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9일, 괴산 지역 3차 사전 조사에 나섰다. 이번부터는 방침을 달리해, 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수집할 수 있으면 하면서 본격적으로 다니기로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30분 동안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6시 화성 봉담에 사시는 안완식 박사님 댁에서 모두 모여 10분 뒤 출발!
차가 밀리기 전에 출발한 작전이 주효했다. 하나도 막히는 일 없이 괴산까지 달렸다. 다들 아침 전이라 휴게소에 잠시 들러 아침을 먹고 괴산에 도착하니 9시 30분. 오늘은 일찍 나섰으나 괴산 IC로 내려가 조사하려고 하여 네비게이션을 설정해 따라가다가 길이 어긋나면서 한참을 돌았다. 덕분에 충주에서 괴산 불정면으로 넘어오는 대간치라는 곳을 지나왔다. 참으로 깊고 깊은 산골이다.
가장 먼저 지난 조사 때 들른 하소를 기점으로 지문마을 찾아갔다. 이곳은 몇 가구 살지 않았는데, 특이 사항이 없어 그냥 훑어보기만 하고 돌아나왔다.
강 건너에서 바라본 사실(새말).
다음은 지문 마을 건너에 있는 사실이란 마을을 찾아갔다. 이곳에 오니 무슨 파리가 이렇게 많은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다. 할머니께 들으니 언덕 너머에 계사가 생기면서 여름마다 이 난리라고 한다. 마을에 축사가 생긴다고 하면 크게 반대한다고 하더니 다 그 이유가 있어 그렇구나. 집에 들어서 할머니를 만난 김에 조사를 시작했다. 먼저 텃밭에 심어 놓은 아욱에 대해서부터 물었다. 아욱은 옛날부터 계속 받아서 심는 것인데 장에서 파는 씨앗은 이 맛이 나지 않는다며 맛이 참 좋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조사 때 보았던 그 아욱과 비슷하다.
사실 마을에서 만난 괴산 지역 토종 아욱(위), 아래는 그 꽃.
아욱 씨를 받아주시는 임삼례(78) 할머니.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몸이 불편하여 이제 농사를 못 짓는다고 하신다.
사실 마을 댑싸리. 이것도 특성이 다르다며 나중에 받을 씨 목록에 추가되었다.
다음은 광진리 방향으로 중리 마을을 찾았다. 들어서서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는 집의 텃밭에서 특이한 오이를 발견했다. 하지만 집에 사람이 없어 내력을 알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옆집에 찾아가 연락처를 물었으나 이상한 외판원 취급이다. 자신들은 시골집으로 놀러와서 아무것도 모른다며 문전박대... 흐음 이럴 때는 참 기운이 빠진다. 도시물을 먹은 사람이라 그런지 의심부터 하기는. 집에 누가 찾아오면 반갑지 않은 도시의 문화이기에 그렇겠지. 인간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할 수 없이 기록만 하고 차에 올라타 돌아서려는데 경운기를 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을 어귀로 들어오신다. 혹시? 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였다! 얼른 따라 들어가 텃밭으로 할머니부터 모시고 왔다. 오이는 누구한테 얻어 심었다는데 미국 오이라고 하신다. 이게 조선 오이보다 맛이 좋아 본인은 이걸 즐겨 먹는다고 하셨다.
미국에서 왔다고 하신 백오이.
백오이의 어릴 때 모습.
조선 오이가 어릴 때(우)와 이렇게 다르다.
백오이를 조사하시는 안완식 박사님과 씻지도 못하고 조사에 응해 주신 홍애희(64) 할머니.
이 집의 이상하게 생긴 차조기. 이후 다른 차조기들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이와 달랐다. 홍애희 할머니는 차조기에 밤, 대추, 박속, 인동덩굴을 넣고 함께 달여서 감기약으로 쓴다고 하신다.
댑싸리로 만든 비. 헛간에 이런 댑싸리 비가 엄청 많았다. 할아버지의 솜씨.
오늘의 수집 씨앗. 황기장.
문전박대 당한 바로 옆집에 자라고 있는 차조기.
이후 바로 옆에 있는 상리를 지나면서 보니 과수 단지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1사 1촌 맺기로 뭔가 협약을 맺었는지 여기저기 홍보하는 현수막이 잔뜩 걸려 있다. 또 신원터와 잿골도 몇 가구 살지 않으며 과수가 많아 그대로 통과했다.
다음 광진리의 진대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 왔을 때 전화가 오는 바람에 조사에 적극적으로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운데, 이 마을에서도 백오이를 발견했다. 이런 걸 보면 안완식 박사님 말씀이 딱 맞다. 그 마을에서 가장 토종이 많은 집을 보면 다른 집은 보지 않아도 거기서 거기다. 또 이 마을에 이런 것들이 있으면 옆 마을에도 이런 것들이 대개 있다. 많은 경험에서 나온 말씀이실 텐데 다니면서 그 말이 꼭 맞음을 실감한다. 백오이 말고도 여러 가지 묻고 싶은 것들이 잔뜩이었으나 집이 비어서 일단 그냥 나왔다.
진대 마을에서 본 콩. 아스팔트를 깔기 전에 심었다가 길이 깔리면서 겨우 자라고 있다. 웬지 토종의 운명을 상징하는 듯하여 사진으로 남겼다.
진대 마을에서 만난 조선호박. 이것 말고도 긴호박도 심고 계셨다.
다시 차에 올라 광진리 샘골로 향했다. 마을이 어수선한 것이 어쩐지 토종도 떠난 듯하다. 길가에서 조를 만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으나 어디서 가져다 심은 것인데 혼자 떨어져 저절로 자란 것이란다. 마을 분위기가 어수선하면 토종도 찾기가 어렵다. 이 마을은 좀 더 살펴보다가 그냥 지나갔다. 광진교를 지나 작담 마을에 들어갔으나 이곳도 ...
텃밭에 그냥 떨어져 절로 자란 조.
옆 마을인 광석 마을에 들어갔다. 소담한 집에서 구지뽕을 심어 놓았다. 구지뽕은 왜 구지뽕일까? 뭘 굳이 뽕이라고 하겠습니까? 라는 뜻에서 구지뽕인가?
구지뽕나무. 주인이 없어 내력은 알 수 없었다.
이 구지뽕은 어디서 온 것인지 알아보려고 주인을 찾았으나 대문이 걸려 있다. 옆집에 가사 낮잠을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워 여쭈니 충주 사는 사람인데 한 번씩 찾아온단다. 그래서 대신 할머니 댁에 무엇이 없는지 여쭈었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마늘이다. 시집 와서부터 계속 심는 것인데, 알이 좋은 건 장에 내다 팔고 씨를 할 것만 처마 밑에 달아 놓았다.
광석 마을에서 만난 마늘.
이제 추점리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운평이란 마을에 들어갔는데 거대한 대학찰옥수수 집하장이 서 있다. 더 볼 것도 없이 그대로 돌아나왔다. 이 일대를 다니며 안완식 박사님은 "대학찰이 토종을 다 몰아냈구나"라고 읖조리신다. 흐음... 농가 수익을 생각하면 대규모 단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농촌 공동체는 물론 종의 다양성도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니 어느 정도 선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인지 어려운 문제이다.
다음으로 가래울 마을에 들어갔다. 훤칠하게 구릿빛 지붕을 만들어 놓은 집이 눈에 확 들어온다. 마을을 한참 빙빙 돌다가 추점교회에서 신기한 자두나무를 발견했다. 목사님 왈, '누가 갖다가 심었는데 처음 몇 년 동안은 매실인 줄 알았는데 자두더라'하신다. 알이 그렇게 굵지는 않은데 무지 달고 색이 노랗다. 이런 자두는 잘 육종해서 상품성만 갖추면 정말 좋겠다.
추점교회에서 발견한 자두. 한낮의 땡볕에 헉헉 대다가 이걸 먹고 기운 좀 차렸다. 물론 목사님께 얻어 마신 커피도 한몫하고... 커피를 마시고 나와서 자두를 먹었는데 그래도 달더라.
추점교회 자두나무.
추점교회. 이런저런 사회복지 서비스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목사님이 무지 바쁘시겠다. 이날도 강남 쪽에서 아이들 50명이 농촌봉사활동을 와 정신 없었다.
가래울에서 장연면 방향으로 뒷골이란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축사 단지. 들어갈 것도 없이 그냥 지나갔다. 또 지도에 나온 주정골이란 곳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예전에는 화전민이 꽤 살았던 듯한데 지금은 농원 하나가 과수원을 하고 있다.
다음은 바로 옆의 석산 마을에 들어갔다. 이 마을은 나와도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어 오랫만에 참 반가웠다. 이 마을에 사시는 김제건 할아버지와 조인숙 할머니 댁에서 이것저것 많이 볼 수 있었다. 먼저 이 댁을 찾은 동기는 차조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거창으로 시집을 간 딸이 맛있다고 준 상추로 번지고, 다시 어금니동부, 개팔이동부, 덩굴강낭콩, 대국콩(강낭콩), 덤불콩에 완두콩으로까지 건너가 조금씩 얻기도 하고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강낭콩을 대국콩이라고 부르는 점이 재밌다. 원래 우리 콩이 아니라 중국에서 건너왔을까? 배추 가운데 호배추니 호콩이니 하는 것도 바로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2008년 울릉도에 갔을 때 그곳에서는 강낭콩을 호콩이라 한 기억이 떠올랐다. 강낭콩의 유래는 중국일지도 모르겠구나.
거창으로 시집을 간 딸이 주었다는 상추. 끝내 그 내력을 알 수 없어 안완식 박사님이 내내 아쉬워하셨다. 한눈에 좋은 상추라고 평하셨는데 무슨 차이인지 알 수 없는 나에게는 그저 상추일 뿐...
조인숙 할머니를 만나게 해 준 차조기.
이런 저런 동부는 한 봉지에 모았다가 심으신다.
대국콩.
석산 마을을 돌다가 만난 재밌는 외양간. 어미소와 다 큰 송아지인 듯한 놈들이 새로운 사람을 보고 신기한 듯 쳐다본다. 이 집은 왜 담배 말리는 곳을 이렇게 개조했을까?
벌써 시간은 2시가 다 되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산골식당이란 곳을 찾았다. 괴산휴게소에 바로 붙어 있어 입소문을 타고 기사들도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많이 찾아오나 보다. 실제로 먹으니 정말 깔끔하고 음식이 괜찮았다. 이곳에서 확인도 할 겸, 분지골이란 곳에 아직도 사람이 사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제 사람은 살지 않는단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바로 건너편의 새말에 갔으나 별다른 건 찾지 못하고, 다락골은 3~4가구가 있다고 하는데 외지에서 들어와 산다고 하여 올라가지 않았다.
지도에 쇠잿말이라 표기된 곳을 찾아 들어서는데, 입구에 엄청 오래된 느티나무가 두 그루나 서 있다. 아직도 당산목으로 역할을 하는지 나무 밑둥에는 금줄이 쳐 있다. 나중에 들어서 알았는데 무려 1000살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나무가 아니라 정말 신神이다. 솔직히 신이라 불러도 문제가 없을 정도가 아닌가! 내려서 사진이라도 박을 걸 시간도 없고 그냥 눈으로만 보고 지나친 게 아쉽다. 아무튼 쇠잿말은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마을이 두쪽이 나 버렸다.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 보았는데 기도원만 자리하고 있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풍수지리를 좋은 명당 자리 찾는 데만 쓰는 게 아니라 이렇게 지형의 모습, 강과 산이 이어져 생태계가 온전히 유지되는지 등으로 과학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면 좋겠다. 한쪽에서 그런 작업을 하는 듯한데 아직 미흡하다.
쇠잿말을 나와서 장연면 면사무소 소재지의 양지말을 찾았다. 이곳은 뭔가 있을 법한데 지금은 잘 알 수 없었다. 일단 담장에 커다란 호박이 달린 집을 찾아서 들어갔다.
다 크면 20kg은 될 거라는 거대한 호박. 어릴 때 모습(아래)
집 안으로 들어서니 어디서도 보기 힘든 제비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그것도 두 곳이나. 이런 집은 뭔가 되어도 되는 집안이 아닐까? 예상이 맞았다. 옆집 아저씨가 그러는데 이 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이번 괴산군수의 누님이라고 한다. 괴산에서 의뢰를 받아 일하는데 이런 우연이 있나. 재밌다.
오랫만에 만난 제비. 반갑다, 제비야! 제비만 보면 왜이리 반가운지 모르겠다. 둥지 안에는 새끼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마을은 웬지 뭔가 있어 보여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또 상추 하나를 발견. 이 상추도 내력을 찾고자 열심히 다녔는데 주인을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상추 임자를 찾다가 만난 박영희 할머니 댁으로 따라가서 대신 울타리콩과 아욱을 찾았다. 아욱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궁금해 지금 밭에 자라고 있는 건 없냐고 여쭈니 저쪽 집에 가면 똑같은 게 자라고 있다고 하여 거기까지 다시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두 종류의 울타리콩(위와 아래)
박영희 할머니 댁의 아욱과 비슷하다는 그것. 그러고 보니 괴산은 아욱을 참 많이 심는다. 이것도 괴산 지역만의 특징.
이제 점점 더 심심 산골로 들어가게 된다. 먼저 거문동으로 갔다. 이름도 깊은 산골임을 알려준다. 거문동. 거문, 검은, 검다 ... 이런 말이 간혹 한자로 이름을 표기하면서 현玄이니 거문巨門이니 하는 식으로 변하기도 했는데, 그 뜻은 단군왕검과 통한다. 검, 감, 곰은 '신'이나 '크다'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러니 이곳 거문동은 신의 마을 또는 큰 마을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더 나아가면 일본어가 우리말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일본어에서 곰을 뜻하는 웅熊을 '쿠마'라고 읽는다. 쿠마는 곧, 곰의 일본식 발음인 셈이다.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할머니 한 분을 만나 토종 씨앗에 대해 여쭈었다. 본인은 아파서 농사를 못 짓고 다른 농사짓는 할머니들은 모두 한의원에 침 맞으러 나가셨단다. 이런 허탈한 순간이... 나중에 다시 찾아올 생각을 하며 밭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파악이라도 하고자 돌아다녔다.
율무 암꽃과 수꽃이 함께 핀 모습(위와 아래).
율무 밭.
한창 사진을 찍으며 다니고 있는데 노란 봉고차 한 대가 들어온다. 가만히 지켜보고 서 있으니 할머니들이 잔뜩 타 계신다. 얼른 차에 올라 부리나케 좇았다.
거문동에서 할머니들을 찾지 못해 절터골이란 곳까지 들어갔다. 그곳에는 1가구만 살고 있는데, 농사지을 때만 잠이나 잔다고 하여 더 들어가지 않았다. 위는 그곳에서 만난 잠자리.
노란 봉고차는 바로 교회의 차였는데, 목사님이 할머니들 모시고 침 맞으러 갔다오시는 길이었다. 그 차에서 내리신 김태숙(78), 정경순(70) 두 할머니에게 토종 씨앗에 대한 여러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마을은 괴산잡곡과 계약 재배하여 율무와 기장을 많이 심는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이제 다들 몸이 망가져 쉬셔야 하는데도 그래도 하던 일이라 일을 손에서 놓치 않고 계신다. 그런다고 쉬신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니고 오히려 병만 더 생기실 수 있으니, 그저 농사꾼은 끝까지 땅을 파다가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숙명인가 보다. 아무튼 이 마을에서 일단 비수수, 참깨, 들깨, 율무, 차조기를 확인하고 씨를 얻을 수 있는 건 조금씩 얻었다.
비수수(위)와 참깨(아래)
참깨가 자라고 있는 모습.
차조기.
산자락을 개간해 심은 들깨밭.
들깨.
김태숙 할머니의 곳간. 할머니 댁은 아직 소를 부려 쟁기질을 하며 농사를 짓고 계신다. 언제 농법과 관련해 취재를 오면 좋겠다.
율무.
김태숙 할머니 댁의 곳간 문에는 이런 장부가 적혀 있다. 이 문을 보니 2008년 강화도에서 찾아간 한 농가가 생각난다. 그곳에서도 문에 어느 논에서 얼마의 수확이 났는지 적어 놓았다.
거문동을 나와 송티를 넘었다. 송티, 송치, 솔티... 모두 소나무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솔고개랄까. 이곳에도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가구 수도 얼마 되지 않고, 별 볼 일이 없었다. 대신 고개를 넘어 샘이 있어 잠시 더운 몸을 식혔다.
끊임없이 맑은 찬 물이 샘솟는다. 물이 얼마나 많이 나는지 큰 정수기 물통에 금세 물을 채울 수 있다.
목을 축인 다음 바로 양우실 마을로 향했다. 소가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는 형상의 지형이라고 하는데 확인하지 못해 모르겠다. 이곳에 오르니 재미난 모습이 보인다. 아마 이 근처 어디에 골프장이 들어오나 보다. 앞서 거문동에서 할머니 한 분이 골프장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이곳은 직접적인 피해가 있는지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양우실의 어느 집. 요즘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가시박꽃과 함께.
양우실 마을에서 별 소득 없이 돌아나오는 수집단의 모습.
다시 아랫마을로 내려왔다. 이곳은 송덕이라 한다. 이 마을의 특징은 한마디로 신품종이 많다는 것이다. 토종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신품종으로 보이는 참깨. 위의 거문동의 참깨와 비교해 보시면 좋겠다.
송덕부터 장암까지 마을길이 쭉 이어졌다. 큰길로 나가지 않고 마을길을 따라서만 무엇이 없을까 노려보며 나아갔다. 결론은 말짱 꽝. 얼른 신대라는 새터 마을로 방향을 돌렸다.
이곳에서는 100년 가까이 된 돌배나무를 발견했다. 엄청 크다. 키가 지금은 끝부분이 부러져서 그런데 14~15m 정도 되었을 법하고, 흉고도 145cm나 된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아주 옛날부터 있었다고만 기억할 뿐, 언제 누가 어떻게 이 자리에 자리를 잡았는지는 몰랐다. 대신 원래는 2그루였는데, 하나가 밑동이 썩으며 쓰러지고 지금 남은 나무도 몇 년 전 비바람이 심할 때 끝이 부러졌다는 기억만 전해주셨다. 역시나 옛날에는 즐겨 먹었는데 요즘은 아무도 별 관심이 없다고...
100년이 넘은 듯한 돌배나무.
시간은 어느새 6시가 가까웠다. 이제 조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 원래 연풍까지 돌아볼까 계획했는데, 꼼꼼하게 조사하고 돌아다니니 하루에 1개 면이면 족하다. 그래도 이렇게 다니니 그냥 훑고 지나다니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오늘 탈락된 곳은 나중에 다시 들를 일이 없으니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더 편하겠다. 또 하나하나 확인하며 지나니 더 자세히 많은 걸 볼 수 있어 조사하기도 더 재밌다.
신대를 나와 이제 장암리 점말이란 곳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역시 상추가 눈에 띄었다. 주인이 집에 없어 확인할 길이 없어 일단 누구네인지만 파악해 놓았다. 나중에 꼭 들러서 확인해야 한다. 이후 마을의 다른 집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점말에서 만난 결명자와 헛개나무 열매(아래)
헛개나무.
이제 장연면의 마지막 마을 교동이 남았다. 마을에 들어서니 꽤나 큰 마을이었다. 버스도 다니고 가구 수도 꽤 많다. 차를 타고 지나다 안완식 박사님의 눈이 흰덩굴콩을 발견했다. 허투루 지나는 법이 없으시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고 불러 이것저것 물었다. 이 콩은 여기서는 납짝해서 빈대콩이라 부르는데 밥에 넣어 먹는단다. 이게 참 맛있어서 다른 건 넣지 않는다고... 4월에 심어 8월부터 익은 거 따 먹다가 나중에 남은 것에서 씨를 받는단다.
빈대콩이라 불리는 흰덩굴강낭콩.
또 여기서도 아욱을 찾았다. 이놈의 아욱은 괴산 여기저기 참 많기도 하다. 근데 이 아욱은 왜 그런지 키가 엄청 크다. 3m 가까이 되는 듯하다. 거름간 옆에 있는 건 거름을 많이 먹어서 그렇겠고, 도랑에 있는 건 개숫물을 많이 먹서 그렇겠지. 거름을 많이 하면 엄청 크는구나.
거름간 옆의 아욱(위)과 도랑의 아욱(아래).
이 마을에서 오늘의 마지막으로 피마자를 수집 목록에 올리고 돌아섰다. 피마자는 따로 심으시는 건 아니고 그냥 떨어져 울타리 삼아 그대로 키우신단다. 나중에 씨를 꼭 받아 놓으시면 얻으러 오겠다고 말씀드리고 차에 탔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오늘은 중복이 아닌가. 음성 읍내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들어서니 어느덧 11시가 넘었다. 오늘은 일단 자고 정리는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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