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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여름 나기
김석기 기자
오늘은 "쫘아아악" 하며 하늘을 째는 듯 천둥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비가 내립니다. 그동안 밤낮으로 무더위에 시달렸는데 빗소리만으로도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입니다. 지난 월요일이 입추였는데, 그래서인지 오늘 이 비는 가을을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 봄에 이번 여름은 기록적인 무더위가 있을 거라고 떠들어서 지레 겁을 먹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떠든 것보다는 덥지 않았습니다. 에어컨 팔아먹기 위한 상술이 아니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예년과 비슷한 더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들 피서는 다녀오셨는지요? 오늘은 식물들이 무더운 여름을 나는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도 아닌 식물들도 피서(避暑)를 한답니다. 식물들이 피서를 한다는 말에 '아니 발도 없는 식물들이 무슨 피서냐?' 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물론 식물은 동물들과 다르게 여기저기로 이동할 수 없지요. 그렇다고 우리들처럼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궁금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식물들도 우리랑 다른 방법으로 피서를 한다는 겁니다.

다들 알고 계시는 것처럼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생활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는 능력이 없지요. 식물은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대신 동물들이 갖지 못한 광합성을 통해서 스스로 영양분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무심히 바라보면 녹색식물일 뿐이지만 우리처럼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베르그송이라는 철학자는 식물은 그렇게 스스로 영양분을 만드는 능력을 선택한 대신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식물은 동물과 질적인 차이만 있을 뿐 동물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저도 농사를 지으면서 식물들을 접해보니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식물들의 피서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름은 태양이 높이 오래 떠 있기에 더운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산으로 들로 피서를 떠납니다. 그런데 식물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 저기 나다니지 못하는지라 다른 방법으로 태양을 피합니다. 식물들은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태양을 피하는 법'에 대한 자기들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을 오가며 주의 깊게 관찰하신 분들은 아마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 먼저 호박이나 해바라기처럼 잎이 넓은 것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넓적한 잎을 아래로 축 늘어뜨립니다. 뜨거운 물에 데치기라도 한 것처럼 축축 늘어지지요. 그 모습을 보면 ‘너희도 이 뜨거운 태양에 참 힘든가 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리고 수수나 옥수수 같이 잎이 길고 큰 종류들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더위를 피합니다. 참, 고추도 그런 방법으로 더위를 피하더군요. 아마 대부분의 식물이 잎을 늘어뜨리는 방법을 택하는 것 같습니다. 또 토란 같은 경우는 혼나서 풀 죽은 아이처럼 고개를 좀 더 숙여서 빛을 받는 면적을 줄입니다. 그리고 특이한 방법으로 여름을 나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콩과 식물들입니다. 그 식물들은 하늘을 향해서 잎을 바짝 치켜 올립니다. 꼭 벌 받는 아이들처럼 말이죠. 이 두 가지 방식이 기본적으로 식물이 피서를 하는 방법입니다. 이외에도 식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여름을 나는 것 같은데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네요.

식물들이 더위를 피한다는 말에 어떻게 피하는지 잔뜩 기대하셨을 텐데 너무 이야기가 빈약해서 별거 아니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식물들이 그렇게 더위를 피한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식물들도 우리와 같이 더위를 느낀다는 것이 그렇고, 우리처럼 시원한 곳을 찾아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놈들도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발에 밟히는 들풀 하나라도 모두 그렇게 살아 숨쉬며 자신의 생명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저 뙤약볕 아래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모습이 참으로 거룩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채라도 있으면 잠시 쉬라며 시원한 바람을 부쳐주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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