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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 추곡수매는 폐지되었고 대신 공공 비축제라는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거기에 국회에서는 쌀 쿼터제를 관세화로 전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농민들이 추운 겨울날씨에도 여의도로 몰려와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또 모인다고 하더군요. 시위로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하나 둘 목숨을 버리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음에 가슴이 아파오는 겨울입니다.

 

농민은 항상 손해를 감수하며 이 땅을 지켜왔습니다. 산업화의 역군이 최고의 대우를 받을 때, 그들이 먹는 음식은 농민들이 생산해 왔습니다.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는 노동자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농민들은 제값도 못 받고 헐값에 농산물을 유통업자에게 넘겨야 했습니다. 그 유통업자들이 커서 지금의 일그러진 농산물 유통체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김대중 정권 때 김대중이 이 유통체계를 바로잡으려도 가락동 유통업자들이 며칠간의 파업으로 간단히 손들게 만들었죠. 이처럼 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소비자들이 보는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산지에서는 똥값인 농산물이 시장에서 사려면 열배 백배가 뛴 가격이 됩니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동자를 쥐어짜고, 국민을 쥐어짠 결과 기업은 상당히 덩치가 커졌습니다. 삼성 같은 재벌이 해체되어 마땅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당장 해체된다면 갑갑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농민들이었습니다. 노동자 보다 못한 농민의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고 슬픕니다. 오죽하면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 하고 물려줘야 할 농민들이 자기 자식은 공부해서 도시에 나가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땅을 치고 통탄할 일입니다.

 

몇 년 전에는 중국에 핸드폰을 팔기 위해서 마늘을 수입하는 과감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단지 돈으로 따지자면 그것이 더 이득일테지만 세상에 돈을 먹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지금은 돈만 있으면 시장에 가서 마음껏 원하는 물건을 사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갈까요? 농사 짓는 사람이 없어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요. 그때는 수입되는 농산물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자연히 독과점 형태가 발생하겠지요. 발빠른 자본이 그 기회를 놓칠리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목에 스스로 개줄을 묶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배우고 알만한 사람들이 그런 일은 꿈에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 치 앞은 볼 수 있어도 몇 십년 후는 볼 줄 모르나 봅니다. 이제는 가뜩이나 농촌에 노인네들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사람들이 죽고 사라지면 이제 농촌은 없어질 것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그 누가 농촌에 들어가 살려고 하겠습니까. 정부에서 얘기하는 규모의 농업은 헛된 망상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땅의 특성상 아무리 경지구획을 한다고 해도 미국이나 중국의 땅처럼 될 수 없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규모의 농업정책을 시행해서 경쟁력을 갖춘다니요. 이 무슨 어불성설입니까.

 

쌀 개방 문제를 단지 그 사실 하나로만 보면 쌀을 개방하는 대신 다른 수출품을 팔 수 있으니 우리에게 더 이득이 될 것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쌀 개방은 그 사실 하나로만 봐야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식량 자급률과 식량주권, 그리고 우리의 환경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의 차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30%가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30%가 됐던 것은 쌀이 자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점점 더 농사를 짓는 사람은 줄어들 것이고, 일부 규모의 농업을 실현한 사람들이나 농사를 지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 의해 자급률 30%가 유지될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농사를 농업으로 생각하는 숫자놀음하는 사람들에게나 유효한 수치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그래서 결국은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게 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상상해보면 정말 암담합니다.

 

IMF 이후에 우리나라 종자회사가 모두 다국적 기업에 넘어갔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 의한 폐해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된 결과 이제 우리의 농사는 그 사람들의 손에 좌지우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종자를 안 준다면 우리는 그냥 손 놓고 쳐다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래도 농사를 짓기 위해서 비싼 값을 치르며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농사를 지어봤자 농산물이 똥값인 현실에서는 손에 떨어지는 것조차 아무것도 없습니다. 식량주권이라는 문제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은 싼 값으로 마구 무차별적으로 들어올텐데 나중에 우리 농사가 다 망하고 나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종자의 경우와 똑같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입니다.

 

이 땅을 농부들이 지켜왔다고 말했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실제로 선진국이라는 유럽의 경우 농사가 가지는 환경적 가치에 대한 연구결과 논밭이 미치는 영향이 엄청남을 알아냈습니다. 가치고 수치를 떠나 논이 갖는 담수율만 봐도 거대한 댐 수십 개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농토가 우리의 땅과 환경을 지켜왔고, 그 일선에는 농부들이 있었습니다.

 

요즘 아토피네 뭐네 하는 문명병들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암보다 무서운 것이 당뇨병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문명병은 우리의 생활 관습이 변한 것과 밀접합니다. 식생활은 물론이고 생활 자체가 산업화에 맞춰지다 보니 그에 따른 병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니라면 왜 예전 사람들은 요즘과 같은 질병으로 고생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렇듯 농사에는 엄청난 가치가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한낱 돈의 가치로 맞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돈을 떠나서 정말 속 터지고 부끄럽고 가슴을 치며 피를 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발 행정가들이나 기업이 제정신을 차리고 거시안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잘 따져보고 판단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땅에 농업이, 농사가 죽으면 우리는 뿌리 잃은 도깨비가 될 뿐입니다.


2005년 겨울, 우리는 너무 슬프고 무서운 현실에 대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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