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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밤이면 서늘한 찬바람이 피부에 스치고, 풀벌레들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것을 보니 완연한 가을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올 해는 다른 해와 달리 절기를 따지면서 살았는데 절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을이 왔음을 느끼니, 한 해가 다 간 것 같아서 괜시리 밤이면 울적해지기도 합니다. 삼복 더위만 지나면 한 해가 다 지난 것 같다는 말이 수긍이 가는 요즘입니다.


그렇다 보니 새삼 봄날이 생각납니다. 그 중에서도 어렸을 적 봄만 되면 찾아오던 손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옛날 국민학교를 다니던 80년대, 저는 곤지암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 지역에서는 봄이면 소로 논밭을 갈았고, 가을이면 고추랑 벼를 말리는 것이 큰일이었고, 눈 오던 겨울이면 �이며 토끼를 잡으러 산으로 들로 다녔습니다.


그곳에 살던 그 시절, 봄만 되면 특별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계속해서 찾아오는 통에 만나던 손님이 있었습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바로 그들입니다. 봄이면 찾아와서 집을 짓고, 새끼를 치고, 똥을 싸고, 시끄럽게 지저귀던 제비들 ... 요즘 같은 가을이면 왠지 그 제비들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제비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80년대 중․후반에는 서울에서도 제비를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서 만난 제비는 예전에 시골에서 만나던 그 제비들이 아닐까 하여 너무 반갑고 기뻤습니다. 환경이 변했지만 제비는 그대로 볼 수 있어서 서울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요. 이 제비들이 서울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갈 때면 어찌나 날쎄게 날아다니는지 무서워서 조심조심 하면서 다녔는데, 참 대단한 것이 제비들과 한 번도 부딪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제비들 하고 부딪칠까 무섭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리면 할머니는 걱정말라고 하셨는데, 제 생각 같아서는 후라이팬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고 다녀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피하려고 움찔움찔 거리다 보면 어느새 핑 하고 위로 슉 오르고, 엄마야 하면서 움츠리면 옆으로 쌩쌩 비켜가고, 정말이지 내가 날아다닌다면 제비처럼 날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있었습니다.


그런 제비들이 언제부터인가 천대를 받게 되었지요. 시골에서 살 때는 제비가 찾아오면 정말 반갑게 맞았습니다. 제비가 비우고 간 집은 일부러 놔두고 제비집 밑에는 똥받침도 해주고 혹시 뱀 같은 천적이 덤벼들까 지켜주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비가 시끄럽고, 똥 싸서 지저분하다고 제비가 집을 지으면 허물어 버리고 쫓아내고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찾아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환경이 너무 달라져서 오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제비와 헤어진 것이 십년이 넘었습니다.


그런 제비를 이번 여름에 동해안으로 놀러갔다가 우연히 다시 만났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함께 간 집사람은 길거리에 세워두고 제비를 쫓아다니느라 몇 십분 동안 그 동네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나중에는 집사람이 자기가 제비보다 못하냐고 하면서 화가 나서 풀어주느라 혼났지요. 그래도 제비가 너무 반가운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진짜 오랫동안 못 보던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제비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네들이 오면 먼저 집을 정성껏 짓습니다. 어디서 물어오는지 마른 풀이며 진흙을 물어다가 튼튼하게 집을 짓고, 그러고 나서는 암수가 몰래 짝을 지어 알을 낳지요. 그리고 알이 깨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암수가 번갈아 가면서 먹이를 잡아다가 새끼들을 배불리 먹입니다. 그 때 새끼들이 서로 먼저 먹이를 받아 먹으려고 지지배배 거리는데 그 모습을 보고 황구라고 했습니다. 그맘때 제비 새끼는 부리가 유독 큰데 노란 색을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아이들이 먹을 것 달라고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어린 아이들을 보고 황구라고 했지요. 이 말만 봐도 제비가 얼마나 우리 삶과 밀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흥부전이며 여러 가지 이야기에 나오고 있지요. 그렇게 새끼를 키우다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끼들이 하나 둘 자기 힘으로 하늘을 날게 됩니다. 그때는 아무래도 먼저 태어난 놈들이 용감하게 먼저 날아오르지요. 그래도 어수룩한지라 비행에 실패해서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놈들이 꼭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놈들은 개가 먼저 물어가기 전에 얼른 집어서 다시 둥지로 넣어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 새끼 제비는 겁을 먹어서 쉽게 날아오를 수 없게 됩니다. 그럴 때는 형제들이며 부모가 모두 응원을 해주어 결국은 비행에 성공하게 되지요. 그렇게 날개에 힘이 붙으면 제비들이 떠날 때가 됩니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요즘이지요.


제비가 떠날 때가 되어서 그런지 가을이 되자 저절로 제비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에는 새 하면 비둘기나 까치만 떠올리게 됩니다. 그만큼 생물종의 다양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더군다나 도시가 형성되면서 거기에서 적응할 수 있는 동물들만 볼 수 있게 되는 현실이 더욱 그렇게 만들었겠지요. 그래도 밭에 가면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습니다. 까치, 비둘기는 물론이고 꾀꼬리, 뻐꾸기, 할미새 ... 이름을 잘 모르겠는 새들까지 ... 많은 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솔개 같은 맹금류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수가 워낙 적어서 제대로 힘을 쓰지는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몇 년 전부터 지리산에 반달곰을 풀어놓는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소식 또한 함께 들려서 참 안타깝습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이겠지만 호랑이가 산의 주인이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어릴 적 읽었던 시튼 동물기의 늑대왕 로보 보다 마지막 호랑이 이야기였던 대왕이라는 무늬가 새겨져 있던 일본놈들을 잡아먹었다는 대왕호랑이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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