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안산 ‘18그루’ 나무와의 만남, 그 첫 걸음
김석기의 <노거수>를 찾아서 ① 선사시대부터 산 안산역사

 

 

노거수를 찾아서

 

2009년 새해 벽두부터 안산을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각종 언론에 안산이 오르내렸고, 들을 때마다 밀려오는 짜증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어느덧 안산에 와서 산 지가 4년이 넘었다. 그동안 살아본 안산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안산에 왔을 때를 기억하면 그렇지도 않다. 서울에서 멀다는 생각은 차치하고라도, 시골은 아닌지, 공장만 있는 건 아닌지, 도대체 어떤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혼과 함께 안산에 왔고, 그렇게 자리를 잡은 곳이 일동이다.

 

일동에 자리를 잡아 살고, 또 부곡동으로 텃밭을 오가며 안산의 이러저러한 모습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안산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이런 궁금증은 텃밭에 계신 안산의 토박이 어르신께 이야기도 듣고, 도서관에서 향토지도 찾아보고, 직접 다니며 보고 들은 내용으로 해결해 나갔다.

 

그 결과, 지금이야 안산이 뜨내기들의 도시이지만 원래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재미난 곳이란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주변 상황을 보면 점점 더 뜨내기의 도시로 전락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안산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안산이 그런 곳이 아니라는 걸 얘기할 수는 없을까?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우연히 나무에 눈이 갔다. 그래, 백 년도 못 사는 게 인간이라지만 나무는 몇 백 년을 버티고 서 있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나무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그 나무가 버티고 서서 보아 온 동네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안산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먼저 안산시청 푸른녹지과에 전화를 걸어 이경주 님의 도움으로 안산의 보호수 목록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도서관에 찾아가 향토지를 꼼꼼히 읽고 사전 지식을 쌓았다. 마지막으로는 답사할 곳을 지도로 찾으며 머릿속에 넣었다. 이제 안산의 노거수를 찾아 길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자, 이제 가자!

 


뱀다리 하나.

노거수란? 나이가 많고 커다란 나무를 말한다. 현재 안산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모두 20그루. 그 가운데 풍도에 있는 2그루를 제외하면 모두 18그루가 있다. 풍도의 나무는 2003년에 새로 지정된 것으로서, 그곳에 가려면 인천에서 아침 9시 배를 탈 수밖에 없는데 비용도 시간도 만만치 않아 빼기로 마음먹었다.

 

뱀다리 둘.

안산의 역사는? 안산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물론 지금과는 지형이 많이 달랐지만. 안산에는 남방은 물론 북방식 고인돌이 있고, 인간보다 더 이전에 살았던 공룡의 발자국도 찾아볼 수 있다. 아무튼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남하했을 때 안산을 차지하고 장항구현(獐項口縣)이라 했단다.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아직도 수암에 가다 보면 노리울을 볼 수 있다. 장항, 곧 노루목이 아닌가. 고구려 장수왕이 5세기 때 인물이니 적어도 1500년 전의 기록이 남아 있다는 말씀.

그것만이 아니다. 가장 최근인 조선시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안산에 살던 호구와 인구부터 특산물까지 볼 수 있다. 대략 평균을 내면, 2000호 안팎에 1만 명 남짓의 사람이 안산에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현 안산의 인구 70만에 비교하면 별 것 아니지만, 조선시대에 인구가 최대 1500만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1/1500이 안산에서 살았으니 만만한 숫자가 아니다.

그리고 안산의 특산물은 기록에 남은 걸 보면 대부분 수산물이다. 시화방조제가 생기기 전 안산은 농어업이 조화를 이룬 곳이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업화 정책에 따라 새로운 공업도시가 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것이 혜택인지 아니면 재앙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으면 한결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 옛날에는 먹을거리도 많고 참 좋았다고…. 지금은? 상상에 맡기겠다. 풍요로운 삶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솔직히 내가 느끼는 지금의 안산은 재미없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