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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에 취재 갔다오느라 꽤 피곤했지만 저도 어제 절기력 강의를 참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오늘 채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밭에 갔다왔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거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더군요.
안철환 선생님도 피곤하셨을텐데 4시간을 쉬지 않고 이것저것 설명하시느라 더 피곤하셨을 겁니다.

아무튼 어제 강의를 들으면서 퍼뜩 떠오른 생각이 역시 절기는 음양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음양으로 이해하면 절기가 변하는 이치도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음양은 단순한 음양이 아니라 태극을 의미합니다.
태극하면 뭔가 거창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실지 몰라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제가 그림을 하나 올리니 한 번 보십시오.

간단히 설명하자면 동지와 하지는 말뜻 그대로 겨울과 여름의 지극함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그때가 가장 춥고 더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한 대한이 더 춥고, 소서 대서가 더 덥습니다.
과학시간에 열심히 공부하신 분들은 다 아시다시피 이는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만큼 기울어져 있기에 생기는 복사열 때문이지요.
그걸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태극문양입니다.
그림을 보면 확 드러납니다.
태극의 음과 양은 원을 정확하게 반으로 가르고 있지 않고 서로를 조금씩 비집고 들어가 있습니다.
그걸 여기餘氣라고 하는데, 그것이 작용하기에 소서 대서, 소한 대한이 더 덥고 추운 것이지요.
그런데 한가지 주의할 것은 태극이 그렇기 때문에 절기가 그런 것이 아니라,
절기가 그렇기 때문에 태극이 그렇다는 겁니다.
태극은 그야말로 하나의 상징일 뿐입니다.
자연 현상의 변화가 일정한 규칙이 있다하여 그걸 상징 부호로 표현한 것이 태극일 뿐입니다.

저는 과학 법칙이란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의 규칙성, 법칙성을 공식으로 표현한 것이 서양의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거꾸로 되어서 과학이 우선이고 생활이 뒤인 세상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잣대도 과학이고, 과학적이기에 누구의 말이 맞다 하고, 모든 학문에도 과학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입니다.
뭔가 앞뒤가 전도되어 있지 않은가 합니다.

그건 그렇고, 태극과 절기를 배치시키면 꽃샘추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양의 기운이 시작됐지만 아직 그 기운이 미약하기에 음의 기운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상태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한 음의 기운은 동지 이후 소한 대한을 지나 춘분 때에 이르러야 하강 곡선을 그립니다.
어제 강의에서 춘분은 지나야 혹시라도 모를 서리를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요.
그 말이 바로 이 이치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흥미로웠던 것이 하지가 지나야 벼가 생식생장을 시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가 양의 기운이 극에 달한 때이긴 하지만,
또한 음의 기운이 시작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음의 기운은 해석하기를 생명의 정수를 응축시켜서 죽음을 대비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게 하는 기운입니다.
벼라는 작물이 그러한 이치를 잘 드러내는 작물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절기를 크게 넷으로 나누면 춘분, 하지, 추분, 동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걸 다시 넷으로 나누면 입춘, 입하, 입추, 입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에 선을 그어 봤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오는 절기인 소한 대한, 경칩 우수, 청명 곡우 등은
동지와 입춘 사이, 입춘과 춘분 사이를 대표할 수 있는 자연 현상을 표현한 말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춘분, 하지, 추분, 동지가 대문이고,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이 방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입춘을 入春이 아닌 立春이라고 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5대 명절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설, 한식, 단오, 백중, 추석을 설명하셨는데,
제가 볼 때 한식이 들어가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사실 한식에는 특별한 놀이행사도 없고 하는 것이라고는 성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조상 숭배를 중요시하는 양반들이 슬쩍 끼워 넣은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사실 농사짓는 사람들이 재밌게 노는 것은 한식 때보다는 정월대보름입니다.
옛날에는 그래서 설부터 정월대보름까지 보름동안 신나게 놀고, 머슴도 이때 휴가를 줬다고 합니다.
만약 정월대보름이 맞다면,
한창 바빠질 농사철 전에 신나게 노는 설~정월대보름과
한창 바빠질 추수철 전에 신나게 노는 백중과 추석이 대칭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행사들은 모두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인데,
한식만 유일하게 동지에서 105일이 되는 날이라는 점도 어울리지 않는 무엇입니다.
이건 좀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어제 강의를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깨우친 바가 많았기에 글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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