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이 많이 풀려서 집에만 있기에 좀이 쑤셨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밭으로 나갔다. 아무도 없었는데 고추 온상에 이불이 젖혀진 걸로 봐서는 벌써 아침에 왔다 가셨나보다. 처음 출발할 때 생각했던 것처럼 쓰레기를 주웠다. 전부터 왔다 갔다 하면서 무슨 쓰레기가 그리도 많은지 작심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래도 막상 주우려고 하니 왠지 더럽다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꺼림칙하게 생각이 되었다. 쓰레기를 주우려고 마음먹었는데 더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닌데 처리하려니 아니꼽다는 생각도 있을 테고, 나 아니라도 누군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줍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주워나가니 이제는 더럽고 아니꼽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그냥 쓰레기를 주워 담는 것이 내 일이 되었고, 속으로 은근히 뿌듯해지기도 하였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쓰레기는 쓰레기끼리 모여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한 번 쓰레기가 버려진 곳에는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곳인가 보다 하는 생각으로 또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깨끗한 곳이라면 내가 버리는 쓰레기가 바로 표가 날 테고 양심에 가책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청소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깨끗하게 치워지면 다시 쓰레기가 버려지는 일이 줄어들겠지.
사람도 그런 것 같다. 나쁜 짓 하기가 처음에 힘들어서 그렇지 한 번 나쁜 짓을 하면 또 하게 되고, 자꾸 그러다 보면 습관처럼 그러지 않던가. 그래서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이란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또 하나의 배움을 얻었다.
한참 쓰레기를 줍고 쉬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들어왔다. 누구지 하고 쳐다보고 있으니 나물을 캐러 오신 분들이었다. '나물 캐러 오셨군' 하고 이씨 아저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어라 밭에까지 함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밭에는 이것저것 심어놓은 상태인데 그곳까지 들쑤셔놓고 고랑으로 길이 있는데 두둑을 마구 밟고 다녔다. 봄은 만물이 약동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흙 속에 잠자고 있던 미생물들도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하고 흙도 어린 아이처럼 약하디 약한 상태라 조심해야 하는데, 마구 밝고 다니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한 마디 했다.
"여기 함부로 밟고 다니시면 안 됩니다. 이것저것 심어놓은 것도 많고 조심하셔야지 그러시면 안 됩니다. 산으로 들로 다니시면서 캐실 것이지 막 들어오셔서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같이 온 남자분은 조심스러워서 남의 밭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얘기하지 않았냐고 나물 캐는 여자분에게 핀잔을 주었는데, 여자분은 당당하기만 했다. '저기에 뭐 심어 놓은지 다 알고 있다. 전에 농사지어봐서 안다. 여기 나고 있는 나물 놔둬봤자 캐먹지도 않을 것 아니냐.' 하면서 계속 손을 놀려 나물을 캐는 것 아닌가! 은근히 부아가 솟았지만 거기에 댓거리하는 게 더 우습겠다 싶어서 아무 말 않고 옆에 서서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슬슬 손을 거두고 다른 두둑을 또 성큼성큼 밟으면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 들어가지 말라는 의미로 말뚝을 박고 줄까지 쳐놨는데도 자기 밭 인양 함부로 들어가는 모습이 무뢰한이 따로 없었다.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확실히 보고 이씨 아저씨에게 가서 저 사람들이 이러이러 하더라고 하니, 그런 사람 많다고 하신다. 자신은 종자로 쓸려고 쪽파를 심어놨는데 나물 캐러 온 사람들이 싹 다 가져간 일도 있다고 하신다. 자기 것이 아니면 가만히 놔둘 일이지 참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은지, 욕심은 둘째 치고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것을 날로 먹으려 들지만 않아도 이런 일이 없을 텐데 말이다. 나도 행여나 불로소득을 바래서는 안 되겠다.
나물을 캐서 식구들에게 신선하고 맛좋은 먹을거리를 해주려는 아줌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좀 조심해주셨으면 한다. 흙에 대하여 그리고 생명에 대하여 아무 생각이 없는 분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괜히 좋은 기분으로 나물 캐러 오셨다가 기분이나 상하시지 않았나 모르겠다. 별 거 아닌 것 가지고 유세떤다고 생각하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을 보는 분들께서는 유념해주셨으면 한다. 남의 밭에 들어가서 저거 하나 따 먹는다고 무슨 일이 있겠느냐, 많은 것 중에 하나일 뿐인데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씩 가져가는 분들이 솔찮히 계신다. 하지만 그것을 키운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화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속담에도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 않는가. 농부에게는 땡볕에서 노심초사 하면서 땀 흘려 가꾼 작물도 자식과 진배없다. 더군다나 유기농을 하면서 정성껏 몇 년 동안 공들여 가꾸어 온 흙이야 말할 것도 없다. 흙을 살려내지 않으면 유기농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흙은 만물을 거두고 길러주는, 뭇생명의 어머니라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