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전체 생산량의 단 12%만이 자유무역 원칙에 따라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걸 미국의 카길과 컨티넨탈, 프랑스의 루이드레퓌스, 스위스의 앙드레, 아르헨티나의 분게라는 이른바 곡물메이저가 85%를 장악하여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구조에 점점 균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단적인 예가 2008년 세계 식량 가격이 급등하여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후변화, 인도와 중국 같은 신흥 개발국의 육식 증가로 인한 곡물 수요의 증가, 또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생물연료의 수요가 높아지는 점, 또한 개도국의 경제개발로 인한 농지의 감소, 대규모 공장형 농업으로 악화된 땅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하여 생산량보다 소비량이 높아지면서 세계의 곡물 재고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이 식량 가격 폭등의 주요한 원인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월가와 같은 투기자본의 곡물시장 개입이란 요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식량안보의 해결과 자급률의 향상을 위한 방안을 지난 7월 10일 발표했습니다. 그 주요 골자는 주식으로 삼는 곡물인 벼와 밀의 자급률을 높이고, 기타 주요한 농산물의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를 위한 방법은 다름 아니라 해외농업개발입니다. 해외농업개발이란 국내의 농업 상황은 열악하기에 농지가 넓어 대규모로 기계화하여 재배하기 좋은 국가의 땅에서 농산물을 수확하여 국내로 들여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를 위하여 여러 대기업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약속까지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해외농업개발을 통한 농산물의 유입은 WTO의 규정에 따르면 수입농산물에 해당하여 그 국가의 규제를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정말 심각한 식량 위기의 상황에 처한다면 해당 국가에서 그러한 행위를 그냥 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아덴만의 여명'처럼 우리 해군을 파견하여 구출해 무사히 곡물 운송선을 호위해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으로 식량자급률을 높이겠다고 하니,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대기업에 특혜를 몰아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지도 모르지요.
여기서 잠깐 우리의 육식 문화에 대해 집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우리는 원래 곡식을 위주로 밥상을 차리고 반찬으로 장류와 나물류를 먹던 민족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곡식주의자들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던 우리가 생활수준이 올라가며 고기를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이제 거리에 나가면 여기도 고깃집, 저기도 고깃집뿐이라 고기가 아니면 외식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고기를 먹는 게 과연 바람직할까요?
소고기 1kg을 얻는 데에는 곡물이 12kg 정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2010년 우리나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72.8kg입니다. 만약 하루에 두 끼를 밥으로 먹는다면, 한 공기에 약 100g의 쌀을 먹는 셈이죠. 그렇다면 소고기 반근(300g)을 거기에 곁들여 밥을 먹는다면, 소고기 반근은 약 3600g의 쌀과 맞먹는 양이 됩니다. 조선시대에 밥만 수북히 쌓아 많이 먹던 시절에도 밥 한 끼에 약 300g 정도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걸 한 끼에 3700g을 해치우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밥상을 누리는 사이 세계의 한쪽에서는 1분에 약 17명 꼴로 5세 미만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계의 식량 생산량은 충분하나 그걸 제대로 분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구호와 원조의 형태가 있을 뿐이고, 그건 지원을 받는 나라에게도 바람직한 방식이 아닙니다.
그나마 돼지는 소의 절반 정도, 닭은 1/4 정도의 곡물을 사료로 먹습니다. 하지만 공장형 밀식 축산에서 오는 온실가스 배출 문제, 분뇨에 의한 오염 문제, 엄청난 물 사용으로 인한 수자원의 고갈 등은 매우 심각하지요. 혹시 축사가 있는 동네에 가보셨나요? 냄새와 파리 때문에 살 수가 없습니다. 동네 주민들은 한결같이 저게 못 들어오도록 했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대부분 노인만 남아 그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만 앓으며 살던 곳에서 살 뿐이죠. 그런 동네에선 날만 풀리면 파리가 하도 많아져서 방충망이 필수입니다.
인간이 역사적으로 채식을 했느냐 육식을 했느냐는 논란이 많은 쟁점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구석기 식단에선 현대 식단에 비해 단백질 섭취가 30%로 20%나 높습니다. 대신 탄수화물이 20% 낮은 40%를 차지합니다. 그렇더라도 곡물을 기반으로 하는 탄수화물의 섭취가 더 많고, 그게 바로 우리의 치아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육식을 위한 치아보다 곡식이나 채소를 으깨기 위한 치아가 더 많은 것이 증거가 아닐까요.
누구는 세계의 온실가스를 농업에서도 13.5%나 배출한다며 농업이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건 대규모 공업형 농업과 축산업에서 야기되는 것으로, 소농과 그들이 행하고 있는 전통적인 생태농업과는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의 2007년 자료에 따르면, 오히려 유기농의 경우 3000평에 약 4톤의 탄소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고합니다. 현대의 대규모 공장형 농업에서는 많은 에너지를 대량으로 투입하는 방식으로 기계를 사용하여 농산물을 생산하기에 그렇습니다. 현대농업은 곧 석유농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현재 세계 각지의 소농은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건 물론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경제발전에 따른 도시화, 산업화의 물결 때문인데, 우리가 70~80년대에 겪은 급격한 변화가 그 좋은 예입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살게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뭐,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자랑스럽게 새마을운동과 녹색혁명, 산업 개발의 경험을 아프리카의 여러 개발도상국들에게 알리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사실 거기에는 그를 통하여 아프리카의 드넓은 땅을 손에 넣고 수많은 자원을 확보하고자 하는 계산이 깔려 있겠지만 말입니다. 설사 아프리카 국가들이 경제개발에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그에 따라 발생하는 혜택이 모든 인민에게 공정히 분배될 것인지도 하나의 문제이겠지만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여의도 70배에 달하는 면적의 농지가 개발과 발전 등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4대강 공사 등으로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는 한편, 농촌 인구가 감소하면서 휴경지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약 6%가 농민이고, 그 사람들 가운데 약 절반 가까이가 고령자라고 합니다. 우리의 농업에는 미래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디에 있을까요? 이것이 앞으로 풀어야 할 난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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