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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시한 얼굴로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아무 연락이 없어 텃밭 모임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한구석에 계속 남아 있었다. 11시쯤이었나 회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 출발하니 두시간쯤 걸릴 것 같다." 

얼추 시간을 계산해보니 좀 더 게으름을 피워도 될 것 같아 좀 더 뒹굴거렸다. 뒹굴거리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나무도감과 엊그제 새로 산 나물책을 뒤적거렸다. 어제 텃밭 주변 산기슭에서 본 나무와 풀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밭으로 출발하였다. 오늘은 날이 계속 우중충한 것이 일기예보에서 말한 것처럼 비가 오려나 보다. 지난 주에 밭에 물이 너무 많다고 잔뜩 걱정하며 떠난 용범이 형의 얼굴이 떠오른다. 처음에 물길을 제대로 잡았어야 했는지 원래 바닥에서 물이 솟아나는지 아직도 확실한 원인을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버릴 건 버려야지.

 

밭에 도착하여 하우스로 가려는데 용범이 형과 수옥누나가 장비를 들고 내려오고 있다. 올라갔다 다시 오는 수고를 덜고 함께 밭으로 향했다. 어제 확인한데로 밭은 여전히 물구덩이 투성이였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성한 땅을 만들기 위하여 삽질을 했다. 용범이 형도 밭의 사정을 알고 이제는 한쪽을 포기했다. 대신 살릴 수 있는 만큼이라도 살리려고 아주 열심이다.

 

그렇게 일하고 있는 중에 회장님 내외와 아이들이 도착하였고, 뒤이어 안성호 형님도 도착하셨다. 우리는 고랑을 더 확실히 파주고 물길을 제대로 잡아주었다. 물이 차 질퍽질퍽한 곳은 거기 나름대로 다양한 생물이 살라고 버려(?)두었다. 기름진 땅을 만들고자 퇴비를 퍼다 뿌려주고 땅을 잘 갈아 주었다. 뿌리만 남겨졌던 풀들도 정리할 수 있는데로 깔끔히 정리를 해주었다. 

그렇게 얼추 일을 마치니 시간은 4시가 조금 넘었다. 장비를 들고 하우스로 돌아가 저녁 먹을 준비를 하였다. 오늘 저녁은 회장님이 특별히 준비하신 삼겹살 파티다. 삼겹살 파티를 위해서 고추와 깻잎을 미리 텃밭에서 챙겨두었다. 삼겹살은 안철환 선생님이 철판구이를 알려주셔서 선생님이 만들어 놓으신 드럼통에 철판구이를 하였다. 누가 지시를 내린 것도 아닌데 각자 알아서 자신의 일을 맡아 저녁준비가 착착 이루어졌다. 회장님은 고기를 굽고, 나는 불을 지피고, 성호 형님과 용범형은 부족한 것을 채웠고, 수옥 누나와 사모님은 그릇과 밥과 저녁상을 차리셨다. 아이들은 일을 할 때부터 저들끼리 신이 나서 재밌게 놀고 있다.

 

불을 지피는 연기에 삼겹살이 구워지는 냄새가 저녁 바람을 타고 온 사방으로 퍼진다. 뱃속은 벌써부터 허기를 느끼고 입안에는 침이 고인다. 깻잎에다 삼겹살을 얹고 쌈장을 바르고 고추를 한 입 베어물고 쌈을 입 안에 밀어넣는다. 거기에 새로 한 밥까지 입 안에 넣으니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다. 마른 목은 안산 막걸리로 축이고, 시간이 갈수록 서로 간의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안철환 선생님도 한자리 끼셔서 함께 하시고픈 마음이셨을텐데, 그날 장모님과 할머님 그리고 사모님까지 함께이셔서 조금 그러셨나보다. 다들 일하고 계신데 아무리 레저농이라고 하셔도 일을 미뤄놓고 사람들하고 어울리기가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중간 중간 오셔서 막걸리도 드시고 하시며 좋은 이야기도 해주신다. 농막에 대해서 용범 형이 어떻게 하실건지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나름대로 생각은 있으신데 아직 선뜻 실행하시기에는 준비가 덜 되셨는지 거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불교귀농학교에서 힘이 닿는데로 열심히 도와드릴테니 불러만 달라고 넉살좋게 용범 형이 마무리 짓는다.

 

점점 어둠이 내려올 시간인데 사람들은 서로 자리를 뜰 줄 모르고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 그 좋은 자리를 마침 그날이 옥금이 어머니가 생일이셔서 더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더 있다가는 뒷감당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슬그머니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이 어찌나 아쉽던지 내내 머릿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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