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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雜다한 글

좋은 씨앗, 나쁜 씨앗, 이상한 씨앗

by 石基 2017.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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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농사를 짓지 않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씨앗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졌다. 여러 요인 때문이겠지만 도시농업이 성행하며 도시에서도 농사짓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로열티 문제와 관련하여 언론에서도 자주 이 주제를 다루기에 그러한 것 같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특히 토종 씨앗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듯하다. 10년 전만 해도 인터넷 검색창에 ‘토종’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주로 닭백숙이 맛있다는 어떤 가든이나 외국인 선수에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자랑하는 운동선수, 또는 국산임을 내세우는 농산물들이 결과창에 나타났다. 지금도 그러한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한구석에서 토종 씨앗과 관련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으니 세상이 그래도 많이 변했음을 실감하곤 한다.


토종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함께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도 찾아볼 수 있다. 토종 씨앗만이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를 지닌 유일무이의 자산이라는 의견부터 토종 씨앗이 좋기는 무어가 좋으냐며 애당초 별 가치가 없으니 사라진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도 아니면 토종 씨앗이란 단어를 난생 처음 접하고 그에 전혀 관심이 없는 반응도 있게 마련이다. 농사 좀 안다는 사람은 모두 토종 씨앗, 토종 씨앗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토종 씨앗은 무어란 말인가?



토종 씨앗은 ㅇㅇ이다


‘토종 씨앗’은 엄밀히 따지면 토종과 씨앗이란 두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토종土種’이란 단어에는 ‘본디부터 그곳에서 나는 종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토종이라고만 해도 그 안에 종자, 즉 씨앗이란 의미가 담겨 있으니 토종 씨앗은 역전앞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그럼 왜 굳이 씨앗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일까? 그건 토종이라 하면 동식물을 아울러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식물의 씨앗만 가리킨다는 걸 명확히 하고자 토종 씨앗이라 부른다고 할  수 있다.


토종을 전문으로 다루는 한국의 유일한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토종연구회에서 정의하는 토종의 개념을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토종은 한반도의 자연생태계에서 대대로 살아왔거나 농업생태계에서 농민에 의하여 대대로 사양, 재배 또는 이용되고 선발되어 내려와 한국의 기후와 풍토에 잘 적응된 동물, 식물, 그리고 미생물이다.”


이 정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적응’이라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동식물이 토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한국의 자연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했느냐의 여부라는 점이다. 농사로 국한하여,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재배해 오던 작물이 토종이 아니라 농민이 재배하는 작물이 한국의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면 그것이 바로 토종이라는 뜻이 된다.




곰과 호랑이가 먹던 마늘


토종 씨앗을 주제로 강연을 가서 사람들에게 “어떤 게 토종 작물일까요?”라고 물으면 흔히 이런 답을 내놓곤 한다. “마늘과 쑥이요.” 쑥이야 작물이 아니라 식물이니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는데, 마늘은 사실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마늘과는 다른 식물이라는 지적이 많다. 마늘도 이미 <삼국유사> 같은 기록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에 들어온 작물이기는 하지만, 서아시아가 원산지로서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도 재배가 되었고 아시아 쪽으로는 기원전 2세기경 중국으로 전파된 것이라 한다. 단군 이야기는 기원전 2333년 무렵의 일이라고 하니, 당시에 곰과 호랑이가 먹었다는 마늘은 지금의 마늘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모르겠다. 환단고기 같은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우리가 재배하던 마늘이 세계 각지로 퍼진 것이라고 할지도 말이다. 아무튼 단군신화의 마늘은 지금의 마늘이 아니라 명이라고도 알려진 산마늘일 것이라 한다. 그 분포지역도 한국과 일본, 중국 북부, 시베리아 및 캄차카반도 일대라고 하니 꽤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다른 지역에서 한국으로 유입된 작물에는 마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거의 모든 작물이 죄다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그 시간적, 공간적 유래를 따지자면 한국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자생하여 사람들이 그걸 재배하기 시작한 작물은 하나도 없다! 아, 아니다. 한두 가지는 있다. 대두라고 알려진 메주콩과 팥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이 둘은 모두 중국 북부와 만주 일대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들과 함께 여기저기 왕래하며 지냈을 테니 한국에도 꽤 오래전부터 들어와 자리를 잡고 살았을 확률이 높다. 그 이외에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하는 김치의 재료인 배추부터 마늘, 무, 고추, 생강 등도 모두 외국에서 도입된 작물이며, 심지어 우리가 날마다 먹는 쌀밥의 벼도 외국에서 들어온 작물이다. 그러니 시간과 공간적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재배되던 것만 토종이라고 고집하면, 우리가 토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게 된다. 순수성과 순혈주의는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종의 이데아일 뿐이다. 




저항하라! 그리고 살아남으라


아니, 그렇다면 옛날부터 내려온 것도 별로 없는 마당에 토종 씨앗이 무엇 때문에 중요한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서 토종 씨앗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 적응력이라고 언급했다. 그것이 한국이란 자연환경에서 농민과 함께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터득한 능력이다. 생명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늘 주변의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살아남는다. 그 변화에 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거나 소멸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토종 씨앗은 어느 장소에서 긴 시간 동안 농민에 의해 재배되면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기후상황이라든지, 병충해라든지 하는 사건들을 맞닥뜨리면서 때로는 스스로의 힘으로, 또 때로는 농민의 도움을 통해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을 고스란히 씨앗에 저장하여 후대에 물려주었다. 우리가 만나는 토종 씨앗 한 알 한 알에는 그러한 역사성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특정한 기후조건이나 병충해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능력을 다른 말로 저항성이라 한다. 생명체가 외부의 여러 유해한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성질이다. 그래서 토종 씨앗은 ‘수평저항성’이 발달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어떠한 기후조건, 어떠한 병충해에도 쉽게 절멸되지 않고 살아남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하지만 토종 씨앗이 슈퍼만능종자는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어느 한 공간 속에서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그가 경험해보지 못한 기후가 닥칠 수 있고, 그가 맞서보지 못한 병해충이 있을 수 있다. 풍부한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해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그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반면 새로이 육종된 씨앗, 즉 신품종이나 개량종의 경우에는 토종 씨앗과 다른 성질을 띤다. 그들은 이른바 ‘수직저항성’이 발달했다고 하는데, 처음 개발될 때 목표로 했던 특정 기후나 병해충에는 매우 강력하나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특징을 가리킨다. 우리는 과거 통일벼의 사례에서 그를 잘 목격했다.




씨앗에서는 싹이 튼다


농사가 산업화되면서 씨앗도 산업의 한 영역에 포섭되었다. 종자산업법이란 법안마저 제정되어 과거와 달리 누구나 함부로 씨앗을 다룰 수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세계무역체제와 함께 농산물이 농상품이 되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그러한 제한은 더욱 강해졌다. 오랜 세월 농민과 함께 공진화하면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던 씨앗은 이제 지적재산권과 특허권이란 이름으로 극소수의 개발자 또는 농기업의 손아귀에 쥐어지면서 이윤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바이엘과 몬산토, 켐차이나와 신젠타 같은 대규모 인수합병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에 맞서 세계에서는 농민의 종자권을 주장하며 씨앗에 대한 실질적 권리를 그를 지키고 개발해 온 주역인 농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나 토종씨드림이란 단체에서 그 정신에 동의하며 토종 씨앗을 보전하는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생계가 걸린 농민들이 전면에 나서 신품종을 거부하고 토종 씨앗으로만 농사를 짓는 선택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시장에선 크고 수량이 많고 때깔이 좋은 농산물만 받아들이는 마당에, 상대적으로 작고 수량이 적고 때깔도 잘 안 나는 토종 씨앗을 활용해 농사를 지으라는 건 너무 가혹한 요구일 수 있다. 농산물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곡소리가 절로 나는 저임금의 한국 사회에서 일반 농산물보다 가격이 좀 더 높을 수밖에 없는 토종 씨앗의 농산물이 설 자리는 아직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일부 뜻이 있는 사람들은 예외겠지만 말이다. 그 영역을 일상의 곳곳으로 확대하기에는 힘에 부친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그것의 보전에 힘쓰고 있는 사람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땀 흘리며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언젠가 그들의 노력이 어떠한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씨앗은 흙에 심으면 싹이 튼다. 그것이 좋은 씨앗이든, 나쁜 씨앗이든, 이상한 씨앗이든 그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누군가가 땅을 일구어 씨앗을 심기만 하면 된다. 그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토종 씨앗을 얻어 그를 흙에 심고, 작물을 가꾸어 직접 씨앗을 받도록 하자. 그리고 다시 이웃에게 씨앗을 나누자. 씨앗을 심으면 싹이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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