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입동立冬날
오늘은 겨울로 들어선다는 입동입니다. 겨울이 어느새 슬며시 이렇게 가까이 찾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공부하는 것이 있어서 천문기상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데, 절기라는 것이 정말 기가 막히게 들어맞음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번 달 23일은 달력을 펼쳐보시면 아시겠지만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었습니다. 그 날 정말 서리가 내려서 고구마며 호박, 토란 같은 작물의 잎에 뜨거운 물에 데친 것처럼 팍 죽어버렸습니다. 고구마는 서리 내리기 전에 캐야한다고 합니다. 서리 맞으면 보관하는 중에 상하기 쉬워서 그런데 어르신들은 그걸 고구마가 감기 걸린다고 표현합니다. 옛날 분들은 고구마 하나에도 생명을 느낄 수 있는 말을 쓰셨네요.
이제 겨울 준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집니다. 옛날, 아니 그렇게 옛날도 아니지요. 지금으로부터 한 25년쯤 됐을까요. 그래도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까마득한 옛날이겠지요.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중학교 형들만 봐도 엄청 크고 나이 먹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초등학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민학교라고 했지요. 이름을 바꾼다고 할 때, ‘벌써 굳어진 이름이 쉽게 바뀔까?’ 했는데 금방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아니 기억은 남았어도 의식적으로 입에서는 초등학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빨리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우리만의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나쁘게 말하면 냄비근성이라고 하지요. 일본사람들은 한국에 올 때마다 놀란다고 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일본에 비해서 모든 것이 엄청 빨리 변하고, 사람들도 유행에 민감하다고 합니다. 요즘 같은 IT시대에는 적합할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놓치고 있는 것도 많은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80년대,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때를 생각하면 겨울이 올 때쯤 어른들이 하시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옆집끼리 모여서 함께 김장을 담아서 장독을 땅에 묻어놓고, 연탄집에 전화로 주문해서 연탄 몇 백장을 한 번에 들여놓고, 겨우내 먹을 쌀을 팔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쌀을 판다는 말이 나와서인데, ‘아니 엄마는 쌀을 돈 주고 사오는데 왜 판다고 하지?’ 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지금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기로 먹을거리가 없어서 쌀을 사오는데 말이라도 사온다고 하기보다 판다고 하는 것이 기분상 위로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일을 마치고 나면 하시는 말씀이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쌀은 밥을 해야 먹고, 김치도 익어야 맛있는데. 연탄은 어떻게 먹는다는 말이야.’
이제야 그 말들이, 가정을 꾸리고 살림을 살아보니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이런 것을 철들었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겨울맞이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여름내 장롱 속에 들어있던 두꺼운 이불을 꺼내서 깨끗이 빨아서 말려두었던 이불보를 씌우고, 쌀독에 쌀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서 주문도 하려고 합니다. 참 쌀 얘기를 하니 지난달에 옆 동네 대야미로 벼를 털러 다녀온 일이 생각납니다. 벼를 털기 위해서는 먼저 낫으로 벼를 베야 합니다. 콤바인으로 추수를 하면 기계소리만 들리겠지만, 낫으로 벼를 벨 때는 석-석- 하는 소리가 얼마나 맑고 아름답게 들리는지 모릅니다. 그 소리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귓가에서 들립니다. 벼를 베기 전 논둑에 서서 바라본 모습도 장관입니다. 누렇게 익은 벼들이 쫙 펼쳐져 있는 모습은 어떤 사진이나 영화로도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 중의 아름다움입니다. 그 모습도 눈을 감으면 선하게 펼쳐집니다. 산은 울긋불긋 익어가고, 그 아래 논에는 벼가 누렇게 펼쳐져 있는 모습은 얼마를 쳐다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벼 베는 일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꼭 한 번 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겨울 준비의 대미인 김장은, 밭에서 자라고 있는 무와 배추로 담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가꾼다고 가꿨는데 그렇게 볼품은 없습니다. 무, 배추는 저랑 궁합이 안 맞는지 매번 예쁘게 잘 안 됩니다. 그저 궁합이 안 맞아서 그렇다 하는데,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맞을 겁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고 괜히 핑계를 대보는 거지요. 아, 보일러도 잘 돌아가는지 날 춥기 전에 한 번 돌려봐야겠습니다.
이제 한 달에서 한 달 반만 지나면 추운 겨울이 닥칠 겁니다. 모두들 겨울맞이 준비 잘 하셔서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 보내세요. 따끈한 아랫목이 간절히 생각날 그 날이 다가옵니다.
'농담 > 텃밭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년 동안의 입춘일진과 기상자료 비교 (0) | 2008.09.13 |
---|---|
정해년 기상과 농사 (0) | 2008.09.13 |
2005년 흉흉한 농심 (0) | 2008.09.13 |
2003년 8월 13일, 텃밭일기 (0) | 2008.09.13 |
강남 가는 제비 (0) | 2008.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