖가지 재해가 빈발하게 되면, 하나의 재해에서 복구되지 않고서 다음 재해가 찾아온다. 복합 재해이다. 사회는 미래를 예상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시대'에 돌입했다. 당연히 교토의 식문화도 또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 재앙과 전쟁이 한묶음이 되어 세계를 엄습하고 있다. 교토의 식문화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교토인과 교토의 도시는 이 파도 앞에서 어떠한 식문화를 구축해 나아갈까?

세계에는 긴 시간 변하지 않은 것과 시류를 타고 차차 모습을 바꾸어 간 것이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이란, 예를 들면 '흘러가는 강의 흐름'을 말하고, 또 변해 가는 것이라 하면 강을 흘러가는 '물'이다. 이 불변하는 것과 변화하는 것이란 실은 표리 일체의 관계에 있어, 어느쪽이 참이고 어느쪽이 거짓이라 할 수 없다. 모두가 참의 모습이다. 

<교토의 식문화>는 지금 이 불변하는 것이 뿌리에서부터 변하려 하는 시기에 있다. 교토라는 토지에 오랫동안 고착되어 온 인간 관계가 희박화되고, 세계를 뒤덮은 가동화(모빌리제이션)의 파도에 휩쓸리려는 듯하다. 현대는 그 정도까지 큰 변화를 수반하는 격동의 시대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남겨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걸까? 또는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이라고 교토인은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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