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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20년 전, 국민학교를 다닐 때 국어시간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에는 까치를 보면 괜히 반가웠고, 이놈들이 ‘깍깍’ 울기라도 하면 동생한테 오늘은 손님이 오려고 까치가 저렇게 운다고 잘난 척하면서 말해주곤 했습니다. 그랬던 까치가, 이제는 참 얄밉습니다.


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엔가 나타나서 나를 감시하는 그 눈초리, 느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또 왜 그리 친구들은 불러대는지. 그럴 때면 서로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나를 밭 한가운데 두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바쁩니다. 내가 그 말을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나를 두고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기분이 나쁩니다. 정말 감시받는 기분이지요.


다른 밭일이라면 몰라도 만약 그렇게 감시받을 때, 콩이나 옥수수를 심는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까치밥이 되겠다는 생각이 불쑥 듭니다. 그래서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하여 저는 나름의 꾀를 냈습니다. 그 수란 바로, 까치를 따돌리는 것이지요. 아무리 급해도 까치가 보는 앞에서는 까치밥이 될 만한 것들은 절대 심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을 잘 둘러봐야 하고, 까치 울음소리에 신경을 잘 써야 합니다. 혹시라도 까치가 있다면 돌을 집어 던지는 시늉을 하면 도망을 갑니다. 하지만 까치들은 곧 다시 돌아오지요. 그럼 이번에는 진짜 돌멩이를 집어 던지면 화들짝 놀라서 멀리 도망을 갑니다. 헛팔매질인지 진짜 돌팔매질인지 구분할 정도로 영악한 놈들이 바로 까치입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돌을 던지면 '아 이게 나를 못 맞추는 구나' 하면서 애당초 도망갈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러니 상황 상황에 맞게 궁리를 잘 하셔서 까치를 쫓아내야 합니다.


이 까치란 놈 한 놈한테만 발각이 되면 서로 신호를 보내서 금방 여러 마리가 새카맣게 몰려옵니다. 그 앞에서 재롱떠는 것도 아니고, 그 놈들 좋은 일 할 수는 없지요. 그럴 때는 그냥 일을 접고 다 사라질 때까지 막걸리나 한 잔 하면서 시간을 보내세요. 이것을 “베짱농법”이라 하려고 했는데, 쓰고 보니 “눈치농법”이 되겠군요.


목초액에 담갔다가 심으면 탄내가 나서 덜 먹는다고 하고 다른 여러 방법이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좀 귀찮고, 어디 누구 머리가 더 좋은가 시합이라도 해보자는 기분으로 그냥 심습니다. 그러는 게 더 귀찮겠다고 하실 분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으나, 아무튼 그렇게 해 본 결과 아직 한 번도 새피해를 당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재수가 좋았던 것인지 정말 이 방법이 통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목초액은 전혀 사용한 적이 없는데 80% 이상은 다 발아를 했습니다. 아, 그 대가인지는 모르겠는데 발아 한 다음에 입는 피해는 있었습니다. 그 놈들이 새순만 뜯어먹거나 뽑아놓는 경우가 있더군요. 그런 피해는 내가 미처 보지 못할 때 하는 짓이니 뭐라 할 수 없고, 대신 부지런히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며 알아서 도망가게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까치는 정말 영물입니다. 머리가 어찌나 좋은지 모릅니다. 손님이 오면 운다는 것도 매일 보던 사람이 아닌 새로운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혹시 있을 지 모를 피해를 대비하기 위해서 위협의 목소리를 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국민학교 때 책에서 보았던 좋은 새 까치가 요즘 보는 까치랑 같은 놈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놈들아! 적당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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