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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여 안녕~

 

 

 

울릉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기리며 오랫만에 술자리를 만들었다. 원래 이런 성격의 출장은 일만 잔뜩 하다가 가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아무튼 이번에 다니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쉴 틈도 없이 열심히 했다. 그거 하나만이라도 어디에 가서라도 자부할 수 있다.

어제 마지막 저녁 자리는 그냥 노는 자리만이 아니었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한 아저씨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들었고, 그 내용에서 토종과 관련한 뭔가를 듣고는, 벌떡 일어나 그리로 가서 이것저것 물었다. 뭔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나눈 결과, 저 위에 안평전이라는 곳에서 농사짓는 분이라는 걸 알았다. 연락처와 함께 내일 꼭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나누고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오늘은 그곳에 찾아가려고 한다. 어차피 가려고 했던 곳인데 겸사겸사 어떻게 운이 좋았다. 잠시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무슨 이야기가 오고가는지 주워들으면 좋다. 눈은 한 순간도 쉬지 말고 여기저기 살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정말 무언가를 얻으러 떠나는 길은 참 피곤하고 어려운 길이다. 나야 이번이 처음이고 잠깐이지만 이 일을 꾸준히 해오신 안완식 박사님은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렇다고 누가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고, 외롭고 험한 길을 홀로 헤쳐 오셨을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떠 어제 발견한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저동항에 있는 곳인데 아침식사를 한다. 이전에도 강조했지만 어디서 아침을 먹을지도 참 중요한 일이다. 아침을 먹지 않고 움직이면 배고파서 금방 지친다. 역시 몸을 쓰는 일에는 제때 밥을 먹는 게 중요하다. 머리를 쓰는 일은 하루에 한두 끼만 먹어도 괜찮지만, 몸을 쓰는 일에는 하루 세 끼를 잘 챙겨 먹는 게 중요하다. 그냥 몸으로 느끼는 바이니, 체질에 따라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겠지.

 

아침을 먹으러 간 저동항에서. 저동의 저는 모시라는 뜻이다. 옛날 이곳에 모시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처럼 옷을 사 입을 수 없던 시절에 모시는 참 중요한 자원이었을 것이다. 저동이란 그만큼 중요한 곳이었다는 뜻을 품고 있다. 

 

 

아침을 먹고 나오니 항에는 새벽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어선에서 오징어를 내리느라 바쁘다. 한쪽에서는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경매가 이루어지고, 한편에서는 부지런히 오징어를 나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쉴 틈 없이 오징어의 배를 가르는 칼질이 슥슥슥슥.... 참 부지런하기도 하시지.

 

부지런히 오징어 배를 가르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  파란 상자 하나를 채우면 얼마라고 들었는데 까먹었다. 아무튼 저 파란 상자에 몇 마리가 들어가는데, 하루에 2천 마리 이상 배를 따는데 그러면 한 5만 원 정도 번다고 들은 것 같다. 잘 적어 놓을 걸 후회막심이다.

 

얼마나 칼질을 해야 이렇게 많은 오징어 눈이 나올지 짐작할 수 있는가? 참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는데 순식간에 뚝딱 지나갔다. 그나마 상품은 다 나가고 마무리 뒷정리를 하시는 분들만 남았다. 울릉도 마른 오징어의 명성은 이러한 어머니들이 지켜나가고 있다. 이 분들이 한 분 한 분 사라지시면 울릉도 오징어도 어디 공장에서 찍혀 나오듯 나올 것이다. 참, 뭍에 돌아다니는 울릉도 오징어는 믿지 못하겠으나 이곳에서는 믿고 샀다. 뭍에서 배로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 남을 테니 속이는 일이 없을 것 아닌가? 요즘은 어디 관광지에 가면 다 똑같은 중국산을 가져다 파는 통에 무엇도 사기가 싫지만 이곳에서는 아니다.

 

 오징어 부산물을 먹으려고 갈매기들이 항구에 모였다. 이 사진은 그나마 한산한 곳을 찍은 것인데, 빽빽한 곳에는 히치콕의 '새'라는 영화가 무색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새 떼가 모여서 무서웠다.

 

 

 

저동항에서 마지막 추억을 쌓고 바로 안평전으로 향했다. 안평전은 한자로 安平이라고 쓴다. 편안하게 펀펀한 곳이라는 뜻이니 예부터 살기 좋았던 곳일까? 아무리 살기 좋았어도 지금만큼은 아니겠지. 요즘은 배도 자주 뜨고, 나물 농사지어서 거두면 거의 대부분 뭍으로 나가 돈도 만지니 참 살기 좋아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던 시절에 여기서 사는 일이란... 감옥이 따로 없지 않았을까? 솔직히 울릉도에 오기 전에 울릉도라 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외로운 섬, 누구나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섬,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사는 섬... 이란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어디나 이제는 다 똑같구나. 교통과 통신의 혜택이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평전을 찾아가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눈이 쌓여 있어 긴장했는데 다행히 얼지는 않아 올라갈 수 있었다. 여기마저 얼어 있었다면 나리분지에 가기를 포기했듯 여기도 그만 포기했을 것이다. 나리분지는 눈이 내려 끝내 가보지는 못해 아쉽긴 하지만, 갔더라도 뭐 특별한 건 없었을 듯해 쉽게 잊어버렸다. 거기는 관광지가 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에서 관광지가 되면 볼 만한 것이 사라진다. 이상한 법칙이지만 사실이니 어쩌랴. 그래서 난 관광지에는 왠만하면 잘 가지 않는다.

안평전에 오르니 어제 만난 김열수 선생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겨울은 보시다시피 눈이 쌓여 농사지을 수 없고 3월부터 시작한단다.

 

김열수 선생님은 안평전에서 농사지으시고, 아내는 그걸고 도동항에서 음식점을 하신다. 부창부수. 그 집이 유명한 것은 재료의 일부가 이렇게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김열수 선생님은 이곳 안평전에서 5천 평의 농사를 지으신다. 주로 고급 산채를 위주로 농사지으시는데, 나물 농사를 지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결국 농민을 좀 먹는 건 농민 자신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나물 같은 경우 한 달 반을 일하면 쇠기 때문에 더 이상 거둘 것이 없단다. 그럼 정확히 그 시기를 지키면서 좋은 품질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걸 조금 더 욕심을 부려 쇠고 나서도 수확하면서 울릉도 나물의 명성이 떨어졌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욕심 때문에 농민들이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 아니겠냐는 말을 하신다.

참 어려운 문제다. 돈으로 뭐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세상에서 돈을 생각하지 않기란 어렵지 않은가! 물론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어느 만큼이 필요한 만큼인지 그 기준이 서로 다르니 어렵다. 백만원이? 아니면 천만원이? 참 어려운 문제다. 그 기준은 솔직한 자기 자신이 가장 정확히 알리라. 누구에게는 백만원이, 누구에게는 일억원이 필요한 만큼이겠지.

 

 김열수 선생님 집에서. 얼마나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으셨는지 모른다. 울릉도 꼭대기에 이런 집이 있으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더구나 고드름을 녹이는 따뜻한 햇살에 그동안 쌓인 피로가 스르르 녹는 듯하여 졸음이 밀려오는 창가였다.

 

 

 

안평전에서 내려오면서 중간 중간 자리하고 있는 집에 들렀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지 못해 아쉽게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냥 나오지는 않았지 사진은 남겼다. 멋진 소나무를 배경으로 안철환 선생님의 웃음을 남겼다.

 

 

또 한 집에서는 장독대 사진을 남겼다. 울릉도는 바람이 많은 곳. 방풍림 대신 슬레이트도 아니고 뭐더라... 이름을 까먹었다. 양철판을 대서 바람을 막으면서 햇볕이 드는 곳에 장독대를 만들었다. 돌을 깔지는 못했지만 스티로폼에 장판을 깔아 습기를 막았다. 이곳의 장맛은 어떨까?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울릉도에 사는 분들을 만나보고자 했다. 그렇게 뒤지고 뒤져 사동2리 변봉희(81) 할머니를 찾았다.

 

김치를 담으시다 우리의 방문을 받은 변봉희 할머니. 너무 환한 웃음과 넉넉한 인심으로 맞아주셔서 몸둘 바를 몰랐다. "아이고 육지 사람들이 별 걸 다 꺼내라고 하네" 라는 말씀으로 웃었지만, 어렵게 지나온 삶의 이야기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참말 이 땅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꾼이고 광대가 아닐까?

 

 

이제 집에 갈 시간도 다 되었고 긴장이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순간까지도 우리를 독려하신 분이 안완식 박사님이다. 나는 참말 그런 것에 약하다. 긴장이 늦춰지면 한없이 늦춰진다. 한 번도 긴장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러다 꼭 필요한 순간에만 긴장한다. 특히 시험 때 같은. 뭐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인생을 산 듯하지만, 시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 앞으로 살면서 어려운 순간이 닥쳤을 때는 어떨까? 그래도 아직은 잘 살았으니 앞으로 죽을 때까지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변봉희 할머니는 사다 심는 걸 모르신단다. 개울 건너 비알빈 밭에 지금도 할아범이 나가서 일하고 있다는 데 젊었을 때부터 거기서 농사지으며 자식들 키우고 가르칠 것 다 시켰단다. 지금 집은 새로 짓느라 아직 빚이 남아 있지만 자식들한테 떠넘기지 않고 내가 살아 있을 때 다 갚고 가실 거라면서 든든한 모습을 보이신다. 물론 자식에게 기대고 싶은 맘이야 없지는 않으시겠지만, 그 떳떳한 모습에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갑자기 할머니가 보고 싶다...

 

변봉희 할머니 댁에서는 처음으로 냉동실에 씨를 보관하는 모습을 보았다. 꺼내 놓으면 오래 보관이 안 되더라며 자신의 노하우라고 냉동실에 보관하던 씨를 꺼내오셨다. 그걸 본 안완식 박사님은 정말 대단하시다며 다시 없는 칭찬을 하셨다. 역시 몇 번이 되지 않는 칭찬의 한 집. 할머니는 우습다며 뭐 이런 걸 찾냐며 웃으신다. 그 웃음이 할머니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사시는 명약이 아니었을까 한다.

 

 

변봉희 할머니 댁에서 만난 꽃. 채송화 같은데, 난 채송화가 좋다. 잘 모르겠지만 되게 닮았는데 모르겠다. 이것도 토종이라고 하셔서 사진에 남겼다. 정말 예쁘지 않나!

 

 변봉희 할머니 댁의 상추. 선별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이건 토종이 틀림없다는 안완식 박사님의 말씀을 듣고, 아 나도 농사를 지으면서 분류건 뭐건 그냥 받아서 심는 모습이 떠올랐다. 순수함이 아니라, 이 땅에 잘 적응한 잘 어울리는 것이야말로 토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제 도동항으로 돌아와 배를 기다린다. 울릉도는 이렇게 안녕~. 외딴 섬일 것이라는 생각은 싹 사라졌다. 아니 배가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외딴 섬이 되겠지. 그럼 그때 이 섬에 사는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살까? 예전에 어업항구가 되기 전에 울릉도에서는 보리와 밀을 주식으로 했단다. 군데군데 벼도 심고 말이다. 그러다 지금처럼 어업항이 되고 물고기, 특히 오징어가 유명해지면서는 농사는 점점 밀려났단다. 지금은 벼농사는 물론 보리며 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자급할 수 있는 기반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외부와의 교통이 끊긴다면...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섬이란 극단적인 상황이 그렇지만, 만약 이게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 일어난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

 

 도동항에서 기다리는 배를 타기 전에. 어찌나 바람이 심하던지 오는 날도 가는 날도 바람에 날렸다.

 

 

울릉도여 안녕~. 이제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다시 오기 전에 또 오겠다는 말은 빈말일 뿐이란 걸 안다. 난 그런 약속은 안 한다. 다시 찾으면 또 보는 것이고 아니면 그대로 좋은 추억으로 남길 뿐. 하지만 한마디 하자면... 울릉도는 언젠가 꼭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은 곳이다. 안녕 울릉도 잘 있어, 안녕 울릉도 또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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