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겨울이 반이나 지나갔는데 생뚱맞게 겨울맞이라고 이름 붙이고 보니 괜시리 철지난 케케묵은 이야기나 꺼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한 해 동안 간지를 공부하면서 나도 모르게 날짜나 계절을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셈하는 것이 버릇이 되고 있나 봅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벌써 음력 11월 하고도 보름이 되었으니, 입동 이후 입춘 전까지의 기간을 헤아려 보면 겨울이 벌써 반이나 지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겨울이 지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동지가 되니 이제 슬슬 동트는 시간도 빨라질 테고, 자연히 잠자리에서 눈을 뜨는 시간도 빨라지게 될 겁니다. 해 따라 별 따라 사는 생활이 점점 몸에 익어가면서 편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눈 돌릴 틈도 없이, 별도 달도 볼 여유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이제는 정신이 사나워집니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추위를 싫어하는 제가 꼭 준비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직도 남들 눈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나 언제 어디서나 편하고 따뜻하게 나를 지켜주는 내복이 그것입니다. 내복을 하도 입고 다니다 보니 엉덩이는 뭐 싼 것처럼 축 늘어지고 무릎은 나오고 색깔도 바래집니다. 그리고 땀 때문인지 꼭 사타구니 부분이 금방 헤져서 떨어지게 됩니다. 그 덕분에 1년에 한 벌씩 새로 구입해야 하지만 내복 시장의 변화도 눈으로 보고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옛날에 비해서 이제는 얼마나 좋은 내복들이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다양한 기능도 추가되고 옷 생김새도 눈을 씻고 볼 정도로 다양해졌습니다. 언제 시간이 괜찮다면 식구들과 함께 내복 사러 나가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내복만 입고 쓱싹거리고 있으니 아마 이 모습을 보신다면 배꼽잡고 웃을지도 모릅니다. 집에 손님이 오지 않는 이상 겨울철 실내복은 내복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런 내복을 처음 입게 된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닌 어머니의 의지였습니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놈 따뜻하고 배부르게 만들어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어머니의 권유로 내복을 입었습니다. 어릴 때는 집 안에서 내복 한 벌 입은 채로 깔끔하게 풀 먹인 두꺼운 솜이불 위에서 뛰고 구르고 정말 신나게 놀았습니다. 집 안에서는 원래 내복만 입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나에게 내복이 팽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국민학교 5학년 때 있었습니다. 점점 머리가 굵어지면서 남자로서의 존재감을 한창 자각하던 그 때 겨울날, 여느 때와 같이 나는 내복을 입고 학교에 등교를 했습니다. 그 시절의 나도 지금처럼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지요. 그런데 그 때 짝이 된 여자아이가 유난히 저를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기억으로는 그때에는 보통 짝을 한 달에 한 번씩 바꾸곤 하였는데, 그 짝과는 이상하게 싸우기도 엄청 싸웠습니다. 무슨 여자애가 그렇게도 우악스러운지, 도무지 저는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번 당하는 사람은 저였지요.
그런데 하루는 싸움을 하다가 그 아이가 제 옷을 쭉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면서 겉옷이 어깨를 공기 중으로 노출시키며 벗겨졌고, 그 날 입고 갔던 내복이, 그것도 분홍색! 내복이 눈에 확 띄게 드러났습니다. 순간 얼굴은 치솟는 부끄러움으로 화끈 달아올랐고, 거기에 그 아이는 "야 너 여자 내복 입었네!" 라며 기름을 부었습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했고, 그래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으로 꽝! 어찌 그리 무모할 수 있었는지… 그런데 그 우악스럽던 짝이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아닙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인지 아무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하고 있는데, 한 번 터진 울음은 수습할 길 없이 계속 이어져서 그 울음은 수업종이 울리고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실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물으셨고, 저와 짝이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그 사건을 목격한 아이들의 증언으로 수사가 종결되었습니다. 아! 그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유니 섹스의 시대이다. 그런 시대에 그깟 분홍색 내복을 입었다고 놀리거나 부끄러워서 폭력을 쓰면 되겠냐." 그때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주워 섬겼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담임선생님께서는 무려 20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고 계셨던 겁니다.
이 일이 있고난 후 학교가 파하고 당장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잔뜩 성을 냈던 일이 기억납니다. 남자임을 자각하게 된 시기에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으니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어머니께 화를 냈던 일을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미안함과 땀구멍이 온통 입이라도 뭐라 할 말 없는 죄스러움뿐입니다. 얼마나 버르장머리가 없었으면 감히 어머님께 그럴 수 있습니까. 백 번 천 번 혼이 나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 일을 미처 사과드리지 못했는데 이미 어머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참으로 한스러울 뿐입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는 옛말에 절감하며 가슴만 칠뿐입니다. 생각난 김에 잊지 말고 있다가 다음 제사 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겠습니다.
그 때 저는 앞으로는 절대로 내복을 입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어머님은 그래도 추워서 내복은 입어야 하니 대신 파란색 내복을 사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모자간에는 대타협이 이루어졌고, 당장 파란 내복을 사오시며 저에게 주셨습니다. 분홍 내복은 자연히 동생에게 물려졌습니다. 그때만 해도 옷을 물려 입는 것이 큰 일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무릎과 팔꿈치에 가죽을 동그랗게 덧댄 옷도 참 많았지요. 아무튼 얼마 전 동생과 이야기 중에 알게 된 일인데, 저야 맏이라서 항상 새 옷만 입었지만 자기는 항상 내 옷을 물려 입어서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자기가 옷에 관심이 많아졌고 직접 옷 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도 있으면 입고 없으면 안 입는지라 왜 그런지 몰랐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동생이 귀여움 많이 받고 사랑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나 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는 말이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미 내복에서 마음이 떠난 후라 내복이 있다고 해도 잘 입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조금 더 굵어지니 내복을 입는 아이는 동성 친구 사이에서도 놀림감이 되더군요. 그러니 더더욱 내복은 옷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아예 사라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고등학교 때인가 추위에 떨면서도 내복은 소매나 발목 밖으로 보이니 입지 않겠다는 저에게 어머니는 어디서 쫄쫄이를 사다가 입으라고 주셨습니다. 하지만 한 번 입어보고는 민망하고 답답해서 도저히 입지 못하겠더군요. 영원히 안녕이었습니다. 그렇게 8~9년 동안 내복은 옷장에서는 물론 머릿속에서도 싹 지워졌습니다.
그러던 내복이 다시 내 삶에 등장하게 된 것은 군대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왜! 먹어도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아무리 껴입어도 추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물며 작은 상처 하나가 나도 쉽사리 낫지 않고 봉와직염이라는 병으로 크게 덧나게 되는 것인지… 군대는 참으로 민간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런 군대에서 보급품으로 지급된 것이 할아버지 내복이었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이나 입을 것 같은 살색의 누비질 되어있는 내복, 젊은 사람이라면 싫어하는 내복인데 촌스럽기까지 하다니. 그래서인지 짠밥이 찬 고참들은 손도 대지 않더군요. 하지만 저는 추위를 싫어하는지라 덥석 손을 댔고, 그 따뜻함에 스르르 녹아버렸습니다. 그 맛을 한 번 보고 난 후에는 도저히 몸에서 떨어뜨리지 못했습니다.
추위를 싫어하게 된 것은 어릴 때 경험이 큽니다. 눈덮힌 산으로 억지로 사촌형에게 끌려 다니며 토끼나 꿩을 잡느라 어린 나이에 손발에 얼음이 박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때는 변변한 치료약도 없고 미지근한 물에 손발을 담그고 앉았거나 만병통치약이던 안티프라민이라는 누런 빛깔의 약을 덕지덕지 바르는 것으로 치료를 마쳤습니다. 그런 치료를 받고 다 나은 줄 알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도 겨울이 되면 손발과 귀가 시리고 아팠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지내다 보니 심하지 않고 하여 별로 자각하지 못했는데, 군대에 들어가니 이게 더욱 심해지는 겁니다. 특히 훈련소에 한겨울에 들어가면서 완전하게 도졌습니다. 자대 배치를 받고 내무반에 앉아있는데 밤이 되니 고참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겨울 해라 짧기도 짧았는지라 벌써 밖은 시커먼 어둠이 깔려있었지요. 신병이 오면 어디나 마찬가지인데 병장 단 고참 한 명이 저에게 다가와 말붙이며 장난치다가 제 손과 귀를 보더니 이거 동상이라며 사람을 시켜서 미지근한 물을 받아오게 하여 담그라고 하는데, 담근 것은 분명 손발이건만 왜 그렇게 눈에서는 주책 맞게시리 눈물이 나왔던지 모르겠습니다.
군대 시절 내복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나고 난 후부터 이제 겨울마다 내복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내복은 별로 환영받는 옷이 아닙니다. 제가 내복 입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놀림삼아 내복 입었냐고 물어보곤 합니다. 입으면 따뜻하고 좋기만 하구만 내복이 왜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은 내복을 입고 방바닥에 누워서 뒹굴뒹굴 거리는 겨울철 취미생활을 즐기다가 ‘옛날에 못 살던 시절에는 내복이 필수품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가 되니까 내복하면 가난이라는 것이 상징되어서 그런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하긴 요즈음은 난방이 워낙 잘 되어서 한겨울의 집 안에서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심지어는 밖에 나돌아 다닐 때도 자동차를 이용하는지라 간단한 겉옷에 반팔만 입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서 함께 움직이려면 내복을 입은 저는 땀에 푹푹 절곤 합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에너지다 환경이다 하면서 내복을 입자고 홍보까지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이들도 생각을 바꿔먹었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이 춥고 여름이 더운 것이 당연하건만 왜 힘들여가며 거꾸로 살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정으로 편하게 살고자 한다면 철 따라 살고, 시(時)에 맞추어 사는 것이 제일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