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농경사 권3




제2장

중앙 유라시아의 기후·수자원과 그 변천          

                                                                 -쿠보타 쥰페이窪田順平







중앙 유라시아의 기후와 사람들의 생계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부를 보면, 동쪽은 몽골로 시작되는 중국의 내몽골자치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 가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 그리고 또 이란과 이라크, 아라비아 반도로 이어지는 광대한 건조·반건조 지역이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부에 있어서 강수의 기원인 해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바다에서 다가오는 수증기는 도중에 산들에 가로막혀 도달하지 않고,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원래 중앙 유라시아란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 부분에 펼쳐진 우랄 알타이계의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을 널리 가리키는 문화적인 개념이다. 1960년대에 헝가리 출신의 알타이 학자 데니스 사이너Denis Sinor가 사용한 이래, 일본에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小松 2000). 지리적으로 동쪽은 동북아시아, 서쪽은 동유럽, 북쪽은 북극해까지 펼쳐지고, 남쪽은 황하와 곤륜산맥, 파미르 고원, 힌두쿠시산맥, 이란 고원, 카프카스산맥으로 구분된 광대한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인간 활동과 자연환경의 역동적인 상관성을 밝힌다는 관점에서 기후와 수자원 같은 지리적인 요소의 강한 화제를 논하기 위해, 그것보다도 좁은 현재의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와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다루려 한다.


중앙 유라시아는 일본인에게는 '실크로드'로 매우 친숙하다. 많은 일본인이 방문해 일본에서는 실제로 볼 수 없는 사막과 초원이란 경관에 눈을 크게 뜨고, 여러 유적을 찾아서는 일찍이 이 땅에 전개되었던 인간의 생업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 실제로 볼 수 있는 경관은 과거에도 그대로 있었을 리 없다. 지구온난화가 큰 환경문제가 되고 있지만, 과거에도 인류는 여러 가지 기후변화를 경험했다. 건조·반건조 지역인 중앙 유라시아에서는 작은 기후의 변화도 물이란 사람들의 생계에 빠질 수 없는 자원의 변동으로, 여러 영향을 줄 것이란 점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과거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기후 안에서 사람들의 생활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하면,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중앙 유라시아를 세 가지의 단면에서 그려내고자 시도한다. 우선 현재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경관과 그것을 만들고 있는 기후의 구조를 기술하는 것과 함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업, 특히 물과의 관계를 개관한다. 다음으로 중앙 유라시아의 과거 기후변화를, 그 결과로 나타난 수자원의 변동이 어떻게 인간의 생계에 영향을 주었는지 하는 시점에서 검증한다. 더욱이 20세기 이후 이 지역에서 전개된 근대적 개발, 특히 대규모 관개농업이 가져온 환경문제와 사회의 변용 실태를 상세하게 살펴본다. 매우 현대적인 문제를 다루게 되지만, 그것을 통하여 과거의 사람과 환경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빙하, 오아시스, 사막 -중앙 유라시아의 경관과 기후


중앙 유라시아의 광대한 건조·반건조 지역에는 결코 평탄한 사막과 초원이 펼쳐져 있는 것만이 아니다. 남쪽으로 티베트 고원의 북쪽 가장자리가 되는 기련산맥, 곤륜산맥이 있고, 또 그 중앙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잇는 천산산맥 등이 존재한다. 또한 서쪽으로는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의 높은 산봉우리에서 계속되는 파미르의 산들이 우뚝솟아 있다. 이들 산들에는 표고가 7000미터를 넘는 높은 산봉우리도 있고, 여름에도 눈에 뒤덮이고 빙하가 많이존재한다. 수증기를 함유한 기류는 산악 지역에 부딪치면 지형을 따라서 상승하지만, 그 결과 기온이 떨어져 대기에 함유될 수 없어진 수증기는 강수가 되어 지상으로 내리쏟아진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산악지에서는 표고가 높아짐에 따라 강수량이 증가한다. 건조·반건조 지역처럼 강수량이 적은 장소에서도 이러한 산악지형의 효과에 의하여 저지대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큰 강수량이 산악 지역에 가져와 빙하를 형성한다. 최근의 기후변화에 의하여 빙하가 축소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 산들에서 눈과 빙하가 녹은 물(그림2-1)은 지금도 산기슭에서 흘러 나가 이 물이 결핍된 지역에서 예외적으로 물이 풍족한 오아시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림2-1 카자흐스탄 자일리스키Zailiyskiy 알라타우산맥의 빙하와 그 해빙수(2006년)




수천 년 전부터 이러한 오아시스 주변에서는 농업이 행해져 왔다. 특히 중앙 유라시아의 더욱 그 중앙에 크게 펼쳐진 타클라마칸 사막(타림 분지)의 남쪽 가장자리, 북쪽 가장자리의 산록부 선상지에는 각각 북쪽의 천산산맥, 남쪽의 곤륜산맥에서 흘러나온 하천이 오아시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아시스 주변을 적신 물은 다시 하류로 흘러 내려가 사막 속으로 사라져 간다. 이처럼 바다로 가는 출구를 갖지 못한 하천을 내륙하천이라 부른다. 내륙하천은 장소에 따라서는 사막 속에 호수를 형성하는 곳도 많다.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지대를 원류로 하고,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 가장자리, 천산산맥을 따라서 흐르는 타림강은 중국 최대의 내륙하천이다. 중앙 유라시아의 지리학, 역사학,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에 큰 영향을 주는 스벤 헤딘과 스타인Stein이 그 소재와 원인을 둘러싸고논쟁을 벌였던 방황의 호수 로프노르도 예전에는 타림강에 연결되어 그 말단의 호수였다.


그림2-2는 중앙 유라시아 각지의 강수량의 계절 변화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앙 유라시아의 기후는 특히 북쪽의 천산산맥 주변 지역은 겨울철에 발달한 시베리아 고기압과 편서풍에 의한 저기압 요란에 지배되는 것과 함께, 산맥의 배열에 의한 지형의 영향을 받은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奈良間 2002). 천산산맥의 강수 기원이 되는 수증기는 서쪽의 대서양, 지중해에서 편서풍에 따라서 공급된다. 천산산맥의 북쪽(그림2-2의 지점 1-3)에서는 겨울형으로 12월 무렵과 초봄 3월부터 4월에 걸쳐서 비가 많다. 연강수량은 서쪽에서 많고,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는 700mm 정도인데, 동쪽으로 감에 따라 감소한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인 우르무치까지 오면 겨울의 강수량이 적어지고 초봄과 9월 무렵에 비교적 비가 많은 여름형이 되는데, 연간 강수량은 270mm 정도에지나지 않는다. 카라코룸, 히말라야산맥의 남면 지역(그림2-2의 지점 7, 8)은 인도양의 계절풍에 의하여 수증기가 공급되어, 여름철에 다량의 강수가 있다. 히말라야산맥, 티베트 고원을 넘어, 또한 곤륜산맥에 이르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수증기는 강수로 변한다. 북쪽의 천산산맥, 남쪽의 곤륜산맥, 또 서쪽의 파미르 고원에 둘러싸인 타클라마칸 사막(그림2-2의 지점 4-6)은 어느 방향에서나 수증기의 공급이 제한되어 중앙 유라시아에서 가장 강수량이 적은 지역이며, 연강수량도 100mm를 채우지 못하는 장소가 많다. 



그림2-2 중앙 유라시아의 기후. 나라마 치유키奈良間千之 씨 작성(2002)





이 지역은 동아시아에서 중앙 아시아, 중근동을 거쳐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광대한 건조·반건조 지역 가운데 빙하를 가진 산악지역을 하천의 원류로 삼는 유일한 지역이다. 빙하는 지상에 쏟아진 물을 고체로 잠시 저장한다. 이것이 햇빛과 기온에 의하여 녹아서 강의 물이 된다. 일반적으로 건조·반건조 지역에서는 해에 따라서강수량이 크게 변동하는 일이 많지만, 중앙 유라시아의 그것에서는 빙하가 존재함에 따라 강수량이 적은 때에도 녹은 물이 공급된다. 이 때문에 빙하가 없는 지역에 비하면 유량의 변동도 완만해진다. 빙하는 말하자면 천연의 댐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빙하가 많은 중앙 유라시아는 다른 곳에 비해 안정된 수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막은 왜 생길까?


그건 그렇다 치고, 도대체 건조함이란 어떤 지역의 일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는 물은 그 97%를 점하는 바다 등을 시작으로, 호수와 강, 지하수처럼 대부분은 액체의 형태로 존재한다. 또 물은 섭씨 0도 이하에서는 얼어서 고체가 되기에, 기온이 낮은 히말라야나 알프스의 빙하, 남극과 그린란드의 방상 등에는 눈, 또는 얼음이란 고체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대기중에는 기체, 즉 수증기로 존재하고 있다. 태양계의 혹성 가운데 물이 고체, 액체, 기체라는 모든 형태로 존재하는 건 지구뿐이며, 지구는 '물 혹성'이라고도 이야기된다. 또한 지구에 존재하는 물은 고체와 액체, 기체로 모양을 바꾸면서 순환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대기중의 수증기는 비와 눈으로 지상에 쏟아진다. 비와 눈 등을 포함하여 강수라고 부른다.강수의 일부는 지면 속으로 침투하여 지하수로 천천히 이동해 나아간다. 땅속에 침투되지 않은 물은 지표를 흘러지형에 따라 모이고, 마침내 하천을 형성한다. 지하수와 하천에 따라서 물이 흐르는 것을 흘러 간다고 부른다. 게다가 하천과 호수 등의 수면과 지면, 또는 식물체를 통하여 물은 증발하고, 수중기가 되어 대기로 돌아간다. 하천을 흘러 해양에 도달한 물도 해면에서 증발하여 대기로 돌아간다. 강수, 침투, 흘러 감, 증발의 과정에 의하여 물은 지구에서 순환하며, 이것을 물 순환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의 생물은 늘 다양한 형태로물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도 이러한 물의 순환성에 의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지구에 있는 물은 어디에서도 똑같이 있을 리는 없다. 지구에서는 장소에 따라서 비의 양과 기온이 크게 달라진다. 우리가 사는 계절풍 아시아를 시작으로, 남미의 아마존 등은 비가 많아서 숲이 발달한다. 이에 반하여 비가 적거나 거의 내리지 않는 곳이 사막이 되는데, 이러한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지구는 태양에서 빛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한편으로 지구에서도 대기권 밖으로 열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지구 전체의 에너지 수지는 대략 균형이 잡혀 있지만, 적도 부근의 저위도 지역에서는 받아들이는 에너지 쪽이 크고, 반대로 남극과 북국 같은 고위도 지역에서는 방출하느 ㄴ에너지가 크다. 장소에 따른 에너지의 출입 차이는 해양과 대기의 흐름에 따라서 열에너지가 운반되어 지구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대기의 흐름을 남북 방향으로 보면, 적도부터 남극, 또는 북극으로 향하여 세 가지 순환이 병행하여 해들리 순환,패럴 순환, 극 순환이라 부른다. 적도 부근에서 따뜻해진 대기는 상승하고, 북위 15-30도, 남위 30-45도에서 하강하는 해들리 순환을 형성한다. 이 해들리 순환의 하강대는 그 바깥쪽에서 패럴 순환의 하강대와 접하여, 건조한 대기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육지가 있다면 건조지대가 되고, 광대한 사막이 형성되는 이치이다. 북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아리비아 반도의 룹알할리 사막,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 남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 등이 이렇게 형성된 사막으로, 아열대 사막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이 아열대 사막의 조금 고위도 쪽에 내륙지대에도 큰 사막이 형성된다. 이것은 강수의 기원이 되는 바다에서 오는 수증기가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 이 장에서 대상으로 다루는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은 그 대표이다.


이처럼 사막은 대부분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인데, 비가 내리지 않는 건 사막만이 아니라 주변에도 비가 적은 지역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는 그들을 총칭하여 건조지라고 부른다. 건조지는 지구의 전체 육지 면적의 약 47%에해당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건조지는 강수량이 적은 것만이 아니라, 강수량의 변동이 큰, 즉 어느 해는 비교적 강수량이 많은데 다음해에는 완전히 비가 내리지 않거나, 비가 내리지 않는 해가 이어지는 등의 변동이 격심한 것도 특징이다. 따라서 식물의 생육에는 매우 엄혹한 조건이며, 건조에 강한 식물 또는 땅속에서 씨앗 등의 형태로 건조를 지나가게 기다리고, 비가 내렸을 때 생장하는 식물만이 생존할 수 있다. 사막에서는 인간 활동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 한편에서 사막 주변의 건조·반건조 지역에는 관개농지가 펼쳐져 있거나, 초원에서 목축이 경영되거나 하며 건조지에서 행하는 인간 활동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건조지가 성립하는 배경을 현재의 대기 순환에 기반을 하여 설명했지만, 이른바 기후변화라는 현실은 이러한 대기와 해양의 에너지와 물의 순환에 변화가 생긴 결과이다. 기후는 늘 변화하여, 예를 들면 강수량이 변화하는 것에 의하여 사막의 범위도 확대되거나 축소되거나 한다. 약 7천 년 전에서 5천 년 전에 출현한 기후의 최적기라고부르는 온난한 시기에, 현재 건조지인 중동부터 북아프리카가 습윤화하여 사하라 사막에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앞에 기술했듯이 사하라 사막 등 중위도의 사막은 적도 부근에서 따뜻해져 상승한 대기가 하강하는 장소에 생긴다. 대기가 상승하는 지역은 적도수렴대라고 부르며, 비가 많다. 당시는 이 적도수렴대가 현재보다 북상하여, 사하라 사막 남부에 강수를 가져오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인간이 관개를 행하여 사막이 농지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그 의미에서는, 건조지에서 행하는 인간 활동의 최전선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와 인위적 요인에 응하여 때와 함께 동적으로 변화해 왔다고 파악해야 한다. 인간과 자연이 맞서 싸움을 반복해 온 건조지에서는 기후변화를 시작으로 하는 환경 변화에 대한 인간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현재진행중인 지구환경문제의 하나인 사막화도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중앙 유라시아 -생업과 물의 관계


중앙 유라시아의 건조·반건조 지역에 대해서 말하면, 예외적으로 수자원이 풍부한 오아시스에서 밀을 주작물로 삼는 농경 활동을 제외하면 비교적 강수량이 많은 북쪽의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유목이 인간들의 생업이었다. 특히 몽골부터 카자흐스탄, 또는 코카서스를 지나서 헝가리에 이르는 지역에는 대초원이 펼쳐져 있어 유목민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집단이 이동하면서 흥망을 거듭했다(그림2-3).



그림2-3 발하쉬 호수 북쪽 카자흐 스텝의 초원지대





이러한 유목민들은 건조, 반건조 지역의 제한된 수자원에 지탱되는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이동을 반복함으로써 인간 활동의 영향이 특정 장소에 집중되어 환경을 파괴하지 않도록 했다고 볼 수 있다. 앞에 기술했듯이, 건조와 반건조 지역은 강수량 그것이 적은 것만이 아니라 그 변동이 큰 것도 특징이다. 이 때문에 어느해에는 강수량이 풍부하여 초원이 풍요로워질 때도 있다면, 전혀 비가 내리지 않아 풀이 자라지 않는 해도 출현한다. 인간들의 이동은 이러한 강수량의 변동에 따른 가뭄과, 또는 기온이 떨어져 생각지도 않은 눈으로 괴로워지는 일 같은 기상재해에 대처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근대가 되어 청나라와 러시아에 의하여 중앙 유라시아의 광대한 영역 안에 국경선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장벽이 생기기까지, 인간들이 이동함에 의하여 지속성을 가진 자원 이용이 행해지고 있었다.


한편 오아시스 지역에서 경영되었던 농업에서는 이러한 이동을 전제로 하는 유목과는 달리, 제한된 몰을 유효하게 이용하기 위한 관개시설의 건설이 행해졌다. 시대에 따라서 그 양식과 규모는 달랐지만, 대체로 시대와 함께 차츰 그 면적은 넓어졌다. 그것과 관련되어 무시할 수 없는 건 염해라는 큰 문제이다. 


건조·반건조 지역에서는 여름에는 매우 기온이 높아지고 공기가 극단적으로 건조해지기에, 활발한 증발이 지면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관개에 의하여 공급된 물은 지하의 깊은 곳으로부터 지면으로 빨아 올려진다. 특히 지하수위가 높고 지표면에 가까운 곳에서는 이러한 물의 이동이 발생하기 쉽다. 그때, 땅속에 있는 다양한 물질이 물에 녹아들어 지표면 근처로 이동한다. 물은 최종적으로는 증발하고, 물이 땅속에서 운반해 온 물질만이 남아 시간과 함께 집적되어 간다. 이것이 염류집적이라 이야기하는 현상이다. 염류집적이 계속되면 토양의 염분 농도가 상승해 보통의 작물은 자라지 못하게 된다. 건조지에 가면 근처 일대의 소금이 모여 새하얗게 된 염해지를 볼 수 있다. 염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물을 부어 씻어내는 외에 유효한 수단은 없다. 특히 지하수위가 높은 지역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물을 빼, 지하수위를 내려 염해의 발생을 방지해야 한다.


옛날 4대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쇠퇴할 때, 주변의 산림 파괴와 함께 염해에 의한 농업 생산의 감소가 큰 이요의 하나였다고도 이야기한다. 이처럼 중앙 유라시아의 농업은 물 그것의 제한과 함께 염해 등 건조지 특유의 문제도 있어서 급격한 확대는 일어나지 않고, 조건이 좋은 선상지에 조재하는 오아시스 주변에서 제한적으로 성립하는 생산활동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오아시스(도시)와 초원, 농업과 유목이란 구도는 대립관계가 아니라 공존하는 관계였다.





중앙 유라시아의 환경사를 살피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두르고 있는 오아시스들


중앙 유라시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것이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북쪽은 천산산맥, 남쪽은 곤륜산맥으로 구획되어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주요한 하천인 타림강은 파미르 고원과 카라코룸·힌두쿠시 산맥을 원류로 하고, 천산산맥의 남쪽 기슭을 동으로 흘러 말단은 로프노루에 이른다. 한편 남쪽의 곤륜산맥 쪽에는 동서로 흐르는 하천은없고, 곤륜산맥에서 흘러 나오는 대부분의 하천은 사막으로 사라진다. 유일한 예외는 옥으로 유명한 호탄(和田)을흐르는 호탄강이다. 호탄강은 초봄의 빙하와 눈이 녹은 물이 증가하면서 타클라마칸 사막 안을 차차 북으로 흐름을 늘리고, 마침내 아쿠스 근처에서 타림강의 본류에 도달한다. 이 사막을 지나는 아득한 물의 여행이 예전에는 초봄의 하천 유량이 자연스럽게 증가하며 일어났지만, 현재는 호탄 근처의 댐에서 물의 흐름을 조절하며 농지의 관개에 필요한 취수가 우선시되고 있다고 한다.


호탄 등의 곤륜산맥 북쪽 기슭의 오아시스군을 관찰하면 스웨덴의 탐험가 헤딘이 1896년에 발견하고, 1900년에 영국의 탐험가인 스타인이 발굴조사를 행했던 호탄 북쪽의 단단 위리크Dandan Oilik와 그 동쪽에 있는 니야Niya의 유적 등 하류 쪽의 사막 안에 유적이 있는 반면, 현재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더욱 상류 쪽에 위치하고 있는 오아시스 도시가 많이 발견된다(그림2-4). 


그림2-4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현재의 오아시스와 유적의 위치 관계




각각의 하천에 공통적으로 과거의 오아시스 도시의 유적은 하류 쪽에 있고 현재의 오아시스 도시가 상류에 위치하는 건, 도시 기능을 지탱하는 수자원의 변동이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즉, 과거에는 하천의 수량이 풍부하여 하류 쪽이 물을 이용하기 쉬웠지만, 하천의 수량이 감소하며 하류에 물이 이르기 어려워지며 도시자체가 이동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문제가 되는 건 왜 수량의 변동이 일어났을까 하는 점이다. 예전에는 현재보다 강수량이 많으며 강수량의 감소에 따라 하천의 수량이 감소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20세기 후반에 일어났던 관개농지 개발에 수반한 아랄해의 호수 면적이 급격히 감소했듯이, 무엇인가 인간활동이 하천의 수량과 지하수 등 지역의 수자원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


타클라마칸 사막의 유적과 현재의 도시 위치 관계를 언뜻 보기만 해도 인간 활동이 자연환경과 상관되며 역사적으로 변천해 온 것을 엿볼 수 있다. 환경의 역사, 곧 환경사적인 시선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환경사란



지구의 탄생부터 역사를 펼쳐 읽을 필요도 없이, 인류의 탄생 이후라고 생각되는 과거 10만 년 정도를 살펴보아도 지구의 기후는 크게 변동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생활은 강하게 그 변동의 영향을 받아 왔다. 굳이 말하자면인류의 역사 그것이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이 인류에게 큰 과제라고 인식하게 된 현재, 앞으로의 기후 예측을 행하면서 과거의 기후변화를 밝히는 일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단순히 과거의 기후변화를 밝히는 것만이 아니라, 기후의 변화에 대하여 어떻게 인간이 적응했는지를 아는 일은 미래의 인류가 가져야 할 자세를 생각하면 빼놓을 수 없다. 기후변화를 포함한 자연환경의 변화에 대하여 인간 사회는 어떻게 적응해 왔을까, 그 역사적인 변천을 더듬어 찾는 것이 환경사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시작으로 중앙 유라시아의 건조·반건조 지역에서는 수자원이 인간의 생존을 크게 좌우하는 요인이며, 기후변화에 연동한 수자원의 변화에 의하여 사람들의 생활의 장과 생업의 형태가 역사적으로 크게 변화해 왔다. 원래 강수량이 적은 건조·반건조 지역에서는 강수량이 조금만 변화해도 광범위하게 건조에서 반건조로, 또는 그 반대로 변화한다. 또한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 흔적이 남기 쉬워, 환경사를 탐구하는 데 안성맞춤인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과거의 기후변화를 복원할까 


그런데 현재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온도계와 우량계를 사용하여 직접 관측한 기상 자료는 오래된 장소라고 고작 200년에 불과하다. 중앙 유라시아에 대해서 말하면, 타슈켄트 등 기상기록을 남기는 데 뛰어났던 러시아의지배를 받았던 지역 등에서도 1800년대 후반부터의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 최근에는 과거의 기후변화를 붉히기 위하여 주로 바다와 호수 바닥의 퇴적물, 빙하와 빙상의 아이스코어, 수목의 나이테 같은 이른바 '프록시 데이터(간접지표)'를 다루는 자연과학적인 수법과 고고학적인 자료, 고문서 등도 부려 써서 각 시대의 환경 복원이 시도되고 있다. 


바다의 바닥과 호수의 바닥에 퇴적되어 있는 물질은 기본적으로는 새로운 것부터 옛날 것의 순으로 쌓여 있다. 이 때문에 각 층을 구성하는 흙 입자와 여러 가지 화학성분, 규조, 꽃가루를 시작으로 하는 동식물의 유체, 게다가 그에 포함된 질소와 수소의 동위체비 등에서 과거의 환경을 복원할 수 있다. 연대 결정에는 동식물 유체 등의 탄소에 의하여 추정한다. 호수에 따라서는 계절적인 퇴적 속도의 변화와 물질의 차이에 의하여 해마다 생기는 무늬(연층)가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호수의 퇴적 환경에 따라서는 1년에 한 층이 아니라 여러 층이 형성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지만, 연대 결정의 좋은 지표가 된다. 


빙하에서는 해마다 수십 센티미터부터 장소에 따라서는 몇 미터의 강설이 내려 쌓인다. 함양역涵養域이라 부르는 빙하 상부의 장소에서는 얼음이 거의 녹지 않고, 빙하의 표면에 새로 쌓은 눈부터 순서대로 깊은 곳에 옛날 눈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것을 표면에서 특별한 드릴로 원기둥 모양으로 시료로 채취하면, 시대별 눈을 끄집어낼 수 있다. 이러한 시료를 설빙 코어, 또는 아이스코어라고 부른다(그림2-5, 그림2-6). 아이스코어에서 산출된 연도별 함양량(강수량)은 직접 과거의 강수량 기록을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하다고 해도 좋은 수법이다. 또 눈을 구성하는 물에 포함된 질소, 수소의 안정동위체비는 눈이 대기 중에서 생길 때의 기온에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기온의 복원이 가능해진다.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상에서 채취된 아이스코어는 장기간의 눈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그해석에 의하여 과거의 기후변화를 해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중앙 유라시아의 산악 빙하에서 아이스코어를 채취해 해석하여 기후변화를 복원하기도 한다. 남극과 그린란드에 비하면, 중앙 유라시아 같은 저위도 지역에서는 방하가 녹으면서 교란도 일어나 기온과의 상관관계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장기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2-5 키르기스탄 그리고리예프 빙하에서 아이스코어를 채취하는 풍경



그림2-6 키르기스탄 그리고리예프 빙하에서 채최한 아이스코어




온대와 한대 등 계절이 명료한 지역에서 생육하는 수목은 해마다 나이테를 형성한다. 나이테의 너비는 수목의 성장량을 보여주고, 기후 등의 환경 요인으로 크게 변화한다. 이 때문에 수목에 새겨진 나이테의 너비 변동은 그 수목이 생육했던 시대의 환경 변동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개개의 수목이 생육했던 장소의 특성과 다른 수목과의 경합 등의 영향도 있으며, 또 수종에 따라서 성장의 특성도 다르기 때문에 많은 시료를 채취함으로써 그 지역의 대표적인 특성과 기온이나 강수량과의 상관을 밝혀야 한다. 혀재 생육하고 있는 수목만이 아니라, 건축물에 사용되고 있는 것과 재해 등으로 무너져 파묻혀 있던 것 등에서도 벌채한 연도가 명확하다면 해석하는 일이 가능하다.


더구나 고고학의 유적도 당시의 인간 활동 그것을 아는 단서가 되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에 관한 여러 정보를 제공해준다. 또한 역사 문서에 기록된 날씨에 관한 기재와 재해의 기록, 농작물의 수확량 등도 기후의 변화를 복원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중앙 유라시아 안에서도 청나라 세력의 지배를 받았던 지역에서는 강수량과 곡물의 수확량 등에 관하여 지방에서 중앙정부로 정기적인 보고가 행해졌던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자료적인 가치가 높다. 자료의 정리가 끝나지 않은 부분도 많고, 간단히 열람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지만, 앞으로 해석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정보를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최근 산악 빙하의 아이스코어, 호수 바닥 퇴적물 등 주로 자연과학적인 수법을 사용한 연구가 활발해져, 특히 과거 2000년 정도 중앙 유라시아의 기후변화 양상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예를 들면, Yang 외. 2008). 이러한 연구 동향을 근거로 하여, 게다가 종합지구환경학연구소(지구연)에서 필자가 관여한 프로젝트 <수자원 변동 부하에대한 오아시스 지역의 적응력 평가와 그 역사적 변천>(약칭=오아시스 프로젝트, 책임자 나카오 마사요시中尾正義)과 현재 수행중인 프로젝트 <민족/국가의 교착과 생업 변화를 축으로 한 환경사의 해명 -중앙 유라시아 반건조 지역의 변천>(약칭=이리 프로젝트, 책임자 쿠보타 쥰페이)에서 얻은 성과를 맞추어, 중앙 유라시아의 과거 기후변화가 어디까지 판명되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제4기의 장기적인 기후변화


지구의 역사 중에서 18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제4기라고 부른다. 지질학적인 눈으로 보면 가장 최근이라고도할 수 있는 이 제4기에 인류는 급속히 진화하여, 그 활동 범위를 지구 전체로 확대했다. 이윽고 인류는 농경과 목축의 방법을 획득하고, 문명을 구축한다. 그 활동은 차차 자연에 대한 영향을 강하게 하고, 대규모로 자연의 개변을 행하여 현재의 지구온난화를 시작으로 하는 환경문제를 만들어내게 된다. 다만, 개개의 지역과 집단을 보면 그 활동은 계속적으로 확대되어 온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성쇠를 반복해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농경과 목축을 개시한 뒤에도 그 생산력은 자연환경에 크게 의존하고, 기후의 변동에 좌우되었다.


제4기에는 약 10만 년 주기로 한랭하여 빙하게 널리 발달하는 빙하기와 온난하여 빙하게 축소된 간빙기가 반복되었다. 최근 4회의 빙하기에 관해서는 유럽, 북아메리카의 지명을 딴 이름이 붙여졌으며, 유럽의 호칭으로 가장 최근의 빙하기는 뷔름Würm 빙하기(최종 빙하기)라고 부르고 있다. 뷔름 빙하기는 대략 7만 년 전에 시작하여 1만 년 전에 종료되었다. 뷔름 빙하기 시기에 가장 빙상이 확대된 대략 2만 년 전을 최종 빙하기의 최한랭기(최종 빙하기 최성기, Last Glacial Maximim, LGM)이라 부르고 있다. 북미 대륙과 유럽 대륙에서는 큰 빙하게 확대되어, 현재의 식생 분포 등에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 이 시기, 건조 지역은 현재보다 더욱 건조했던 상태였다고 생각된다. 다만, 이 최종 빙하기도 계속 추웠던 것이 아니라 2000년 정도의 짧은 주기로 기후가 격렬하게 변동하고 있었던 것이 최근의 그린란드와 남극의 아이스코어 해석에 의하여 밝혀지고, 그 변동의 과정을 단스가드 오슈가 주기(Dansgaard-Oeschger cycle)라고 부르고 있다. 빙하기-간빙기의 주기 안에서 일반적으로 한랭화가 진행되는 속도에 비하여 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된 경향이 있다. 단스가드 오슈가 주기에 있었던 온난화 시기의 변화 속도는섭씨 7도 이상의 기온 상승이 불과 200-300년 정도의 사이에 일어났던 경우도 있다(多田 1998).


뷔름 빙하기가 끝난 이후 기온은 온난해지고, 현재는 간빙기에 있다. 현재의 기후로 이행할 때 큰 추위가 되돌아와 일시적으로 빙하기 같은 한랭한 기후가 되었던 시기가 몇 번쯤 있다. 그 대표적인 시기는 영거 드러이아스기(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3천 년 전)이라 부른다. 영거 드라이아스기가 끝나고 온난화할 때에도 약 10년 동안에 기온이 약 7.7도 이상 상승했다. 단스가드 오슈가 주기의 온난화 시기도 그러하지만, 이러한 급격한 기후의 변화를인류는 경험하고 있다. 오히려 그뒤는 이 정도의 급격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데에 주의한다.


영거 드라이아스기 이후 7000년 전에 걸쳐서 기후는 온난화했다. 이 온난화는 인류의 생계에 큰 영향을 주어, 농경과 목축, 정주는 이 시기에 시작된다. 이때에도 일시적인 한랭화 시기가 있어, 특히 8500-8200년 전 한랭기의 존재는 농경과 목축, 정주에 크게 관여했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7000년 전부터 5000년 전에 이 온난화는 정점을 맞이해, 기후최적기(힙시서멀hypsithermal)라 부른다. 아프리카 대륙의 사하라 사막에서는 이 시기에 습윤한 환경이어서 식생이 확대되어 녹색의 사하라라고 부르는 상황이 출현했다. 그뒤 전과 같이 한랭-온난을 반복하면서 전체로서는 기온이 서서히 저하되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앙 유라시아에서는 호수 바닥 퇴적물의 해석 결과로부터, 약 8000년 전 이후 급격하게 습윤해지고, 가장 습윤한 기간은 약 6000-1500년 전이었다는 지적이 있다(Fahu 외. 2008). 또한 엔도遠藤 외(1997)는 로프노르의 호수 바닥 퇴적물 코어에서 꽃가루를 분석하여 갱신세 전기에는 호수 주변에 침엽수가 존재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지적함과 동시에, 그뒤 건조화가 진행되어 특히 최근 1600년 동안은 매우 건조해졌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약간 시대는 뒤이지만, 타클라마칸 사막에서도 기온의 복원 결과와 오아시스의 유적조사로부터 오아시스의 형성 시기가 약2200년 전 한나라 시대와 약 1400-1200년 전의 당나라 시대에 집중되며, 그것이 기온이 고온이었던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 또한 16세기의 한랭으로 건조했던 시기에 오아시스 도시가 쇠퇴했다는 지적이 있다(Takamura 2005). 이와 같이 오아시스 도시의 성쇠와 수자원의 변동 사이의 관게에 대해서는 아직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앞으로 실증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과거 2000년, 중앙 유라시아에서 무엇이 일어났을까


세계에서 네 번째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던 아랄해는 1960년대 이후 상류에서 행해진 농업 개발에 의하여 유입하는 하천의 수량이 감소했기 때문에, 2007년에는 호수 면적이 1960년대와 비교하여 약 10%까지 격감했다. 그 결과, 아랄해에서 행하던 어업은 붕괴되고, 노출된 호수 바닥에서 말려 올라간 먼지에 의한 건강피해를 발생시키는 등 20세기 최대의 환경 문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른바 '아랄해의 비극'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덕에 호수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마을의 유적이 발견되거나, 과거 호수면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형을 관찰할 수 있게 되거나, 또는 호수 바닥의 퇴적물 채취가 쉬워지거나 하여 아랄해의 과거 환경 변동을 해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연구자에 의한 고고학과 지질학을 중심으로 한 학제간 연구프로젝트 'CLIMAN'은 호수 바닥 퇴적물의 보링 코어의 해석, 호수 바닥의 유적 조사, 호숫가 지형의 상세한 조사 등을 행하여 과거 2000년 정도의 아랄해의  환경 변동을 상세하게 밝혔다(예를 들면 Boomer 외. 2009). 그 결과, 과거 2000년을 돌아 보아도 아랄해의 면적은 크게 변동했으며, 약 800년 전 무렵에 아랠해는 거의 현재와같은 정도까지 호수가 축소되었던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 원인으로는 (1)아랄해로 유입되는 하천인 아무다리야강, 시르다니야강 가운데 아무다리야강이 이 시기 흐름을 바꾸어 카스피해로 흘러 들어갔다. (2) 기후의 변화에 의하여 강수량이 적어지고, 그 결과 유입되는 하천의 수량이 감소했다. (3) 아무다리야강, 시르다니야강의 중류 지역의 오아시스 도시에서 관개농지가 개발되어, 그 물 소비에 의하여 유입되는 하천의 수량이 감소했다. 이상을 들고 있다. 아랄해 축소는 이들이 복합된 결괴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동시기에 주변의 호수에서도 수위의 저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지구연·이리 프로젝트가 카자흐스탄 지질연구소와 공동으로 행했던 아랄해의 동쪽에 있는 발하시호의 호수 바닥 퇴적물의 해석에서 아랄해의 수위 저하가 일어났던 시기와 거의 동시기에 발하시호에서도 수위 저하가 있었을가능성이 있단 점이 밝혀졌다(遠藤 외. 2009). 또 키르기스에 있는 이식쿨호에서 행한 해석에서도 약간 시기는 다르지만, 13세기에 수위의 저하가 있었단 것이 지적된다(Girlat 외. 2002). 아랄해의 수위 저하에 관해서는 유입되는 하천의 유로가 변했던 영향이 지적되었지만, 발하시호와 이식쿨호의 예를 보면 중앙 유라시아의 비교적 넓은 범위에서 호수 면적의 감소를 일으킬 수 있는 일이 있었음을 시사하여, 강수량이 감소했을 가능성이 높다고생각한다. 


그럼, 이러한 호수 바닥 퇴적물에 기록된 호수 수위의 변화는 나이테와 아이스코어 등에서 복원된 기온과 강수량에 의하여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까? Esper 외.(2002), Solomina and Alverson(2004) 등의 나이테 해석 결과 및 Thompson(1995)에 의한 그리야 아이스캡의 아이스코어 해석 결과 등에서 중앙 유라시아의 과거 2000년 동안의 기후 복원을 정리한 Yang 외.(2008)에 의하면, 습윤기는 기원후 0-410년, 650-890년, 1500-1820년이고, 건조했던 시기는 420-660년과 900-1510년 무렵이었다. 또한 기온을 보면 유럽과 마찬가지로 중세 온난기(9-12세기)와 한랭한 소빙하기(15-18세기)가 존재하고, 중세 온난기인 10세기 이후는 건조화가 뚜렷하게 나타나, 소빙하기는 오히려 습윤했다고 지적한다. 이 결과와 호수의 수위 변동을 합하여 고려하면, 중세 온난기인 10세기 이후의 건조화, 즉 온난하면서 또 건조화가 진행된 시기에 아랄해와 발하시호의 수위 저하가 일어났던 것을 시사한다. 또 소빙하기에는 한랭 또 습윤한 기후화로 일단 축소된 호수 면적이 회복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랭한 시기는 건조하고, 온난한 시기에는 습윤해진다고 이해하지만, 특히 건조·반건조 지역에서는 이에 꼭 들어맞지 않는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는 이와 같은 기후변화가 어느 정도 사람들의 생계에 영향을 주었을지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례는 중앙 유라시아에 많지 않다. 물론 시대가 나아감에 따라 자연환경에 의한 제약을 기술적으로 완화시킨 부분이 많고, 오아시스 도시가 성쇠한 원인은 기후변화보다 오히려 국가 또는 집단 사이의 대립, 교역이나 이동의 수단과 그 경로의 변천 등 사회적인 요소가 지배적이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한편으로 물의 이용이 고도화, 집약화함에 따라서 '아랄해의 비극' 같이 이미 기술적으로 대처할 수 없을 만큼의 환경파괴를 일으킨 일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기존의 의론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온의 복원에 비하여 건습(강수량 변동)의 복원이 곤란한 일도 있고, 한랭화와 온난화가 쓸데없이 중시되어 보고 있다. 아까의 사례처럼 상사헤가 보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한랭-건조, 온난-습윤이란 도식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특히 수자원의 제약을 받기 쉬운 건조·반건조 지역에서는 건조냐 습윤이냐의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중앙 유라시아의 기후변화의 복원에 관한 연구는 정보가 축적되고 있다. DNA 등 새로운 분석수법도 받아들여진 고고학 연구도 진행되고 있는 현재, 이 점에 관한 연구가 심화되기를 기대한다.





20세기 후반에 중앙 유라시아에서 일어난 일


대규모 관개농지 개발 -그 공과  


지금까지 보았듯이, 중앙 유라시아 사람들의 생계에 기후와 수자원의 변동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건 틀림이 없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의 농업 개발 등 인간 활동이 일으킨 물 부족 등의 환경문제를 상세히 검토하는 것으로부터 일찍이 무엇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위한 단서를 찾아보자.


20세기 초 무렵 또는 20세기 중반까지, 중앙 유라시아는 오아시스 지역을 제외하고는 광대한 토지가 농업에는 이용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곧 원래 이들 지역은 햇빛, 기온 등 농업 생산에 관한 기상조건에 혜택이 있어 잠재적인 농업 생산 적합지이면서, 물 조건의 제약으로 아직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근대가 되어 대규모토목공사가 가능해지고, 또 인구 증가에 의한 식량 증산의 필요성이 높이지면서 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마찬가지로 20세기 후반에는 중앙 유라시아에서도 대규모 관개농지의 개발이 행해지게 되었다. 특히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는 아랄해로 흘러 들어가는 아무다리야강, 시르다리야강의 수자원과 그 주변의 광대한 토지가 주목되어, 소비에트 연방에서 추진하는 면화의 재배기지로 대규모 관개농지가개발되었다. 그 결과,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현재 생산량에서 세계 5위, 수출량에서는 톱 3에 들어가는 면화 생산국이 되었다. 중국에서도 신장 위구르 자치구, 감숙성, 청해성 등에서 산악지역부터 오아시스 지역을 거쳐 사막으로 흘러가는 하천의 물을 이용하여, 옛날부터 존재하는 오아시스를 대규모로 확대하는 모양으로 농업 개발이 진행된다.


대규모 관개농지의 개발은 확실히 식량과 면화 등 농산물의 증산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보아도 곡물생산의 약 40%는 면적으로 보아 전 농지의 17%에 지나지 않는 관개농지에 의존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한편에서 '아랄해의 비극'으로 대표되듯이, 심각한 물 부족과 염해 등 다양한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원인도 되고 있으며, 반건조·건조 지역에서 관개농업은 그 지속성이란 의미에서는 큰 문제를 품고 있는 현상이다.




건조지의 농업 개발은 왜 문제인가


물은 순환성이 있는 자원이다. 지구의 물은 상태는 다르더라도 그 총량은 거의 변하지 않으며, 매년 거의 같은 양이 순환한다. 매년 순환하는 양을 넘지 않게 이용하는 한, 물은 무한의 자원이다. 이 물과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는 생물 생산인 농업은 매년의 생산량에는 한계가 있지만, 원래 지속적인 생산 형태이다. 한편 석유로 대표되는  광물자원의 대부분은 지구의 역사 속 시기에 축적된 유한의 것을 인류가 사용하고 있으며, 소비할수록 언젠가는 고갈되는 때가 온다. 


지상에 내리는 강수는 숲과 초원, 또는 관개되지 않는 농지(천둥지기 농지)를 적시고, 일부는 그곳에 있는 식물에 의하여 사용되며, 증발하여 대기로 돌아간다. 사용되지 않고 하천으로 흘러 가거나, 지하수가 된 물을 인간은 자원으로 이용하고, 물이 부족한 농지에 관개하거나(관개농지), 공업용수나 가정용수로 이용한다. 이용하지 못한물은 최종적으로 바다로 흐른다. 일반적으로 매년 반복하여 자원으로 쓰일 수 있는 물의 양을 '재생가능한 수자원량'이라 한다. 이것은 하천에 흘러 가거나, 지하수가 되어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을 가리킨다.


매년 반복하여 식물 생산과 농업 생산에 사용되고 있는 수자원이더라도 숲과 초원, 천둥지기 농지에 내린 물은 '재생가능한 수자원량'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물을 '그린 워터'라고 부르며, 하천에 흘러 간 뒤의 이른바 '재생가능한 수자원량'을 '블루 워터'라고 부른다. 농업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농지 개발을 행하려 고려할 때,숲과 초원 등을 농지로 전환하고 천수(강수)로 충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농업 생산을 행한 경우에는 증발산량으로 대기로 사라지는 양은 크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블루 워터를 사용하지 않는 지속적인 물 이용이라 말할 수 있다. 한편, 천수만으로는 농업 생산을 행하지 않는 지역, 예를 들면 건조지 등에서 관개농지를 개발한 경우에는 새롭게 블루 워터를 이용하게 되기 때문에, 블루 워터를 공유하는 다른 자원 이용(예를 들면 하류의 다른 관개농지와 가정용수, 공업용수 등)에 크게 영향을 준다. 물론 농지 개발을 행한 하류 지역의 블루 워터에 의하여 유지되는 호수의 수량 그것에도 큰 영향을 준다. '아랄해의 비극'도 원래 호수에 흘러 들어가 호수를 형성하고 있던 블루 워터를 농업용수로 이용한 결과라고 이해하면 알기 쉽다. 최종적으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물의 양도 블루워터에 포함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블루 워터의 새로운 이용은 하루 쪽의 물 순환과 그에 관련된 생태계에 반드시 무엇인가 영향을 주며, 생태계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생태계 서비스)와 문제를 일으키면서 실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어디까지 허용될지 여부는 자연과학적으로 적정한 양을 정하기보다, 오히려 유역 사회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헤어허黑河 유역의 물 순환과 최근의 물 부족


중앙 유라시아의 건조·반건조 지역을 흐르는 하천은 이미 보았듯이, 원류에서 강수량이 많은 빙하가 존재하는 고산 산악으로 이루어진 상류역, 산기슭에 펼쳐진 선상지에서 하천의 물을 이용하여 관개농지가 만들어진 중류 오아시스 지역, 광대한 사막으로 이루어진 하류역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여기에서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동쪽에 있고, 중국 본토와 서역을 잇는 교통의 요충이었던 하서 회랑에 있는 헤이허를 예로 들어서, 농업 개발에 의한 물순환에 대한 영향, 순환 문제(물 부족)의 대두, 또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이 어떻게 기능했는지, 무엇을 가져왔는지를 지구연의 오아시스 프로젝트 성과를 기반으로 상세히 고찰한다.


헤이허는 청해성과 감숙성에 걸치고, 티베트 고원의 북쪽 가장자리를 형성하는 치롄 산맥을 수원으로 하며, 옛날부터 관개농업의 성행한 장예張掖, 주취안酒泉 등의 오아시스 도시가 존재하는 중류부를 거쳐 내몽고 자치구의 사막 지대에 들어가 소멸하는 내륙하천이다(그림2-7). 전체 길이 약 400킬로미터, 유역 면적은 13만 평방킬로미터이고, 일본 면적의 약 1/3에 상당하는 광대한 유역이다. 상류부의 기롄 산맥에는 빙하가 존재하고, 연강수량은600mm 정도이다. 기롄 산맥은 북서-남동의 방향으로 늘어지는 산맥이다. 그 중앙에서 남동쪽으로 흘러 도중에 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중류의 장예로 흐르는 본류에 반해, 북서쪽으로 흘러 주취안을 통과하는 큰 지천이 있어 북대하라고 부른다. 현재 북대하의 물은 주취안과 그 하류의 진타金塔라는 오아시스에서 대부분 농업용수로 사용해 버려 본류에 이르는 것이 없고 흐름이 끊어진다. 


그림2-7 헤어허 지역의 위치와 지형




중류의 오아시스 지역의 연강수량은 100-200mm 정도, 하류의  사막 지대에서는 50mm 이하에 지나지 않는다.중류의 오아시스 지역은 하천수와 지하수를 이용하는 관개농지가 널리 존재하고 있다. 하류 지역에서는 지하수를주로 이용하는 농업이 경영되는 한편, 오아시스와 하천의 주변, 또는 사막 안에 존재하는 제한된 식생을 이용한 유목이 경영되어 왔다. 


헤이허에서는 특히 1950년대 이후 하천의 단류, 하류 지역의 지하수위 저하, 식생의 쇠퇴, 말단 호수의 소멸 같은 물 부족이 심각해졌다. 먼저 앞에 기술한 북대하의 단류만이 아니라, 여러 지류가 본류와 분리되어 버렸다. 그결과 하류의 하천 주변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던 호양胡楊 나무가 물 부족 때문에 가지가 말라 버렸다. 호양의 숲은헤이허 하류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인데, 1990년 이후 쇠퇴가 격심해졌다고 이야기된다. 또한 헤이허 하류 지역은 헤이허가 형성하는 삼각주가 펼쳐져 있고, 자주 유로를 바꾸면서 강이 흐르고 있었다. 1940년대 후반에 하류는 동쪽의 강(어지나강), 서쪽의 강(무렌강)으로 나뉘어서 흐르며, 각각 소고노르, 가순노르Gaxun nur라고 말하는 말단 호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는 300평방킬로미터 이하의 총면적을 가지고 있던 말단 호수지만, 1961년에 먼저 서쪽 강의 가순노르가 말라서 약 30평방킬로미터 정도로 급격하게 면적이 줄어들고, 1992년에는 남았던 동쪽 강의 소고노르가 말라 버렸다(Wang and Cheng 1999).




수자원에 산악의 강수와 빙하가 녹은 물의 중요성


이 장의 모두에서 기술했듯이, 중앙 유라시아 건조·반건조 지역의 수자원은 산악 지역의 강수량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표고가 높은 곳에서는 기온이 낮기 때문에 강수는 눈의 모양으로 쏟아진다. 일 년 동안에 내린 양과 녹은 양은 기온과 햇빛, 풍속 등에 의하여 변하지만, 표고가 높아져 기온이 낮아지면 내린 양 쪽이 많아지고, 내린 눈이 해를 넘겨 남게 된다. 이리하여 해를 넘긴 눈이 이윽고 양이 많아지면, 서서히 마치 액체처럼 유동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여 생긴 것이 빙하이다. 빙하는 한랭한 시기가 계속되어 얼음이 녹은 양이 감소하면, 차츰 쌓이는양이 많아져 확대된다. 거꾸로 온난한 시기에는 녹은 양이 증가하여, 빙하는 축소한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빙하가 확대되는 건 기온이 낮아서 녹은 양이 적은 시기이고, 반대로 빙하가 축소되는 건 녹은 양이 많은 시기라는 것이다. 현재 헤이허에 존재하는 빙하를 시작으로, 중앙 유라시아에 있는 빙하의 대부분은 축소를 계속하고 있는데, 하천수의 양을 고려하면 물이 더욱 많이 흐르고 있다. 우리는 걸핏하면 빙하가 확대하는 시기에 빙하의 수원으로서의 역할이 커지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처럼 축소의 시기야말로 하천으로 유입되는 빙하의 녹은 물이 기여하는 바가 커진다.


빙하가 얼마나 녹을지는 이미 기술한 기온과 햇빛, 풍속 등 외에 빙하 표면의 상태가 크게 관계한다. 이들 요소를포함하여 생각하면, 빙하는 오히려 비가 적어져서 하천수가 감소하는 시기에 그것을 보완하는 형태로 많은 녹은 물을 공급한다는 것이 밝혀져, 건조·반건조 지역의 수자원을 생각하면 중요한 요소이다.




하천수와 지하수의 상호작용


헤이허 유역을 포함한 중앙 유라시아의 하천에서는 상류 지역에 가져온 강수, 눈과 빙하의 녹은 물이 수원이 되어 하천이 형성되고, 중류 산기슭의 선상지에 흘러 간다. 선상지는 하천이 운반한 토사가 퇴적하여 만들어진 무넘기가 좋은 장소이기에, 물골에서 지하로 물이 침투해 가서 지하수가 된다. 또한 상류의 산악지역에서도 양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산의 암반 안에 물이 깊이 스며들어 오랜 시간을 걸려 중류 선상지의 지하로 흘러들어간다. 게다가 관개로 농지에 공급되는 물 가운데 대기 중으로 증발과 발산으로 돌아가는 분량을 제한 것은 서서히 지면속을 침투하여 지하수가 된다. 어느 쪽이든 지하수는 오랜 시간이 걸려 저장된 수자원이다. 이리하여 지하에 축적된 물의 일부는 선상지의 말단에서 샘으로 유출된다. 헤이허의 경우 장예의 마을 북쪽을 달리는 철도의 선로 부근이 선상지 말단에 해당되어, 이 근처에 많은 샘이 솟아 나온다. 이 근처에서는 풍부한 지하수를 이용한 논(벼농사)가 옛날부터 개간되어, 절수 정책이 진행되는 현재도 유일하게 논벼의 재배가 인정되고 있다(그림2-8).


그림2-8 장예 오아시스의 선상지 말단부의 논 지대. 현재는 일본의 품종이 도입되어 있다(2002년).




헤이허의 중류와 하류의 경계가 되는 정의협正義峽에 있는 유량관측소에서는 여름의 관개가 행해지고 있는 기간은홍수 때를 제외하고 물이 흐르고 있지 않고, 대부분이 관개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유량관측이 시작된 1950년 당시의 기록을 보아도, 여름 동안 정의협의 유량은 홍수 때를 제하고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옛날부터 이러한 물 이용 형태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간개를 행하지 않는 겨울 동안은 상류와 중류의 경계에 있는 앵락협鶯落峽 관측소의 유량보다 하류 쪽의 정의협 유량이 많아진다. 이것은 여름 동안에 관개지에 공급된 물이 지하수대를 경우하여 겨울에 유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함께, 또 지하수의 형성에 관개지에 공급된 물의 기여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질로 본 오아시스의 지속성


헤이허의 중류 지역에 있는 장예 지구는 옛날부터 밀과 잡곡을 주작물로 한 오아시스 농업 지역으로 발전해 왔으며, 그 풍부한 생산력 때문에 '금 장예(부유한 장예)'라고 불렸다. 현재 장예의 관개수로는 이미 명나라부터 청나라 시대에 현재의 위치와 똑같은 장소에 존재했다(井上 2007). 그 번영의 역사를 뒷받침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림 2-4에서 보았듯이, 타클라마칸 사막의 주변에 현재의 오아시스 도시와 예전부터 오아시스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적의 위치 관계를 보면, 현재의 오아시스는 하천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즉 옛 시대의 오아시스는 더 하류 쪽에 있고, 예전에는 지금보다 하천의 수량이 많았단 것을 시사한다. 그뒤 기후의 변화 등에 의하여 하천의 유량이 감소하고, 사람들은 더 안정된 수량을 찾으러 상류로 이주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곳에서는 지하수위가 높아져, 염해가 발생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 그것도 하나의 요인이었을 가능성도있다. 


그렇다면 장예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이러한 예전의 오아시스와 비교하여 무엇이 달랐을까? 장예의 하류 쪽, 곧 정의협 주변에는 지하수를 통과하기 어려운 암반을 가진 산지가 존재한다. 이 산지의 존재는 지하의 댐 같은 역할을 수행하여, 중류의 지하수가 하류로 흘러 가는 것을 막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선상지의 말단인 장예의 북쪽부터 임택臨澤과 고태高台에 걸친 헤이허 주변의 낮은 평지는 지하수가 모이기 쉽고, 말하자면 물동이 같은장소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상지 상부에서 관개한 물의 일부는 당연히 대기 중으로 증발되어 돌아가지만, 나머지는 지하수가 되어 선상지의 말단으로 유출된다. 선상지보다 하류의 낮은 평지에서는 이 한 번 사용된 물을 다시 이용하여 관개가 행해지고, 농업이 경영되었던 것이다. 하천의 물은 최종적으로 정의협을 거쳐 하류로 나아가기까지 몇 번이나 반복해 이용된다. 단순히 헤이허의 유량이 안정되어 있었던 것만이 아니라, 이 반복해 이용할 수 있는 구조가 장예를 뒷받침한 하나의 요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이와 같은 낮은 평지는 어느 쪽이냐 하면 염분 농도가 높아지기 쉬우며, 염해가 발생하는 일도 많다. 이에 반해 경사가 비교적 급한 선상지의 상부에서는 지하수위는 지표에서 꽤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염해는 일어나기 어렵다. 근대적인 토목공사가 행해지기 이전, 곧 늦어도 명나라부터 청나라 시대에는 이 선상지에 물을 잡아끄는 시설을 건설하고, 염해가 발생하지 않는 관개농지를 널리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 장예 오아시스의 오랜 번영을 뒷받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예는 물과 토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가진 오아시스였다고생각한다.


그런데 장예 오아시스의 번영은 당연히 물 이용의 증가를 불러, 결과적으로 하류로 흐르는 수량을 감소시키게 된다. 하류 지역에서도 기원전후에는 이미 관개농지가 만들어져 있었다(籾山 2000). 그뒤의 원나라와 서하 시대의 관개수로와 농경지 터 등도 발견되고 있다(森谷 2007)(그림2-9). 또한 현재의 관개수로의 원형이 만들어진 청나라 시대에도 벌써 중류와 하류 사이에 물다툼이 일어났다고 한다(井上 2007). 즉 일찍이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 가장자리의 오아시스에서 기후의 변화에 의하여 발생한 물 부족이 헤이허의 하류에서도 그토록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인간 활동이 확대된 결과로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림2-9 헤이허 하류 지역의 서하 시대 관개수로 터(2002년)




최근 물 이용의 실태


그림2-10은 헤이허가 상류 상악 지역부터 중류의 오아시스 지역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에 있는 앵락협과 중류 오아시스 지역의 하단에 해당하는 정의협에서 1954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연간 유량의 장기간 변화를 보여준다. 먼저 오아시스로 상류의 수원 지역에서 흘러 들어오는 앵락협의 유량을 보면, 대략 연간 16억 톤이고, 해마다 변동은 크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거의 변화하지 않든지, 약간 증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의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헤이허 유역에서는 기온의 상승과 강수량의 감소가 관측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온의 상승은 증발산량을 증가시켜 하천 유량을 감소시키는 작용이 있고, 강수량의 감소도 당연히 유량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빙하가 녹은 물이 증가하여 강수량의 감소와 증발산량의 증가로 사라진 분량을 보완하여, 상류 지역에서의 하천 유량은 크게 변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헤이허에서 물 부족의 요인으로, 상류 지역에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서 성행했던 산림 벌채(シンジルト 2005)와 방목의 영향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산림 벌채는 유역에서의 증발산량을 감소시켜 오히려 유량을 증가시킨다고 잘 알려져 있다(예를 들면 窪田 2004). 또한 상류 지역에서도 수원 영역의 보호를 목적으로 유목민에 대한 생태이민이 행해지고 있지만(中村 2005), 상류에서의 유량은 생태이민이 행해지기 이전부터 거의 변화하지 않았고 최근 헤이허의 하류 지역에서 일어난 물 부족의 원인은 수원 지역에는 없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림2-10 헤이허 유역의 앵락협, 정의협에서 연간 유량과 중류 지역의 물 소비량 변화.  窪田 2007에 의함





한편, 앵락협과 정의협에서 하천 유량의 차는 장예 등 중류 오아시스 지역에서 관개를 함으로 인한 물 소비의 지표라고 볼 수 있다. 정의협의 유량이 1950년대에는 연간 10억 톤 이상었는데, 1990년대에는 8억 톤 정도, 적은해에는 6.5억 톤 정도까지 감소했다. 이 때문에 앵략협과 정의협에서 하천 유량의 차는 이 사이 증가 경향에 있으며, 특히 1970년 이후 그 증가는 두드러진다. 이것은 중류 지역에서 물 소비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하류 지역에서 심각한 물 부족을 불러온 주요한 원인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이 중류 지역에서는 인구는 약 2배가 되고, 관개 면적은 약 3배로 증가했다(Wang anf Cheng 1999). 이러한 인간 활동의 증대, 농업 개발이 물 소비를 증대시킨 것이다. 다양한 농지에서 물 소비를 측정함과 함께, 이 사이의 토지이용, 특히 농작물의 작부면적 변천으로부터 중류의 물 소비량을 분석한 山埼(2006)는 1970년대부터1980년대에 걸쳐서 농지의 확대, 특히 밀의 작부면적 증대가 주요한 원인이며, 1980년대 이후에 대해서는 옥수수의 도입 및 옥수수와 밀의 사이짓기 면적의 증가가 물 소비량 확대의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1990년대에는 도시 주변의 채소와 다양한 환금작물로의 전환이 오히려 물 소비를 증가시켰다고 지적한다.


또한 헤이허의 중류 오아시스 지역에서는 풍부한 하천수를 이용한 관개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물 수요가 핍박해지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지하수 이용이 급격히 증가하여 2003년에는 관개용수량의 약 25%를 점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동 펌프의 보급에 의하여 지하수 이용이 쉬워진 외에, 중류의 물 수요가 증가하여 하류의 물 부족이심각해지면서 정부가 지하수 이용을 추진한 일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하수위의 저하는 특히 채소 등의 재배가 증가하여 지하수의 이용이 성행한 선상지의 하부에서 1990년 이후 1년에 1미터 가까이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하류 지역의 물 부족


지금까지 헤이허 중류 지역에서 물 이용의 실태와 그 변천을 밝혀 보았다. 그럼 그것을 근거로 하여 하류 지역의 물 부족이 어떠한 변천을 겪었을지 더욱 상세하게 살펴보자.


그림2-11은 중류와 하류 지역의 경계에 해당하는 정의협에서 있었던 1950년대 이후의 유량 변화를 관개기(4-9월)과 비관개기(10-3월)에 걸쳐서 나타낸 것이다. 이것을 보면 비관개기에는 중류 지역에서 하류 지역으로 거의일정하게 안정된 유량이 공급되고 있는 데 반해, 관개기의 유량은 해에 따라서 크게 변동한다. 특히 1990년대에는 관개기의 유량이 크게 감소하고, 거의 유량이 없는 해도 많다. 이것이 1990년대에 들어서 뚜렷해진 호양 숲의 쇠퇴와 최종적으로 말단 호수가 말라버린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림2-11 정의협에서 하류 지역으로 유입되는 관개기, 비관개기의 유량 변화. 窪田 2007에 의함





그러면 앞에 기술했던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서 하류에 두 개의 말단 호수 가운데 서쪽 강의 가순노르가 소멸하고, 전체 호수 면적이 크게 감소했던 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의협의 유량을 보는 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서 유량이 적은 해도 있지만, 큰 변화는 확인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는 원인의 하나는 정의협보다 하류 쪽에서 합류하던 북대하의 단류이다. 북대하에서는 1949년에 헤이허 유역으로서는 처음으로 주취안의 하류, 진타의 상류에 저수용 댐이 건설되어, 그 이후 이른바 대약진의 시대에 관개농지가 개발되었다. 북대하로부터 1930년대에는 연간 9억 톤의 유량이 흐르고 있었다(Wang and Cheng 1999). 1950년대 정의협의 유량(연간 약 10억 톤)에 필적하는 유량이다. 북대하가 언제 헤이허에 도달하지 않게 되었는지 안타깝지만 확실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데, 이 정도의 유량 공급이 비스듬히 잘린 영향은 컸을 것이다. 아울러 정의협의 하류에 있는 정신鼎新 및 에치Eji Nai에서도 대약진 때 새로운 농지가 개발되는데, 면적을 생각하면 그 영향은 한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1958년에는 어지나기旗 의 행정시설이 서쪽 강, 곧 무렌강 근처의 새한도래賽漢桃來로부터 현재의 어지나기 중심으로 이주되었다. 이 때문에 서쪽 강의 유량을 동쪽 강, 곧 어지나강으로도입하려는 시책이 행해졌다고 들었다. 북대하에서 유입이 안 되어 크게 감소했던 하류 지역의 물을 행정부가 있는 동쪽의 강으로 집중시켜려던 것이다. 북대하의 유량 감소, 단류, 그리고 동쪽 강으로의 전류가 서쪽 강과 그 말단의 가순노르호를 말라 버리게 하고, 호수 면적을 크게 감소시키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시점에서 하류 지역의 물 부족은 심각한 문제가 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장예 주변의 농업 개발에 의한 헤이허 본류의 유량 감소가 진행되어 최종적으로는 1990년대 관개기의 극단적인 유량 감소가 큰 피해가 되어, 식생의 쇠퇴와 말단 호수의 완전한 소멸 등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절수 정책의 영향


1950년대 이후 진행된 헤이허 하류 지역의 물 부족은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 한층 심각해졌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2001년부터 5년 동안 국가 프로젝트로 하류로의 배분을 단계적으로 늘리는 중류와 하류의 물 분배에 관한 규정을 정하고, 절수에 몰두하게 되었다.


절수 정책으로 중류 지역에서는 환금작물과 물의 소비가 적은 작물의 전환, 소로의 개수에 의한 송수 효율의 개선, 하천수에서 지하수로 수원의 전환 등이 행해졌다. 가장 주요한 것은 중류 지역 물의 총사용량을 줄이고, 또 수원을 하천수에서 지하수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류 지역에서 물의 총사용량을 크게 줄이기는어렵고, 하천수를 줄이는 대신에 쓸데없이 지하수의 사용량을 늘리게 되었다. 이미 1990년대에 저하되기 시작한중류 지역의 지하수는 이 시책에 의하여 더욱 빠르게 수위가 저하되는 것이 우려되었다. 또한 앞 절에서 보여준 그림2-11에 의하면, 비관개기 중류에서 하류로 가는 유량, 곧 지하수에서 샘솟는 수량은 1990년대 이후 감소 경향이며, 절수 정책이 개시되었던 2001년 이후도 똑같은 경향이다. 지하수위 저하의 이차적 영향으로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도 있다. 지하수 이용이 증가했기 때문에 지하수위가 저하되어 지하의 물의 양은 감소하고, 그 결과 하류로 흐르는 물의 양 가운데 지하수를 기원으로 하는 물은 감소했던 것이다. 즉, 하류로 흘러가는 물은 실제로는 상류 지역에서 가져온 하천수인데, 수지로 생각했을 경우 중류 지역의 지하수 자원을 줄이면서 하류에서의 물이 확보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1년 이후에 추진된 절수 정책에 의하여 말단 호수는 그 수량을 회복했다. 그러나 그 물은 실은 중류 지역의 지하수를 줄인 것에 의하여 가져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물 부족에 의한 식생의 쇠퇴와 말단 호수가 소멸된 하류 지역과 수원인 상류 지역에서는 초원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 생태이민 정책이 실시되었다. 이미 보았듯이 하류 지역에서의 식생의 쇠퇴도 유목의 영향이라기보다는중류 지역에서의 물 이용이 증대함에 의한 하류 지역의 물 부족이 원이다. 따라서 수자원의 측면에서 보면, 생태이민 정책으로 행해진 유목에서 축사 사육으로의 전환 및 그로 인한 사료 생산, 또는 농업으로의 생업 변경은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욱이 하류 지역에서는 송수 효율을 올려서 말단 호수를 부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원래의 자연스런 강에 평행하도록 거의 하류 지역 모두에 콘크리트로 만든 수로가 건설되었다. 이것은 강가 지역의 지하수의 저하, 강가 식생의 쇠퇴 등 새로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크림 반도 하류 지역의 사례


헤이허의 사례를 상세히 살펴보았는데, 크림 반도 하류 지역에서도 똑같은 오아시스 농업 지역에서 신규 관개농지 개발에 수반한 하류의 하천수량 감소가 일어나, 강가 식생의 쇠퇴 등 여러 환경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카라코롬, 힌두쿠시 산맥을 원류로 하는 야르칸드강yarkand river에 남쪽부터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단하여 합류하는 호탄강Khōtan과, 북쪽부터 천산산맥의 물을 모아서 합류하는 아쿠스강이란 세 가지 지류가 아쿠스 근처에서 합류하고, 타림강이 되어 동쪽으로 흘러 간다. 어느 하천에서도 옛날부터 산기슭 선상지에서 오아시스 농업이 행해졌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본격적인 근대농업 개발은 이 지역 독특한 국경방위와 농업 개발이란 두 역할을 담당하는 생산건설병단이 1954년에 건설되어, 그 이후 급속히 추진되었다. 야르칸드강, 아쿠스강, 타림강도 각각 원류 지역에서의 유량은 1950년대 이후 해마다 변동이 컸지만, 장기적으로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각 하천의 산기슭 선상지에서 관개농지가 대략 2배가 되었다. 이들 신규 개척농지는 옛날부터 경작이 행해졌던 농지에 비하여 토양의 염분 농도가 높고, 경작에 부적합한 장소로 남겨두었던 장소였다. 이러한 농지에서의 생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기존의 관개농지보다 염분을 씻어 내기 위해 다량의 관개수가 사용되었다. 이 결과, 아쿠스의 합류점 바로 아래의 유량관측소에서 측정한 유량을 보면, 1950년대에 비하여 1990년대에는 30%의 유량이 감소했다. 아쿠스의 합류점보다 하류 쪽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은 크게 감소하여, 헤이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장 하류의 물 부족을 불러오고 호양 숲의 고사, 농지의 황폐 및 방기, 사막화 등의 환경문제가 나타났다(Jiang 외. 2005). 그리고 헤이허와 마찬가지로 타림강 하류 지역의 환경문제는 중국 정부의 중점 정책의 하나가 되어, 환경의 회복을 도모하게 되었다(陳·中尾 2009). 


아랄해, 헤이허, 그리고 타림강에서 저마다의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농업 개발에 의한 물의 과잉 이용과 그 결과로서 물 부족이 일어났다. 이것은 중앙 유라시아에 공통된 현대의 환경문제이다.





물과 인간의 관계사에서 보여주는 것


건조·반건조 지역의 생태환경은 미묘한 균형을 이루며 성립해 있다. 종래 사람들은 생태환경에 대한 부하를 이동이라 하는 수단으로 경감하는 유목이란 생업형태로 그 위약한 생태환경과의 공존을 수행해 왔다. 최근 인간활동의 증대에 의하여 그 관계는 크게 변모하여, 다양한 환경문제가 발생했다. 게다가 헤이허의 사례에서 보면 환경문제에 대한 대책(정책)은 말단 호수가 부활하고 하류 지역에서의 식생이 회복하는 등 효과를 올리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 중류 지역에서의 지하수 저하 같이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켜, 말하자면 부하의 악순환에 빠져 버린 상황도 출현했다.


물이란 자원에 제약된 건조·반건조 지역에서 물과 인간의 관계가 변천하는 걸 보여주면,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물 부족에 대해서도, 인구증가 등 농지 개발의 필요성이 발생한 경우에도, 인류는 관개수로의 개설, 지하수 개발,또는 절수 같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그때마다 대응하여 위기에 적응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물 부족의 결과로 오아시스를 방기하고 다른 장소로 이주하는 일도 새로운 적지를 찾아 개발한다는, 적응의 한 형태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적응의 역사는 오아시스의 방기도 포함하여 기본적으로는 인간 활동을 확대하여 가는 것이 전제였다. 그러나 현재의 지구환경문제에서 보여주는 건, 지구라는 체계의 안에는 새로운 개발의 여지가 계속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지구환경문제에 대한 적응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발상이 필요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 의미에서 과거의 인간과 환경의 관계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 지금이야말로 요구된다. 중앙 유라시아의 농경과 풍토의 역사적 변천은 무엇보다도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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