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농담/농-생태계

간지로 보는 기축년

by 石基 2009. 1. 6.
반응형

간지로 보는 기축년



동짓달 내내 집을 떠나 길에서 사느라 올해는 아직도 겨울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겨울잠을 자야 새 힘이 생기는데, 이건 영 생체 주기가 무너졌습니다. 아침 7시면 눈을 뜨지 않나. 그런 저와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어 이제 작은 설이 훌쩍 지나고, 큰 명절 설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매우 가라앉은 느낌입니다. 기축년이 소띠의 해라며 황소의 걸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내딛어 새로 일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이래저래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오히려 더 가라앉지나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당나라 때 크게 유행하여 지금도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당사주에 따르면, 축(丑)은 하늘에서 죄를 짓고 귀양을 온 천액(天厄)을 뜻합니다. 이렇듯 속뜻은 겉으로 보이는 소의 상징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해는 바뀌고 새날에는 새 아침이 밝아옵니다. 천지만물에 고통과 괴로움이 없다면 환희와 기쁨도 없는 것이니, 모두들 기운차게 한 해를 사시길 바랍니다.


기축년을 간지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기(己)와 축(丑)은 모두 토(土)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이 토는 끈적끈적한 기운입니다. 한여름의 이리 누워도 힘들도 저리 누워도 힘든 그런 끈적끈적한 날씨를 연상하면 쉽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운을 받아 우리 모두 끈끈하게 하나 되어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겠으나, 한 해의 기운이 기(己)가 몰고 오는 힘없는 토 기운에 휩쓸립니다. 이러저러한 분쟁이 잦고 합의를 이끌어 내기에는 힘이 조금 모자랍니다. 낙관적인 말은 않겠습니다. 올해는 여러모로 어려운 시절이 예상됩니다.


그럼 올 한 해의 날씨는 어떤지 짚어 보겠습니다.

봄에는 바람을 몰고 오는 기운이 데려온 찬바람에 꽃샘추위가 예상됩니다. 날이 좀 풀렸다고 안심하고 너무 일찍 밭에 모종을 옮겨 심지 마세요. 잘못하다가는 동상에 걸립니다.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가 아니라, ‘자나 깨나 늦추위 조심 따뜻한 날도 따져 보자’ 입니다.

하지만 그도 잠깐, 곧 무더운 봄이 시작됩니다. 올봄은 예년보다 덥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 봄배추처럼 물을 많이 먹는 푸성귀를 심으신다면 열심히 물 깨나 퍼다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푸성귀 대신 물을 잘 주지 않아도 잘 살거나, 씹으면 팡팡 물이 솟는 오이를 심어 밭에서 일하다가 타는 목을 축이십시오.

이러한 더운 기운은 여름까지 이어져, 축축하고 더운 기운이 합세해 잠 못 이루는 열대야를 부를 겁니다. 에어컨을 사느냐 마느냐 고민이시라면, 제발 고민으로 끝내세요. 잠깐 시원하고자 돌린 에어컨이 무더위를 부추깁니다. 여름, 장마는 지리멸렬하게 지나고 덥고 축축한 날이 이어지겠습니다. 이런 날씨는 전염병과 여러 질병을 불러옵니다. 밭작물 관리에 부쩍 신경 쓰세요. 요즘 해마다 그런 추세처럼 한방에 모든 걸 끝내는 국지성 호우는 여전하겠네요.

그런 국지성 호우는 가을볕이 쨍쨍할 초가을에도 가끔 나타날 듯합니다. 그렇지만 가을볕이 좋겠으니 호우 피해가 없으면 올해도 곡식농사는 괜찮겠네요. 태풍이란 변수가 있지만, 그런 것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저에겐 없습니다. 그러나 국지성 호우란 놈이 지나면 가을 태풍도 경계해야 합니다. 잘 익은 알곡과 결실이 태풍으로 우수수 떨어질 위험이 보입니다.

모든 어려움과 자연이란 큰 벽을 넘어 늦가을로 접어들면, 여느 해처럼 날은 건조할 테고 서서히 추운 겨울이 다가옵니다. 팍팍한 살림으로 한 해를 버티시느라 모두 욕보셨습니다. 여기까지 버티셨다면 내년에는 다시 얼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실 겁니다. 힘든 일은 이제 시작입니다. 모두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남으십시오. 살아남아 따뜻한 봄바람에 가슴이 싱숭생숭해지는 그날, 밭에서 만나 지난해는 어려웠지만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아 새봄을 맞는다고 한판 잔치를 벌이십시오.


그럼 이만 줄입니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방바닥을 뒹굴던 실없는 놈의 중얼거림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심이 건강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반응형

'농담 > 농-생태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수, 비로소 봄이오다   (0) 2009.09.11
입춘, 우리의 설날   (0) 2009.09.11
간지력과 농사 기획안  (0) 2008.09.13
농사력과 절기력  (0) 2008.09.13
농사(農事)와 간지(干支)  (0) 2008.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