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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0일, 정부는 식량자급률을 현재 25%에서 2015년까지 3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주식인 쌀과 밀은 자급률 목표를 각각 90%에서 98%로, 1%에서 10%로 상향조정하여 주식의 자급률은 70%까지 올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이걸 생산하고 어떻게 유통시키느냐는 점이다. 


벼의 경우 현재 우루과이라운드 협약으로 2014년까지 국내 소비량의 12%인 약 41만 톤까지 수입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대규모 간척지 등의 논에서 벼가 아닌 대체 소득작물을 심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처음 식량안보를 목적으로 매립한 새만금간척지는 당시 72%는 농지로, 28%는 산업용으로 쓰겠다며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용도변경을 통해 거꾸로 30%의 농지와 70%의 산업용지가 되어 버렸다. 지난주 정부 안에서는 농업보조금을 개편한다느니 대폭 축소한다느니 하는 말이 떠돌았고, 대통령이 나서서 농업보조금이 너무 많다고까지 발언한 일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돈도 안 되는 농사를, 보조금으로 그 손해를 충당해주는 것도 아닌데 짓겠다고 나서겠는가? 손해란 표현은 그렇고, 환경을 보전하고 먹을거리를 공급하며 마음의 쉼터를 제공하는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혜택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도 가치의 인정도 이루어지지 않는 마당에 누가 농사를 짓겠는가?


그래도 벼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삼시 세끼는 아니여도 우리 대부분은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밥을 먹기에 일정한 소비자가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보리의 경우는 아예 자급률 산정 대상에서도 빠져 버렸다. 보리는 과거 보릿고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벼의 생산량이 부족했을 당시 주린 배를 채워주던 귀한 곡식이었다. 그때의 추억이 너무 배가 고파서였을까. 벼의 자급률 100%를 달성한 이후에는 점차 농지에서 그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보리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kg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1960년대의 1인당 소비량이 40kg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양이 줄어든 것이다. 한때 보리텐과 같은 보리음료로 잠시 각광을 받기도 했으나 종교적인 이유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고, 그 이후 보리로 된 음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보리밥이 다시 건강식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잠시 재배면적 등이 확대되기도 했으나, 또다시 소비가 줄어들면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재배면적이 17.6% 감소했다. 거기에 기후변화로 혹독한 추위가 찾아오면서 보리농사가 어려워진 것도 한몫한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내년에는 아예 보리의 수매가 폐지될 예정이다. 이로써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보리농사의 앞날 또한 어찌될지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보리에는 맥주보리라는 품종도 따로 있다. 이는 말 그대로 맥주를 만드는 데 쓰이는 보리인데, 이것도 값싼 수입산에 밀리면서 재배면적이 크게 줄어 간신히 명맥만 유지할 정도이다. 얼마전 어느 회사에서 독일산 원료를 가져다 만든 맥주를 시판했는데, 왜 국산 보리로 그런 기술을 개발할 생각은 안 하는 걸까? 물론 이윤 때문일 것이다.


그럼 밀은 사정이 나을까? 현재 자급률 1%도 안 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10%까지 자급률을 높이려는 것인가? 벼를 심지 말고 대신 논에다 밀을 심게 할까? 그건 밀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밀은 그 식물의 특성상 우리나라의 여름철에는 자라지 못한다. 밀을 주식으로 삼는 중동과 유럽에서도 밀농사는 가을에 심어 초여름에 수확한다. 밀과 같은 맥류는 여름철의 고온다습한 기후에는 견디지 못하고 문드러져 버린다. 그래서 우리도 가을, 중부지방에선 보통 10월 초중순에 심어 초여름인 6월 중순쯤에 수확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벼를 심지 않는다고 그 논에다 밀을 심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밀을 주식으로 하는 농지가 넓은 나라에서 생산하는 값싼 밀과 우리밀이 가격경쟁력이 있을 성 싶은가. 말도 되지 않는다. 이윤 사냥꾼인 기업에서 요즘 사람들 일부가 우리밀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높아지면서 우리밀을 조금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값싼 수입산 밀을 대량으로 사들이게 되어 있다.


그럼 이러한 자급률은 어떻게 높일까? 내 생각에는 식량안보의 차원에서 해외농업개발이라는 정책과 맞물려 돌아갈 것 같다. 결국 자급률 제고의 방안은 국내의 농업과 농민이 아니라 몇몇 대규모 기업 위주로 하여 혜택을 주고 지원책을 마련하여 추진할 것이다. 그 결과 국내 농업 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개발도상국 등지의 가난한 농민들은 선진국의 새로운 자본-제국주의로 더 고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 등으로 농업 생산성이 정체되거나 떨어질 우려가 농후한 현 시점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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