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3일 8시. 안산을 출발해 사리면사무소를 목적지로 설정하니 2시간 5분쯤 걸린다고 한다. 지금까지 갔던 곳 가운데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거리. 부지런히 달리다 안성맞춤 휴게소에서 또 한 번 쉬는 시간을 가졌다.
휴게소에서 조금 쉬고 다시 차로...
증평 교차로로 빠져나와 새로 뚫린 34번 국도, 고속도로와 같은 그 길을 따라가다가 다시 옛 34번 국도로 내려왔다. 옛날 길이 사람냄새가 나고 좋다. 새 길은 너무 쭉쭉 넓게 뚫어놓아서 경치도 사람도 집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산을 깎아 무식하게 일직선으로만 뚫려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옛 길은 원래 사람이 밟고 다니던 길 위에 포장을 한 곳이 많아 여기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처음 들른 곳은 사리 농공단지 근처의 방축골. 이 마을은 괜히 들어왔다 싶을 정도로 공장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끝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차를 돌려 나와 송명골이란 곳으로 향했다.
송명골은 작은 마을이었다. 4~5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듯한 모습. 길로 들어서니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맞이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오래된 노거수가 여기저기 여러 그루 서 있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34번 국도만 아니면 더 근사한 곳이었으리라. 걔 중에 한 집이 눈에 띄어 찾아갔다. 곳곳에 오이를 심어 놓으신 것이 뭔가 있을 듯. 송명골길 41-6에서 만난 연춘자(69) 할머니께 먼저 오이에 대해 물었다. 이건 시집와서부터 심던 것인데, 늦게까지 달리고 맛이 좋다고 한다. 지금은 씨가 없으니 나중에 와서 받아가겠다고 씨 좀 밑지지 말고 꼭 받아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아욱도 있었는데, 그건 따로 씨를 받지 않고 떨어져 나는대로 먹는다고...
다음은 부석이란 마을에 들어갔는데, 축사에 새로 지은 집들이 대세다. 그래도 확인하는 셈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 나왔다.
그리고 들른 불당골. 옛날에는 절이 있었던지 불상이 있었던지 아무튼 불교와 관련이 있는 곳이 아닐까? 괴산 지역을 다니며 보니 마을 입구에 꼭 유래비를 세워 놓던데, 시간이 허락하면 그것도 한 번씩 읽고 다니면 더 재밌겠다.
불당골에 들어와 어느 집에 딸린 텃밭에 콩이 익어간다. 유월두가 아닌가 하며 확인하려고 들어갔는데 사람이 없다. 비가 오려고 꾸물거리는 날씨에도 어디 들에 나가셨나 보다.
혹시 유월두가 아닌지? 주인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없기에 나중에 들를 곳으로 남겨 두었다.
주인은 없고 강아지만 팔자 좋게 늘어져 자고 있다.
그리고 좀 더 들어가니 또 다른 집에 울타리콩과 아욱이 예사롭지 않다. 뭔가 있겠다 싶어 물어보려고 찾아들어갔으나 역시 아무도 없다. 천상 불당골은 나중에 한 번 다시 와야겠다. 사진 좀 찍으려고 사진기를 꺼내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는다. 어라... 오늘 이렇게 비가 오면 아무것도 못하고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닌지 슬슬 걱정이 된다. 안 그래도 날씨가 꾸물거려 불안했는데...
아무튼 비를 뚫고 그대로 강행! 다행스럽게 비는 확 쏟아지고 지나가더니 잠잠해지는 기미다. 고래울이란 마을에 들어서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논길을 한참이나 후진으로 나왔다. 운전도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짝 증평 쪽으로 다시 빠졌다가 진지바위란 마을을 지나 도화동으로 이어졌다. 차를 타고 지나는데 어느 집에 대학찰이 아닌 다른 옥수수가 걸려 있는 걸 보았다.
사람은 살지 않고 농막으로 쓰는 듯한...
주인을 찾으러 동네를 돌아다닌 결과, 증평 사는 50대가 이곳을 오가며 농사를 짓는다고...
잠긴 대문을 열고 들어가 뭔가 없나 한참을 찾으니, 옥수수 말고 수세미와 여주, 호박이 볼 만하다. 오늘은 그냥 확인만 하고 나중에 한 번 들러보든지 해야겠다.
호박의 무게를 버티도록 끈으로 묶어 주었다.
도화동을 지나 칠성바위, 증말, 노동이란 마을을 들렀다. 칠성바위란 마을에 들어가는 어귀에 동부가 자라고 있다. 그 꽃이 너무 예뻐서 사진에 한 장 담았다. 아무튼 증말이란 마을에는 정말 없고, 노동은 전원주택들이 꽤 들어서거나 부유해 보이는 듯한 집이 많았다.
다음 송오란 마을은 있을 법한 집에는 사람이 없어 일단 기록만 남기고 뒤돌아섰다.
주인은 없고 수확물만 우리를 맞아 주었다. 다 익은 울타리콩 꼬투리(위)와 자라고 있는 모습(아래)
참깨도 있는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집에는 아래와 같은 커다락 호박이 놓여 있었다.
송오 마을 입구에는 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정체를 알고 싶어 잠시 내렸을 때, 한 아주머니가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오시길래 여쭈니, 자신이 지난해 신품종을 가져다 심었는데 이게 좋아서 동네에 모두 퍼졌다고 한다. 씨앗은 이렇게 돌고 도나 보다.
시간은 12시를 넘겼지만,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이르다. 몇 군데 더 둘러보고 점심을 먹을 계획. 소매저수지 부근 응암(매바위)라는 곳은 축사가 많은 곳이었는데, 이곳도 그럴싸한 집이 많아 느낌이 오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큰길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큰터(대기)라는 곳도 별로 볼 것이 없는...
이제 점심을 먹기 전 마지막 마을이 남았다. 둔터라는 곳이다. 마을 유래비를 보면 둔터가 군대의 둔전과 상관이 있는 뜻인지 알 수 있었겠으나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둔터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갓끈동부를 발견했다. 오호, 이런 곳에 갓끈동부가? 어느 집 것인지 마을을 멀리서 쓱 바라보았다.
괴산에서 발견한 갓끈동부. 그 유래는?
어느 한 집이 느낌이 온다. 그 집에 가서 무엇 좀 물어보자. 마을로 들어가 그 집 앞에 이르니 어디 나가셨다가 이제 막 돌아오신 모양이다. 얼른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윤재노(74) 할아버지는 집안 분위기도 그렇고 무척 안정적으로 보이셨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이런 분위기의 집에는 무엇이 많긴 하다. 갓끈동부는 증평 쑥고개라는 곳에서 7~8년 전에 가져다가 심은 것이라고 하신다. 젊은 사람들이 갓끈동부를 알아보자 짐짓 놀라신 듯하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라 작두콩을 몇 년 전 호평에서 얻어다 심는데, 담북장(청국장)을 쑬 때 조금 넣으면 냄새가 덜 나서 심는다고 하신다. 또 아주까리도 2종류를 심으시고, 차조기도 밭 한켠에 기르며, 파와 가지도 옛날부터 그대로 씨를 받아서 심고 있단다. 가지는 꼭지 부근에 몇 군데 있는 가시가 아주 따갑고 다 큰 것이 15cm쯤 되는데, 맛이 정말 좋다. 다음에 다시 찾아올 테니 꼭 씨 좀 받아 달라고 부탁드리자 할머니가 농을 건네시며 알았다고 약속하셨다.
차조기.
가지꽃과 가지.
두 종류의 아주까리.
논 옆의 가로수에 갓끈동부가 타고 올라가도록 심으셨다. 저 멀리 왼쪽에 보이는 집이 윤재노 할아버지 댁이다.
논에서는 벼가 수정을 하느라 바빴다. 암꽃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제 점심을 먹으러 사리면 소재지로 가는 길. 괴산 지역은 이제 참깨 수확기에 들어가 가드레일마다 다리의 난간마다 참깨를 베어다 세워 말리느라 꽉 찼다. 가을이면 아스팔트는 벼를 말리는 곳이 되니 농촌에서 아스팔트 길은 이래저래 쓰임새가 많은 곳이다.
사리면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으니 상권이 많이 죽어 문을 닫은 가게가 태반이다. 할 수 없이 그 가운데 가장 번쩍이는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고 사리면 소재지를 잠시 어슬러거리며 다니다가 옛날 약방을 발견했다. 언제부터 이 자리에서 약방을 하셨을까?
점심을 먹고는 모래못으로 찾아갔다. 모래못은 부자 동네 티가 확 나는 곳이었다. 역시나 그렇게 찾아볼 만한 것은 없어 돌아서 나와 하도 마을로 향했다. 하도 마을은 축사가 많은 마을이라 특이한 것이 없었고, 시동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으로 수암이란 곳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율무가 집 마당 한켠에 자라고 있는 걸 발견했다. 왜, 어떻게, 무엇을 심었는지 알아보고 싶었으나 이곳도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없었다. 도대체 다들 어디를 가신 것인지? 날이 궂어서 마을회관에 모여 먹을 거 해 먹으시나?
수암 마을을 돌고 있는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이 보인다. 밭에 일부러 차풀로 보이는 풀을 심어 놓은 곳이 드문드문 보인다. 그냥 풀이 자란 걸 놔둔 듯하지는 않고 일부러 기르는 티가 난다. 말뚝에 줄까지 띄워 놓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다음에 수암 마을을 다시 찾아오기로 기약하고 이만 돌아섰다.
다음 들른 곳은 산정(산우물)이라는 곳이다. 아, 이제와 돌아보니 사리면의 산간 지대에는 유난히 물이 나는 곳이 많았다. 밑으로 큰 지하수맥이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마을은 고추와 배추를 특화시킨 곳이었다. 마을 입구에 장승으로 배추와 고추를 새겨 세워 놓은 것이 너무 특색있었다. 하지만 토종은... 배추와 고추에 밀려서인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산정을 나와 석촌을 찾아갔다. 석촌 마을은 심한 비탈면에 자리한 6~7가구가 전부였다. 비탈이 심한 만큼 텃밭도 별로 보이지 않고 했지만, 비탈의 끝까지 올라갔다가 차를 돌리느라 애를 먹었다.
바로 맞은편에는 황산 마을이란 곳이 자리하고 있다. 길을 따라 그곳으로 쭈욱 들어갔다. 안쪽에는 내황산이란 곳이 지도에 표기되어 있어 그곳을 보고 내려오면서 또 보려고 했다. 내황산은 1가구가 살며 인삼 농사를 크게 짓고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이 차를 타고 내려왔다.
내황산에서 내려오면서 보이는 경치.
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길가에 조 비스무리한 것이 보인다. 얼른 차를 세우고 그곳으로 가 보았다. 이건 강아지풀이라고 하기에는 크고, 조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뭔가 모를 것이 자라고 있다. 일단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긴 다음 두어 개를 표본으로 뽑아서 가지고 내려왔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혹시라도 뭔가 아는 게 나올지도 모른다.
강아지풀보다는 크고 조보다는 작은... 그런데 끝이 조처럼 갈라져 있는...
황산 마을에 내려와 어느 집을 찾아갈까 하다가 마을회관 옆집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한창 옥수수를 따서 손질해 포장하고 계셨다. 은근슬쩍 다가가 조인지 모를 풀을 꺼내 보이며 말을 걸었다. 일단 조로 시작해 다른 작물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주머니께서 집으로 들어가신다. 그러면서 하나둘 씨앗을 꺼내오시는데 도라지, 강낭콩, 개팔이동부, 울콩, 어금니동부, 만삼, 상추, 아욱이 줄줄이 나온다. 몇몇 씨앗은 당장은 없어 나중에 다시 오기로 기약하고 이러저런 씨앗만 얻어서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씨앗을 나눠주시는 정현복(65) 아주머니.
거름을 많이 주지 않아 볼품없다던 아욱.
황산 마을을 나와 커다란 저수지 안쪽에 자리한 배실 마을로 향했다. 배실, 혹시 배나무와 어떤 연관은 없을까? 이곳에서도 토종 배를 볼 수는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끝에는 축사, 한 집에서 고추 씻는 일이 한창이다. 시끄러운 기계 소음 사이로 소리소리치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 집을 택하여 들어온 것은 집 앞에 있는 꽈리 때문이었다. 김태우(60) 아저씨께 물으니 10여 년 전에 산에서 씨앗을 구해다 심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혹시 모르니 일단 기록을 남기고 돌아나왔다.
돌아나오는 길 배실 마을의 어느 집. 염소와 토종닭이 어울려 살고 있다. 병아리가 너무 귀여워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고자 했으나 가까이 가면 도망가는 통에 그러지 못했다.
다음으로는 점말이란 곳으로 찾아갔다. 점말의 가장 끝에 자리하고 있는 집까지 들어갔다가 돌아나오려는데 오이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찾아가 사람을 찾았다. 방에서는 할머니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던 중이었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고 씨앗 이야기를 꺼내니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신다. 내친 김에 씨앗 있는 것 좀 보여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지금 81세이신 허채봉 할머니이다. 평생 이곳에서 농사짓고 살며 증평장과 괴산장으로 씨앗 장사를 다니셨다고. 할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씨앗은 씨갑시라고 한다. 참, 앞서 황산 마을에서 보았던 조는 돌조가 아닐까 하셨다. 괴산에서 조는 조이라고 부른다.
아무튼 허채봉 할머니께는 대파, 상추, 갓, 조선아욱, 도라지, 쥐눈이콩, 붉은팥, 파란팥(그루팥) 등 여러 작물의 씨앗이 있었다. "할머니 이거 할머니 몇 살 때부터 심던 거예요?"라고 말을 하면 "아, 평상 하는 거지"라고 답하신다. 웬만한 것은 할머니가 이곳에 산 6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나중에는 농으로 "할머니 이건 몇 년이나 된 거예요?" 하고 물으니 "그건 얼마 안 됐어. 50년!"이라고 답을 주신다. 더 자세한 내력은 나중에 안완식 박사님과 함께 왔을 때 추적할 수 있다. 아무래도 지식이 얕다 보니 필요한 사항을 딱딱 맞게 캐물을 수가 없다.
다리가 성할 때만 해도 장으로 씨갑시 장사를 다녔다는 허채봉 할머니. 씨앗을 얼마나 꼼꼼하게 쟁여 놓으셨는지 모른다.
필요할 때는 이렇게 냉장고 안에 보관하시는 감각을...
허채봉 할머니 댁의 상추.
60년 됐다는 대파. 할머니는 해마다 씨를 받아서 내다팔고 또 심어서 씨를 받고를 60여 년 동안 반복하셨다.
할머니 집 텃밭에 자라고 있는 실부추. 이건 씨가 없고 뿌리로 번식한다고... 그래서 씨를 받지 않는단다.
허채봉 할머니 댁의 오이. 씨를 꼭 받아 놓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허채봉 할머니 댁의 모습.
점말을 나와 포동을 뒤졌는데, 큰길 옆이라 그런지 별 것이 없다. 통뫼(덕고개)도 그렇고, 쇠편이라는 마을도 그렇고 34번 국도가 새로 뚫리면서 마을을 가운데에서 쫘악 나눠 놓았다. 너무 폭력적이지 않은가? 나라의 사업이라 반대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수 없이 더 깊숙한 안쪽에 있는 마을로 향했다. 월현(달고개) 마을이 그곳이다. 고개라는 지명처럼 이곳의 고개를 넘으면 괴산에서 다른 지역으로 경계가 바뀐다. 월현 마을에 도착하니 할머니 네 분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별 소득이 없을 줄 알았지만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들어가 인사를 건넸다. 역시나 할머니들이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시며 짖궂게 구신다. 더 길게 이야기해야 별 거 없을 듯하여 나오다가 커다란 호박을 발견하고 나중에 이 씨앗을 받으러 오겠다며 기약만 남겼다. 나중에 할머니 혼자 계실 때 다시 찾아와야지...
달고개 마을의 호박. 나중에 다시 찾아가야겠다.
달고개 마을을 나오며 마전 마을을 거쳤는데, 이곳도 신작로의 영향 탓인지 자세히 볼 것이 없었다.
다음은 마전 마을 건너편에 있는 점말과 오룡동이란 곳을 찾아갔다. 그다지 눈에 띄는 것은 없었는데, 마을 분위기가 나중에도 이렇게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이 마을은 가을에 다시 한 번 찾아가야겠다. 마을과 마을 사이의 고개를 넘는데 이동 슈퍼 트럭이 마주쳤다. 가끔 인간극장이나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 이런 트럭이 있던데 여기도 다니고 있었다. 깊숙한 곳은 깊숙한 곳인가 보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로, 이리로 가면 분명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나올 듯하여 그냥 내질렀다. 고개를 넘어 좁다란 산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 바위에 긁히지 않게 조심조심 돌아서 나오니 역시나 우리가 가려던 대촌 마을이 나왔다. 마을회관 주변에 있는 집에서 차조기와 수세미를 발견. 할머니들은 집에 계시지 않고 역시나 마을회관에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거기는 들어가 봐야 별 수확이 없을 테고, 나중에 다시 들러야겠다는 기록만 남기도 돌아나왔다. 이 마을도 뭔가 있을 듯하다.
대촌 마을 우물터. 아직도 이곳에서 빨래를 하실까? 비오는 날이라 물이 뿌옇다. 세수를 했는데 물은 참 차가웠다.
대촌 마을에서 본 수세미. 평소에 보던 것보다 더 길쭉하고 생김새도 특이하다. 할아버지 혼자 사는 집이었는데, 눈빛이 흐릿한 것이 좀 어디가 안 좋으신 듯했다. 나중에 씨앗 좀 얻겠다며 꼭 씨앗 밑지지 말고 받아 놓으시라고 부탁드렸다.
이제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마을 상리(윗시몇)가 남았다. 솔직히 처음 들어가면서 이 마을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마지막이라 긴장이 좀 풀린 탓도 있겠지만 마을 입구에는 무슨 세라믹 공장인가 뭔가가 커다란 공장이 자리하고 있는데다가 시골집답지 않은 그런 전원주택들도 보이고 해서이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이곳도 나중에 안완식 박사님과 오면 다시금 들러야 할 곳이었다.
마을을 돌다가 다른 벼보다 키가 크고 이상한 벼가 있어 마침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 계시길래 물어보았다. 이 벼는 토종은 아니라고 하시는데, 4~5년 전쯤에 보급종으로 도열병에 강하다고 하여 받아다가 계속 심는다고 하신다. 그래서 이 논을 자세히 바라보니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우물로 고였다가 논으로 바로 흘러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논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뚝을 박고 슬레이트판을 꽂아 물이 바로 들어가는 걸 막았다. 대신 고랑을 내서 한바퀴 둘러서 논에 들어가도록 했다. 아마도 우물물이 그대로 흘러들어간다면 엄청 차가울 것이다. 우물물을 길어서 만져보니 실제로 엄청 찼다. 그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다보니 '대한'이라고 하는 이 도열병에 강한 벼를 택하신 것이 아닐까? 그리고 또 고랑을 이렇게 내서 물을 돌리시는 것일 게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이 돌아가는 길목 중간중간에 논으로 들어가는 물꼬를 터 놓으셨다.
논물의 활용. 찬 물이 직접 닿지 않게 하려고 막아 놓은 슬레이트판.
그건 그렇고 토종에 대해서는 모르실까?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을 때 얘기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면서 여쭈었다. 돌아온 답은 역시나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요즘은 다 사서 한다고 그러신다. 이야기를 하다가 뒤에 있는 조그만 하우스에는 뭐가 있냐고 하니 참외란다. 참외? 근데 이게 좀 다르다. 보통 시장에서 파는 노란 참외가 아니라 푸르다. 할아버지는 이걸 청참외라고 부르신단다. 토종 참외 종류는 대개가 푸른 빛이 나는 게 많은 듯하다. 얼마 전 먹어본 사과참외나 개구리참외가 그랬다.
이 참외의 특성은 무르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이가 좋지 않아 과일을 잘 못 먹는데, 이 참외는 물러서 숟가락으로 파 먹기 좋단다. 당도는 어떠냐고 하니 별로라고 하신다. 할아버지께 부탁하여 하나만 먹어봐도 되겠냐니 허락하셔 하나 가져왔다.
이종윤(75) 할어버지의 청참외.
확실히 무르다. 물렁물렁한데 그렇다고 흐물흐물거리지는 않고 아삭함이 살아 있다. 무르면서 씹는 맛이 있다니. 또 말씀처럼 그리 달지 않은 게 아닐 달았다. 개구리참외보다는 훨씬 달고, 사과참외보다는 좀 덜 달다. 이 참외가 어디서 왔는지는 기억하시지 못하는데, 10여 년도 전에 어디서 얻어다 심었다고 하신다.
청참외의 속.
상리 마을에서 내려다본 모습.
우물 옆에 앉아 담소를 나누시다가 우리를 만나신 어르신들.
이로써 오늘의 사전조사는 이대로 마치기로 했다. 시간은 6시 가까이 되었다. 그래도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끝난 편이다. 사리면이 농공단지가 자리하고 있어 그렇기도 하고, 면을 관통하는 34번 국도 신작로 때문이기도 한 듯하다. 길이 뚫리면 문물이 들어온다. 문물이 들어오면 당연히 그를 따라 문화가 들어오고, 문화가 들어오고나면 사람이 들고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어디는 흥하고, 어디는 망하는 일이 벌어지는 게 당연할까. 흐음, 아무튼 길이 잘 뚫려 있으니 오가는 시간은 평소보다도 팍 줄어 2시간쯤 걸리더라. 그 덕분에 오늘 일찍 끝나기도 했다. 다음주는 연풍과 칠성면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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