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0일 토요일. 날씨는 흐리고 바람에는 물기가 물씬 묻어 있다. 그러나 날은 따뜻하다. 간밤에 잔 모텔에서 나와 아침을 먹었다. 제주도에는 모텔이 여관 수준인 것에 놀랐다. 다니면서 알았는데 여기는 관광지라서 그런지 극과 극이다. 좀 괜찮아 보인다 싶은 곳은 어김없이 관광단지이며 값이 무척 비싸다. 그렇지 않은 곳은 시골 같은 분위기... 제주도라고 하면 신혼여행 같은 것만 떠올라서 그런지 시설이 좋을지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아침을 먹고 제주도 이틀째 조사에 나섰다. 여기는 밭도 참 다르다. 밭마다 돌담을 낮게나마 둘러친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것도 다 바람 때문일까?
제주도의 마늘밭. 스프링쿨러로 마늘에 아침밥을 주고 있다.
차를 타고 지나다 큰 창고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 무슨 정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가보았다. 이야기를 나누니 이곳이 바로 대정읍 친환경농업연구회라고 한다. 헌데 친환경농업연구회라고 이름을 걸었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그분들이 그동안 고민한 문제가 양파, 마늘, 감자의 무름병이었는데, 광어 양식장에서 항생제로 쓰는 Dapsone이란 약이 거기에 잘 듣는다며 이게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있는지 연구 좀 해달라고 부탁하신다. 그러면서 토종만 찾을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재배해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걸 꼭 찾아달라고 거듭 당부하신다. 이야기를 들으며 맞는 말이긴 한데 웬지 씁쓸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기왕 찾아온 곳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왜 제주도의 무덤에는 돌을 둘러 놓았는지... 대답은 이러했다. 무덤을 쓰려고 땅을 파면 돌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또 마소를 놓아기르다 보니 무덤을 해할 수도 있어 일부러 돌을 둘러 놓았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어제 조사를 하던 곳으로 차를 향했다. 동네를 돌다가 사람이 있다고 표시된 대문을 찾아들어갔다.
대문이 이러면 멀리 나갔으니 다음에 오라는 뜻. 참 편하다. 도둑이 없어서 이런 것도 가능했겠지.
들어가 누가 계신지 소리 높여 불렀다. 인기척이 들리더니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열고 내다보신다. 그러고는 홀로 집을 지키고 계신 할머니가 한 분 나오셨다. 올해 87살이 되셨다는 할머니는 틀니가 아니면 말도 제대로 못한다며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겨워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을 11명이나 나으셨다고 한다. 자식 하나만 낳아도 폭삭 늙는 것이 느껴질 텐데 이 척박한 곳에서 자식을 건사하려고 얼마나 뼛골 빠지게 일하셨을지 생각만 해도 대단하시다. 할머니는 귀도 좀 어두우셔서 말소리를 잘 못 알아들으셨다.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귀가 어두우신 만큼 표준어에 오염이 덜 되셔서 도무지 하시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냥 인사만 드리고 돌아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거동도 불편하신 할머니. 하지만 할머니 뒤로 보이는 반들반들한 마루바닥이며 깔끔히 정리된 집 안에서 할머니가 살아오신 삶을 짐작할 수 있다. 묵호가 외가였던 내 기억 속의 할머니도 이러하셨다.
다시 다음 집을 찾아나섰다. 입구부터 예쁘게 정리된 집을 찾아서 무턱대고 들어갔다. 그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런 곳이 뭐가 있어도 있다. 무턱대고 들어가 사람부터 찾았다. "할머니~. 누구 계세요~" 그렇게 이곳에서 이인옥(70)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여기 대정읍 무릉리 인향동으로 시집을 와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집도 많이 손을 보았지만 그거야 사람 사는 곳은 다 그런 것. 옛날 방식대로 고집하며 사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핸드폰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없으면 난 편하지만 다른 사람이 불편해 한다는 사실.
이인옥 할머니. 첫 집에서 생각치도 않은 성과에 안완식 박사님은 정말 좋아하셨다. 정말 이럴지는 몰랐다.
찾아온 연유를 말씀드리고 대뜸 텃밭에 보이는 배추부터 여쭈었다. "할머니 텃밭에 배추는 옛날부터 심던 게 아닌가요?" 역시나 그건 통이 앉는 토종이란다. 어제 나쁜 걸 뿌렸다며 그래도 잘 자라 다행이란다. 여기서는 5월에 씨를 걷는다고 하신다.
이인옥 할머니 댁의 토종 배추. 이것들도 크게 두세 가지 종류로 갈리었다. 할머니는 따로 구분하지 않고 씨를 받아 그대로 뿌려 걷어 먹는다고 하신다.
배추 말고도 30대부터 심으셨다는 팥도 얻었다. 이건 알이 굵고, 6월에 심어 10월에 거두는 중생종이다. 또 늦깨(참깨)도 있었는데, 키가 크고 10월에 거둔단다. 드물면 가지가 많이 뻗고, 너무 배면 바짝 올라간다. 6개씩 달리는 육모깨라 수확이 많다. 원래 제때 심으면 흰색인데 늦게 갈아서 연갈색으로 보인다.
이인옥 할머니 댁 마당에 자라던 동백의 하나. 안완식 박사님께서 제주에 있는 동안 몇 번이나 알려주셨지만 까먹었다.
동네 말미에서 우영을 둘러보는 할망을 보았다. 보리콩이 자라고 있어 씨 남은 거 없냐고 여쭈니 씨가 왜 남냐며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신다. 제주는 날씨가 따뜻해서 그럴까? 씨를 남겨 놓지 않는다. 갓 같은 건 그냥 한 번 뿌리면 그 자리에서 계속 자라기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씨를 받아야 할 필요를 못 느끼니 씨를 받는 일도, 씨를 남겨 놓지도 않는가 보다. 남으면 남 주거나 버린다는 여든넷 되신 할망의 말에 그런 걸 느꼈다. 이건 토종과 상관 없지만 제주도에서는 진자리콩 깍(꼬투리)이나 쫄멩이(쭉정이)는 멀먹이(말)라고 하신다. 제주에서는 말이 밭갈이, 물건 나르기, 밭 밟기에 중요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심고 남으면 남 주거나 버린다는 할망.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부지런히 밭을 돌보신다. 보리콩 밭에 깔아 놓은 짚풀이 눈에 띈다. 왜 이렇게 깔아 놓으셨는지 묻는 걸 씨에 정신이 팔려 놓쳤다는 걸 다시 사진을 보니 알겠다.
제주의 특산 콩 준지리(준자리, 진자리)콩. 이 콩의 이름은 알이 잘다는 뜻인 듯하다. 제주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며 그 긴 세월을 함께 해 왔다.
동네를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다 어지간한 집이 보이면 무조건 내려서 하나하나 찾아갔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그런데 다니면서 보니 한 나무 종류가 유난히 눈에 띈다. 무슨 나무일까? 지나가는 할망에게 물었다.
"할머니, 저게 무슨 나무예요?"
"잉?"
"저 나무요, 나무 이름이요."
"저기 폭낭이지."
아, 저 나무가 바로 제주도의 정자수 폭낭이구나. 뭍의 말로 옮기면 팽나무다. 제주도에는 뭍의 느티나무만큼 팽나무가 많다. 오히려 느티나무는 별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팽나무가 따뜻한 곳에서 더 잘 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폭낭, 곧 팽나무의 존재를 처음으로 깨닫게 한 나무. 여름에 얼마나 시원할까? 이번 여름에 다시 제주도에 가 팽나무의 그늘에서 시원하게 바람을 쐬고 싶다.
제주의 겨울이 얼마나 따뜻한지 여기서는 10도 이하로만 떨어지면 춥다고 난리가 난단다. 영하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만 되어도 내복을 입고 한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열대 지방에서는 그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면 얼어죽는 사람도 있다니, 인간의 기온적응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은가 보다. 아무튼 따뜻한 날씨 덕에 예쁜 수선화 한송이를 보았다. 이 겨울에 꽃을 볼 수 있다는 데, 또 수선화의 예쁜 모습에 '이야~'라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 겨울에 비닐하우스도 아니고 무슨 조화일까? 제주 사람은 사시사철 꽃을 보고 산다. 그래서 도둑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제주는 식수 때문에 바닷가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연못이나 샘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땅은 넓지만 마을은 드문드문하다. 처음 제주도 지도를 펼쳐보고는 이 넓은 땅을 2주 만에 돌아다닐 수나 있을까 막막했는데, 막상 와서 하루 지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 쪽으로는 한 작물만 싸그리 심는 농사가 대부분이니 빼고, 중산간이라는 곳으로 다녀야 하는데 이곳에는 마을이 드문드문 모여 있으니 찾아갈 곳도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거기만 가면 쉽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다음으로 찾은 마을은 한경면의 조수리라는 곳이다. 특히 불그못이라 부른다는 동네다. 불그못, '불그'가 붉다는 뜻인지 무엇인지는 몰라도 '못'은 확실히 물이 있다는 뜻이다. 전형적인 제주의 마을이니 옛날부터 심던 무엇인가 있을지도 모른다.
마을을 한참 뒤지고 다니다가 가장 안쪽에 있는 집을 찾았다. 이계욱(80), 강정팔(81) 어르신께서 사시는 집이다. 할머니는 성함만큼 성격이 할아버지보다 괄괄하시다. 집안의 주도권을 할머니가 쥐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우리를 영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할아버지께서 꼼꼼하고 세심하게 우리를 맞아주신다. 남녀의 역할이 바뀐 듯한 모습 또한 새롭다. 이것도 제주도의 특징일까?
이계욱 할아버지. 집 구석구석에서 씨를 꺼내와 하나하나 보여주시며 나눠주기까지 하셨다.
들깨는 5월쯤 심는다는데, 오래 한 80년 됐단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계속 심는 것이다. 너물이라 부르는 배추는 20년이나 되었고, 참깨도 80년 넘어 90년이나 되어 간다고 한다. 그 순간 우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시던 할망이 한마디를 날리신다. "새로 나온 씨가 좋은 거지." 케케 묵은 걸 뭐하러 찾아다니는지 이상하신가 보다. 또 까망콩과 팥도 얻었다.
무 씨는 없냐는 물음에 할아버지께서는 "봄 나면 무, 배추 씨 세워야지"라고 답하셨다. 다음에 와서 또 씨를 얻을 수 있도록 두 분께서 건강히 잘 계셨으면 좋겠다.
이제 다시 차에 올라 다음 마을로 향했다. 이번에 갈 곳은 낙천리다. 낙천리의 중심부, 관청이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여기는 널찍한 못이 하나 있었다. 제주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식이 성립하겠다. "물이 있는 곳 = 사람이 모이는 곳 = 짐승도 모이는 곳" 연못 주변에는 멧돼지 석상을 가져다 놓았다. 연못 옆에 있는 설명문을 읽어보니 멧돼지들도 와서 물을 먹고 돌아가던 곳이란다. 지금은 상수도 시설이 놓여 별 쓸모가 없지만, 그렇지 않던 시절에는 정말 뭇 생명을 떠받쳐주는 생명수였으리라. 요즘은 정말 물 귀한 줄 모르고 펑펑 쓰는 경향이 있다. 특히 위생 관념이 철저해질수록 더욱 그렇다. 젊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줄 아는데, "물 귀한 줄 알아 이것들아!"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멧돼지의 모습이, 뭇 생명을 품에 안고 길렀을 이 연못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저 왼쪽 뒤로는 마을 나무로 서 있는 폭낭이 보인다.
이곳 낙천리 1805번지 사시는 문대숙(87) 할머니 댁에 들렀다. 연세가 있으신 만큼 뒤란에 조그만 우영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옛날부터 심던 콩 같은 거 없는지 여쭈었다. 그러니 약콩이라며 콩 봉지를 하나 가지고 나오신다. 큰 알고 작은 알 두 가지가 섞인 듯했는데, 오라방 네에서 얻어온 것으로 속이 누렇다고 한다. 오라방 네에서는 20년 이상 심던 것이라니 일단 조금이지만 얻었다. 다른 건 별 거 없으니 여기 아랫집에 가보라고, 거기도 내가 나눠줘서 있을 테니 한 번 가보라고 하신다. 얼른 인사를 드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약콩을 설명해 주고 계신 문대숙 할머니.
아랫집에는 김을선(76) 할머니가 한창 메주를 쑤려고 콩을 삶고 계셨다. 콩 삶는 냄새에 군침이 돌았지만 염치없이 얻어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을선 할머니에게 콩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의 며느리는 충북 음성 사람인데, 한번은 사돈댁에 가니 검은콩이 비싼 걸 보고 1홉 1만 원이나 주고 사왔다고 하신다. 그 콩은 뭍에서도 구할 수 있으니 일단 지나가고, 다른 콩이 더 있는지 여쭈었다.
윗집 할머니 말씀처럼 역시 이 집에도 약콩이 있었다. 작은 알은 아주 빠르다는 특징이 있고, 큰 알은 또 동그란 것이 있고 납짝한 게 있다. 동그란 건 속이 파랗고 늦은 반면, 납짝한 건 속이 노랗고 한 10일 빠르단다. 콩만 보고도 쪽집게처럼 딱딱 알아내시며 그 특성을 읊으시는데, 농민에게 묻고 배워야 한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이것 말고도 중간 크기의 참팥을 얻고, 마당에서는 요즘 제초제 때문에 보기 힘들다는 댑싸리도 씨를 받았다.
김을선 할머니. 우리를 상대하랴 메주에 신경을 쓰랴 정신없이 바쁘셨다. 귀한 시간을 쪼개 주셔서 참 고맙다.
아, 배가 고프다. 밥 때를 놓치면 한도 끝도 없기에 어디 마땅한 식당이 있으면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서는 밥집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관광지에 가면 음식점이 끝도 없지만 관광지만 벗어나면 어쩌다 하나씩 볼 수 있을 뿐이다. 어찌어찌 뱅뱅 돌다가 저청초등학교 앞에 있는 칼국수 집에서 맛나게 먹었다.
배를 불리니 나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잠시 소화도 시킬 겸 초등학교를 둘러보았다. 입구 쪽에서는 연자방아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이것만 보고 무엇인지 알까 싶었지만 그래도 이런 걸 가져다 놓은 게 어디랴. 혹시 원래 여기가 방앗간 자리인지는 사람이 없어 물어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다칠까봐 그랬겠지만 시멘트로 움직이지 않게 꽁꽁 발라 놓은 모습이 꼭 우리 옛 문화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듯하다. 박물관이나 체험학습에서 겪는 우리 문화는 모두 죽어 있다.
저청초등학교의 연자방아. 이 앞에는 역대 교장선생님 공덕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제주도는 기념비가 참 많다.
차에 올라 한참을 다녔지만 별 성과가 없다. 몸은 나른하고, 성과는 없어 기운 빠지고, 중간에 조수교회에 들러 마당에서 부용 씨를 채집한 것이 다다. 그리고 조수1리의 어느 길가에서 까만동부,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물으니 깜장돔비콩이라 부른다는 동부를 채집했다. 이건 알이 아주 작았다. 그리고 한림읍 동명리 202번지에 사시는 오씨 할머니(94) 댁 담장에서 자라고 있던 부추의 씨를 채집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만나도 씨가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채집에 나섰다. 이거 토종 수집단이 아니라 토종 채집단으로 이름을 바꿔야겠다.
계속
지나는 길에 어느 밭에서 찍은 브로콜리 꽃. 제주도가 따뜻하기에 볼 수 있는 귀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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