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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잠깐 “땅” 하다가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옛날에도 농사땅이 많으면 잘 살았듯이, 지금도 값비싼 땅이 있으면 “땅땅”거리며 배불리 잘 살지요. 이용 방법은 다르지만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땅은 참 소중했고 소중합니다. 특히 땅을 모르면 농사짓기 참 힘듭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땅=돈’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보다는 쬐끔 더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땅이 없다면 어디서 살 것이며, 어디에 씨를 넣을 것이며, 어떻게 먹고 살겠습니까? “땅은 어머니이다”라고 하든지, “땅은 돈이다”라고 하든지 땅은 참으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농사를 짓는다면 더더욱 그렇지요. 주로 농사짓고 살던 우리네 조상들은 하늘이 양陽이고, 땅은 음陰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서서 이어주는 것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늘, 땅, 사람이 어울려 균형을 이룬 상태를 가장 좋은 상태로 여겼지요. 셋 가운데 땅은 만물을 자신의 품에 안고서 그보다 밑에서 겸손하게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함께 사는 땅.



그러한 땅을 사람이 어떻게 받드느냐에 따라 한 해 농사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밑거름(기비基肥)과 웃거름(추비追肥)은 어떻게 하고, 땅 갈이(경운耕耘)와 두둑은 어떻게 짓고 골은 어떻게 타며, 물뺄도랑(배수로排水路)은 어떻게 낼지. 이것만 결정해도 농사의 반은 들어갑니다. 거름(비료肥料)은 화학비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완전히 집에서 손수 만들어 썼습니다. 그래서 늘 거름이 모자랐지요. 남의 집에 갔다가도 똥오줌이 마려우면 자기 집에 달려와 쌌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입니다. 새로운 유목 시대를 살자는 때에 그런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비웃음 사기 딱 좋지요. 옛날에는 거름을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가 농사의 관건이었습니다. 그때 거름으로 쓰던 재료는 똥오줌(분뇨糞尿)은 물론, 아궁이에서 나오는 재(회灰), 집짐승(가축家畜)의 똥과 그것들이 밟는 깃, 심지어 설거지한 개숫물까지 썼다고 합니다. 이 얘기만 들어도 정말 피눈물 나는 노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얼마나 편합니까. 전화해서 주문하고 돈을 내면 끝이니.



두엄더미.



그렇게 살던 사람들에게 일제시대가 되면서 화학비료가 돌기 시작합니다. 이거 완전 별천지 세상이 펼쳐지는 겁니다. 요즘 개새끼 데리고 공원으로 가끔 한 번씩 산책을 갑니다. 겨울에는 더 자주 가지만 요즘은 사람이 많아서 뒷산으로 가지요. 그 공원에 식물원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었는지 텃밭을 만들어 작물을 기르고 있더군요. 덕분에 뭘 어떻게 하는지 신경 써서 보는데, 밑거름으로 퇴비도 주지만 화학비료를 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뭔지 정확히 분석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게 자라는 모양새를 보면 기가 찰 정도로 미친 듯이 자랍니다. 그것이 바로 화학비료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화학비료는 감히 아무나, 함부로 쓸 수 없는, 말 그대로 금비金肥였습니다. 오죽하면 다이아몬드도 없던 시절에 가장 비싼 금金이라는 말을 붙였을까요. 그래서 무슨 값비싼 영양제 맞듯이, 그렇게 조금 조금씩 아끼며 썼지요. 그거야 있는 사람들 이야기고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두엄을 썼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들을 모두 차곡차곡 두엄(퇴비堆肥)에 쌓아 둡니다. 저 어릴 적 기억만 해도 부엌에서 나오는 모든 것, 아궁이에서 나오는 모든 것, 외양간에서 나오는 모든 것, 거름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두엄으로 갔지만 나중에 경운기로 실어 낼 때 보면 얼마 되지 않더군요. 거기서 지렁이 잡아다 낚시나 실컷 했지요. 그 두엄을 봄이 되면 달구지(우차牛車)로 내다가 밭에 골고루 펴고, 이제 땅을 갈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거름을 옮기는 일을 ‘거름내기’라고 했습니다.



달구지. 소 등에는 길마를 얹었다.



거름을 내는 일은 논농사(수도작水稻作)보다 주로 밭농사(전작田作)에 냈습니다. 전통 농업을 취재하면서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논에는 봄에 갈잎 새순을 해다가 넣었다고 합니다. 그거 아니면 참깨나 들깨대를 썰어서 넣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콩을 삶아서 그걸 거름으로 주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300평에 나락 1~2가마 정도 소출이 났다고 하니, 참 수확량이 적지요. 물론 거름이 모자라서 그런 것도 있고, 논물길(관개수로灌漑水路) 같은 수리시설도 미비해서 더욱 그랬을 겁니다. 지금은 한 마지기 정도면 흰쌀 4~5가마니를 얻는다고 하니 엄청난 생산량 차이입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 자기 때거리는 해결했으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겁니다. 지금이야 5%도 안 되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를 먹일 쌀을 생산한다니 엄청난 기술력입니다.

농사는 농사지을 수 있는 땅(가경지可耕地)에 지어야 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갓 개막은 땅(간척지干拓地)이라 짠물해(염해지鹽害)가 있거나 질펄땅(저습지低濕地)에서는 농사짓기 힘들지요. 하긴 질펄땅에는 요즘 미나리를 심거나 연을 키워서 한몫 단단히 수익을 올린다고 합니다. 미나리가 얼마나 돈이 되는지 모르는데,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논을 미나리꽝으로 바꾼 곳이 많이 보입니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는 맹자의 말이 아니어도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만큼 그걸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몇 천 년 동안 힘들게 일군 논이 하루아침에 그리 바뀌는 모습에 참 거시기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뭐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거시기할 뿐이죠. 새로 논풀기(개답開畓)를 하려면 돌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해서 축대도 쌓고 차츰차츰 논에 알맞은 흙이 되기까지 흘린 피땀을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입니다. 앞으로 쌀값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마저 무너진다면 논이 밭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일 겁니다. 진짜 상전벽해와 같은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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