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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이 글이었다. 

세계의 살충제 사용량이 예상보다 수질을 심하게 오염시키고 있다는 관련 논문이다.


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15/04/150414083714.htm



이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한국에서도 농민들이 무식하게 농약을 팍팍 치니까 그렇다고 할 사람이 있겠지...'


그래서 잘은 모르지만, 이런 변명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농민들이 농약을 팍팍 쓴다고 당신들 문제라고 지적질하고 싶으시다면 좀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분들도 그분들 나름대로 할 말이 많습니다. 

먼저 지난 30여 년 한국의 농민인구가 얼마나 감소했는지 보십시오.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06043.html




이 분석에 의하면, 1980년 한국의 농민인구는 전체 1082만6508명으로 전체 3740만6815명의 인구 가운데 28.9%를 차지했습니다. 반올림해서 한국 전체 인구의 30%가 농민이라고 하지요. 이 시절만 해도 도시민의 대부분이 농민의 아들딸이었죠. 

그러던 것이 30년이 지난 2010년, 농민 인구는 전체 4799만761명 가운데 306만2956명으로 대폭 감소합니다. 전체 인구의 6.4%이지요. 그 인구도 또 4년이 지난 작년에는 250만 명대로 감소했다고 합니다. 4년 만에 56만 명 가까이 줄어든 것입니다.


이 분석의 농가당 경지면적 정보도를 보면서 많은 걸 유추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마 고령화 등으로 경지면적이 0.5헥타르, 곧 1500평 미만인 농가가 급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3000평 이상의 농가는 확 줄었죠. 또한 대규모 경지면적을 지닌 농가들은 수도권에서 더욱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수도권에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 사는데 그들의 먹을거리는 점점 더 머나먼 곳에서 오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뜨고 있는 로컬푸드가 말처럼 쉽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물리적 거리로만 보면 말입니다.





아무튼 처음으로 돌아가 하고픈 말은 이겁니다. 

현재 한국의 농업은 농민들이 농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의 기후특성상 여름철의 고온다습한 기후는 풀들이 번성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입니다. 한여름의 논밭에 나가보신 적이 있나요? 무척 덥지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르륵 흐르지요. 그 환경에서 풀들이 얼마나 무섭게 자라는지 모릅니다. 농담으로, 아침에 나가 풀을 뽑으면 저녁이면 처음 풀을 뽑기 시작한 자리에서 또 새 풀이 난다고 하죠.


과거 농민이 많아서 일손이 충분하던 시절에는 사람의 손으로 해결이 가능했을 겁니다. 품앗이니 두레니 하는 조직도 살아 있었을 테구요. 상대적으로 값비싼 농약에 의존하기보단 서로가 서로의 일을 돕는 형식으로 풀 문제를 해결했겠지요. 

그러던 것이 점점 젊은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농촌에 남은 건 떠나지 못해 남은 사람이거나 지역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비닐과 농약 등과 같은 화학 농자재가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면서 대량으로 풀리죠. 당장 도시민들만 해도 어떻습니까? 자가용 타다가 대중교통만 타고 다니기가 쉽나요? 그런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뙤약볕에서 무더위와 싸워가며 풀을 뽑다 한두 시간 쉭 약을 치면 풀이 죽으니 얼마나 신세계가 펼쳐졌겠습니까. 말해 무얼 해요.


또 농촌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사람이 귀해지다보니 품앗이니 두레니 하는 상부상조의 노동조직도 사라지고 임금을 주고받는 고용관계가 자연스레 형성되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농사지어 팔아봤자 몇 푼이나 남는다고 비싼 사람을 사다 부리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습관처럼 농약방에서 저렴한 그리고 효과 좋은(고독성) 농약을 사다가 뿌리고 마는 겁니다. 


이렇게 농민들의 농약에 의존한 생산방식은 한국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농민들도 이 변화의 희생자입니다. 도시민들은 같은 기간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농산물 가격을 저렴하게 유지하는 정책으로 헤택을 많이 보았지요. 그렇지만 농촌의 농민들은 당시 어떤 혜택이 있었습니까? 정부의 보조금으로 값싸게 농약과 비료와 농기계를 사는 혜택일까요? 솔직히 그 정책으로는 관련 업자들과 농촌의 제왕인 농협이나 배를 불리고 좋았지요. 실질적으로 농민에게 혜택이 돌아갔다고는 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농민들은 그렇게 획기적인 변화의 바람 앞에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농민들에게 지난 세월은, 예전부터 유지되던 마을 공동체는 깨져버리고 철저히 개인으로 살아남아 홀로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싸워온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농민들은 뜻하지 않게 새로운 경쟁상대들을 만나게 되었지요. 정부의 자유무역 정책으로 인해 전 세계의 농민들과 원치 않는 경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농민들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변화에 성공한다면 또 한 번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다시 농촌에서 쫓겨나 도시의 유민으로 편입되거나 그럴 힘조차 없다면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겠지요. 현재 전체 인구의 5%가 농민인데 이 과정을 거치며 1%대로 줄어들 것 같습니다.


한국의 식량체계는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궁지로 내몰고 개인으로서 살아남기를 강요했습니다. 그러한 체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체계인지 모르겠습니다. 2015년 4월 16일,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개인들에게만 희생을 전가하는 것 같습니다. 국가의 체계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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