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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먹고 살기 좋은 곳, ‘동막골’
김석기의 <노거수>를 찾아서 ④ 450살 된 장상동 ‘은행나무’
영화 덕분에 유명해진 땅이름이 있다. 바로 안산에도 있는 동막골이 그곳이다. 동막골이란 이름은 참 특이하다. 동쪽이 막힌 곳인가? 아니면 동막(東幕)이란 한자로 미루어 주막이라도 있던 곳인가? 그 이름의 유래며 뜻을 전혀 짐작할 수조차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지명을 연구한 논문을 읽다가 그 뜻을 알았다.

 

동막(東幕)이란, 원래 있는 우리말을 표기하려고 한자음을 빌려 적으면서 나온 것인데, 그 본디 우리말은 “두모”라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모란 배산임수의 지형을 지칭하는 말로서, 뒤에는 산을 두르고 앞에는 시내와 너른 들을 낀 곳을 뜻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먹고 살기 좋은 곳을 가리킨다.

그러니 안산에 있는 동막골은 예부터 사람들에게 먹고 살기 좋은 곳으로 인정받은 유서 깊은 곳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아까 지나온 벌터의 뜻 역시 농사지을 수 있는 들이 넓다는 것이니 더욱 그렇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두모란 땅이름은 주로 중부지방에 흔하다고 한다. 두모는 두무, 두모, 두미, 도마, 동막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니 어디 여행을 다니면서 보이면 정말 사람이 살 만한 좋은 곳인지 확인해 볼 일이다.

 

영화 때문에 유명세를 떨며 이 사람 저 사람이 들락거렸는지, 마을 입구에서는 영화 동막골에 나온 곳이 아니라는 푯말까지 볼 수 있다. 아무튼 요즘은 너도 나도 차를 끌고 다니면서 못 가는 곳 없이 구석구석까지 잘 다닌다.

빠르고 편하고 자유로운 이 운송 수단을 축복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운전면허증이 없는 난, 어지간하면 이대로 늙어 죽고 싶다. 차에게 나의 시간과 공간을 할애하기에는 느리게 다니며 보고 즐길거리가 너무 많다.

동막골의 법정동명은 장상동이다. 앞에서 말한 적 있는 노리울을 42번 국도를 중심으로 위와 아래로 나누어 장상동과 장하동으로 정했다. 지도가 있는 분은 펴서 보면 알겠지만, 안산분기점에서 조남분기점까지 길쭉한 평지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노루목처럼 중요한 길목이라 고구려 때부터 장항구(獐項口)라 부르며 중시한 것이다. 이곳이 밀리면 백제가 밀고 올라올 수 있을지 모를 위험이 생기니 말이다. 물론 굳이 이곳 말고도 다른 길목도 있지만,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곳이었을 것이다.

동막골, 곧 장상동에 들어가면 바로 마을의 광장을 만난다. 예전이었다면 뜨거운 땡볕을 가려주는 커다란 정자나무라도 하나 서 있었을 만한 곳이다. 지금은 예전 주민들도 많이 떠나 사람도 별로 살지 않고, 집보다 공장이 더 많은 듯하다. 그렇게 사람들이 떠난 뒤로 마을은 황폐해졌겠지.

 

아니 이걸 가치판단이 들어가는 황폐라는 말로 설명하면 안 되겠다. 인간은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농업에서 공업으로 다시 서비스업으로 전이해 왔으니 말이다. 서비스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내친 김에 지난번 새로 알게 된 ‘비움’이란 곳까지 갈까 하다가 관두었다. 대신 물을 찾아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 각종 묘목을 판다는 간판을 걸어 놓은 집에 들렀다. 마침 한 할아버지께서 낙엽을 치우고 계셔 인사를 드리고 지나가다 들렀는데 물 좀 얻어 마실 수 없겠냐고 여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곳 물이 참 좋다면서 집 앞에 있는 약수를 사람들이 많이 떠가기도 하고, 자신도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자랑하신다. 물을 얻어 마시면서 맛을 보니 정말 자랑할 만하시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시설은 형편없지만 물맛만큼은 마셔본 안산의 다른 어느 곳보다 뛰어나다.

김홍규 할아버지(75)께서는 이곳에 들어온 지 3년이 되셨는데, 7만 5000평이 되는 산을 관리하며 이곳에서 살고 계신다. 혼자 그 넓은 산을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놀랐는데, 아직도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 다만 홀로 사시는 듯해 적적해 보이셨다. 할아버지가 머물고 있는 집도 작지만 꽤 잘 지은 집임을 알 수 있었는데, 본인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100년은 된 집이라고 하신다.

 

 

장상동은 그래도 옛 마을의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할까? 본인의 의지로 새로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을 낙오자라고 느끼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농민과 농촌은 이용 가치가 있을 때만 쥐꼬리만한 대우 좀 받다가 쓸모를 잃자 내침을 당하고 있다.

시골에 가도 그런 마당에 안산이란 도시의 이곳에서는 더 심하지 않을까? 옛날부터 살던 마을 주민은 만나지 못했지만, 길가에 늘어선 작은 공장과 쓰러져 가는 옛 집이나 새로 번듯하게 지은 집들에서 그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우연치 않게 장상동의 보호수를 만났다. 수암에서 만나 노거수만 생각했지 이곳에서 만나리라고 털끝만큼도 예상치 못했기에 정말 뜻밖이었다.

역시, 이곳도 노거수가 대변하고 있듯이 오랜 전통을 지닌 동네였구나. 여기에 버티고 선 나무는 은행나무로서,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표지판에 수령이 420년으로 나와 있는 걸로 계산하면 현재 450살 정도는 되었겠다.

 

이 은행나무는 450년이란 시간 동안 한자리에 서서 무엇을 보았을까? 450년이란 세월을 보냈음에도 겉으로 보기에 굵기나 크기는 초라하기만 하다. 꼭 이 동네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 안타깝다.

450년이면 더 굵고 힘차게 뻗어 있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하천 정비 공사니, 뿌리를 뻗을 만한 흙이 충분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나무는 욕심 부리지 않고 자기가 클 수 있을 만큼만 알아서 크지 않던가!

날개의 깃털을 상한 새는 새 깃털이 밀고 나올 때까지 푸른 하늘을 날지 못한다. 자연의 섭리가 그러할진대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동막골의 오늘을 보면서, 뿌리 없는 나무가 살 수 없듯이 뿌리 잃은 인간은 외롭고 불안할 뿐이란 생각이 든다.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런 모습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경기 부흥이란 미명으로 쓸데없는 데 돈을 쓰며 몇몇 개인의 배만 불리기보다는, 이 땅의 한 울타리 안에서 사는 이웃의 삶을 살필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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