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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농-생태계

간지력과 농사 기획안

by 石基 2008.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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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력干支曆 (갑자력甲子曆)과 농사(農事)

. 도입

. 간지란 무엇인가?

. 간지의 기원과 역사 ; 어디에서 유래했고, 언제부터 사용되었나?

. 간지와 동양사상 (음양오행론, 천인상관론 등)

. 간지와 책력의 만남

. 간지력과 농사

. 맺는 글




. 도입

-간지는 케케묵은 옛 이야기일 뿐인가? …… 현대를 사는 우리, 특히 농사와 간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 간지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도입부


. 간지란 무엇인가?

- 간지의 기본구조

간지(干支)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로 가리키는 말이다.


= 천간

천간은 하늘, 근간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10가지가 있다. 그래서 다른 말로 십간(十干)이라고도 한다. 10천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천간은 10년 단위로 돌아옴을 알 수 있다. 무턱대고 외울 것이 아니라 천간의 첫 번째 갑이 서기년도로 끝자리가 항상 4년이 되는 것만 외우면 정확하게 따질 수 있다.

숫자상 주기개념이 가장 명확한 것이 10과 12이다. 상주시기부터 손가락 숫자와 일치하는 10이 천체의 운동규율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등장하여 10천간이 하나의 주기가 되었다. <사기 율서>에 “수는 1에서 시작하여 10에서 끝난다.” 라는 논리는 10이 수의 최대수로서 다시 1로 돌아가는 순환주기상 마지막에 위치한다는 설명이다. <春秋 繁露>에서는 “천의 대수는 10순에서 끝나니 … 인간도 역시 10개월이면 생겨난다” 고 하였고, <淮南子>에는 “천은 일을 주관하고 일수는 10이다. 일은 인간을 주관하므로 10개월만에 태어난다.” 고 하였다. 군대 편제 단위나 민간사회의 단위인 十家爲什이 그것의 적용이다. 한 대에는 “십리마다 정자를 두고 정자가 열 개면 향이 된다 十里一亭 十亭爲鄕” 고 하였다.

그러나 10은 천제운동 주기와 큰 관련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 지지

지지는 땅, 속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12가지가 있다. 그래서 다른 말로 십이지(十二支)라고 한다. 12지지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가리킨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쥐띠, 소띠, 호랑이띠, …… 하는 띠를 말한다.

12는 천체운동주기와 비슷하다. 목성의 공전주기가 바로 11.86년으로 대략 12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황도상 달은 지구와 12번 회합주기를 갖는다. 12율서, 12차, 12시간, 12지지, 12생소 등이 12가 쓰이는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천원과 지방을 곱한 수가 12이다.


= 육십갑자

육십갑자는 10천간과 12지지의 조합이다. 이 조합은 갑자, 을축, 병인, ……, 신유, 임술, 계해까지 60개가 만들어 진다. 우리가 환갑이라고 하는 것이 그 활용의 한 예인데, 자신의  출생 간지가 60년 후에 동일하게 되기 때문에 환갑(還甲 - 갑자가 돌아옴)이라고 하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와 같이 십간과 십이지가 배합된 육십갑자를 가지고 역법(曆法)을 만들었다. 그들은 육십갑자를 사용하여 지금도 갑자년, 을축년을 사용하듯이 햇수를 표시했다. 또한 날짜 표시에도 10일까지의 표시가 반복되는 것을 보완하여 육십갑자를 사용하였고, 달 수의 표시에도 이와 같이 사용했다. 이렇게 하여 해마다 배당되는 갑자(甲子)를 세차(歲次)로, 달의 배당을 월건(月建)으로, 날의 배당을 일진(日辰)으로 명명하였다. 지금도 쓰는 ‘오늘은 일진이 안 좋다.’ 라는 말이나 제사 지낼 때 축문에 ‘유세차(維歲次) 갑자년 갑자월 갑자시’ 하는 표현도 여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10과 12 보다 더 큰 주기는 60이다. 60은 60간지로 쓰인다. 이 숫자는 서수사로 쓰였다. 역법상 년도나 등급 표시, 조항의 나열, 불특정인명 등에 사용되었다. 천상의 천수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갑자 60년 주기는 삭망월(달의 삭망이 반복되는 주기)과 회귀년(태양이 황도(黃道)를 따라서 천구를 일주하는 주기)의 회합주기라는 것이다. 60년은 항성월27.321893 일(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주기)로 365.25 * 60 = 21915일이며 이는 802.10401 항성월인데, 21915일은 삭망월 29.530589일로 742.11184 삭망월이 된다. 이 742.11184 삭망월은 60년 + 22.11184 삭망월인데 이것은 60년 + 22윤달 + 3.3015일이다.

3년마다에 1윤달을 두는 19년 7윤법에 의하면 60년에는 22개의 윤월이 존재한다. 이로보면 갑자 60년은 삭망월과 회귀년의 주기가 일치하는 기간이다.


72는 1년 360일을 오행에 따라 등분하면 나오는 숫자이다.



. 간지의 기원과 역사 ; 어디에서 유래했고, 언제부터 사용되었나?


-천간(십간)의 기원

십간의 구체적인 기원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각종 사료(史料)를 통해 유추해 볼 때 중국 고대의 위서(緯書) 가운데 하나인 전한(前漢) 말기에서 후한(後漢) 시대에 만들어진 <하도낙서(河圖洛書)> 중에 중국 고대 복희씨가 역(易)의 팔괘를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는 ‘하도(河圖)’에 십간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그 기원이 하(夏)왕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학설로는 중국 한(漢)나라 때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어느 한 시대, 한 장소, 한 인물의 창작물이라기 보다는 고대의 주술적 점술, 철학적 사유와 문명의 발달 등이 종합된 고대 역법(曆法)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10이라는 숫자는 셈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손가락 10개나 또는 달의 항성일인 약 30일 단위에서 그 위상변화가 뚜렷한 열흘 단위 1순(旬)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한 달을 상순, 중순, 하순으로 나누는 것은 이와 마찬가지이다.

명칭은 처음에 십간(十幹)으로 쓰이다가 십간(十干)으로 변화되었으며, 점술가들에 의해 오행과 결부되어 천간(天干)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지(십이지)의 기원

십이지 역시 중국 은(殷) 왕조 때 이미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아 그 기원은 아마 은(殷) 왕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불 수 있으며 천간과 마찬가지로 고대 역법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12라는 숫자의 사용은 달이 12번 변화하면 1년이 되는 것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고 또한 목성의 공전주기가 11.84년 인 것에서 12라는 숫자를 사용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특히 12는 2, 3, 4, 6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숫자이기에 10에 비해서 활용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주기일 가능성도 있다. 십간이 날짜를 표시하는 부호로 사용되었다면, 십이지는 12개의 달을 의미하는 부호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십이지는 처음에 십이진(十二辰), 십이지(十二枝) 등으로 쓰이다가 십이지(十二支)로 변화하였고, 이것도 역시 점술가들에 의해 오행이 결부된 지지로 표현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십이지에는 동물을 결합시켜 십이지수(十二支獸)로 표현하는데, 일반적으로 음양설(陰陽說)이나 불교사상(佛敎思想) 등의 영향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시기로는 중국 전국시대부터라고 한다.

특히 십이지에는 동물 뿐만이 아니라 시각과 방위, 계절까지 결합시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오랜 세월동안 사용되어 왔다.


- 갑골문과 천간․지지의 사용

천간․지지와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기록 자료는 갑골문이다. 갑골문은 중국 상(은)나라 때 거북껍질이나 뼈에 새긴 글로서 한자의 모태가 되는 글자를 말한다. 갑골문은 당시에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 점복술의 하나로 사용되었는데, 우리는 거기에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하여 당시의 정치상뿐만이 아니라 문화, 경제, 사회에 대해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갑골문이라는 문자는 먼 옛날 어느 날 어떤 똑똑한 사람이 갑자기 발명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사물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이것을 점차 공통적인 글자로 발전시켜 나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갑골문을 시작으로 기록되지 않은 선사문화가 아닌 인류의 기록된 역사가 시작되게 된다.

먼저 갑골문이 사용된 상나라 이전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중국대륙은 170만 년 전의 원모원인, 100만 년 전의 람전원인, 50만 년 전의 북경원인, 그 후 정촌 하투 산정동 유강 자양 기린산인을 거치면서 구석기시대를 지나 기원전 5000년경 황하유역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소위 문화라는 것이 시작된다. 대략 기원전 5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까지가 앙소문화라 하는 신석기 문명의 시대가 바로 그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수렵채취에서 정착농업생활로 들어갔으며 사회라는 것이 형성된다. 이때가 흔히 말하는 요순시대이다.

그러다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왕조가 성립되기 시작했는데 하(夏)왕조가 첫 번째 왕조이다. 하 왕조는 우 왕에서 걸 왕까지 17왕 470년을 중국 중부지방에서 왕위세습제로 내려오다가 말년에 도(道)가 없어지고 민심을 잃으매 상(商)왕조의 시조인 탕(湯)에 의해 멸망한다.

그리고 갑골문을 사용했다는 상(商)왕조(BC1600-BC1050)가 그 다음 왕조인 것이다. 상나라는 주나라(BC1050-BC770)에 의해 멸망하고 이어서 제자백가의 시대라 하는 춘추전국시대(BC770-BC250)가 도래한다. 이때 중국벌판은 많은 작은 나라가 서로 경쟁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하게 된다. 유명한 공자, 맹자, 노자가 이때의 사람들이다. 이 여러 나라는 드디어 진시황에 의해 통일되지만 진나라((BC250-BC200)도 얼마 못 가고 여러 나라가 군림하다가 유방에 의해 통일되어 한나라(서한 : BC200-BC10)시대로 접어든다.

중국의 역사를 몇 줄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간략히 중국의 전 역사 기간 중 상 나라의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나라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이 갑골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상(商)왕조의 조상은 황하(黃河) 하류의 한 부락으로 일찍부터 목축업이 발달해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상(商)의 시조는 설(契)이라는 사람인데 우(禹)를 도와 치수(治水)에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순(舜)에 의해 상(商)에 봉해졌다고 하며, 하 나라가 황하 중․하류를 통치할 때 하(夏)의 신하였다고 한다. 설(契)의 손자인 상토(相土) 시기에 이르러서는 그 세력이 멀리 해변에 까지 미쳤다. 후손인 왕해(王亥)는 소와 양을 길들여 짐을 싣고 여러 마을을 왕래하여 무역교환을 하였기 때문에 유명한 상인이 되었다. 그러나 소떼를 이끌고 황하(黃河) 이북의 유역(有易) 부락에서 무역교환을 하던 중 그 부락 사람들에게 소와 물건들을 빼앗기고 살해당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의 아들인 상갑미(上甲微)는 유역(有易) 부락을 쳐부수고 이로 인해 상족(商族)의 세력은 더욱 강대해진다.

상지아웨이(上甲徵)의 7대손인 성탕(成湯)은 갑골문에는 대을(大乙)이라고 합니다. 그는 하(夏)왕조를 멸망시키고 상(商)왕조를 건립한 첫 번째 왕이다. 상(商)왕조가 건립된 후에 중국 역사상 노예사회는 새로운 발전시기로 진입한다. 첫 번째 왕인 성탕(成湯)으로부터 마지막 왕인 주(紂)에 이르기까지 모두 17세, 31왕(1세에 형제가 왕위를 이어간 경우가 많음)이 재위에 있었으며 약 6백년의 역사를 가진다. (대략 서기 전 17세기에서부터 서기전 11세기까지).

성탕(成湯)은 하(夏)를 멸망시킨 후 오늘날의 산동성 조현(曹縣)으로 도읍을 옮긴다. 성탕(成湯) 이후 상(商)왕조는 10대 왕 중정(仲丁)시대부터 왕실 내부에서 끊임없이 왕위쟁탈이 벌어지고 주변국들도 상(商)왕조를 공격하여 왔다. 비록 13대 왕 조을(祖乙)의 시기에 외부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있었지만 통치계급 내부의 왕위쟁탈 투쟁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또한 성탕(成湯) 이후로 다섯 차례 수도를 옮겼는데 이러한 빈번한 천도는 백성들에게 적지 않은 재난을 가져다주어 불만을 야기 시켰고 급기야는 반항투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상(商)의 20대 왕 반경(盤庚)에 이르러 이러한 혼란한 국면을 타파하고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도읍을 은(殷)으로 옮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내부의 통제를 강화하여 상(商)왕조의 통치가 안정을 되찾게 되는데 마지막 수도인 은(殷, 지금의 하남성 안양 북쪽 샤오툰 촌)이 바로  19세기 말 갑골문이 처음 발견된 곳이다.

반경(盤庚)이 죽은 후 그의 동생인 소신(小辛)과 소을(小乙)이 각각 뒤를 이었고, 소을(小乙)이 죽고 나자 그의 아들 무정(武丁)이 20대 왕위를 계승한다. 상(商)왕조의 모든 시기 중 무정(武丁)은 유능한 왕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58년 동안의 재위기간 중 무정(武丁)은 내부의 통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사방에서 상(商)의 부락들에 빈번한 침범을 거듭한 주변국들에 대한 정복전쟁을 감행하여 그 결과 상(商)왕조의 통치범위가 더욱 확대된다. 이 무정(武丁)왕 때 기록 된 갑골 중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갑골이 많다.

무정(武丁)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인 조경(祖庚)과 조갑(祖甲)이 계속 왕위를 이었는데, 상(商)왕조 후기의 여러 왕들 중 32년간 재위했던 조갑(祖甲) 이외에는 대부분의 왕들이 단명(短命)한다. 상(商)왕조의 말년에 이르러 왕조가 부패되고 동남의 주변국들이 빈번히 상왕조를 위협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주왕(紂王, 제신帝辛)의 부친인 제을(帝乙)은 주변국들에 대한 정벌을 시도했고 그 뒤를 이은 주왕(紂王)도 계속 정복전쟁을 하였다.

주왕(紂王)은 상(商)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중국의 동남지방을 개발하여 중원(中原)의 문화를 동남지방에 정착시키는 데 공헌하였지만 역사상 유명한 폭군이기도 하였다. 그는 아주 방탕하여 폭음과 환락을 즐겼으며 자신의 부패한 생활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도읍지 은(殷) 근처에 이궁별관(離宮別館)을 짓고 녹대(鹿臺)동산 등 오락시설을 설치하였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말은 후세인들이 이때를 가리키는 말로서 총애하는 왕비인 달기(妲己)와 귀족 신하들과 함께 음주와 쾌락으로 밤낮을 보낸다. 또 그는 사냥을 즐기기 위하여 경작지를 황폐화 시켰고 새와 짐승들이 자유롭게 자라도록 하였으며 마음대로 형벌을 만들어서 신하와 제후, 백성을 처벌하여 재물을 착취하였다. 그러나 주변국과의 장기간 계속된 전쟁 때문에 대량의 인력과 물질을 소모하였고, 백성들에 대한 착취는 노예와 평민의 투쟁을 격렬하게 하여 마침내 주(周)의 무왕(武王)이 이끄는 연합군에 의해 서기전 11-12세기경에 목야(牧野)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상(商)왕조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상나라의 전 기간을 학자들은 전기와 후기로 구분한다. 상나라가 세워진 때부터 중엽의 반경(盤庚)왕 때 까지를 전기로 보고 이후 23대 무정(武丁)왕이 지금의 은허로 수도를 옮기면서 강력한 국가를 만드는데 이때부터 멸망까지를 후기로 본다. 갑골문이 상나라 후기 때 처음 만들어 진 것은 아니지만 이때부터의 기록이 상세하므로 이렇게 구분한 것이다.

이러한 상나라의 역사는 갑골문을 발견하고 해독하면서 더욱 정확히 알려지게 되었다. 그 전에는 <사기>와 같은 후세인의 기록에 의해 상나라를 이해하였는데, 갑골문을 발견하고 당시의 기록을 직접 연구하면서 후세 기록의 오류를 수정하고 더 정확한 역사를 알게 된 것이다. <중국년력간보(동작빈 지음)>라는 책은 중국 역대의 년력표(年歷表)인데 기원전 2674년부터의 기록이 매년 나와 있어 역사학자들에게 중요한 지침서로 이용되고 있다. 이것도 애매하기만 하던 오래전의 일들을 갑골문을 통해 정확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에 저술되었다.

다음은 상나라의 역대 왕들의 재위표이다. 역대의 왕은 <갑골문(심재훈)>에서, 재위기간은 <중국년력간보(동작빈)>에서, 갑골문의 기수는 <갑골문이야기(김경일)>에서 인용했다.

 

상나라의 역대왕 재위표

왕대   왕이름             재위기간              비고

       미(微)

       보정(報丁)

       보을(報乙)

       보병(報丙)

       주임(主壬)

       주해(主奚)

1      성(成, 成湯)      BC1751-1739(12)    상구(商丘)에 도읍(하남성)

2      태정(太丁)      

3      외병(外丙)      

4      중임(仲壬)      

5      태갑(太甲)       BC1738-1727(11)

6      옥정(沃丁)       BC1726-1698(28)

7      태경(太庚)       BC1697-1673(24)

8      소갑(小甲)       BC1672-1656((16)

9      옹기(雍己)       BC1655-1644(11)

10     태술(太戌)       BC1643-1569(74)

11     중정(仲丁)       BC1568-1558(10)        영양(榮陽)으로 천도

12     외임(外壬)       BC1557-1543(14)

13     하단갑(河亶甲, 淺甲)  BC1542-1534(8)     내황(內潢)으로 천도

14     조을(祖乙)       BC1533-1514(19)

15     조신(祖辛)       BC1513-1498(15)

16     옥갑(沃甲, 羌甲) BC1497-1473(24)

17     조정(祖丁)       BC1472-1441(31)

18     남경(南庚)       BC1440-1416(24)        곡부(曲阜)로 천도(산동성)

19     양갑(陽甲, 虎甲)  BC1415-1399(16)

20     반경(盤庚)       BC1398-1371(27)       안양(安陽)으로 천도. 갑골문 1기

21     소신(小辛)       BC1370-1350(20)

22     소을(小乙)       BC1349-1340(9)

23     무정(武丁, 文武丁) BC1339-1281(58)             

24     조경(祖庚)       BC1280-1274(6)           갑골문2기

25     조갑(祖甲)       BC1273-1241(32)

26     름신(廩辛)       BC1240-1235(5)           갑골문3기

27     경정(庚丁, 康丁) BC1234-1227(7)

28     무을(武乙)       BC1226-1223(3)            갑골문4기

29     태정(太丁)       BC1222-1210(10)

30     제을(帝乙)       BC1209-1175(34)          갑골문 5기

31     제신(帝辛)      BC1174-1112(62)


여기에서 보이듯 상왕조의 왕명은 두개문자의 합성어인데, 두 번째 글자가 10간(자축인묘)을 사용한 것이 흥미롭다. 이것은 왕이 죽은 날짜를 근거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사용하였다는 학설이 있다.


우리들이 현재 접하고 있는 상(商)왕조 후기의 갑골문은 청(淸)조 말년에서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지금은 은허(殷墟)로 잘 알려진 중국 하북성 안양(安陽)에서 좀 떨어진 곳에 샤오툰촌(小屯村)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농민들이 밭을 갈다가 약간의 갑골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러한 갑골들 중에는 그 표면에 문자가 새겨진 것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청나라 말기 농민의 생활은 아주 빈곤하였기 때문에 농경지에서 갑골을 발견하면 전통적으로 이용되어 왔던 용골이라는 약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청나라 말기에 북경에서 관리생활을 하고 있던 왕이룽(王懿榮)이 1899년 따런당(達仁堂)이라는 한약방에서 약을 지었는데 문자해독에 식견이 있던 그는 뼈에 새겨진 글자가 고대의 문자임을 알아차리고 바로 한약방으로 가서 비싼 값으로 글자가 새겨진 용골을 모두 사와서, 그것이 상(商)왕조의 갑골문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러나 당시 청나라는 서구열강에 침략받기 시작하여 1900년에 연합군이 베이징에 입성하자 그는 책임을 통감하고 자살한다.

갑골은 그의 친구였던 리유티에윈의 손에 넘어가 이를 탁본으로 만들어 1903년 “철운장구(鐵雲藏龜)”라는 최초의 책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리유티에윈도 부패한 청나라 관리들의 모함으로 변방인 신강성으로 유배되어 죽고, 이때 재력과 학문을 겸비한 루오쩐위(羅振玉: 1866-1940)가 갑골을 모두 사들여 다시 탁본을 만들어 1913년과 1916년에 “은허서계(殷墟書契)” 전․후편을 발간하고, 갑골문 해독에도 성과를 거두어 571문자를 해독한다.

당시 젊은 왕구오웨이(王國維: 1878-1927)는 전통 한학자였는데 루오쩐위의 눈에 들어 갑골을 연구하게 되어 많은 연구 끝에 <주역>, <상서>, <서경>, <예기> 등 중국 고대의 사서를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업적을 이룩한다.

1899년 갑골이 발견되자 이 소문은 금시 퍼져나가 상당한 갑골이 해외로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캐나다에서 온 선교사 제임스 멘지는 5500개나 수집하였다고 한다. 많은 위조품도 나돌았고 특히 일본은 조직적으로 갑골을 빼내가 지금 토쿄대학이나 교토대학에 수천조각의 진품이 있다고 한다. 갑골은 이밖에도 영국, 서독, 벨기에, 프랑스, 스웨덴, 미국 등 여러 나라로 빠져 나갔다. 한국에는 서울대박물관에 13조각이 있다고 하는데 진품은 1개뿐이라 하고, 숙명여대에서는 캐나다의 소장자로부터 7편을 구입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전세계에 퍼져 있는 갑골은 16만 조각이나 된다고 한다.

1912년 중화민국이 성립된 후 갑골연구의 본격적인 연구는 1928년 중앙연구원역사언어연구소에서 동쭈오삔(董作賓:1895-1963)을 샤오툰촌에 파견하여 시작된다. 1928년에서 1936년의 15차에 걸친 발굴로 상당량의 갑골이 수집되었고 동쭈오삔은 발굴과 함께 갑골문자를 연구하여 갑골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특히 갑골자 형식의 왕조별 시기를 구분하여 논리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것은 크게 평가받고 있다. 위의 상나라 역대왕 재위표에 갑골자의 기수(期數) 구분은 그가 한 것이며, 연구결과 중의 하나가 중국년력간보 이다. 갑골연구의 대가인 동쭈오삔은 그러나 1948년 공산당정권의 수립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이듬해 대만에 정착하여 연구생활을 계속한다.

마오쩌뚱을 도와 중국혁명에 참여하기도 했던 중국고대문화의 대표적 선구자 꾸오모루오(郭沫若: 1891-1978)은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중국 전역의 갑골학자들을 지휘하여 전세계의 갑골문 탁본을 대부분 한곳에 모아 갑골문합집(甲骨文合集)을 편집하였다.


갑골문을 소개하는 여기서 갑골문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 모두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갑골문에는 당시 자유분방하던 원시문화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지금의 사회구조와 대조하여 굳이 분류를 한다면 다음과 같다.


정치: 왕과 왕비들의 이름, 다른 부족과의 전쟁과 교류, 관리의 명칭과 역할 등

경제: 농업 ,농기구, 곡물명칭, 수확, 목축, 수렵, 어업에 관련된 명칭 방법 등.

사회: 해와 달의 관측, 별자리 관측, 날씨관측, 10간 12지의 활용, 질병치료, 분만, 음식, 놀이, 청동기 병기 농기구제조, 거북(갑골재료)의 조공과 처리 등

문화: 애니미즘, 토템, 왕실의 제사, 재물의 선택과 처리, 무당의 역할 등. 이중 천문에 관한 자료는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일식과 월식의 기사, 신성․초신성에 관한 기록, 28수의 기원이 되는 기사 등이 있다.

 

이러한 갑골문은 기본적으로 왕실에서 점을 친후에 그 결과를 새겨 넣은 것이다. 상나라는 노예제 사회로서 왕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왕은 항상 점술사를 통해 앞날을 예측하는 점을 쳐 왔으며 이 점을 치는데 거북껍질이나 소의 어깨뼈를 사용했고, 심지어 전쟁에서 죽인 상대방 적장의 뼈까지 이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거북은 주변국에서 조공 받은 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전문적으로 점을 치고 이것을 왕께 고하는 점술가를 정인(貞人)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왕의 측근에서 상당한 세력을 누리고 세습되었다.

이 정인은 갑골에 많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불 붙인 쑥대를 넣고 달구어서 갑골이 불에 익어 금이 가면 그 금을 보고 점을 친 다음 점괘를 해석하여 왕께 고하고 그 내용을 갑골에 청동칼로 기록하고 이 갑골들을 묶어서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였는데 이것이 책(冊)의 시초이며 상나라의 행정서류이기도 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갑골문을 쓰는데 일정한 형식을 지녔는데 첫 째는 날짜와 정인의 이름을 쓰는 전사(前辭)이고, 두 번째는 묻는 내용을 담는 명사(明辭), 세 번째는 내용을 풀이하는 점사(占辭), 네 번째는 후일 그 점괘가 과연 맞았나 하는 것을 확인 하는 험사(驗辭)이다. 디른 것은 미신이라 할 수 있지만 험사는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갑골문은 갑골의 양면에 새겼는데 읽는 방법은 대체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읽으며 거북껍질 가운데를 기준으로 오른쪽 문장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문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갑골문 문장 중 특징 하나는 긍정의문문과 부정의문문의 대비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즉 정인이 왕에게 묻는 말에 ‘…명령하시겠습니까. 다음에 ‘…명령하시지 않겠습니까? 가 온다. 이러한 문장을 대정(對貞)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형식은 훗날 중국의 쓰기문화 즉 시와 같은 문학에서 다른 문화권과는 달리 짝을 이루는 특성을 같게 되는 출발이 되었다고 한다.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은 상의 20대 반경왕이 안양(安陽)으로 도읍지를 옮긴 후에 기록된 것이다. 이후 상이 멸망할 때 까지 273년간의 갑골문을 연구한 학자들은 갑골문의 특징을 연구하여 작성시대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였다. 이런 분류를 정인시기 분류라고 한다. 시기를 구분하는 이유는 왕의 성격과 사회분위기의 변화가 갑골문자의 서체에도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1기 : 반경, 소신 ,소을, 무정 왕 때로 강력한 왕이 통치하던 시기. 자유분방하고 원시적 서체가 문자배열에서 드러나며 굵고 강한 필체.

2기: 조경과 조갑 왕의 시대로 갑골문을 통해 볼 때 많은 개혁을 한 시기. 그는 왕실 제사 외의 직계혈족이 아닌 어떤 제사도 용납하지 않았다. 필체는 1기와 비슷하지만 글자크기는 1기보다 작으면서도 짜임새 있고 단정하며, 문장 배열도 정돈되고 문장 사이에 선을 넣어 문단구분도 하였다.

3기 : 늠신, 강정 왕의 시대로 왕정이 짧고 왕권이 약화되던 시기. 왕이 태만하여 사회분위기가 느슨해지고 외부 종족들과 마찰이 잦던 시대로 글자도 힘이 떨어진 필획과 엉성한 문장구조를 가지며 내용도 빈약.

4기: 무을, 문무정 왕의 시대. 왕실의 행정력과 왕권이 약화되고 왕이 정사는 돌보지 않으므로 필체도 산만하고 활달하지가 않다.

5기 : 제을, 제신 왕의 시대입니다. 왕실의 제도를 개선하고 왕권을 강화하던 시기. 서체는 세련되고 작아지며 표현내용도 정제된 가운데 풍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갑골을 보면 문장이 질서정연하고 세련되며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 간지와 동양사상 (음양오행론, 천인상관론 등)

- 음양오행이란?

음양이란 사물(事物)의 현상을 표현하는 하나의 기호(記號)라고 할 수 있다. 음과 양이라는 두 개의 기호에다 모든 사물을 포괄․귀속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오행은 우주만물을 형성하는 원기(元氣), 즉 목․화․토․금․수를 이르는 말인데, 이러한 오행의 상생․상극 관계를 가지고 사물 간의 상호관계 및 그 생성의 변화를 해석하기 위한 방법론적 수단으로 응용한 것이다.


= 태극․음양․오행

음과 양의 상반된 세력의 상호작용은 우주형성과 만물생성의 근원이 된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태초(太初)에는 텅 빈 공간이었고 …… 우주에 기(氣)가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 가볍고 맑은 기가 퍼져 하늘이 되었고, 무겁고 탁한 기가 응취되어 땅이 되었다.” 고 하였다. 이와 같이 태극은 천지만물의 시초이며, 천지가 나누어지기 전의 혼탁 청허한 상태를 말한다.

태극이 청탁으로 말미암아 음양으로 나뉘고 천지가 생기게 되는데, <주역(周易) 계사(繫辭)>에는 “역에는 태극이 있고, 이것이 양의(兩儀)를 생기게 하고, 양의(兩儀)는 사상(四象)을 생기게 하고, 사상(四象)은 팔괘(八卦)를 생기게 한다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라 하였다. 양의(兩儀)는 곧 음양(陰陽), 천지(天地), 건곤(乾坤)이고, 사상(四象)은 사시(四時), 사방(四方)이다. 팔괘는 음효와 양효가 각각 3개씩 결합된 것을 한 괘로 하는 여덟 가지의 서로 다른 배열의 조합이며, 하늘․땅․우뢰․바람․물․불․산․연못의 자연현상을 상징하고, 이름을 건(乾)‧곤(坤)‧진(震)‧손(巽)‧감(坎)‧리(離)‧간(艮)‧태(兌)라 하였다.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은 음양론(陰陽論)과 오행론(五行論)을 합하여 부르는 것이다. 음양론(陰陽論)은 어떤 사물이라 할지라도 음기(陰氣)와 양기(陽氣)의 운동변화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며, 오행론(五行論)은 모든 것이 木, 火, 土, 金, 水 다섯 가지 기본 물질의 운동변화에 의해 통일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은 모두 자연을 인식하고 자연 현상을 해석하고, 자연 규율을 탐구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었다. 서주(西周)시대에 이미 성행하였다고 하는데, 그 초기의 자료가 <周易>, <左傳>, <尙書> 등의 고전문헌에 보존되어 있다.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의 형성은 고대 철학과 자연과학의 진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음양오행의 방법론을 통해서 당시의 천문(天文), 지리(地理), 역수(歷數), 기상(氣象), 의학(醫學)과 농사(農事), 야금(冶金) 등 각종 자연과학을 종합적으로 발전시켰다.


= 陰陽

<소문(素問)  음양응상대론(陰陽應相大論)>에 “음양이란 것은 천지의 도이다. 만물의 강기이고, 변화의 부모이니 생살의 본시이고 신명의 기호이다. 병을 치유하려면 반드시 근본에서 구한다 陰陽者, 天地之道也, 萬物之綱紀, 變化之父母, 生殺之本始, 神明之府也, 治病必求於本.”라 하였는데, 이것은 음양(陰陽)으로 상대속성(相對屬性)과 소장변화(消長變化)를 이해하고, 자연 현상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며 자연법칙을 탐구하는, 일종의 우주관이며 방법론임을 설명하고 있다.


음과 양의 최초의 의미는 햇빛의 향배방향(向背方向)을 가리켜서 말한 것으로, 해를 향하면 양(陽)이고, 해를 등지면 (陰)이다. 햇빛의 向背는 광선의 명암으로 나타나므로 <설문(說文)>에 음양의 뜻을 해석할 때 음(陰)은 ‘어둠(暗)’, 양(陽)은 ‘밝음(明)’으로 해석하였다. 산의 남쪽이 태양을 향하면 산의 북쪽은 태양을 등지고, 태양을 향하면 뜨겁고(熱) 태양을 등지면 차갑다(寒).

이후 점차 그 뜻을 넓혀서 천지(天地), 일월(日月), 주야(晝夜), 한서(寒暑), 수화(水火), 자웅(雌雄) 등 상반된 자연현상과 상하(上下), 좌우(左右), 내외(內外), 남북(南北), 동서(東西) 등 상반된 방위공간과 동정(動靜), 진퇴(進退), 승강(昇降), 출입(出入) 등 상반된 운동상태와 강건(剛健), 유순(柔順) 등 상반된 성질을 음양으로 그 속성을 확정하였다. 그래서 <局方發揮>에서는 “음양은 진실로 對待로써 말한 것이지 정해진 것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1. 음양의 기본개념


1) 음양의 상대성

사물과 현상은 다방면으로 음양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공간, 위치를 음양으로 나누면 위, 오른쪽, 밖, 동․남은 양이고, 아래, 오른쪽, 안, 서․북은 음이다. 시간과 계절로 음양을 나누면 낮과 봄․여름은 양이고, 밤과 가을․겨울은 음이며, 사물의 성질로 음양을 나누면 뜨겁고, 강하고 가볍고 맑은 것은 양이고, 차갑고 부드럽고, 무겁고 탁한 것은 음이다. 사물의 운동으로 나누면 運爲陽, 靜爲陰; 數疾爲陽, 遲緩爲陰; 上升外出爲陽, 下降內入爲陰; 進爲陽 退爲陰 등이며, 동일한 범주, 단계에 속하는 상대적 사물을 음양으로 나누면 하늘과 해, 불, 수컷은 양이고, 땅과 달, 물, 암컷은 음이 된다.


2) 음양의 보편성

음양의 상대속성은 자연계에 있는 두 쌍의 물질현상과 그 형태를 개괄하고 있다. 그리고 우주의 형성과 우주에 있는 萬事‧萬物의 무한한 변화는 자연계에 있는 음양 세력의 상호 對立‧制約, 互根‧互用, 消長‧變化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老子의 <道德經>에는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포섭한다 萬物負陰而抱陽.” 라 하였고, <素問 陰陽應象大論>에 “음양이라는 것은 천지의 도이다. 만물의 강기이고 변화의 부모이니 생살의 본시이고 신명의 기호이다 陰陽者, 天地之道也, 萬物之綱紀, 變化之父母, 生殺之本始, 神明之府也.”라 하였는데, 이들은 陰陽 相對屬性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3) 陰陽의 가분성(可分性)

음과 양 자체는 상대적이고, 한 사물의 두 가지 방면이므로, 음양의 어떠한 방면이든지 다시 음양으로 구분이 가능하며 계속해 나가면 끝이 없게 된다. 이는 <素問 陰陽離合論>의 “陰陽者, 數之可十, 推之可百, 數之可千, 推之可萬, 萬之大, 不可勝數, 然其要一也.”라 한 것과 같다.


2. 陰陽의 기본내용


1) 陰陽의 對立과 制約

음양은 자연계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상호대립하는 음양의 두 방면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면 上下‧左右‧天地‧動靜‧出入‧升降‧晝夜‧明暗‧寒熱‧水火 등의 관계이다. 음양은 대립적이면서도 또 통일적인 균형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통일(균형)은 대립의 결과에서 나온다. 바꾸어 말해 대립은 둘 사이의 상반적인 일면이고, 통일(균형)은 둘 사이의 相成的인 일면이다. 대립이 없다면 통일(균형)이 있을 수 없고, 상반적인 면이 없다면 상성의 관계를 이룰 수 없다. 음과 양의 두 방면의 상호대립(음양의 대립성)은 주로 그들 사이의 상호제약과 상호소장의 결과 통일을 이루어 즉 동적평형(동태평형)을 이루면 이를 陰平陽秘라 부른다. 예를 들어 춘‧하‧추‧동 사계절의 溫‧熱‧凉‧寒의 기후변화를 놓고 볼 때 춘하의 기후가 온열한 이유는 춘하에는 양기가 상승해서 추동의 寒凉之氣를 억제한 결과로 볼 수가 있고 추동의 기후가 한냉한 이유는 추동의 음기가 상승해서 춘하의 溫熱之氣를 억제한 결과로 볼 수가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자연계의 음양이 相互制約(상호제약)하고 相互消長(상호소장)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음양의 상호제약의 과정은 바로 相互消長으로 나타나는데 소장이 없다면 제약도 있을 수가 없다. 인체가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음과 양이 상호제약하고 상호 소장하여 통일(동태평형)의 상태를 이룬 결과이다. 陰과 陽사이에는 상호제약과 상호소장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사물은 발전·변화할 수 있고 자연계는 生生不息할 수 있는 것이다.


2) 陰陽의 互根‧互用

음과 양은 대립적이면서도 통일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둘 사이는 비록 상호대립하고 있지만 또한 상호의존하고 있어서 어느 한쪽이든 모두 다른 쪽을 떠나서는 홀로 존재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윗쪽은 陽, 아랫쪽은 陰이라고 할 때 上이 없다면 下라는 것도 있을 수 없으며 역시 下가 없다면 上이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다. 왼쪽을 양, 오른쪽을 음이라고 할 때 左가 없으면 右가 없고 右가 없으면 左가 없으며, 熱을 양, 寒을 음이라고 할 때 열이 없으면 한도 있을 수 없고 한이 없으면 열도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양은 음에 의존하고 음은 양에 의존하여 매 한쪽은 모두 상대방의 존재를 자기존재의 조건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음과 양사이의 이러한 상호의존관계를 음양의 호근과 호용이라고 부른다.

음과 양 사이의 호근과 호용관계는 첫째로 물질사이의 상호의존관계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둘째로 개체의 기능 사이에서 또한 상호의존관계가 성립하고, 셋째로 물질과 기능 사이에도 상호의존의 관계가 성립한다. 즉 이것은 음양의 호근‧호용의 이론으로부터 개체의 물질과 물질사이, 기능과 기능사이, 기능과 물질사이의 상호의존관계를 압축하여 개괄한 것이다.


양은 음에 의뢰하여 존재하고 음은 양에 의뢰하여 존재하니 음이 없다면 양을 말할 수 없고 양이 없다면 역시 음을 말할 수가 없다. 만약 어떤 이유로 음과 양 사이에 이러한 호근․호용의 관계가 깨어졌다면 곧 孤陰不生과 孤陽不長의 상태를 이루게 되며 또한 물질과 물질사이, 기능과 기능사이, 기능과 물질사이의 호근․호용의 관계를 실상하게 하여 생명체의 生生不息하는 기전도 깨지게 되며 심하면 “陰陽離決하면 精氣乃絶이라(음양이 결하면 정기내절이라)”의 상태가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


3) 陰陽의 消長과 平衡

음과 양 사이의 대립제약, 호근‧호용은 결코 정지되고 불변하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항상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서 발생하므로 이를 특히 消長·平衡이라고 부른다. 소장·평형이란 음양의 평형상태가 정지된 상태에서 발생한 절대적 평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한도와 일정한 시간 내의 陰消陽長과 陽消陰長가운데서 유지되는 상대적 평형을 의미한다. 음양의 소장평형은 사물의 운동은 절대적인데 정지는 상대적이며 소장은 절대적인데 평형은 상대적이라는 기본규율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또한 절대적인 운동가운데에는 상대적인 정지를 포함하고 있고 상대적인 정지가운데는 또 절대적인 운동이 잠복해 있으며 절대적인 소장가운데에서 상대적 평형을 유지하고 있고 상대적 평형 가운데는 또 절대적 소장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사물은 절대적 운동과 상대적 정지, 절대적 소장과 상대적 평형 가운데서 생화불식(生化不息)하여 발생과 발전을 이루고 있다.


음양의 소장이 비록 절대적이고 평형은 상대적인 것이지만 상대평형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부단한 소장과 평형이 있어야만 사물의 정상적인 발전을 유지시킬 수 있으며 인체에 대해서 말하면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가 있다. 만약 음소양장만 있고 陽消陰長이 없다면 음양의 상대평형은 파괴되어 음 또는 양의 편성편쇠를 야기하여 음양의 소장에 실조를 초래하게 된다. 인체로 말하면 병리상태가 될 것이다.


4) 陰陽의 相互轉化

음양의 轉化란 음양의 대립하는 양쪽에서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반대방향으로 전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곧 음이 전화되어 양이 되고 양이 전화되어 음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음양의 상호전화는 일반적으로 사물의 변화과정 중 物極에서 나타나는데 이를 ‘物極必反’이라 한다. 陰陽이 轉化하려면 반드시 일정한 조건이 구비되어야만 한다. 즉 陰에 重이라는 조건이 있어야만 陽으로 전화할 수 있고 陽에 重이라는 조건이 있어야만 陰으로 전화할 수 있다. 또한 寒은 極의 조건아래에서 熱로 전화할 수 있고 熱은 極의 조건아래에서 寒으로 전화할 수 있다. 여기에서 조건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만약 일정한 조건이 없다면 상대방으로 전화할 수가 없다.



= 五行

‘五行’이란 용어는 <홍범(洪範)‧구주(九疇)>에 최초로 나타난다. ‘五’는 木‧火‧土‧金‧水의 다섯 가지 屬性을 의미하고, ‘行’에는 運行‧運動의 의미가 있다.


1. 五行의 槪念

모든 운동은 음양운동으로 관찰되지만 구체적으로 상세히 관찰하면 다섯 가지의 변화운동으로 관찰되어 진다.

韓東錫은 오행의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오행의 개념에 五字를 붙인 것은 우주의 만물은 다섯 가지의 법칙권 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行字를 놓은 것은 기운이 취산하면서 순환하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므로 行字를 분석하여 보면 彳字(자축거리며 걸을 척, 자축거린다는 의미는 힘없는 다리로 가볍게 자꾸 절둑거리며 걷는다는 뜻이다.)와 亍字(앙감질 촉, 앙감진다는 의미는 한발을 들고 한발로만 뛰어간다는 뜻이다)의 合成字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 뜻은 오행의 행로는 평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行이란 것은 一進一退를 의미하는 것이니 즉 往+來=行이라는 공식이 되는 것이다.


2. 五行의 意味

<설문해자(說文解字)>, <玉篇>, <白虎通> 등을 근거로 하여 오행의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목(木) : 목은 덮음이다. 만물이 땅을 덮고 자란다. 木者 冒也 萬物冒地而生. 木始甲坼 萬物皆始于微.

화(火) : 화는 변화이고 따름이다. 火者 化也 隨也 陽氣用事 萬物變隨也. 盛陽曰炎上.

토(土) : 토는 땅이 만물을 낳고 드러냄이다. 土者 地之吐生物也.

금(金) : 금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金者 可以更改也 久薶不生矣 百煉不輕 從革不違.

수(水) : 수는 북방에 위치한다. 북방이란 음기가 황천 아래에 있는 것이니 만물을 맡아서 기름을 북방이 행한다. 水者 位在北方 北方者 陰氣在黃泉之下 任養萬物 爲北方之行. 衆象水叢流 中有微陽之氣也.


3. 五行의 特徵

오행의 특성은 목, 화, 토, 금, 수인 다섯 요소의 자연현상과 그 성질의 직관으로부터 추상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尙書 洪範>에 설명된 “水曰潤下, 火曰炎上, 木曰曲直, 金曰從革, 土爰稼穡”으로 인식된다.


1) 木의 특성

<尙書 洪範>에 “나무는 굽고 곧다 木曰曲直”이라 하였는데 이는 나무의 특성이다. 曲은 彎曲이다. 直은 不彎曲이다. 曲直의 특성은 가지와 줄기가 곧게 또는 굽으면서 성장하는 樹木의 생장 특징에 따른 것이다. 또한 樹木이 위로 생장하고 사방으로 두루 퍼져 가지가 무성해지는 현상에서 추상하여 生長, 升發, 條達, 舒暢 등의 특성을 이끌어 낸 것이다.


2) 火의 특성

<尙書 洪範>에 “불은 위로 타오른다 火曰炎上”이라 하였는데 이는 불의 특성이다. ‘炎’은 火가 위로 향하여 焚燒하고 극히 뜨거운 것을 지칭한다. 이러한 이유로 炎上은 溫熱, 向上, 蒸騰 등의 추상특성이 있다.


3) 土의 특성

<尙書 洪範>에 “土爰稼穡”이라 하였다. ‘稼’는 곡물의 종자를 심는 것이고, ‘穡’은 곡물을 수확하는 것이다. 실제로 稼穡은 인류가 곡물을 심고 수확하는 농사활동을 의미한다.

만물이 生하는 것이 土의 본성이지 稼穡 그 자체는 土의 본성은 아니다. 그래서 土의 특성이 만물을 承載하고, 만물을 化生하고, 만물의 어미가 되고, 만물이 돌아가는 바가 되므로 “土載四行”이라고도 한다.


4) 金의 특성

<尙書 洪範>에 “金曰從革”이라 하였다. ‘從’은 順從이고, ‘革’은 變更과 改革이다. 從革의 특성은 금속이 사람의 의도에 따라 鎖爍하고 鑄造되어 그릇이 되는 과정 등에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金의 추상특성은 變革, 肅殺, 下降, 淸潔 등이 된다.


5) 水의 특성

<尙書 洪範>에 “水曰潤下”라 하였다. ‘潤’은 潮濕, 滋潤, 濡潤의 의미다. 潤下는 물이 아래로 내려가 만물을 滋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滋潤, 下流, 閉藏, 寒冷이 水의 추상특성이다.


4. 事物의 五行屬性과 意味


1) 事物의 五行屬性 歸類

세상 만물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지만, 오행의 속성에 따라 분류하면 모두 귀납시킬 수 있다. 여기서 五運‧六氣와 관련이 있는 사물을 오행의 속성에 따라 取類比象의 방법으로 구분하면, 다음의 표와 같이 歸類된다.


사물의 오행속성 귀류표


     木 火 土 金 水


自然界

五季 春 夏 長夏 秋 冬

五化 生 長 化 收 藏

五氣 風 暑 濕 燥 寒

五方 東 南 中 西 北

時間 平旦 日中 日西 日入 夜半

五音 角 徵 宮 商 羽

天干 甲乙 丙丁 戊己 庚辛 壬癸

地支 寅卯 巳午 辰戌丑未 申酉 亥子

五色 靑 赤 黃 白 黑

五味 酸 苦 甘 辛 鹹

五穀 麥 禾 稷 稻 豆

五果 李 杏 棗 桃 栗

五菜 韮 薤 葵 葱 藿

五畜 鷄 羊 牛 馬 彘

五臭 臊 焦 香 腥 腐

五役 色 臭 味 聲 液


人體

五臟 肝 心 脾 肺 腎

六腑 膽 小腸 胃 大腸 膀胱

官竅 目 舌 口 鼻 耳

形體 筋 脈 筋肉 皮毛 骨

情志 怒 喜 思 悲 恐

五聲 呼 笑 歌 哭 呻

五變 握 憂 噦 咳 慄

五支 爪 毛 乳 息 髮

五精 魂 神 意 魄 志

五液 淚 汗 涎 涕 唾


2) 事物의 五行的 屬性

<前漢書 律曆志>, <이아(爾雅)>, <禮記 月令>, <樂記>, <석명(釋名)>, <說文>, <白虎通>, <玉篇> 등을 근거로 하여 사물의 오행속성의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⑴ 時令

봄春 : 봄은 春者 蠢也 物蠢生乃運動, 蠢 作也 出也. 陽氣動物 于時爲春.

여름夏 : 여름은 夏者 假也 寬假萬物 使生長也.

長夏 : 자람은 생장이다. 長者 生長也 言土生長于夏也.

가을秋 : 가을은 秋者 就也 言萬物就成也. 秋者 愁也 愁之以時察守義者也. 秋者 斂也 察嚴殺之貌.

겨울冬 : 겨울은 冬者 藏也 言萬物閉藏也.


⑵ 發展過程

生 : 생은 나아감이다. 움직여 나감과 같다. 만물이 생하기 시작하면 그 모습이 움직여 나아간다. 生者 進也 猶動出也 萬物始生 其象動進.

長 : 장은 생하여 자람이다. 만물이 자라서 무성하면 그 모습이 무성하게 나아간다. 長者 生長也 萬物長盛 其象茂進.

化 : 화는 변화이다. 물이 바뀌는 것을 화라고 한다. 만물이 생하여 화한다. 化者 變化也 革物曰化 萬物化生也.

收 : 수는 취함이다. 만물이 나아가 이루어지면 거두어 취한다. 收者 聚也 萬物就成 取而聚之.

藏 : 장은 藏者 匿也 縮也 萬物潛藏而匿縮也.


⑶ 氣候

風 : 陰陽怒而爲風 風動蟲生 風以動萬物 風以散之.

暑 : 暑者 熱也 煮也 熱如煮物也, 暑者 火之炎氣也.

濕 : 濕者 幽濕也 濕潤而濡養萬物.

燥 : 燥者 猶爍也 從火喿聲 干也, 燥萬物者 沒過乎火.

寒 : 寒者 凍也 寒以成物.


⑷ 方位

東 : 東者 東也 陽氣動 于時爲春.

南 : 南者 枝任也 陽氣任養萬物 于時爲夏.

中 : 中者 中央也 四方之中曰中央.

西 : 西者 遷也 陰氣遷落物 于時爲秋.

北 : 北者 相背也 伏也 陽氣伏于下 于時爲冬.


⑸ 時間

平旦 : 平旦爲天將曉時 陰進而陽受氣 于時爲春.

日中 : 日中爲日當中天 陽氣正隴爲重陽 于時爲夏 隴作隆.

日西 : 日西爲日偏西 陽氣衰 于時爲長夏.

日入 : 日入爲天將昏時 陽盡而陰受氣 于時爲秋.

夜半 : 夜半爲合夜 陰氣正隴爲重陰 于時爲冬 隴作隆.


⑹ 五音

角 : 角者 觸也 物觸地而出戴芒角也.

徵 : 徵者 祉也 物盛大而繁祉也. 祉同止.

宮 : 宮者 中也 居中央 暢四方.

商 : 商者 章也 物成熟可以章度也.

羽 : 羽者 羽也 物聚藏宇覆之也. 宇者 四方上下覆蓋也.


⑺ 天干‧地支(제3장 참조)


十干 


갑은 만물이 甲者, 言萬物剖符甲而出也.

乙者, 言萬物生軋軋也.

丙者, 言陽道著明 故曰丙.

丁者, 言萬物之丁壯也.

庚者, 言陰氣庚萬物 故曰庚.

辛者, 言萬物之辛生 故曰辛.

壬之爲言, 任也. 言陽氣任養萬物于下也.

癸之爲言, 揆萬物可揆度 故曰癸.


十二支 

子者, 滋也. 滋者, 言萬物滋于下也.

丑者, 紐也. 言陽氣在上未降, 萬物厄紐, 未敢出也.

寅者, 言萬物始生螾然也. 故曰寅.

卯之爲言, 茂也. 言萬物茂也.

辰者, 言萬物之蜄也.

巳者, 言陽氣之已盡也.

午者, 陰陽交, 故曰午.

未者, 言萬物皆成有滋味也.

申者, 言陰用事, 申賊萬物, 故曰申.

酉者, 萬物之老也. 故曰酉.

戌者, 言萬物盡滅, 故曰戌.

亥者, 該也. 言陽氣藏于下, 故曰該也.


⑻ 五色

靑 : 靑者 生也 風和日麗 萬物生時之色也.

赤 : 赤者 朱色也 萬物成長 盛陽之色也.

黃 : 黃者 中也 化生萬物 地之色也.

白 : 白者 素也 潔也 秋之氣和 色白而收藏也.

黑 : 黑者 晦也 月終也 月終猶如年終也. 晦者 昏暗也 萬物閉藏 陽氣潛于下也.


⑼ 五味

酸 : 酸者 木味也 木曰曲直 曲直作酸.

苦 : 苦者 火味也 火性炎上 炎上作苦.

甘 : 甘者 土味也 土爰稼穡 稼穡作甘. 爰者 曰也.

辛 : 辛者 金味也 金曰從革 從革作辛.

鹹 : 鹹者 水味也 水曰潤下 潤下作鹹.


⑽ 臟

肝 : 肝者 干也 其體狀有枝干也. 凡物以木爲肝. 肝之爲言干也.

心‧心包 : 心者 中也 中心曰心. 日出當中也. 包者 圍也 爲心之外圍.

脾 : 脾者 裨也 裨助胃氣以化穀也.

肺 : 肺者 勃也 言其氣勃鬱也; 又沛也 言草木蔽茂也.

腎 : 腎者 引也 主引水氣也.


⑾ 腑

膽 : 膽者 擔也 言擔事物也, 膽屬陽木 爲肝之腑 同主春令.

小腸‧三焦 : 腸者 暢也 言通暢胃氣也; 焦者 象火類也 色赤屬陽之謂也. 小腸屬陽火 爲心之腑 同主夏令.

胃 : 胃者 圍也 圍受食物也. 胃屬陽土 爲脾之腑 同主長夏大腸 : 腸者 暢也 言通暢胃氣. 大腸屬陽金 爲肺之腑 同主秋令.

膀胱 : 膀者 橫也; 胱者 廣也 言其體橫廣而短也. 膀胱屬陽水 爲腎之腑 同主冬令.


5. 五行의 生‧剋 原理


1) 오행 생‧극의 일반개념과 원리

生은 相生, 剋은 相剋이다. 상생에는 서로 資生하고 촉진하는 의미가 있고, 상극에는 서로 제약하고 剋勝하는 의미가 있다.


사물의 생장‧발전‧변화‧쇠퇴 등의 과정은 각 단계가 독립적이거나 연관성이 없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자생케 하고 서로 촉진케 하며 동시에 서로 제약하거나 극승하는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상생의 작용이 없으면 사물은 존재할 수 없고, 사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상극도 있을 수 없다. 또한, 상극이 없으면 자극이 없게 되어, 사물이 발전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일반적인 生‧剋 원리의 예를 들면, 상생5)은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이고, 상극은 金剋木, 木剋土, 土剋水, 水剋火, 火剋金이다.


2) 오행 생‧극의 의미

오행의 생극은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생극관계를 의미하는데, 생하는 것은 母라 하고, 생해지는 것은 子라 한다. 즉, 木生火의 경우에 있어서 목은 화의 모가 되고, 화는 목의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극하는 것은 내가 극하는 것이고, 극하여지는 것은 나를 극하는 것이다. 즉, 木剋土의 경우에 있어서 목은 내가 극하는 것이고, 토는 나를 극하는 것이다. 이때에 목은 토가 이길 수 없는 것이 되고, 토는 목이 이기는 것이 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자연계뿐만 아니라 인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⑴ 木生火

봄은 목, 여름은 화이다. 봄에는 陽氣가 처음 만들어지므로 少陽이 되고 기후는 따뜻하다. 여름은 양기가 활발하므로 太陽이 되고 기후는 덥다. 더운 것은 화가 된다. 즉,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게 되면 양기는 점점 활발하게 되어 소양에서 태양으로 변하므로 목생화가 된다.


肝은 목의 장[木臟]이고 心은 화의 장[火臟]인데, 목의 성질은 升發하고 화의 성질은 炎上하므로, 승발은 염상을 돕는다. 이와 같이 肝藏血과 心主血에 있어서 心血의 운행은 간의 조절에 의하여 이루어지므로 肝生心이 되는 것이다.


⑵ 火生土

여름은 화, 長夏는 토이다. 여름의 기후는 덥고 장하의 기후는 습한데, 토의 습한 기는 화의 陽熱한 기에 의하여 만물을 성장시키게 되므로 화생토가 되는 것이다.


心은 화의 장이고 脾는 토의 장[土臟]인데, 비의 運化작용은 心火가 데워줌으로써 가능하다. 心主血과 脾統血에 있어서, 비의 통혈작용은 심의 주혈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지므로 心生脾가 되는 것이다.


⑶ 土生金

장하는 토, 가을은 금이다. 토의 성질은 땅과 같이 부드럽고 금의 성질은 하늘과 같이 강인한데, 땅의 기운이 상승하면 구름이 되고 하늘의 기운이 하강하면 비가 되니, 구름으로부터 땅의 기가 나오게 되므로 토생금이 되는 것이다.


비가 토의 장이고 肺는 금의 장[金臟]인데, 폐는 전신의 기를 주관하고 비는 氣血을 生化케 하는 근원이 되므로 脾生肺가 되는 것이다.


⑷ 金生水

가을은 금, 겨울은 수이다. 가을은 기후가 서늘하고 겨울은 찬데, 서늘한 기후는 찬 기운이 조금 있는 것이고, 서늘한 기운이 변하여 찬 기운인 수가 되므로 금생수가 되는 것이다.


폐는 금의 장으로 上焦에 위치하며 腎은 수의 장[水臟]으로 下焦에 위치하는데, 상초는 안개나 이슬처럼 수분을 확산시킨다. 신은 水液을 주관하는데, 肺氣가 하강함으로써 신의 수액이 작용할 수 있으므로 肺生腎이 되는 것이다.


⑸ 水生木

겨울은 수, 봄은 목이다. 목은 少陽의 기이며 소양의 기는 매우 미약한 양기로 생성되는데, 물속에 있는 미약한 양기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수분이 위로 올라가 나무를 적시게 되므로 수생목이 되는 것이다.


신은 수의 장이고 간은 목의 장으로, 목의 生發하는 기운은 수의 滋養하는 기운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腎藏精과 肝藏血에 있어서 精은 血로 변하고 간은 혈을 저장하는데, 간의 陰血이 충족하게 되면 肝陽이 과도하지 않게 되므로 腎生肝이 된다.


⑹ 金剋木

가을은 금으로 그 기후는 맑고 서늘하며 하강하는 성질이 있고, 봄은 목으로 그 기후는 따뜻하며 상승하는 특징이 있는데, 하강하는 성질은 상승하는 성질이 지나치게 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으므로 금극목이 되는 것이다.


폐는 금의 장으로 肅降하고 간은 목의 장으로 승발하는데, 폐의 숙강이 肝陽의 上亢을 억제할 수 있으므로 肺剋肝이 되는 것이다.


⑺ 木剋土

봄은 風木이며 바람은 발산하는 성질이 있고, 장하는 습토이며 습기는 뭉쳐지는 성질이 있다. 土濕의 기후가 만물을 생장시킴에 있어서, 지나치게 뭉쳐지지 않는 것은 풍목의 발산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극토가 되는 것이다.


간은 목의 장으로 그 성질이 소통되어야 하고, 비는 토의 장으로 그 성질이 습윤하여야 한다. 습은 항상 쌓여 정체하기 쉬운데, 간의 소통작용에 의하여 脾濕이 지나치지 않게 조절되므로 肝剋脾가 된다.


⑻ 土剋水

토는 땅 즉 대지와 같이 敦厚하고 수는 땅속에 스며들어 흘러 다니는 물인데, 물이 땅위로 지나치게 넘치지 않는 이유는 땅이 밖에서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토극수가 되는 것이다.


비는 토의 장으로 水穀을 運化해서 기혈을 생성하고, 신은 수액을 주관한다. 기에 의해 수액이 순환하는데, 기는 비에서 생성되므로 비가 정상적이면 수액의 순환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에 脾剋腎이 되는 것이다.


⑼ 水剋火

겨울은 수로서 그 기후는 싸늘하고, 여름은 화로서 그 기후는 덥다. 그러나 시원한 기운은 더위를 이길 수 있으므로 수극화가 되는 것이다.


신은 수의 장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성질이 있고, 심은 화의 장으로 불꽃과 같이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신에 잠재되어 있는 眞陽은 腎水를 움직여서 심으로 보내어, 심화가 지나치게 죄는 것을 억제할 수 있으므로 腎剋心이 되는 것이다.


⑽ 火剋金

여름은 화로서 상승하는 성질이 있고, 가을은 금으로서 하강하는 성질이 있다. 상승하는 기운은 하강이 지나치게 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으므로 화극금이 되는 것이다.


심은 화의 장으로 불꽃과 같이 위로 타오르는 기운이 있고, 폐는 금의 장으로 숙강하는데, 심의 타오르는 기운은 肺金의 숙강이 지나치게 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으므로 心剋肺가 되는 것이다.


3) 生‧克 原理의 특징

첫째는, 相生과 相克은 결코 어느 하나가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生속에 克이 있고(生中有克) 克中에 生이 있다는 사실이다(克中有生). 이를 다시 순환하는 五行相生과 相克의 원리 속에서 살펴보면 生中有克은 木을 예로 하여 살펴보면 木을 生하는 것은 水이고 木이 生하는 것은 火인데 水와 火사이에는 相克의 관계가 성립하니 生속에 克이 있는 것이 된다. 克中有生은 역시 木을 예로 하여 살펴보면 木을 克하는 것은 金이고 木이 克하는 것은 土인데 土와 金사이에는 相生의 관계가 성립하니 克 중에 生이 있는 것이 된다.


6. 五行의 勝‧侮

오행의 乘‧侮는 오행의 相乘과 相侮이다. 상승은 극하는 것이 지나친 것이고, 상모는 역으로 극을 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계는 정상적인 생극관계가 파괴되어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관계이다. 예를 들어, 금은 원래 목을 극하는데 금기가 과잉하게 되면 과잉한 금기가 목을 乘하게 되어, 금이 목을 지나치게 극하는 관계가 된다. 또, 화는 원래 금을 극하는데 금기가 과잉하게 되면 지나친 기운 때문에 화가 역으로 당하게 되니, 이를 “氣有餘 則制其所勝 而侮其所不勝”이라 하였다.


그리고, 금은 원래 목을 극하는데 금기가 부족하게 되면 화가 승하게 되고 동시에 목이 역으로 금을 업신여기게 되니, 이를 “氣不及 則己所不勝 侮而乘之 己所勝輕而侮之”라 하였다. 그 밖의 관계도 이와 같다.


- 10천간 12지지와 결합한 음양오행

오 행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10 간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12 지

인, 묘

사, 오

진, 술, 축, 미

신, 유

해, 자



- 천인상관, 천인상응, 천인감응론

천인상관론은 하늘과 인간이 서로 통한다는 이론으로 오덕종시설 등이 이것의 한 영향으로 나온 학설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하늘의 일이 땅의 일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생각하여 하늘의 일을 관측하는 것을 중요시 하였다. 천자라는 말이나 천문관측을 천자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러한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天圓地方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만물은 기를 통해서 생성이 된다고 믿었는데, 이것은 一氣가 맑고 가벼운 氣와 탁하고 무거운 氣로 나뉘어 둘의 작용으로 인하여 만물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이 처음 나타나는 것이 '淮南子'의 天文訓이다.

고대에는 지금처럼 모든 나라가 언제나 똑같은 달력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왕조가 바뀌면 역법은 물론 모든 제도가 바뀌게 되었는데, 그렇게 바꾸게 된 바탕에는 受命改制라는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秦나라의 경우 水를 기본으로 삼아서 이연걸이 출연한 '영웅'이라는 영화에서 보이듯이 복장이나 깃발 등에 검은색을 사용하였고, 또한 역법에서는 일년의 시작을 10월로 삼았다. 하지만 그 뒤를 이은 漢나라는 受命改制의 논리에 따라서 秦나라의 水를 이기는 火를 기본으로 삼는다. 그에 맞추어 한나라는 자신들의 모든 제도를 재정비하게 된다. 이와 같이 역법의 개혁 및 제도의 개혁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수명개제의 논리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이는 비단 왕조의 교체만이 아니라 새로운 왕이 새로운 기운을 일으키거나 할 때에도 이러한 원칙에 따라서 개혁을 행하였다.


受命改制의 정치사상은 天子가 天命에 의해 새로운 왕조를 새웠음을 알리기 위해 여러 제도를 바꾸어 실시하는 것을 뜻한다. 진시황의 경우 추연이 주장한 五德終始說에 의거하여 周왕조의 火德을 秦이 水德으로 이었다고 하면서 1년의 시작을 一月에서 十月로 바꾸었는데, 이것을 改曆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개력은 前漢시대 원봉 7년(기원전 104년)에 있었다. 원봉 7년에 연호를 太初로 하면서 개력하여 그것을 太初曆이라고 부른것이 그것이다.

태초력은 1달을 1삭망월(달의 위상변화)으로, 1년을 12개월으로 하고 윤달을 19년에 7번 두는 형태이다. 19년간의 달 수는 19*12+7=235(월)이 되고, 1년의 평균일수는 29 43/81*235/19=365 385/1539(일)이 된다. 이 값은 이전 사분력의 상수값인 365 1/4과 차이가 있다.


한 무제에 이르게 되어 천인상관의 정치이념이 확립되게 된다. 당시에 천은 역법에 의해 파악되는 법칙성과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초법칙적인 의지적 행위가 동시에 인정되는 존재였다. 법칙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하늘은 과학적 객관적 대상이지만, 초법칙적 존재라는 측면에서 하늘은 인간의 행동과 의지를 규정하는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중국의 역법은 천인상관의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그러한 하늘의 의지가 천체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파악했기에 가능한 한 천체현상을 잘 관찰해야 했고, 그 결과 력은 오늘날 같은 실용적인 달력이 아니라 일종의 천문계산표의 형태가 되었다. 그래서 개력을 하고자 할 때는 천문상수의 재정립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이런 천문상수에 형이상학적 설명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천문상수로 음률을 설명하는 것을 보자. 음에는 陽音인 율과 陰音인 려가 있는데, 율에는 황종, 태주, 고선, 이칙, 유빈, 무역 육율이 있고 려는 임종, 남려, 응종, 대려, 협종, 중려 육려가 있다. 이 속에 천지인 삼통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이것의 의미가 다음과 같이 보인다.


"육율과 육려가 있어 十二個月이 이루어지고, 五音階에는 각각 淸音과 濁音이 있어 十日로 一周를 마친다. '좌전'에는 '天은 六, 地는 五라는 것이 정해지는 수이다.' 라 하며 또 天은 六氣가 있고 지상에 하강하여 五味를 낳게 한다. 五와 六은 天數(一三五七九)의 가운데 있는 五와 地數(二四六八十)의 가운데 있는 六이 겹친 것이며, 이것을 받아 백성이 태어난다.

十干에는 甲이 붙는 것이 여섯 개(甲子甲寅甲辰甲午甲申甲戌) 있고, 十二支에는 子가 붙는 것이 다섯 개(甲子丙子戊子庚子任子)가 있다. 五와 六을 합친 十一에 의하여 천지의 도는 다한다. 이는 끝을 맺고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태극이란 중앙에 위치하는 만물의 근원인 氣이다. 따라서 이것을 황종으로 하고 그 용적은 1약의 양을 넣는다. 그 율관의 길이를 제곱하면 八十一이 되기에 팔십일을 日法으로 한다. 황종은 도량형의 길이, 부피, 무게를 낳는 근본이며 禮樂이 이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율력지를 보면 위의 설명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율력지는 음율을 바탕으로 도량형, 덕, 력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이것들을 연관짓는 것은 바로 수이다.

"수란 一十百千萬이다. 이는 사물을 재거나 셈하는 것이며, 만물이 하늘에서 얻은 각 성질에 숨은 근본적인 理法에 따른 것이다. '서경'에 '먼저 셈을 하여 만사를 정한다' 는 것은 이를 가리킨다.

수는 본래 황종의 수, 즉 一에서 비롯되었으며 一에서 시작하여 一에 三을 곱하여 三으로 하고 차례로 三을 곱하여 子丑寅 이하의 十二辰의 수를 거치면 十七萬七千百四十七을 얻는다. 그리하여 음양오행의 변화인 一十百千萬의 다섯 수가 갖추어진다.

역에 '天을 三, 地를 二로 삼는다' 라고 한다. 天數(홀수)는 一에서 시작하여 二十五로 끝난다(1+3+5+7+9=25). 이 뜻은 三에 의하여 天數를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한번 놓으면 三을 얻고, 이 三과 二十五分의 六을 二十五번 놓아서 天數를 마치면 八十一을 얻는다(3 25/6*25=81, 삼통력의 日法). 天과 地의 각각 다섯개의 數位가 합쳐서 끝나는 수 十을 이 終天의 數에 곱하면 八百十分이 된다. 이 八百十은 력의 一統, 즉 千五百三十九歲(日法 81을 閏法 19에 곱한 것이 一統인 1539이다. 三統은 一元의 行數 4617)의 章數에 대응하고, 율관에서는 황종의 용적에 해당한다. 이 원리에 의하여 십이율의 관의 크기를 셈하여 가는 것이다."


십간 십이지에 의한 12진법과 60진법은 역법에서 뿐만 아니라 역반 구성의 기본원리가 되어 있다. 이 두 주기는 사방위를 매개로 이오행과 결합된다. 이렇게 하여 모든 요소, 주요 방위, 색채, 온갖 사물에 의하여 상징되어 있으면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의 경우 7행성을 음악에 대응시키는 일이 과제였는데, 그것을 7음율로 성립한 사람이 바로 피타고라스이다.


- 천원지방의 수량화

노자계통은 1(혼돈) - 2(음양) - 3(和氣) - 만물. 이 계통은 3을 강조해서 3이라는 숫자가 여러 제도나 관습에 사용되었다. 또한 주역계통은 1(태극) - 2(음양) - 4(사상) - 8(팔괘). 4나 8이라는 숫자는 천지자연이나 인체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면 두 계통은 모두 1, 2를 공통으로 갖되, 3을 강조하느냐 4를 강조하느냐의 차이를 가진다. 그런데 3 - 천(天) - 양(陽) - 홀수이고, 4 - 지(地) - 음(陰) - 짝수 이다. 12, 24, 36, 72, 144, 216, 360, 11520 등 주역의 천지구도를 설명하는 수는 모두 3과 4의 조합이다. 이러한 천과 지의 우위관계는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해왔다.

중심수 5, 6은 <국어 주어>에 보면 “天六地五 數之常也.” 라 한다. 또한 <한서>에는 “무릇 5와 6은 천지의 中合이다. … 그러므로 일에는 6갑이 있고, 진에는 5자가 있으며, 11이 되어 천지의 도가 완성되며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 고 말한다. 이를 통해 5와 6은 오행설이 우위를 차지하기 전에는 같은 무게를 지녔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5장 6부가 그렇다.

시간, 천지, 계절 등의 질서를 규정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삼분 손익법이 있다. 삼분 손익법은 9-(9*1/3)=6 6+(6*1/3)=8 이와 같이 계산하는 방법으로 9를 기준으로 1/3 씩 가감하여 만들어지는 6, 8, 9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수체계이다. 이는 목성의 12방위법에 근거하고 있다.

9:6:8의 비율관계의 유래는 천원지방설에 근거하고, 황종 9의 제곱수 81은 태초력의 일력으로 사용된다. 3:4:5는 천지의 생성과 구조에 연관되며, 9:6:8은 우주의 운동과 변화에 연관된다.


. 간지와 책력의 만남

曆法은 일종의 法이다. 그러나 군주가 정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책력은 어떤 형태로든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서는 성립할 수 없었다. 또한 책력을 정하기 위해서는 천문과 자연의 순환에 대한 꾸준한 경험과 지식의 축적이 필요하다.


천문과 관련하여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점성술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경우 점성술이 무척 발달하였는데,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의 특수한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기에 하늘의 변화에 대해서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메소포타미아의 점성술은 유럽으로 넘어가서 개인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아무튼 점성술은 천체현상과 인간 운명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려고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점성술은 국가나 군주의 운명을 점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하늘의 변이를 군주의 잘못이나 국가에 일어나게 될 중대한 일을 예고하는 조짐으로 파악한 것이다.

- 음력(陰曆)과 양력(陽曆)


인류가 역법(曆法)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태양과 지구, 달의 변동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관측의 대상에 따라 태음력(太陰曆)과 태양력(太陽曆), 태음태양력(太音太陽曆)의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太陰曆(태음력)

달의 삭망(朔望)을 기준으로 하여 만든 역법(曆法)으로 태음태양력을 줄여서 태음력이라고도 하나 주로 순태음력을 가리킨다. 태음력은 달이 29.53059일(1삭망월)을 주기로 규칙적으로 차고 기우는 데서 자연적으로 생겼다. 대부분의 고대력은 태음력으로 출발하여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 또는 태양력으로 변해갔다.

현재는 터키 ·이란 ·아라비아 ·이집트 등 이슬람지역에서 사용하는 이슬람력이 순태음력으로 남아 있다. 순태음력에서는 29일의 작은달과 30일의 큰달을 번갈아 배치하여 1년을 12달의 354일로 하고, 30년에 11일의 윤일을 두어 달의 삭망과 날짜가 일치하도록 하고 있다.


太陽曆(태양력)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曆法)으로 태음력(太陰曆)과 상대되는 역법이다. 태양력의 기원은 이집트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에서는 일찍부터 나일강(江)이 범람할 때면 동쪽 하늘의 일정한 위치에 시리우스(큰개자리 α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냄으로써 태양력을 만들 수 있었다. BC 18세기경 이집트인들은 1년을 365일로 하고, 이것을 30일로 이루어진 12달과 연말에 5일을 더하는 식으로 달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 시리우스와 태양의 관계를 좀더 자세히 관측하여 1년이 365.25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율리우스력에 채용되어 4년마다 1일을 더하는 윤년이 생겼고, 1582년 다시 1년의 평균길이를 365.2425일로 하는 그레고리력에 인계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그레고리력에서는 4년마다 윤년을 택하되, 100으로 나뉘는 해는 윤년으로 하지 않고, 다시 400으로 나누었을 때 나뉘는 해는 윤년으로 하는 등 복잡한 역법이 이용된다.


太陰太陽曆(태음태양력)

달의 운행(朔望月)에 기준을 두면서 계절(太陽年)에도 맞춘 역법(曆法)으로 큰달(30일)과 작은달(29일)을 조합하여 12개월(平年) 또는 13개월(閏年)을 1년으로 하는데, 평년에는 354일과 355일, 윤년에는 383일과 384일의 네 가지 1년이 있다.

치윤법(置閏法)으로는 처음에는 2년에 1회 윤달을 두었는데, 나중에 19년에 7회 윤달을 두는 메톤법(法)이 채용되었다. 큰달과 작은달을 배치하는 방법에는 평삭(平朔:평균삭망월 29.53059일에 맞추는 것)과 정삭(定朔:실제의 삭망에 맞추는 것)이 있다.

평삭에서는 큰달과 작은달이 교대로 나타나며 단지 16개월 또는 17개월마다 큰달이 3회 계속된다. 정삭에서는 달의 운동이 같지 않은 데서 큰달 또는 작은달이 4회 계속되는 일이 있다. 서양의 역은 모두 평삭이었으며, 한국과 중국의 역도 처음에는 평삭이었으나, 나중에 정삭으로 변하였다.


- 농사력과 간지

절기의 운행과 간지의 관계


- 천체력과 간지



. 간지력과 농사

- 자연의 순환(시간, 공간, 계절, 인간, 자연, 우주․천체)과 간지력

자연점성술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점 등과 같은 숙명점성술 등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숙명점성술의 경우 넓게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좁게는 개인의 길흉화복을 예견하는데 사용되는 점성술이다. 그러나 자연점성술은 자연의 변화를 예견하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지상의 기상 등 물리 현상이 천체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사상 하에 천체의 변화를 관측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연의 변화를 예견하고자 한 점성술이다.


이 자연점성술의 한 예를 들자면, 1951년 미국의 기상학자 넬슨Nelson을 들 수 있다. 그는 전리권에 대한 천체의 영향을 조사하여 기상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그의 관찰 결과 전리권의 경우 태양의 흑점 활동과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는데, 태양의 흑점이 증가할 경우 전리권도 불안정해 진다고 한다. 이러한 관측 결과는 또한 점성술에서 마찬가지이다. 점성술에서도 전리권이 평온할 경우에는 좋은 해석이 많고, 전리권이 불안정할 경우에는 나쁜 해석이 많이 보이고 있다.


또 하나의 예로는 달의 위상변화와 물리적 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달의 영향이 조수간만의 차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수간만의 차는 달과 태양의 인력으로 인해서 바닷물의 높낮이가 변하는 현상인데, 초생달과 보름달의 경우 사리가 일어나고 상현이나 하현달의 경우는 조금이 일어나게 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달의 위상변화는 조수간만의 차 뿐만이 아니라 강수량의 차이도 가져온다고 한다. 브래들리(James Bradley 1693~1762)라는 학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초생달과 상현달 사이와 보름달과 하현달 사이에 강수량의 최대치가 나타나고, 상현달과 보름달 사이와 하현달과 그믐달 사이에는 강수량의 최소치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 강수곡선을 점성술에서 사용하는 액일 곡선과 비교해보면, 강수의 최대최소치가 절묘하게도 액일의 최대최소치와 맞아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두 경우에서처럼 천체의 변화는 분명 지상- 지구-라는 물리적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것이 틀림없다. 점성술을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예언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경우 미신적 성격과 비과학이라는 딱지를 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사의 예언도구가 아닌 천체와 물리적 환경의 관계라는 측면만을 놓고 보면 양자 간의 관계와 주기성, 규칙성을 살펴볼 수 있으며 과학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기상학이라는 학문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상학은 지구 내의 물리적 요소들만으로 자연변화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일기예보가 그것의 한 활용법이다. 그런데 일기예보의 정확성은 반반의 확률이라고 할 수 있다. 내일의 날씨가 예보와 맞으면 정확한 것이고, 틀리면 욕이나 얻어먹고 만다. 이렇듯 자연점성술도 일기예보 처럼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 간지력과 농사

- 옛농서에서 보이는 간지력의 쓰임

-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과 간지력



. 맺는 글

- 우리네 조상들은 시공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셈하며 살았는지 ……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 자연의 순환․주기성과 간지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 …… . 간지는 미신인가? 과학인가? …… 우리 전통 문화로서의 간지 …… 농사와 간지의 상관성 …… 등등의 이야기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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