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아들만큼 위하는 거야
2008년 12월 2일 화요일. 날씨는 맑고 따땃해 꼭 봄날 같다.
안철환 선생님에게서 10시쯤 강화터미널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려한 것처럼 오랜 시간 둘이서 다닐 걱정은 덜었다. 그래 오늘은 일단 어제 마저 보지 못한 선원면 지산리의 왜말에서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처음 찾은 곳은 선원면 지산리 126번지 안숙희(75) 할머니 댁이다. 논농사를 많이 지으시는지 따로 벼를 보관하는 작은 저장고를 두셨다. 그리고 밭농사로는 콩을 주로 지으셨다. 10~15년쯤 되었다는 밤콩과 피마주콩, 중간 크기의 나물대를 얻었다. 나물대는 작은 것도 있는데 그건 나물이 잘 안 되고, 이건 나물을 하면 머리가 커서 고소하단다. 이게 참 좋아서 남에게도 심어보라고 줬더니 헬렐레 하더라며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몇 가지를 수집하고 터미널 쪽으로 움직이면서 선원면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한 남산촌에 들렀다. 마침 할머니 한 분이 집 앞에 나와 계셔서 그리로 가 한간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지산리 739번지에 사시는데, 연세가 많으신데도 아직 농사를 꽤 지으셨다. 그걸 광의 문에 각 논의 수확량을 적어 놓으신 걸 보고 알았다.
그런데 그걸 보자니 꼭 다카하시 노보루의 70년 전 기록을 보는 듯해서 기분이 야릇했다. 다카하시가 조사할 때도 농민들은 이 할머니처럼 답했다. 논에 이름이 어디 있으랴 그냥 노간주나무가 자라면 노간주논이고, 집 앞에 있으면 압논이고 하는 식이지. 작물의 이름도 그렇다. 콩이 크면 왕콩이고, 노라면 노란콩이다. 그런데 할머니도 꼭 그렇게 논에 이름을 붙여 놓으셨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3년 묵었는데 가을 늦게 심으니 났다는 시금치와 차수수를 조금 얻었다. 할머니 말씀이, "시방 시금치는 빤질빤질하고 맛이 없잖아. 이건 아주 맛나"라고 하신다.
호박꼬지와 시래기를 말리는 앞의 한간난 할머니. 얼마나 바지런하신지 모른다. 그런데 왜? 옛날에는 간난이란 이름을 지어줬을까? 여자는 자식도 아닌가...
골논, 압논, 노관주, 못자리. 모두 논의 이름이다. 골논은 골짜기나 골창이 있는 곳의 논이고, 압논은 집 앞의 논, 노관주는 노간주나무가 있는 곳, 못자리는 못자리를 만드는 논이란 말이다.
이제 강화터미널에 도착했다. 마침내 안철환 선생님이 강화도로 건너와 합류하셨다. 안산에 있는 들꽃피는학교에 농사 강의가 있어 잠깐 거기에 다녀오셨다. 오래 다니지는 않았지만 며칠 다녀보니 세 명이 이런 일에는 딱 알맞은 듯하다. 둘은 좀 적어 일이 몰리고, 넷은 좀 많아 노는 손이 생기고, 일하기에 셋이 가장 좋다. 뭐든지 셋이 가장 안정적이라더니 이런 일에도 그런가 보다. 옛날 솥도 다리가 세 개이고, 삼족오도 다리가 셋이고, 삼위일체에 삼 세 번까지... 동서를 막론하고 3이란 수에는 안정과 조화가 깃들어 있다.
오늘 아침으로 선원면 조사를 마치고 이제 그 아래 동네인 불은면으로 넘어갈 차례다. 불은면,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땅. 이렇게 대놓고 부처님 운운한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조선시대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이념에 따라 불교, 부처님, 중은 모조리 양지에서 쫓겨나고 저 어두운 산골짜기 음습한 곳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곳 강화도에서는 불은면이란 간판까지 내걸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이곳 불은면과 나중에 갈 길상면은 불교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겠구나 짐작만 할 뿐이다.
84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쭉 내려가다가 불은면사무소를 지나자마자 바로 좌회전해 귀릉굴이란 곳으로 올라갔다. 인터넷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능이 있었다고 귀릉굴이라고 하는데, 동네 어르신들께 여쭈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지도와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지명이나 유래 등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날이 갈수록 확인하고 있다. 이런 것도 직접 발품을 팔아 다니면서 조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네에 난 길로 한참을 오르니 집이 한두 채씩 보이지만 영 시원치 않았다. 다시 차에 올라 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만나서 가장 반가운 건 아줌마, 할머니다. 그분들께 가면 뭐라도 하나 얻을 게 나온다. 차에서 내려 반갑게 인사드리고 씨앗을 여쭙는다. 농진청 얘기가 나오자, 농촌 사람들은 혜택도 못 보고 도시에서 와 조금 산 사람들이나 혜택을 본다면 농업정책에 뭐라 하신다. 올라오면서 보니 이 동네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도시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네에게 쌓인 불만을 말하시나 보다. 돈 있는 자들이여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물 좀 흐리지 말라. 그런 맥락에서 타워팰리스는 정말 훌륭한 건축물이다. 그 안에만 갇혀 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농사로 잔뼈가 굵으신 최시종 할머니. 덩치만큼 입담도 좋으시고, 인심도 넉넉하시다.
우연히 찾은 이곳은 토종의 전당이었다. 다른 것과 겹쳐 순무, 찰옥수수, 청삼, 강낭콩, 밤콩, 땅콩만 얻었는데, 가짓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씨앗에 대한 애정과 보관 방법 등이 남달랐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종류를 밑지지 않고 계속 받아서 심냐고 여쭈니 그 대답이 일품이다.
"씨앗은 아들만큼 위하는 거야."
그렇다! 어머니께 씨앗은 아들만큼 소중한 것이다. 남편은 얄미워 해도 아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우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마음으로 씨앗을 받아서 심고 가꾸는 것이지 다른 어떤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최시종 할머니께 씨앗을 대하는 중요한 마음가짐을 배웠다.
씨앗을 보관하는 방법은 이렇다. 통풍이 중요한 것들은 양파망에 넣어 비 맞지 않게 잘 매달아 놓고, 자잘한 씨앗들은 신문지와 같은 종이에 잘 싸서 쥐나 벌레가 먹지 않게 잘 밀봉해서 광 한켠에 보관한다. 아주 일반적이고 매우 간단하고 쉬운 방법인데, 이렇게 보관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원리원칙에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집에 온 손님이니 대접을 하시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가 커피를 타오신다. 그런데 부엌 한쪽 벽에 뭔가 걸려 있는 게 보여 얼른 따라서 들어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벼 이삭을 묶어 놓은 것이다. 옛날 신주단지 모시듯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조심스레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해마다 벼를 수확하기 전에 가장 잘난 것들을 따다 걸어 놓은 것이란다. 벼가 너무 예뻐서 그런 것이기도 하고, 어느 해에는 작황이 어땠는지 한눈에 비교할 수도 있어서 이래저래 따다 엮어 놓았다.
집을 둘러보니 집에도 여간 손이 많이 간 것이 아니다. 마당에는 '허심정'이란 정자를 세워 현판을 직접 만들어 달아 놓으시고, 그 옆으로는 구상나무를 멋있게 키우셨다. 농사일도 엄청 많으시면서 언제 이렇게 꼼꼼히 집도 돌보시는지, 할머니께서도 나는 그 양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할아버지 자랑을 하신다. 마침 들에 나가셔서 만나뵙지 못했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찾아가 볼 만한 집이다.
할머니께 대접을 받은 커피와 감 뒤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가장 잘된 놈으로 골라 따다가 엮어 놓은 벼 이삭.
좋은 분을 만나 커피까지 얻어 마시니 마음이 참 좋다. 좋은 기운은 사람에게 좋은 맘을 갖도록 만든다. 더 눌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으나, 할머니도 들에 나가셔야 하시고 우리도 얼른 길을 떠나야겠기에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차에 올라타서 어느 길로 갈지 잠시 고민을 했다. 손바닥에 퉤 침을 뱉어 튀겨도 재밌겠지만, 최대한 효율적으로 빠트리는 곳 없이 샅샅이 돌아야 한다. 지도를 읽으니 고갯길을 넘어가도 되겠다. 길이 좋기만 기대하면서 서서히 고갯길을 넘었다.
고개를 넘으니 바로 집이 하나 나온다. 불은면 두은리 90번지에 사시는 채호근(74) 할아버지의 집이다. 여기는 뱅골이라는 동네다. 강화도에서는 그래도 산골에 속하는지라, 또 앞마당 한쪽에 두엄도 잘 만들어 놓으신지라 뭐가 나오겠다 싶었다. 안완식 박사님이 또 대뜸 쑥 지르신다.
"여기 메밀 있어요?"
그랬더니 메밀이 나온다. 더군다나 중국산까지 따라 나온다. 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밭이며 집 안 여기저기를 잘 살펴 뭐가 있는지 파악하신 듯하다. 그것이 바로 박사님만의 방법이구나. 또 하나 배웠다. 메밀은 일찍 심으면 별로이고 중복 이후에 심어서 거둬 먹는다고 한다. 할머니가 있으면 다른 것도 더 찾아서 보여주겠지만 아쉽게도 할머니가 읍에 나가셨다. 할 수 없이 이 정도로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채호근 할아버지. 마당에는 수석으로 꾸미시고, 집도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사신다. 거름을 정말 끝내주게 만들어 놓으셨다. 집 아래로 축사가 많은데 거기서 소똥을 얻어오셨을까? 거름에 대해 자세히 여쭈어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해 주지 않았다. 이곳도 언젠가 다시 들르고 싶다.
아랫마을로 내려오니 전부 축사뿐이다. 그래도 그 틈바구니에 오래된 집 한 채가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 사람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고, 문패로 주소만 확인했다. 불은면 두운리 361번지 구인봉 어르신 댁이다. 집이 좋아 보여 대문은 닫혀 있지만 쪽문으로 슬쩍 돌아 들어갔다. 이런 집은 뭔가 있어도 있기 마련이다. 사람을 찾을 수 있으면 꼭 찾아서 만나야 한다.
흙벽이 갈라진 틈으로 보이는 나뭇대에 시래기를 묶어 말리고 있다. 집을 손질할 힘이 있으셨다면 절대 저렇게 방치하지 않으셨을 텐데... 건축 자재로 흙은 이제 시멘트에 밀려 빛을 잃거나, 아니면 시멘트보다 비싼 재료로 각광을 받거나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마치 토종 씨앗처럼...
안마당으로 가 큰소리로 불렀지만 묵묵부답. 할 수 없이 그냥 돌아나오려는데 벽에 가지런히 걸어 놓은 씨앗이 보인다. 뭔가 새로운 것이 없을까 싶어 다가가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다 본 것인데 딱 하나 굼뱅이동부만 하나 챙기라고 하셔 미안하지만 조금만 챙겼다. 굼뱅이... 한때 내 인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아이디로 쓰기도 했다. 일단 느리고, 허여멀건하다. 거기다 구르는 재주까지 있으니 딱이다 싶었다. 그런데 얼마 안 쓰다가 김서방으로 바꾸었다. 종로에서 김서방 찾는단 기분으로.
잘 갈무리해 놓은 여러 씨앗. 옥수수, 동부, 팥, 조까지... 아무도 계시지 않은 게 아쉬웠다. 겨울에 다들 어딜 그렇게 다니시는지 모르겠다.
도둑질 아닌 도둑질에 맘이 거시기하다. 그런 기분은 잊고 다시 출발이다. 양쪽으로 축사를 놓고 그 사잇길로 달렸다. 아니 달렸다기보다는 슬슬 기었다. 길도 비포장이고 울퉁불퉁한데다가 어디가 어딘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힘없이 간다 했다. 그러다 딱 한 번 막다른 곳에 다다라 할 수 없이 차를 돌렸다. 사실 막다른 길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임도로 올라가는 길이라 괜히 더 가면 헤어날 수 없겠다 싶어 차를 돌렸다. 그리로 갔으면 오늘 하루는 땡 칠 수도 있었다.
돌아 돌아 어렵사리 도착한 곳은 불은면 고능리의 아침가리란 동네다. 이곳 993번지에 사시는 고남희(81) 할머니 댁에서 아침가리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아침가리는 아침 + 갈이란 말로, 이곳 사람들이 하도 부지런해 아침 먹기 전에 논밭 갈이를 한다고 붙은 이름이란다. 여기 시집와서 그 이름 때문인지 엄청 일도 많이 하고 고생했다는 할머니의 말에 웃음이 났다. 할머니 댁에서 음력 9월에 거둔다는 검정콩(속청)과 시집와서부터 계속 심었다는 적팥을 얻고 다음 마을로 넘어갔다.
벽 한 면에 잘 정리되어 있는 체들. 쓰는 데에 따라 구멍의 크기가 다르다. 농기구만 바도 이걸 쓰는 사람이 어떻겠다는 걸 알 수 있으니, 작은 거 하나라도 잘 챙기며 잘 살아야 한다.
지나면서 세 군데 마을을 들렀지만 아무 수확이 없었다. 특히 이쪽 동네에는 비닐하우스가 많아서 더 그런 것 같다. 토종 씨앗이 보니까, 있는 데에는 많고 없는 데에는 아예 없다. 또 있는 집에서는 적어도 서너 가지는 볼 수 있다. 하나라도 없는 집이 보이면 그 동네에는 거의 십중팔구는 없다. 씨앗도 끼리끼리 모여 사는가? 어떤 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렇겠지.
점심 때가 지났지만 아직 계획했던 곳을 다 돌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기 전에 불은면 두운리 776번지 장안말에 들렀다. 행정구역의 경계를 살짝 넘나들며 다시 두운리로 왔다. 이제 기억이 하나둘 지워지기 시작했는지 이곳에서 만난 주남순 할머니가 어떤 분이셨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게 확 인상에 남길 만한 뭔가를 주지 않으셨나? 기록에는 5년 된 쭈글쭈글한 완두, 강낭콩, 땅콩을 얻었다고 나온다. 그것 말고 뭔가 특별한 말씀은? 없다. 배가 고파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다음 줄에 밥을 먹고 쉬었다는 기록은 아주 뚜렷하게 적어 놓은 것으로 봐서는...
장안말 주남순 할머니. 어떤 분이셨는지 시간이 오래 지나 솔직히 까먹었다. 사진만 남기고 사람은 잊어버리다니 너무 죄송스럽다.
그렇게 기다리던 점심은 화도돈대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회덮밥을 먹었다. 날이 따뜻해 차 안에서 엄청 나른하고 졸렸다. 피로가 쌓인 탓도 있을 것이다. 2시, 다시 조사에 나섰다.
오후에는 불은면 오두리부터 시작이다. 터진개란 마을을 지나 안샛말로 곧장 들어섰다. 터진개는 예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바닷가를 끼고 팬션과 식당만 즐비하다. 안샛말로 왔지만 이곳도 영 시원찮다. 큰길과 바닷가가 바로 옆이라 영향을 많이 받았나 보다. 차를 타고 지나는데 아주머니 두 분이 해바라기를 하고 계신다. 나도 햇볕이나 쬐면서 꾸벅꾸벅 졸았으면 좋겠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차에서 내려 아주머니께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 이름이 참 재밌다. 옛날 어른이 명이 길라고 지어주셨다는데, 서총각(62)이라고 한다. 농사는 많이 안 짓고 집 옆에 텃밭 조금에다 종묘상에서 사다 심은 씨를 심는다고 한다. 그런데 옥수수만은 스물여덟부터 심기 시작했다고 하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옥수수는 씨를 받기도 심어서 키우기도 쉬워서 그러셨는지 모른다.
서총각 아주머니. 맛있는 귤도 잘 얻어 먹었다. 지금도 이 사진을 보면 그 따사로움이 기억나 살포시 졸음이 온다.
안쪽으로 몇 집이 더 있다는 말에 찾아 들어갔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뭐 하는데 남의 동네에 들어와 수상하게 행동하냐고 의심만 받고 물러났다. 나오다 멋들어진 옛집이 한 채 있어 잠시 눈요기를 했다. 이렇게 좋은 집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 이곳도 별장처럼 쓰는 곳인가?
오두리에 있는 멋진 옛집. 앞마당에는 큰 연못까지 파 놓았다. 하지만 그 내력을 알 수 없었다.
오두리를 벗어나 넙성리로 향했다. 여기는 들이 참 넓은 편인데 그래서 넙데데하다고 넙세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이 동네 이름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놀랍게도 시원하게 답해 주시는 분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냥 사는 동네니까 그럴 것이다. 그런 걸 물어보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곤 한다. 그래도 궁금한 걸 어쩌란 말이냐. 넙성리에 대한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는데, 언제 강화도 지명과 관련된 책이라도 뒤져야겠다.
오늘은 참 따뜻한 날이다. 이곳에서도 해바라기하려고 나와 계신 두 할머니를 만났다. 넙성리 154번지에 사시는 김순옥(76) 할머니가 그 가운데 한 분이다. 마침 땅콩을 까 먹고 계셔서 그걸 한움큼 얻었다.
날이 좋아 집 앞에 앉아 땅콩 까 먹으며 친구 분과 이야기하시던 김순옥 할머니.
땅콩 좀 먹어 보라며 한움큼 쥐어 주셨다.
땅콩도 얻어서 먹었는데 비릿하지도 않고 고소하다. 이것 참 맛있네. 땅콩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사라질 만큼 맛있다. 이 정도면 땅콩도 먹을 만하다. 이게 바로 토종의 맛인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같은 동네의 158번지 사시는 유정숙(75)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마침 날이 좋아 쓰레기를 태우러 나오셨다. 대신 불을 볼 테니 할머니가 가지고 계신 씨앗 좀 보여달라고 보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씨앗을 서랍장에서도 꺼내고, 방안 어딘가에서도 가지고 나오고, 여기저기 숨어 있던 씨들을 깨워 데리고 오신다. 다른 건 다 있어서 검은동부, 흰강낭콩, 녹두만 얻었다. 그래도 아들과 함께 사신다고 하니 참 좋아 보인다. 자식은 도시로 떠나고 홀로 남은 어르신은 돌아나오기도 어렵다. 하룻밤 잠이라도 잔다고 뭐 달라지진 않겠지. 오히려 그게 더 폐를 끼칠 수 있다. 정 붙이면 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정 떼기 어려울 바에는 차라리 붙이지 않는 것도 낫지 않을까.
유정숙 할머니. 허리가 반은 굽으셨다. 왜 사람은 허리가 굽을까?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허리가 굽고 관절이 좋지 않다는 어르신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고된 일을 많이 하셔서 그런가?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다. 이제 다닐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는데 넙성리 470번지에 사시는 구천회(74) 할아버지 내외 분이 밭에서 일하고 계셨다. 어렵지 않게 다가가 말을 건네 씨를 보관해 놓은 곳까지 갔다. 그런데 할머니는 일하다 들어오셔서 그런지 마음은 밭에 가 있고, 할아버지는 이 사람들이 누군가 의심하신다. 나중에 안완식 박사님이 명함을 드리니 의심을 풀고 사정을 이야기하신다. 요즘 시골 사람 등치는 사기꾼들이 많아서 그런다고. 하긴 소도 훔쳐 가고, 어렵사리 키운 농작물도 쓸어 가는 판에 의심할 만하시다. 어째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모르겄다.
이른참깨가 좋아서 계속 심는다는데, 5월 10일쯤 심어 8월 7~8일이면 거둬 말린다. 가지가 많고 드물게 달리는 네모참깨로, 북성 마을에서 10년 전쯤에 얻어 온 것이라 한다.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가고 늙은 사람만 남아 이렇게 고생한다며, 다시 한 번 다른 뜻이 있어 의심한 게 아니니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보다 더한 경우도 몇 번 당했는데 이건 별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 왔을 때 어떻게 대하는지 되돌아보았다.
이제 시간은 4시를 훌쩍 넘겼다. 많이 가야 서너 집.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이다. 조금만 힘을 내자. 이 시간대가 되면 슬슬 피로가 몰려온다. 어디 들어가 철푸덕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래도 어디 그런 내색을 할 수 있나. 마지막이 되면 더 열심히 일하며 참을 뿐이다.
넙성리를 지나 신현리로 들어섰다. 토종이 있을 만한 몇 집이 눈에 들어왔으나, 시간이 없으니 잘 골라야 한다. 한 번은 허탕을 치고 찾은 곳이 신현리 235번지 나정윤(71) 할머니 댁이다. 22살에 시집와 여직 심는다는 시금치는 잎이 길고 대가 종 올라가고 색이 옅다. 나물콩은 5~6년밖에 안 되었는데, 늦게 심어도 일찍 여무는 보기 드문 것이라 수집했다.
이후 몇 집을 더 들렀지만 아무 수확이 없었고, 이제 해는 간당간당 넘어가기 일보직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솔정마을만 지나면 길상면으로 나가 숙소를 잡으려고 한다. 가다 보니 예쁜 집이 하나 있어 잠시 구경을 하는데 조롱박이 눈에 띈다. 이곳에 귀농한 아주머니신데, 그분께 조롱박 세 가지와 족두리꽃 씨앗을 얻어 왔다.
짧고도 긴 하루 해가 넘어갔다. 숙소를 잡은 뒤 저녁을 먹으러 길상면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 건너편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와 하늘을 보니 달과 목성과 금성이 한데 어울려 있다. 이런 기회가 어딨나 싶어 사진기를 들이댔지만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기다란 전문 망원렌즈나 달아야 찍을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사진기는 내 눈만 못하다. 그래도 남한테 보이려면 사진, 아니지 말로 전할 수도 있구나. 어느 틈에 말로 이야기를 전하는 걸 잊어버렸다. 상대도 그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서로 통하는데 그렇지도 않으니 이야기할 거리도 별로 없다. 그저 사진을 들이밀며 보이는 수밖에... 나부터 그러니 뭐 할 말이 없다.
서쪽하늘에 뜬 초승달과 목성, 금성. 좀 더 밝은 왼쪽의 것이 금성이고, 오른쪽의 것이 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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