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맹姜希孟이 네 계절의 농사와 농작물에 대한 필요사항을 기술한 농서農書.
[편찬경위]
저자가 52세에 좌찬성에서 물러나 그의 빙부가 남긴 경기도 금양현衿陽縣(지금의 경기도 시흥과 과천지역)에 있는 묘막에 은거하여 손수 농사를 지으며 그곳 노농老農들과의 대화와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지은 것으로, 은퇴한 1475년(성종 6)에서 몰년인 1483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런데 조위曺偉의 서문이 1491년 신해辛亥에 쓰였고, 맏아들 구손龜孫의 발문이 1492년에 쓰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인간印刊은 구손에 의해 저자가 죽은 뒤 1492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농서는 조선 초기의 농사기술에 관한 저서인 ≪농사직설農事直說≫과 쌍벽을 이루는 저서이며, 전자가 관찬官撰인 데 반해 이 책은 저자 개인의 경험과 견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 경기도 일대의 농업 사정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내용]
내용은 농가곡품農家穀品·농담農談·농자대農者對·제풍변諸風辨·종곡의種穀宜·농구農謳 등 6개항으로 나누어져 있다.
〈농가곡품〉에서는 각 작물(쌀·맥류·서속류·두류 등)의 품종(합계 80종)별로 이삭과 열매의 형상·색깔, 환경에 대한 적응성, 수확기, 밥을 지었을 때의 맛까지 일일이 설명하고 있는데, 한자명과 아울러 이두식 표기에는 그 아래 국문명까지 병기되어 있다.
그 중 벼의 품종 이름이 거의 3분의 1이나 되어, 벼농사水稻作가 주식량작물 재배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벼 품종 중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도입된 듯한 것들도 있어, 당시 외국과 기술교류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농부들과의 대담에서 취한 농담에서는 벼 올심기의 이로움과 그 관리법, 논 경운의 횟수와 심천深淺, 그리고 파종의 소밀疏密 등에 관하여 논하고, 아울러 관의 농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제풍변에서는 농가의 피해로 가뭄 다음으로 풍해를 지적하고, 비를 점치는 법의 비합리성을 논하며, 우리나라는 지세로 보아 바다를 지나 불어오는 바람은 따뜻하여 운우雲雨를 만들고, 산을 거쳐 넘어오는 바람은 차가워 작물을 손상하며, 풍해 중에서는 동풍에 의한 것이 많다 하였다.
농구에서는 작물을 적당한 땅에 심을 것을 강조하여, 땅이 다습하고 기름진 데에는 올심기가 좋고, 땅이 마르고 굳은 곳에는 늦심기가 적합하며, 늦심기는 지력地力이 느려 작물의 생육이 완만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농구는 14수의 한시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호미를 차고 늘 부지런하자, 김매기를 자주 하자, 상인들의 부는 농사짓는 이들로부터 온다, 샛밥의 즐거움, 추수의 기쁨 등 농사의 괴로움과 보람을 시로 읊은 것이다.
[의의]
원간본은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는데, 현재 후쇄본이나 유일본으로 일본 동경의 내각문고內閣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중간본은 1581년(선조 14) ≪농사직설≫에 합철된 것과 1655년(효종 6) 신속이 편찬한 ≪농가집성≫에 수록된 것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1581년의 중간본은 1981년에 영인되어 ≪농서農書≫ 1에 수록되어 아세아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