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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雜다한 글

점성동→일동, 구룡동→이동, 시곡동→사동?

by 石基 2009.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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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동→일동, 구룡동→이동, 시곡동→사동?
김석기의 <노거수>를 찾아서 ② 안산의 ‘옛 모습’ 아세요?

 

한동안 안산의 옛 모습은 어떠했는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도대체 시화방조제를 쌓아 개막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도시로 개발되기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래서 안산에서 오래 살았다는 어르신을 만나면 꼭 이와 관련해 물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암만 들어도 머릿속에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또 안산에서 10년 이상 산 사람은 꼭 ‘사리 포구’를 이야기하며 좋았다고들 하는데, 거기도 가본 적이 없으니 무엇을 떠올릴 수 있으랴! 그래서 자연히 옛 지도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대충 머릿속에 안산의 옛 모습을 그릴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지도가 자세하지 않아 여전히 목이 말랐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본이 1915년 무렵 작성했다는 첩보지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이 지도를 찾으려고 몇 주일 동안 사방으로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한말 한반도 지형도』라는 제목으로 영진문화사에서 나온 지도책이 서울대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다.

고생 끝에 지도책을 펼친 순간, 확실히 조선에서 만든 지도와는 다르게 정확하게 지형이 표현된 지도를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일동은 점성동, 이동은 구룡동, 사동은 시곡동으로 바꾸면 안 될까?

 

그러니까 현재 가장 번화한 중앙동이라는 곳이 바닷가였고, 고잔동 일대는 모두 개펄이었겠구나. 주변부에 자리한 상대적으로 덜 번화한 곳들이 원래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는 걸 알았다. 참,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원래 점성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일동이라고 부르지? 어디다가 일동에 산다고 하면 숫자 1인지 일인지 다들 헷갈려 한다. 그럴 때마다 뭔가 찜찜해 죽겄다. 조선시대 지도에서도 그렇고 일본이 만든 지도에서도 점성이라고 하니, 일동은 점성동으로, 이동은 구룡동으로, 사동은 시곡동으로 바꾸면 안 될까? 동네 이름을 바꾸려면 연판장이라도 돌려야 하려나 모르겠다. 누가 방법 좀 알려주면 좋겠다.

동네 이름과 관련해서 우리 동네는 아니지만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 하나 있다. 4호선을 타고 오다 보면, 평촌이라는 곳이 그렇다. 내 기억에 처음에는 벌말이었는데, 왜 그 좋은 벌말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한자로 평촌(平村)이라 바꿨는지 모르겠다. 그게 더 부동산 가치를 올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쁘고 뜻 깊은 자기 이름을 버린 동네라는 오명은 떨칠 수 없을 게다.

 

 

 

 

 

 

내 사는 곳 점성(占星), 이익선생 호 성호의 星은 점성에 땄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인 점성占星이란 이름은 참 별나다. 별을 보고 점을 치던 곳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여기서 특별히 별이 더 잘 보였을 리는 없다.

성호(星湖) 이익 선생님의 호는 점성의 성과 송호의 호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하는데, 이 동네가 별과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

누군가는 이익 선생님이 별을 보면서 천문을 공부한 곳이라 첨성이 맞다고도 하지만, 그게 맞는 얘긴지 확인할 길은 없다. 또 우리나라의 무당은 별점을 치지는 않았으니 분명 다른 뜻이 있을 터이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소금장수나 새우젓장수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한다. 군포 속달에 사시는 동래 정씨 집안 어르신께 이야기를 들었는데, 옛날부터 안산의 생선장수와 소금장수 같은 봇짐장수가 중앙병원 뒤쪽에 있는 점성고개를 넘어(이 고개를 넘으면 바로 반월저수지가 나온다) 장사하러 왔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야 새벽부터 짐을 지고 나가 오전에 장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테니, 이 고개를 넘을 때쯤이면 점섬(점심) 먹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점섬, 점섬 하다가 그걸 한자로 표기하면서 점성으로 굳어진 것은 아닐까?

지금도 점성인지, 첨성인지, 아니면 점섬인지 확실하지 않아 옛 지도를 보면 점성이라 하고, 이익 선생님 관련해서 찾아보면 첨성리에 살았다 하고, 현재 이곳에 있는 공원은 점섬공원이라 한다.

 

 

 

 

노거수 만나러 떠나는 길, 귀한 인연을 고대하는 길

 

이렇듯 땅이름은 그 유래가 명확하지 않다. 이 사람한테 물으면 이렇게, 저 사람한테 물으면 저렇게 이야기해 준다.

젊은 날 가슴 시리게 사랑한 첫사랑 그나 그녀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웃는 얼굴은 어땠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지만 그 이름 석 자만큼은 기억에 남듯이, 땅이름도 그러하다. 덕분에 뒤에 남은 사람은 그 이름 석 자만 가지고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재미도 있지만.

아무튼 안산의 옛 모습도 살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노거수를 보러 떠나야겠다. 첫 목적지는 안산의 옛 1번지, 수리산 밑자락에 자리한 수암(현 안산동)이다.
 
여기는 관아와 읍성이 있던 군사, 정치, 행정,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교통편도 불편하고 중심부와 너무 동떨어진 한적하다 못해 낙후된 곳으로 인식되지만 말이다. 그나마 안산동이란 이름이 옛 흔적을 남기고 있어 다행이다.

이 일대가 중심지였다는 것은 이곳에 남아 있는 노거수의 수로도 엿볼 수 있다. 현재 수암에 무려 4그루, 장하동과 장상동에 1그루씩 모두 6그루가 이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노거수는 그냥 오래되고 커다란 나무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전에 나오는 뜻은 노거수(老巨樹)라 하여 단지 “나이가 많고 커다란 나무”라고만 한다.

하지만 그 나무와 얽힌 추억과 기억들, 잎이 피고 지듯 피고 져간 주변 사람들의 삶, 시간과 공간의 흐름과 떨림, 흥망성쇠와 상전벽해는 오직 그 주변에서 사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기억에서 기억으로, 손에서 손으로 전해질 뿐이다.

오늘 노거수를 만나러 길을 떠나지만, 그와 함께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단순히 풍경을 그리는 데 그칠 수 있다. 그런 귀한 분을 만날 인연이 있을까?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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