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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오래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텃밭에서 땀 흘린 것이 10월쯤이었으니 11, 12, 1, 2월 … 무려 4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다. 인드라망에서 정신없이 일을 해서 더 그런가? 일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성격이 그래서인지 가끔은 한정 없이 늘어진 시간 때문에 느리게 방바닥에서 뒹굴고만 싶기도 하다.

 

어제는 인드라망 총회가 있어서 행사를 치르느라 바빴다. 총회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는데 뒷풀이 자리가 길게 이어져서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안산에 도착했다. 옥금이는 늦게 온다고 그러면서 전화도 안 한다고 투덜댔다. 전화를 안 하고 싶어서 안 한 것이 아니라 밧데리가 다 되어 그랬는데 남의 전화 쓰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아침에는 몇 시에 일어나야 하지? 얼마나 잘 수 있지?' 라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아침이다. 옥금이네 집이 좋은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침에 햇살이 들어온다는 것이 참 좋다. 지금은 신림동 반지하에 살아서 아침에 햇살에 일어나는 일이 없다. 낮에나 잠시 들어올까 하루 종일 약간 어두침침한 지하 수맥이 흐르는 방에서 살고 있다. 나는 아침에 햇빛을 받으면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아무리 피곤하고 졸려도 낮에는 잠을 자지 못한다. 컴컴한 곳에 가야만 잠이 오는데 옥금이네 식구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늦잠 자고 싶어 하는 옥금이를 깨워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마침 옥금이 어머니가 교회에 가신다 하기에 차를 얻어 타고 텃밭으로 향했다.

 

그동안 텃밭은 한두 번 잠깐 와서 보고 갔지 신경 써서 봐주지 못했다. 마늘은 어떻게 되었고, 시금치는 먹을 만큼 자랐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텃밭으로 가는 길은 푸릇푸릇했던 지난날의 기억 때문에 더욱 황량하기만 하다. 마음까지 휑한 것이 기분이 처진다.


텃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시금치가 눈에 들어왔다. 먹을 수 있을까? 시금치는 아직도 그대로이다. 이러다 그냥 갈아엎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다, 봄이 되면 다시 힘을 받아서 확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다.


마늘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라고 구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구해서 피복을 해주었다. 베어 놓은 풀, 고구마 줄기, 수숫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덮어주었다. 옥금이 어머니는 어디서 구하셨는지 스스로 볏짚을 구해다 덮어주시기 까지 했다.

 

어떻게 됐을까? 군데군데 보이는 싹들이 분명히 자라고 있는 것은 맞는데, 한 접이나 되는 마늘을 심어서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났는지 조금은 실망이 되었다. 이제 날씨도 따뜻해지고 했으니 이만 걷어 줘도 되지 않을까 해서 조심조심 걷어 냈다.


아니 세상에! 싹들이 피복 밑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매서운 겨울을 이기고 자라나 있는 새싹들, 얼마나 귀엽고 앙증맞고 예쁜지 모른다. 생명은 감동이고 아름다움이다!


마늘싹에 푹 빠져서 감격하고 있는 사이 옥금이와 지혜 누나가 새로운 사실을 깨우쳐준다. '흙이 시커먼 것이 좋아보이네.' '흙이 참 보드랍다.' 정신을 차리고 흙을 보니 정말 1년 사이에 많이 좋아진 것이 눈에 띈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는데 속으로는 얼마나 흐뭇한지 모르겠다. 땅은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노력하고 땀 흘린 만큼 그대로 가감없이 돌려준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이 준다. 이런 기쁨을 또 어디서 누릴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를 얻어서 얻는 기쁨과는 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다.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이 또 눈에 띄었다. 한쪽 편은 마늘이 잘 자라고 있었는데, 다른 한쪽은 거의 전멸이라고 할 정도로 듬성듬성 이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심을 때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것 같았다. 처음 심을 때 그냥 멋도 모르고 쇠작대기로 구멍을 숭숭 뚫어서 마늘을 넣고 흙을 채웠는데 그때 빈 공간이 많이 생긴 것 같다. 그 빈 공간 때문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그대로 죽은 것 같다. 할 수 없지, 죽은 놈은 죽은 놈대로 나중에 잘 썩어서 좋은 거름이 되길 바랄 뿐이다.


제대로 난 곳은 그렇게 심다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강력한 느낌에 안철환 샘이 심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 심은 곳이다. 호미로 쓱 긁어서 차례로 뿌리가 아래로 향하게 늘어놓고 흙을 덮어 심는 방법이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차이가 났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맞는 표현은 아니겠지만 그 말뜻이 딱 맞다.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은 마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대신 그들의 희생으로 다음부터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그들의 사명이 있었나 보다.

 

이제 하우스로 향했다. 밖은 바람이 세서 따뜻한 날씨는 아니었는데 역시 하우스 안은 따땃하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안철환 샘이 오셨다. 샘과 나는 연장을 챙기고 물길을 보러 나섰다.

이제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해야 하니 물을 먼저 살펴야 했다. 개울에서 호스를 이용해서 물을 끌어오는데 겨우내 얼어서 터지거나 갈라져서 물이 새는 곳이 곳곳에 보였다. 쭉 훑어 내려오면서 그런 곳을 보수하면서 돌아오니 이제 물이 잘 나온다. 여름철에는 물이 너무 많아서 호스 안에 찌꺼기가 쌓이는 바람에 막히는 경우가 있었는데 겨울에는 호스가 터지는 일이 있네.

 

그렇게 얼추 일을 마칠 때쯤 이일형님 내외가 도착해 있었다.

멀리서도 웃음소리로 알았다. 안철환 샘도 나중에 밥 먹는 자리에서 웃음이 참 대단하다고 했다. 웃음도 잘 웃어야 한다.

내 웃음은 어떤지 모르겠네… 가끔 길을 걸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다가 지금 내 얼굴은 어떤지 돌아보곤 한다. 지금 내 얼굴은 어떤가? 남들이 보기에 좋은지 아니면 찌푸려 있는지.

얼굴도 잘 가꿔야 할 것 중에 하나이다. 언행과 외모는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밖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대표적인 상징 같다. 요즘 얼짱이니 몸짱이니 맘짱이니 해서 시끄럽던데 그렇게 외형을 가꾸는 일이야 표피적인 일이고 진실로 가꿔야 하는 것은 마음자리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사람 두 사람씩 불어났다. 시간을 두고 나, 옥금이, 안철환 샘 내외, 이일형 님 내외, 대야미 형님 내외분, 대야미에서 텃밭하시는 내외분과 아이, 성호 형님과 큰딸, 지혜누나, 14기 김은주 님 내외, 최수옥 님 내외 ... 나중에는 이렇게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모이게 되었다.

 

고추모종을 위해서 일단 자리부터 만들었다. 여자분들은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냉이를 캐러 나가셨고 남자들은 삽을 들고 땅을 한 10Cm 가량 네모 낳게 팠다. 그리고 거기에 미리 준비해둔 볏짚을 적당히 깔고, 쌀겨를 적당히 깔고, 물을 적당히 부었다. 핵심은 적당히.

 

요즘은 과학이 최고라며 뭐든지 수치화, 계량화, 양화 하는데

물론 그것이 효율성이니 뭐니 하는 측면에서는 효과가 있지만

사람 사는게 어디 그렇게 되는가. 사람이 사는 문제는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물리적인 일도 실험실에서 형성하는 가상의 조건과는 다르게 다양한 측면이 서로서로 연관되어 있기에 그때그때마다 약간씩 다르게 변화를 줘야하지 않는가.

 

논어 공부하면서 주워들은 구절이 있는데 원칙은 있되 원칙대로 곧이곧대로 꽉 막히게 써서는 안되고 상황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었다. 어찌나 이치에 합당하고 옳은 소리였던지 그리고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구절이었던지 뇌리에 와서 콱 박혔다.

 

그렇게 파놓은 곳에는 파낸 흙을 그대로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상토를 만들어서 봉긋하게 덮어주었다. 상토는 모래흙 반에 산흙 반을 섞어서 만들어 주는데, 산흙을 퍼올 때는 겉에 드러난 흙이 아니라 조금 걷어내고 그 안에 흙을 퍼와야 한다. 겉에 흙을 푸면 그 안에 온갖 풀들의 씨와 균이 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싹들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주려면  경쟁을 줄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만, 그것도 신경쓰지 않고 일단 퍼오는데 집중하느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만약 그 씨들이 싹을 틔우고 그래서 한해 고추 농사가 망친다면 얼굴 들고 다닐 낯이 없다. 그리고 상토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재를 섞어 주는 것이다. 재의 양은 이것도 적당히 인데 왕겨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것을 태운 재를 섞어주었다.

 

자리를 든든히 만들어 주고 밥을 먹는 시간인지 술을 마시는 자리인지 모를 작은 잔치가 있었다. 저마다 싸온 먹을거리들을 풀어놓고 바람이 센 찬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흥겨운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오늘은 고추모종을 하기로 했던 날, 본분을 잊을 수 없었다.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고추를 심기 위해 하우스로 이동했다.

 

고추씨는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다. 고기집에 가면 나오는 풋고추, 그 안에 들어있는 씨가 그냥 고추씨이다. 고추씨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심으려고 손에 쥐고 보니 '이게 고추씨가 맞구나. 이렇게 작고 여리구나.' 하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다가왔다. 기침만 해도 날아갈 듯 작고 가볍고 여린 것에서 뿌리가 나고 싹이 나고 고추나무가 된다니 신기하고 또 감격스럽다.

 

이런 고추씨가 한봉지 천 이삼백개 정도에 싼 것이 만 삼천원 정도이고 비싼 것은 이만원이나 한다고 한다. 한 개씩 따져보니 하나에 십원 이상인 고가의 상품이었다. 진짜 종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금 미국의 종자회사에 우리나라 종자회사들이 많이 먹혔다고 하던데 그나마 명맥이나마 살아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듣기에는 뜻있는 분들이 한토21이라는 종자회사를 만들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토종종자를 지키고 있다던데 그분들의 노력이 정말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이 땅 곳곳에서 올바른 삶에 뜻을 두고 살아가고 있을 여러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뜻을 가지고 사는 분들의 삶이 고되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분들이 있기에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고추씨를 심는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한 줄을 죽 긋고 거기에 1∼2Cm 간격으로 고추씨를 늘어놓았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참 예쁘다. 씨는 두가지 종류를 썼는데 하나는 사서 쓴 고추씨와 다른 하나는 안철환 샘이 이제 6년째 심고 있는 손수 받은 씨와 어디서 얻어 오신 순종이었다. 일부러 둘을 비교하기 위해서 자리는 따로 구분해서 심었다. 사서 쓰는 종자가 아무래도 개량이 많이 된 것이라 좋긴 한데 1년 단위로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종자를 받아서 다시 쓰면 처음보다 소출이 엄청나게 떨어진다고 한다. 중학교때 배운 생물시간에 멘델인가 뭔가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개량종이 수확량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은데 자연스러움에서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런데 생명의 신비로움이란! 처음은 그래도 이것이 해가 가면 갈수록 제 모습을 찾는다고 한다. 5∼6년이 지나면 제모습을 찾는다고 하는데 올해가 바로 그 해라고 한다. 그래서 안철환 샘은 이번에 심는 종자에 갖는 관심이 엄청나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제대로 된 종자를 안정적으로 받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안철환 샘은 그동안 이 일을 혼자 해왔다고 한다. 혼자서 깨알만한 작은 씨들을 이삼천개씩 심고 있으면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미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일어난다고 한다. 직접 해보니 그런 생각이 일어날만 하다. 혼자 고요한 가운데 시간이 얼마나 가는지도 모르고 하나씩 하나씩 정성들여 심고 있는 모습. 생각하기에 따라서 평화롭고 여유로움일수도 있고, 괴롭고 지겨운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일과 수행의 하나됨이 여기에서 보여진다. 왜 선승들이 농사를 지을까? 그들도 거기에서 이런 모습을 엿보았던 것은 아닐런지 모른다. 방방뜨고 흥분하고 화 잘내고 시끄럽고 남들의 이목을 끌어야만 하고 자기를 표현하고 표출해야만 사는 것 같은 분들에게 이런 일은 좋은 보충재가 될 수 있겠다. 그래서 심리치료 과정 중에 원예치료나 꽃치료 그런 것들이 생겨났는가 보다.

 

고추씨를 심고 나서 해야할 일은 보온 유지이다. 그를 위해서 작은 하우스를 만들어 준다. 장비는 정말 기술이 좋아지는 만큼 좋고 편했다. 땅에 박고 비늘을 덮고 마지막으로 모직포까지 덮어주니 완성이 되었다. 이제 밤에는 보온을 위해서 덮어주고 낮에는 햇볕을 받으라고 걷어주고 적당히 물주고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이제 생명을 키우는 일은 하늘이 할 일이다. 사람은 지극정성으로 힘써 일하는 수밖에 없다.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고 꼭 필요한 일이다. 아이들 교육으로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는 듯하다. 자연에서 뛰어논다는 것은 자연의 운행과 자연이 생명을 어떻게 낳고 기르는지를 관찰하는 시간이다. 인간에게는 오직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경험, 그러나 남성이라고 못하는 것은 아니고 남성은 농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과 경험. 이 작은 텃밭을 통해서 너무나 소중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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