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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농경사 권4




제4장

아시아의 콩   아시아의 잡곡

카시와기 쥰이치柏木純一, 야마다 고로우小畑弘己, 타케이 미에코竹井惠美子







Ⅰ-1 아시아의 콩(카시와기 쥰이치)


콩과식물은 세계에 대략 2만 종 있으며, 지구에서 가장 번영하고 있는 식물종의 하나로 꼽힐 수 있다. 이 가운데 식용작물로 인류가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약 80종류 정도인데, 이중 몇 가지 중요한 콩은 아시아를 기원으로 한다.일본에서도 친숙한 대두는 동아시아에서 기원한 것이고, 완두나 누에콩은 서아시아가 기원지이다. 이들 '저명'한콩들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서와 일반서가 출판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새삼스레 그 상세함에 대하여 해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절에서는 필자가 2000년부터 8년 남짓 동안 인도, 특히 남인도에서의 콩 사정에 대하여 소개하려고 한다.


인도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식용 콩과작물의 재배가, 지금도 매우 활발하다. 그 이유로는 인도에서는 종교적 제약에 의해 육식을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 사상이 아직도 사람들의 근간에 있는 것을 우선 생각할 수 있다. 최근, 경제 발전이 뚜렷한 이 나라에서는 2008년 10억270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외무성 각국·지역 정세), 숫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그 가운데 20%는 매우 엄격한 채식주의자라고 이야기된다. 여기에 더하여, 경제적인 이유로 육식을 하지 않는(정확히는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즉, 대략적으로 이야기해도 적어도 일본 인구의 거의 1.5배에 상당하는 인도인들은 생애를 통하여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추정된다. 콩은 이들 사람들에게 귀중한 단백질원이 되고 있는 것이, 인도에서 식용 콩과작물의 재배가 매우 활발한 이유일 것이다. 


인도에 살고 있으면 농가의 밭, 노천 시장(바자르), 슈퍼마켓, 식당, 그리고 각 가정의 식탁에서 콩과 콩 요리를 보지 못하는 날이 없다. 그러나 인도에서 자주 눈에 띄는 콩들은 일본에서는 친숙하지 않은 것도 있다. 우선은 인도에서 친숙한 몇몇 콩을 소개하고자 한다. 





콩의 종류와 그 성질


나무콩(학명 Cajanus cajan L.)(그림4-1)은 인도가 기원지라고 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식물체는 일반적으로대형이고, 길이는 2-4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다. '나무콩'이란 일본 이름이 보여주듯이, 목질화된 매우 단단한 줄기를 지닌다. 줄기의 지름은 3센티미터 정도에 이르는 것도 있다. 식용으로 이용하는 알곡의 종피는 갈색이고, 100알 무게는 10그램 정도로, 30그램 정도인 일본의 대두와 비교하여 상당히 작다. 알곡은 남인도에서 가장 일상적인 콩 요리인 달로 먹는 일이 많다. 달이란 갈아 만든 콩 스프이다. 갈아서 만든 나무콩의 배유 색은 몇 가지가있지만, 누런색이 일반적이다. 나무콩 달은 잘게 썬 양파 등의 채소를 마늘, 생강과 볶은 것에 울금, 아위, 고추 등의 향신료, 그리고 소금, 후추로 맛을 낸 재료에, 물에 담갔던 나무콩을 걸쭉한 풀이 되기까지 끓인 것을 더하여, 더 끓여서 만든다. 밥을 지은 쌀과 밀가루로 만든 발효하지 않은 빵(차파티) 등과 합하여 먹는다(그림4-2).


그림4-1 나무콩. 떨기나무 같은 큰 식물체의 끝에 완숙한(갈색의) 꼬투리가 보인다.




그림4-2 남인도의 전형적인 식사. 각각의 그릇에는 다른 달이 담겨 있다.




나무콩은 세계의 470만 헥타르의 토지에서 재배되며, 연간 330만 톤의 알곡을 수확한다. 이 가운데 70%(재배면적 기반. 수확량 기반이라면 76%)는 인도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대두가 일본의 주요한 콩과작물이라고 한다면나무콩은 인도의 주요 콩과작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알곡은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되는 데다가, 굵은 목질화된나무콩의 줄기는 땔감으로도 이용된다. 게다가 나무 같이 완강한 뿌리 부분은 겉흙을 단단히 붙들면서 질소고정(뿌리에 공생하는 세균이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질소화합물을 생산하는 일)을 행하기 때문에, 나무콩은 산간 지역에서 토양침식에 의해 방기된 경작지의 회북에도 이용되고 있다. 나무콩의 육종은 인도의 안드라 프라데시주에 있는 국제반건조열대작물연구소(International Crops Reserch Institude for the Semi-Arid Tropics, 약칭 ICRISAT) 및 우타르 프라데시주에 있는 인도 국립콩류연구소(Indian Institude for Pulses Research, 약칭 IIPR)에서 주로행하고 있다. 파종 시기는 6월 무렵이고, 수확은 만생인 것은 이듬해 2월 무렵이기 때문에, 생육 기간에 여러 차례 가뭄 피해를 입을 위험성이 높고, 가문 환경에서 수확량의 확보가 하나의 큰 육종 목표가 된다. 이를 위해 생육 기간이 짧고, 가뭄 피해의 위험성을 회피할 수 있는 조생 품종이 권장되고 있다. 또한 2-3미터에 달하는 것도있는 대형 식물체는 알곡의 수확을 어렵게 만들고, 식용 부위가 아닌 줄기와 잎에 많은 광합성 산물을 분배하는 점은 대조적으로 알곡 수확량을 감소시키는 일이 되기에, 키가 작은 왜성 품종의 육성이 목표가 되고 있다. 나무콩은 특정 교배조합으로 교배 부모보다도 왕성한 생장을 나타내는 잡종강세라는 성질을 지닌 것이 발견되어, ICRISAT에서는 이 성질을 이용한 내병성과 수확량의 개선에 대한 연구를 행하고 있다.


병아리콩(학명 Cicer arietinum L.)(그림 4-3)은 세계의 1200만 헥타르의 토지에서 재배되며, 연간 970만 톤의알곡을 수확하고(FAO 2007), 세계의 3대 콩과 식용작물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최근의 발견에 의하면, 병아리콩의 야생 선조종은 시리아 북서 지역에서 기원전 1만 년 후반 무렵에 존재했다고 생각된다. 인도가 주요 생산국이며, 세계 생산의 65%(재배면적, 수확량 기반 함께)를 재배하고 있다. 병아리콩의 힌디어 이름인 그람gram이콩류의 총칭으로 쓰이고 있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병아리콩은 단순히 단백질원만이 아니라 인도의 채식주의자에게 가장 중요한 콩이라 여겨진다. 인도의 고대 문헌에는 기원전 800년 무렵에 병아리콩에 관한 기술이 나타나고, 서기 3-8세기 무렵에는 현재와 같이 인도에서 널리 먹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병아리콩은 알곡을 달로 먹는 외에도, 미숙 종자를 날것으로 채소 스낵으로 먹는 일도 일반적이다. 필자의 인도 체재중에도 밑동부터 뽑은 병아리콩 식물체의 단이 포장마차에서 팔리고 있으며, 사람들이 그 단을 한손에 들고 걸어가면서 꼬투리에서 아직 푸른 알곡을 까서 먹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또한 알곡을 가루로 갈아서 그것을 튀김(파코라)의 옷이나 과자의 재료로 이용하는 일도 일반적이다. 필자는 병아리콩의 '유바'를 먹은 적도 있다. 또한 일본의 숙주나물처럼 물을 주어 뿌리가 난 종자에 향신료를 끼얹어 샐러드처럼 먹는 일도 일반적이다. 병아리콩의 육종은 ICRISAT 및IIPR에서 행하고 있다. 파종 시기는 10월-11월 상순 무렵이고, 수확은 만생인 것은 이듬해 2월 무렵이다. 이 병아리콩의 생육 시기는 남인도 내륙부에서는 건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생육 기간에는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비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 병아리콩은 관개설비가 없는 영세한 농가에서 재배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밭에서는 병아리콩의 수확량에 가장 영향을 주는 개화기 무렵에 토양이 말라 버려서 수확량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일이많다. 그 때문에 가문 환경에서 수확량을 확보하는 것이 병아리콩 육종의 한 가지 큰 과제가 되며, 생육기간이 짧고 가뭄 피해의 위험성을 회피할 수 있는 조생 품종이 권장되고 있다. 또한 인도에서는 100알 무게가 25그램 정도이고, 종피색이 진갈색인 '데시'라고 부르는 병아리콩 계통이 일반적으로 재배되고 먹어 왔는데, 최근에는 100알 무게가 50그램으로 대형이고 종피색이 유백색인 '카브리'(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주변에서 분화된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음)라고 부르는 계통의 밝은 겉모습과 식감, 맛이 인도인들에게 호감을 얻어 인기이다. ICRISAT와 IIPR에서는 인도 사람들의 요망에 부응하도록 카브리 계통의 병아리콩 수확량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그 가뭄 저항성과 병해 저항성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를 행하고 있다.



그림4-3 병아리콩. 범종 모양의 꼬투리에 알곡이 들어 있다.





녹두(학명 Vigna radiata)는 인도 아대륙의 히말라야 남부, 고츠 산지의 주변에서 기원했다고 생각된다. 고대 인도의 문헌(서기 75-300년)에는 녹두(또는 검은녹두)의 야생종이 약으로 이용되거나, 식용으로 제공되었다는 기록이 확인되어,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재배되고 이용되었던 것을 엿불 수 있다(前田 1987). 오늘날 인도에서도 녹두는 형태가 매우 닮은 검은녹두(학명 Vigna mungo L.)와 일반에서는 엄밀히 구별되지 않고, 일상적으로 널리이용되고 있는 것 같다. 달로 먹거나, 요리용 콩가루로 이용된다. 도사라는 남인도에서 일반적인 간편식은 녹두(또는 검은녹두)를 간 가루와 콩가루, 밀가루를 섞은 가루를 이용해 만든다. 또한, 병아리콩처럼 뿌리를 낸 녹두에향신료를 묻혀서 먹는 일도 일반적이다. 녹두나 검은녹두의 육종은 주로 IIPR에서 행하고 있다. 파종 시기는 10월 무렵이고, 수확은 만생인 경우 이듬해 2월 무렵이다. 또, 2월에 파종하여 6월에 수확하는 재배 체계도 있다. 수확량이 낮고, 100알 무게도 3-4그램 정도로 작은 녹두나 검은녹두는 인도에서는 나무콩과 병아리콩에 비교하여 육종에는 힘을 쏟지 않는다. IIPR에서는 주로 내병성의 개선을 중심으로 수확량 개선의 연구가 행해지고 있다. 


땅콩(학명 Arachis hypogaea L.)은 세계 2300만 헥타르의 토지에서 재배되며, 연간 3700만 톤의 껍질 땅콩을 수확한다(FAO 2007). rㅣ원지는 남미의 아르헨티나 북서부부터 볼리비아 남부라고 생각되며, 콜럼버스의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로 퍼졌다. 아시아에서는 포르투갈 사람이 15세기 말에 인도네시아로, 스페인 사람이 16세기 초쯤에 필리핀에도 가져왔다. 인도에는 그뒤 18세기 무렵에 전해져, 19세기부터 재배가 본격화되었다. 인도에서는 주로 착유용으로 재배되며, 인도의 식용유 시장 가운데 대략 25%를 차지한다고 이야기된다. 그 때문에 땅콩은 식용 콩과작물의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IIPR의 연구대상 작물이 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제약용 등 직접적 식용 수요도 늘어나고 있어, ICRISAT에서는 제약용 대립 품종에 대하여 연구를 행해 몇 가지 유망 품종이 육성되고 있다. 


과르(학명 Cyamopsis tetragonoloba)는 인도가 기원지라고 생각되는데, 그 야생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남인도에서는 미숙한 푸른 꼬투리를 잘게 썰어 다른 채소와 함께 볶고 향신료로 맛을 내 먹는 일이 많으며, 말린 알곡을 식재료로 이용하는 일은 없는 듯하다. 과르는 배유에 포함된 갈락토만난이란 매우 점착성 강한 고분자물질이 식용만이 아니라 의료용, 공업용 검이나 증점제, 안정제로 널리 이용될 수 있기에, 식용작물이라기보다 오히려 공예작물로 이용하는 일이 많다.


인도에서는 이들 외에도 강낭콩(중미 기원), 완두콩(남서아시아 기원), 동부(아프리카 기원), 렌즈콩(남서아시아원산), 말콩(인도 아대륙 기원), 그라스콩(남서아시아 원산) 등 일본에서는 낯선 다종다양한 콩도 식용으로 재배하여 먹고 있다. 무역과 전쟁에 의하여 이동한 사람들을 통하여 아프리카나 서아시아에서 인도 아대륙으로도 가져온 외래 콩류도, 다양한 기후를 포함한 인도 아대륙 안에서 비교적 쉽게 자신의 생존 장소를 찾아내고, 그리고 때로는 사람들의 농경 체계 안에서 더욱 적응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속한 습윤한 동아시아에서는 건조함을 좋아하는 종류의 콩은 생존 적지를 찾아내기가 어려워 일본에는 도달했지만 재배에는 이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병아리콩의 재배 시험을 일본에서 행했는데, 노지 재배에서는 곰팡이 병해에 의한 피해가 막대하여 알곡 수확은 매우 낮았다.


일본에서 일반적인 대두에 대해서 보면, 인도에서의 재배면적은 890만 헥타르, 알곡 수확으로는 1100만 톤으로각각 세계 생산의 10%, 5%를 차지한다. 이것은 각각 일본의 64배, 48배의 양에 상당한다. 동아시아 원산인 대두가 인도에 전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인 18세기 또는 19세기 초두 무렵인데, 인도의 사람들에게는 대두 특유의 '아린맛'이 좋아하지 않는 느낌이었는지 식용으로가 아니라 착유용으로 발전시켜 왔다. 요즘은 채식주의 사람들 사이에서 '100% 채식주의자의 우유'로 대두 두유나 '100% 채식주의자의 요구르트'로 두부가 주목되기 시작한 것 같다. 필자가 체재학 ㅗ있던 남인도 마을의 슈퍼마켓에서도 2007년 무렵부터 종이팩 두유나 방수종이팩에 밀폐된 두부를 발견하게 되었다. 똑같은 콩이라도 인도와 일본에서는 좋아하는 풍미와 맛이 달라 이용법이 크게 다르게 발전해 온 건 재밌는 점이라 생각한다. 




콩이 가진 의미, 콩과 신앙 제사


기원전 2000년 무렵에 성립되었다고 하는 베다라고 부르는 여러 가지 고대 인도의 문헌에는 기원전 1200년쯤부터 콩 섭취에 관한 기술이 확인된다. 이것으로부터 인도에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콩을 먹었다는 것이 확실한 듯하다. 그러나 고대(기원전 300년부터 기원후 75년 무렵)의 인도에서는 콩은 가난한 사람들의 식사라고 이야기하며, 소화가 안 되는 먹을거리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몇 가지 콩이 포함한 유독성분에 대해서도 당시부터 알려져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의 인도 사람들에게는 다종다양한 콩은 각각 익숙한 식재료이며, 특히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란 업신여기는 감정은 없는 것 같다. 필자가 체재한 남인도에서는 나바단야Navadhanya라는 단어가 있었다. 이것은 인도의 고전인 산스크리스트어로 나바는 9를 의미하고 단야는 알곡(종자)를 의미한다. 이단어는 적어도 남인도에서는 일반적이고, 안드라 프라데시주의 공용어인 텔루구어에서는 나바단야물루Navadhanyamulu라고 부르고 있었고, 이웃인 타밀나두주에서는 나바단얌Navadhanyam이라 부르고 있었다. 나바단야의 아홉 종류의 알곡이란 벼, 밀, 참깨, 병아리콩, 비둘기콩, 검은녹두, 녹두, 말콩, 동부이다. 지역에 따라서 여기에 나무콩이 대신 들어가기도 한다. 어느쪽이든 아홉 가지 알곡 가운데 여섯 가지가 콩과의 작물이며, 이들의 알곡 사이에 순위 매김은 없고, 모두 동등하고 성스러운 아이템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남인도에서는 이들 작물은 모든 것이 친근하며 중요한 식량이란 것에 더하여, 사람들은 식물의 종자가 가진 '발아(발근)'이란 식물에 독특한 현상을 성장과 재생을 상징하는 현상으로 매우 신성시하기 때문이다. 안드라 프라데시주의 결혼식에서는 2주 정도나 이어지는 결혼식 기간 가운데 나바단야를 매우 아릅답게 장식한 항아리에 보존하여 싹을 틔우고, 식이 끝나면그것을 길흉을 가리는 먹을거리로 신랑신부에게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또한 나바단야는 집의 기공식에서 기초를만드는 장소에 뿌려서 무사히 완공됨과 가족의 행복을 빌거나, 큰 제사 등에서 공동체 구성원(이웃이나 마을사람 등)의 행복을 기념하여 나누어준다. 이처럼 경사스런 자리에서 남인도에서는 주식이 되는 벼과의 작물과 함께 콩과작물에도 풍양과 번영의 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일본에서도 오곡에는 콩이 포함되며, 태고부터 콩은 친근하고 중요한 식량이며, 대두나 팥에 대해서는 각각의 '알곡 그것'에서 일종의 신성한 힘을 발견하고 특정 의식이나 경사스런 자라에서 사용해 왔다. 이에 반하여 인도에서는 그들의 먹을거리를 지탱하는 모든 작물의 '종자 발아'에 신성함을 발견하고 있는 것은 재미있는 점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재배되고 있는 콩의 종류와 콩을 둘러싼 문화는 인도 아대륙과 일본에서 꼭 동일하지는 않다. 그리고 이것에 두 지역에 특유의 기후와 지리적 요인이 어떻게 영향을 주어 왔는지를 앞으로 더욱 연구·고찰해 가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분야라고 느낀다. 






Ⅰ-2 일본 선사시대의 콩류와 재배화(야마다 고로우)



들어가며


현재 일본에서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재배 콩류는 10종류 정도인데, 그 가운데 동아시아에 기원지를 가진 것은 대두(Glycine max)와 팥(Vigna angularis var. angularis), 녹두(Vigna radiata)이다. 고고학 유적에서 출토된 조몬시대-중세의 콩이라 생각되는 것은 대두와 팥, 동부(Vigna unguiculata), 녹두에 한정되고, 그밖의 콩은 근세 말 이후에 일본에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동부는 아프리카 기원이고, 고대(9세기) 이후에 녹두는 인도 중북부 기원이고, 중세(14세기) 이후에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은 점으로부터, 조몬시대-고분시대의 재배 콩은 대두와 팥만고려하면 좋다. 이 두 종은 일본 열도에서도 야생종이 자생하고 있는 점으로부터, 유적에서 출토된 콩류에는 야생종인 돌콩(Glycine soja)과 새팥(Vigna angularis var. nipponensis)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들을 구별하는 일은 일본 열도에서의 재배화 또는 재배종의 유입 시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얻은 고민족식물학 조사의 성과는 이 두 종의 콩이 일본에서 조몬시대에 재배화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이들 콩이 야요이 시대에 대륙에서 조선반도를 통하여 유입되어 왔다는 지금까지의 통설을 부정하는 것으로, 새로운 견해라 할 수 있다. 




유적에서 출토되는 콩류와 동정법


(1) 조몬-야요이 시대의 콩류


유적 출토의 콩류는 탄화되지 않은 종자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매우 출토량이 한정되어 있다. 특히 대두에 관해서는 야요이 시대가 되면 약간 출토 사례가 늘어나지만, 조몬 시대의 탄화 자료는 세 유적으로 매우 적다. 그 대부분이 최근 조사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토기 압흔 자료이다. 현재, 토기 압흔 자료는 16개 유적 사례가 알려져 있다. 조몬 시대의 대두속(재배·야생종을 포함) 종자는 야마나시현의 전기 사례(약 6000년 전)를 처음으로,칸토우 지방과 큐슈 지방의 조몬 시대 후·만기에 집중되어 있다. 현황으로는 이 야마나시현이 북쪽 한계라고 할수 있다. 


이에 반하여 팥 및 그 선조종인 새팥(팥 아속 종자)은 조몬 조기부터 출현하여, 조몬 전기에는 주거터 등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일이 증가하는 경향이며, 이 시기 사람과의 관련이 밀접해졌음이 예상된다. 조몬 전·중기에는 동·동북 일본에 주로 분포되어 있는데, 야요이 시대에는 북부 큐슈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으로 이동한다. 탄화 종자가 대부분(34개 유적)인데, 토기 압흔 자료도 요즘 증가하는 경향이며, 현재 7개 유적 사례가 알려져 있다(그림4-4).


그림4-4 구마모토시 카미나베上南部 유적에서 출토된 팥 압흔(조몬 후기 말). 길이가 6mm 이상이며, 배꼽의 특징에서 재배 팥이라 생각된다.




(2) 콩류의 동정법


탄화된 종자는 콩과에 한정되지 않고 동정이 매우 어렵다. 그 단서는 꼬투리의 주병珠柄에 붙은 부분인 배꼽의 형태와 크기, 위치가 결정적 근거가 된다. 이외에 떡잎의 사이에 있는 첫잎과 어린뿌리의 형태와 그 위치도 종의 동정에 참고가 된다. 배꼽의 형태는 대두속과 그밖의 속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 대두속이 두툼한 막(epihilum)을 가지지 않는 '노출 유형'인 데 반해, 다른 속은 두툼한 막이 배꼽의 위를 덮어 배꼽 자체가 우묵하게 들어간 '후막 유형'이다. 이 노출 유형의 배꼽은 예전부터 '와쿠도이시ワクド石 유형 압흔'이라 불렸던 종을 알 수 없는 종자 압흔과 똑같은 형태이며, 이것이 대두속 종자의 배꼽이란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그림4-5, 그림4-6). 또한 '후막 유형'의 배꼽의 우묵함은 떡잎 측면에도 미치고 있어, 팥과 녹두를 그 우묵함의 위치로부터 동정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림4-5 돗파라시鳥原市 오노하라大野原 유적에서 출토된 대두 압흔 '쿠마다이'(조몬 후기 중엽)




 그림4-6 구마모토시 카미나베에서 출토된 와쿠도이시 대두 압흔(조몬 후기 말). 예전에는 무언가의 종자라고 생각해 왔는데, 타원형을 나타내고 한가운데에 한 줄의 가는 골이 있다(길이 4.6mm, 너비 1.8mm). 이것은 위 그림의 조만 대두 '쿠마다이'의 배꼽과 완전히 똑같은 크기와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대두의 배꼽인 것이 판명되었다.



탄화 종자와 토기 압흥 종자는 고고학 자료이기 때문에, 반드시 변형이 된다. 탄화 종자는 불에 타서 전체가 축소되고, 그 비율은 길이(긴 축)와 너비(짧은 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길이의 경우 10-20% 축소되고, 너비는 10% 정도 축소된다. 또한 종자 압흔도 토기 내부의 수분을 머금어 확장되고, 토기의 건조·소성에 의한 축소라는 복잡한 변형 과정을 지난 것이다. 게다가 이 수분에 의한 팽창도 콩의 종류에 따라서 길이와 너비의 변형 비율이 다르고, 대두는 길이가 너비에 비하여 20% 정도 확장되는 경향이 있어 다른 종의 콩 종자와 차이를 보인다. 


재배화의 징후인 종자의 대형화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재배종이나 야생종과 비교하기 위해 '탄화'나 '토기압흔' 등의 자료의 질을 넘어서 콩 종자 자체의 형태와 크기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 위에 적은 변형률은 그 복원에 매우 중요한 지수이다.




종자에서 보는 재배의 흔적


인간에 의한 식량 생산 때문에 식물에 관여하는 행위를 'Cultivation(재배 행위)'이라 하고, 그에 대응한 식물 쪽의 유전적 변화를 'Domestication(재배화)'라고 한다. 또한 이 재배화에 의하여 식물에게 나타나는 성질과 형질은'재배화 징후군(Domestication syndromes)'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내용은 식물별로 다르지만, 주가 되는 건 아래와 같은 종류가 있다.


① Elimination or reduction of natural seed dispersal(종자의 자연 산포의 상실 또는 감소)

② Loss of seed dormancy(휴면성의 상실)

③ Increasing of seed size(종자의 비대화)


①은 벼과 종자의 경우 종자가 이삭축에서 떨어지기 어려운 성질(non-shattering)이며, 콩과 종자의 경우 꼬투리가 자연적으로 터지지 않는 성질이다. 그러나 이 징후는 대부분은 고고학적 자료에서는 눈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며, 녹두와 나무콩에서는 꼬투리가 자연적으로 터지는 경우가 있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이와 같은 특징을 보이는 꼬투리 자체가 유적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결점이 있다. ②의 '휴면성의 상실'은 종피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으며, 종피의 두께가 감소하면 재배화의 단서가 되지만, 토기 압흔 종자에서는 계측할 수 없고, 탄화 종자의 경우에도 종피는 매우 남아 있기 어렵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③의 '종자의 비대화'만이 고고학적으로 볼 수 있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조몬시대 대두는 편평한 형상이 특징적이고, 조몬시대 중기(약 5000년 전)에는 선조종인 돌콩의 크기를 넘는다. 게다가 이와 같은 형태의 대두는 중국과 조선반도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황하 중하류 지역의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대두와 조선반도의 청동기 시대 대두, 그리고 야요이 시대의 대두도 형태적으로 다르다(그림4-7). 이것은 북위 30-40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대두의 재배화가 발생하고, 그 기원지의 하나가 일본 열도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팥 모양 종자의 경우도 대략 동시기에 종자의 비대화가 발견된다. 


그림4-7 동아시아의 대두 크기 비교 그래프(小畑 2008c에서). 중국, 한국, 일본의 대두속 종자(점 표시)의 크기와 현생 대두와 돌콩(원)의 크기(위:길이와 너비, 아래:길이와 두께)를 표시한 것이다. 이에 의하면 조몬 대두 쿠마다이는 매우 얇은 것, 중국의 대두는 매우 소형인 것, 야요이 대두와 한국 청동기 대두는 모두 타원형의 형태를가지고, 각각 형태적 특징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조몬시대에 일어난 콩류 재배화의 과정


종의 유전적·형태적 변이를 야기하는 재배식물에 작용한 선택에는 자연선택과 인위적 선택 두 가지가 있으며, 후자는 종자를 선택해 심는 등의 행위에 의하여 가져오게 된 '방법적 선택'과 행위에 의하여 의도하는 방향과는 관계 없이 선택이 작용하는 '무의식적 선택'이 있다. 재배식물의 성립에 관한 선택의 주역은 '무의식적 선택'이라생각되고 있다. 


최근의 유전자 연구에 기반한 농학과 식물학적 연구는 팥과 대두에 재배형과 야생형의 중간형(잡초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다. 교란 환경에서 발아한 이팥은 생육 초기는 풀 모양이지만, 나중에 환경이 덤불로 변화하면 덩굴성으로 성장형을 변화시킨다. 이것은 재배형이 단기에 종자에 영양을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는 데 반해, 환경의변화에 따라 덩굴에 영양을 보내 장기간에 걸쳐서 종자를 생산한다는 전략으로 변화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와 같은 중간형의 존재는 인간의 기호성에 기인한 선택적인 종자의 보존과 파종 행위라는 농경의 개념과는 다르며, 그와 같은 의도적 행위가 없어도 일단 교란 환경이 발생하고, 그 환경 안에서 선택적으로 사람에 의하여 채집이 계속된다면 재배화(종자의 비대화·탈립성의 상실)은 일어날 수 있다는 설의 근거가 된다. 이것은 말하자면 무의식적 선택에 의한 재배화의 발생론이다.


그러나 최근의 고민족식물학의 연구에 의하면, 재배화는 오히려 인위적인 종자의 선택·파종에 의하여 진행되었다고 생각된다. 콩류의 자연적인 꼬투리 터짐 성질의 상실에는 수확법이 크게 관련되어 있다. 수확을 위해, 꼬투리를 따거나, 뿌리채 뽑는 행위는 꼬투리가 터지지 않는 성질의 개체(유전자)가 높은 비율로 회수되는 일로 이어져, 그들을 저장하여 다음해에 심는 행위는 야생의 꼬투리 터짐 성질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들 행위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선택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러나 종자의 배대화에는 가공작업에 의한 선택(체질, 키질),경작에 의한 경합종의 배제(쟁기에 의한 깊이갈이, 경작지의 조성·야생종과의 격리), 파종에 의한 발아의 촉진 등의 행위가 크게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것은 이미 방법적 선택이다.


이와 같은 종자의 휴면성과 꼬투리 터짐성의 결여라는 재배화의 특징은 이론적으로는 자연돌연변이율 10^-5 - 10^-6 정도의 변이가 있다면, 파종과 수확이란 반복에서 십 몇 대-20세대의 안에 집단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실험적으로 벼과 종자를 새로운 토지에 파종하고, 야생종에서 분리하여 낫을 사용해 익은 종자를 수확하면, 비탈립성의 유전자형은 20-100년 만에 집단 안에서 우점한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실제의 고고학적인 증거에서 보면, 그 진화의 과정은 매우 더딘 것을 알 수 있다. 서남아시아의 맥류와 중국 남부의 벼에서는 먼저 종자의 비대화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비탈립성 이삭축이 증가했다. 그리고 탄화 종자의 관찰에 의하면, 초기 종자의 비대화는 재배 행위의 최초 몇 세기(500-1000년 동안)에 발생하는데, 비탈립성의 성립은 1000-2000년 정도가 결린다는 것이 증명된다. 콩류의 경우 꼬투리 터짐성의 상실은 고고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종자 비대화에 관해서는 남인도에 있는 녹두의 경우 최초의 재배 행위에서 1000-2000년 늦은 기원전 2000년대 말부터 기원전 1000년대의 철기시대 개시 이후라고 한다. 이것은 경작법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으며, 쟁기에 의한 깊이갈이의 개시와 함께 종자는 비대화한다고 한다. 또한, 근동의 렌즈콩과 완두의 경우도 종자의 비대화는 쟁기가출현하는 청동기시대 후기 이후이며, 재배 행위의 개시로부터 3000-4000년 늦는다. 이와 같은 비대화 이전의 단게는 완전한 재배화에 이르지 않는(재배화 증후군이 나타나지 않는) 재배 행위(Pre-domestication cultivation) 단계라고 개념화된다. 즉 유적에서 출토된 종자 샘플 가운데 경지 잡초의 종자가 존재함(재배는 행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자의 크기와 이삭축의 형상은 야생종과 다르지 않은 단게이다. 이 단계의 경작 행위에서는 돌낫 등의 수확도구와 돌절구 등의 가공도구라는 고고학적 자료는 연동되지 않으며, 이들 유물을 가지고 경작 행위의 유무를 의론할 수 없다는 것에는 주의를 요한다.


조몬시대의 대두와 팥의 경우, 종자의 비대화는 중기에는 확인할 수 있는 점으로부터 이 이전에 이미 의도적인 경작 행위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몬 대두 '쿠마다이'는 지금까지 유전학에서 상정되었던 일본 기원의 대두의 존재를 고고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팥에 관해서는 조선반도에서 확실하게 출현한 시기가 청동기시대 후기(기원전 1000년대 후반)이며, 중국의 황하와 장강 유역에서는 전한부터 출현하기 때문에, 그 기원지로서 조선반도 혹은 일본 열도 두 곳의 후보지가 상정되어 왔다. 그러나 중국의 실제 오랜 재배 팥은 황하 하류 지역인 산둥 룽산문화(기원전 2600-기원전 1900년)의 양성진兩城鎭 유적에서 2점 출토되어, 우리나라보다 2000년 정도 연대적으로 새롭다. 또한 유전학의 연구에 의하면, 팥의 재배는 조엽수림 동부부터 온대로 퍼졌던 새팥 가운데 극동의 집단에서 재배화되었다고 상정되어, 그중에서도 유전학 및 고고학적 자료로부터 일본이 그 후보지로 좁혀지고 있다. 최근의 야마나시현을 중심으로 한 토기 압흔 자료의 발견은 이 설을 강하게 지지하는 순풍이 되고 있다. 


이상으로부터, 선사시대의 극동 지역에서 일어난 대두와 팥의 재배화 기원지의 한 곳이 일본 열도였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다. 앞에 기술한 고민족식물학의 이론적 진화는 그 재배화 시기의 소급, 즉 종자의 비대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이전에 이미 재배 행위가 개시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종자만이 아니라, 경작 잡초 등의 검출에 노력해 이 Pre-domestication cultivation의 단계가 조몬 전기 이전에 존재했단 점, 그리고 그것이 어디까지 소급되는지를 고민족식물학적 방법에 의하여 입증, 추궁할 필요가 있다.








Ⅱ 계절풍 아시아 도서부의 잡곡

-카노 타다오鹿野忠雄 <인도네시아의 잡곡>(1946) 재고-

(타케이 미에코)




시작하며


벼과 곡류를 둘러싼 농경을 이야기할 때, 먼저 관심의 중심이 되는 것은 벼와 밀, 보리, 옥수수 같은 현대의 주요곡류이다. 그 이외의 곡류는 뭉뚱그려 잡곡이라 총칭하고, 오늘날 세계의 식량 생산의 관점에서는 이제는 거의 돌아보는 일이 없지만, 각지의 농경 체계와 식생활에서 저마다 특색 있는 역사를 새겨 왔다. 이 글에서는 작물로서 주변부에 위치한 잡곡을 주제로, 지리적으로는 유라시아 동쪽 끝에 있는 게절풍 아시아 도서부부터 다루려고 한다. 


그림4-8 이 글에서 검증하는 카노(1948)의 '인도네시아에서 곡류의 동방 분포 한계선 약도'




'인도네시아의 곡류 동방 분포 한계 약도'(이후 '곡류 분포약도'라고 약칭)라고 이름을 붙인 그것은, 이 지역의 농경과 재배 식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이 그림은 카노 타다오(1906-1945)의 <인도네시아의 곡류 -특히 벼, 조 경작의 선후 문제->라는 제목이 붙은 논문 안에서 인도네시아(동남아시아 도서부)에서 벼의 재배에 앞서는 곡류가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었는지를 밝힐 수 있도록 조, 수수, 피, 기장, 향모, 염주 여섯 종의 잡곡 분포를 그린 것이다. 섬들 사이를 등고선처럼 그려 놓은 분포한계선은,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곡류는 무엇인지, 그 분포로부터 어떤 역사를 간파할 수 있는지 상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적어도 이 지역의 농경과 작물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딘지 기묘하게 느껴지는 바가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민족학자 내지 언어학자의 문헌을 일단 도외시하고' '곡류의 분포와 현지 이름을 식물학자의 저서 논문'에 구하여 그렸다는 점에서, 식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사카모토阪本, 사사키佐々木, 이시게石毛 등에 의하여 인용되어 왔는데, 사사키 타카아키佐々木高明 씨와 이시게 나오미치石毛直道 씨는 피의 분포를 나타내는 선에 대해 의문을 표명하고 있다.


필자도 이 그림의 의의를 인정하지만, 위화감을 가져 온 한 사람이다. 그뒤 인도네시아와 대만에서 잡곡의 조사를 행하게 되어 이들 지역의 식물지를 대충 훑어 보거나, 식물의 표본을 접하거나 하면서 점점 이 분포도에 대한 흥미와 의문은 깊어져만 갔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섬들의 잡곡에는 어떤 종이 포함되고, 각각 어떠한 분포 지역을 가지는지, 이것을 한번 밝혀 보자는 것이 이 글의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방법으로는 카노가 의거했다고 생각되는 문헌으로 소급하여 인용의 타당성을 확인함과 함께, 그외의 현장 자료와 문헌, 식물 표본자료에 의한 정보를 보완하기로 한다.




일본의 잡곡

 

우선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도서부에서 재배되어 온 잡곡은 어떠한 것인지, 그 소개를 겸하여 일본의 잡곡 종류와 분포를 기술하겠다. 일본은 카노 논문의 대상 지역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그 지역에 인접하며 또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도서부, 곧 일본,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재배되어 온 잡곡은 표4-1에 든 7종이다. 일본에서는 이 가운데 타이완 산고량을 제외한 6종이 재배되고 있다.



일본 이름

학명

염색체 수

지리적 기원

*조

Setaria (L.) P. Beauv.

2n=18(2X)

중앙아시아-인도, 중국

일본 피

Echinochloa esculenta (A.Braun)H.Scholz

2n=54(6X)

동아시아

*기장

Panicum miliaceum L.

2n=36(4X)

중앙아시아-인도

*수수

Sorghum bicolor Moench

2n=20(2X)

아프리카

향모

Eleusine coracana Gaertn.

2n=36(4X)

동아프리카

*율무

Coix lacryma-jobi var. ma-yuen(Roman.) Stapf.

2n=40(2X)

동남아시아

타이완 산고량

Spodiopogon formosanus Rendle

2n=40

타이완

표4-1 동아시아·동남아시아의 재배 잡곡 이름, 염색체 수와 지리적 기원




조는 일본에서 가장 재배량이 많았던 잡곡으로, 홋카이도부터 남세이南西 제도에 이르기까지 널리 재배되어 왔다.일본의 재래 조에는 대부분의 생리학적, 유전학적 형질의 변이가 알려져, 이들 변이의 분포로부터 조가 일본으로전파된 경로가 몇 가지였음이 시사된다. 


피도 또한 조와 함께 옛날부터 화전에서 재배되어, 벼를 대신하는 주곡이 되어 왔던 잡곡이다. 피의 재배 지역도 넓어, 홋카이도의 아이누에서도 주요한 재배 곡류가 되는 등 동북일본에서 재배가 성행했는데, 큐슈보다도 남쪽의 난세이 제도에서는 재배된 적이 없었다. 더구나 재배 피에는 이 종 이외에 인도에서 재배화되었던 별종인 인도피(E. frumentacea Link)도 있는 점으로부터 그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일본 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장은 조와 아울러 유라시아의 동서에서 옛날부터 재배의 역사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조보다도 생육기간이 짧다. 조와 피처럼 화전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는 곡류는 아니었지만, 찰 품종의 재배가 많고 쌀밥에 섞거나, 떡을 했을때 식감과 선명한 황색을 즐긴다. 재배 지역은 홋카이도부터 난세이 제도에 달한다. 기장은 북쪽에서 전파된 경로의 가능성이 시사된다.


수수와 향모는 아프리카에 기원을 가진다. 수수는 조와 마찬가지로 일본 국내에 널리 분포하고, 찰 품종이 당고 등으로 이용된다. 향모의 재배지는 혼슈의 중부 지방 산간부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외에는 북칸토, 킨기, 시코쿠,큐슈의 일부에 겨우 점재한다.


율무는 동남아시아 원산으로, 동남아시아에서 널리 식용으로 이용되는데,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약용식물로 알려져 식용으로 이용하게 되었던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율무의 선조 야생종인 염주는 야생화하여 광범위하게 자생하며, 종자가 목걸이 등으로 이용되어 왔다.


난세이 제도는 여름작물 곡류가 겨울작물의 재배력으로 재배되는 등 큐슈 이북과는 다른 농경 문화의 특색을 가지고 있으며, 조와 기장, 수수의 세 종만이 재배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조의 중요성이 높고, 미야코宮古·야에야마八重山 제도에서는 조에 관한 농경 의례가 행해져 왔다. 의례에 빠지지 않는 먹을거리로 차조로는 떡과 비슷한 먹을거리를 만들고, 메조로는 조의 제주를 빚었다.




타이완의 잡곡


카노는 '곡류 분포 약도'를 작성하면서 '식물학자의 원저 논문이나 저서'에서 그 분포와 현지 이름을 구했다고 하지만, 타이완에 관한 1차 자료는 카노 자신에 의하여 수집된 것인 듯하다. 6종의 학명 뒤에 민족별 호칭(현지 이름)이 로마자로 표시되어, 이 현지 이름의 존재로부터 타이완에는 6종 모두가 어디인지의 민족에 의하여 재배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타이완의 선주민족에게 조가 벼보다 높은 중요성을 가진 것은 2차대전 이전의 각종 보고서에도 반복해 기술되어 있으며, 북부에서는 조와 기장, 중부와 남부에서는 조와 피가 농경 의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28년부터 1939년에 걸쳐서 타이완에서 식물 조사와 농업 지도를 행했던 세가와 코키치瀬川孝吉(1906-1998)는 타이완에서 피의 재배는 없고, 이들 보고에 등장하는 피는 향모가 틀림없다고 하는 판단을 보이고 있다. 루카이족의 화전 조사를 행한 사사키 타카아키 씨도 보고서에서 '피'의 취급에는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피와 향모를 다른 작물로 취급하고 있는 보고도 있고, 일괄적으로 이 두 종이 혼동되었다고도 단언할 수 없다. 


필자도 1980년대에 타이완을 처음으로 방문한 이래, 보고서에 있는 피의 기술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향모에 대하여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있었지만 이미 재배를 볼 수 없을 만큼 쇠퇴해 있으며, 피에 대한 정보를 얻는 건 더욱 어려웠다. 그런데 2007년에 타이완 남부 산지를 방문했을 때,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미지의 잡곡과 조우하고 경악하게 된다. 귀국한 뒤, 그 식물은 산고량속의 타이완 산고량(Spodiopogon formosanus Rendl.)이라는 타이완 고유의 식물임이 밝혀졌다(그림4-9). 이 종은 잡곡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아 왔던 식물인데, 1904년에 새로운종으로 기재되었을 때 이미 '원주민이 재배하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그림4-9 타이완 산고량의 이삭. 타이완 핑둥현屏東 우타이향霧台郷




타이완 산고량이란 새로운 잡곡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 일로, 타이완에서 '피'에 관한 기술의 의혹이 풀려 나아갔다. 타이완 산고량을 현재도 재배하고 있는 루카이족, 파이완족의 호칭이 일찍이 일본어 '피'에 대한 현지어로 수집되어 왔던 단어와 일치했던 것이다. 카노가 '피'의 현지 이름으로 들고 있는 단어 가운데, 쩌우족과 파이완족의호칭은 타이완 산고량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뒤, 부눙족과 쩌우족 사람들에게도 실물 표본을 보여주고 청취 조사를 계속해, 각지의 보고서에 '피'라고 기록되어 있던 식물이 타이완 산고량이었단 것이 거의 확실해졌다. 또한 주요한 식물 표본관 7관에 타이완산 재배 피의 표본이 1점도 없었던 점에서도 재배 피의 부재가 뒷받침되었다. 


카노가 수집한 현지 이름에는 피 이외에도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며, 곡류의 분포를 나타내는 자료로는 문제가 있지만 피 이외의 잡곡은 다른 조사자가 남긴 사진과 잎을 눌러 만든 표본이 있는 점으로부터 타이완에 존재했던 것은 의심되지 않는다. 세가와가 촬영한 사진집에는 쩌우족의 재배식물로 조와 수수, 율무, 향모의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그러나 기장이란 설명이 달린 사진 가운데 1장은 산개형 이삭을 가진 수수, 다른 한 장은 타이완 산고량이었다. 피의 부재를 갈파했던 세가와에게조차 타이완 산고량의 인지는 어려웠을 것이며, 식물 분류에 밝지 않은 조사자에 의한 잡곡의 동정은 미루어 알 만하다. 일본 통치시대의 보고서 가운데 잡곡 이름의 취급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마다 야이치島田彌市(1884-1971)와 야마다 킨지山田金治에 의한 타얄족과 파이완족의 <유용식물목록>은 식물을분류·동정하면서 학명과 현지의 호칭을 병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식물학적 자료로서 신뢰성이 높은 것이다. 야마다는 파이완족이 조와 남만 피(타이완 산고량의 어느 유형이 주어졌던 당시의 일본 이름. 현재는 분류학적으로 타이완 산고량에 통합되어 있음)을 식용으로 재배하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 시마다는 각판산角板山의 타얄족이 조와 기장, 수수를 재배하고, 화롄현花蓮의 산지에 사는 민족(부눙족이라 생각되는)이 염주(율무)를 식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조는 지금도 남부의 산지를 중심으로 재배가 행해지고 있다. 루카이족과 파이완족에서는 대부분의 품종이 보전되어 있으며, 풍년제와 결혼식 같은 경사스런 날의 식사에는 차조를 이용한 술과 대나무잎 떡이 빠지지 않는다(그림4-10). 또한 란위蘭嶼의 타오(야미)족에게서도 조는 의례에서 중요한 작물이 되며, 타이완 산지와는 다른 품종인식으로 다수의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필자는 2008년 여름에 파이완족의 풍년제를 참여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삶은 토란, 토란 가루의 대나무잎 떡과 함께 조로 만든 술, 돼지고기를 넣은 조의 대나무잎 떡, 조 당고를 넣은 조니 같은 국으로, 조를 사용한 먹을거리의 대행진이었다. 과거의 복잡한 농경 의례는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조는 지금도 경사스런 날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림4-10 풍년제의 조 술을 위해 모아 놓은 루카이족의 조. 타이완 핑둥현 우타이향



기장의 재배는 북부의 타얄족에 의하여 지금도 조금만 계속 재배되는데, 남부에는 드물다. 현재 도정한 대립의 찰기장이 식용, 주조원료용으로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수입(중국에서?)이라 생각된다. 


수수와 율무는 텃밭이나 밭 가장자리에 조금만 재배되는 듯한 모양으로 남아 있는 일이 많다. 율무는 한족 사이에서도 율무쌀로 일반적으로 식용되고 있으며, 도정한 종자를 팔 뿐만 아니라 달콤하게 익혀 차가운 디저트의 토핑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향모는 현재는 절멸에 가까운 상태라고 생각된다.


타이완 산고량은 예전에는 산지부의 거의 전역에서 재배되었는데, 현재도 재배가 남아 있는 건 남부 산지와 난터우현南投의 일부로 한정된다.  이 식물은 여러해살이이며, 조보다도 개화 결실까지의 기간이 긴 만생의 성질을 가진다. 메 품종만 있으며, 죽으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필리핀의 잡곡


 필리핀에 있는 잡곡의 소재에 대하여 카노가 의거한 것은 메릴(1876-1956)의 <필리핀 식물지(An Enumeration of Philippine Flowering Plants)>일 것이다. 여기에는 조, 수수, 율무(염주), 기장에 대한 기재가 있으며, 영어 이름과 함께 필리핀 여러 민족의 지방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조는 필리핀 전역의 여기저기에서 재배되고, 자주 특출해 있다고 한다. 수수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재배는 그만큼 많지 않다. 염주는 거의 모든 지방, 섬, 저지대부터 중간 정도 표고의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 전역에 걸쳐서 분포해 있고, 식용 율무에 대해서는 루손섬 리살, 민다나오섬 삼보앙가와 조로에서 채집되며 자주 그 낟알 때문에, 또 발효 음료 때문에 재배된다고 한다. 기장에 대해서는 필리핀에서 매우 드물게 재배되는데, 자생은 어디에도 없다 하고, 지방 이름으로 cabug을 들고 있다. 메릴은 기장의 표본이 1904년에 네다로스섬에서 채집된 일을 기재하고, 브랑코(1778-1845)가 1837년 <식물지>에서 세부섬에서 재배되는 잡곡(지방 이름 dava)를 기장이라 하는 것은 조의 잘못이라고 한다. 


카노가 '피'의 분포 근거로 인용했던 것은 돌피(Panicum crus-galli L. = 현재의 Echinochloa crus-galli L.) 항목의 지역 이름이다. 일찍이 피는 Panicum속으로 분류되어, 재배 피에 Panicum crus-galli var. frumentacea라는 학명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Panicum crus-gall을 재배 피를 표현하는 것이라 해석한 듯하다. 그러나 기재 내용을 읽으면, 이 식물이 재배 피는 아니고 잡초로 자생하는 돌피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재배 피에 대한 기술은 인도 피, 일본 피 가운데 어느쪽에 대해서도 없다. 향모의 기재도 없다. 


브라운(1884-1939)의 <필리핀의 유용식물>에는 잡곡으로서 수수와 율무의 기재밖에 없다. 수수에 대해서는 설탕을 취하는 품종, 잎을 사료로 쓰는 품종, 종자를 먹는 품종, 빗자루 매기 적합한 품종 등이 있다고 한다. 또한 염주 가운데 adlay, Ilas로 알려진 것이 식용 품종인 율무라고 하며, 구릉부에 사는 사람들에 의하여 조금만 재배되고, 먹을거리로 또 발효 음료로 이용되는 일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브랑코는 중국인이 라구나 및 팡가시난 주에서 대량으로 종자를 모아, 신체가 약한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는 평판으로 일종의 가루를 만든다고도 적고 있다.


이들 기술로부터 필리핀에서 널리 재배되어 왔던 것은 조, 수수, 율무 세 종이며, 기장은 매우 제한된 재배(1개소)밖에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카노는 이 1개소의 정보로부터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국경을 기장의 분포 경계선으로 삼았다.


그런데, 최근 복각되어 영어 번역이 간행된 17세기 스페인 통치시대의 잡곡 재배를 전하는 귀중한 기록이 있다.


아래에 인용한 것은 예수회의 선교사로 40년에 걸쳐서 필리핀에서 전도를 행한 이그나시오 프란시스코 알시나(1610-1674)에 의한 기록 <Historia de las islas e indios de Bisayas...>(1668)의 영어 번역 제7장의 일부이다. (1)-(4)는 필자가 부가했다.


(1) 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borona 또는 daw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일종의 곡류이다. 이것은 조금 작고, 색이 누르스름한데, 일종의 밀렛이다. 그들은 쌀과 마찬가지로 쓰이고, 오히려 더 빈약하고 작물을 심어도 생산성이 낮은 듯한 토지에 농사짓는다. 아무튼 이 조는 겨자의 씨보다 조금만 큰 정도로 작은 낟알이기에 대량으로 농사짓는다. 20부터 그 이상의 이삭을 매단다(macollas). 하나의 이삭에 3000개 이상의 종자를 매단다. 그 수확량은 경이적이고, 벼보다 성장이 빠르다. 벼가 잘 되는 곳에서는 벼의 경작지 가장자리를 따라서 심으며, 그곳에서 종자를 매달고 성숙하여 벼보다도 먼저 수확한다. 벼가 별로 잘 되지 않는 섬들에서는 이 borona는 일상의 주식이다. 쌀처럼 이것도 물만으로 밥을 짓고, 쌀이 없는 때 다른 어느 곡류보다도 좋은 대체물이다. 다른 섬들에서는 그것이 있는 한 최선으로 가장 보통의 먹을거리라고 간주한다. 여러 재료를 푹 끓이는 요리의 국물과 함께 끓였을 때는 특히 맛있어서, 스페인의 보리를 넣은 진한 스프 같다.


(2) borona 이외에 여기에서 재배되는 다른 곡물이 있는데, 벼에 필적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batad와 adlay, 옥수수(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일종)이다. batad는 스페인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검은 것과 붉은 것이 있다. 그러나 매우 단단하고, 가루로 만들거나 타거나 하기가 어렵다. 부드럽게 하여 먹을 수 있도록 요리하는 일조차 어렵다.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도 쌀과는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 adlay는 허연 색을 하고 있으며, 조금 길고, 약간 부드럽다. 대부분 알맹이가 없고, 별로 영양이 없다. 물론 "배고픈 데에는 나쁜 먹을거리가 없다"라는 격언처럼 아무것도 없는 때에는 배를 채우게 된다.


(4) 옥수수에 대해서는 이미 기술했듯이 외래에 기원을 가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쌀의 대체물로 이용되고 있다. 그들은 쌀과 마찬가지로 물만으로 밥을 지어 먹는다. 마치 재래의 것인 듯이 잘 자란다. 원주민들은 이 옥수수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지, 농사짓더라도 조금밖에 심지 않는다. 재배하더라도 쌀 사이에 조금씩 심는다. 옥수수는재빨리 성숙한다. 그것을 가루로 만들거나 갈아 으깨거나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아직 푸를 때 불에 굽거나 삶거나 하여 먹는 걸 즐긴다. 옥수수는 1년에 2번 수확할 수 있다. 마음에 들면 더 농사지을 수 있어, 어느 때는 1년에 3번 수확할 수도 있었다.


현대의 필리핀 식물의 지방 이름과 대조하여 (1)에서 기술되고 있는 borona는 조, (2)의 batad는 수수를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3)의 adlay는 염주의 호칭이라고 생각되는데, adlay의 주석에 "밭의 가장자리에 심고, 식용한다. 건조시켜서 큰꽃싸개를 취한다"고 하는 점으로부터 율무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기술로부터 17세기 비사야제도에서 조가 쌀이 없는 섬에서 첫 번째 곡류라고 하며, 그밖에 수수와 율무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2차대전 이후 몇 가지 인류학적 조사에서도 필리핀 제도에서 화전에 부차적으로 재배되는 식물로서 조와 수수, 율무를 들고 있다. 알시나의 보고에서는 쌀을 농사지을 수 없는 섬에서는 조가 식량으로 상당히 중요성이 높았다고 생각되는데, 밭벼의 도입 이후 이윽고 빠른 시기에 소멸해 갔을 것이다. 기장에 관해서는 그 존재가 국한되는 점에서 비교적 최근에 도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잡곡


인도네시아 잡곡의 분포에 대하여 카노가 의거한 것은 헤이네Heyne(1877-1947)의 <인도네시아 식물지>이다. 여기에는 조, 수수, 염주 및 율무의 기재와 지방 이름이 적혀 있으며, 이들 식물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스러운 점은 없다. 문제는 피의 취급으로, 카노는 여기에서도 Panicum crus-galli L.의 지방 이름을 재배 피의 지역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책에서 Panicum crus-galli는 잡초의 돌피로 기재되어 있으며, 재배 피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오크세Ochse(1892-1970)는 돌피의 항목에서 인도에서 재배되는 변종 var.frumetaceum(Panicum frumentaceum Roxb.,)로 언급하고 있지만, 이 변종은 자바에는 없다고 한다. 


기장에는 지방 이름이 없고, 플로레스섬에서 1919년 무렵에 사료작물로 시험적으로 재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도입 작물이다.


향모에 대하여 데클레르크De Clercq(1842-1906)는 수마트라섬, 자바섬, 암본섬의 말레이어 가운데 향모의 지방 이름을 들고 있다. 또한 오크세는 향모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서자바의 낮은 산지에 드물게 재배되고, 성숙하면 상당히 큰 종자를 대량으로 달고, 도정하면 조와 비슷한 낟알을 얻을 수 있다. 야자사탕과 함께 끓여서 맛이 좋은 죽을 만든다. 도정과 날려고르기에는 큰 노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헤이네를 인용하여, 수마트라섬의 바탁Batak 지방에서는 완숙하기 전에 수확하는 습관이 있고, 향모의 가루는 옥수수가루와 섞거나 또는 단독으로 죽이나 팬케이크로 먹을 수 있는 것을 언급한다.


1996년에 보고르의 식물표본관에 소장되어 있던 표본을 조사했던 바, 수수와 염주(및 율무)는 광범위하거나, 다수의 포본이 채집되어 있었다. 조는 수마트라섬, 자바섬, 보르네오섬, 플로레스섬, 티모르섬, 타님바르Tanimbar섬,할마헤라섬 등의 각지에서 채집되어 있었다. 또한 향모의 표본도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에서 채집되어 있었다. 향모는 자바섬의 보고르 주변에도 지천에 있던 작물이었던 듯하다. 기장은 타님바르섬에서 채집된 것이 1점만 있었다. 피의 표본은 없었다.


필자가 1990년대에 행했던 술라웨시섬과 그 주변의 외딴섬 살라야르섬과 무나섬에서는 조와 수수의 재배가 발견되었다. 술라웨시섬에서는 우중판당부터 토라자 고원으로 향하는 길의 구릉지 화전에서 조가 재배되고,조로 만든 과자가 토산물로 길거리에서 팔리며, 조의 이삭이 장식되어 있었다(그림4-11). 살라야르섬에서는 화전에 밭벼, 옥수수, 조, 카사바 등이 재배되고, 약간만 수수가 심어져 있었다. 조의 품종에는 찰 성질과 메 성질 양쪽이 있고, 찰 성질에 대한 기호가 강하고, 차조를 사용해 대나무 잎으로 말아 찐 떡이 만들어져 있었다. 또한 티모르섬에서도 각지에서 적지만 조와 수수, 율무의 재배가 있었는데, 조는 모두 메 성질이었다. 또한 발리섬에서 향모의 재배가 확인되었다. 


그림4-11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조



1970년대에 할마헤라섬에서 행했던 조사의 보고에 의하면, 할마헤라섬에서는 조, 수수, 율무가 재배되고 있었다. 조와 수수는 와지라는 달달한 먹을거리의 원료가 되며, 이것은 의례를 할 때 식사로 빠지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이상과 같이 인도네시아에서는 광범위하게 조와 수수, 율무가 재배되어 왔다. 카노는 분포 약도에서는 염주와 율무가 구별되지 않지만, 카노가 의거했던 헤이네에 기반하여 그 두 가지 변종을 나눈다면 율무의 분포 동방 한계는 조와 수수의 그것과 겹친다. 향모의 재배는 수마트라섬만이 아니라 자바섬, 발리섬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기장은 필리핀의 경우와 같이, 특정 장소에 도입된 기록이 있는데,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작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카노는 마부치 토이치馬淵東一의 논고를 인용하여 인도네시아의 몇몇 섬에서 조의 농경의례가 있었다고 언급한다.1960년대에 동인도네시아의 케이 제도에서 사회인류학적 조사를 행했던 바로barraud는 타님바르·쿠칠섬에서 조가 의례의 장소에서 중요한 작물로 취급되고 있던 일을 보고한다. 아래에 그 간략한 번역을 인용한다.


케이 제도 가운데 조의 재배가 행해지고 있는 것은 타님바르·쿠칠섬(타네발·에바브)뿐이다. 여기에서 밭은 두 종류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돌담과 울타리 등으로 항구적으로 둘러싸 보호된 개인 소유의 밭이며, 여기에는 사카사, 고구마, 토란 등의 주식이 되는 덩이류와 채소나 두류를 농사짓는다. 또 하나는 개방된 밭으로, 의레에 쓰이는 조만 공동으로 재배한다. 해마다 각 가정이 분담하는 구역이 정해진다. 나뭇가지나 쓰러진 나무로 조잡하게둘러싸기만 하고, 각 가정이 소유하는 구획의 경계에는 돌이나 베어낸 나무를 두거나, 색이 다른 조(붉음, 검음)을 심거나 한다. 또한 조수해, 충해에 주의한다. 큰 동물을 몰아내 그 땅에서 떼어 놓고, 수확할 때는 오두막에 머무르고 종자를 먹으러 오는 새를 쫓아낸다. 조는 단순히 먹을거리가 아니라 의례용 음식의 일부이며, 봉납물로쓰인다. 조는 부와 풍요의 상징이고, 그 풍년은 마을의 자랑이며, 선조가 승인하는 표시이다. 


주식이 덩이류이면서 조를 의례에서 높은 위치에 두는 건 타이완 란위의 사례와 공통된다. 곡류 분포의 동방 한게에 있는 이 섬에서 과거에는 조가 먹을거리로서 중요성이 더욱 높았던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잡곡류의 분포와 전파


지금까지의 요약으로, 일본도 포함한 이 지역의 잡곡 재배의 유무를 표4-2에 표시했다. 하나의 지역에서 재배되는 잡곡의 묶음이 북쪽부터 남쪽으로 조금씩 다르며, 그 분포 동방 한계를 그려도 단순한 동심원 구조가 되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지적했듯이, 카노가 피라고 기술했던 것은 타이완에서는 타이완 산고량이란 다른 재배식물이며,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는 잡초인 돌피였다. 피가 있는 것은 일본의 큐슈 이북에 한정되고, 만일 피의 분포 경계선을 그린다고 한다면, 이 그림에는 등장하지 않는 일본의 큐슈 이북을 삥 둘러싸고 대륙으로 이어지는 모양이 될 것이다. 기장의 전통적인 재배지의 남방 한게는 타이완이라 생각되며,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 점재하는 기록은 특이한 사례로서 자리매김될 듯하다. 향모는 일본 본토와 타이완 사이의 난세이 제도, 타이완과인도네시아 사이의 보르네오섬, 필리핀 제도에서 분포가 중단되는 점에서 대륙으로부터 조선반도를 지나서 일본으로 전해졌던 경로, 푸젠성으로부터 타이완으로 전해졌던 경로, 말레이 반도를 경유해 순다 열도로 전해졌던 경로를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카노의 원래 그림 가운데 절반은 고쳐 적을 것이라고는 하여, 비식용 염주의 동방 한계가 가장 동쪽까지 늘어나고, 식용 곡류의 분포가 조와 수수의 동방 한계(염주도 여기에 겹침)라고 하여 뉴기니아의 서쪽에 있다는 것을 표시했단 의의는 크다. 그가 이 그림과 함께 제기한 문제는 확실히 현재도 논의되고 있는 오스트로네시아 민족의확산과 농경의 전파에 대한 관심과 겹친다. 


카노는 타이완 및 인도네시아의 토착 농경에 있는 조의 우월성부터, 조가 벼보다도 오래된 작물일 가능성을 상정했지만, 벨우드에 의하면 타이완의 가장 오래된 농경의 증거를 보여주는 기원전 3500년의 유적에서는 벼와 조 양쪽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벼와의 앞뒤 문제는 차치하고, 조의 재배가 옛날부터 있었단 것은 틀림없다. 또한 유라시아에서 조와 마찬가지로옛날부터 중요한 곡류였던 기장은 동남아시아에서는 거의 재배가 발견되지 않는다. 기장은 일장 반응성이나 온도, 건습의 조건에 대한 적응이 조와는 꽤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조 정도의 중요성은 가지지 않지만, 동남아시아의 조 재배지에는 수수와 율무를 수반하는 예가 많다. 아프리카 기원의 수수는 조와 율무에 가까운 용도를 지는 곡류로 신속히 수용되었을까? 똑같이 아프리카 기원의 곡류이면서 향모의 분포는 한정되어 있으며, 재배지의 감소도 뚜렷하다. 재배의 문제만이 아니라, 탈곡 조정의 어려움에 의한 일도 생각할 수 있다.


조와 기장, 율무, 수수와 향모는 각각 유라시아 대륙 또는 아프리카 대륙의 어딘가에서 재배화되어, 이 계절풍 아시아 도서부에 가져오게 된 것인데, 이 지역의 잡곡으로 예외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타이완에서만 재배가 발견되는 타이완 산고량이다. 이 식물의 재배화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는 것이 많지만, 타이완에 자생하는 산고량속 식물을 선조로 하고, 타이완에서 독자적으로 재배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타이완 산고량의 재배화가 조의 재배 이전부터 있었던 것인지, 조나 벼와 같은 이미 재배화된 곡류를 외부에서 가져온 이후에 일어난 것인지, 잡곡을 둘러싼 계절풍 아시아의 농경사에 덧붙여진 새로운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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