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농사
보리
경기북부에는 밭보리가 많지만 고양에서는 논보리도 흔했다. 밭보리는 벼베기 전에 뿌리기를 끝내야 함. 쟁기로 오가며 좌우로 한 밥씩 넘겨 생긴 골에 보리씨를 뿌리고 쇠스랑으로 쟁기밥을 부수고 긁어내린 흙으로 덮는다. 논보리는 쟁기밥 여섯밥을 한 두둑으로 만든 다음 ‘넙적써레’로 쟁기밥을 부수고 손으로 씨를 뿌린다. 그리고 다시 넙적써레로 긁어서 흙을 덮는다.
논보리는 모내기 전에 거두어야 하기 때문에 물 걱정 없는 논이 아니면 심지 못했다. 보리타작은 벼와 마찬가지로 한다.
서속黍粟
서속은 원래 기장과 조를 말하는데, 평안남도 박천군에서는 콩과 팥을 뺀 조 수수 기장 들의 잡곡을 부른다.
서속 씨는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뿌린다.
지난해 곡식을 심었던 자리(두둑)의 가운데를 후치로 째고 뿌리는데 이를 회종법이라고 한다. 한편 바람이 세게 불어서 씨가 바람에 날릴 염려가 있을 때는 자치통이라는 연장을 쓴다. 이것은 가죽이나 나무껍질 또는 종이를 여러 겹으로 붙여서 원뿔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길이 1m 윗지름 15~20cm 바닥지름은 10cm 안팎이다. 위 아가리에는 끈을 달아서 어깨에 멜 수 있다.
씨를 뿌린 뒤에는 재를 놓고 개지를 끌어서 흙을 덮는다. 개지는 흙을 덮는 데 쓰는 연장으로 가지가 많이 달린 소나무를 길이 50~60cm쯤 자른 다음, 위쪽에는 적당한 크기의 돌을 새끼로 동여맨 것이다. 이것을 씨뿌린 뒤 끌고 다니며 돌을 새끼로 감아둔 데(길이 20cm 정도)가 땅을 비비게 되고 아래쪽에 달린 솔잎들은 흙을 덮어 나가는 것이다. 개지로 끈 다음에는 짚신을 신은 아낙네들이 씨가 묻힌 곳을 발로 꾹꾹 밟는다.
서속밭은 세 번 매는데 이를 ‘아이’ ‘두불’ ‘세불’이라고 한다. 아이맬 때는 언덕진 양쪽의 흙을 잡아 제치면서 매기 때문에 곡식이 나 있는 쪽은 오목해지고 반대쪽은 두둑해진다. 조의 경우 20cm쯤 자라면 두불맨다. 이때는 아이맬 때와는 반대로 두둑해진 가운데를 주욱 째 나간다. 이런 뒤 호미로 조가 있는 쪽으로 흙을 긁어 넣으면서 매어 가며 이삼 일 뒤 후치로 깊은 데를 째 준다. 두불 매고 보름쯤 지나서 다시 후치질하고 세불맨다. 그리고 열흘쯤 지나서 또 후치질을 한다. 이렇게 해 두어야 골이 깊어져서 장마 때도 물이 잘 빠진다.
후치로 짼 다음해에는 연장으로 가는 것이 좋다. 따라서 조를 심은 이듬해에는 다른 곡식을 심어야 한다. 목화, 콩, 팥, 기장, 밭들은 후치를 쓰지 않고 연장으로 갈며, 이때는 겨리소를 쓴다. 이때는 왔다갔다하면서 좌우러 떠넘기며 갈아나간다. 후치의 보습은 크기가 다르며 매는 정도에 따라 적당한 것으로 갈아 끼운다. 제일 작은 것은 밭두둑을 두 번째 쨀 때 쓴다.
콩
콩은 망종을 전후한 5월 초에 심는다. 팥이나 동부 들도 거의 같은 때 심지만 땅이 약간 습한 데서는 콩을 먼저 심는다.
씨는 허리에 찬 뒤웅박이나 다래끼에 담으며 이랑을 호미로 판 뒤에 씨를 두고 다시 흙으로 덮는다. 잘하는 이는 호미로 파고 씨를 놓고 발로 덮는 동작을 거의 한꺼번에 한다. 콩은 한 번에 열 알을 묻으며 포기 사이는 발 하나 정도 간격을 두나 팥은 조금 베게 심는다. 콩밭에는 거름을 주지 않는다.
콩은 거두는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를 거둘 때는 호미로 콩대를 끊으며 단을 만들어 짚으로 묶은 다음 밭가에 서로 엇걸어서 가려 놓아 말린다. 집으로 옮긴 뒤에는 뿌리가 밖으로 향하도록 둥글게 가리를 쌓아 두며 필요할 때마다 내려서 도리깨로 턴다. 이를 마당질이라 한다. 대는 걷어서 쌓아 두며 깍대기(깍지)는 깍닥우리(깍지를 넣어 두는 우리)에 넣어 갈무리한다.
마당질이 끝나면 갈퀴로 대나 깍대기 들을 긁어 모은 다음 콩을 거두고 키에 드리운다. 이때 맞은편에서 탕석(부뚜)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먼지 같은 잡물이 가려지도록 한다.
콩은 또 다른 방법으로 고르기도 한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좌우에 지게를 놓은 다음 두 지게의 새고자리 사이에 막대를 걸며 막대에는 쑥대로 엮은 발을 걸쳐 둔다. 발의 너비는 70cm쯤 되며 지면과 발이 이루는 각도는 45도 되게 한다. 사람은 큰 말을 엎어 놓고 이 위에 올라서서 쑥대발 쪽으로 콩을 드리우며 맞은편에서는 부뚜질 하여 바람을 일으킨다. 이렇게 하면 콩이 발 아래로 흘러내릴 때 흙은 발의 날과 날 사이로 떨어지며 먼지나 검불은 바람에 날린다. 고른 콩은 말로 되어서 멱서리나 섬에 넣어 갈무리한다.
경기북부에서는 콩은 흰콩이 대부분. 일부 검정콩과 콩나물콩도 기른다. 예전에 보릿골에 콩을 심었다. 5월 중순 심는다. 흰콩 검정콩은 300평에 8~10키로. 콩나물콩은 5~6키로. 콩잎이 지고 일주일쯤 지나면 낫으로 베거나 뽑아서 한달쯤 쌓아두었다가 마르면 턴다.
강냉이
강냉이는 소만에서 입하 사이에 심는다. 강냉이밭은 후치로 왔다갔다 두 번 갈아서 이랑을 지으며 사람이 걸어가면서 깊은 발자국을 남긴다. 다음 사람은 삼태기의 거름을 한 덩이씩 떨어뜨리며 세 번째 사람은 한 자국에 씨를 세 개씩 놓고 마지막 사람은 이를 한 번 밟고 흙으로 덮는다. 한 자국에서는 대가 셋이 나오나 아이맬 때 두 대만 남기고 약한 것은 뽑는다.
강냉이밭에는 자구넘이를 한다. 강냉이는 80~100cm 정도 간격으로 심으며 대와 대 사이의 빈 곳은 콩을 주로 심는다. 자구넘이는 이처럼 한 자국마다 번갈아 가며 다른 곡식을 심는다는 데서 온 말이다. 콩은 강냉이와 싹이 보이기 시작할 때 심으며 콩이 나와서 속잎이 퍼질 때 아이맨다.
강냉이는 거두어서 껍질을 벗긴 다음 새끼로 곱새(이엉) 엮듯이 엮어서 길게 타랭이(타래)를 지어 말린다. 잘 마른 강냉이는 알갱이를 손이나 도리깨로 쳐서 떤다.
메밀
메밀은 생장력이 강해서 다른 곡식은 심어서 잘 되지 않는 척박한 땅에 심는다. 풀밭을 새로 개간하거나 부대기로 일구어 놓은 밭에 심는 일도 있다. 메밀밭은 갈기도 하지만 보통은 골도 타지 않은 채 손으로 씨를 훌훌 뿌린다. 이 밭은 두 번 매며 베어 거두어서 묶어 놓았다가 개상에 태질 쳐서 알곡만 가려낸다. 메밀씨는 40평에 한 되 정도 뿌리며 씨가 흙에 묻히도록 극젱이로 왔다갔다 하면서 얕게 갈아 준다. 메밀은 한쪽에만 흙이 묻어도 잘 살아난다. 김은 매지 않는다. 8월 말이나 9월 상순에 거두며 볏닷처럼 묶어서 20일 가량 세워 두었다가 탯돌에 쳐서 알갱이를 떨며 다시 맷돌에 타서 껍질을 벗긴다. 40평 밭에서는 작은 말 5말(껍질 안 벗긴)을 거둔다.
경기북부에서는 연천지방에 많다. 봄매밀과 가을메밀이 있지만 주로 가을메밀을 심는다. 가을메밀은 중복 때 다른 작물을 심지 못한 묵은 땅에 심는다. 흩뿌림 또는 줄뿌림. 파종 시기가 늦으면 파종량을 30% 늘린다. 꽃이 피면 북을 주고 배수가 잘되게.
기장
기장은 소출이 적고 거두는 일이 까다로와서 많이 심지는 않았으나 비를 매어 쓰려고 심는다.
기장은 강냉이보다 베게 심으며(50~60cm) 자구넘이로 녹두를 심는다. 거둘 때는 대를 낫으로 베며 묶어서 집으로 옮겨 놓은 뒤에 이삭이 달린 목을 쥐고 뒤쪽으로 잎이 다 떨어지도록 훑어내린다. 이렇게 해서 대가 한 움큼쯤 모이면 서로 묶고 이삭에서 30cm 정도 떨어진 데를 잘라 버리고 목만 남겨 둔다.
알이 달린 부분은 발로 비벼서 알곡을 떨어 내는데, 그래도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은 땅에 놓고 호미날로 박박 긁어서 떨어 낸다. 그리고 빗목은 시래기 엮듯 엮어서 매달아 말린다.
밀
황해도 재령 오흥석 씨는 밀 심는 일을 추경이라고 한다. 따라서 밀을 심었냐고 할 때 추경했냐고 한다.
밀은 조밭에 심으며 조를 베어 낸 뒤 이랑을 갈고 골에 재와 화학비료를 뿌린 뒤에 밀알을 10~15알씩 놓는다. 두 사람은 양쪽에서 고무래로 흙을 덮는다. 재를 충분히 놓아야 겨울에 얼어죽지 않는다. 밀밭은 매지 않으며 하지 조금 뒤에 거둔다.
밀을 벨 때는 세 이랑을 단위로 하며 가운데 이랑을 능숙한 사람이 맡는다. 벤 것은 모아서 밀대로 묶어 두며 집으로 옮겨서 마당질을 한다.
밀밭 이랑에는 보통 팥을 심으며 이를 ‘대우친다’고 한다. 팥은 망종과 하지 사이에 심는다. 호미로 파고 알을 10여 개 놓으며 다시 호미로 덮고 발로 밟으며 한로 무렵에 거둔다.
한편 밀을 거두고 나서 그 이랑에 녹두알을 뿌리며 후치로 양쪽을 갈아서 흙을 덮는다. 녹두는 심은 뒤 이십 일쯤 지나서 한 번 매어주며 팥과 함께 거둔다.
보리
강원도 명주군에서는 8월 하순부터 9월 초순 사이에 보리를 심는다. 보리밭은 고랑을 치기 위해 한 번 갈며 골과 골 사이는 21~24cm 간격을 둔다. 골을 지은 뒤에는 똥을 주며 씨는 똥재에 버무려서 뿌린다. 보리씨는 70평에 한 말 정도가 적당하며 똥재는 한 삼태기를 쓴다.
겨울을 지내고 2월 하순에서 3월 초순 사이에 쇠스랑으로 드문드문 매 준다. 거두기는 4월 하순에서 5월 상순 사이에 하며 마르면 떨기 어려워서 그날 마당질을 한다.
목화.
재래면과 육지면 두가지가 있다. 육지면은 일제시대 나온 것으로 습한 땅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이를 논에 심기도 한다. 이것은 재래면보다 고치가 크고 수확량이 많으나 질이 떨어진다. 메마른 땅에서 잘 자라는 재래면은 12새 이상의 고급품을 짤 때 쓴다.
무명밭에는 두엄을 뿌려 두었다가 겨리소를 메워 왔다갔다하면서 볏밥을 좌우로 떠넘기며 간다. 이렁(너비 45cm)에 발로 홈을 파고 재를 놓고 씨를 뿌린다. 다음에는 다시 양발로 흙을 긁어 모으며 밟아준다. 밭 주위에는 가축의 피해를 막기 위해 아주까리나 들깨를 심는다.
잎이 나오면 김을 매다. 이때 벤 데 것은 잎이 서로 닿지 않을 정도로 솎아준다. 김은 세 번 매며 두 번 맬때 가지를 쳐준다. 이를 ‘순 쳐준다’고 하는데 이렇게 해야 나무가 곧게 자라지 않고 가지를 많이 뻗는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여는데 송이가 완전히 벌어지기 전의 것을 '다래‘라고 한다. 이것은 달콤해서 아이들이 따먹기도 한다. 다래가 벌어지면서 솜이 부풀어올라 숭어리가 된다. 여기서 거두는 첫물은 질이 아주 좋아서 9새 이상의 무명을 짤 때 쓴다. 목화를 거두고 멍석이나 홑이불을 거기에 깔고 말린다.
고치
마른 것은 씨아질(평북에서는 토리개질)을 해서 씨를 발라낸 뒤 활에 타 부풀려서 솜으로 쓰거나(이를 ‘명 탄다’고 함). 고치를 말아 물레질을 해서 옷감을 짠다. 활은 대로 만들며 이에 거는 실에는 ‘벌똥을 먹여’(밀칠) 둔다. 이렇게 해야 줄이 질기고 목화가 달라붙지 않는다.
무명잣기
고치를 처음 물레에 올릴 때는 짚껍질(‘호백이’라고 함)을 가락에 꿰어 놓은 다음, 고치의 한 쪽을 가락 끝에 대고 물레를 돌려 실을 한 발 가량 자아내어 호백이에 걸어 둔다. 가락에 감긴 실뭉치는 되비(전남 고흥), 명뗑이(전남 나주), 토깽이(평북) 들로 불린다.
이렇게 무명을 잣는 일은 품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흔히 물레 품앗이를 한다. 이때 자기 물레를 가지고 모인다.
되비는 날꼬챙이에 꿰어서 날틀에 올리며 이에서 나오는 실을 사려 두었다가 무명을 난다.
무명날기
무명을 날때는 마당에 뱃말을 박으며 말과 말 사이 거리는 20자가 기준이다. 고흥에서는 열 올을 한 모심, 20자를 한 가래, 40자를 한 필이라고 한다.
머슴
고흥에서는 나이나 능력에 따라 담사리, 중머슴, 상머슴들로 나눈다.
담사리는 12~17살 사이의 소년으로 땔나무를 장만하거나 소를 돌보거나(이를 쇠담사리) 물긷는 일(이를 물담사리) 맡는다. 담사리는 주인집에서 옷과 숙식을 주며 한 해 쌀 한가마니 정도 준다. 중머슴 새경은 쌀 10~11가마, 상머슴은 13가마.
황해도 재령에서는 머슴을 멈꾼이라 부르며 멈꾼, 어석멈꾼(소도 송아지도 아닌 것 어석이소), 새끼멈꾼이라 한다. 새경을 삿갓이라 하며 쌀 한 말에 70~80전일 때 멈꾼에게 20~30원을 주었다. 또 ‘삼동 옷 해 입힌다’고 하며 겨울 바지저고리, 중의 적삼 들을 주었다. 정월에 보름 동안, 단오에 이틀, 그리고 추석에 하루 동안 휴가를 주었다.
함경남도 함주군에서는 어려운 환경의 남자를 데릴사위로 맞아들여 일을 맡기며 아이를 낳으면 소작을 주어 분가시켰다. 그는 일생 동안 처가의 일을 돌보았다.
충남 아산군에서는 젖머음, 중머음, 상일꾼이 있었다. 젖머음은 20세 미만의 소년으로 옷을 입히기는 하나 보수는 일정하지 않고 주인 마음대로 주었다. 중머음에게는 벼 넉섬에 돈 5원 그리고 무명으로 만든 옷 들을 주었다. 상일꾼은 쟁기질할 수 있는 사람으로 쌀 한 말에 90전일때 돈 5원에 벼 닷섬 그리고 사철 옷을 주었다.
평안북도 박천에서는 더부살이(머슴) 말고 마가리를 두어 일을 맡겼다. 마가리는 주인집 행랑채에 살면서 집안 일을 돌보는 안마가리와 주인집 근처 별채에 살며 들일이나 가축을 돌보는 밭마가리가 있었다. 이런 마가리를 경상도에서는 가랍, 전라도에서는 호지, 호제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한 해 일이 마무리되는 동짓달 동짓날을 기준으로 일꾼을 들이거나 내보낸다. 영천에서는 일꾼이 처음 들어온 날을 ‘들참려’라고 하여 주인집에서 음식을 장만, 마을 일꾼들과 함께 먹도록 한다. 머슴이 떠날 때는 ‘쪼추바리떡’을 해주며 일꾼은 먹고 남은 것을 가지고 간다.
문경에서는 일꾼이 받는 첫날 첫상을 ‘디림상’이라고 하여 음식을 특별히 차린다. 달머슴 제도가 있어서 한 달을 기준으로 들고 나기도 했다.
팥
6월 초순이면 보리를 베어낸 밭에 극젱이로 골을 내고 호미로 팥을 심는다. 매기는 장마가 끝나고 나서 두세 번, 꽃이 피면 그만. 10월 상순이 되면 낫으로 베어 말린 다음 탈곡기나 도리깨로 수확. 봄에 가물면 팥을 대용갈이 작물로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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