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한국의 여러 농업관련 단체들에서 토종씨앗의 가치와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전여농, 흙살림, 귀농본부 등이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것이 바로 토종종자모임 씨드림이다. 그렇게 저마다 토종씨앗을 찾고 보존하는 운동을 펼친 지 5~6년이 지나고, 전여농에서 세계 식량주권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여타의 단체보다 전여농은 자신들의 특징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장을 만난 것이다. 전통적으로 씨앗은 주로 여성이 관리해왔다. 여성농민의 조직인 전여농에게 토종씨앗 보존은 잘 어울리는 옷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또한 전국에 조직망을 갖추고 있기에 각지에서 저마다 고유한 토종씨앗을 찾아서 보존하는 운동을 펼치기에도 좋다. 현재 전여농에서는 토종씨앗 보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토종씨앗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가공, 유통까지 하여 판매하고 있다. 그를 통하여 토종씨앗 보존운동을 더욱 안정화시키고 농민과 농촌공동체의 회복운동까지 지향하고 있다.
주요 언론에서는 이번 전여농의 세계 식량주권상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한국 여성농민들의 토종씨앗 보존 노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이번 수상은 참으로 한국 농민운동사에 빛나는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여성농민 만세!
식량주권상이란; '녹색혁명의 설계자'로 불리는 노먼 볼로그 박사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세계식량상의 대안으로 지역사회 식량보장연합(CFSC) 국제연계위원회가 2009년에 만들어, 세계 곳곳에서 식량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투쟁하는 단체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전여농은 올해 스리랑카와 온두라스, 미국 플로리다의 농업노동자 단체와 함께 2012년 대상 수상 단체로 선정됐다. 이 상은 2009년 시작되어 올해로 4회째를 맞이했는데, 첫해에는 세계적인 농민운동기구인 ‘비아 캄페시아’가 수상했고, 그 뒤 ‘전미 가족농협회’(2010년), 브라질 농민단체 ‘토지없는 농민MST’(2011년) 등이 수상했다.
CFSC는 전여농에 대해 "여성의 권리체계에서 식량주권의 실천을 발전시켜왔다"면서 "산업화된 식량체계는 저임금과 강제 노동, 여성농민들이 대를 이어오며 발전시켜온 씨앗에 대한 기업의 특허권으로, 또 그들의 가족을 부양하는 여성농민의 노동을 평가절하하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구조와 체계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 단체는 "한국은 남성지배사회이며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로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라며 "농지는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정부는 광범위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며 기업들은 농업을 인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단체는 "전여농은 전국농민회총연맹과 함께 전국의 식량주권을 지켜내기 위해 100여개 이상의 단체와 함께 운동본부를 만들었다"며 "여성농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한편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식량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여성농민과 지역의 소비자들을 연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식량주권상을 수상하는 소감과 그 모습을 전여농 홈페이지에서 아래와 같이 가져왔다. 한번씩 읽어보시길 바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박점옥입니다.
전여농의 모든 회원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식량주권상을 수상하는 것에 대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 2011년 1월 전여농 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반도의 남쪽 지역에서 양파와 마늘, 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10가지 종류의 토종 벼를 작년부터 보존하는 활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여농은 1989년 창립하여 올 해로 23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전여농은 여성농민들이 스스로 조직을 건설하여 여성농민의 단결된 힘을 모아내고자 창립되었습니다. 우리는 여성농민의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 향상과 인간다운 삶을 지향합니다. 또한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하여 장기적으로는 민중을 위한 사회의 변화를 이루고자 합니다.
전여농은 비아 캄페시나를 만나고 식량주권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식량주권 운동을 다양한 형태로 벌이고 있습니다. 마을을 기반으로 한 여성농민들의 생산자 공동체를 구성하여 여성농민의 권리 보장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토종씨앗 지키기 활동을 통해 종자에 대한 권리를 농민의 손으로 되찾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은 단지 한국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농업정책을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활동은 식량을 상품화시키고 기후위기와 식량위기를 발생시키는 글로벌 식량 체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식량주권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와 많은 소비자들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 내의 환경운동, 여성운동, 민중운동을 벌이는 단체들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식량주권 운동을 통하여 여성농민의 중요한 역할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 결정하고, 안전한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생산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여성농민 혼자서는 힘들기에 우리는 힘을 하나로 모아내고자 공동체를 구성했습니다. 식량주권 운동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배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 그 이상을 해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여성농민이 해 낼 수 있는 그 이상의 힘이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식량주권 상을 수상하게 된 전여농은 한국 내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우리 여성농민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냄과 동시에 식량이 지닌 소중한 가치를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여농은 식량주권 운동을 통하여 여성농민으로 존재했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농민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여성농민이 인류의 먹을거리인 식량을 생산하는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 내고 있는지 알려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활동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활동을 더욱 더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땀을 흘려가며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젖줄인 식량을 생산하는 여성농민들과 함께 이 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상의 주인공은 단지 한국의 전여농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여성농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여성농민들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식량주권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고 우리 모두의 가치가 될 수 있도록 활동해 나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전여농의 모든 회원들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여성농민들과 함께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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