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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농경사 권4





제5장

조엽수림 문화론 재고

야마구치 사토시山口聰






시작하며


민족식물학의 관점에서 가장 분명한, 말하자면 정리라고도 할 만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최대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 안정적으로 손에 넣는 것으로 생활의 기반을 구축해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환경이 우선, 그 사람, 더 나아가서는 일족의 무리들, 확대하여 말하면 '민족'의 생활을규정하고 있다. 우리들은 거기에 없는 것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그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생활에 필요한 것은 그 환경에서 입수하고, 이용해 가는 것이다. 주위가 바위 투성이라면 생활의 기반은 바위와 돌이며, 주거는 돌로 만들 수 있다. 또한 산림이 풍부하여 목재를 자유롭게 입수할 수 있다면, 판자와 기둥으로 주거를 만들것이다. 뻘밖에 없다면 벽돌을 만들게 될 것이다. 대나무가 풍부하다면, 대나무로 주거를 만들게 된다. 무엇이 고도하고, 무엇이 원시적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해도 쓸데없다. 환경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용하는지가 민족의 지혜이며, 세계 각지의 다양한 민족이 오랜 옛날부터 끊임없이 계승해 온 '민족의 지혜'가 들어간 '문화'가 각각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환경이 민족의 역사, 민족의 문화, 민족 특유의 생활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을 고찰해 가는 학문 분야를 민족학이라 부르고, 식물의 이용이란 관점에서 연구하는 분야를 민족식물학이라 부른다. 


어떠한 민족이라도 주변의 환경에서 유용한 성분이라든지, 특별히 이용가치가 있는 식물이 있다면 반드시 그와 같은 식물을 알아차리며, 그 식물을 생활에 끌어들일 터이다. 반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유용한 식물은 반드시 주변의 민족에게 발견되어, 어떠한 형태로 반드시 이용된다. 그러한 관계의 식물을 많이 알고 있지 않다면 민족은 생존할 수 없다. 민족식물학에서의 정리가 의미하는 바이다. 물론 단순히 환경결정론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구환경 문제를 진전시키고 싶지 않는, 인간활동과 자연환경의 관계를 재검토하길 강요 받는 현재, 새삼스럽게 민족식물학적인 지식의 의의를 확인해 놓는 것은 쓸데없지 않을 것이다. 조엽수림 문화론은 바로 그와 같은 시점에 섰을 때, 아직도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해 준다. 조엽수림이란 어떠한 환경이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생활을 하고, 어떻게 식물을 이용해 왔을까? 그리고 주변의 다른 자연환경에서 생활하는, 다른 민족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우리의 부족한 경험이지만, 감히 지금까지의 조엽수림 문화론에 대하여 변변찮은 견해를 더해 가며, 그 현대적 의의를 재고해 보겠다.





조엽수림의 특징


조엽수림이란 온난대라는 식생 구분에서 생육하는, 온난대라는 것은 상록성의 수목이 우선하는 환경의 산림대이다. 열대부터 온대로의 이행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열대는 수종이 다양하고, 토양은 세찬 강우 때문에 영양분의 유망이 심하다.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식물의 개화 시기가 가지런하기 어렵다. 한편 열대보다도 북쪽으로 올라간 온대 지역에서는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낙엽성 수종도 늘어나며, 나무 그늘의 풀도 풍부하다. 강우량도 열대보다는 연간으로는 적고, 건조한 계절이 길어지며, 무엇보다도 저온 기간이 뚜렷해져 식물은 휴면기를 가지는 것, 낙업성인 것이 많아진다. 이 어느쪽의 성질도 아우른 식생대가 조엽수림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기온은 열대에 가깝고, 매우 숨막힐 듯 덥다. 또한 습도는 매우 높고, 숲속에서의 생활은 고통이기도 하다. 습도가 있기에 균류의 생활에는 유리하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사람들은 굳이 숲속에서 생활하는 것일까? 고온다습하기 때문에 거머리 등의 귀찮은 생물이많이 생활하고 있으며, 해도 비추지 않을 만큼 울창한 조엽수림 숲속에서 생활 때문에 스스로 들어간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먹을거리가 되는 식물, 동물은 확실히 숲속에도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축축한 환경으로 굳이 들어간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른 민족에게 압박을 받아 피난할 수밖에 없는, 그와 같은 소수민족뿐일 것이다. 도대체 아프리카 대륙의 숲에서 초원으로 내려선 인류는, 트인 밝은 곳에서 진화하면서 동쪽으로 확산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고,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 끝에 다다른 시점에 북쪽의 건조한 고원 지대로 나아가든지, 남쪽의 열대우림을 통과하든지 하는 갈림길에 섰을 터이다. 그래서 일부러 깜깜한 수림대에, 그대로 들어가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숲과 평원의 경계를 생활의 장으로 삼는 것이 조엽수림에서 살아가는 민족의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학적으로는 조엽수림 문화란, 조엽수림의 내부가 아니라 조엽수림 주변의 언덕 군락을 생활의 장으로 삼은 문화이다. 밝은 환경을 인위적으로 형성하는 기술을 가진 문화, 곧 화전 문화이다. 숲은 "Food Bank" 자연의 먹을거리 은행이며, 능숙하게 운용하면 영속적으로 '이자'로 먹을거리를 손에 넣는 장소이다. 게다가 일 년 내내이다. 이것이 계절성이 뚜렷한 낙엽수림의 문화와의 차이이다.





조엽수림 문화론이 온 길


그렇다 하더라도 조엽수림이란 단어는 매우 매력적이다. 생태학적으로 보아 아시아의 독특한 식생 구분이기도 하고, 누구나 쉽게 상상하기 쉽고, 익숙한 자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거기에 함정이 있다. 사실은 지금까지 조엽수림에 대한 여러 논자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어긋나는 점이 있으며, 게다가 그 어긋나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필자가 가깝게 느꼈던 기억을 상기하자면, 조엽수림 문화론의 제창자 가운데 한 사람, 나카오 사스케의 제언에서는 사물의 본질을 푹 찌르고는 있지만, 그 경계가 희미한,어딘지 모르게 기준점이 없는, 이른바 '분위기'적인 것이 있었다.


조엽수림이란 중국 서남부(히말라야 동부도 포함하여)부터 일본에 걸쳐서 넓은 온대의 상록광엽수림이지만, 인위적 교란이 많은 식생대이고, 현재의 상황은 편향 식생이며, 마을에도 연결된 낙엽광엽수림인 것도 많다. 잠재적으로는 상록광엽수림대이지만, 겉보기는 낙엽수가 우점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한마디로 '조엽수림'이라고 하더라도, 지역별로 상당히 다른 경관의 색생대이다. 우리들이 태어나 자란 지역의 식생 경관을 박아 넣은 채, 그것을'조엽수림'으로 일반화하여 그곳에서의 생활을 '조엽수림 문화'라고 파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점에 대하여 나카오는 지극히 자각적이었다. 그는 지역에 따른 식생의 차이, 그에 수반한 지역별 식물과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그를 대하는 방식, 즉 이용과 재배화의 동이를 경험적으로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한 바탕에서 조엽수림을 생활의 기반으로 삼는 사람들의 사이에는 다양한 관점에서 공통성이 발견되는 점, 게다가 일본인의 생활, 특히 농경 생활의 기반이 되는 다양한 습관에 높은 공통성이 있으며, 어느 정도의 변이를 인정하면서도 현재까지 끊임없이 각지의 민족별로 상호관계를 지키면서 유지되어 온 문화가 있는 점을 하나의 이야기로 그려내었다. 


많은 서적이 기록하고 있듯이, 조엽수림 문화론이 등장했던 것은 1966년 전후이다. 조엽수림 문화론을 제창하기시작한 무렵 나카오는 재배식물의 기원을 논하는 동시에, 세계의 농경문화를 지중해 지역으로 대표되는 '맥류 농경문화', 사바나에서 기원한 '잡곡 농경문화', 그리고 동남아시아 열대지역에서 퍼진 '뿌리작물 농경문화'라고 셋으로 구분한다. 농업기술적으로는 종자번식 농경과 영양번식 농경이란 둘로 나누는 쪽이 깔끔할지도 모른다. 즉, 맥류 농경과 잡곡 농경을 포괄하는 곡물 이용 문화와, 뿌리작물 농경에 기인하는 토란 이용 문화라는 식으로 단순화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조엽수림 문화는 이들 두 가지 농경문화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조엽수림 지대에서 널리 발견되는 '화전'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토란 이용 문화에서 또 하나의 농업 형태인 '화전' 농경이 파생되었든지, 또는 다른 곳에서 잡곡 주체의 농경기술이 전해졌든지 어느쪽인지는 정할 수 없지만, 조엽수림 안에서 행해졌던 '화전' 농경은 토란 이용 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 그것과 혼연일체가 되어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앞에도 언급했듯이, 조엽수림 문화란 조엽수림의 주변을 생활권으로 하고, 내부는 생활의 양식을 얻으러 가기 위한 장소로 성립하는 문화이다. 자연을 조금만 할퀴어 딱지가 생기기까지의 단기간에 농업을 하여 식량을 생산하고, 조엽수림의 주변, 때로는 내부에 '마을' 같은 공간을 형성하여 성립한 문화인 것이다. 조엽수림의 안은 참으로 어두워 산림을 베어내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다. 유일하게 밝은 곳은 산지의 산등선이 줄기나 능선이다. 이와 같은 장소는 건조하기 쉽고, 바람도 강하고, 수목이 자라기 어렵다. 그 때문에 밝고 전망도 양호하기에 자신의 위치관계를 파악하기 쉽다. 또한 불놓기를 한다면 밝은 환경을 확보할 수 있다. 밝은 환경은 사람들의 마음을 밝고 명랑하게 한다. 광장이 생겨서 사람이 모이고, 노래가 울린다. 노래를 주고받는다. 불을 사용하는 농업, 즉 화전은 인위적으로 사바나 초원 같은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재배하는 작물도 밭작물이다. 잡곡의 재배를 받아들여 불에 강한 숙근성 식물, 알뿌리 식물이 아울러 이용된다. 종자번식성 곡물과 영양번식성 작물과 신개지에 적합한 선구적 식물 같은 수목성 작물의 조합으로 생활의 기반을 만든 것이 조엽수림대에 계속 살아온 사람들이다.이하 간략히 기술한 바를 정리하면, 조엽수림 문화란 열대, 난대, 온대, 사바나, 스텝의 틈새에서 태어나, 자연의회복력을 바탕으로 하여 언덕 군락과 마을의 공통성을 이용하면서 잡곡과 뿌리작물 농경의 융합을 이루어낸 아시아의 독특한 농경문화 복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엽수림 문화론은 최종적으로는 크게 내용이 강화되어 여러 가지 재배식물의 이용 체계가 정리되면서 오늘날에이르고 있는 것인데, 기본적으로는 식물과 민족이 공존하는 상태의 계보를 해명하면서 농경문화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라 한다. 조엽수림부터 평원으로 생활권을 확대하면서 화전·수렵·이주부터 정주·농경의 생활로 화전 기술을 계승하면서 발전시킨 민족은 연료로서의 목재, 먹을거리로서의 수목, 먹을거리로서의 풀, 무기로서의 식물 등등과 같이 세련한 작물로 성공해 왔을까? 여기에서 중요한 도구가 민족식물학이란 연구 분야의 지식이다.




민족식물학의 중요성


자연의 식생은 기후조건을 시작으로 하는 다양한 환경에 의하여 결정된다. 가장 중요한 항목은 온도와 물이다. 겨울의 추위, 여름의 더위, 그리고 1년을 통틀어 강수 패턴과 그 양이 생육하는 식물의 종류를 정하고, 그에 의존하는 동물들의 생활을 규정한다. 각각의 지역에서 정주하는, 또는 긴 거리로 이주하는 민족에게는 이용할 수 있는 식물의 종류에 각각 독특한 양상이 생길 것이다. 그들의 이용 형태를 체게적으로 민족별로 조사하고, 비교하면서 각 민족 사이의 관계성을 밝히려 하는 것이 민족식물학이다. 


이 경우 실례를 드는 것이 이해를 쉽게 해줄 것이다. 예를 들면, 인생의 윤활제로서 세계의 모든 민족이 개발하고있는 알콜 음료, 간단히 말하면 술이다. 누룩균을 사용한 2단계의 제주법은 이 조엽수림이 분포하는 지역에 특징적이라고 이야기된다. 식물 원료는 쌀이 주체이다. 그러나 향모 등의 잡곡을 사용하는 지역도 있다. 양자가 공통하는 바는 화전에서 재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의류를 만드는 바에서는 명주를 재료로 이용하는 경우, 누에의 사료가 전제된다. 이러한 곤충의 고치를 이용한 실과 베의 개발도 조엽수림 지대 특유의 것인데, 벌레의 종류나 먹이가 되는 식물의 종류에 대해서는 민족·지역별로 조금씩 다르다. 어떤 이용 형태가 원형인지, 어느쪽이 파생계인지 세세한 비교조사를 바라지만, 그와 같은 조사에 재료를 제공해 주는 것이 민족식물학이다.


또 하나, 민족 사이의 비교에서 흥미로운 점으로 산초의 이용이 있다. 네팔에서는 평지의 네팔 사람은 별로 민물고기를 먹지 않지만, 고지의 셰르파족 등은 즐겨 먹었다. 그 조미료로 산초의 일종이 쓰이고 있다. 중국에서도 산초가 쓰이는 때는 물고기 요리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민물고기의 요리에는 으레 산초가 쓰인다. 한국에서는 그뒤 김치의 조미료로 유명해진 것처럼, 고추가 주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물고기에는 산초가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민물고기의 전형적인 요리는 장어의 꼬치구이이며, 반드시 나무의 싹(산초)을 곁들이거나, 산초의 가루를 곁들이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식물 이용으로부터 각지의 문화 공통성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에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민족식물학적 시점에서 본 조엽수림 문화의 특징은 어떠한 것일까? 지금까지 별로 적지 않은 것인데, 필자가 나카오에게서 들어서 인상에 남았던 것으로 식기의 이용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날마다 이용하는 젓가락이라든지 밥그릇에 대하여, 예를 들면 일본인에게 아직까지도 특히 강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개인개인의 소유가 강하게 강조되는 민족이 있다. 일찍이 일본은 밥상까지 각자였다. 가족 안에 있어도 식기에는 개인성을 인정한다는 생활감각은, 사실은 일본 이외에도 있다. 네팔, 부탄 등에서 일하는 짐꾼들에게 보이는 것인데, 각자가 식사용밥그릇을 몸에 지니고 행동한다. 그 한편으로, 그렇지 않은 민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식기를 가공할 때 이용되는 중요한 식물에 대하여, 조금 기술해 놓고자 한다. 식품을 가공할 때에는 갈이장이가 쓰는 녹로가 독특하며, 또한 밥그릇이 되는 수목의 종류도 민족별로 편향된 데다, 마감법, 칠기로 가공할 때 나무진의 재료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 대표 사례가 옻이다. 일본의 옻은 귀화식물이며 원산이 아니었다. 조몬시대의 옻은 안남安南 옻(베트남)이라고 생각되는데, 우리나라에는 광역에서 전해지고 있다. 옻은 선구적 식물이라고도 생각될 만큼, 탁 트인 곳에 쉽게 정착하는 화전에 안성맞춤인 식물이다. 옻의 이용도 조엽수림에서 특유의 사정이다. 


이 책의 기고5에서 사카모토 이사무 씨가 논하고 있듯이, 종이의 문제도 흥미롭다. 나카오에 의하면, 본래의 종이는 식물의 나무껍질을 두드려 얇게 편 것이 시작이다. 당초는 의류를 만들거나, 신 등의 공물로서 세공되었는데, 그뒤 섬유를 풀어서 뜬다는 행정이 더해져서 견고한 종이 만들기 기술이 조엽수림대를 회랑으로 널리 각지로퍼졌던 것이다. 


또한 식물의 새싹과 잎을 먹는 문화도 조엽수림 문화론을 의론하려면 간과할 수 없다. 아까 문제삼았던 산초도 새싹을 먹는 때가 있기에, 이와 같은 '나무 나물'로 구분될 것이다. 그 의미에서 산초는, 사실은 남방의 뿌리작물농경문화와의 접점을 보여주는 식문화이다. 나무 나물은 바꾸어 말하면 잎을 쓰는 식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한무리의 식물이다. 그 가장 전형적인 것이 차이다. 차 이용 문화도 조엽수림대에서 육성된 것이다. 네팔에서는 차가 자리기 어려운 고지(한해로 자라지 않음)에서는 근연종인 카멜리아 키시도 이용된다. 발효성이 약하지만 떫음은 충분하고, 이 조엽수림대에 사는 사람들의 기호에는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차 이용의 문화는 조엽수림대에 특유이긴 하지만, 자신들도 음용하는 민족과, 재배와 차 만들기만 하고 음용하지 않는 환금작물로 재배만 하는 민족도 있기에 조사할 때에는 제대로 된 식물학적 기초지식이 요구된다.


잎을 이용하는 문화에서 또 하나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자소이다. 식물학적으로는 들깨와 차조기이다. 본래는 기름을 짜기 위해 재배했는데, 종자를 먹거나, 잎을 먹거나 하는 것은 이것도 또한 아시아 특유이다. 더욱이 일본에서는 꽃이삭까지도 이용하는 지역도 있다. 문화의 물결 모양 전파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오래된 유형이 중심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남겨져 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식물을 이용하려 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식물은 모두 이용하고 있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가장 감탄하는 것은 카페인 식물인 차를 제대로 발견하여 식문화 안에 정착시켰다. 


이상 하나하나 세기에는 예가 너무 많을 만큼, 조엽수림대에서 식물 이용의 독자성은 두드러진다. 여기에서는 아래에서 조엽수림 문화를 특징지을 수 있다. 식물 이용의 하나인 차에 대한 탐색 및 정원수의 일부인 꽃나무의 고향인 중국이나 네팔, 베트남에서의 실제 탐색(탐험)에 대하여 기술하는 것으로 더욱 상세한 조엽수림 문화의 실태, 그 현재의 모습을 좇아 보고자 한다. 또한 이상 문제 삼았던 내용에 대한 나카오 사스케의 논고는 <나카오 사스케 저작집>(전6권, 홋카이도 대학 출판회)에 거의 모두 망라되어 있다. 이를 계기로 새삼스럽게 참조해 주신다면 고맙겠다.




조엽수림 문화론의 지표작물 -차


조엽수림 문화 복합이란 관점에서 농경의 기원을 설명했던 나카오는 조엽수림 농경의 지표식물 가운데 하나로, 차를 문제삼았다. 아래에서 차가 조엽수림에서 살고 있는 민족 안에서 어떻게 이용되며, 그 이용 문화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북부 베트남 오지의 조사를 주로 고찰해 보겠다.


차는 중국 남부에 분화의 중심을 가지고(Yu 1986), 그곳에서부터 주변 지역으로 분포를 넓혔다. 일본의 차는 중국 중남부에서 도입된 계통이 주를 점하고 있다. 또, 중국 중남부는 sinensis와 assamica의 분포가 겹쳐 있는 지역이며(Ming 1992), 오랫동안 기후변화로 서로의 분포지역이 남북으로 몇 번이나 이동했다는 점도 고려하면, 침투성 교잡이 발생해 복잡한 유전자 구성의 계통이 여럿 존재하게 된다. 이 지역에서 도입된 계통은 품질 성분 등에서도 다양성이 풍부하고, 차 재배화의 기원지라고 지목되는 지역이다.


차 식물, 기호음료 식물의 특징은 카페인을 성분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Kihlman 1977). 세계의 민족이 각각 독립적으로 이와 같은 카페인 식물을 발견하고, 재배화해 왔다. 차가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특성은 카테킨(탄닌)을 다량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테킨은 최근 의학계에서는 충치의 예방, 구취 제거, 혈압 강하, 콜레스테롤 감소에 대한 이용이 주목된다(津志田 1990, 中林 외 1991, 村松 1991).


어쨌든 차는 각지의 민족이 그 생육 분포권에서 생활한다고 하면 반드시 주목하고 이용하는 것이 분명한 식물이다(中尾 1976, 松下 1998).


각지의 민족이 식물을 이용하는 경우, 특히 음용, 식용으로 이용하는 경우에 조리법, 보존법이 개발된다. 먼저 신선한 채로 이용하는 생식의 단계가 상당히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1년 중 식물을 이용할 수 없는 환경조건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특히 기후성이 강한 식물(먹을거리)에 대해서는 보존을 궁구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조리·가공·보존의 수법이 개발되고, 또 식품으로서의 이용가치도 향상된다. 차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용법이 있고, 가장세련된 이용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음용이라고 하는 차의 이용에는 녹차, 반발효차, 홍차로 가공된다. 가공 순서는 날것, 말리기, 찌기, 데치기, 덖기, 발효시키기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법이 응용되고 있다. 차에는 씹는 용품으로 먹는 이용도 있으며, 거기에는 찌기, 절이기, 발효시키기 수법이 조합된다. 그뒤에 건조시켜서 또 음용하는 경우도 있다(Le Bar 1967). 더 남쪽의 윈난과 동남아시아에서 차는 발효식품으로도 이용된다.


나카오는 조엽수림대에 사는 민족 특유의 기호로서, 끈적끈적한 식품이라고 점성 식품을 지적한다. 차는 이와 같은 특성이 있다. 또한 똑같이 쓴맛을 기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지적한다. 차는 탄닌이 많아 상당히 쓰다. 차는 확실히 나카오가 지적하는 대로 끈적끈적한 식품, 곧 점성 식품으로서 조엽수림을 지표하는 농작물의 하나이다. 조엽수림 지대에서 특유의 식물 이용으로서 목본 식물을 주로 한 새싹과 잎을 식용으로 삼는 형태이다. 목본 식물을 식용으로 이용하는 형태의 전형이 차이며, 가장 오래된 시대의 이용법이다. 그것이 조엽수림대 남쪽의 끝에서는 미엔 등으로 남아 있고, 동쪽의 끝에서는 일본의 코이시차碁石茶로 남아 있다. 차는 많은 조엽수림 문화의 요소를 아우르는 흥미로운 식물인 것이다.





차를 찾아서 중국으로, 베트남의 산골로


중국부터 베트남에 걸쳐서 차를 기르는 민족으로는 다음의 네 어족, 여섯 민족을 들 수 있다(松下 1998). 즉, 먀오야오어족의 먀오족(苗 Miao, Hmong, Meo, Myao)와 야오족(瑤 Yao, Dao, IuMien, Youmien, YiuMien, Mien, Myen), 통·타이어족의 타이족(秦 Dai, Thai), 티베트·버마어족의 하니족(哈尼 Hani, HaNhi), 징포족(景颇 JingPo, Jingpho, Jingpaw, Chingpaw, Chingpo, Singfo, Kachin), 그리고 몽·크메르어족의 파라웅족(Palaung)이다. 그들은 본래는 쓰촨성에서 후난성에 걸쳐서 살고 있던 소수민족으로, 산에 사는 민족이며 생활의 장은 표고가 1500미터를 넘는 한랭한 지대에 한정되어 있다. 차의 나무는 열대 저지대에서는 흰개미의 해가 심하여 곧바로 말라죽어 버린다. 차를 기르면서 생활하는 데에도 흰개미가 서식하지 않는 고지대를 생활의 장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화전을 하면서 주거지를 이동할 때 차나무의 묘목을 등에 지는 소쿠리에 담아서 이동한다는 이야기였다. 도대체 차를 재배·이용하게 된 것도 산속을 이동할 때 목이 말라서 옆의 나뭇잎을 씹으면 기분이 상쾌하고 기운이 회복되었던 일에서 유래한다고 한다.베트남에서는 지금도 평지의 농민 사이에서 "생차" 이용이 있다(Huard and Durand 1954). 생잎을 손으로 비벼서 뜨거운 물을 부어 차로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걸쭉한 푸른 즙의 국물 모양으로 아침에 일하러 가기 전에 매일 마신다. 기운이 난다고 한다.


필자는 일찍이 차의 문화 진흥에 몰두하고 있는 풍명회豊茗会(나고야시)의 현지조사에 동행하여, 북부 베트남의 소수민족을 방문했다. 현지에서는 Century Giant Tea Tree라고 부르고 있는 큰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것이 보고되었다(Tien 1993).


하노이에서 베트남의 차 수출공사의 이사장과 협의한 뒤, 빌린 랜드 크루저에 나누어 타고 출발. 목적지는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향한 수웨이 양Suoi Giang, 표고 1400미터의 산악지대이다.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몽족"이라 통역을 설명했는데, 미야오족이다. 수웨이 양이란 하늘의 개천이란 의미, 즉 '하늘의 강'이다. 수웨이양에 자생하는 차나무는 샨차였다. 잎은 조금 얇고, 대부분 잎 끝이 꼬리 모양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잎 가장자리의 톱니가 자잘하게 많다. 관계자의 이야기에 의하면 8만4500그루의 큰 차나무가 1000미터를 넘는 산 위에서 생육하고 있다고 함. 여기에서 하는 찻잎 따기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한다고 하여 유명하다. 현지에서는 수웨이 양의 차는 특별하게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수웨이 양의 차에는 흰털이 촘촘히 나 있다. 털은 어느 쪽이냐면, sinensis의 특징이다. 따라서 여기의 샨형 차는 assamica와 sinensis가 분화하기 전의 미분화의 선조계이다. 여기에서 하는 제차법은 옛날부터 이른바 덖기이다.


두번째의 베트남 조사는 하장성의 오지에서 중국 국경까지 겨우 몇 십 킬로미터의 장소인 까오 보라는 마을이다. 이 지역의 샨은 탄베 샨으로 구별되고, 최고급 차가 생산되며, 반발효차 또는 홍차를 만들고 있다. 이 홍차는 매우 향도 좋고, 맛도 우등이며, 다르질링을 능가한다. 


우리들은 우선 마을까지 걸었는데, 점심을 휴대하지 않았다. 가는 길에 한 집에 들어가 점심을 부탁했다. 나온 밥은 쌀알이 가늘고 긴 찰밥이었다. 색은 흰색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붉인색이라기보다는 팥색인 쌀알도 섞여 있다. 반찬은 양배추를 소금에 데친 것뿐. 식사가 한창인데 작은 소쿠리를 등에 진 30대 정도의남성이 이 '즉석 식당' 앞을 지나갔다. 소쿠리 안에서 시커먼 동물이 움직인다. 잘 보면 강아지이다. 반년 정도 길러서 먹는 것이라고 한다. 개를 먹는 문화권인 것이다. 베트남의 산골에서도 역시 개는 귀중한 단백질원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점심을 마치고서 또 산길을 가면 갑자기 여러 부인들이 모여 길 양쪽에 몇 십 명이나 늘어서 있다. 모두 멜대를 들고 있다. 카오 보 마을의 여성 대부분이 모여서, 마을에서 결혼한 젊은 부부의 집을 신축하기 위하여 지붕을 이는 재료를 여럿이서 나르는 중이라 한다. 한 단이 20-30킬로그램 남짓인 듯하고, 앞뒤로 한 단씩, 합계 두 단을 짊어지기 때문에 합계 50-60킬로그램이라고 하는 바일까?


약간 공기도 서늘해지고, 저녁 때라고 생각될 무렵에 카오 보 마을에 도착했다. 집은 고상식이며, 2층이 마루방이다. 구석에 침대가 놓여 있고, 정면은 신을 모시는 선반을 모신다. 주의하여 보면 좁은 통로가 있다. 그 속에 공간을 두었다. 딸 방이다. 밤에는 이 방의 출입을 가장이 감시할 수 있는 체계인 듯하다. 이 집에는 작지만 전구가 비추고 있다. 개천의 흐름을 이용한 초소형 수력발전기가 그 전원이 된다. 이 마을의 주변은 큰 차나무가 번식하고 있다. 차나무 사이의 도처에 흙무덤이 발견된다. 묘이다. 이 마을사람의 생활 기반을 지탱해 온 차나무를 이번엔 죽은 마을사람이 지탱하는 유기질이 된다. 


촌장은 아직 30대 중반으로, 화롯불을 쬐면서 떡고치 모양인 것을 불에 굽고 있다. 이곳은 떡 문화권인 것이다. 집 안에 신을 모신 선반이 있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금줄이 가로로 쳐져 있고 좌우에 금줄 장식이 달려 있다. 어슷하게 베어낸 자국을 넣고, 그곳을 다시 접어 또 아래로 베어낸 자국을 넣고…… 하듯이 3번 되풀이한다. 신을 모신 선반에 부족의 유래를 적어 넣은 옛날 식으로 매어 놓은 책이 있었다. 한자로 써 있기에 이 젊은 촌장은 읽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의 숙부들이라면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외떨어진 곳에있는 차산은 부인회가 관리한다.


그리고 식사의 준비이다. 닭을 두 마리, 큰 솥에 삶고, 다음으로 깃털을 잡아 뽑았다. 더욱 놀라운 점으로는 닭을 삶은 솥의 물이 그대로 국물이 되었다. 채소를 아무렇게나 넣고 완성이다. 닭고기의 잘게 찢은 것이 주요리, 그 주위에 잘 우린 국물, 또 그 주변에 색색의 채소라기보단 들풀의 나물, 콩을 넣은 현미죽, 그 다음에 찐 지에밥, 뒤따라 구운 요리도 나왔다. 조미료는 소금이 주이다.


다음날 산까지 올라가 차나무를 조사하고, 그날 안에 또 하장의 읍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해돋이 전에 마을을 출발해 가는 길에 아침밥을 먹으면서 가고, 점심 전에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해야 마을에서 4-5시간은 걸리는 것이다. 표고차로 1000미터 이상을 가야 한다.


이 집의 어른이 다음날 새벽 차산으로 향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다(그림5-1). 쌓여 있는 벼이삭을 배 모양의 절구에 찧어서 절구공이로 탈곡한다. 역시 낟알 색은 붉다. 찹쌀이다. 나이 먹은여성은 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검게 물들어 있다. 빈랑이다. 그러나 눈썹도 얇다기보다는 뽑은 듯한 느낌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에서의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림5-1 베트남 산골에서 도시락 만들기




이튿날도 새백에 출발했다. 집의 현관을 나올 때 각자 한 잔의 술을 대접받았다.


조금 평평해진 장소를 통과한다. 저 앞에 한 그루의 귤나무가 있다. 일본의 기주밀감이다. 여기부터 급경사가 1시간, 산꼭대기의 차 원생림에 도착한다(그림5-2). 돌아갈 시간을 계산하면 30분 정도밖에 시간 여유가 없다. 먼저 종자를 찾아서 채집하고, 다음으로 꽃을 찾아서 암술의 휴대를 조사하여 기록했다. 또 유달리 눈에 띄는 나무의 사진도 촬영했다(그림5-3).


그림5-2 베트남의 큰 차나무



그림5-3 베트남 큰 차나무의 꽃, 옅은 분홍색




동행한 베트남 국립 차 시험장의 육종연구실장 트앙 박사는 안내하면서 3년 전에 그의 학위논문 연구를 위해 나무마다 조사를 행했다고 설명한다. 그 때문에 어느 나무에나 페인트로 번호가 적혀 있다. 34번 나무가 가장 품질이 좋은 정예 나무로서 하장시 근처의 비 슈엥Vi Xuyen에 있는 증식시험지에서 대량으로 삽목 번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오 보 마을의 탄베 마을의 사람들도 차를 제조하고 있지만, 새싹의 가지치기를 할 즈음에 가지마다 베어 놓고나서 잎을 잡아 뜯는 것이 찻잎 따는 방법이며, 이때 찻잎 따는 노래를 부른다. 잎을 딴 가지는 태우게 된다. 이와 같은 가지마다 베는 일부터 잎을 잡아 뜯어 수확하는 일은 오래된 유형의 차 제조법이라 생각한다. 일본에서 에도 시대 이전의 가을철 차 만드는 법과 공통된다. 일본의 시코쿠 지방에 전하는 흑차 등도 가지마다 수확한 뒤 끓는 물을 부어 잎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제차(이 경우는 절임 차이지만)를 행한다. 나뭇잎을 '먹고' 있었을 무렵부터의 차 이용 형태의 자취일지도 모른다. 산에 거주하는 사람들 특유의 이용법이라 생각한다면, 일본부터 중국, 그리고 베트남과 차의 이용 방법 가운데 하나는 매우 유사한 것이다. 


하장의 차는 다른 베트남의 녹차와 달리 탄닌 함량이 비교적 낮고(17.7-19.9%) 전체적으로 발효성도 중간 정도(10단계로 구분하면 4-6)와 변종 앗사미카assamica 중에서는 더욱 변종 시넨시스sinensis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암술의 암술머리 유형도 깊게 갈라지고, 게다가 끝이 직각 모양에는 굴국 없는 것이 섞여 다양성이 풍부하다. 이번에 조사한 차나무는 여러 가지 특성이 다양하게 조합되어 확실히 유전적 다양성이 높다. 이중에서 시네시스 같은 특성이 강해지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동쪽으로 분포를 넓히는 진화와 아사미카 같은 특성이 강해지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서쪽 및 남쪽으로 분포를 넓히는 진화가 일어났다고 하는 이야기를 그릴 수 있다. 그리고 그 무대는 조엽수림의 안이었다. 소수민족이 작물로 길러내 중국, 일본, 인도에서 차업茶業이 흥하여 차 문화가 발전했다(그림5-4).


그림5-4 베트남의 차 만들기





네팔의 산골에서


그리고 다음으로, 화훼 식물을 둘러싼 네팔 유전자원 300만 걸음의 여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첫번째 꽃의 유전자원 해외 탐색은 철쭉과 백합으로 결정되어 내가 리더로 네팔의 원생림을 걷게 되었다. 네팔 원산의 식물로서, 특히 목표가 된 것은 Rhododendron arboreum와 Lilium nepalense이다. 유전자원 탐색이란 것은 생물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인 특성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특성만이 아니라,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특성까지 포함하여 많은 농작물의 품종을, 장래를 위해 수집보존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나 자신은 철쭉 이외에 동백나무나 차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고 있으며, 나카오가 걸었던 길을 30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다시 더듬어 가는 일에 감격하고 있다. 출발까지에는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어 준비에는 3개월 정도 걸렸다. 이번 회의 목적인 석남화·철쭉과 백합의 채집은, 다른 탐색 팀과 달리, 완전히 야생종의 수집이다. 


비행기는 나리타에서 방콕, 방콕에서 카투만두 행으로 갈아탄다. 지금까지의 다른 탐색대가 방콕에서 큰 실패를 하고 있다는 것은 슬며시 들었다. 그들은 공무원의 습성 때문인지 세금으로 출장가는 것을 좋은 기회로 틈타, 돌아오는 길에 조금은 관광을 하기 때문에 돌아가려고 일찌감치 탐색을 종료시키고 다른 데 들러서 놀다가 돌아오려고 할 터이다. 방콕은 그와 같은 목적에서 일시 기항하여 2-3일 시간을 보내는 데에 매력적인 도시이다. 그러나 일시 기항이라도 2-3일 체재하는 경우, 수하물을 가지고 공항에서 나가려고 한다면 채집품인 살아 있는 식물은 태국 국내에는 가지고 들어가는 게 금지되기 때문에 세관에 맡기게 된다. 맡긴 사이에 온도가 너무 오르거나, 무덥거나, 여러 가지 일로 소중한 재료가 말라 죽어 버린다.


방콕을 떠난 제트기가 고도를 낮추어 몹시 거칠게 착륙하면, 그곳은 카투만두의 공항이다. 트랩에서 내리지만 버스는 없다. 에이프런 자체도 없는, 일본의 지방 공항과 같다. 네팔의 탐험은 걷는 것이 기본으로 셰르파의 확보가 중요하고, 홀연히 네팔에서 으뜸가는 유능한 셰르파의 한 사람, 안젤첸 셰르파에게 전화를 걸어 이튿날 면회를 예약했다. 


다음날 빨리, 일본대사관에 인사차 찾아뵙고, 네팔에서의 편의 제공이라든지, 만일의 사태에 주의점 등 서로 이야기했다. 다음으로 일단 JICA 사무소에 가서, 다시 소장인 오노小野 씨를 시작으로 현지 직원 모두에게 인사했다. 여기에서 입수가 곤란했던 현지의 상세한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대사관의 다음은 네팔 당국, 즉 약초국 식물연구소 국장인 마라 박사와의 교섭에 나섰다. 면회는 마라 박사와 배양연구실장인 라지반타리 박사 두 사람이 상대였다. 그럭저럭 이번회의 탐색계획의 승낙을 받고, 채집의 성과는 반분하기로 결정했다. 


그뒤 약초국의 연구실과 식물원을 안내받았다. 이 약초국은 고다와리에 있고, 카투만두의 교외에 있는 경치 같은곳이며 관광객도 방문하는 곳이다. 이 건물 입구의 기둥에 휘감겨 있는 덩굴풀에 파이프 모양의 갈색이 나는 꽃이 피어 있었다. 안내를 맡은 마라 박사가 무언가 이야기하려고 하기 전에 즉각, 이것은 아리스토로키아(쥐방울덩굴속)이라고 내가 말하자, 곁에 있던 로이 씨가 아리스토로키아 나카오이라고 설명했다. 그 나카오이는 사스케나카오이라는 교수이다. 나는 교수 나카오의 마지막 제자이다. 그의 제자 가운데 꽃을 특별히 연구하고 있는 건 현역에서는 나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이야기가 활발해지고 모두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다.


힘든 첫날의 오후는 셰르파의 확보이다. 안젤첸의 사무소까지 갔다. 셰르파 3명과 요리사 3명이 필요, 비용은 이정도라고 조건을 제시해 주었다. 안내하는 손님 1명, 하루에 30달러, 즉 4명이 16일 동안 합계 1920달러. 예산보다 130달러 초과이지만, 계약이 성립되었다.


이튿날 아침, 호텔의 로비가 왁자지껄했다. 아직 어둑어둑하다. 랜드크루저가 오고 있다. 이제 출발하고, 포카라까지는 열대를 통과하게 된다. 네팔 유전자원 300만 걸음이란 여정의 시작이다. 셰르파 선두는 안니마 셰르파, 보조는 린지 셰르파이다. 후미는 텐진 셰르파가 포카라에서 합류하는 것으로 셰르파는 3명이다.


가는 길에 찻집에서 휴식. 간신히 발을 뻗는다. 카레 맛의 콩과자와 달콤한 홍차, 이것이 짜이이다. 유리잔에는 몇 마리의 파리가 머물고 있다. 


민물고기를 굽고 있기에, 주문하여 먹어 보자 이것도 맛있다. 양념으로 산초를 쓰고 있다. 네팔에서 민물고기를 먹는 건 산의 민족이 보통이고, 평지의 부족은 원래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장의 모두에서 언급했듯이 물고기 요리와 산초의 조화는 히말라야부터 일본까지 조엽수림대에 전해지는 식문화이다.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민물고기에는 산초를 많이 쓴다. 일본에서는 장어와 산초가 조화가 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포카라에는 3시 넘어 도착.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마을사람이 여럿 모여 들었다. 안니마가 여러 가지 지휘하고 있다. 짐꾼을 고용하고 있는 바일 것이다. 23명을 고용했다. 곧바로 걷기 시작한다.


드디어 본격적인 탐색이다. 7시 15분에는 출발이다.


네팔의 산에 들어가 감탄하는 것은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별이 있는 건지 불가사의할뿐이었다. 카시오페아는 현지 이름으로 초타라, 북극성은 프루바, 묘성은 스그로이다. 별이 총총한 하늘을 관찰하는 건, 그렇지만 발 밑에 충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 근처가 화장실이며, 밤중이나 새벽녘, 심할 때는 낮의 분실물이 여기저기에 그대로 놓여 있기 때문에, 밟으면 나중이 매우 성가시다.


오늘도 7시 반에는 출발한다. 예정은 비레탄티까지이다. 길가에는 만수국아재비가 피어 있다. 꽃은 확 눈을 끌지않는다. 풀 전체가 유별나게 구린내가 난다. 여기저기의 신에게 이 꽃이 바쳐지기 때문에, 로이 씨에게 들으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풀이라 우선 신에게 바쳐지는 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고방식이다.


이 부근부터 주변의 숲속에 카멜리아 키시가 여기저기 조금씩 보이게 되었다.(그림5-5). 히말라야에서 잘 알려져 있는 차 식물이다. 흰꽃이 예쁘다. 원래가 내한성이 있는 식물이며 고도는 1600미터 부근부터 출현한다. 차(카멜리아 시넨시스)의 대표로서 귀중한 존재이다. 사람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차를 마시고자 하는 것이다. 네팔의 홍차는 다르질링에 버금가게 풍미가 굉장하다. 중국에서 오래전 시대에 도입된 영향으로, 생산고가 적어서 세간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림5-5 네팔의 울창한 석남화 숲




오늘날 볼만한 곳은 유명한 울레리 고개로서, 이곳은 히말라야 벚나무의 꽃구경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히말라야 도로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그렇지만 고도차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험한 곳이기도 하다. 도로 연변의 민가 지붕에는 오이 같은 덩굴풀이 우거져 있다. 잘 보면, 소형 여주 같은 열매가 달려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 과실을 잘게 잘라 말리고 있는 곳도 있다. 채소인 것이다. 게다가 건조하여 보존식도 되는 편리한 것이다. 현지 이름은 카라리. 이 채소만은 정체를 알 수 없다. 아마, 쥐참외의 무리일까?


이제부터가 공포스런 울레리의 가파른 언덕이다. 비스타레로서, 천천히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곳의 벚나무는 프루너스 세라소이데스Prunus cerasoides, 히말라야 벚나무로 유명하다. 벚나무 중에서는 비교적 진귀하게 10월부터 꽃이 핀다. 길가의 논은 벼베기가 끝나, 축제의 준비를 하고 있다. 긴 대나무를 3개 조합하여 교차되는 아래의 한가운데에 그네를 단다. 현지인은 핑이라 부른다. 여기에 타서 힘껏 발을 굴러 가능한 한 높이 오른다. 높이 오르면 오르는 만큼 신에게 축복을 받고, 수확의 감사를 표하는 것이기도 하며, 내년도 풍년이 든다고 한다(그림5-6).


그림5-6 네팔, 그네에서 노는 셰르파



네팔 나리 쪽도 정부 수집을 시작했다. 차집 등으로 슬며시 찾으러 간다. 사전에 조사해 놓은 지식으로는 현지 이름은 키로우레였다. 그러면 알고 있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살고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하여 보러 가면, 안타깝게도 그것은 둥글레였다. 키로우레는 백합을 가리키거나, 네팔 나리를 가리키거나 두 의미가 있다. 또 하나의 현지 이름은 라순이다. 이것에 '숲의'라는 의미의 단어 반을 붙여서 반 라순이라 부르면 키로우레가 된다. 그러나 백합인지, 둥글레인지는 구별할 수 없다. 귀찮은 것에, 비슷한 단어로 반 라숨이 있다. 우리들에게는 이 미묘한 발음의 차이가 들리지 않았다. 반 라숨은 마늘이다. 숲의 마늘이다. 네팔에서는 고지가 되면 고지계의 주민, 셰르파족과 타카리족의 세력 범위이며, 셰르파어가 된다. 네팔어와는 다르기 때문에 이 점도 성가시다. 


목적지인 고레파니(푼힐)가 다가옴에 따라, 바르바텀barbatum 석남이 나타났다. 꽃자루에 털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개체변이가 심하다. 여기에서는 수목원과의 사이에서 자연교잡이 일어난 것이다. 이와 같은 잡종 집단은 신이 육종해 준 것이기에 신중히 조사하면 재미있는 것이 발견된다. 되도록 흰꽃 개체와 붉은꽃 개체로 구별하여 종자를 모았다.


고레파니는 교통의 요지이다. 많은 산막이 시끌벅적하고, 도보여행자가 끊임없이 오고간다. 산악자전거로 통과하는 용사도 있다.


고레파니의 푼힐 언덕은 민둥산이 되어 있다. 예전에는 울창했던 정글이었다. 원인은 여럿이 캠핑하여 땔감으로 석남을 베어버린 것, 숙박객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백인이 주였기에 가축을 방목하여 초지를 없앤 것, 여러 사람이 자연을 마구 짓밟은 것, 산막을 더욱더 세운 것, 여러 가지가 뒤얽혀 아름다운 숲과 초원이 헐벗게 되어 버렸다. 혹독한 환경의 토지에서는 자연의 복원은 곤란하다. 숲의 자연이 빈약해지면 그것을 이용하는 자연의 은혜도 사라진다는 건 뻔하다. 맛있는 꿀도 언젠가는 귀중품이 되어 버릴 것이다(그림5-7).


그림5-7 네팔의 꿀 따기, 꿀벌의 집




베어내어 곧바로 태우는 건 석남화뿐인 듯하다. 1밀리미터의 간격 사이에 30개 이상의 나이테가 새겨져 있다. 이런 귀중한 석남화의 큰 나무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 이 부근부터, 또 다른 석남화, 레피도텀lepidotum 석남이 발견된다. 고도는 3000미터였다. 미끄러져 떨어지면 700미터 아래의 강까지 멈추지 않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급경사의 벼랑에서 전전하며 생육하고 있는 것이 레피도텀이다.


지금까지 그럭저럭 석남은 채집할 수 있었는데, 네팔 나리의 알뿌리를 찾아야 한다. 또한 돌아갈 일자를 생각하면 슬슬 한계일지도 모른다. 귀국까지 채집품의 조정 일수를 고려해도 빠듯하다. 11월 19일이 항공권의 예약일이다. 네팔 나리에 대해서는 카투만두 근교에 산지가 있으며, 그곳에서의 채집도 몰래 예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토파니에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이 부근의 밭은 향모의 밭이다(현지 이름 코도). 옆에는 실파 같은 것(현지 이름 피에투), 마늘(현지 이름 라숨)이 심어져 있다. 이번회는 채집하지 않았지만, 실파는 일본 특산인데 이것은 무엇일까?


점심까지 타토파니의 캠프로 돌아가자, 로이 씨와 텐진이 네팔 나리의 알뿌리를 펼쳐서 구르와 오쿠다 씨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알뿌리는 26알이었다. 또한 네팔 나리는 타칼리어로 '푸나' 또는 '푼'(모두 꽃이라는 의미)이라 부르고 있단 것도 알았다. 


이 네팔 나리를 발견한 데에는 지혜를 발휘했다. 네팔 나리는 생으로도 먹을 수 있을 정도, 새싹도 알뿌리도 맛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꽃이 피기까지 크게 자란 것은 드물다. 로이 씨와 텐진은 아이들에게 어느 부근에서 언제나이 나리의 새싹을 땄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여 여기저기 파내어 이만큼의 알뿌리를 찾아내 돌아왔다. 보고서에 쓸사진을 찍고, 소중히 포장해 가지고 돌아오게 했다.


네팔 나리의 알뿌리는 채집할 수 있었기에 이번회의 임무는 거의 완전히 목적을 달성했다.


오늘이 최후의 트렉킹으로, 포카라까지 가는 도정은 신바람이 났다. 텐트 생활도, 캠핑 요리도 드디어 마지막이다. 아침밥은 차파티, 달걀 푸딩, 죽. 조금, 더워진 숲속의 길을 나아가자, 갑자기 눈앞에 예쁜 호수가 보였다. 포카라의 페와 호수이다. 호수의 주변은 논이 되어 있고, 마침 수확기라 이삭의 물결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페와 호수는 동양 제일의 아름다운 호수라고 칭송되는 일이 많다. 참으로 그렇게 생각되는 아름다움이다. 마차푸차레 꼭대기가 옮긴 호면은 정말 아름답다. 


카투만두에 돌아와 이튿날은 JICA 사무소에 인사차 들렀다. 내일은 로이 씨에게 부탁했던 네팔 나리의 자생지, 푸루초키산으로 안내를 받을 것이다. 


고다와리의 약초국에 들러, 마라 박사와 라지반다리 실장에게 이번회의 탐색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일, 채집품은 반분하여 나누고 로이 씨에게 부탁한 일, 앞으로의 보고논문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발표하는 일에 대하여 다시 확인을 했다. 차량의 수배를 하는 사이에 식물원 안을 천천히 견학했다. 높이 5미터 정도의 달리아에는 놀랐다. 이것은 나무 달리아로서 상당히 뒤늦게 일본에 붐을 일으킨 꽃이다. 랜드크루저의 준비가 되어, 푸루초키로 출발했다.


정상에는 시바신을 모신 사당이 있고, 그 뒤쪽에서 많은 네팔 나리가 발견되었다. 종자를 달고 있다. 대량의 종자를 채집할 수 있었다. 알뿌리도 캐냈다. 





중국의 산골로 차를 찾아다니다


조엽수림 문화 복합이란 관전에서 보았을 경우 차는 조엽수림 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에 매우 밀착된 다양한특성이 있으며, 지표성이 높은 식물로 받아들일 것이 많다. 조엽수림에 거주하는 민족 안에서 차는 어떻게 이용되기 시작하고, 그 이용 문화가 어떻게 하여 주변으로 전해지면서 세련되어 갔을지 그 매력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차라는 식물의 특징으로 대형 잎이 달리는 차나무가 알려져 있고 코로라고 부른다. 유전학적으로 코로의 형질은 열성 형질이고, 호모 접합체가 이와 같은 특징을 나타낸다. 흥미로운 점으로, 일본의 엘리트 품종 '야부키타'가 이 코로 유전자를 이형 접합의 상태로 보유하고 있다. 멘델의 법칙으로부터 '야부키타'를 편친으로 하여 여러 가지로 교배하여 자식으로 코로 개체가 출현한다면, 또 하나의 품종(개체)도 코로 유전자에 대하여 이형 접합체인 것이 판정될 수 있다. 일본, 한국, 중국의 어디에 이 '코로' 유전자가 분포하고 있는지 각지에서의 유전자원 수집 계통과 '야부키타'와의 교배 시험을 진행하는 것과 병행하여, 나의 코로 차나무 탐색의 편력을 시작했던 것이다.


중국의 국립 농업과학원 차엽 연구소가 소유하는 녹차 유전자원의 보존원에는 여러 가지 코로 차나무가 존재한다. 중국 이외에 자생하는 코로형 차나무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코로는 중국 남부에서 생긴 돌연변이 유전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차는 각지의 민족이 반드시 주목하여 이용하는 것이 분명한 식물이며, 조엽수림을 본거지로 하는 민족 모두에게 이용되고 있던 식물이라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가장 단순한 차의 이용법은 생잎을 그대로 먹거나 마시거나 하는 것이다. 베트남 최북단의 지역에 조사하러 갔을때, '생차'의 두 가지 이용법을 보았다. 하나는 생잎을 부비거나, 또는 비벼서 뭉개고 나서 뜨거운 물을 부어 걸쭉걸쭉한 스프처럼 만들어 그대로 그릇에서 마시는 이용법과 손으로 생잎을 부벼서 갈아 차주전자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나서 찻잔에 따라서 마시는 유형이다. 


다음으로 보존의 일이다. 그대로 말리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차는 그대로는 성분의 분해가 일어나기 때문에 간단한 가열의 공정이 더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철기를 이용할 수 없는 시대는 조리기구는 토기이며, 이때에는 데치든지(삶든지), 찔 수밖에 없다. 몇 가지 패턴이 나온다. 하나는 대나무통에 꾹 담아서 흙속에 묻거나, 또는 나무통 같은 큰 용기에 담아서 일정 기간 밀폐해 놓는 것이다. 앞의 것이 죽통차, 뒤의 것이 미엔(레페토)이다. 어느쪽이든 보존 기간에 발효되어, 약간 시큼한 풍미가 있다. 또한 탄닌도 남아 있고, 쓴맛도 있다. 나는 이와 같은 절임으로 먹는 이용법이 비교적 오래된 유형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의 물결 모양 전파의 법칙으로부터, 먹는 차의 분포권은 차 문화 중심의 주변부이기 때문이다. 반대쪽, 동쪽의 주변부에는 가루로 내어 마신다는 말차 형태의 이용법이 남아 있다.


다음으로 본래의 차 이용 문화의 중심지인 중국에서는 세게 쳐서 굳히고 나서 건조시킨 고형 차(단차団茶, 경차餅茶)의 이용이 있다. 고형 차는 이용할 때에는 깎고, 갈아서 약연으로 가루로 내고 나서 뜨거운 물에 넣고 뒤섞어서 마신다. 잎 전체를 이용하는 것으로는 먹는 차와 똑같은 범주에 포함될지도 모른다. 


뜨거운 물에 데치거나, 찌거나 한 뒤, 그대로 말리고, 가루로 내고 나서 앞의 고형차와 마찬가지로 하여 마시는 것이 일본에만 남아 있는 '말차'이다. 일본에서는 그뒤에 찐 잎을 손으로 부벼서 말리고 나서 뜨거운 물을 부어 추출한 성분만 즐기는 전차가 발달했다.  중국에서는 솥에 덖는 제법이 개발되어, 중국 녹차로 진화해 갔던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조엽수림 안에 거주하는 민족에 발효 기술이 있으며, 차도 발효식품으로 이용하는 형태가 있었던 것이다. 차는 이와 같은 특성이 있기 때문에 끈적끈적 식품, 또 점성 식품으로 조엽수림을 지표하는 농작물의 하나로 생각할 수도 있다. 차의 이용 문화가 조엽수림을 나와서 한민족의 차 문화, 즉 마시는 차의 문화로 성숙을 시작해 그것이 또한 새롭게 주변의 여러 나라로 전파되어 갔다. 


조엽수림 지대에는 열대 지방으로부터의 연속성이 있는 목본식물을 주체로 한 새싹과 잎을 식용으로 삼는 나무나물 이용의 형태가 있다. 예를 들면, 산초(나무의 싹), 으름덩굴, 오갈피나무, 두릅나무(두릅나무의 싹) 등이며, 차도 잎을 먹는 형태가 있기 때문에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차는 많은 조엽수림 문화의 요소를 겸비하고 있는흥미로운 유용식물인 것이다. 


아주 최근의 새로운 발견에 대해서도 기술해 두고 싶다. 벼농사 기원의 유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국 저장성허무두河姆渡 유적에서 탄화된 차나무라고 생각되는 나무의 그루터기가 발굴된 것이다(그림5-8). 6000년 전의 것이라 동정되기 때문에, 재배화된 벼를 기르면서 차를 마시고 있는 고대인이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다반사'의 기원이 거기에 있었던 것일까? 조엽수림에 가려진 배후의 구릉지를 조망하며 천천히 차를 즐기는 사람들가운데, 일본까지 건너온 사람들이 있었던 것일까? 나카오 사스케가 외쳤던 조엽수림 문화론은 장대한 낭만을 북돋우면서 계속 발전한다.


그림5-8 전라산 유적 출토의 차나무 같은 그루터기





마치며


사람들이 살아가려면 주변의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 민족의 존속을 규정하는 기본이다. 그렇지만 각 민족은 각각 독특한 대처 방법, 즉 계승하고 있는 생활문화의 틀 안에서 이 주변의 환경을 어느 정도는 개변할 수 있다. 또한 민족이 생활하는 주변의 환경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생태학에서 익숙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주변의 환경은 시간과 함께 생물적인 이유(예를 들면, 종 사이의 경쟁 그외의 요인)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환경과 민족의 진보, 문화적인 내용의 발전에 대하여 동적인 상호관계를 이해하려면 시간축을 정확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눈앞에 있는 다양한 민족과 환경의 상호관계는 역사적인 산물이며, 식생 천이의 영향도 받으면서 민족의 활동에 의한 변화, 그에 수반한 한층 더한 변화의 복합산물이며, 어느한쪽에서의 고찰로는 민족 문화의 계보를 해명할 수 없다. 


조엽수림 문화론을 만들어 낸 나카오 사스케의 학문 체계의 배후에는 자연을 시간축, 생물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민족과의 상호작용을 충분히 염두에 둔 치밀한 해석이 있으며, 더욱이 민족 사이의 문화, 특히 농경문화를 비교할 때에는 매우 대담하게 공통적인 요소를 통찰하면서 유사성과 비유사성의 진폭을 실로 면밀하게 분류한다.분류란 서로의 계통 관계를 분명히 하는 작업이며, 이 과정에서 민족 각각의 계통, 농경 기술의 계통 등이 밝혀진다. 이와 같은 비교 작업을 할 때, 특히 유효한 수법이 식물 등의 이용, 즉 재배화해 온 것인지를 비교하는 일이다. 


민족에게 특유의 문화는 의·식·주로 표현되는데, 민족의 독자성은 언어와 신앙(종교관)에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신앙에 얽힌 다양한 관습, 행사에는 식물이 밀접하게 관계되는 일이 많다. 게다가 그 관계성은 매우 보수적이다. 식물의 생육은 기후적, 토양적, 다양한 환경 요인으로 규제된다. 큰 폭의 기후변화가 있었을 경우, 또는 대규모로 먼 곳으로 이주했을 경우에는 민족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계되는 식물의 종류 조성도 변화한다. 그경우에 어떻게 대체가 되는 소재를 찾아서 타협을 해 가는 걸까? 또는 어디까지 원래 이용했던 식물종에 구애되고, 조금은 재배적인 수법을 찾는지, 교역으로 먼 곳에서라도 가져오는 걸까? 또는 다른 환경으로 이주하는, 그와같은 일을 거듭하면서 민족이 이용하는 식물의 종류, 이용 수법이 변화해 간다. 어느 경우가 본질적인 것이며, 어떠한 경우가 편향된 것인지 각 민족 사이의 비교, 역사적인 변천의 고찰을 식물과 인간의 생활의 관계를 밝히면서 행해야 한다. 조엽수림 문화론은 정말로 그러한 검토의 의의를 현대의 우리에게 아직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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