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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밑질까봐 먹지도 않고 씨를 받는 마음 

 

 

 

2008년 12월 3일, 날씨는 맑지만 엄청 춥다. 차에서 내리면 손이 곱는 일이 생길 정도다. 추운 날씨와 상관없이 오늘은 여느 날보다 조금 이른 8시 20분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이제 길상면을 훑을 차례다.

아침을 먹고 처음 들른 마을은 난저울. 한 집에 들어가니 이 추운 날 이른 아침부터 할머니 세 분이 모여 김장을 하고 계신다. 왠지 젊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시는 듯해 맘에 걸린다. 혼자 사는 할머니 김장을 도와주려고 모이셨단다.

 

 할머니 세 분이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짐을 덜어주고자 모이셨다. 꽤 추웠는데 찬물에 일하시니 고생이 많으셨을 거다.

 

 

다들 바쁘셔서 더 묻지 않고 행로를 길정저수지 방향으로 잡은 뒤, 그 길에 있는 장촌과 야촌을 둘러보려고 출발했다.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서 보니, 길정저수지 근처는 팬션이며 전원주택 같은 것이 잔뜩이다. 그래서 야촌은 더 볼 것도 없이 장촌으로 기수를 돌렸다.

허나 장촌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곳은 대규모 축사들이 자리하고 있어 집도 별로 없고, 토종도 없었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길에 인삼밭에서 인삼을 캐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이 추운 날 고생이 많으시다. 강화도가 인삼이 유명하다는 말만 들었지, 이렇게 진짜 인삼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뭘 먹고 자랐길래 인삼이 저리 통통한지 모르겠다. 할머니들은 이 마을이 아니라 저 멀리서 차를 타고 오셨단다. 이렇게 나와들 계시니 집집마다 찾아가도 사람이 없었나 보다. 날이 추워 중무장하시고, 한켠에는 불을 때고 있었다.

 

 

오늘은 영 시원찮으려나... 슬쩍 걱정하며 효자터라는 마을로 접어들었다. 말 그대로 효자가 살던 곳이란다. 이곳은 길상면 길직리로서 여기 325번지에 사시는 우병옥(52) 아저씨 댁에 가서 첫 성과를 올렸다. 농사지으랴 유해조수 퇴치에도 힘쓰랴 아주 부지런하신 분이셨는데, 나물콩, 녹두, 재팥, 적팥을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덤으로 직접 이것저것 넣어 만드셨다는 배즙을 얻어 마셨다. 일반 배즙하고는 다른 것이 꽤 괜찮았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아저씨께서 저기 밭 주변에 야생콩이 많다며 그것도 한 번 보고 가라고 하신다. 그래서 차로 이동해 확인한 결과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새콩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주변을 유심히 보고 다니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시 차에 올라 가는데 마당에서 삽을 들고 일하시는 할머니를 보았다. 길직리 410번지의 신금례 할머니다. 밭을 정리하면서 굴착기가 하수관을 꾸겨놓아 물이 빠지지 않아 공사하고 계셨다. 혼자 삽 들고 일하시기에 좀 거들어드리고 토종 이야기를 꺼냈지만 신통치 않았다. 워낙 정신이 공사에만 가 있으셔서 그렇다. 대신 하우스에서 본 3년 전 동네 할머니에게 얻어 오셨다는 큰박을 차에 실었다.

 

몇 가지를 얻긴 했지만 성과가 영 별로다. 오늘 구한 건 한 번쯤은 이미 구한 것을 워낙 수집할 거리가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봉투에 담은 것들뿐이다. 며칠 도니 거기서 거기인 걸까?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으면 그만큼 흥도 떨어진다. 뭐가 자꾸 나오고 그러면 그 재미에 힘든 것도 잊고 시간도 훌쩍 건너뛰지만, 그렇지 않으면 힘만 들고 피곤하고 축 처진다. 오늘은 지금까지가 그랬다.

다음 행선지는 관사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옛날에 관사가 있던 동네일 거라 짐작했다. 어느 예쁘게 꾸민 집 옆의 밭에서 세 분이 끝물 고추를 따는 데 여념이 없다. 다가가 물으니 얼마 전 이곳으로 귀농해서 오늘은 고추를 따려고 동생 식구들을 불러다 일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토종도 물으니 그런 건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그 옆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이 걸음이 큰 행운을 가져올지 누가 알았으랴! 마침내 토종 왕국을 찾았다. 이번 강화도 조사의 가장 큰 성과라면 바로 이 집이리라. 길상면 길직리 450번지에 사시는 구준회, 유준례(61) 아주머니 댁이 바로 그곳이다. 이 집에서만 100년이 넘게 살고 있는 터줏대감이신데, 인천의 계산동에서 20년쯤 살다가 다시 고향집으로 들어오셨단다. 바로 이 집에서 무려 14가지나 새로운 것을 보았다. 몇 년 전 불의의 사고로 아저씨께서는 다리가 불편하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꼼꼼히 부지런하게 그것도 허투루가 아니라 제대로 농사를 지으셨는지 참 대단하시다. 두 분께 어찌 이리 농사를 잘 지으시는지 비결을 어쭈니, "씨 밑질까봐 계속 심고, 많이 나면 먹고 아니면 씨 밑질까 그냥 씨만 남긴다"고 하신다. 씨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답이다. 먹는 거보다 씨가 우선이라니 말이다. 

 

 구준회, 유준례 내외 분. 정말 부지런하고 꼼꼼하신 농부시다. 뒤에 보이는 탈곡기로는 밭벼를 턴다고 하신다. 이번에 전통농법으로 여기에 취재를 가기로 했으니, 귀농통문에 실리는 글을 기대하시라~

 

 

먼저 이곳에서 수집한 목록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강낭콩, 늦깨, 흰콩, 덩굴콩, 적팥, 흰밥밑콩, 청불콩, 검정밥밑콩, 강낭콩, 단호박, 단호박, 멧짝호박, 강화마늘, 속노란고구마, 속노란자주색고구마. 돌아서서 가려다 혹시...... 하고 물으면 또 하나가 튀어나오고, 또 돌아서서 가려다 물으면 또 나오고... 그렇게 이 집에서만 한 시간 반 동안 있었다. 다른 집에 가야 시원찮았던 판에 여기서 이렇게 많이 얻었으니 다행이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강낭콩은 7~8년 정도 된 검정색과 키가 작고 갓이 얇아 밥에 넣어 먹기 좋고 맛있지만 대신 수확이 적은 것이 있다. 이렇듯 먹기 좋고 맛있는 건 수확이 적은 게 특징이라고 한다. 늦깨는 추석 전에 수확하기에 그렇게 부르고, 흰콩은 어머니께 대물림 받은 것으로 9월 말에 거둔다. 덩굴콩은 흰색이고, 적팥은 보통 팥보다 색이 옅은 편이었다. 흰밥밑콩은 추석에 수확하는데, 밥밑콩으로도 쓰지만 송편소로 쓰면 좋다고 한다. 그에 비해 검정밥밑콩은 서리태로서 늦게 거둔다. 청불콩은 겉은 카키색 비슷한데 속은 파랗다. 나물콩으로서 추석에 먹고, 일찍 익으며 껍질이 두껍고 병에 강하다고 한다. 단호박은 골이 있는 마름모꼴과 타원형 두 종류가 있다. 마늘은 30년 이상 심고 있는데, 단단하고 크다. 그렇지만 저장성도 좋고, 키가 별로 크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해마다 주아도 심어 건강한 씨를 유지한다. 이 마늘은 어찌나 매운지 눈에 들어가면 눈도 못 뜰 정도라면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사람들도 한 번 사다 먹으면 그 맛 때문에 끊이지 않고 또 찾는단다.

 

 유준례 아주머니의 보물. 여러 씨앗을 깡통에 잘 담아 그 안에는 수확한 해와 이름을 적은 쪽지를 넣어 혹시 잊을지 모를 위험까지 방지하신다. 얼마나 꼼꼼하고 깔끔하게 잘 갈무리해 놓으셨는지 모른다. 감동 그 자체.

 

 

1시, 점심을 먹고 다시 조사에 나섰다. 길상면사무소에서 초지진 쪽으로 가는 84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오류골에 들렀다. 큰길 옆이라 그런지 별로 신통한 것이 없다. 그래도 호박 하나가 눈에 띄어 그거 하나 얻어서 다시 차에 올랐다. 그 건너편에 있는 감오간이란 마을로 머리를 돌렸다. 꼭 무슨 감옥간 같은 이름이라 동네 할머니께 이 동네 이름이 왜 이러냐고 물었지만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 할머니가 사시는 곳에서 피마자와 차조를 얻었는데, 성함을 여쭈니 남 부끄러워서 말해 줄 수 없으시단다. 곧 갈 사람 이름을 적어서 뭐하냐시며... 피마자는 좀 덜 여문 상태였다. 올해 늦게까지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이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차조는 무지 퇴화를 했는지 손가락 길이도 안 되었다. 안완식 박사님께서는 그래도 잘생긴 것만이 아니라 못생긴 것도 모아다 연구하면 뭔가 새로운 게 나올지도 모른다며 챙기라고 하셨다.

 

차조를 털고 남은 이삭 자루와 검불. 다 쓰러져가는 집에 할머니 홀로 살고 계셨다. 앞으로 우리의 농촌은 어떻게 될까? 그 앞날이 두렵다.

 

 

 

다시 큰길로 나와 초지진 쪽으로 달렸다. 그 길목에 장흥리 산14번지에 사신다는 고금순(66) 할머니가 장사를 하고 계셨다. 여기 나와 있는 건 모두 본인이 직접 농사지어다 내와서 판다고 하신다. 그 품목이 워낙 다양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곳에서 아주 커다란 호박과 나물콩을 구입했다. 장사하는 곳이라 그냥 얻을 수 없어 좀 깎아서 샀다.

 

 마늘을 까는 고금순 할머니. 우리가 나타나 장사를 하시다 살 것 같지 않았는지 또 어느새 일을 손에 잡고 계신다. 부산스럽다 싶을 정도로 바지런함이 몸에 배신 듯하다.

 

 

초지진이 있는 곳은 초지리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들이 넓고 교통이 편리해서 그런지 파면 파 하나만 몇 천 평씩 심어서 내다파는 농사만 발달하고 텃밭에 먹으려고 이것저것 심는 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없이 시간만 흐르고, 가끔씩 차에서 내려도 빈 손으로 다시 차에 올랐다.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는 하품 나오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길상면 초지리 1226번지, 토저골이라 부르는 깊숙한 동네에 들어서자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역시 길이 잘 뚫리면 신식 문물이 밀고 들어오며 오래된 것들을 몰아내나 보다. 기를 쓰고 신작로를 뚫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거다. 이 집에 사는 고복희(76) 할머니는 이제 무릎이 많이 아파 농사를 잘 못 짓는다고 하신다. 그래도 자식들 입에 들어갈 거라며 몇 가지는 놓치지 않고 아픈 몸으로 계속 농사를 짓고 계셨다. 밥에 넣어 먹으려고 1975년에 이곳에 들어와 계속 심는다는 완두, 손주들 잘 먹는다는 옥수수, 황차조와 이른 들깨, 땅콩을 얻었다. 씨를 얻어오면서도 미안한 맘이 들어 혼났다. 뭐 하나를 줘도 그냥 듬뿍듬뿍 퍼 담아 주신다. 나를 보고는 군에 간 손주가 생각나시는지 가다가 먹으라며 땅콩을 한 움큼 쥐어 주머니에 넣어 주신다. 연신 허리 굽혀 인사를 드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몸이 많이 불편하다는 고복희 할머니. 마루가 얼음장처럼 차갑던데... 왜 우리나라의 마루는 차가울까? 따뜻하게 고치면 안 되나? 이것이 늘 의문이다. 옛날 사람들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랬을 텐데, 요즘 생활방식은 그때와 다르니 그에 맞춰 바꿀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물론 돈이 많이 들겠지...

 

고복희 할머니가 툇마루에 말리고 있는 호박. 이것도 다 자식들 입으로 들어가겠지. 그놈의 자식이 뭔지... 아직 길러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쁜 만큼 애물단지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고복희 할머니 댁의 완두. 꼬투리채 달아놓으면 벌레가 잘 끼지 않는다고 한다.

 

 고복희 할머니까 쓰시는 발쇠스랑. 이런 다양한 농기구가 요즘은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사람이 몸으로 일하는 시대가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 지역에 맞는, 또 그 사람에 맞는 다양한 농기구는 시대가 변하고 그에 따라 대장간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 철물점에서만 파는 현실을 낳았다.

 

 

이제 해도 저물어 가고, 마지막으로 선두리만 돌아보면 오늘의 일정은 끝이다. 아니 이번 1차 강화도 조사도 이것으로 끝난다. 저무는 해를 보니 집 생각이 더 간절하다. 조금만 지나면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

선두리에서는 크게 성과가 없었다. 해안 쪽은 확실히 팬션이며 관광지가 자라하면서 농사의 형태도 많이 바뀌었다. 70대 이상인 할머니들에게나 가야 뭔가 하나라도 나오지 아니면 거의 없다. 그렇게 찾은 선두리 924번지의 조금순(81) 할머니. 이 분께 살이 트는 게 특징인 홀애비콩을 얻었다. 이게 하얗지만 맛있어 밥에 넣어 먹는단다. 이 콩을 옆집 색시에게 얻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 색시를 찾아나서니, 색시는 벌써 쉰이 넘은 아주머니다. 할머니에게는 어린 색시 그대로 머릿속에 남아 있나 보다. 아무튼 아주머니께 콩의 유래를 물으니 하점면 망월3리에 사시는 친정아버지 유봉현(80) 어르신께 가면 자세한 걸 알 수 있단다. 자연스레 다음 2차 강화도 답사 때 찾아갈 곳이 생겼다. 다음 숙제로 남겨 놓고 이제 강화도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자. 집에서는 아내가 맛있는 걸 해 놓고 기다리겠단다.

 

 선두리 조금순 할머니 댁에서 바라본 해질녘 강화도의 갯벌과 바다. 저무는 해를 보면 집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건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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