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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씨앗-작물

괴산 지역 2차 토종 수집 조사

by 石基 2010.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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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2일, 괴산 지역 토종 수집에 앞서 두 번째 조사에 나섰다. 오늘은 감물면이 그 대상 지역이다. 아침 7시에 출발했는데 도로에는 출근하는 차량으로 가득하다. 다음에는 더 일찍 나서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연풍이 자식 산책시키는 게 더 힘들어지는데 걱정이다.

 

화성 봉담에 사시는 안완식 박사님을 태우고자 달렸다. 이쪽은 출근하는 차량이 더욱 많아 길이 막힌다. 지체하게 생겼구나. 도로를 달리는데 옆으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출신 때문인가, 온 나라 안이 공사장이다. 이 아파트 공사 때문에 안완식 박사님도 이사를 가게 생기셨다. 요즘 미분양이 넘친다는데 왜 그리 기를 쓰고 공사를 벌이는지 모르겠다. 혹시 최후의 발악?

 

 

10시 조금 넘어 괴산에 도착하여 변현단 선생님을 기다린다. 오는 길에 지난 1차 때 미처 다 보지 못한 불정면의 일부 지역을 둘러보고 왔다. 역시 안완식 박사님이 계셔서 그런가 사전조사에도 안정감이 생겼다. 안철환 선생님이 변현단 선생님을 부르는 호칭이 참 재밌다. "변 선생" 또는 "변 대표"라고 부르신다. "변"이란 성씨 때문에 그런가 보다. 흙살림 교육장 마당에서 10여 분 정도 기다리니 변 선생님이 단양에서 달려와 마치 카레이서처럼 부앙~ 하며 들어선다.

 

 

 

오늘은 감물면의 계담 서원이 자리한 계담이란 동네부터 시작한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첫 집부터 깔끔하니 맘에 들었다. 차에서 내려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번에는 그냥 차 안에서 둘러보기만 했는데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구나.

 

몇 가지 토종 작물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주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을에 씨를 받으면 그때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밭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주소를 적었다.

 

아래는 토종 땅콩이다.

 

 

배추처럼 속이 찬다는 배추상추.

 

 

텃밭의 어느 한 곳도 그냥 허투루 놀리는 법이 없다. 이 밭은 땅콩밭인데, 먼저 마늘을 심어 수확한 뒤에 땅콩을 심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옥수수를 심어 한 번 거두어 먹고, 다시 베어낸 옥수수 옆에는 녹두를 심었다. 도대체 몇 가지 작물을 돌리시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농사법도 꼼꼼하게 물어 기록하면 좋겠다. 다음에는 놓치지 말고 묻도록 하자.

 

 

텃밭의 전경. 서로 다른 작물이 제자리를 차지하며 어우러져 함께 자란다.

 

 

계담을 나오는 길에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카메라를 들었다. 밑으로는 괴산의 주요 농작물인 담배밭이 펼쳐져 있다.

 

 

이후 차를 타고 열심히 이 마을 저 마을 돌았다.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뜨겁고, 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하지도 않고, 이런 날은 그냥 그늘에 앉아 바람이나 기다리는 게 상책일 터. 하지만 쉴 수 없다. 부지런히 돌아야 오늘 안으로 감물면의 사전조사를 마칠 수 있다.

이담리를 지나 오창리로, 다시 백양리와 구월리로, 또 살짝 걸쳐 있는 장연면 방곡리 일부까지, 자리하고 있는 마을마다 쑤시고 다녔지만 특별히 사진으로 남길 만한 것은 찾지 못했다. 처음에는 괴산은 산골짜기가 많으니 그곳에 살고 있는 분들이 토종을 꽤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지도에 산골짜기에 마을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으면 그곳에는 이제 사람이 살지 않는다. 아니면 한두 집이 남아 돈벌이작물만 아주 넓게 심어 먹고 살았다. 또 그리고 큰길이 나면서 집들도 싹 새로 뜯어고치거나 새로운 문물이 들어가면서 옛것은 설 자리를 잃었다. 처음 생각보다 수집 품목이 적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시간은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잠시 땀도 식히고 배도 채울 겸 식당으로 들어섰다. 오늘 수고한 차는 그냥 햇볕 아래에 놓았다.

 

 

변현단 선생님과...

 

 

안철환 선생님... 둘 다 얼마나 입심이 센지 모른다. 조사하는 내내 심심하지 않게 다니고 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농업기술센터로 찾아가 황용하 소장님을 만났다. 이제 정년이 1년 남으셨다는데 퇴직 이후에는 토종을 키우고 널리 알리려는 일을 하시려 한단다. 지금도 꽤 많은 종류의 토종을 농장에 심고 있으시다. 소장님께 가지고 계신 토종 목록과 기억하고 있는 괴산만의 토종이 있으면 내용을 정리해 나중에 전해달라 부탁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괴산읍을 가로질러 칠성면 쪽을 통해 다시 감물면으로 들어섰다. 맹이재를 넘는데 여기에도 골짜기에 마을 표시가 있었으나 실제 마을은 찾을 수 없었다. 

다음은 매전리로 향했다. 매전리는 예전 토종 수집단 발대식 때 감물면 신리에 사시는 강영식 님이 매전의 안민동에는 뭐가 많을지 모른다고 언급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도로도 엄청 산골짜기이다. 그 끝에는 무심사라는 절도 하나 있어 겸사겸사 그곳으로 향했다.

양산목이란 곳에 도착하니 이런 곳에도 논이 있다. 산골이지만 들이 꽤 있어 농사짓고 사는 집이 아직도 많다. 몇몇 집을 keep해 놓고 다시 위로 올랐다.

 

 

 

드디어 길의 끝에 이르렀다. 이곳에 자리한 무심사. 주변으로는 화전민들의 집이었던 곳이 꽤 보인다. 예전에는 농사땅으로 썼을 법한 곳도 여러 곳 눈에 띈다. 무심사는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에 나온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사연 많은 동자승들이 있다는데 오늘은 그들을 보러 온 것이 아니니 땀만 식히고 목을 축인 다음 서둘러 길을 나섰다.

 

 

땀을 식히는 사이.

 

 

 

무심사 뒷편으로 펼쳐진 파란 하늘.

 

 

 

다음은 안민동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처음 보이는 집에서 한 할머니가 누가 이런 골짜기에 들어오나 쳐다보고 계신다. 슬그머니 다가가 이런저런 것을 묻고 확인한 다음 사진에 가지깨를 담았다. 다음에 오면 수집 대상이다.

 

 

조금 위로 오르니 마을회관이 있다. 그 앞에 어울리지 않게 소화전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까지 마을의 누군가가 텃밭으로 쓰고 있었다. 이 땅의 농민들은 땅 한 조각도 그냥 놔두는 법이 없다. 참으로 부지런하다.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서너 명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한 분. 그 가운데 한 할머니가 집으로 향하시길래 따라나섰다. 그 집에서 아래와 같은 배추상추를 보았다. 

 

 

또 토종 아욱도 있었다. 이건 잎이 작고, 잎의 모양도 시장에서 보던 아욱과는 달랐다. 이것도 나중에 수집 대상.

 

 

그리고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배에 대해 슬쩍 물었다. 그랬더니 이 동네에 그 나무가 있다며 우리를 이끄셨다. 지금은 방치되어 과실도 잘 달리지 않고 다른 나무에 치이고 있었다. 100년쯤 되었을 거라는데, 어릴 때는 그렇게 맛있게 먹었다며 기억을 떠올리신다. 귀한 나무인 줄 알았으니 앞으로 손보고 관리하시겠다는데 다음에 올 때는 어떤 모습일지 자뭇 궁금하다.

 

 

청배는 청실리라고 한다. 한자로는 靑實梨 푸른 열매의 배나무라는 말이다. 간혹 청실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무튼 익어도 이건 누렇게 되지 않고 푸릇푸릇하며, 오히려 누렇게 되면 껍질이 두꺼워져 맛이 떨어진단다. 예전에 먹었을 때 당도가 무지 높았다고 하는데, 기억은 상대적인 것이라 요즘처럼 단 것이 많은 세상에서는 어떤 맛일지 모르겠다.

 

 

과실이 제대로 달리지 못하고 많이 떨어졌는데, 그래도 몇 개가 달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완식 박사님이 알려주신 좋은 구도로 사진에 담았다.

 

 

이곳도 대부분의 땅은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단다. 전원주택으로 개발하려나? 땅은 땅의 가치로 그냥 놔두면 좋겠다. 소유와 매매의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아는 사람 중에 감평사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 바람대로 될려면 그 사람의 직업이 사라져야 하겠구나.

청실리가 서 있는 집은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이다. 그래서 이 나무를 따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동네 할머니께 들으니 이 마을의 대부분이 70~80대라고 한다. 가장 젊은 사람이 60대라니 말 다했다. 초고령 마을이다. 앞으로 10년 뒤, 아니 5년 뒤만 되어도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떠나시겠지...

 

 

 

청실리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목에서...

 

 

 

안민동을 떠나 광지실로 나갔다. 너른 땅의 마을이란 뜻일 게다. 실제로 지도로 보면 주변 산들 사이의 너른 땅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그곳에 자리한 마을이 광지실이다. 허나 이런 너른 땅은 축사 등을 많이 한다. 괴산 지역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다지 볼 게 많지 않았지만, 댑싸리 한 장 찍고 다음 마을로 넘어갔다.

 

 

배나무여울이란 곳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뱃사공이 마을사람과 길손을 건너다 주었겠지만, 지금은 다리가 놓여져 배나무여울이란 이름만 남았다. 제대로 관광지를 만들려면 그 다리부터 부숴야 한다. 찾아가기 어렵게, 또 찾아갔으면 하루 이상은 머물게 만들어야 관광지가 뜬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그 반대다. 찾아가기 쉽게 길부터 잘 닦고, 음식점이나 마구 난립하게 만들어 아무 특색도 맛도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다.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에 사람이 붐비는 법이다. 그런 맥락에서 토종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이제 돌아가는 길에 진짜 마지막으로 오창리의 유창이란 곳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박과 조롱박을 발견하고 기록에 남겼다. 주인 할머니를 찾아가 이것저것 묻고 싶었으나, 옥수수 출하로 정신 없이 바빠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하도 귀찮게 파리처럼 딴 데 가지도 않고 서 있으니 그제야 몇 가지 일러주신다. 지금이 한창 바쁠 때라 그럴 게다. 그렇게 보면 수집조사는 겨울이 가장 좋지 않은가 한다. 여름에는 이렇게 사전조사 다니며 살아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겨울에는 수확도 끝났겠다 본격적으로 수집에 나서는 방법이 좋겠다. 허나 예산을 지원하는 곳에서는 예산을 결산하기 전까지 결과를 보길 원하니 맞추기가 어렵다. 이번 수집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그 기간 조정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아래는 박의 수꽃이다. 

 

 

그리고 암꽃에는 이렇게 작게나마 박이 달려 있다.

 

 

유창 3리에서 가지깨.

 

 

유창 3리에서 해질 무렵에 바라본 마을 앞 논. 논두렁에는 콩이 자라고 있다. 

 

 

 

마지막 조사지를 나오고 있는 안완식 박사님.

 

 

시간은 6시가 넘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출발하자는 의견에 목도 다리 부근의 매운탕집에서 밥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11시가 다 되었다.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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