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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친환경 유기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토종 작물과 전통 농사법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귀농인들을 중심으로 토종 작물을 복원하고 종자 주권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송태엽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전라남도 곡성의 한 산골 마을.

경기도 시흥에서 저소득층 자활 사업으로 유기농 농사를 짓던 연두농장 식구들이 단체로 귀농한 곳입니다.

도시에서 땅이 부족해 고민하다 주민이 떠난 마을의 집과 농토를 공짜로 빌려 귀농했습니다. 

공동생활 공간 한 동은 새로 지었지만 나머지는 기존 주택을 고치거나, 10㎡ 이하의 원룸형 건물을 지어 사용할 생각입니다.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완전한 자립생활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현지 기후에 강하고 계속해서 씨를 받을 수 있는 토종 종자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인터뷰:변현단, 귀농인.토종작물 육종]
"석유문명 이런 얘기도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이 문제가 큰 거거든요. 그래서 토종종자로 가야되는 이유가 기후변화 때문에 가야되는 거죠. 여기서 이겨낸 종자를 또다시 심으니까 당연히 거기에 대한 저항력이 생기는 거죠."

경기도 안산에서 텃밭 농사를 짓는 김석기 씨는 전통농사법을 공부합니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농업에 관한 자료를 직접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농민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친환경 유기농업도 기계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전통 농법으로부터 배울 점은 여전히 많다는 생각입니다.

[인터뷰:김석기, 도시농부.전통농업연구]
"도시농업이나 귀농자들, 그리고 귀농을 해서 자기가 자기 먹을거리를 위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전통농업의 방식이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통적인 유기순환 농법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YTN 송태엽[taysong@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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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모내기를 마친 논. 모내기를 마친 지 18일 정도 지났다. 

이제 뿌리는 완전히 내리고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무섭게 생장하는 시점.

전통농법을 활용하여 1~2포기씩 28X28cm 정도의 간격으로 심었다.




벌써 가지를 꽤 쳤다. 1~2포기를 심었는데 그 2배로 벌어진 듯하다. 

김매기를 위해 넣은 우렁이가 벼 줄기에 알을 깠다. 




아랫쪽 논에는 개구리밥이 잔뜩 끼었다. 




이곳은 더 반듯반듯하네. 




저 아랫쪽에 보이는 논은 기계로 모를 낸 논이다. 

논이 훨씬 더 꽉 찬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관행농에서는 보통 15X25cm 간격으로 1그루에 7~10포기의 모를 심는다.

좀 많이 빽빽하게 심는다고나 할까. 간격을 앞에 얘기한 것보다 더 좁게 잡는 곳도 허다하다. 

단위면적당 모의 수를 최대한으로 늘리려는 것인데, 너무 빽빽하여 서로 햇빛 경쟁만 심하게 할 뿐 튼실하게 자라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아래의 논은 곧뿌림을 실험하는 논이다. 

옛날에는 빗물에 의지하는 논이 많았는데, 비가 오지 않을 경우 그냥 마른논에다 볍씨를 직접 심기도 했다. 

그걸 다시 한 번 재현해 보는 것이다. 어떠한 장단점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확실히 벼의 자람새는 모를 낸 곳보다는 덜하다. 군데군데 풀도 꽤 많이 났다. 조만간 한 번 김매기를 해야 할 듯...




ㄴ자 관을 물꼬에 설치하여 적정 물높이 이상으로 올라가면 저절로 물이 빠지도록 했다.

이 관에도 우렁이들이 알을 깠다. 




더욱 반갑고 흥미로운 건 이 논에 제비와 백로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제비는 이제 도시 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서식 환경이 바뀌고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자연스레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건 농촌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농촌의 주거환경이 많이 바뀌었고, 또 논에는 농약을 치면서 먹잇감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농촌에도 제비가 찾아오지 않는 곳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곳에 제비가 찾아온 것이다! 이곳은 경기도 군포시 속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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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전통농업 - 카헤테

 

 

 

2000년 전의 고대 농법

 

지난 글에서 멕시코의 농민들은 빗물로 옥수수, 콩, 호박을 기르는 밀파 농법을 시도해 왔다고 기술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농법을 성공시킨 데에는 극복해야 할 조건이 몇 가지 있었다. 그 하나가 토양침식이다. 멕시코시티에서 동쪽으로 200㎞ 떨어진 곳에 있는 틀라츠칼라주Tlaxcala州의 평균 고도는 2230m. 이곳의 대부분은 깊은 골짜기인 황량한 대지이다. 5~9월의 우기에 약 400㎜의 비가 오는데 겨울에는 30㎜밖에 내리지 않는다. 게다가 복잡한 지형 때문에 집중호우도 자주 발생한다. 가파른 비탈에서 작물을 재배하면 토양침식이 일어나 버린다. 하지만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멕시코의 선주민은 카헤테Cajete라고 하는 혁식적인 농법을 써 왔다.

 

 틀라츠칼라 지역 지도.

 

이 농법은 계단밭, 운하, 그리고 카헤테라고 부르는 흙구덩이로 구성된다. 호우가 내려도 물의 속도는 계단밭에 의해서 우선 약해진다. 그리고 완만하게 경사진 계단밭을 흘러 내려오던 물이 카헤테에 고인다. 비가 다 내리면 카헤테에 고였던 물이 천천히 주변 토양으로 스며든다. 이리하여 수자원의 보전과 함께 효율적인 관개가 가능해진다. 카헤테에는 밭에서 쓸려 내려온 흙과 밭에 심었던 식물에서 나온 영양도 모인다. 양분으로 기름진 흙은 다시 모아서 밭으로 돌려준다. 아래쪽에서 흙이 쓸려가는 것을 막는다. 카헤테에는 흐르는 물이 실어온 유기물도 쌓인다. 카헤테는 두엄을 만드는 구멍으로도 기능하여, 정기적으로 잘 만들어진 두엄으로 양분도 밭에 돌려주었다.

 

흙구덩이 카헤테. 

 

 

계단밭에서는 사이짓기·돌려짓기, 그리고 땅을 묵혀서 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농법이 행해졌다. 묵히는 땅은 땅심 회복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밭의 경계에는 약용 식물, 과수, 연료나 사료용 나무가 자라 계단밭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방풍림으로 기능했다. 틀라츠칼라 지역에서는 정부의 근대화 프로젝트로 트렉터가 도입되어 곧바로 토양침식이 증가하고, 카헤테나 복잡한 수로망도 묻혀 버렸다. 한편 고고학 자료를 통해 카헤테는 기원전 1000년 전부터 쓰던 방식임을 밝혔다. 이로부터도 선주민이 완성한 전통농법이 물과 토양을 관리하는 데에 참으로 교묘하고 지속가능한 것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카헤테를 포함해 전통농법을 특징짓는 기본 원칙은 화석연료와 화학비료 등 외부에서 투입되는 자원에 의존하는 않는 것, 생물다양성, 유기물과 양분의 순환, 그리고 인력을 활용하여 내부 자원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 있다. 어느 유역 안에서 농업을 행하는 농민 모두는 비가 밭에서 수로로 흘러 들어가도록 수로와 카헤테를 유지하고, 고인 토사를 계단밭의 흙과 바꾸는 일에 참가하도록 요구되었다. 그런데 카헤테는 사회경제학적인 요인에 의해서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농민의 아이들 대부분이 많은 돈을 버는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로 나가 카헤테를 유지할 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카헤테에서 가장 중대한 것은 공학도 농법도 아닌 바로 그 체계를 유지할 사회제도였던 것이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International Ag-Sieve, Elevating Agriculture to Old Heights, Rodale Institute, Ancient Farming, Volume V, Number 3, 1993.

 (2) Cajete Terracing Systems in Tlaxcala, Me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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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헬Sahel의 전통농업 - 자이Zai

 

 

 

절망의 사헬

 

사헬이란 사하라사막과 아프리카 중부의 열대림 사이에 낀 반半건조지대인데, 1970년대부터 기근과 빈곤, 환경 파괴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1975년의 가뭄과 더 심각했던 1985년의 가뭄으로 대서양 연안의 모리타니Mautitania부터 내륙의 차드까지 기아에 허덕이며 1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하지만 실제 사망자는 더 많았을 것이다. 대다수의 농민이 비가 오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고, 특히 이런 현상은 사헬의 중심에 있는 부르키나파소의 중앙 지역인 야텡가주Yatenga州에서 두드러졌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고, 떠날 수조차 없는 사람만 남았습니다. 만약 이곳을 빠져나갈 수단만 있다면 누구라도 떠났을 겁니다.”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개발전문가 마티유 웨드라오고Mathieu Ouédraogo는 말한다. 해수면 온도의 변화와 대기오염으로 구름 형성이 억제되고, 지구온난화 등으로 사헬이 황폐해진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다. 그러나 어떠한 원인이든 결과는 명백했다. 강렬한 햇빛과 무더위와 사납게 부는 바람 때문에 땅거죽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고, 식물의 뿌리조차 뻗지 못하며 빗물도 스며들지 않는 불모의 땅이 되어 버렸다.

 

 

사헬 지역.

 

 

1950년대까지 사하라는 인구밀도도 낮고 대부분 유목민이어서 토지의 부담도 적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인구가 늘어나 정주와 집약농업이 시작된다. 예를 들면 부르키나파소 야텡가주의 인구는 1930년 25만에서 1975년 53만으로 늘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하던 대로 땅심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농사땅을 묵힐 만한 여유가 사라졌다.

 

1970년대에는 야텡가의 중앙 고지대에 있는 농사땅의 80%에서 수수와 조를 이어짓기했다. 면적으로 보면 마을의 70~85%가 농사땅이 되었고, 그 가운데 약 40%가 무리하게 경작하는 한계지였다.

 

다행스럽게 그때까지는 여느 해와 달리 강우량이 많은 해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기에 이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는데, 가뭄이 들자 단번에 표면화되었다. 땅심의 저하, 토양침식, 농업 생산성의 저하. 중앙 고지대의 평원에서도 인구가 많은 북부는 심각한 환경 위기에 직면했다. 되풀이되는 가뭄으로 고지대와 비탈땅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고, 비탈면의 아래쪽과 골짜기에 자리한 펀펀한 농사땅에 농사가 집중되어 나갔다. 그것이 더욱 부담을 더해 불모의 토지가 확 번져 나갔다. 여성들은 땔감을 모으려고 더욱더 멀리 걸어다녀야 했고, 땔감만이 아니라 농사땅을 넓히려고도 식생을 파괴했다. 식생율의 감소는 북부에서는 엄청난 비율에 달하여 토양은 바람과 물에 침식된 채로 남고, 1980년 이 지역은 부르키나파소에서도 가장 조건이 나빠진 지역이라 불리게 되었다.

 

중앙 고지대의 지하수 높이도 1980넌대 전반 약 50~100㎝/년으로 낮아졌다. 우기가 끝나면 대개의 우물이 말라 버렸다. 예를 들면 밤주Bam州의 리시암Rissiam과 존도마주Zondoma州의 라나와Ranawa 마을에서도 모든 우물이 말라붙어, 물을 긷는 일이 일상인 여성들은 물이 나오는 우물과 호수가 있는 곳까지 5~6㎞나 걸어가야 했다.

 

 

사막 녹화의 세계 모델

 

아카시 등의 중요한 종도 자취를 감추고, 난개발과 자연 갱신이 잘 되지 않아 바오밥나무도 노령화되어 갔다. 1980년 중반에 부르키나파소의 중앙 고지대에서 일하던 임업과 천연자원 관리의 전문가들은 절망적인 미래를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 부르키나파소의 야텡가 지역의 마을에서는 왜인지 농사땅에 나무가 급증하고 있다. 1980년부터 나무가 늘어나, 부르키나파소 전체에서 심각하게 나빠지고 있던 땅의 약 10만㏊가 과거 10년 동안 수복되었다. 30년 이상 사헬에서 일한 지리학자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의 크리스 레이Chris Reij 씨는 말한다.

 

“농민들이 자력으로 드넓은 지역에서 사막화를 막은 사헬의 녹화는 아프리카에서도 최대급에 속하는 생태적인 업적입니다. 그것은 여타 세계의 모델입니다.”

 

그 성과에 국외에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부르키나파소에서는 농민협동행동 당국(Ministry for Peasant Co-operative Action)을 통하여 정부에서 유기농업 정책을 지원하고, 수많은 NGO와 여성 조직 및 농민조직도 환경과 식량 안전 보장이란 이유로 유기농업의 추진에 관계하고 있다. 2002년에는 유기식품 가공기술 훈련을 위한 센터가 ‘IFOAM 유기농업 2002 프로그램’의 원조를 통해 설치되었다. IFOAM의 국제과학회의는 2년에 한 번 개최되는데, 아프리카에서는 부르키나파소가 최초의 개최국이 되어 ‘개발도상국의 유기농업은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식량 안전 보장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다’라고 기술한 와가두구Ouagadougou 선언도 발표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막에서 식량을 자급하다 - 농민개혁가 사와도고의 등장

 

새롭게 농사땅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이 한정되었기에 나빠진 땅을 수복하는 것이 생산을 늘리려는 농민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부르키나파소에서는 웨드라오고가 옥스팜의 프로젝트를 통해 현지 농민들을 모아, 1981년 흙을 회복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거기에는 웨드라오고가 알고 있던 전통농법도 있었다. 프랑스어로 ‘코르돈 피에르cordons pierreux’, 곧 ‘돌의 줄’을 뜻하는 농법이다. 방법은 참으로 간단하여 주먹 정도 크기의 짱돌을 줄지어 늘어세울 뿐이다. 그럼 땅위를 흐르던 빗물이 이 돌에 고인다. 그리고 그렇게 고인 진창에 섞여 있던 식물의 씨앗이 싹튼다. 이러한 돌의 줄은 서서히 푸른 식물의 줄로 바뀌고, 또 빗물의 흐름도 늦추며 싹이 트는 씨앗도 늘린다. 가장 처음에 자라던 풀은 뒤이어 떨기나무나 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낙엽이 토양을 기름지게 하며, 몇 년이 지나면 단지 돌의 줄이 대지를 되살린다.

 

코르돈 피에르를 만드는 농민(위)과 그 결과(아래). 아래의 사진은 자이 농법이 적용된 결과이기도 하다.

 

 

 

웨드라오고와 함께 활동하며 자이 농법의 개혁과 보급에 크나큰 역할을 완수한 농민으로 야쿠바 사와도고Yacouba Savadogo라는 인물이 있다. 사와도고는 부르키나파소 야텡가주 구르마Gourma 마을의 농민으로 세 아내와 31명의 아이를 두었는데, 창의적인 연구에 관심이 많고 자립심도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옥스팜의 프로그램을 통해 말리에 견학을 가서 이 기술을 쓰고 있는 것을 본 뒤, 1979년 자신의 나빠진 땅에서 수수와 조를 생산하려고 자기 나름의 생각도 더하여 실험을 시작했다.

 

 

측량하고 있는 사와도고 씨. 

 

사와도고가 실험을 시작한 계기는 가뭄으로 맞은 식량 위기였다. 가뭄으로 곤궁해진 사람들은 부르키나파소의 다른 지역과 다른 나라로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와도고는 자신의 농장에 머물기를 바랐다.

 

“선조 때부터 쭉 여기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땅이 나빠지는 것을 보며 무슨 수를 써야 한다고 자각한 사와도고 씨는 코르돈 피에르라는 기술을 쓰는 것과 함께, 건기에 몇 천 개의 구멍을 팠다. 자이Zai 또는 타싸Tassa라고 부르는 이 기술은 ‘지펠레zipélé’라고 불리며, 빗물이 스며들지 않을 만큼 딱딱해진 땅을 회복시키려고 부르키나파소에서 써 오던 전통농법이다. 사와도고는 자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름대로 표현하자면, 자이는 빨리 출발한다는 뜻합니다. 사헬에서는 우기가 매우 짧기 때문이지요. 만약 수확량을 올리고 싶다면 빨리 시작해야 하고, 그것이 자이를 뜻합니다. 자이는 먼저 괭이로 땅에 구멍을 팝니다. 구멍은 대부분 지름 약 30㎝, 깊이 약 15㎝인데, 땅에 따라서 크게 파기도 하고 작게 파기도 합니다. 구멍을 파면, 작물의 양분으로 유기비료를 넣습니다. 외양간두엄은 흰개미를 끌어오고, 흰개미가 파는 굴이 단단했던 땅이 더욱 부드러워지도록 도와줍니다. 우기가 되면 이 구멍에 물을 모을 수 있습니다. 보통 비는 하루에 20~30분 동안 내리고, 다음번에 내리기까지 꽤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자이라는 기술로 다음에 비가 내릴 때까지 물을 모아 놓습니다. 곧 이것은 물을 보전하는 기술입니다.”

 

그 기술은 참으로 간단하다. 먼저 건기에 20~30㎝ 너비와 깊이의 구멍을 판다. 그리고 구멍의 경사면에는 데미룬demi-lune이라는 흙막이를 흙으로 만들고, 비가 내리면 거기에 수수와 조를 심는다. 사아도고는 자이를 부모에게 배웠다. 자이는 땅을 수복하려고 소규모로 이용되어 왔는데, 예전보다 개선된 점은 거기에 외양간두엄을 준다는 것이다.

 

구멍에 거름을 넣으면 그것이 흰개미를 끌어오고, 흰개미는 유기물을 소화하여 식물이 더 이용하기 쉬운 양분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흰개미가 흙에 집을 지어 놓아서 비가 내리면 물은 흰개미의 집을 따라 땅속으로 스며든다. 이 구멍은 건기에 파는데, 예전에는 나빠져서 아무것도 기를 수 없던 농사땅에서 수확량을 얻고, 사와도고는 가족의 식량 자급에 성공했다. 사와도고는 자이 농법을 쓰기 이전에는 자급을 할 수 없어 시간제노동으로 돈을 벌려고 나가서 모든 수입을 모자란 곡물을 사는 데 충당했다.

 

“예전엔 아주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이 덕분에 유복해져 우리 가족을 먹이고 있습니다.”

 

사와도고는 부르키나파소부터 말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조를 수확할 수 있는 유일한 농민이 되었다.

 

 

자이로 되살린 숲

 

부르키나파소에서는 전국의 마을에 나무심기 프로그램(National Village Forestry Programme)과 ‘2000곳의 마을에 8000군데의 숲을(2000 Villages, 8000 Forests)’이라고 명명한 캠페인 등의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30년 동안 몇 백만 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하지만 묘목의 생존율은 낮았다. 나무를 심은 뒤 돌보는 일에 서투르고, 관리되지 않는 가축의 방목, 땔감으로 나무 베기 등 실패한 까닭은 허다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결정적인 것은 프로젝트가 농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와도고의 나빠진 땅에도 겨우 4그루의 나무만 심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와도고는 자이의 구멍에서 나무가 자연히 자라기 시작한 것에 놀랐다. 나무의 씨앗은 물에 쓸려 들어오거나, 자이의 구멍에 넣은 외양간두엄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사와도고는 이 나무를 소중히 보호했다. 곧 자이의 구멍을 통해 ‘숲을 기르는 기술’을 발견한 것이다. 사와도고는 과일과 사료로 쓰이는 재래종 넛트(sheanut=Butyrospermum paradoxum var.parkii), 노란자두(yellow plum=Sclerocarya birrea), 란네아 미크로카파Lannea microcarpa, 다양한 아카시와 그밖에 감바풀(Gamba grass=Andropogon gayanus), 펜니세텀 페디셀라텀Pennisetum pedicellatum 등의 사료용 풀씨를 모아, 그것을 다음 우기에 구멍에 넣었다.

 

재래종 너트

 

노란자두.

 

감바풀. 

 

란네아 미크로카파

 

 펜니세텀 페디셀라텀

 

 

이리하여 몇 년 지나지 않아 불모의 땅은 다양한 수종으로 이루어진 12㏊의 숲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이 수목과 떨기나무가 곡물과 경쟁하기 시작하여 사와도고는 어려운 선택을 직면했다. 나무인가, 작물인가? 사와도고는 나무를 기르는 쪽을 선택하고, 자이의 구멍에 자연히 자란 나무를 보호했다.

 

“나무가 없으면 흙도 사라진다.”

 

자이는 단단하지 않고 물기도 있어 나무는 잘 자랐다. 해마다 사와도고는 자신이 바라는 수종의 씨앗을 구멍에 넣고, 토양침식을 막으려고 농지에 만든 돌의 줄을 따라서 흩뿌렸다.

 

한편 1994년 1월에 서아프리카 프랑(CFA)의 통화가 인하되어 농민 대부분은 약을 살 여유가 사라졌다. 그것이 약용 식물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사와도고는 1970년대 전반과 1980년대 중반의 가뭄으로 사라져 버린 수종에 중점을 두고 야텡가주 이외의 지역으로 여행할 때 지역에서 사라진 약용 식물을 모으는 일과 함께, 야텡가주에는 없는 새로운 종도 도입했다. 이리하여 말라리아, 위장병, 황달 등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수종을 농지에서 보호하며 재배하도록 했다. 그곳에는 님(Azadirachta indica), 포도나무(Lannia microcarpa), 노란자두, 유칼립투스, 사바나 마호가니, 모링가 올리에페라Moringa oleifera, Guiera senegalensis 등이 있다. 불모지는 다양하고 도움이 되는 수종으로 착실히 숲으로 바뀌어 나갔다. 이리하여 사와도고는 20㏊의 황무지를 이 근처에서 가장 넓고 풍요로운 숲으로 바꾸었다.

 

기네아 세니갈렌시스

 

 

자이 농법을 퍼뜨리다

 

이전에는 무엇도 생산할 수 없었던 땅에서 수수와 조를 수확했다. 가까운 농민들도 당연히 이에 주목하게 되었고, 다른 마을의 농민들도 사와도고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사와도고는 ‘자이 보급협회(Association pour la Promotion des Zaï)’를 결성하고, 1년에 한 번 그의 농장에서 기술 강습회를 열었다. 해마다 약 100곳의 마을에서 대표들이 경험을 나누고 만나고자 골가 마을에 모였다. 농민의 대표만이 아니라, 프로젝트와 연구 기관에서도 약용 식물(잎, 껍질, 뿌리)에 대한 사와도고의 경험을 배우려고 찾아왔다. 약용 식물 분야의 지식을 보완하고자 사와도고는 유명한 전통 치료사와도 만났다. 대부분은 농민인데, 거기에는 비즈니스 관계자나 공무원도 있었다. 사와도고는 그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대금 지불을 요구하지 않는다. 활동을 통한 사회적 평가에 더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사와도고는 이렇게 떠올린다.

 

“가뭄으로 마을의 삶은 매우 힘겨워졌습니다. 땅과 나무 등 모든 것이 마르고, 가축도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너무나 어려워서 대부분의 사람이 마을을 떠났는데, 저는 이 땅에 남아 해결책을 찾아내자고 결단했습니다. 몇 년이나 떨기나무 밑에서 살아남고자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물을 위한, 살아남기 위한 나무를 기르는 기술을 찾아내게 만들었습니다. 몇 년이나 떨기나무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저를 사람들은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확실히 저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해결책을 모색해 나아갔습니다. 만약 제가 해결책을 찾아낸다면 사람들이 제가 왜 이 땅에 남았는지를 알 것입니다. 지금 저의 기술이 기능하는 것을 보고 제가 해마다 수확한 곡물을 볼 때, 마을을 나간 사람들은 되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저의 마을만 보자면, 저의 기술을 배우려고 돌아온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몇 백 명의 농민들이 자이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간단하고 값싸며 새로운 기술은 멀리까지 널리 알려졌다. 더 많은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 짓는 만큼 땅은 더 풍요로워졌다. 옥스팜이 자금 원조하고 있는 혼농임업 프로젝트도 이 개량된 자이 농법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 마을로 견학을 가도록 추천하는 것으로 이 기술의 보급을 시작했다. 다른 NGO와 정부 기관도 자이의 가능성을 깨달았다. 몇 년 동안 자이는 야텡가주에 널리 퍼지고, 또 중앙 고지대의 다른 지역에도 퍼져 나아갔다.

 

 

자이의 다면적인 성과

 

자이로 숲이 생긴 일은 새로운 문제의 해결로도 이어졌다. 그 이전에 여성들은 집에서 쓸 땔감을 모으러 10~12㎞나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 어떤 농민의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절약하게 되어 현재 수입을 만드는 활동에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의 농사땅에 나무가 있는 것은 풍요로움입니다.”

 

약용 목적으로 다용도의 수목을 생산하여 추가 소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몇몇 농민은 지붕, 오두막 등의 건축용 자재로 수목을 판매하고 있다. 수입은 목재의 양과 시장 수급에 따라 다르지만 20,000~40,000(30~60달러) 서아프리카 프랑(CFA)이다. 자이는 비의 변동에 따른 위험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수확량을 확실하게 한다. 사와도고도 자급만이 아니라 돈을 벌고자 곡류와 갓끈동부를 판매하고 있는데, 자이는 수수와 조 같은 곡류와 함께 돈벌이작물인 갓끈동부 등도 생산할 수 있게 한다.

 

자이 농법은 축산물도 개선해 나아간다. 가축의 먹이도 되고 다용도로 쓰이는 식물 부산물을 생산하는 일이 5~10년 정도의 짧은 시간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농민은 자이를 도입하기 이전은 가축 몇 마리밖에 기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자이를 받아들인 중앙 고지대 평원 북부의 많은 농민은 가축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이 농법은 가축 사육의 개선과 연동한다. 농민은 팔려고 만이 아니라 외양간두엄을 생산하려고도 양을 기른다. 똥은 직접 자이에 쓰이든지, 외양간두엄의 원료가 된다. 높은 수확량을 올리는 것은 자이에 외양간두엄을 넣었을 때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를 돌보는 일은 후라니족의 목동(Fulani herders)들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갈수기에도 소를 기르고 있다. 덕분에 외양간두엄의 이익을 얻고 있다. 야텡가의 농민들은 가축의 먹이가 되는 특정 수목(노란자두, 아카시, Piliostigma reticulatum), 곡물의 잎과 줄기와 꼬투리 및 과일도 모으고 있다. 이러한 것들의 씨앗은 가축의 소화기를 빠져나오면서 부드러워지고, 최후에는 외양간두엄이 된다. 씨앗은 곡물과 동시에 싹이 터서 자라고, 농민들은 그것을 보호한다. 자이는 유축복합경영에도 공헌한다.

 

자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30~35% 정도 수확이 늘었다고 평가하는 보고서도 있고, 코르돈 피에르를 적용하면 건조한 해에는 평균 150~300㎏/㏊에서 440㎏/㏊까지, 비가 충분한 해에는 700~1000㎏/㏊까지 수확량이 늘어난다는 보고서도 있다. 크리스 레이는 자이 농법을 받아들이면 평균 644㎏, 곧 반년 이상이나 식량이 부족하던 상태에서 153㎏의 잉여 작물을 생산하게 된다고 평가한다. 또 자이 농법은 집약적이다. 이 때문에 부르키나파소에서는 현지에서 일하는 새로운 고용 기회도 창출하고, 몇몇 젊은이는 일을 구하러 도시로 이주하기보다 지역에 남는다. 그리고 자이 농법은 지금 이웃의 여러 나라에까지 퍼지고 있다. 사와도고는 말한다.

 

“이전에 저는 우리 마을에도 국내에도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탈리아에 가서 CILSS(Comité permanent Inter-Etats de Lutte contre la Sécheresse dans le Sahelas)로부터 사헬의 최고 농민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기술의 교사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기술을 토마스 산카라Thomas Sankara와 블레이즈 콤파오레Blaise Compaore에게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산카라는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라고 불리는데, 젊은 나이에 암살된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이다. 산카라는 자이 농법이 지닌 뜻을 철저히 꿰뚫어 보았다.

 

 

토마스 산카라.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Best Practices on Indigenous Knowledge, Pits for trees:how farmers in semi-arid Burkina Faso increase and diversify plant biomass, MOST Phase I website,2001.

 (2) Nicholas Parrott &Terry Marsden, The Real Green Revolution, Organic and agroecological farming in the South, Greenpeace Environmental Trust February 2002,P39.

 (3) Daniel Kaboré and Chris Reij, The Emergence and Spreading of an Improved Traditional Soil and Water Conservation Practice in Burkina Faso, International Food Policy Research Institute, Feb2004.

 (4) Charles C. Mann,Our Good Earth, The future rests on the soil beneath our feet, National Geographic magazine,Sep2008.

  (5) Burkina Faso: New Farming Technique Brings Trees Back to the Sahel,allAfrica.com, 31 Octobe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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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마지막에 옮겨심은 고추. 

 

 

다음은 가장 먼저 옮겨심은 고추.

 

 

 

마지막으로 직파한 그 상태로 자라는 고추.

 

큰 비바람이 불었던 날이 며칠 이어졌다. 그리고 밭에 가보니 고추의 차이가 눈에 보인다.

곡우 무렵 줄뿌림으로 직파한 고추를, 2번 솎으면서 아까워서 빈 밭에 옮겨심었다.

그 결과 직파한 상태 그대로 자라는 고추는 전혀 비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첫 번째로 옮겨심은 고추는 살짝 기울어지고, 가장 늦게 가장 큰 상태에서 옮겨심은 것은 기우뚱하다.

역시나 직파의 힘은 대단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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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7일 소농학교.

풀 이야기를 나누던 날.

 

 

풀 이야기 강사 김희수 선생님. 

 

모두 경청하고 있습니다. 

 

 

 

차풀의 꽃과 꼬투리. 자신이 콩과인 걸 티내고 있죠. 

 

 

닭의장풀, 달개비풀 ... 이름이 참 다양하지만, 아무튼 닭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즘 골치라는 미국 새삼. 신기한 생존방식을 가진 식물입니다. 

 

 

작두콩 꽃.

 

 

중국에서 날아왔다는 꽃매미. 언젠가 천적이 생기겠죠? 

 

 

무슨 나비 애벌레. 그러고 보니 4년 전인가 청산도에 갔을 때 그곳에서도 본 기억이 납니다. 

 

 

논에서 풀을 잡는 일꾼 우렁이의 알. 

 

 

건답직파한 논. 확실히 모내기에 비해서는 ...

왜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그렇게 모내기를 금지해도 농민들은 기를 쓰고 했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잠자리 번데기.

 

 

열심히 김을 맸습니다. 이맘때 마지막으로 논에서 김을 매는 걸 '만물'이라 하고, '만물'을 끝내는 걸 '만물낸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면 백중 때 호미씻이를 하지요. 

 

 

논일을 마치고 나니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내리더군요. 

 

 

옥수수를 타고 올라가길 바라며 심은 동부와 오이가 예상대로 옥수수를 지주로 삼아 올라갔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잘 자란 산도. 풀도 얼마 나지 않네요. ㅋ 

 

 

청산도 검은 수수입니다. 봄에 밭을 만들며 거름을 좀 잘 줬더니 무지하게 크게 자라네요.

 

 

그날 저녁 전 하늘에서 용 구름을 보았습니다. 로또를 사는 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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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세계 농업 유산인가?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기른 고대의 농법

 

이탈리아 남부의 바닷가에 펼쳐진 계단식 레몬밭, 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 농장, 이란의 고대 지하 관개 수로, 러시아 극동의 전통적인 숲 경영법. 이러한 수많은 전통농법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아말피Amalfi의 바닷가에서는 물을 보전하고 그늘을 만드는 독특한 계단밭을 지닌 고대 농법이 레몬을 생산하고 있다. 사하라사막과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황량한 대지에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 여러 군데이다. 이곳들은 고대의 지하 수로인 카나트qanat가 만든 것이다. 카나트는 중력으로만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지하수에서 물을 모아서 그 증발을 막는 방식으로 물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왔다.

 

“매우 다양한 생물이 사는 오아시스와 채소밭을 만들고자 물을 몇 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산악 지역에서 사막으로 끌어옵니다. 그것은 식량과 영양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사막 안에 생물다양성과 빼어난 풍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두는 문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FAO의 파르비즈 쿠하프칸Parviz Koohafkan 지역개발 과장이다.

 

 

 

인류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

 

앞에 말한 예는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관(FAO)이 ‘세계의 중요 농업 유산(GIAHS=Globally Important Agriculture Heritage Systems)’이라 부르는 것의 하나이다. 세계의 중요 농업 유산이란 FAO가 세계 환경 자금(Global Environment Fund)의 지원을 받아 2002년에 세운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가 목표로 한 곳은 페루, 칠레, 중국, 필리핀, 튀니지·모로코·알제리의 마그레브Maghreb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이 특별히 지정되었다. 그리고 2006년 10월 24~26일에 걸쳐서는 로마의 FAO 본부에서 전통농업과 관련해 3일 동안 국제 포럼을 열어 5곳의 프로젝트 경험을 강론하고, 다음 단계를 향한 프로젝트도 검토했다. 최종적으로는 온 세계의 100~150 지역의 전통농업을 등록하고, 세계 농업 유산을 창설하자고 목표를 정했다. 2007~2014년에 걸쳐서는 그 모든 연구로 특정된 새로운 보호 방법을 현지 지역사회와 함께 실천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트기와 인터넷 등 언제나 기술이 진보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고대 안데스와 페루에서 감자 농사를 짓던 법과 고대 중국의 논에서 행하던 농법, 이란의 방목 농법 및 튀니지·모로코·알제리에 있는 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 농법이 왜 중요할까? 그것은 고대 농법은 단지 환경 파괴를 막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몇 세기 동안이나 사람들을 먹이고 키우며, 지금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전통농법과 사막화 문제의 전문가 피에트로 라우레아노Pietro Laureano 씨는 환경 파괴를 막는 최선의 방법으로 전통농법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세 명 가운데 둘의 생활은 지금도 이러한 기술로 살고 있습니다. 고대의 것이라고 생각해 온 방법이 세계의 많은 인구를 길러 왔고, 국가도 이러한 방식으로 성립했습니다.”

 

그리고 앞에 언급했던 파르비즈 쿠하프칸 과장은 이란 출신으로 테헤란과 프랑스의 몽펠리에에서 공부한 박사인데, FAO에서 24년 동안 일한 전문가로서 농업 유산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이렇게 말했다.

 

“농촌에서 가난한 사람의 75%는 농업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데, 그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농법의 관리인입니다. 전통농업은 지금도 온 세계 200만 명의 식량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인류에게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래에는 온 인류가 틀림없이 이를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쿠하프칸 박사는 소농의 지지자로서, 증가하는 인구를 먹이려면 소농은 사라져야 할 운명이라는 주장에 이렇게 반론한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무수히 도시로 나갔다고 해도, 아직까지 소농의 수는 줄지 않아 약 10억 명이나 됩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소농은 그 나라와 자기 지역의 식량 안전을 보장하려고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위기에 노출된 전통 유산

 

하지만 지금 고대부터 이어진 문화와 기술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예를 들면 농업 전문가 중에는 칠레 남부의 칠로에Chiloe제도諸島가 세계에 감자를 전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는 몇 세기나 어업과 숲을 유지했다. 그런데 그런 지역사회가 지금 사라지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에서도 몇 세기나 오아시스의 주변에서 살아오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다.

 

“모로코에서는 국민의 36%가 최저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높은 인구압과 빈곤이 오아시스의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마그레브의 세계 농업 유산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노레딘 나스르Noureddine Nasr 대표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이 지역을 버리고 이탈리아 같은 유럽의 나라들로 이주하고 있다고 한다.

 

라우레아노 씨도 고대의 물을 모으는 기술을 버리고 근대의 설비로 관정을 파고 대규모 농업을 시작했기에 많은 사하라의 오아시스가 마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관정은 오아시스를 파괴하면서 결국 고갈시켜 버렸다. 공업과 같은 근대의 농업은 많은 물을 필요로 하여 땅속의 지하수를 몽땅 퍼 올렸다. 그러면서 지하수에 소금물이 흘러 들어갔다. 염해를 받은 토양에는 화학비료가 필요해졌고, 그런 화학물질은 토양을 상하게 하여 빗물의 침투력을 더욱 떨어뜨렸다. 일찍이 풍족했던 토지가 사막으로 변했다. 이는 중앙아시아의 아랄해부터 북미까지 온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막화’라는 현상이다.

 

쿠하프칸 박사는 이것이 세계 농업 유산 프로젝트를 세워야 했던 이유라고 말한다.

 

“공업 개발, 오염, 기상이변, 농촌의 빈곤, 대규모 시장에서 소외되는 지역 경제, 도시로 유출되는 인구. 그러한 것들이 직면한 과제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세계화로 인류는 이러한 유산을 잃어버리겠죠. 현지 주민의 대부분은 그들이 바라던 진정한 생존 방법을 잃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을 잃었기 때문에 젊은이들도 학교에 진학하고 더 이상 농업에 종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통농법을 유지하려면 전통농법의 체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지역사회를 격려하고, 특히 그 지역의 정부기관과 사회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주민들은 자신이 가진 많은 보물을 대개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고 이 가치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통적 소농은 효율적

 

쿠하프칸 박사는 고대부터 내려온 전통농업은 환경 파괴의 보루로만 여겨지고, 또 대기업과 근대 농업에 비해 소농은 비효율적이며 비생산적이라는 통설을 부정한다.

 

“몇몇 대기업이 비효율적이듯이 소농이 비효율적인 분야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생산 체계를 한층 폭넓게 보면, 많은 소농이 대농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훨씬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농이 가진 유일한 자원은 천연자원이나 인적 자원이기에, 그것을 유지하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합니다. 자신의 유전자원을 다양화하고, 생산 체계와 수입원도 다각화합니다. 이 모든 것이 탄력성을 강화합니다. 이는 식량 생산에 기여하는 동시에 환경을 보전하고, 자신이 근거로 하는 천연자원을 지속시키며, 그 결과로 생활도 지속할 수 있도록 합니다. 지구온난화 가스의 방출과 토양과 물의 오염 등 집약화에 따른 온갖 외부성을 포함해, 생산 전체에서 사업과 비교한다면 가족농과 전통적인 농민들이 훨씬 잘 기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전통농업은 왜 비효율적이라 여겨졌을까? 박사는 바로 뒤틀린 체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러한 농민들이 정부에게 어떠한 정책의 혜택도 얻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은 도시와 서비스업의 개발에만 중점을 두고, 농업과 농촌은 무시해 왔습니다. 농업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고, 농촌 사회는 배려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선진국에서는 대규모 생산 체계를 유지하고자 1년에 약 3650억 달러의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루에 10억 달러에 해당합니다. 이런 체계 안에서 소농이 어떻게 경쟁할 수 있나요? 이것은 완전히 뒤틀린 체계입니다.”

 

그리고 박사는 FAO 직원 안에 서양을 따라가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상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FAO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서양’과 ‘생산주의(productivist)’의 가치관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관리직의 대부분은 서양의 대학에서 교육을 받아, 안전망과 사회적 가치,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찾아낸 농업 체계를 중시하는 편견이 있습니다. 서양에서 좋다고 판명된 기술을 모방하여 개발도상국에 옮기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서 좋은 것이라면 저기에서도 당연히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의 전환

 

하지만 박사는 변화는 가능하고,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변화가 매우 느리지만 여러 가지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대의 전환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많은 사회 문제 및 환경 문제를 녹색혁명이 만들었다고 국제사회가 인식한 일입니다. 30년에 달한 녹색혁명은 어려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자원을 고갈시키고, 토양과 물도 오염시켰습니다. 녹색혁명의 발상에 입각한 조직과 정책이 아직까지도 우세하다고 하는 조직적인 과제는 있습니다만, 다행히 지금은 이러한 사고방식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신들의 정책이 잘못되어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2008년 세계은행의 세계개발보고는 개발도상국의 성장 동력이 농업이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두 번째는 경제 성장으로 발전한 모든 나라가 그 농업 부문과 소규모 가족농 체계에 투자했다는 증거입니다. 더욱 지속가능한 혹성을 바란다면 우리의 환경을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도 자명합니다. 토지, 물, 유전자원에 투자해야 하고, 우리는 이러한 체계의 관리인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 관리인은 바로 농민입니다. 농민은 매우 많은 품종의 증식, 생산, 유지를 담당하는 관리인입니다. 기업이 아니라 그들이야말로 이걸 계속할 권리가 있습니다.

소농은 직면하고 있는 온갖 곤란에도 상관없이 지역 개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며, 이는 더욱더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역할은 특히 기상이변에 직면하여 한층 중요해졌습니다. 대부분의 정부와 과학자들은 이미 그들의 의견을 소농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쪽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또 소농들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는 것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열심히 참가하게 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주민과 농촌 여성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세계 농촌포럼과 함께 우리는 ‘가족농을 위한 국제년’을 선언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족농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혹시 이것을 3, 4년 전에 이야기했다면 이상적인 일로 여겨졌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현실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인용문헌

(1) Jeffrey Donovan, World: Experts Fight To Save Ancient Agricultural Systems, Radio Free Europe, Oct25, 2006.

 (2) Sabina Zaccaro, Saving Life on the Edges of the World, Inter Press Service, Oct26, 2006.

 (3) Jorge Chavez-Tafur, “The glassis half full” Interview Parviz Koohafkan, Farming Matters, Dec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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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6일, 소나기를 뚫고 밭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주말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에 둘러보려고요.

 

대화초가 몇 번의 폭우를 맞고도 든든히 서 있더군요.  

물론 몇 그루는 쓰러진 놈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습니다.

발로 꾹 밟아 세워줘야 했으나 그냥 통과!

 

대파와 함께 심은 건, 병에는 좋을지 몰라도 서로 거름 경쟁을 합니다.

그건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그래도 전에 한 번 풀을 잡아주어 그다지 풀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수시로 김매기해야 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땀 좀 흘리시겠습니다.

 

 

 

벼룩기장은 벌써 이삭이 팼습니다. 이 맘 때가 가장 예쁜 모습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안완식 박사님은 벼가 가장 이쁠 때가 세 시기가 있다고 하십니다.

싹이 나와 자랄 때, 이삭이 팰 때, 익을 때가 그것이지요.

 

 

 

 

 

 

공동밭의 전경을 찍어 보았습니다.

이게 무슨 밭인지 정신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작물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사진만 보고 어떤 작물들이 자라고 있는지 맞추신다면! 졸업하셔야겠습니다. ^^

 

 

 

한 두둑 건너와서 다시 한 장!

어떤가요? 풀이 엄청 많지요. 이번주는 반드시 김매기를 확실히 해주십시오.

기장과 조 사이사이에는 피도 엄청 자라고 있더군요.

이제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니까 조와 기장을 조심하며 뽑아주세요.

 

 

 

 

참, 우리가 심은 조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무엇이 무엇인지 보시겠습니까.

 

 

 

위의 것이 노란조입니다. 이삭일 때부터 벌써 뚜렷하게 차이가 나네요.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노란조가 가지런히 자라고 있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날 방문의 핵심이었던 상추꽃은 아직도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얼른 씨를 맺어야 할 텐데... 이번 주말에는 그냥 베어서 말려야겠습니다.

 

 

 

 

 

또한 참깨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모두 두 가지 종류를 심었는데 자라고 있는 모습부터가 다릅니다.

 

 

이것이 바로 가지깨입니다. 가지를 닮아 가지깨가 아니고, 가지를 많이 친다고 가지깨입니다.

가지를 치는지 어떤지 모르시겠다면 아래의 40일깨를 한번 보세요.

왜 가지깨인지 단박에 깨달으실 겁니다.

사실 저도 이번에 괴산으로 토종 수집 사전답사를 다니며 안완식 박사님 어깨 너머로 배운 바입니다.

 

 

자, 위의 40일깨는 그냥 줄기가 하나로 쭉 뻗지요. 바로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지난 봄에 심은 해바라기가 소나기가 지나간 뒤의 맑은 하늘과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더군요.

이 어찌 눈에 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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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전통농법 2 - 밀파·솔라




황폐해졌던 멕시코


멕시코의 믹스테카Mixteca 지역은 강우량이 부족하고 토양침식도 심각한 산악 지대이다. 1980년대 그곳에서 멕시코의 캠퍼시노들은 수확을 늘리고자 화학 집약 농법을 도입하여 화학비료와 농약을 주며 옥수수를 재배해 높은 수확량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결과, 수확이 확 떨어지고 토양도 피폐해졌다. 게다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실시되어 옥수수 값이 떨어져, 가난한 캠퍼시노는 화학 자재를 조달할 수 없게 되었다.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기계, 종자. 비료, 농약에 투자할 돈도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토지는 농약과 화학비료, 토양침식 또는 사막화로 쓸모없어졌다.


국제연합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멕시코 문화의 선조가 거주하던 오악사카Oaxaca주州는 세계에서도 토양침식율이 가장 높아 토지의 83%가 농사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낮은 생산성과 나빠진 토양 때문에 수천 명이나 멕시코와 미국의 대도시로 좋은 생활을 구하여 그 토지를 버리고 갔다.


“캠퍼시노가 다른 일을 구하여 땅을 버리고 가는 일은 큰 변화입니다. 농촌에는 이미 늙은이밖에 없고, 세대를 이어서 선주민의 지역사회에 계승되어 오던 지식의 후계자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멕시코 농촌 전체의 전통과 지식을 잃어버리는 상황은 정말로 걱정입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오악사카 티란통고Tilantongo에서 캠퍼시노의 우두머리인, 자연보호 활동가 헤수수 레온 산토스Jesús León Santos 씨이다. 그리고 그는 근대농업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소농과 협동하는 고대의 전통농법으로 지속가능한 농업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황폐한 토지를 비옥한 토지로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과테말라에서 도입된 유기농법


헤수수 씨는 당시를 떠올린다.


“멕시코 농촌의 지역사회 대부분은 땔감, 목재, 물 등의 자원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자란 곳도 그렇고, 저도 가족과 지역사회가 직면한 온갖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런 자원 부족에 더하여 농촌 주민의 생활을 괴롭힌 것은 토양침식으로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메마른 땅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낮은 수확과 가난한 경제에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1950년대부터 근대농업에 거스르는 움직임이 도입되었습니다.”


1980년대 사회·정치가 어지럽던 과테말라에서 오악사카주로 과테말라의 농민들이 난민이 되어 도망을 왔다. 그들은 10년 전부터 유기농법과 현지의 지식에 뿌리를 둔 농업 생산 체계를 개발한 상태였다.


“토양을 보전하며 수확량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던 농민들이 국내의 위기 때문에 과테말라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1983년 멕시코에 있는 조직이 그들을 초대하여 그 무리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문제를 지적해 주었지요. 심각한 토양침식을 줄이고자 도랑을 파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들은 과테말라에서 개발된 농법으로 사람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그 훈련을 받은 한 사람입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이해하고 처음으로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농민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4년 부모님의 토지에서 이 방법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우리는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농업에 흥미를 가진 농민들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믹스테카 농민 종합개발센터(CEDICAM= Centro de Desarrollo Integral Campesino de la Mixteca)를 세웠습니다.”



농민을 구한 고대 농법


종합개발센터의 목적은 토양침식이 된 상태를 회복하여 풍부하고 생산적인 토양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는데, 헤수수 씨는 그 일을 도운 것이 바로 고대의 기술인 밀파였다고 한다. 헤수수 씨와 센터는 ‘밀파 체계(milpa system)’라고 불리는 종합적 농업 체계의 개발을 중시했다.


“우리를 구한 하나는 옥수수, 콩, 호박, 허브 등의 다양한 작물을 섞어짓기하는 ‘밀파’였습니다. 모든 작물이 같은 밭에서 자랍니다. 이는 우리의 선조가 쓰던 고대의 체계로,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이 당시 가장 고도의 농업을 육성하던 체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멕시코와 중미의 많은 토착 지역사회에서 계속 쓰이고 있습니다. 양분을 다 써 버리는 일도 없고, 병해충 문제도 발생하지 않아 몇 년이나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그 방법이 거의 잊혀져, 밭에 단 하나의 작물밖에 없는 단작 체계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선주민과 캠퍼시노의 지식이 근대 기술로 대체되어 화학비료와 외부의 지식에 크게 의존하도록 만들었고, 그것이 농촌 지역사회를 더욱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헤수수 씨는 전통농법의 수확량이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멕시코 북부의 시나로아Sinaloa의 단작을 하는 밭에서는 기계와 화학 자재에 많은 돈을 투자하여 8t/㏊의 옥수수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밀파는 이것만큼 생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캠퍼시노의 가족과 그 가축에게 1.8t/㏊의 옥수수를 줍니다. 별로 투자하지도 않는데 풋거름과 토종만을 써서, 콩, 호박과 그 토지에 심은 것 무엇이든 얻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판매할 수 있는 여분도 있을 것입니다.

토종은 몇 세대나 식량을 제공하며 현지의 기후에 적응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재배하는 데 반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잘 알지 못하는 유전자조작 종자를 대체하고 싶습니다. 이는 농민만이 아니라 소비자도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이러한 토종을 생산하고 사용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좋은 맛을 주는 것 말고도 문화, 전통, 고대의 선주민과 캠퍼시노의 지식을 살려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수로 농법을 부활시키다


멕시코에서는 내린 빗물의 약 80%가 지하로 스며들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 버린다.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헤수수 씨가 쓴 방법도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이전부터 관개용으로 쓰던 고대의 기술이었다.


60×60㎝의 비탈 수로는 잠재적으로 360ℓ/m의 물을 잡을 수 있다. 실제로 5㎞에서는 80만 ℓ의 집중 호우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증명되었다. 도랑은 빗물의 80%를 잡고 수로의 물은 토양에 스며들어, 그 결과 지하수가 다시 풍부해졌다. 이 지식도 이미 사라졌던 것인데, 지금은 현지 기관과 환경자연자원청(SEMARNAT= Secretaría del Medio Ambiente y Recursos Naturales) 등의 정부 기관에 널리 받아들여져 추진되고 있다. 헤수수 씨와 종합개발센터는 지역에서 몇 백 개의 비탈 수로를 만들려고 지금 현지의 캠퍼시노들과 협동하고 있다.


“멕시코의 선주민에게는 지속가능한 체계를 개발하는 지식과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함께 조직적으로 일하는 단체를 꾸린 테퀴오Tequio라고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지역사회는 공익을 위하여 일했습니다. 이 방식으로 그들은 몇 천 그루의 나무를 심고, 몇 백 킬로미터의 관개용 수로를 건설하며, 환경을 개선해 왔습니다. 근대농법을 실시한 대다수는 선주민의 방식이 케케묵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실천은 자원을 조금만 쓰고 오염도 시키지 않는 농업을 행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다


하지만 헤수수 씨가 이 전통농법을 쓰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학 자재에 바탕한 체계에서 자연의 체계로 전환하는 일은 복잡합니다. 우리는 비료를 쓰던 것을 단번에 멈출 수는 없습니다. 화학비료를 줄이고, 풋거름을 늘리며, 조금씩 그 일을 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단번에 생산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토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체계에서 다른 것으로 뿌리부터 개혁하라고 강요한다면, 생산량이 심각하게 떨어져 의기소침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개혁은 느긋하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나무가 자라는 데에는 몇 년이나 걸립니다. 예전에 누군가 ‘왜 곧바로 이용할 수 없는 것을 심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동료는 ‘우리가 오랜 세월 이용하는 자원의 대개는 성장하는 데 몇 년이나 걸리고, 미래세대를 위하여 그것을 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멕시코와 세계 대부분의 마을은 우리와 비슷한 과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파괴되어 버린 것을 재건하기 위한 시간은 아직 있지만, 지구온난화는 숲이 사라지는 것이 한 원인입니다. 그것이 지금 곧바로 시작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다시 나무를 심어 숲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농민들을 설득하는 데에 정말로 도움이 된 것은,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포함해 몇 가족의 토지가 개선되는지를 눈으로 볼 때, 그들은 우리가 한 것을 흉내 내기 시작합니다. 경험이 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사례가 설득한다’라는 구호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반은 사막 상태였던 땅을 주민과 미래세대가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조금씩 바꾸는 것입니다.”



미래로 넘길 유산


믹스테카 농민종합센터는 1989년 이래 아홉 군데의 지역사회에서 몇 백의 농민을 조직했다. 소나무와 다른 토종 나무를 다시 심기 시작하여, 엘 프로그레소El Progreso에서는 모든 지역사회의 80%가 참가하여 100㏊의 나빠진 토지를 회복하고, 엘 카르멘El Carmen에서는 11년 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2003년 4만 그루, 2004년 7만 그루를 심었다. 과거 5년 동안 100만 그루 이상의 토종 나무를 심어 1000㏊가 숲으로 돌아왔다.


토양을 보전하고, 지하수를 다시 풍부하게 만들고자 언덕땅에는 등고선을 따라 도랑을 파고, 빗물로 파인 골짜기가 생기는 지역에는 흙을 막는 댐이 건설되었다. 또 몇 세대에서는 집에다 빗물을 모으기 위한 통도 마련했다. 통에는 건기에 쓰는 수량의 6배인 1,5000ℓ나 물을 모을 수 있다.


옥수수, 콩, 호박을 다시 옛날 방식으로 섞어짓기하여 옥수수를 단작하던 것이 다양화되고, 토종 옥수수가 보전·개량되며, 땅심을 좋게 하고자 현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부산물을 써서 지렁이똥을 포함해 유기 퇴비의 생산도 시작했다.


25년 이상에 걸친 헤수수 씨의 노력은 성공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인데, 지금 이 황폐했던 믹스테카의 현실은 크게 변했다. 지역의 25~30%밖에 경작할 수 없던 곳에서 지금은 토지의 80%를 경작하고 있다. 지역의 농업 생산은 50%나 올랐다. 이러한 개량의 모든 것이 믹스테카의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어 이주도 줄고 있다.


“지역사회의 환경을 개선하려고 싸운 것은 우리만이 아닙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여기에 참가했습니다. 지금 우리 믹스테카족은 의지, 기술, 지식이 있으면 파손된 천연자원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세계에 보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망도 없는 채로 높은 수확을 올리려고 하여 대부분의 토지가 피폐해져 있다. 이 현상에 헤수수 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자신의 일만 생각하지 말고 몇 세대 앞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미래세대에게는 이 혹성의 자원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지구와 지구에 있는 것 모두를 파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아이와 자손들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돈벌이는 좋은 것입니다만, 새로운 인생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재산을 유산으로 남기는 편이 더 좋습니다.”


헤수수 씨는 2008년에 그 환경보호의 노력이 평가되어 골드만 환경보호상(Goldman Environmental Award)을 수상했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Miguel A Altieri and Parviz Koohafkan, Enduring Farms: Climate Change, Smallholders and Traditional Farming Communities, Third World Network, 2008.

  (2) Paula Alvarado, 2008 Goldman Prize Winner Jesus Leon Santos on Bringing Desert Lands Back to Life, 26may.2008.

 (3) Jesús Ibarra, Ancient Farming Techniques to Save the Campo, Organic Consumers Association,14Aug,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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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의 전통농법 - 카멜로네스




홍수에도 왜인지 피해를 받지 않는 전통농법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해가 계속되면 빈곤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덧붙여 홍수와 가뭄 등의 이상기상은 기후변동으로 더욱 그 빈도를 더하고 강도도 세질 것이다. 아마존의 중심부에 있는 볼리비아 베니Beni군郡의 군도 트리니다드Trinidad1)는 가뭄과 홍수가 되풀이되는 냉엄한 환경이다.2) 볼리비아는 2006~2008년 계속해서 홍수 피해를 입고 있다. 2007년에는 35만 명이 재해를 입고, 2008년에도 또 4만 명이 가옥을 잃었다. 2007년과 2008년 두 해의 사망자는 100명을 넘는다. 특히 2008년에는 최소한 과거 50년 동안 최악의 범람이 일어났다. 홍수는 베니의 인구 가운데 1/4, 약 12만 명에게 영향을 주고, 2억 달러(1.19억 파운드) 이상의 피해를 가져왔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후변동에 순응하고 있는 지역의 한 예인 것이다.

 

 

 

 

볼리비아에 있는 옥스팜3)의 재해 리스크 삭감·적합 조정자인 로저 퀼로가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가장 처음 시험적인 카멜로네스camellones가 건설된 것은 2007년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2008년의 홍수를 이겨낸 유일한 구축물이 되었습니다. 곧 카멜로네스 체계로 지역사회의 생활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케네스 리 재단(Kenneth Lee foundation)의 오스카 사베드라Oscar Saavedra 대표도 말한다.


“어떤 시기에도 홍수에 대응하려면 언제 우기가 올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곧 수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했듯이 엘니뇨와 라니냐의 주기가 힘과 빈도를 더한다고 해도, 홍수를 이겨내는 농법이 있다고 하면 극단적인 이상기상과 예측할 수 없는 호우에 가난한 사람들이 잘 대응하도록 도움이 될 것이다.


그 하나의 해결책은 3000년 전 현지의 농민들이 썼던 오랫동안 잊힌 농법에서 오고 있다.


“우리의 카멜로네스 프로젝트가 보통은 어긋나 있는 것의 하나는, 지금 베니의 가난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일한 지역에서 프레콜롬비아 시대의 선주민 문화에서 개발된 기술과 똑같은 기술을 쓰고 있는 점입니다.”


사베드라 씨는 水文字의 복합된 체계를 개발하고자 6년 동안이나 자신의 밭에서 실험을 거듭해 왔다. 고대에도 지금도 지역사회는 가뭄과 그 뒤에 이어지는 정기적인 홍수라고 하는 똑같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사베드라 씨는 이렇게 말한다.


“홍수는 훌륭한 문명의 개발과 번영의 기초였습니다. 베니의 고대 문화는 범람과 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장해가 아닌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건기와 우기 사이에 균형을 만들고, 자연에 도전하기보다 오히려 자연의 과정을 받아들여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홍수 지역의 해결책이 된다는 희망은 고고학 조사에서도 나왔다. 1960년대에 고고학자들은 범람과 가뭄 등에 대응할 수 있는 프레잉카문명에서 개발된 고대 농업 체계의 베일을 벗겼다.4) 고대 문명은 광대한 토지 변동을 행하여 땅심과 생산성을 개량하는 농업 체계를 개발했다. 그리고 3000년 뒤 케네스 리 재단은 옥스팜에서 자금을 받아 이 고대의 관개 체계를 되살렸다.

 

 



홍수에서 작물을 보호하고, 식량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고대 농법


베니의 토지 대부분은 우기에는 몇 개월이나 물에 잠긴다. 아마존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로 물이 흘러가면서 영양물을 가져가 버리고, 작물을 재배하기 어렵게 하는 모래흙을 남긴다.


“우리는 흙이 매우 척박해져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의 흙은 죽어 있어 농업에는 좋지 않은, 기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라파엘 크레스포 오르티스 씨는 말한다. 처음 현지 주민들은 의심했다.


“어떻게 실행하면 좋을지 농업기술자마저 모르는 기술을 실시하도록 참가자들에게 부탁했을 때, 불신의 분위기가 생긴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로저 퀼로가 씨도 떠올린다. 이 카멜로네스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는 것이 프로젝트가 직면한 최대의 난제였다. 하지만 결과를 자기의 눈으로 확인하여 지역 사회는 확신하게 되었다.


홍수 피해의 경감이 수많은 현재의 여성들이 카멜로네스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저는 저의 구획에 쌀, 옥수수, 바나나, 양파를 심었습니다. 그렇지만 물이 몽땅 쓸어 갔습니다.” 트리니다드 근처의 푸에르토 알마센Puerto Almacen에서 세 아이의 어머니, 두니아 리베로 마야코Dunia Rivero Mayaco 씨(44세)는 설명한다.


“집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3개월이나 길거리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것이 제가 여기에서 카멜로네스를 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두 번 다시 모든 것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이 불었을 때 카멜로네스의 모습.


 

홍수가 지나간 뒤에도 운하는 완전한 채로 남아 있다.


2009년 7월 현재, 약 400가족이 트리니다드의 주변에 있는 다섯 지역에서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옥수수, 카사바, 쌀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아직 막 시작한 실험 단계이지만, 앞으로 전망이 있고 생산성도 높을 것이라 본다. 현지의 농민 예니 노자Yenny Noza 씨도 말한다.


“홍수가 나면 이전에는 대부분의 작물과 종자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심는데, 물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홍수가 나도 물에 잠기지 않습니다. 수확을 할 수 있고, 또 종자도 곧바로 심습니다.”


이바레Ibare 강을 배로 20분 정도 내려가는 코파카바나Copacabana 마을의 농민 마리아 살라스Maria Salas 씨도 말한다.


“홍수가 나도 카멜로네스가 우리를 구해 주겠지요. 홍수에 약한 바나나도 시들지 않을 수 있고, 레몬과 오렌지도 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확실히 우리의 선조가 어떻게 살았고, 세력을 뻗어 왔는지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카멜로네스를 구축하는 트렉터도 없었습니다만, 쭉 살아남았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카멜로네스 프로젝트가 행하고 있는 것은 프레콜롬비아 시대의 기원전 1000년~기원후 1400년이나 행해 왔던 전통농법의 모방이다. 이 프로젝트는 운하로 둘러싸 최고 2m나 되는 카멜로네스라는 둑을 구축하는 것에 바탕한다. 높은 두둑의 밭은 몇 사람인지의 채소 농사꾼이 건축한 높은 두둑과 비슷한데, 확실히 규모가 크다. 홍수의 물높이보다 높게 구축해서 카멜로네스는 종자와 작물이 쓸려 가는 것을 지킨다. 우기에 높은 두둑을 에워싼 둘레의 수로는 홍수가 난 물이 흘러들지만, 홍수가 지난 뒤의 갈수기에는 그 운하의 물이 관개용수가 되어 토양에 양분을 준다. 가난한 농민들은 홍수를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은혜라고 보도록 장려되고 있다. 요컨대 흘러넘치는 물을 이용하함으로써 홍수의 희생자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땅심을 지속하고, 물고기도 가져온 전통농법


하지만 전통농업이 뛰어난 점은 그것만이 아니라, 수확량도 높다는 점이다. 케네스 리 재단에 따르면, 베니에서 행하던 농법에서는 카사바를 약 15t/㏊만 수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카멜로네스 농법에서는 1년에 최대 100t/㏊의 수확량이 달성되었다. 땅심이 개선되어 1년에 최대 세 작물을 재배할 수 있기에, 관행농업보다 훨씬 많은 수확량을 생산할 수 있다. 또 베니에서는 2~3년 뒤에는 토지가 척박해져 버렸기에, 농민들은 농사를 지으려고 숲을 벌채하고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토지를 부대밭 방식 농업으로 개간했다. 그런데 전통농법은 가족의 식량 안전의 보장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주변의 열대림을 벌채할 필요성도 줄인다.


그밖에도 전통농법에는 잠재적인 장점이 있다. 첫째는 높은 두둑을 둘러싼 주변은 수로이기에 물대기가 매우 쉽고, 한 번 체계가 구축되면 물 수요가 적다.

 

둘째는 운하에서 급성장한 타로페tarope라고 불리는 수생 식물이 물을 정화하고, 흙 위에 퍼지면 거름으로도 된다. 현지의 농민 오스카 페나란다Oscar Penaranda는 말한다.


“흙 위에 타로페를 퍼뜨리면 흙의 수분을 유지하고, 양분도 됩니다. 타로페는 거름이 되는 훌륭한 식물입니다.”


타로페는 6개월 뒤에는 10㎝의 비옥토를 만드는 것을 돕는다. 게다가 가축 먹이로도 쓰인다. 수로에서는 물고기도 풍부하게 자란다. 라파엘 크레스포 오르티스 씨는 말한다.

 

 

물에서 자라고 있는 타로페. 

 

“수로에는 갈수기에도 진흙 속에서 사는 물고기가 있기에, 지역사회는 또 물고기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곧 세련된 고대 농법은 현명한 물 관리와 유기물의 재활용을 통하여, 비옥한 흙과 관개용수, 가축 먹이, 물고기를 가져오고, 그것은 또 먹을거리와 수입원이 되고 있다.



콜롬비아, 브라질로 퍼진 고대 농법


선조들이 쓰던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 방법은 기후변동의 방패가 되어 열대림의 벌채를 막고, 주민들의 식량 안전 보장을 높이며, 또한 좋은 식사마저 제공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어딘지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성들 안에서는 더욱 세찬 범람과 가문일 때 정말 성과가 있는지 시험 받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008년의 홍수는 최악이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큰 도전이 아직 남아 있다. 토마토와 채소밭의 생산물로 수입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일과 비교하여 카멜로네스에 시간과 땀을 흘리는 것으로 현지 사람들의 의문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볼리비아의 카멜로네스 프로젝트에서 얻은 교훈은, 그곳 이외의 재해를 입기 쉬운 지역에서도 큰 마중물이 되겠지요.”


퀼로가 씨는 믿고 있다. 그리고 사베드라 씨도 카멜로네스 프로젝트는 다른 나라에까지 퍼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인도, 중국 등 베니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세계 각지에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세계 기아를 줄이고, 기후변동과 싸우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실 여러 장해에도 불구하고, 카멜로네스는 콜롬비아, 에콰도르, 브라질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1) James Painter, Bolivians look to ancient farming, BBC News,18 Aug,2009.

2) Bolivia: Reviving ancient indigenous knowledge 

3) Oxford Committee for Famine Relief. 제2차 세계대전이었던 1942년, 영국 옥스퍼드의 주민들이 나치스 치하에서 고생하는 그리스 사람들을 구호할 목적으로 결성한 단체이다. 이후 활동 폭을 넓혀 전쟁이 끝난 뒤 벨기에 등에서 전쟁 난민 구호에 앞장서면서 국제적인 단체로 자리를 잡았다.

4) New Agriculturist Reviving an ancient irrigation system in Bol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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