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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비로소 봄이오다



우수가 되면 비로소 우리는 피부로 봄을 느낀다. 올해 우수인 2월 19일은 실감나도록 따뜻한 날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3일 뒤에 살짝 뿌렸다. 이 정도로는 겨울 추위로 얼어붙은 흙을 풀리게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어쨌든 봄은 입춘이 아닌 우수가 되어야 누구나 피부로 봄을 느낄 수 있다. 우수 비에 대동강 물이 풀리고 겨울 철새인 기러기가 북으로 날아간다. 땅 속의 벌레들도 슬슬 기지개를 킨다.


사실 사립四立 절기(입춘, 입하, 입추, 입동)들을 보면 그 계절이 일어섰다고 하나 그 계절은 다음 절기에서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봄은 입춘 다음인 우수, 여름은 입하 다음인 소만, 가을은 입추 다음인 처서, 그리고 겨울은 입동 다음인 소설에 비로소 느낄 수 있다. 특히 소설에 가면 “빛을 내서라도 이때는 반드시 춥다”는 속담이 있듯이 꼭 강추위가 닥친다. 하필 이때 대학 수능 시험이 들어있어 사람들은 이를 입시한파라 하지만 실제는 소설 추위다. 철의 변화는 잊고 오로지 전국이 입시 전쟁으로 냉전을 겪고 있으니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다. 이 소설 추위를 당하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겨울이 왔음을 처절하게 인정하게 된다. 24절기 중에 비 우(雨)자가 들어간 것은 우수와 곡우(4월 21일경)뿐이다. 비가 비답게 내리는 철은 6월 하지를 거쳐 소서, 대서 기간이지만 이 때는 비 우(雨)자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니까 우수의 비와 곡우의 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수의 비는 겨울의 추위를 녹이는 비이고 곡우의 비는 씨앗을 뿌리라는 비다. 이 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봄 가뭄이다. 가뭄 중에는 여름 가뭄보다 봄 가뭄이 더 무섭다. 봄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뿌린 씨앗이 싹은커녕 말라 비틀어져 버릴테니 무슨 대책을 세울 도리가 없다. 여름 가뭄이 든다 해도 이미 싹이 터 있는 상태라면 어떻게라도 해 볼텐데 봄 가뭄은 대책을 세우기 힘들다. 그래서 아마 봄비가 더 중요한 의미로 비 우(雨)자를 두 군데에나 넣은 것이지 않나 싶다.


우수와 곡우 사이에 춘분이 있다. 그러니까 한 달 간격으로 있는 것이다. 춘분 때에도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 춘분은 비로소 낮이 밤보다 길어지고 날씨도 영상으로 돌아서 본격적으로 파종을 시작하는 철이다. 그래서 춘분의 비는 곡우의 비처럼 뿌린 씨앗 잘 싹트라는 의미다. 춘분 때 뿌리는 씨는 봄작물이고 곡우 때 뿌리는 씨는 여름작물이다. 그러니까 우수의 비는 추위를 가시게 하고 춘분, 곡우의 비는 씨앗을 심는 비인 것이다.


그런데 봄비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좋지 않은 비도 있다. 우수의 비로 땅이 풀렸는데 또 비가 오면 땅을 질척지게 한다. 귀찮은 비인 것이다. 춘분 때 파종하고 비가 왔는데 또 오면 싹튼 씨앗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이또한 귀찮은 비다. 곡우 때도 마찬가지다. 2007년도 우수, 춘분, 곡우 때 알맞춤하게 비가 왔는데 그 사이사이에도 불청객 비가 왔다. 그러니 자연은 모든 것을 사람에게 만족스럽게 해주지 않는 것 같다.


곡우의 비가 오고 나면 소만, 망종이 오는데 이 때 꼭 가뭄이 온다. 바야흐로 봄가뭄인데 벼 입장에서는 좋지 않지만 밀이나 보리 입장에서는 좋은 가뭄이다. 비가 오면 밀, 보리 이삭이 제대로 익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수가 24절기 중에 차지하는 가장 큰 의미는 음력 정월이기 때문이다. 앞의 입춘에서 설명했지만 반복하자면, 입춘은 절이고 우수는 중인데, 이를 정월 곧 1월로 삼았다. 입춘은 어떨 때는 12월 섣달인 때도 있어 정월달로 삼을 수가 없다. 경칩은 절이고, 춘분은 중이며 2월이다. 청명도 절이고 곡우는 중으로 3월이다. 입하는 절이고 소만은 중이며 4월이다. 망종은 절이고 하지는 중으로 5월이다. 이렇게 주 욱 수열처럼 이어지고 마지막 동지는 중으로 11월이며 소한은 절이고 대한은 중으로 12월 섣달이 된다.

 
옛날 달력은 달을 보고 알았다. 지금처럼 각종 화려한 달력(카렌다)이 없던 시절이라 밤하늘 달의 모양을 보고 오늘이 며칠인지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달이 제일 동그란 보름이면 15일, 깜깜한 그믐이면 1일로 친 것이다. 그런데 달의 한달, 곧 달의 공전 주기가 29. 5일이어서 달로 1년을 계산하면 354. 3일이 되어 태양의 1년인 365.2에 비해 11일이 모자란다. 이렇게 음력과 양력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대략 3년에 한번씩 음력 윤달을 끼워 넣어야 한다.


이렇게 윤달을 끼워 넣어 음력의 편차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양력인 24절기다. 그러니까 24절기 가운데 중(中)으로 음력의 달을 결정하여 앞에서 얘기한 한 대로 중에 해당하는 우수를 음력 정월로 삼은 것이다. 그러면 순서대로 계산하여 춘분은 2월에 들고 곡우는 3월에 들고 소만은 4월에 들고 하지는 5월에 들며 계속 이어져서 동지는 11월에 들고 대한은 12월에 들어야 하는데, 음력과 양력의 편차 때문에 중이 없는 달이 생기게 된다. 이를 무중월(無中月)이라 한다.


그런데 지구는 태양 주위를 타원으로 돌기 때문에 하지 근방에서는 천천히 돌고 동지 근방에서는 빨리 돈다. 말하자면 하지 근방에서는 한 달 기간이 조금 길고 반면에 동지 근방에서는 한 달 기간이 조금 짧게 된다. 그러다보니 무중월은 하지 근방에서 생기고 동지 근방에서는 중이 두 번 드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를 중중월(重中月)이라 한다. 동지와 대한이 11월 동지달에 드는 경우다.


하지 근방에서 무중월이 생기면 편차를 줄이기 위해 윤달을 끼워넣는다. 그러니까 5월에 들어야 할 하지가 6월1일에 들었다면 무중월이 된 5월을 윤4월로 하고 하지가 든 6월1일을 5월 1일로 억지로 당기는 것이다. 이렇게 무중월을 윤달로 삼는 것을 무중치윤법無中置閏法이라 한다.

 
우수 근방에 음력 대보름이 든다. 대보름 때는 쥐불놀이, 달집태우기와 보리밟기를 한다. 쥐불놀이나 달집태우기는 풍년들기를 기원하는 의식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실용적으로는 들녘의 마른 풀을 태워 살균도 하고 풀씨도 태우는 의미가 담겨있다. 보리밟기는 서릿발에 뜬 보리 뿌리를 발로 살짝 밟아주어 통풍을 막아 뿌리 썩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더불어 지난 늦가을에 만든 퇴비를 뒤집어 주고 겨우내 모아놓은 똥오줌으로 마른풀과 섞어 새로운 퇴비더미를 만든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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