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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일들을 민족 문제로만 접근하면 설명할 수 없는 측면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의 일들을 민족 간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간단히 일본인은 모두 나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릴 위험이 있다. 민족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권과 사상의 자유, 법의 공정함 같은 측면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영화에서 나오듯이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인민의 소요를 막기 위해 일본 권력층은 재일조선인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게 했다. 가뜩이나 5년 전 일본 최초로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쌀 폭동의 경험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요인의 하나였겠지. 그러한 소요사태를 방지하고자 약자인 조선인들을 희생양으로 내세웠다. 지금도 그러한 일은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현대 한국 안에서도 이주노동자라든지 성소수자들이 그렇게 공격을 받고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조선인 학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그만큼 일본 인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던 탓이겠다- 일본 당국은 조선인들 가운데 원흉을 만들어 그를 처단함으로써 막으려 했고, 그렇게 선택된 것이 박열을 비롯한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세력이었다. 천황은 곧 신이라는 일본의 국가 정신에서는 그러한 반동세력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박열 이전에도 근대국가에서 대역죄인이란 전근대적인 죄목으로 사형된 일본인들이 있었다는 대사가 오가기도 한다. 천황이 아직도 존재하는 일본이라든지, 왕실이 존재하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아닌가? 아무튼 그 문제는 나중에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조선인이며 무정부주의 세력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물이 희생양으로 선택된다. 


그들을 심문하던 다테마스 가이세이라는 인물도 매우 흥미롭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다음이 가네코 후미코이고, 정작 주인공인 박열은 뒤로 밀린다. 일본 당국에선 이미 답을 내린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라는 요구를 하지만, 다테마스 가이세이라는 예심판사는 자신이 배우고 공부한 원칙과 신념에 위배되는 요구를 받으며 심적 갈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둘을 취조하고 심문하면서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더 공고히 하며 공정하게 절차를 진행시킨다. 당시 일본에는 이런 인물이 있었구나, 이런 제도가 있었구나 하는 점에 놀랐다. 학창시절 배우기로는 일본은 북한 공산당처럼 나쁜놈들이기만 했는데 말이다. 일본이라면 치를 떨도록 교육을 받았는데 말이다. 그 예심판사만이 아니라 변호사라든지, 사회운동가들이 다수 등장하는 모습을 보며 일본 그 자체가 악마이고 나쁜 존재가 아니라 일본에서도 삐뚤어진 권력층이 문제였겠다는 생각이 들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배우고 쌓아 왔던 지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안에서 인권과 평화, 노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는지 최근 몇 년 사이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안산에서 만난, 홋카이도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일본인들도 그 하나였다. 일본 자체를 악으로 정의하면 우리는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고리를 찾을 수 없다. 민족문제에 빠지면 그러한 오류에 빠지기 쉽다. 민족국가란 권력층이 얼마나 사람들을 조종하기 쉽게 만드는 허상이란 말인가. 사람들을 세뇌하고 그들을 쉽게 추동하기 위해 그러한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겠지? 우리는 인간 그 자체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평등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정신,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역사에서는 그를 위한 도구라고 했던 것들이 오히려 그를 해치고 억압하게 되어 버린 사례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고, 결국 수단이 인간을 옥죄어 버린 결과가 아닐런가 싶다. 지금도 그러한 오류와 잘못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지 말자. 그러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박열"을 보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그런데 박열이란 인물은 감옥 안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조선 광복과 석방 이후 참 요상한 행보를 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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