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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3일 10시 30분, 흙살림 괴산 교육장에서 토종 수집단 발대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원래 삼방리 토종농장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장맛비로 인해 교육장으로 변경이 되었다. 그 덕에 토종농장까지 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오신 분들도 있었다.
토종 수집단은 괴산군과 흙살림이 함께 괴산 지역의 토종 종자를 발굴, 보존, 육성하기 위해 계획한 것으로서 2010년 말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여기에 한국 토종연구회의 고문이자 토종씨드림의 대표로 계신 안완식 박사님이 합류함으로써 본격적인 수집단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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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는 토종을 수집할 때 실질적인 도움을 주실 각 면의 산업계 담당자 분들과 괴산 지역 곳곳에서 농사지으며 흙살림과 관계를 맺어오고 계신 분들이 함께 자리하여 주셨다. 또한 발굴, 수집할 귀중한 토종 종자를 농장에서 가꾸실 분들도 함께하셨다. 앞으로 이분들께 받을 도움을 생각하며 미리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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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흙살림 이태근 회장은 앞으로 흙살림에서 이 사업을 발판으로 토종연구소를 건립해 줄기차게 토종 관련 사업을 확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황용하 소장은 정말 뜻깊은 사업이 괴산군에서 시작되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말을 시작으로 이 사업이 괴산군 농업에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안완식 박사는 이와 같은 군 차원의 사업은 처음이라며 괴산군의 위대한 시작을 축하하며 군민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하였다. 그 뒤에는 서로 자기의 기억에 남아 있는 토종 종자 이야기를 나누고 단체 사진을 촬영한 뒤 점심식사 자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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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삼방리 농장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흙살림 토종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다양한 토종 종자의 모습을 견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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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방리의 삼방은 세번 방문했다는 뜻인데, 그 유래는 이렇다. 고려 말 꺼지는 불씨를 되살리려던 공민왕이 시역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에 입신양명의 뜻을 접은 배극렴이란 사람이 이곳 삼방리가 있는 지역으로 은거하여 농사짓고 아내는 베를 짜며 지냈다. 그때 나라를 뒤집으려는 이성계가 1388년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고 자신의 반대파를 제압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인재가 부족해진 그는 자문직을 맡을 사람을 찾게 되었고, 그래서 배극렴이 은거한 이곳까지 삼고초려하듯이 세 번이나 찾아왔다는 전설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시 그는 이성계와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이곳 삼방리에는 적자가 아닌 공이 많은 사람이 세자가 되어야 한다는 힘의 논리를 주장하다가 귀양을 와 있던 처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위화도 회군과 조선 건국의 적지않은 공을 세워 개국공신까지 된 사람이 은거라? 아무튼 이성계 운운하는 것은 이야기 지어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만들어진 전설이 아닐까 한다.
삼방리 흙살림 토종농장에는 주로 토종벼를 중심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토종벼 종류만 76가지를 심고서 관찰하고 기록하며 자료를 만들고 씨앗을 증식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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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방리 토종농장을 견학한 뒤에는 시범적으로 토종 수집 작업에 나섰다. 가장 먼저 괴산군 감물면 오성리 신기에 살고 계신 강영식 님을 찾았다. 강영식 님의 댁은 바쁜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깔끔히 정돈이 된 모습이었다. 정리만이 아니라 각종 야생화를 정원 곳곳에 심고 가꾸는 한편, 수석이며 분재까지 자리해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토종으로 주제를 바꿔 요즘 심는다는 콩 종자를 보기에 이르렀다. 오늘은 서리태를 심으려고 하셨는데, 속이 파란 요즘 서리태는 값이 더 좋아서 많이 심고 원래는 속이 노란 검은 밤콩(괴산 지역에서는 겉은 검지만 속이 노란 콩을 밤콩이라고 불렀다고 함)이 원래 이곳에서 많이 심던 콩이라고 알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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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밤콩은 잘 무르기에 주로 밥밑콩으로 쓰고 떡고물로도 먹었는데, 익음때가 서리태보다 빠르다고 한다. 또 거름을 많이 하면 서리태는 덩굴만 많이 뻗고 말지만, 검은 밤콩은 그래도 수확이 된단다. 그리고 서래태는 3번 정도 순을 질러야 하는데 비해 검은 밤콩은 2번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검은 밤콩은 이 지역에서는 7월 초부터 10일 정도까지 심어서 10월 중순쯤 수확하여 일찍 익는 편이고, 한 꼬투리에 3알 정도가 달린다. 그런데 단점은 익으면 꼬투리에서 터져 나오는 탈립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밖에 올 들깨가 있어 그걸 보고 싶었지만 지금 씨를 가진 것이 없어 나중에 와서 구해 놓으신 것을 보기로 약속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다음 장소는 오늘이 마침 3, 8일 장인 괴산 장날이어서 그리로 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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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도착하니 4시가 조금 넘었다. 다행히 아직도 장은 활발하고 비도 내리지 않았다. 장을 스윽 둘러보면서 늘 그렇듯 씨앗이 있는 곡물상을 찾았다. 곡물상에는 그리 특이한 것은 없었는데, 한 동부가 안완식 박사님의 발길을 잡아 끌었다. 만지고 자세히 관찰하더니 주인 할머니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셨다.
"할머니, 이 씨앗은 이름이 뭐예요?"
……
"할머니, 이건 어디서 왔을까?"
……
"아니, 어디서 심던 거냐구요?"
처음에는 그래도 한 말 두 말 대답을 하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역정을 내기 시작한다.
"내가 장사하면서 어디서 왔냐고 묻는 사람 처음이네. 가요! 안 팔아! 가져와요!"
그렇게 한마디도 못해보고 쫓겨났다. 안 판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시며 저리 쫓아내는데 더 있다가는 소금이라도 한 바가지 얻어 맞을 것 같다.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며 또 다른 걸 찾고 계시는 안완식 박사님을 따라 장을 한 번 쭉 훑어보았다.
그러다 마늘을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 그런데 이 마늘이 좀 색다르다. 마늘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니라 마늘을 엮어 놓은 모습이 그랬다. 얼마나 야무지게 엮어 놓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엮은 이유를 물으니 그냥 엮으면 마늘을 뽑다가 전체가 쑥 뽑히는데, 이렇게 하면 그럴 일이 없기에 그렇게 한다는 말씀. 이건 사진으로 한 번 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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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닥을 다 훑었지만 아까 본 동부만 한 것이 없다는 안완식 박사님. 결국 다시 그 집에 가서 동부를 사기로 했다. 다시 그 할머니에게 쓰윽 찾아가,
"할머니, 동부 좀 주세요."
"얼마나 줘요 …." 하다가 나를 본 할머니. 그대로 잠시 얼음이 되셨다.
"안 판다니까. 가요, 가!"
뭐 어떻게 하겠는가. 할머니는 팔지 않으시겠다며 저리 가라는 손짓을 하시며 쳐다보지도 않으신다. 그래 별 수 없이 가만히 취나물을 정리하는 할머니 옆에 서서 가만히 할머니를 쳐다보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
"에이, 할머니 한 되만 주세요."
그래도 눈길 한 번 안 주신다. 다 듣고 계신 것 안다. 다시 잠시 정적이 흐르며 뜸을 들이는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손님이 찾아와 찰보리쌀을 사서 가며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나와 할머니를 한 번 쓱 보고 갔다. 지금이 기회다.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느낌이 팍 왔다.
"할머니, 화 푸시고 한 되만 주세요."
그러자 내 말을 받아치신다. 됐다!
"내가 장사하면서 어디서 가져 왔냐고 묻는 사람은 처음이래요. 참나, 장사한다고 무시하는 거지 …."
"저희가 이걸 갖다 심으려는데 어디서 온 건지 궁금해서 그랬어요. 역정 그만 내시고 한 되만 주세요."
그러면서 슬며시 할머니의 팔을 두 손으로 잡으며 살짝 흔들었다. 다시 별 말 없으시던 할머니가 동부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시더니 봉지에 담아 주신다. 값을 치르면서 할머니에게 인삿말을 했다.
"할머니, 여기 오면 또 올게요. 그때 또 뵈요."
성격이 불 같은 할머니 덕에 좋은 추억이 하나 생겼다. 그렇게 구한 각시동부. 이건 덩굴이 안 생기고 콩처럼 자란다고 한다. 요즘은 농사를 많이 안 짓는데, 그 이유는 탈립이 잘 되기에 그렇다고. 그래서 녹두처럼 익는 대로 따야 하기에 사람들이 농사를 잘 안 짓는다고, 괴산장 다른 데 가서 찾아도 없을 거라며 눈에 보이지 않게 짐짓 으쓱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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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상 할머니를 보면서 사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외할머니는 묵호에서 문어 삶아 파는 일을 하셨는데 괄괄한 성격이 꼭 외할머니와 비슷하시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지 말고 불이 좀 잦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 그런 외할머니를 접하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이다. 외할머니 덕에 오늘 귀한 씨앗을 얻었으니 오랜만에 감사의 인사라도 해야겠다.
이로써 오늘 토종수집단 발대식과 시범 수집을 모두 마쳤다. 시간은 5시가 훨씬 넘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월드컵으로 무너진 생체리듬 때문에 피로가 급격히 몰려온다. 어서 돌아가 편히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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