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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의 건강만이 아니라, 지구 자체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 해마다 인간이 생성하는 온실가스 배출의 약 1/4은 우리가 세계를 먹여살리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 대부분은 소가 방출하는 메탄, 화학비료의 질소산화물, 작물의 재배나 가축의 사육을 위한 산림 파괴 등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가스는 지구의 대기권에 열을 가두어 놓게 한다. 온난화된 세계에서 홍수나 가뭄 같은 극한의 기상이 빈번해지고 심해져, 작물을 파괴하고 농사철을 방해한다. 그 결과 기후위기는 이미 먹을거리 공급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농업의 과제는 광대하며, 세계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늘어날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새로운 기후와 토지에 대한 특별보고서는 세계의 토지 이용, 농업 및 인간 식단의 급격한 변화 없이는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C 미만으로 유지하려는 목표를 지닌 온실가스 배출 억제 노력은 실패할 것이라 경고한다.

환경이나 복지의 다른 측면을 해치지 않으며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먹을거리 체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하지만 생물다양성 상실과 오염을 반전시키면서 수십억의 사람들을 부양할 충분한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을까

여기에 고고학자와 인류학자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World Archaeology에 실린최근 논문은 과거의 농업 체계를 탐구하여 그것이 오늘의 농업을 더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남아메리카의 운하와 옥수수

세계에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방식을 실험한 오랜 역사를 지닌 사회들이 있다. 이러한 과거의 성공과 실패는 인간이농업을 통해 어떻게 지역의 환경을 변형시켰으며, 수천 년 동안 토양의 특성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고대의 농법이 늘 자연과 균형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 초기의 먹을거리 재배자들이 과도한 방목이나 관개를 잘못 관리해 토양 염분을 높여 자신의 환경을 손상시켰다는  증거들이 있다. 하지만 과거의 먹을거리 재배 체계가 토양의 질을 개선하고, 작물의 수확량을 증가시키며,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한 사례도 많다. 

한 사례가 잉카 이전의 남아메리카에서 기원하여, 기원전 300년-기원후 1400년 사이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와루와루Waru Waru라 알려진 그 체계는 수로로 둘러싸인 높이 2미터, 너비 6미터의 높임 두둑들로 이루어졌다. 티티카카 호수 주변에서 1960년대에 연구자들이 처음으로 발견한 이 높임 두둑 체계는 이후 수십 년 동안 볼리비아와 페루의 습지와 고원 지역에 도입되었다. 


와루와루에서 이용되는 운하는 기후변화에 더 탄력적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게 돕는다.



어떤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대부분은 지역의 농민들이 화학물질을 이용하지 않고도 작물의 생산성과 토양비옥도를 개선하도록 해주었다. 지역의 다른 농법과 비교하여, 높임 두둑은 가뭄 기간에 물을 포획하고 비가 너무많이 오면 물을 배출한다. 이렇게 연중 작물에 관개를 한다. 운하의 물은 열을 보유하여 두둑 주변의 기온을  1°C 정도 높여 서리로부터 작물을 보호한다. 수로를 서식지로 삼는 물고기가 먹을거리를 추가로 제공한다. 

아직 연구가 진행중이지만, 오늘날 이러한 와루와루 체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습지 가운데 하나인 볼리비아의 야노스 데 목소스Llanos de Moxos를 포함한 남아메리카 전역의 농민들이 자주 활용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예상되는 홍수와 가뭄의 증가에 와루와루 농업이 더 탄력적일 수 있다. 또한 한때 작물 재배에 부적합하다고 여겨진 열악한 서식지에서 먹을거리를 재배할 수 있어, 열대우림을 벌채하는 압박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해충을 방제하는 아시아의 물고기

대규모 단작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훨씬 친숙한 농법이다.  이는 광대한 농지에 더 쉽게 관리하며 많은 수확량을 보장하기 위해 한 가지 유형의 작물만 재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토양비옥도를 떨어뜨리고, 자연서식지를 손상시키며,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이런 농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비료는 하천과 바다로 침출되고, 농약은 야생생물을 죽이고 내성을 지닌 해충을 만든다. 

여러 작물을 재배하고, 다양한 가축을 사육하며, 보존을 위해 여러 서식지를 남겨두면 앞으로 있을 날씨의 충격에 먹을거리 생산을 더 영양가 있고 탄력적으로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생계를 창출하고 생물다양성을 재생할 수도 있다. 

고려할 것이 많은 것 같지만, 여러 고대의 농법이 단순한 수단으로 이러한 균형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에도 이용된다. 중국 남부에서, 농민들은 한나라 후기로 거슬러올라가는 방식으로 자신의 논에 물고기를 추가한다.  

물고기는 단백질 공급원을 추가하기에, 이러한 체계는 일반적인 벼농사보다 더 많은 먹을거리를 생산한다. 일반적인 벼의 대규모 단작과 비교해 또 다른 장점은 농민들이 비싼 화학비료와 농약을 절약한다는 점이다.  – 물고기가 잡초와 벼멸구 같은 해로운 해충을 잡아먹어 천연 해충 방제를 제공한다. 


벼논양어의 논은 더 많은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화학 농약을 더 적게 사용한다. 


아시아 전역의 연구에 의하면, 벼만 재배하는 논에 비교해 벼논양어의 논은  벼 수확량이 최대 20% 정도 증가하여, 가족이 자급하며 잉여 농산물을 시장에 판매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벼논양어 논은 소농의 공동체에 필수적인데, 오늘날 대규모 단작의 벼 또는 양식업을 확장하려는 대기업에 밀려나고 있다. 

벼논양어 농법은 물을 오염시키고 온실가스를 생성하는 농화학물질을 덜 쓰면서 현행 대규모 단작보다 더 많은 사람을 부양할 수 있다.  

이들 고대의 농법이 거둔 지속적인 성공은 우리가 전체 먹을거리 체계를 재구성하여 100억 명의 사람을 부양하는 한편, 야생생물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탄소를 격리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미 있는 걸 다시 만드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과거에 효과적이었던 걸 찾아 미래에 적용시켜야 한다.  


https://theconversation.com/feeding-the-world-archaeology-can-help-us-learn-from-history-to-build-a-sustainable-future-for-food-117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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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대전에서 왜 둠벙을 이용해 메기를 활용하는 벼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죠?

 

누구의 발상이고, 얼마나 되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관리되는지 궁금합니다. 한 번 가 봐야겠어요.

 

http://www.dailycc.net/news/articleView.html?idxno=54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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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농경사 권1



대담   유라시아의 풍토와 농경


사사키 타카아키佐々木高明

사토 요우이치로佐藤洋一郞




풍토와 농경


사토; 오늘은 많은 사람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사키 선생에게도 참석해 주셔서 매우 고맙습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빨리 시작하겠습니다. 우리의 연구 프로젝트에서는 농업이란 것을 다시 한번 근본에서부터 생각해보자는 큰 주제의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1만 년 동안의 농업과 환경이란 것이 지금까지 인류에게 본질적으로 어떤 것으로 이어져 왔을까? 그것을 생각함으로써 앞으로 미래의 농업의 자세,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생각하기 위한 대비를 하고 싶다. 즉, 후속세대의 농업을 어떤 방법으로 하면 좋을지를 고안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좀 역설적인 주제를 내세운 연구 프로젝트를 마련했습니다. 그것이 '농업이 환경을 파괴할 때'라는 주제이고……


사사키; 매우 선풍적이네요.


사토; 원죄론이란 사고방식이 있어서 대저 농업은 인류에게 나쁜 것이란 사고방식이 있지만, 그렇게 말해 버리면 너무 노골적이라 맛도 정취도 없기에…… 아까 이야기에서는 없었지만 뭐가 어떻게 되면 맛이 없을까, 뒤집어 생각하면 무엇을 어떻게 놔두면 환경과 어느 정도 조화를 꾀할 수 있고, 또는 잘 해내지 않을까 하는 걸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세계의 …… 라고 하더라도 아프리카와 신대륙까지를 포함하여 의론할 만한 힘도 시간도 지금은 없기 때문에, 우선 유라시아에만 주목하여 이야기를 진행하려 생각합니다.


사사키; 일본의 농경을 생각만 해도 유라시아, 즉 유럽부터 아시아에 걸친 대륙과 그 남쪽에 있는 여러 도서의 전체를 시야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역의 1만 년 정도의 역사를 배경으로 고려하면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더구나 미래는 어떻게 내다볼지가 이 <유라시아 농경사> 전체의 문제 같네요. 따라서 오늘은 조금 큰 시야부터 유라시아의 농경사, 농경문화사 같은 전체적 문제를, 프로젝트의 지도자인 귀하를 상대로 하여 생각해 나아가도록 하겠네요.


사토;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시작으로, 한 장의 지도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사사키; 유라시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지도네요.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사토; 이것은 독일의 기후학자 W. 쾨펜(1846-1940)이 고안한 '기후 구분도' 등을 바탕으로 작성한 지도입니다. 이 유라시아의 기후도에 와츠지 데츠로(1889-1960)의 <풍토 -인간학의 고찰>에서 문제삼는 세 가지 '풍토'를 기재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일본의 남쪽 반부터 중국의 남부, 동남아시아의 대륙부를 지나서 인도의 동부에 걸친 지역이 '계절풍 풍토'. 그 다음에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즉 유럽을 포함한 지역이 와츠지의 말을 빌리면 '목장의 풍토'. 그 다음 그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사막의 풍토'. 이 세 가지 정도를 무대로 하여 농경이란 것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사키; 어쨌든 농경이란 건 기본적으로 식물을 재배하는 것이기에 자연조건의 특색을 배경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기후조건을 고려하는 것이 유라시아의 농경을 생각할 때 대략적인 틀 짜기가 되기에 이 그림이 이번 토론에서는 기본적인 지도라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지금 말씀드렸듯이 쾨펜이라든지 누구든지 좋습니다만, 기후 구분이란 건 전체적으로 추운 곳, 따뜻한 곳, 더운 곳이란 온도 조건과 비가 많은 습윤한 곳과 건조한 곳이란 건습 조건(기타 강수 계절도 있지만) 두 가지를 조합하여 생각합니다.

한편, 와츠지 데츠로라는 철학자가 1927년에 유럽으로 유학을 갔을 때는 배로 쭉 프랑스의 마르세이유까지 갔습니다. 그 길에 인도양과 인도에서는 혹서로,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공기가 매우 건조하다. 그 다음에 유럽에 도착하면 지중해 연안은 매우 환하다. 그렇지만 독일에 가면 그곳은 아주 음울하고, 숲의 세계이다. 그와 같은 인상을 바탕으로 '풍토'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그리고 그 '풍토'가 인간의 존재든지, 문명이든지에 주는 영향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었죠. 그 인상을 바탕으로 <풍토>라는 책을 쓴 것이죠. 위의 지도는 그러한 와츠지 씨의 생각을 배경으로 하면서, 이러한 모습을 크게 나누어 본 것이죠.

그래서 사토 씨, 문제는 지도 안의 굵은 선인데 이건 무엇입니까?


사토; 지도에서 일본 열도의 중앙부부터 중국을 통하여 히말라야 남단을 서쪽으로 이어진 굵은 선 말입니까? 그건 보리의 품종을 구분하는 선입니다. 보리의 이삭을 보십시오(그림4-1). 이건 옛날부터 유라시아에 있는 작물입니다. 보리는 그림의 가장 왼쪽 끝에 있습니다만, 이들을 대학원생에게 그 이름을 말해 보라고 하면 재밌어요. 반 정도는 틀립니다.



그림4-1 유라시아의 주요 곡물. 오른쪽부터 벼, 조, 피, 향모, 기장, 수수, 밀, 보리.



사사키; 요즘 농학부 학생은 반도 모를 거예요. (웃음)


사토; 반 이상 모를 거예요. (웃음) 가장 왼쪽이 밀이고, 오른쪽이 보리입니다. 타카하시 류헤이高橋隆平(1912-1999)라는 선생이 말씀하셨는데, 당시의 말로 '동아시아형' 보리와 '서구형' 보리 두 종류가 있다는 유명한 논문을 1955년에 발표했습니다.


사사키; 오카야마 대학의 선생이셨죠. 확실히 보리의 탈립성을 방지하는 유전자 조합의 연구에서 세계의 보리 품종에 서쪽(W)형과 동쪽(E)형이 있다고 기술되었죠.


사토; 그러한 것을 말하고 계십니다. 여러 보리 품종의 유전적 성질을 조사하면, 몇 가지 성질과 그 유전자의 분포에 지리적인 특이성이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E형의 품종군에만 있는 유전자가 몇 가지 있다고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찰보리라든지 쌀보리라든지……


사사키; 쌀보리라는 건 보리의 껍집이 잘 떨어지는 것이죠.


사토; 그렇습니다. 반대의 성질인 겉보리에서 종자는 풀 같은 물질로 '겉껍질'에 달라붙어 있는데, 쌀보리에서는 성숙기에 이 풀의 힘이 약해져 종자가 '겉껍질' 안에서 벗겨지듯 떨어집니다. 그래서 익은 이삭을 떨면 버석버석 소리가 나지요. '미숫가루'라든지 '보릿가루'로 쓰는 것이 쌀보리, 보리차로 쓰는 것이 겉보리입니다. 우선 굵은 선의 남동쪽에도 쌀보리 외에 겉보리와 메보리도 존재한다는 걸 주의하세요.


사사키; 유라시아 대륙의 쭉 서쪽부터 북쪽에 걸쳐서가 'W형 보리'의 분포 지역이고, 그 선보다 동쪽이 대략 'E형 보리'가 분포하는 지역이며, 이 선이 계절풍 지역과 건조 지역을 나누고 있는 선에 약간 가까운……


사토; 아뇨, 약간 가깝다기보다는 매우 잘 맞습니다. 잘 찾아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잘 맞습니다. 


사사키; 요컨대 계절풍 지대는 기후가 온난하고 여름에 자주 비가 내리지요. 지도에서는 연간 강수량 400mm 선이 그려져 있네요. 이 400mm 선의 안쪽, 즉 강수량이 그 이하인 지역이 와츠지 씨 식으로 말하면 '사막의 풍토'입니다. 다만 이 지역 전부가 사막은 아니고, 반건조의 초원 지대도 꽤 넓죠. 맥류의 원산지도 이 안에 포함되어 있지요.


사토; 네, 대개 들어 있습니다. 보리와 밀의 원산지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부르는 지대로, 이 지도에서는 카스피해의 남부에서 서쪽의 400mm 선을 따라서 겹쳐져 있습니다. 밀 가운데 '보통 밀'이라 부르는 우리가 지금 빵과 라면으로 먹는 밀에 대해서는 여기보다 약간 동쪽, 아나톨리아부터 카스피해의 남안에 해당한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사사키; 400mm 선보다도 서쪽의 '목장의 풍토', 즉 지중해 연안의 지대는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나무가 드문 지대이고, 거기부터 알프스를 넘어 북쪽은 일반적으로는 산림 지대, 구체적으로는 졸참나무와 너도밤나무를 주체로 하는 낙엽광엽수림이네요. 이 산림대는 쭉 유라시아의 북쪽부터 동북아시아까지 뻗어 있지요.


사토; 유라시아의 쭉 북쪽을 타고 그 낙엽광엽수림대는 옛 만주(중국 동북부)와 조선반도 북부를 거쳐 일본 열도의 동북부까지 닿아 있습니다.


사사키; 대충 그렇게 큰 범위 안에서 와츠지 씨가 전혀 문제 삼지 않은 건 동남아시아 섬들의 세계. 와츠지 씨는 그곳에는 가 보지 않았다. 유럽으로 배로 유학을 갈 때 여기는 들르지 않았다.


사토; 아뇨, 들렀죠.


사사키; 뭐, 싱가포르 정도는 들렀을지 모르지만, 섬에는 가지 않았다. 지구연(종합지구환경학연구소)의 타치모토立本 소장 등이 조사한 인도네시아 등은 간 적이 없다. (웃음)


사토; 옆은 스쳐 갔을지도요. (웃음)



종자번식과 영양번식


사사키; 그런데 지도에는 동남아시아 대륙부터 도서부에 걸쳐서 큰 원이 있으며 여기에 '뿌리작물 농경의 풍토'라고 적혀 있고, 그 옆으로 '종자번식'과 '영양번식'이란 굵은 녹색의 화살표 사선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조금 설명해 주세요. 


사토; 이건 최근 내가 고안한 축입니다. 갖가지 재배식물이 어디에서 생겼는지 조사해 보면 맥류가 생긴 곳, 맥류는 완전히 한해살이인데 대부분은 가을에 그 종자를 뿌린다. 매우 추운 곳에서는 봄에 종자를 뿌리는 곳도 있습니다. 그렇게 봄에 뿌리면 가을에, 가을에 뿌리면 봄에 꽃이 피어서 종자를 얻을 수 있다. 종자를 얻으면 부모인 식물은 완전히 죽습니다. 맥류만이 아니라 잡곡류의 대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식물을 한해살이 식물이라 부르는데, 이런 식물이 생긴 곳이 유라시아에서는 지도의 왼쪽 윗부분입니다. 


사사키; 위라고 하기보다는 한가운데 왼쪽 부근. '사막'이라는 문자 위에 해당하네요. 그런데 일본어는 편리하여 맥류라 하면 보리도 밀도 모두 포함하지만, 영어 등의 서구어에서는 맥류란 단어는 없지요(표4-1).




잡곡에 관한 이름의 분화

맥류에 관한 이름의 분화

잡곡 농경문화

벼, 조, 수수, 기장, 피 등 종류마다 한자로 표시하는 개별 이름이 있고, 총칭하는 명사가 없다.

맥류란 총칭 명사만 있고, 개별 종류에는 대, 소, 연 등의 형용사를 붙여서 구별한다.

맥류 농경문화

millet이란 총칭 명사만 있고, 개별 종류에는 여우꼬리, 보통, 손가락, 농가 마당 등의 형용사를 붙여서 구별한다.

보리, 밀, 귀리, 호밀 등 종류마다 개별 명칭이 있고, 맥류에 해당하는 총칭 면사가 없다. 

표4-1 잡곡 문화와 맥류 문화에서 작물 이름의 분화. 잡곡 농경문화권의 언어를 중국어, 맥류 농경문화권의 언어를 영어로 대표하여 대비했다.



사토; 없지요. 그런데 최근 저는 무리하게 맥류라고 말하거나 적어 보는데, 이것이 제법 외국인에게 받아들여지네요. (웃음)


사사키; 원래 서구어에는 밀이라든지 보리라든지 호밀이라든지 귀리 등 각각의 개별 식물 이름이 있고, 맥류라는 총칭 명사는 없다.


사토;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것이 잡곡이네요. 일본어에서는 피, 기장, 조 등 정확하게 개별 이름이 있는데, 영어 등에서는 개별 이름이 아니라 '밀렛'이라 총칭한다.


사사키; 지금 '맥류'의 산지라고 하는 곳은 밀도 보리도 포함하고 있지요.


사토; 그렇습니다. 아마 귀리 등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사키; 과연. 그들은 모두 한해살이이고. 


사토; 종자로 증식한다. 그래서 한해살이라면 부모가 죽어 버린다. 그러한 종류이지요. 그런데 오른쪽 아래의 동남아시아 쪽을 보면……


사사키; 영양번식 식물의 세계이다.


사토; 그렇습니다.


사사키; 영양번식이란 건 어떤 것?


사토; 종자가 아니고 뿌리 나눔이나 포기 나눔 등으로 증식하는 겁니다.


사사키 ; 뿌리 나눔이라든지 포기 나눔이네요. 경우에 따라서는 접붙임 같은 것이네요.


사토; 접붙이기나 꺾꽂이 같은 겁니다. 꽃을 피워서 다음 세대를 만드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그와 같은 식물입니다.


사사키; 종자가 없는 건?


사토; 종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종자를 만들지 않는다. 혹은 종자는 이용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한 것이지요. 전형적인 것으로는 토란이라든지 참마(그림4-3), 바나나 등입니다.



토란의 다양한 형태. A: 기는 줄기를 가진 야생형. B: 열대에서 많이 재배되는 어미토란형. C: 동아시아 온대권에 많은 새끼토란형.



통가의 참마 A-H: Dioscorea alata. I: D. pentaphylla. J: D. nummularia K: D. euculenta


그림4-3 대표적인 영양번식 식물 <덩이뿌리와 인간(イモとヒト) -인류의 생존을 뒷받침한 뿌리식물 농경>에서




사사키; 바나나는 전형적인 영양번식 식물이라 하겠네요. 바나나는 과실 안에 종자의 흔적이 있긴 하지만, 종자로는 번식하지 않고 포기 나눔으로 대를 늘려 간다.


사토; 그렇네요. 일반적으로 영양번식 작물을 '뿌리 재배 작물'이라 합니다만, 이용하는 부분은 다르다. 어느 쪽이든 뿌리 나눔이나 포기 나눔 등으로 증식하는 것이 '영양번식' 식물입니다. 그래서 이들 작물의 선조종의 존재는 필시 남쪽 섬들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사사키; 요컨대 '영양번식'이란 연중 고온이고 다습한 열대 산림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번식의 양식이죠. 


사토; 어지간하면 계절풍 지대와 열대 아시아 섬들의 토지에서는 무엇인가 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곳에서 작은 종자가 탁 떨어지거나, 사람이 그것을 뿌리거나 해도 좀처럼 살아 남지 못하지요.


사사키; 그러니까 그러한 곳에서는 종자번식과 다른 영양번식 식물을 주체로 한 '뿌리작물 농경'이 발달했다는 것이네요. 그에 대해서는 또 나중에 문제로 삼고 싶습니다.

어쨌든 건조 지대를 중심으로 하는 종자번식의 농경에서는 주작물로 맥류와 잡곡과 콩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하여 뿌리작물 농경에서는 토란과 참마와 바나나와 사탕수수와 빵나무 등이 대표적인 작물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계절풍 지대는 어느 농경 유형에 속하는 겁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벼가 많은 곳은 계절풍 지대이지요. 벼라는 식물은 어느쪽입니까?


사토; 이것은 재미난 문제이네요. 둘 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르다는 사람도 있겠지요. 벼라는 건 옛날부터 말하듯이 자포니카와 인디카라는 두 가지 집단이 있지요. 자포니카라는 장강 유역에서 발생한 유형의 벼는 작물로는 한해살이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알고 계신다고 생각하는데, 가을에 벼베기를 하면 밑동에서 '움돋이'가 생기지요. 그 움돋이에 바로 몇 센치미터 정도의 이삭이 생길 수 있습니다(그림4-4). 



그림4-4 움돋이



사사키; 예를 들면, 타네가시마 등에서는 움돋이를 '힛쯔'라 부르고, 예전에는 그것을 키워서 움돋이의 종자를 수확했습니다. 그러한 사실도 있기에 벼라는 건 원래 여러해살이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겠지요.


사토; 자포니카 벼는 여러해살이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또 하나의 집단은 인디카인데, 자포니카 등에 비하여 움돋이가 나오는 게 좀 적다. 더욱이 거기에 이삭이 나오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결국 인디카라는 벼는 한해살이에 가깝다. 그래서 지도의 녹색 선 위로 가면, 뿌리작물 농경의 풍토에 더 가까운 곳의 자포니카는 약간 여러해살이의 성질을 가진다.


사사키; 이 지도에서 말하면, 계절풍의 풍이란 글자 근처의 둥그런 부분인데 그에 해당하는, 즉 장강 중하류가 자포니카의 기원지라고 사토 씨는 생각하고 있지요.


사토;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사키; 벼란 작물은 아시아의 계절풍 지대, 즉 인도 아대륙부터 중국 대륙, 일본 열도, 동남아시아까지 오늘날에는 널리 재배되고 있지만, 어느 쪽이냐 하면 자포니카는 원래 영양번식을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하여 인도에서 그 뒤에 재배된 인디카는 자포니카에서 나왔다는 가설을 사토 씨는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인디카는 자포니카에 견주어 영양번식을 하는 성질이 꽤 적다는 것이네요.


사토; '자포니카에서 나왔다'란 것은 아니고, 자포니카의 유전자를 '획득한다'는 겁니다.


사사키; 어렵네요…… '유전자를 획득한다'라는 표현을 한다면,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네요. (웃음) 여하튼 자포니카란 벼는 원래 영양번식의 성질이 있다. 그러나 벼로 먹고 있는 건 종자를 먹는 것이고, 지금 우리는 자포니카의 종자를 심어서 재배하며, 포기 나눔으로 증식하거나 하지 않는다. 왜 원래 영양번식의 성질을 지닌 자포니카가 종자번식으로 바뀐 것입니까? 벼농사 기원론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점은 어떻습니까?


사토; 그것이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인데, 하나의 가설로 이는 벼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식물에게 공통의 성질이지만 영양번식을 하는 식물이 기후가 나빠진다든지, 건조해진다든지……


사사키; 압박을 받는 거네요.


사토; 그렇습니다. 그러하면 지금까지는 푸르러서 자주 종자를 맺지 않던 식물이 서둘러 종자를 맺게 된다. 이것은 여러 가지 식물에게도 공통입니다. 그럼 자포니카의 벼가 종자번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냐면, 영거 드라이아스기라고 부르는 시대의 기후 한랭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만 1천 년 정도 전에 지구는 급격하게 추워졌다. 그러한 시기에 그때까지는 포기 나눔으로 번식을 했던 자포니카의 원시적인 유형이, 영거 드라이아스 한랭기에 이르러서 종자를 맺게 되었다.


사사키; 어쨌든 그러한 모양으로 종자번식을 하게 된 벼가 그 뒤 계절풍 지대에 퍼져 그 주작물이 된 것이네요.


사토; 그리고 그것이 수 천 년을 지나 1만 년 정도 전의 일이죠. 대략 이야기하여 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만, 자포니카 유형의 재배 벼가 열대 쪽으로 전파되어 가서 그때에 열대에 있던 야생 벼와 자연교배하여 생긴 것이 인디카였다고 생각합니다. 인디카의 벼는 한해살이인 본래의 야생 벼의 성질을 이어받아 한해살이 풀이 된 것이 아닐까? 요컨대 유라시아 대륙 서부의 건조 지대에 있던 맥류부터 동남의 도서 세계의 뿌리작물 농경권의 영양번식 식물에 이르기까지 깨끗하게 선 위에서 경향이 생겼을 겁니다.



농경과 가축의 결합


사사키; 그렇다면 유라시아의 농경을 크게 나누자면, 서쪽에서는 건조 지대 기원의 맥류를 주작물로 하는 농경이 퍼져서 맥류농사 농경 지대가 되었다. 동쪽은 종자번식을 하는 자포니카 벼를 중심으로 하면서 벼농사가 퍼져, 그 속에서 인도 아대륙에서는 인디카도 생겨나고, 계절풍 지대 전체로서는 벼농사 지대가 되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도서부는 원래 영양번식 식물의 지대로, 바나나와 토란 또는 참마 종류 등을 중심으로 한 뿌리작물 농경이 옛날부터 성립되었다. 큰 배치는 그런 것이네요.


사토; 지도의 한가운데부터 오른쪽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사키; 다시 한번 이야기로 돌아가, 지도의 왼쪽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와츠지 씨가 이에 대해 '목장의 풍토'라고 했지만, 몇 번 읽어도 감이 오지 않습니다.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지만 와츠지 씨는 '목장'이란 단어로 유럽은 일본과 달리 유축농업이 성행하고, 문화의 여러 측면에서 가축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해 그 강한 인상을 기술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독일 북부의 호텔 등에 묵으면 햄과 소세지 등은 정말로 여러 종류가 나오더군요.


사토; 대체로 맛있지요.


사사키; 확실히 유럽의 문화, 그 기초가 되는 서아시아 기원의 맥류 농경문화는 우리처럼 그다지 목축과 관계 없는 민족문화와는 크게 다를 겁니다. 이 맥류를 주작물로 삼는 농경은 밭농사 문화이고, 밭농사만 지으면 양분이 고갈되어 황폐해진다. 그래서 목축과 결합하여 돌려짓기하는 농법이 필요해진다. 중세 독일사에서 유명한 삼포농법이란 건 여름 작물과 겨울 작물의 경지 구역에서 곡물을 재배하고, 휴한지에서 가축을 방목하는 것이지요. 그 휴한지에는 개인 소유의 농지가 있어도 휴한기에는 완전히 공동의 목초지가 된다. 그와 같은 관계에서 공유라는 제도가 유럽 안에서는 나온 것인데, 그러한 휴한 방목, 즉 가축 사육과 결합된 농경이 있는 것이지요.


사토; 가축이라 하는 건 어느 의미에서는 맥류 농경의 시작부터 어른어른 보였다 안 보였다 하지요.


사사키; 어른어른이라기보다 염소와 양은 맥류 농경의 기원 단계부터 확실히 나타납니다. 이 농경은 시작부터 가축과 결합된 것이 특색이라 생각합니다. 맥류를 재배화하는 것과 그 초원에서 무리로 이동하는 동물(양, 염소)를 가축화하는 것이 병행하여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토; 그렇네요. 어느 쪽이 빠른지는 의론이 있겠지만, 저도 그것은 완전히 병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맥류 농경이란 건 주로 양과 염소를 중심으로 하는 목축이 시작되는 것과 병행하여 시작했다.


사사키; 그 다음에 나중에 소가 가축화되어 맥류농사 농경에 더해집니다. 어느 쪽이든 이들 가축은 모두 무리 동물이란 것이 특징이지요. 유명한 <농업의 기원>을 쓴 C. O. 사우어Sauer(1889-1975)라는 지리학자가 있는데, 세계의 가축을 두 종류로 나누어 무리 동물과 가축으로 분류했습니다. 가축, 즉 마을 안의 각 세대에서 사육하는 가축의 전형이 돼지와 닭 등입니다. 그에 반해 무리 동물은 주로 초원에서 가축군으로 방목의 형태로 사육하는 발굽 동물로, 건조지대의 초원에 결합됩니다.

돼지를 대표로 하는 가축은 어느 쪽이냐 하면 산림 지대에 결합된다. 유럽의 북쪽은 산림 지대이기에 돼지 사육이 성행하고, 그 산림대가 아까 이야기했듯이 쭉 동쪽까지 연속되어 동북아시아에서도 잡곡과 돼지 사육이 결합된 문화가 나옵니다. 그외에 아시아의 계절풍 지역의 벼농사 지대와 그 남쪽의 열대 산림대의 뿌리작물 농경에 결합되어 있는 것이 가축=돼지 사육입니다. 유라시아의 농업이란 것은 서쪽에서는 양과 염소 등의 무리 동물, 동쪽의 벼농사 지대는 돼지를 주로 한 가축 지대입니다.

또 말하는 걸 잊었는데, 서쪽 건조지대에서는 양과 염소 외에 나중에 소와 말 등의 대형 짐승도 가축화되어 이들 무리 가축의 사육과 밀접하게 결합된 중요한 문화가 젖의 문화입니다. 실은 동쪽 문화에서는 본래 젖의 문화가 빠져 있습니다.


사토; 동과 서의 차이이지요.


사사키; 중국 호남성 장사長沙 근처 소산韶山이란 곳에 모택동 씨의 생가가 있습니다. 조엽수림대입니다. 가서 보면, 모택동 씨가 태어난 집에는 꽤 큰 돼지우리가 있다. (웃음) 역시 저 주변의 벼농사 지대에서는 전통적으로 모두 돼지를 키우고 있습니다(그림4-5).



그림4-5 소산에 있는 전통 농가. 어느 농가에나 큰 돼지우리가 있다.



사토; 동쪽의 벼농사 지대에서는 돼지와 가금류(닭과 집오리 등)이지요. 새도 매우 특징적입니다. 그것과 식물화로는 물고기가 지닌 역할도 참으로 크다고 생각하네요. 벼논양어라는 말이 있는데, 저건 계절풍 아시아의 벼 생산의 장에서는 항상 물고기 -물론 이것은 밀물고기이지만- 를 잡았다. 저는 이것을 '쌀과 물고기의 동소성'이라 쓰고 있습니다만, 이 벼논양어도 조엽수림대부터 남쪽으로 펼쳐진 지역의 특징이라 생각합니다.



논의 시작과 벼농사 문화

 

사사키; 문제는 벼는 앞에서도 논했듯이, 종자번식을 하게 되어 작물로 성립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논에서 재배되었던 것입니까?


사토; 벼의 근간이 된 식물, 적어도 자포니카의 원종에 관한 한은 물이 철벅철벅한 곳이 생육 적지이지요.


사사키; 철벅철벅한 곳에서 재배화되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사토; 아뇨, 단지 그것만으로는 재배화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하네요. 그렇다는 건, 계절풍 지대의 그런 철벅철벅한 곳은 동시에 악어 등의 동물도 있겠죠. 그 다음 말라리아도 있을 것이고, 기타 여러 가지 천적도 있을 겁니다. 인간이 살기 쉬운 곳에는 없겠네요. 벼에게도 경쟁상대가 잔뜩 있을 겁니다.


사사키; 인간이 살기 쉬운 곳이라 하면?


사토; 음. 인간이 살게 된 곳은 좀 더 건조하다. 더구나 그곳에서 계절풍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물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는 겁니다. 우기가 되면 물이 모이고, 건기가 되면 빠진다. 그러한 곳은 한해살이 풀밖에 적응할 수 없겠죠. 숲에서는 우기에는 물이 고여서 안 되고, 수생식물에게는 건기에는 강한 건조함 때문에 안 된다. 한해살이 풀만이 지면이 노출되어 있는 곳에서 생육할 수 있는 토지이기에, 아마 그런 곳이 최초의 벼농사가 시작된 곳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즉, 건기의 수위가 조금 오르지요. 그러한 곳이 아닌 한 재배 벼는 기르지 못한다. 역시 늘 습지인 곳은 벼농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매우 원시적인 것은 별도로 하고, '벼농사 문화'라고 말할 정도의 벼농사는 그러한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사사키; 저는 '벼농사 문화'라고 할 때는 논두렁과 수로를 지닌 정비된 논이 그 기초에 있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논이란 특유의 생산기반에서 성립하는 논벼농사 농경이라는 것과 논벼농사 농경 이전의 농경은 대단히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논벼농사 농경이란 생산형태가 확립되고, 처음으로 벼농사 사회가 형성되어 벼농사 문화, 벼농사 문명이 나온다. 논벼농사 이전의 농경이란 것은 꽤 원시적인 것으로, 수렵채집 경제와 아직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토; 어제까지 채집하던 사람이 오늘부터 갑자기 벼농사를 개시하는 등과 같은 일은 생각할 수 없다고 보지요.


사사키; 이 시리즈의 안에 나카무라 신이치中村慎一 씨(가나자와 대학) 등도 서술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동아시아의 고고학자 의견이 거의 일치하고 있는 바는 논벼농사 농경이 완성된 건 양저문화 무렵. 기원전 3300년 무렵부터 2200년 무렵까지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상세한 건 여기에서는 생략하지만, 유적과 유물의 상황으로 판단하여 이 무렵이 되면 정비된 논을 지닌 벼농사 농경이 확립하고, 벼농사 문화가 형성되어 지방의 국가도 성립되지 않았나 이야기합니다. 저도 그에 거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사키; 그렇다면 그 이전의 벼농사는 벼는 농사지었지만 의지하지 않는, 사실 지금까지도 동남아시아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저는 '원초적 천수답'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벼와 잡곡을 함께 심어서 비가 내린 해에는 벼가 자라지만 비가 적은 해에는 잡곡이 자란다. 밭인지 논인지 알 수 없는 듯한 경지가 많이 있습니다.


사토; 밭과 논이란 명확한 구별은 없었다고 생각하지요. 예전, 미야자키 대학에 계셨던 후지와라 히로시藤原宏志 씨가 강소성 소주시의 좀 동쪽에 있는 초혜산 유적에서 논터를 발견했다고 하여……


사사키; 저, 후지와라 씨가 불러서 그곳에 견학하러 갔습니다.


사토; 아, 가셨습니까? 6200-6300년 전의 유적이지요. 대략 지금의 논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사사키; 정말로 작지요. 제2장 그림2-7과 그림2-8이 그 유적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 구획이 몇 평방미터 정도인 것이 쭉 붙어 있다.


사토; 게다가 움푹하지요.


사사키; 움푹합니다. 그곳이 논 유적이라 하지만, 논이라 좋을지 어떨지 좀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웃음)


사토; 무리라고 저도 말합니다. (웃음) 그렇지만 이른바 벼잎 세포화석은 나왔지요. 그러니까 후지와라 씨 들은 잎의 세포화석이 나왔기에 이것은 논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벼잎 세포화석의 존재는 다른 생물종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과 마름 등 벼과 이외의 수생식물에는 잎의 세포화석이 없지요. 잎의 세포화석만으로는 다른 생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벼가 벼가 있었다고 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벼 이외의 것이 없었다고 하는 증명은 아닙니다. 벼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그곳에서 물을 펐을지도 모르고, 수생 동식물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것을 저는 역시 상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네요.


사사키; 잎의 세포화석이란 건 벼과의 주로 잎 안에 있는 규산체이지요.


사토; 잠깐 사진을 보시지요(제2장 그림 2-2). 이것이 벼잎 안의 기동세포라는 세포에 모인 실리카와 유리질 덩어리입니다(그걸 규산체라고 합니다). 그것이 잎이 말라 버린 뒤에도 흙속에 남아 있다.


사사키; 잎의 세포화석은 벼의 종류마다 다양한 형태로 정해져 있어, 유리질이면서 썩지 않아 잘 남아 있다. 따라서 벼과의 어떤 식물이 있었는지를 고고학으로 실증하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


사토; 그렇지요. 그래서 대나무에는 대나무 잎의 세포화석, 벼에는 벼 잎의 세포화석이 있다. 그렇기에 벼 잎의 세포화석이 나오면 곧 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벼가 있었다는 증명이기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다른 것이 없었다는 걸 유감스럽게도 증명할 수 없다. 그 주변이 어렵지요.


사사키; 이 유적의 상황은 매우 원시적이며, 논이라 말하고 싶은 사람은 그래도 좋겠지만. (웃음) 이후 시대의 논두렁이라든지 수로로 정확히 구획된 정비된 논과는 다릅니다.


사토;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사키; 그러니까 잘 정리된 논, 논두렁과 수로로 구획된 생산성 높은 논이 나온 건 동아시아에서는 앞에 서술했듯이 양저문화의 시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중에 일본 열도의 이야기도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만, 조몬시대의 말기부터 야요이 문화의 시작 무렵에 큐슈 북부 지역에서 출현하는, 예를 들면 이타즈케板付 유적의 논 등은 정말로 멋지게 정비된 것입니다.


사토; 그렇지요. 일본에는 완성형 논벼농사가 생긴 겁니다.


사사키; 그렇지만 그러한 논이 전래하기 이전에도 벼농사는 영위되고 있었기에,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유라시아 전체를 보면 서쪽은 어느 쪽이냐 하면 밭농사로 목축과 젖 문화에 결합된 농경이 있다. 동쪽은 논을 경영하고 무리 동물이 아닌 가축의 사육과 결합된 벼농사 문화가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를 조금 까다롭게 했습니다만, 문제는 인도 아대륙입니다.


사토; 인도와 인도의 북쪽이지요.

사사키; 네. 인도의 문제는 매우 어렵지만, 인도 아대륙의 농업 지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북서부의 펀자브부터 갠지스 상류에 걸친 맥류농사 지대, 중앙부의 데칸 고원을 중심으로 하는 잡곡(조) 지대, 수수와 향모 및 잡곡류가 재배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인도 아대륙의 아삼과 갠지스강 중하류에 펼쳐지고, 인도 반도의 동서해안에도 분포하고 있는 것이 벼농사 지대입니다.

이처럼 아라칸 산맥에서 서쪽의 벼농사 지대는 매우 큰 논벼농사 지대입니다만 재배하는 벼는 자포니카가 아닌 인디카가 많고, 게다가 잡곡과 맥류농사가 중첩되어 있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인도의 벼농사는 파종과 탈곡의 방법, 젖 문화와의 관계와 가공 쌀 만드는 법 등에서 맥류농사 농경과 잡곡 농경 등의 영향이 강하게 보이며, 아라칸 산맥에서 동쪽의 벼농사와는 꽤나 다르지요. 


사토; 아라칸에서 서쪽 지역의 벼농사는 동쪽의 벼농사와 완전히 이질적이라 생각하네요. 나카오 사스케中尾佐助 씨가 말했는데, '"인도에는 벼농사 문화라고 하는 것이 없다"라는 건 역시 확실하네요. 동아시아의 벼농사 문화, 인도의 벼농사 문화라는 건 언뜻 비슷하나 다른 것으로, 둘에게 공통으로 존재하는 벼농사 문화라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라시아 농경의 북쪽과 남쪽의 퍼짐새


사사키; 에전에 유라시아의 농경을 생각할 때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것이 유라시아 북부를 동서로 잇는 농경지대의 존재입니다.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북극해로 들어가는 큰강으로 오비강, 에니세이강이 있습니다. 이 두 강의 가장 상류는 알타이산까지 이르고, 그 가운데 오비강의 가장 상류 지역에는 기원전 3-5세기 무렵의 유명한 동결 고분군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파지리크 고분은 고분의 도굴 구덩이 등에서 물이 들어와 그 물이 얼었던 겁니다.


사토; 동결된 맘모스 같은 것이죠.


사사키; 그렇습니다. 큰 목재를 쓴 대형 목곽 무덤에 동결되었기 때문에 안에 있는 유물이 깨끗하게 남았던 겁니다. 그곳에서 페르시아산 커다란 양탄자를 시작으로 마구류와 장식품, 기타 나릇이 달린 마차 등도 출토되고, 말도 몇 십 마리가 묻혀 있었습니다.


사토; 말도 함께 남아 있었던 겁니까?


사사키; 일부는 미이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북방 유라시아 학회를 중심으로 1991년에 러시아와 공동으로 알타이의 우코크 고분을 조사하여, 저도 다른 고고학자와 함께 견학하러 갔습니다(그림4-6). 발굴된 고분은 완전히 동결되지 않아서 잘 되지 않았지만, (웃음) 여하튼 이 부근 알타이산의 북사면부터 산기슭 일대는 쭉 완전한 초원지대입니다.

기원전 3000년대 말 무렵부터 2000년대에 걸쳐서 아파나시에보 문화가 영위되었습니다. 특히 안드로노보 문화는 흑해와 카스피해의 북쪽부터 알타이산에 걸쳐 초원지대에 전개된 스키타이계의 청동기 문화로 가축으로 말을 소유하고, 쿠르간(옛 몽고 무덤)을 만들며, 소규모 농경도 경영하는 목축민의 문화입니다. 그 뒤 이 지역의 문화는 목축의 요소를 차츰 강화하는데, 그래도 관개 조직을 수반한 기장과 조 등의 재배 전통은 기원후 상당히 이후의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림4-6 알타이산의 초원과 유목민 천막. 알타이산과 그 북쪽 기슭에는 광대한 초원이 펼쳐진다. (사진: 사사키타카아키)



사토; 보리는 어떻습니까?


사사키; 물론 보리도 있었습니다. 기장과 조 등도 재배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을 부장한 동결 고분은 목축귀족의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들도 농경민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초원지대에 농경이 서쪽부터 동쪽으로 쭉 이어져 있었던 겁니다.


사토; 확실히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선생은 북쪽의 농목문화의 회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농목문화의 길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사막이었는지는 잘 조사해 보지 않아서 알지 못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사키; 지금 어느 사막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잖습니까?  S. A. 헤딘(1865-1952)이 탐험한 20세기 초 무렵에는 현재는 말라 붙어 있는 로프노르 호수는 가득한 물로 칭송되었기 때문에……


사토; 네,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조사하고 있는 건 타림 분지의 동쪽 끝입니다. 여기는 실크로드의 길가이고, 예전에는 꽤 인구밀도가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사키; 아까 알타이 산맥의 남쪽에 동서로 지나는 천산산맥이 있고, 그것과 티벳 고원의 북쪽을 경계짓는 곤륜산맥 사이에 있는 타밀 분지는 지금은 아주 건조한 지대이지만, 2000년 정도 전에는 분지의 동쪽 끝에 누란왕국이란 오아시스 국가가 번영했던……


사토; 그렇습니다. 게다가 누란의 아직 전의 시대에, 역시 맥류 농경이 있었지요. '소하묘'라는 유적인데(그림4-7), 새삼스럽게 강좌에 몇 번이나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밀의 종자와 기장의 종자와 함께 소의 모피와 머리뼈, 양과 염소의 뼈가 다량으로 출토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사막이라 부르는 저 풍토에도 역시 역사성이 있어서 누란 시기는 이미 건조함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는 꽤 많은 사람이 농경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목축도 하고 있었겠네요.



그림4-7 소하묘 유적(2008년 9월 촬영)




사사키; 그래서 조금 뒤의 당나라 때에 인도로 향하던 현장삼장도 지금 같은 상태의 사막을 지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토; 그렇게 생각하네요. 그가 고창국高昌國을 지났던 때 마중을 많은 사람이 왔지요. 환영 인파에는 여성이 수십 명이나 왔고, 스님도 수천 명이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만약 그 이야기가 어느 정도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고 해도, 한 나라를 뒷받침하는 농목업이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사키; 타림 분지를 지나 '인도로 가는 길'도 천산산맥의 남과 북쪽 기슭을 지나는 '비단의 길'도 예전에는 풍요로운 오아시스와 초원을 동반하는 것으로, 그곳에서는 맥류와 함께 기장과 조 등의 잡곡류가 재배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도 북쪽은 지금은 밀 지대이지만, 원래는 호밀과 귀리를 농사짓고, 오트밀 같은 거친 죽, 거기에 조와 기장 등이 들어간 걸 먹었다고 생각합니다. 북방 유라시아의 동서는 이처럼 맥류와 잡곡의 거친 죽이란 식문화를 가진 농경지대와 결합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죠.


사토; 그렇지요. 그 위에 사막이란 건조의 풍토가 올라타서 목축업 같은 것이 들어왔다. 


사사키; 북쪽에 관하여 말하면, 에니세이강 상류의 타가르 문화기(기원전 10-8세기)에 말이 나오게 되지요. 그 무렵에는 재갈(말의 입에 물려 고삐를 붙이는 도구)이 출현하고, 승마 기술이 발달하며, 그것과 단궁을 쓰는 '기사'의 전술이 한묶음이 되어 전투적인 기마유목민족 문화가 형성된다. 그 뒤 몇몇 민족의 흥망을 거쳐 기원전후에는 어느 종의 목축민에 의한 권력구조가 생겨납니다. 그와 함께 그 권력구조를 뒷받침하는 맥류와 잡곡의 농경이 북방의 초원지대에 존재하고, 그 농경이 동북아시아까지 도달한다는 데 주목하고 싶네요.

여기에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앞에 기술했듯이 동남아시아의 도서부는 원래 뿌리작물 농경의 지역입니다. 저는 그 일부, 동인도네시아의 핼마헤라섬이란 곳에서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적도에 가까운 섬으로, 바나나와 덩이뿌리 종류를 주작물로 하는 전형적인 뿌리작물형 화전 농업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보면, 카사바를 재배하는 밭에 할머니가 수확하러 와서 수확한 카사바의 일부를 그곳에 곧바로 심는 겁니다(그림4-8). 고온다습한 열대 산림 지역이면서 1년 내내 언제나 심기와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수확과 심기가 연속하는 농법이 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바나나 등도 그러한 재배법에 가깝죠. 바나나에는 고정된 수확기란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얻을 수 있고, 언제나 포기 나눔을 할 수 있습니다. 즉, 뿌리작물 농경이란 것에는 기본적으로 명료한 수확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장도 없다.

그런데 종자 작물의 지대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종자 작물에는 반드시 정해진 파종기와 수확기가 있어서, 그 수확기를 중심으로 해서 수확 축제가 있고, 수확의 풍성함을 기원하는 의례가 영위되며, 그것을 주관하는 사제가 생긴다. 그래서 그 사제와 왕이 한묶음이 된 사제왕 같은 것이 출현해 왕권이 형성된다.



그림4-8 화전에서 카사바의 수확과 심기(인도네시아 핼마헤라섬 1976년, 사진: 사사키 다카아키) 카사바의 덩이뿌리를 수확한 뒤 이어서 그 일부를 잘라서 심는다. 수확과 심기 작업이 여기에서는 일련의 작업으로 행해진다.



사토; 그렇죠. 또, 종자번식 식물의 경우에는 종자를 저장할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하지요. 


사사키; 네 네, 그 저장을 대량으로 껴안은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지요. 그런데 수확기가 확실하지 않고, 저장도 안 하는 뿌리작물 농경의 세계에서는 권력이 발생하는 계기가 부족하다. 따라서 왕권이 발생하고, 왕국이 나타나는 일이 거의 없다. 본래 뿌리작물 농경 지대에는 그러한 권력구조가 나오지 않는 것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토; 뿌리작물 식물은 진화가 매우 느리네요. 식물학적으로 말하더라도 그렇고, 영양번식을 되풀이하는 한 예외는 없겠지만 대부분 진화하지 않지요. 즉, 포기 나눔을 하면 몇 번을 반복해도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조합은 쭉 마찬가지이지요. 그러하면 유전적인 개량, 즉 품종개량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것도 역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종자번식 식물에서는 인간이 품종개량을 하겠다는 의지가 작용하면 그에 응하여 유전자의 조합이 얼마든지 변화하여, 그것으로 생산성을 유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왕권의 기초가 되는 수확물의 저장이라든지 증식이 인간의 의지에 대하여 잘 반응하는 거지요.


사사키; 그러니까 그러한 점에서는 유라시아 전체를 보아, 농경이 크게는 동과 서, 서의 맥류, 동의 벼라는 모습으로 대비할 수 있겠는데, 벼라는 건 어딘가에 영양번식적인 성격을 끌어당기고 있는 바가 있다. 그것에 대해 남쪽은 완전한 뿌리작물 농경 지대, 북쪽은 목축에 상당히 의존한 농경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문제는 잡곡입니다.


사토; 잡곡에서 일본인에게 가장 친숙한 것이 피와 조이죠. 피에 대해서는 이전 교토대학에 계신 사카모토 사다오阪本寧男 씨가 일본 원산설을 발표했는데, 조도 동북아시아 기원이란 설이 한때 강했지만 저는 저것은 의심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요즘 미국에서 인도를 연구하고 있는 동료의 연구실에 갔더니 "나는 25년 전 태국에서 조사했을 때의 조 종자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 수확물을 보았는데 확실히 조 같습디다. 그것에 사사키 선생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조는 동남아시아부터 남아시아에 걸친 지역에서도 매우 흔하게 재배하고 있습니다.


사사키; 조는 조금 전 사진에서도 있었네요. 


사토; 네, 그림4-1의 오른쪽에서 두번째입니다. 분명히 조는 한편으로는 어쩐지 북방 문화의 정취가 있지요. 그런데 아까 태국에서 행한 연구에서는 열대에도 조가 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간단히 북방기원설이 좋을지.


사사키; 조의 분포는 열대 아시아 전역에 걸쳐 있다고 이전부터 잘 알려져 있어서, 제가 조사한 핼마헤라섬에도 재래종 조가 있습니다. 아무튼 조라는 것은 고고학적으로도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어요.


사토; 그런 것 같네요. 그리고 기장도 그렇지요. 도대체 잡곡의 계통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습니까?


사사키; 간단히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좀 더 정리하자면 피는 분명히 아주 오래된 것은 아시아 대륙에서 출토되지 않는다. 홋카이도 대학에 계신 요시자키 쇼吉崎昌一(1931-2007) 씨는 부유선별법이란 방법으로 발굴된토양을 물로 씻어서 그것을 0.45mm라는 매우 가느다란 망으로 선별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 가지 종자의 파편 등이 나와서, 그것을 현미경으로 보고 동정하는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 요시자키 씨에 의하면, 홋카이도에서 도호쿠 지방의 북부에 걸쳐서 조몬시대의 전기 무렵부터 피가 출토되기 시작한다. 그 출토 종자는 시대가 지나면서 점점 커져, 조몬 중기부터 후기가 되면 재배 피라고 생각되는 것이 출토된다. 그것을 '조몬 피'라고 그는 부르고 있습니다. 피는 꽤 일찍부터 일본 열도에서 재배화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토; 그렇게 생각합니다. 연해주까지 넣어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사사키; 조에 대해서는 사카모토 씨는 광범위한 현장조사와 재배실험을 행하여, 아프가니스탄부터 인도 북부에 걸친 지역이 지원지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북의 황토 대지의 페이리강裴李崗과 츠산磁山 등 약 7000년전이라 하는 옛 유적에서도 조 또는 피라고 추정되는 잡곡이 돼지의 유골과 함께 출토되고 있습니다.


사토; 요녕성 인근에서도 매우 오래된 조가 출토되고 있지요.


사사키; 유라시아의 여기저기에서 조는 오래전 시대의 것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것은 다시 한번 DNA라든지 무언가로 정확히 그 품종과 계통을 재조사하면 좋겠다.


사토; 조금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최종 빙하기 이전의 작물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사사키; 그건 있다고도 없다고도, 잘 말하겠지만서도. (웃음) 아무튼 조라는 작물이 꽤 오래된 것이고, 유라시아 농경사에서도 중요한 작물이란 점은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 재배되고 있는 옛 품종이 없어졌기 때문이죠. 일찍 조사하지 않았고……. 어쨌든 유라시아 대륙의 조는 북쪽으로 분포가 확산된 조와 남쪽으로 확산된 조라는, 최소한 두 계통이 있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사토; 그건 사카모토 씨도 이야기하셨죠. 그리고 피도 그렇나요?


사사키; 사카모토 씨는 아이누에서 재배되는 옛 피를 보면, 그것은 아프가니스탄 인근에서 재배되는 피와 매우 비슷하다고 합니다. 즉, 북회노선의 조, 피와 남회노선의 그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꼭 조사해 주세요.


사토; 그것은 많이 있지 않습니까? 밀도 아무리 보아도 북회노선, 즉 지금의 실크로드보다 더 북쪽의 경로로 전파되었다고 생각되는 계통의 것과 남쪽에서 왔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사키; 예를 들어서, 최초로 이야기를 꺼냈던 타카하시 류헤이 씨가 연구한 보리의 E형과 W형이 있는데, W형의 보리는 유라시아의 북쪽 회랑을 지나서 동쪽, 즉 동북 일본에까지 왔지요. 한편 남회노선의 E형이란 건 중국 대륙에서 서일본으로 건너왔을 가능성이 높다.



남북으로 나눌 수 있는 일본의 농경


사사키; 그러한 점을 생각하면 일본이란 곳은 유라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데도, 그 까닭에 유라시아의 농경사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네요. 그림4-9는 동아시아의 식생을 주로 <중국식피中國植被>(1980년)을 참고하여 그렸는데, 중국 대륙에서는 장강 유역을 경계로 그 북쪽이 낙엽광엽수림대(졸참나무숲지대. 전형적인 건 신갈나무≒물참나무를 중심으로 하는 온대낙엽광엽수림대), 그 남쪽은 상록광엽수림대(조엽수림대)를 이루고, 그 졸참나무숲지대와 조엽수림대는 일본 열도의 동북부와 서남부에도 이르며, 이 열도의 문화와 농경의 지역차를 만들어내는 기초적인 조건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몬시대의 인구 분포를 보아도 그 인구의 대부분이 동북일본의 졸참나무숲지대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정주를 하고 식량 비축이 풍부한 그 문화의 특색은 동북아시아의 졸참나무숲지대의 풍요로운 수렵채집민 문화의 그것과 공통되는 점이 많고, 동북아시아와 깊은 관련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림4-9 동아시아의 식생과 조엽수림 문화와 졸참나무숲 문화의 분포. 식생의 분포는 주로 <중국식피>에 따른다. 옛 만주를 중심으로 한 낙엽광엽수림대는 물참나무와 비슷한 신갈나무를 중심으로 한 산림대이고, 아무르강 유역과 연해주와 사할린의 아한대침엽수림도 실제로는 침광금강수림의 모양을 취하는 곳이 많고, 일부는 신갈나무를 중심으로 한 졸참나무숲지대와 비슷한 경관을 나타내는 곳이 적지 않다.




사토; 서장의 그림-2는 일본 열도에서 전개된 전통적인 농경의 지역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곳에 실선③이란 선이 있지요. 이것이 위의 지도에서 보시듯 보리의 W형과 E형의 경계선이고, 선의 동북쪽이 W형, 서남쪽이 E형인 보리의 분포 구역입니다.


사사키; 그밖에도 선과 표시가 적혀 있지요?


사토; 네, 무엇을 가리키는지, 어느 시기인지에 따라서 이세만과 와카사만을 연결한 선으로 경계를 이루고, 태평양 쪽과 일본해 쪽을 나누는 선으로 구분된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구별하여 정리한 겁니다.

그런데 우선 명확한 건 벼이지요. 조몬 벼농사의 존재가 증명된 유적은 '이세만-와카사만' 선(실선②)의 서쪽이네요. 동쪽에 요시자키 씨가 찾아낸 조몬의 쌀이 하나 있지만, 전체의 경향으로 말하자면 조몬의 벼농사는 이 선의 서쪽에서 전개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사키; 요시자키 씨가 발견한 건 실선②의 동쪽 가운데 가장 북쪽, 하치노헤시 카자하리風張 유적의 조몬 후기 주거터에서 나온 쌀인데, 벼가 출토된 건 없어요. 아마 그 쌀은 서일본에서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몬의 벼농사는 동북일본에는 없었다고 생각해도 좋은 거지요.


사토; 쌀은 있어도 벼농사가 있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몬시대에 벼가 재배되었단 건 이 서쪽, 즉 서일본에서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사키; 그러니까, 조몬시대의 곡물에 대하여 말하면 일본 열도의 동북쪽은 피였을지도 모른다.


사토; 피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피에도 두 가지가 있어서, 동(북)의 피는 돌피(Echinochloa crus-galli)라는 재배형 피입니다. 유전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4배체입니다. 한편, 서쪽의 피는 물피(Echinochloa oryzicola)라는 논의 잡초, 6배체의 종이란 구별이 있습니다.


사사키; 이 동쪽의 피, 서쪽의 벼라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요시자키 씨가 이미 기술해 놓았지요.


사토; 그 다음에 재래종 보리 가운데 좀 전의 E형 보리라는 것이 서남서 일본에 주로 분포하고, W형 보리가 동북 일본, 특히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방의 북부에 퍼져 있었어요.


사사키; 맥류만이 아니고 아시다시피 야마가타 대학 교수였던 아오바 타카시青葉高(1916-1999) 씨가 연구한 재래종 순무에 대해서도 서양종 계통의 순무와 일본종 계통의 순무라는 두 종류가 있어서(그림4-10), 서양종 계통의 순무는 보리의 W형과 마찬가지로 시베리아에 연결되고, 일본종 계통의 순무 그것은 중국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밖에도 우엉이라든지 삼, 파, 유채 종류 등은 산나이마루야마三內丸山 유적을 시작으로 몇 개의 조몬 유적에서도 출토되고 있습니다.



그림4-10 서양종과 일본종 계통의 순무 분포. 서양종 계통의 순무는 지도의 바깥, 도호쿠 지방의 일본해 연안에 많은 걸 알 수 있고, 옛날 대륙엣 직접 건너왔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일본종 순무는 서일본에 퍼져 있다. 교토의 전통식 절임인 센마이즈케千枚漬는 이 일본종 순무로 만든다.



  

 그러한 것은 모두 북쪽에 계통적으로 이어지는 작물이고, 저는 이들에 북회노선의 조와 피 등을 더하여 '북방계 작물군'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이 북방계 작물군으로 상징되는 북쪽에서의 농경이 있었지요. 그것은 일본 열도에서는 낙엽광엽수림대, 즉 졸참나무숲 지대의 동일본부터 북일본에 펼쳐지고, 벼를 중심으로 일본종 계통의 순무와 쌀보리(E형 보리) 또는 남회노선 계통의 조와 피 및 토란 등으로 상징되는 농경이 조엽수림대, 즉 서쪽부터 남쪽으로 이어졌다고 하는 것이네요. 


사토; 그리고 생쥐의 계통 안에 무스(Mus)형이라 부르는 것과 카스타네우스(castaneus)형이라 부르는 것 두 가지 유형이 있어서, 쥐의 유전학을 연구하고 있는 이화학연구소의 모리와키 카즈오森脇和郞 씨에 의하면, 도호쿠 지방을 남북으로 분단하고 있는 선의 북쪽은 카스타네우스형이고 남쪽은 무스형이라고 합니다.


사사키; 일본의 농경은 전통적인 재래 작물의 특색으로 보아 북쪽 계통과 남쪽 계통 두 가지에 의하여 이루어져 왔지요. 그런데 조몬시대의 말, 야요이 시대의 시작 무렵에 아까도 서술했던 논벼농사를 수반한 벼농사 문화가 건너와서 일본 열도의 서쪽부터 퍼졌기 때문에, 재래 작물의 동서차, 남북차가 매우 희박해져 버렸던 겁니다. 어느 쪽이든 일본 열도 농경문화의 기층에는 유라시아의 북과 남으로 연결되는 계통의 서로 다른 두 가지 농경의 전통이 있다고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하네요.


사토; 그렇지요. 그 차이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이상으로 크다고 생각하네요. 그래서 도호쿠예술공과대학의 아카사카 노리오赤坂憲雄 씨가 "여러 가지 일본"이라 말하듯이 똑같은 일이 재배식물과 식문화, 농경문화 같은 측면에서 보아도 역시 동북 일본의 문화와 남서 일본의 문화라는 명확히 이질적인 것이 공존하고 있어요.  


사사키; 동일본과 서일본에서 언어와 습속, 사회 및 그외의 여러 가지 점에서 지역차가 있는 건 모두 많은 사람에의하여 지적되지만, 그 배후에는 유라시아 농경문화의 계통 차이가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토; 그렇지요, 반영되어 있습니다. 일본 열도에서는 말에도, 문화에도, 인간에도 지역차가 있었을 텐데, 대립 등이란 것을 말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구별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일종의 세계화에 의하여 뒤섞여 버렸겠죠. 


사사키; 서일본의 농경문화라고 하면, 일본 열도에서 뿌리작물 농경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주목하게 됩니다. 

뿌리작물 농경에 상세한 서남일본식물정보연구소의 소장 홋타 미츠루堀田滿 씨에 의하면, 열대 계통의 2배체 미가시키ミガシキ군의 토란과 열대 계통 참마 다이죠ダイジョ의 분포가 중국 남부지방과 필리핀부터 류큐 열도를 따라서 북쪽으로 뻗어서 큐슈와 시코쿠 남부에 이른다고 합니다. 사실 고치현 해안부를 중심으로 열대 계통의 참마 야생종의 하나인 니가카시우이모ニガカシウイモ가 식물로 분포하고, 예전에는 물에 담가서 식용으로 이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 열대 계통의 덩이류는 아마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대만과 류쿠에서 전파되어 온 것으로, 열대에서기원하는 뿌리작물 농경문화의 일부가 직접적으로 남방에서 전래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정말로 일본이란 곳은 아시아 안에서 경계인 곳이지요.


사토; 그렇네요. 경계인데, 경계이기 때문에 농경문화 그것이 매우 풍부하다고 생각되네요.



'풍부한 농경'이란?


사사키; 지금 농경이 '풍부하다'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어떠한 농경이 '풍부한' 것입니까? 예를 들면, 미국의 면화 지대, 옥수수 지대에서는 옥수수와 면화를 집중적이고 대량으로 농사짓고 있습니다. 생산량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합니다. 그것은 농경으로서 '풍부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사토; 이 프로젝트를 종합지구환경학연구소에서 시작한 의향은 지금의 농업은 단기적(몇 십 년)으로는 풍부할지 모르지만, 백 년, 몇 백 년이란 단위에서 보면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는 측면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냉해가 있어 돌연 병과 해충에 의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괴멸적인 일이 일어날 수도 있죠.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즉 백 년, 이백 년, 삼백 년 같은 기간으로 생각해 보면, 이러한 대규모 단작(모노컬쳐)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네요. 이것은 현대의 일본 논을 고려해도 그렇습니다. 논벼농사는 매우 지속적이라고 모두 말씀하십니다. 그럼 지금의 논을 보고 지속적이냐고 말할 수 있는가 하면, 저는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사키; 그래서 다시 한번 묻고 싶은데, 지금 우리는 옛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느 쪽이냐 하면 역사적으로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시야에서 본 농경이란 것을 생각하면, 농경이란 것은 순환형이고 안정되어 있는 것을 본래 농경의 모습이라 생각해요. 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입니다. 밭농사의 경우에는 앞에도 기술했듯이 유럽 중세의 삼포농법에서는 돌려짓기를 행해 농지를 묵혀 가축을 방목하여 농지의 비옥도를 유지했다. 삼포농법은 유럽만이 아니라 네팔에서도 논과 밭의 그루터기에 방목을 행하여 일종의 삼포농법을 하고 있습니다(그림4-11). 휴한지 방목을 하는 겁니다. 



그림 4-11 네팔의 농목 경관(사진: 사사키 다카아키)

(위) 밭의 구역을 나누는 가축담. 중부 네팔 시카 마을의 가축담과 경지(1963년 9월). 마을 아래에 가로로 길게 이어지는 곳이 농지 구역을 나누는 나무 울타리에 해당하는 돌담. 돌담 아랫부분의 농지 구역에서는 옥수수의 수확이 끝나고, 그루터기에 가축 무리를 넣는다. 돌담보다 위는 향모의 경지로 아직 수확이 끝나지 않았다.

(아래) 논 그루터기의 방목. 가라 마을의 논 그루터기 방목(1963년 10월). 논의 그루터기에 일제히 방목하는 소의 무리. 가설된 가축의 우리가 두 개 보인다. 방목은 밀의 파종기까지 이어진다.




사사키; 소와 물소를 베어낸 그루터기에 넣는 겁니다. 마을 안에서 가축담으로 에워싼 농지 구역이란 곳이 몇 군데 있고 그 농지 구역마다 작물의 재배와 휴한 방목에 대한 규칙이 있어 휴한기에는 가설한 가축의 우리를 설치해 방목하는 일종의 삼포농법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밭농사라는 건 어떠한 형태로 목축과 연결되어서 경작과 휴한 체계가 있고, 그것이 정확히 기능하는 한 농경은 안정적으로 영위될 수 있는 것이지요.

화전 등에서도 그렇습니다. 화전은 최근에는 환경파괴의 원흉 등이라 이야기되고 있지만……


사토; 그건 터무니 없이 잘못된 의론이네요.


사사키; 전통적인 화전을 보면 숲을 벌채하고 불을 놓아서 화전 경지를 만드는데, 전통적인 화전민들은 벌채하기 전에 의례를 하는 게 보통입니다. 예를 들어 고치현의 이케가와 마을(池川町) 등에서 조사한 바로는 불을 놓기 전에 '오타노미おたのみ'라고 부르는 산신에게 기도합니다.

"기어서 도망가는 건 기어서 도망가 주시고, 날아서 도망가는 건 날아서 도망가 주세요. 산신 님, 땅신 님, 부디 지켜 주세요."라고(그림4-12).

화전민들은 화전을 하는 동안만 산신에게 토지를 빌린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땅 동냥'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그동안 예를 들어 큐슈의 화전민은 산신을 '세비せび의 가지에 모신다. 그 세비의 가지라는 건 화전 경지의 가장 큰 나무의 꼭대기입니다. 그곳에서 산신이 잠깐 쉰다. 화전의 경작을 마치면 산신에게 다시 한번 원래의 산과 숲으로 돌려준다고 화전민들은 생각합니다. 결코 산과 숲의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를 잠시만 신에게서 빌려 화전을 경영한다는 사상입니다.  


그림4-12 화전의 불을 놓기 전 산신에게 간절히 기도(고치현 이케가와 마을 츠바야마椿山 1970년 4월, 사진: 사사키 다카아키) 전통적인 화전민들은 화전을 만들기 전에 산신에게 잠시 물러나 주기를 기원하고, 작업의 안전을 기원한다.




사토; 그림4-13은 라오스의 사진인데, 저도 역시 보러 갔지만 숲을 벌채하기 전과 씨앗을 뿌리기 전에 반드시 의례를 하고 있지요. 라오스의 사람들은 '피'라는 정령을 믿어서, 화전 전에는 꼭 피에게 기도를 드린다. 기도를 드려 피에게 힘을 빌린다는 허락을 얻는 겁니다.



그림4-13 하늘에서 본 화전 경지. 라오스 루앙프라방 부근에서




사사키; 그것은 제가 조사한 핼마헤라섬의 화전민들 역시 똑같았죠. 그곳에서는 숲에 모로라든지 멧키라는 숲의 정령이 있어서 이 숲의 정령에게 "화전을 하는 동안만 토지를 빌려 주세요. 화전이 끝나면 돌려주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화전 경지 안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를 '왕의 나무'라 부르며 벌채하지 않고 남겨 놓는다. 화전을 경영하는 동안 그곳에서 정령들이 잠을 잔다는 관행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제사를 잘 남기고 있는 화전민의 바탕에는 반드시 휴한기간을 충분히 두어서 화전이 버려진 뒤에 숲의 식생이 잘 회복되어 다시 숲으로 돌아가서 화전을 또 할 수 있게 됩니다.


사토; 즉, 가축의 대신에 식물이 윤회하는 거지요.


사사키; 그런데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자바섬의 인구가 매우 과잉이 되어 그곳에서 농업 이민이 칼리만탄 등으로 송출되네요. 그런데, 농업 이민은 신을 모두 고향에 놔둔다. 그래서 신이나 정령과 관계없이 숲을 벌채하고 불을 붙여 태우고, 그곳에서 농지를 만들어 농경을 합니다. 그들은 개척민이기에 숲을 신과 정령에게서 빌려서 이용이 끝나면 또 돌려준다는 정신이 없는 겁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개간을 하기 때문에 순환적인 농법이 아니게 되고, 그 결과 숲이 사라져 못쓰게 된다. 이런 종류의 영구적인 경지를 만드는 농업 개간(개척)에 따르는 불 놓기와 본래의 화전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화전 농경이란 건 본래는 순환형으로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농법입니다.


사토; 그렇습니다. 그림4-13은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근처를 지나며 비행기에서 찍은 것인데, 허옇게 보이는 곳이 올해 벼를 심은 곳이지요. 조금 색이 옅은 곳이 지난해 그 전에 벼를 재배하고 올해는 휴한을 하는 곳이고, 좀 더 색이 짙은 곳이 몇 년 전에 화전이었던 곳입니다.


사사키; 더 짙은 곳은 식생이 완전히 회복되어 숲이 되었다.


사토; 그렇지요. 휴한하고 십 년, 십오 년이 되었다. 


사사키; 그러나 이 풍경은 화전으로 이용하는 장소가 양으로는 좀 너무 많네요.


사토; 좀 너무 지나칩니다.


사사키; 좀더 숲의 식생이 풍부하고, 숲의 면적이 넓은 곳에서 화전을 하는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화전의 비율이 과밀하지는……


사토; 않지요.


사사키; 이곳은 좀 토지이용이 과잉이고, 지나친 경작으로 좋은 숲이 점점 사라진다.


사토; 그렇지요.


사사키; 사실은 양호한 숲의 비율이 더 많으면 더욱 풍부한 화전을 경영한다. 본래 화전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완전한 순환형 농경일 텐데.


사토; 완전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삼포식 농업의 경우에는 가축의 배설물을 썼다. 동남아시아(계절풍 아시아)의 경우에는 무리 가축의 사육이 적기에 배설물도 적을 테지요. 그것을 대신하려고 식물성 소재를 쓰는 농경 체계를 탄생시킨다. 


사사키; 네 네, 식물의 힘으로 토지의 비옥도를 원래로 되돌린다. 그를 위해서는 휴한기간이란 것이 의외로 의미가 있지요. 휴한지에는 여러 가지가 생겨 납니다. 


사토; 약을 얻는다든지, 지붕의 재료를 얻는다든지, 새끼줄과 고삐가 되는 식물 섬유를 모은다든지 하지요. 그러니까 그 지역 사람들은 휴경지가 생산성이 없는 토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사키; 차가 자란다든지, 고사리와 칡이 자란다든지, 그것을 먹을거리로도 삼지만 두드려서 의복의 재료로도 쓰는 쐐기풀 따위가 자라기도 하지요. 휴한기간이란 건 숲 그곳이 회복함과 함께 그동안에 생활필수품을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전이란 곳은 일반적으로 작물을 한 종류만 키우지 않고 주작물 외에 다양한 작물을 뿌리거나 심거나 합니다.


사토; 그림4-14 같은 상태이지요.



그림4-14 화전 작물의 다양성. 라오스 루앙프라방 근처에서.




사사키; 여러 가지 있지요.


사토; 조금 조사해 보았습니다. 타로 토란이 있고, 카사바, 오이, 참깨, 레몬그라스, 10가지 종류 정도의 작물은 간단히 꼽을 수 있지요.


사사키; 화전에서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은 매우 다양하고, 전체가 균형을 잘 이룬다.


사토; 그렇습니다. 게다가 콩류와 곡물을 함께 재배하면 콩이 공기의 질소를 고정시켜 좋은 거름으로 바꾸어주기에 그러한 힘도 빌리면서 현명하게 농업을 하게 되지요.


사사키; 화전만이 아니라 본래의 농업이란 것은 매우 다양성을 가지고 순환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논 이야기로 돌아가서, 논도 지금은 벼만 농사지어 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사토; 옛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요. 가장 큰 건 수생 동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그림4-15의 사진을 보아 주세요. 이것은 아십니까? 인도네시아의 셀레베스섬에서 찍은 건데, 논 한가운데에 둥근 구멍이 있고 그곳만 깊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모내기할 때 물고기도 함께 놓아주고, 물고기에게 잡초를 먹게 합니다. 물고기가 똥을 싸기에 벼에도 좋다. 가을이 되어 수확철이 되어 벼를 수확하고 물을 빼면 물고기는 깊은 구멍의 양어지인 곳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림4-15 셀레베스섬의 벼논양어




사사키; 그리고 꼼짝않고 월동한다. 구멍 속에서 이듬해의 모내기까지 기다리지요.


사토; 그렇습니다. 때로는 이 작은 못에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 새가 오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 안에 마른 대나무 가지를 놔두지요. 대나무의 마른 가지를 두어, 이것이 아프기에 새가 오지 않는다. 잘 되고 있어요.


사사키; 아무튼 벼논양어라는 건 계절풍 아시아의 논 지대에서는 어디에서나 하고 있다. 중국 서남부의 소수민족, 특히 구이저우의 묘족 등은 그 논에서 기른 물고기를 재료로 하여 식해를 만듭니다. 이와 같은 식해가 오늘날 초밥의 원조이지요.


사토; 논에서 전분도 얻고, 단백질도 얻는다. 이 체계가 계절풍 아시아의 농경 방식이라고 생각하네요. 저는 '쌀과 물고기의 동소성'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사사키; 그래서 순환형이 되어 균형이 잡힌다고 하지요. 그런데 농약 등을 넣으면 그 균형이 무너져 사라진다. 그러니까 그러한 균형 잡힌 순형형이고 다양성을 잘 보전하는 것이 농경의 본래 모습이라고 생각하네요.



농업의 다양성


사토; 그렇게 생각해요. 그것을 말하면 생산성이 어떻다든지, 일본의 총인구를 먹여살리는 방책이 아니라든지, 곧바로 불만스런 이야기를 듣겠지만, 생각해 보면 농약을 치는 돈도 들지 않고, 농약이 소비하는 이산화탄소도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지구환경을 위해서는 결코 나쁘지 않을 거예요. 잘 생각할 수 있다.


사사키; 그러한 본래의 순환형 농경의 상태는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상에 입각하면 부정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 대규모 단작으로 앞에 서술한 미국의 옥수수 지대와 면화 지대 같이 되어 버리면 이번은 인공 비료를 연속적으로 계속 투입하게 되는데, 그래서 결국 토지가 피폐해져 생산성이 견디지 못하게 되어 버리죠.


사토; 그렇습니다. 견디지 못하게 되고, 생산량은 오르지만 투입량도 굉장하지요. 그래서 머지않아 파탄날 때가 옵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는 대규모 단작으로 놔두면 무엇인가 있었을 때에……


사사키; 한번 병이 발생하면 모두 쓸모없게 됩니다.


사토; 그것을 인류는 언제나 경험해 왔지요.


사사키; 당신의 연구 프로젝트 제목은 '농업이 환경을 파괴할 때'라는 것이었지요.


사토; 네. 우리들의 프로젝트는 환경의 역사를 차근차근 밝혀서 인류의 미래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지구연의 '문명·환경사'라는 프로그램(연구영역)에 속하고, 특히 여기 1만 년의 농업과 환경의 관계를 밝히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구반을 가동하기 전부터 알려져 있었던 것인데, 인류사 가운데 농업생산은 언제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때로는 대기근과 그에 수반한 인구의 격감, 유출 같은 이른바 '붕괴'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들 '붕괴' 사례를 상세히 조사하면 농업이 무언가 나쁜 일을 하여 그를 빌미로 그렇게 된 사례가 많습니다. 연구반으로서는 여러 가지 풍토를 기반으로 그러한 붕괴가 왜 생겼는지 그 과정을 해명하는 속에서 복잡하게 얽힌 요인 하나하나의 인과관계를 시계열로 정리해 간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농업이 나쁜 일을 한다고 생각되는 사례 가운데 큰 이유가 되는 것의 하나로 '다양성의 상실'이 있습니다. 다양성이란 생태계 안에 여러 가지 생물이 있는 상태, 또는 하나의 작물 안에도 여러 가지 품종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라질 때 붕괴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가설을 세운 겁니다. 그리고 대규모 단작은 그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가설인 표현이지만……


사사키; 그래서 농업에서 다양성이 사라지고, 순환적 안정성이 사라질 때에는 정말로 그것 자체가 환경을 파괴하게 된다.


사토; 그렇습니다.


사사키; 그러하다면 현재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웃음)


사토; 그것은 이 프로젝트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3년이 남아서 3년 안에 생각한다는 건데, (웃음) 잘 나아가는 것이 그럼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비판하지만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란 건 최근 여러 가지가 개발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벼를 예로 들면 갖가지 품종을 뒤섞어 놓는다. 이것만으로도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콩과 벼를 함께 심어 놓는 새로운 방식도 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예전의 생활 속에 남아 있던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사키; 전통적인 지혜를 어떤 방법으로 잘 현대에 살릴지 하는 것이겠네요. 적어도 부시 전 대통령처럼 "옥수수를 모두 연료로 만들어 돈을 버세요"라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세계의 식량이 충분하지 않을 때 옥수수를 연료로 쓴다고 하는 건 상식을 벗어난 발상이라 생각합니다. 저것은 옥수수의 가격이 싸기 때문에 그걸 높이려고 한 말인 듯한데, 그렇다면 말이 안 됩니다. 중요한 건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농업과 먹을거리 전체의 균형을 어떤 식으로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인지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토; 그렇지 않으면 지속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요. 그림4-16을 보아 주시겠습니까? 사사키 선생도 이 그림을 기억하고 계실 거라 생각하는데, 나카니시 타츠토시中西立太 씨라는 화가에게 야요이 시대의 논벼농사 복원도를 그려 달라고 한 것이지요. 아래가 옛날판이고, 위가 최신판입니다.



그림4-16 야요이 시대의 논벼농사 상상도


사사키; 이것은 주간 아사히 백과의 <일본의 역사>에 저와 고고학자인 사하라 마코토佐原眞(1932-2002) 씨가 야요이 시대에 행해진 벼농사의 구체적 모습을 그려 달라고 한 것으로, 맨 먼저 나카니시 씨에게 그려 달라고 한 게아래 그림이고 약 20년 전의 초판(1987년)에 게재했습니다. 위의 그림은 그 뒤 사토 씨와 함께 작업한 것으로, 2003년 신정증보판에 게재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그림에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위 그림의 오른쪽 아래와 중앙부의 윗부분에는 잡초가 가득 자라고 있습니다. 20년 전의 아래 그림에서는 휴경 논이 있다는 등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논은 온통벼를 농사짓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꽤 휴경을 하여 그 휴경 논에는 잡초가 가득 자라고 있었단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잡초가 자란 휴경 논이 있는 모습의 그림으로 변경된 겁니다. 


사토; 예, 휴경 논의 발견이네요.


사사키; 그와 같은 점을 우리는 매우 강조한 겁니다. 기존에는, 라기보다 지금도 일본의 고고학자들은 일본의 논에서는 휴경지 등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토; 저것은 어떤 것이죠. 난폭하군요.


사사키; 그건 열심히 해서 제가 발굴하고, 그곳이 휴경 논으로 벼를 재배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실망하지 않을까요?


사토;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의 하루나리 히데지春成秀爾 씨에게 혼났습니다. (웃음) "벼를 재배하지 않는 논이 있는 등, 당신은 그런 실례되는 말을 합니까"라고 이야기를 들었네요. 뭐, 그럴지도 모릅니다. 


사사키; 그런데요, 우리도 포함해서 지금 일본의 모두는 논이라 말할 때 떠올리는 인상은 황금빛으로 익어서 눈에 들어오는 논입니다.


사토; 그렇지요. 저것은 농약과 화학비료와 트랙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즉, 지금의 농업은 완전히 석유로 만들어진다. 그 세 가지가 몰수된다면 에도시대의 농민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납작 엎드려 김매기를 계속 하지 않으면……


사사키; 에도시대의 논에는 말린 정어리 등의 거름을 꽤 넣고 있었지요.


사토; 물론 넣었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환경이란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벼농사를 계속 할 수 있을지 하는 것이지요.


사사키; 이것은 그림에는 없었던 것이지만, 당시의 벼농사라는 건 홑짓기가 아니다. 많은 종류의 벼를 하나의 논에서 재배하고 있었다. 그 많은 종류의 벼는 수확할 때 밑동을 베는 게 아니라 이삭을 베었던 것이 확실해요.


사토; 밑동을 베게 된 것은 좀더 뒤의 일이었지요. 옛 시대는 이삭 베기였죠. 


사사키; 저는 일찍이 네팔에서 향모의 이삭 베기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작물 각각의 익음때가 다르다. 지금처럼 품종이 통일되어 있지 않기에, 알곡이 성숙하는 시기가 제각각이지요. 이건 덜 익었으니 앞으로 일주일 뒤에 베는 등으로 이삭을 보고 베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삭 베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옛 시대의 벼도 익음때가 일치하지 않아, 이삭 베기를 했습니다. 실제로 이삭을 베는 용도의 돌칼도 많이 출토되어 있습니다. 거기까지 이 그림4-16에는 묘사할 수 없었지만, 벼의 품종은 매우 다양했을 겁니다.


사토;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오스의 화전에서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하나의 밭 안에 적어도 아홉 종류의 벼가 검출된 일이 있습니다. 사정은 예전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사키; 그리고 잡초가 가득 자란 논, 즉 휴경 논이 그 근처 안에 많이 있었던 게 실태이지요.


사토; 그렇습니다. 잡초 투성이라서 다양합니다. 그리고 해충이 오는 등으로 말하면, 그것을 일망타진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또 아마 논과 수로에서 물고기도 많이 잡혔을 테죠. 


사사키; 물고기를 잡는 건 쓰지 않았는데요. (웃음)


사토; 어떻습니까. 다음에 나카니시 씨에게 의뢰할 때에는 통발 등을 사용해 물고기를 잡는 장면을 그려 달라고 하는 것이요. (웃음)


사사키; 그렇지만, 예를 들면 모내기도 아주 제각각인 방향으로 모내기를 한다. 이것 등도 그림을 그릴 때 아무쪼록 나카니시 씨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논두렁이 아주 똑바르지 않습니다. 사실 논두렁은 좀더 구부러져 있어서 믿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모두의 인상은 현대의 논이지요. 


사토; 저도 나카니시 씨에게 좀더 어지럽게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역시 화가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웃음)


사사키; 저도 여러 주문을 했습니다. 큰 논두렁만이 아니라 작은 논두렁도 있다든지, 나카니시 씨는 대단히 이쪽의 주문에 응해 주셨지요.


사토; 확실히 꽤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것이 예전의 논벼농사의 구체적인 모습이어서, 이른바 생태학적으로 말하는 다양한 상황이 보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사사키; 현재의 논벼농사는 완전한 홑짓기 형식이고 인공적인 면이 매우 높은데, 예전의 논은 그렇지 않고 그 자체 귀하가 말했듯이 생태학적으로 매우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슬슬 시간이 되어가는데, 역시 농경이 다양성을 복원하고 순환적인 특성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것은환경문제를 생각해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때 무엇을 참고할지 이야기하자면, 우리 인류는 1만 년에 걸쳐 농경을 해 왔고, 그 안에 축적된 여러 가지 지혜가 있을 테지요. 예를 들면 돌려짓기와 휴한을 한다든지, 대규모 단작이 아니라 다양한 작물을 섞어짓기하는 등 많은 지혜가 있습니다. 그 전통적인 지혜를 얼마나 잘 사용하여 새로운 안정적인 농경을 만들어내는지가 앞으로의 큰 방향성이라고 생각해요.


사토; 그래요. 그것은 농사짓는 쪽도 그렇고, 역시 먹는 쪽도 그렇다고 해야 한다. 지금은 슈퍼 등에 가면 일년 내내 토마토를 구할 수 있지요. 그것은 역시 이상합니다.


사사키; 역시 '제철'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토;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사키; 그래서 저런 똑바른 오이만 파는 건 저 같은 전쟁 중 태어난 인간에게는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소비자도그러한 것을 잘 생각하여, 한번 더 풍부한 농경이 만들어지는 조건을 곰곰히 따져야 한다.


사토; 가치관을 포함하여 재고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프로젝트 안에는 철학자도 들어가고, 여러 사람을 넣고 있는 겁니다. 


사사키; 그것을 이 프로젝트의 지도자인 사토 씨, 당신이 열심히 잘 지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웃음) 


사토; 고맙습니다. (웃음) 그럼 시간이 되었기에 이 정도로 마치려고 합니다.




2008년 5월 17일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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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농경사 권1


기고 2. 논벼농사와 고기잡이     佐藤雅志




1950년대 중반, 내가 다녔던 소학교에서는 초여름 모내기와 가을 벼베기의 농번기에 농사일을 거들기 위해 전교가 한꺼번에 쉬는, 이른바 농번기 휴교가 있었다. 그 휴교일에는 소학교 주변의 논에서 다함께 모내기와 벼베기가 행해졌던 걸 월급쟁이의 자식이었던 나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모내기 전의 논은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우리는 양동이와 삽과 반두를 가지고 메기와 미꾸라지를 잡기 위하여 방과후 논 사이를 에워싸듯이 흐르는 수로를 목표로 했다. 목표는 너비와 깊이가 1미터 정도인 논의 두렁과 두렁 사이의 수로였다. 아직 모내기 전이어서 수로에는 물이 적다. 우리는 먼저 물고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장소를 확인하고 그 상류와 하루에서 물고기를 몰아넣고, 몰아넣은 수로의 상류와 하류에서 그 바닥에 있는 돌을 모으고 제방의 흙을 삽으로 퍼서 둑을 만든다. 다음에는 수로의 물을 막은 상류의 둑과 하류의 둑 사이에 괴인 물을 양동이로 퍼낸다. 물을 퍼내 바싹 마른 수로에는 미꾸라지와 작은 물고기가 진흙 속에서 꿈틀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반두로 건져 양동이에 담는다. 메기는 수로의 제방 주변에 숨어 있을 때가 많았기에, 막대기와 반두로 쿡쿡 찔러 나오게 하여 잡았다. 우리는 고기잡이를 마치면 둑을 무너뜨려 양동이에 수확물을 담아 저녁놀이 질 때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의 놀이는 앞으로 쟁기질을 하려고 하는 농민에게는 훼방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둑으로 막았던 물은 수로에서 넘쳐 두렁의 물꼬를 통해 논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쟁기질이 편하도록 논을 말린다. 흘러들어간 물은 쟁기질에 방해가 된다. 악동들은 야단맞을 걸 알면서 농부에게 들키지 않도록 굴 속에 몸을 숨기고 묵묵히 작업을 진행하는데, 돌아보러 온 농부에게 들키기도 했다. 가끔은 괭이를 들고 쫓아올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수확물을 버리고 양동이와 삽과 반두를 가지고 쏜살같이 논을 가로질러 도망간다.


들키지 않고 고기잡이를 끝낼 때는 수확한 물고기를 서로 나누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우물물에 2-3일 정도 담가 진흙을 제거하고 미꾸라지는 된장국의 건더기로, 메기는 탕으로, 작은 물고기는 튀김으로 먹는 게 일상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벼를 재배하는 논은 놀이터이자 고기를 잡는 곳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실제로 보는 논은 U자형 콘크리트 수로가 정비되어 논에 들고나는 물을 제어할 수 있는 관개논이다. 경지정리가 진행되어 송수관의 수도꼭지를 틀면 논으로 물을 댈 수 있는 설비가 정비되어 있는 논도 있다. 게다가 농약과 화학비료가 사용되는 논에서는 물고기만이 아니라 물고기가 먹이로 삼는 곤충과 물풀이 사라진다. 논에서 고기 잡으며 놀던 건 베이비붐 세대의 무용담으로만 남았다.



벵갈 뜬벼 지대


나는 1989년 12월에 갠지스강의 삼각주 지대에 위치한 방글라데시에 벼의 유전자원을 조사하러 갔다. 건기의 다카시 주변의 논 지대의 흙은 바삭바삭하게 말라 있었다. 논 지대를 흐르는 수로에는 수면에서 5미터가 넘는 높은 무지개다리 같은 모양을 한 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우기에는 수량이 늘어나 다리가 수몰되지 않도록 그 높이로 걸쳐 놓았다고 방글라데시 벼 연구소의 공동연구자가 가르쳐 주었다. 수심이 때로는 5미터에 이르는 이 지역은 우기에 '뜬벼'가 재배되고 있었다. 우기가 되는 것과 함께 논에 볍씨를 직파하든지, 또는 모내기를 한다. 그뒤하천에서 넘쳐나온 물이 흘러들어와 수량이 하루에 몇 센티미터 단위로 상승한다. 뜬벼는 수량이 늘어나는 것과 함께 줄기가 자라서 수면 위로 줄기의 끝에 달린 잎을 전개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건기가 되어 물이 빠져 논 토양으로 쓰러진 뜬벼는 끝의 줄기를 세워 이삭을 단다. 


갠지스강 삼각주의 논 지대에서는 해마다 8월부터 10월 정도까지 강의 물이 넘쳐 홍수가 난다. 우기에 강에서 넘친 물과 함께 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도 큰다. 물고기를 포획하기 위해 한 변이 10미터인 그물의 네 모서리를 4개의 긴 대나무 끝에 동여맨 장치가 뜬벼 재배지역의 논에서 자주 눈에 띈다. 갠지스강 삼각주의 뜬벼가 재배되고 있는 논에서는 쌀만이 아니라 물고기도 잡는다.



캄보디아 중앙 평원의 논


캄보디아의 프놈펜에 최초로 방문한 건 내전이 종결되고 국제연합 감시단이 머물고 있던 1992년 12월이었다. 베트남 전쟁 종결 이전에는 사이공이라 불렀던 호치민에서 차로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에 들어갔다. 호치민에서 캄보디아까지 가는 길은 강을 건너기 위해 연락선에 탈 때 말고는 도로 주변에 보이는 경관은 단조로웠다. 몇 미터 높이로 흙을 쌓아 만든 도로의 좌우로 평탄한 논이 눈길이 닿는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계절은 건기였다.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논에서 벼베기를 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다. 논에서는 야자나무가 군데군데 있었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고, 30도가 넘는 무더위와 햇볕을 피할 곳 없는 논에서일하기는 힘들 것이다. 


재작년 11월에 라오스 남단의 국경에서 프놈펜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도로의 양옆의 논은 두렁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물이 차 있었다. 캄보디아의 연구협력자에게 물으니, 해마다 이 시기에 물에 잠긴다고 답했다. 차를 타고 달리고 있으면 자주 물고기 냄새가 났다. 차를 내려서 보니, 4-5센티미터의 작은 물고기가 길가의 한쪽에 펼쳐져말라 있었다. 이들 작은 물고기는 여기의 수로에서 잡았던 물고기라고 연구협력자가 이야기했다. 또 작은 물고기로는 조미료가 되는 어장, 이른바 물고기를 발효시켜 만드는 간장을 만들어 밥과 물고기가 이 지역 식문화와도 깊게 관계되어 있다. 이 캄보디아 평원의 논에서는 쌀만이 아니라 물고기도 수확하고 있었다.


프놈펜의 공항에서 입수한 여행안내책자 <하우 투 @캄보디아>에 JICA 전문관인 이토伊藤 씨가 캄보디아의 물고기에 대하여 적어 놓았다. "캄보디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지 못할 만큼 민물고기 왕국"이라고 서술했다. 캄보디아에서 가물치나 메기 등을 비롯한 민물고기의 종류와 수확량이 많은 비밀은 메콩강과 똔레샵 호수에 있다고지적했다. 캄보디아 중앙부터 베트남에 펼쳐진 메콩 삼각주의 중앙에 위치한 프놈펜부터,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까지 300킬로미터 이상임에도 고저차가 겨우 약 8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기가 되면 중국과 라오스 등에 내린 비로 메콩강의 수위가 상승하고, 캄보디아의 중앙 지역은 침수지가 된다.


건기를 똔레샵과 메콩강 상류에 생긴 깊은 못에서 보낸 성숙한 물고기가 우기에 메콩강과 똔레샵강의 수위가 상승하고 범람하는 것과 함께 캄보디아 중앙의 침수된 숲까지 와서 산란하여 치어가 자라는 것이다. 일부 치어는 침수된 논과 그 주변의 수로에서도 서식하며 자란다. 우기의 방문과 함께 논에서는 벼농사가 시작되어 물고기의양식이 시작되고, 건기의 방문과 함께 벼베기가 시작되어 물고기의 수확이 시작된다. 캄보디아 중앙의 광대한 논지대는 벼의 재배만이 아니라 물고기를 기르는 곳이기도 하다. 



라오스 비엔티안 주변의 논


라오스 비엔티안 주변에는 논 지역에 크고 작은 여러 둠벙이 군데군데 있다. 모내기가 시작되는 우기에는 둠벙의수위가 올라 넘친 물이 수로를 통해 논과 숲으로 흘러들어간다. 물과 함께 건기를 둠벙에서 보낸 물고기가 논과 숲으로 흘러들어간다. 논과 숲으로 흘러들어간 물고기는 우기 동안 풀과 곤충을 먹으며 크게 자란다. 우기가 끝나 논의 수위가 낮아지면 다 자란 물고기의 일부가 다시 둠벙으로 돌아오게 된다. 둠벙의 비교적 얕은 곳에서는 야생 벼가 자생하고 있다. 이 야생 벼의 줄기에 붙은 물풀과 곤충을 먹고 물고기는 둠벙에서 건기를 보낸다. 논과둠벙으로 물고기가 이동할 때나, 둠벙에 돌아온 건기에 농민은 물고기를 포획한다. 비엔티안 주변에서도 논은 벼를 기르는 것만이 아니라 물고기도 기른다.



토라자의 다락논


인도네시아 동부에 알파벳 K자 모양을 한 섬 술라웨시섬이 있다. 일본인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이 섬이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토라자 커피'라는 상품명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토라자는 K자 모양을 한 섬의 좌우 반도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토라자 지역을 작년에 조사하고, 토라자에서 산을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마마사를 올해 조사했다.


토라자는 1000미터를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산간지역이다. 산들에 둘러싸인 계곡의 양쪽에 다락논이 만들어져 있다. 그 다락논의 한가운데에는 지름 2-3미터의 구멍이 파져 있다. 때로는 구멍의 주위에 흙을 쌓아 두둑을 만든다. 그 두둑의 한 모퉁이를 째 놓아 물이 자유롭게 출입하게 한다. 또, 그 두둑에는 대나무나 나무 몇 개를 구멍을 가리는 식으로 쓰고 있다. 그 구멍이 무슨 구멍인지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면, 물고기 구멍이란 답을 들었다.


물고기 구멍의 장치는 다음과 같다. 우기의 방문과 함께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시작한다. 논의 수량이 늘어나면 구멍에서 치어가 나와 논에서 살면서 물풀과 물소의 똥, 논에 모이는 곤충을 먹으며 크게 자란다. 크게 자라면새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있지만, 그 무렵에는 벼가 무성하여 숨을 수 있기에 새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건기의 방문과 함께 논에 물이 적어지면 다 자란 물고기는 구멍 속으로 돌아간다. 건기 동안에 구멍 속의 물고기는 산란하여 치어가 생긴다. 술라웨시섬의 다락논에서도 논은 벼를 재배하는 곳만이 아니라 물고기를 양식하는 곳이기도하다.



술라웨시섬 마마사 지역의 다락논





열대지역의 논벼농사와 어로의 관계는 무너지고 있다


남술라웨시의 표고가 낮은 평지의 논 지대에서는 농약과 화학비료가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생물연료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 팜야자, 자트로파 등의 작물 재배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그 확대에 따라 제초제 등의 농약 사용이 퍼지고 있다. 또한 방글라데시에서는 재배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뜬벼 재배가 쇠퇴하고, 관정으로 퍼올린 지하수를 이용한 건기의 벼 재배가 확산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하수에 함유된 비소로 인한 중독도 문제가 되고 있다. 또, 비엔티안 주변에서도 논의 관개설비가 충실해지고 있다. 관개 논의 확대에 따라 새로운 벼 품종이 도입되어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이 퍼지고 있다. 열대지역의 이들 논에서 승계되며 남아 있던 '논벼농사와 어로의 관계'가 붕괴되고 있다. 



논벼농사와 물고기의 관계를 재평가하자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논벼농사와 물고기의 관계'가 재검토되고 있다1. 2차대전 이후에 세계 인구의 증가에 따른 식량부족에 대한 대응책으로, 다량의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녹색혁명 벼 품종'이 관개설비의 정비를 수반하는 논에 도입되어 왔다. 그 도입은 일정 수확량의 증가를 가져왔지만, 다량의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이 늪과 호수의 부영양화 등의 오염과 논 생태계의 생물다양성 상실을 불러일으켰다. 환경 보전을 바라고,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벼농사 논과 물고기의 관계를 재검토하기 시작하고 있다. 


시가현의 비파호에서 권장되는 '물고기의 요람 논 프로젝트'가 그 하나이다. 경지정리 사업 등이 행해지기 전의 비파호 주변의 논에서는 비파호의 수위 변동에 따라 때로는 침수 피해를 입곤 했다. 그러나 침수된 저습지와 논은 비파호에서 생식하고 있던 붕어와 메기 등이 번식하는 장이었던 것이 인식되어 이 프로젝트에서는 물고기 번식의 장, 즉 저습지와 논을 확보하기 위하여 비파호에서 논으로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가기 쉽도록 어도를 만들고, 다 자란 물고기를 방류하는 일이 권장되고 있다. 또한 물고기가 논으로 거슬러 올라옴에 따라 물고기를 잡으러 논에 날아오는 해오라기 등의 새가 늘어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비파호에 사는 물고기를 보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쌀을 생산하며 환경을 보전하고 안전한 쌀을 생산하는 데에도 의의를 지닌 시도이다.


또한 베트남 남부의 메콩강 삼각주 지대에서는 베트남 전쟁 이후 도이모이 정책에서 시작된 작부체계가 시도되고 있다2. 메콩 삼각주 지대에 온통 둘러쳐진 수로를 이용하여 벼와 채소 등의 작물 재배, 망고 등의 과수 재배, 돼지 등의 가축과 물고기의 양식을 조합한 농법이다. 이 농법은 삼각주 지대에서 옛날부터 계승되어 온 벼 재배와 어로에서 발전한 것이다. 아직 농업 경영의 면에서는 안정되지 않는 등의 문제는 남아 있지만, 안전한 식량 공급의 면에 의의가 있는 시도이다. 



벼농사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침수지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소개한 갠지스강과 메콩강 등의 큰강의 삼각주 지대에서는 물고기가 떼를 지어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범위가 넓고, 비엔티안 지역의 둠벙, 그리고 토라자의 다락논에서는 그 범위가 좁아진다. 물고기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범위는 다르지만, 논벼농사와 물고기의 관계는 똑같다. 즉, 물고기는 논의 잡초 등도 포함한 물풀과 조류, 때로는 지렁이와 곤충을 먹고서 똥을 싼다. 물고기를 잡으러 새가 논으로 날아와 물고기를 포획하고 똥을 싼다. 논에 들어온 물고기가 그 똥을 먹고서 똥을 싼다. 논에서 자란 물고기를 인간이 포획하고 논에서 날라다 먹는다. 이처럼 다른 곡류와는 달리 물은 댄 밭, 즉 논에서 벼를 재배하는 일은 물고기를 사이에 두며 생태계의 균형을 잡아 왔다고 지나친 말이 아니다. 벼농사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저습지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계승되어 온 옛 벼농사 방식을 조사하고, 쌀만이 아니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물고기도 기르는 새로운 논을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50년 전 논에서 행하던 고기잡이를 베이비붐 세대의 자랑거리로 끝나게 두면 바람직하지 않다.



  1. 논과 어로에 대해서는 이 기고문 이후에 출판된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佐藤洋一(편저) 2008 <쌀과 물고기>, 도메스 출판 鹫谷이즈미(편저) 2006 <지역과 환경이 소생시킨 논 재생> 光の家協會 [본문으로]
  2. http://trg.affrc.go.jp/v-museum/cutedge/cut-e03.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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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쿠아포닉스라는 새로운 농법이 소개되고 있다. 이를 한국어로 그냥 아쿠아포닉스라고 옮겨야 할까? 양식업+수경재배이니 수경재배양식이라고 할까? 


아무튼 이 방법에는 동양의 벼농사 문화권에서 행하던 벼논양어(북한어: 논판양어)도 포함된다. 그렇게 따지면 동양권에서 더 오래전부터 행해 왔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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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모르겠지만, 화면만 보아도 충분하겠다.
지금까지 보면 이렇다.

1. 논의 가장자리까지 모두 벼를 심지 않고, 그 공간은 물고기를 위해 양보한다. 고랑의 범위와 깊이는 사육하는 물고기의 종류와 밀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2. 가장자리는 아마 도랑 식으로 좀 더 깊게 파서, 아마 벼를 위해 논에서 물을 떼어도 물고기가 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3. 논 가장자리의 고랑과 함께 중요한 건 둠벙의 존재이다. 물을 완전히 떼고 벼를 수확하거나 가뭄이 들 때 물고기들의 피난처가 된다.
4. 물고기가 함께 살기에 논에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할 수 없다.
5. 대신 물고기가 논에서 풀과 해충을 통제하고, 또 그걸 먹은 뒤 똥을 싸서 거름을 제공한다.
6. 물고기가 풀과 곤충을 잡아먹는다고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오리농법의 사례처럼 따로 적당한 양의 사료를 제공해야 한다.
7. 이렇게 사육한 물고기는 벼 이외의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도우며, 먹을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8. 벼논양어로 사육하는 물고기는 식용부터 관상용까지 시장의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붕어나 메기 같은 것만 고집하지 않고 금붕어 같은 걸 기를 수도 있음. 한국 같은 경우에는 어떤 것이 좋을까?)
9. 벼 재배와 관리에 따른 세세한 물고기 관리법은 아직 모르겠다. 이건 현장의 경험과 기술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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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벼논양어를 봅니다.




내 이름은 Sigit Paryono이고, 여기에서 40년을 살았어요.
19살에 결혼했죠. 아이가 둘 있고요. 아들과 딸이에요.
난 17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부가 되었어요. 그땐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전문직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죠.
그래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작은 논을 돌보기 시작했죠.
당시 소득은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였어요. 여유롭지 못했죠. 아이들 학교를 보내기도 어려웠어요.
당시엔 관행농을 하고 벼논양어는 아직 시도하지 않았어요. 정말 소득을 늘리고 싶었죠.
당시에도 벼논양어는 있었는데 지금처럼 퍼지진 않았어요. 전문적으로 관리되지 않았죠. 그래서 내가 2011년에 처음 벼논양어를 시도했을 때 성적이 시원찮았아요.
2013년에 농림수산부의 관료를 만났어요. 그때부터 우리랑 긴밀하게 협조하며 우리의 벼논양어를 도왔죠. 우리에게 대출을 제공해 벼논양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죠. 결과가 내 예상을 뛰어넘었어요.

농림수산부 지도원; FAO와 함께 일한 뒤, 우린 많은 개선점을 알았죠. 지도원인 나에게 벼논양어 훈련을 실행하는 많은 확신을 주었죠. 농민들은 그 프로젝트가 성공했다고 여길 뿐만 아니라 성과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수산부의 도움을 받은 뒤 더 편해졌다고 느껴요. 문제가 생기면 그걸 어떻게 해결할지 지침을 얻어요. 또 우리에게 양질의 물고기 사료 같은 도움이 되는 여러 용품도 주었죠. 물고기를 천적에게서 보호하는 그물 같은 것도 주었죠. 우리에게 꾸준히 도움을 주고, 가르쳐주며, 지원하고 있어요.
벼논양어는 물고기와 벼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벼를 심고 그와 함께 물고기를 사육해요. 물고기는 논에서 곤충을 먹고, 논은 물고기 똥으로 비옥해지죠.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죠. 풀과 벌레를 물고기가 먹어서 논 상태가 더 좋아져요.
예전에 1000평방미터의 논에서 112달러를 벌었는데, 벼논양어로는 약 370달러를 벌죠. 그래서 한달에 740달러 이상 벌죠. 순수익은 2300달러지만. 그걸로 내 친구 모두에게 봉급을 주죠. 그래서 아주 행복해요.
친구들이 나와 함께 일하는 게 자랑스럽죠. 함께 일자리도 만들 수 있고요. 그래서 이 일이 지역사회에도 도움이 되어요. 일자리를 찾아 멀리 갈 필요도 없고 여기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어요. 우린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서로 나누며 행복해요. 우린 가족 같죠.
내 농장은 1500평에서 3000평으로 늘었어요. 추가 소득으로 땅과 오토바이를 사고 아이들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되었죠. 나는 고등학교만 나왔지만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갈 거예요. 난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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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시성의 논.

여기에서도 논두렁 콩 같은 걸 심은 모습이 보인다. 그 농법이 한국만의 고유한 무엇은 아니겠다.

막 모내기를 끝낸 논의 모습이 재미나다. 농부는 아마 메워심기를 하는 듯한데, 일정 간격으로 고랑을 낸 것처럼 심었다. 이곳이 중국 남부이다 보니, 아마도 벼논양어 농법을 행하는 곳이라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확한 건 직접 가서 봐야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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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자라고 있는 물을 댄 논은 단순한 농경지가 아닙니다. 그곳은 오리, 물고기, 개구리, 새우, 달팽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수생생물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수천 년 동안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수생 생물다양성이 제공하는 여러 혜택을 이용해 왔습니다. 전통적인 벼논양어 체계는 미량영양소와 단백질, 그리고 특히 임산부나 어린아이에게 중요한 필수지방산 등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1960-1970년대 녹색혁명의 바람이 불면서 이러한 전통적인 벼논양어 체계는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책적으로 다수확에 초점을 맞추면서 품종의 개량, 화학농자재의 사용, 경지정리, 농수로 현대화 등으로 논은 벼만 자라도록 허용되는 공간으로 전락했지요. 그러나 최근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전통적인 벼논양어 체계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벼논양어 체계에는 두 가지 양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벼와 물고기가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벼의 재배와 물고기의 사육을 서로 다른 시기에 하는 방식입니다. 전자가 더 일반적이고, 후자는 드문 사례이지요. 품종이 개량된 줄기가 짧은 현대의 벼나 줄기가 긴 토종 벼나 모두 여러 민물고기 어종을 비롯한 몇몇 갑각류와 함께 재배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논 둘레에 너비 1m, 깊이 80cm의 도랑을 파서 이곳에 물고기를 기릅니다. 이곳이 논 전체면적의 약 2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그물망 등으로 물꼬를 통해 물고기가 도망가는 걸 막는다고 하지요. 이러한 전통적인 벼논양어 체계에서 물고기는 풀과 작물의 부산물을 먹고 자랍니다. 이를 더 집약적으로 사육하려면 사료를 사다가 주면 됩니다. 관리를 잘하면 3000평의 논에서 1년에 225-750kg의 물고기나 갑각류를 잡을 수 있고, 벼의 수확량은 7.5-9톤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괜찮은 장사지요?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식입니다.

벼논양어는 이렇게 서로 다른 동식물의 특성을 활용해 벼농사가 더 생산적이고 영양분을 풍부하게 만드는 겁니다. 동식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도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중국에서 행한 연구에 의하면, 이 체계에서는 벼의 줄기에 해를 끼치는 벌레가 그렇지 않은 논에서보다 50%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또 잉어 1마리가 날마다 왕우렁이의 알을 1천 개나 먹어치운다고 하네요. 아, 왕우렁이는 요즘 친환경농업에서 제초용으로 많이 풀어놓으니 그 부분은 좀 더 실험과 연구가 필요하겠네요. 그리고 초어는 벼의 잎집과 줄기에 마름병을 일으키는 균류를 잡아먹는다고도 합니다. 이를 통하여 벼만 재배하는 논에서보다 약 68% 정도의 농약을 덜 사용해도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물고기들이 해충을 잡아먹는 데다가 함부로 농약을 치면 물고기에게도 피해가 갈 테니 더욱 조심하게 되겠지요.

그와 함께 풀을 억제하는 것도 벼논양어의 큰 장점입니다. 오리농법을 통해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오리의 역할을 물고기가 대신하는 겁니다. 그래서 손으로 김을 매거나 제초제를 뿌리는 대신 벼와 함께 물고기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풀을 억제하는 놀라운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물고기는 오리처럼 덩치가 커지더라도 벼를 망가뜨리는 일이 없으니 더욱 좋은 점이 있지요. 이런 방법을 통해 벼논양어는 벼만 재배할 때보다 생산성이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물론 절대적인 재배면적은 좀 줄어들기에 전체 생산량에서는 조금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쌀 생산 과잉의 시대에 벼의 절대적 생산량이 조금 떨어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더 반기고 적극 권장할 만한 농법일 수 있지요. 그리고 물고기는 뭐 하늘로 날아간답니까?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내다파는 것도 줄어든 생산량을 보완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최근 내수어업연구소인가에서 이와 같은 실험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 농법이 잘 퍼지지 않고 있어 제가 더 안타깝네요. 청양과 남원에서 동남아의 잉어 대신 미꾸라지를 이용하는 실험을 하고, 부산에서는 가물치를 활용하는 실험을 한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었는데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벼논양어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벼논양어에서는 동식물의 상호작용으로 토양비옥도가 향상되는 효과도 볼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싼 똥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논흙으로 돌아가 벼가 그걸 양분으로 활용하겠지요. 그래서 벼논양어를 시행하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의 논에서는 비료를 덜 쓴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장점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벼논양어를 시행하는 곳에서는 지역사회의 보건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논에서 사는 물고기들이 말라리아 등을 일으키는 모기나 그 유충 등을 잡아먹기 때문이랍니다. 중국에서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모기의 밀도가 1/3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요즘 말라리아를 없애기 위해서 유전자변형을 통해 생식력을 제거한 모기를 풀어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던데, 이 농법에 비교하면 얼마나 쓸데없는 짓입니까? 물론 논에서 벼만 자란다면 그 방법이 훨씬 나을 수도 있겠네요. 쩝.

그러나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단점도 분명 존재합니다. 바로 물 문제입니다. 벼논양어를 하는 논은 벼만 재배하는 곳보다 물을 26%나 더 사용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이 부족한 곳에서는 함부로 시도하면 안 되겠지요. 어디까지나 물이 참으로 풍부한 곳, 호우와 폭우가 쏟아지는 곳, 그런 곳에서는 충분히 활용할 만한 농법일 겁니다.

이상 벼논양어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마칩니다. 어떤가요? 한번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농법 같지 않습니까? 특히 요즘 한국의 쌀시장과 관련하여 더더욱 그렇지 않나요? 농사의 다각화, 환경보전, 생산비 절감과 생산성 향상 등등 다양한 장점이 존재하는 벼논양어. 저는 언젠가 꼭 이 농법이 실행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참고자료 

a-i5311e.pdf


a-i5311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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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에는 '심수 벼(Deepwater rice)'라는 종류가 있다. 

이 벼는 보통 연중 적어도 1달 이상 50cm보다 깊은 물에 잠겨 자라는 벼를 가리킨다. 동남아에선 아직도 1억 명 정도가 이 벼를 주식으로 삼아 살아간다고 한다.


이 심수 벼에 또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뜬벼(浮稻, floating rice)라 하고 다른 하나는 그냥 키가 큰 품종을 가리킨다. 키가 큰 벼는 일반 벼보다 키가 크고 잎이 길어서 50~100cm 깊이의 물에서도 잘 살아가고, 뜬벼의 경우에는 100cm 이상의 물에서도 줄기가 쭉쭉 자라며 문제없이 살 수 있다. 뜬벼의 쭉쭉 자라는 성질로 인해 우기가 되어 점점 물이 차올라도 그 속도보다 빠르게 줄기의 마디들이 자라서 항상 잎이 물밖으로 나오도록 만든다. 뜬벼는 주로 인디카 계통의 벼인데, 자포니카 계통도 방글라데시와 인도 등지에서 극소수가 발견된다고 한다. 


뜬벼의 줄기가 얼마나 잘 자라는지에 대해서는 조형택이란 한국인 연구원이 참여한 다음 연구를 참조하라. http://www.plantphysiol.org/content/118/4/1105.full

홍수에 강한 두 가지 유형의 벼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연구도 읽으면 좋다. http://www.plantstress.com/articles/up_salinity_files/Deep%20water%20rice.pdf


<Rice in Deep Water>의 9장에 나오는 그림과 사진만 보아도 심수 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LIt8LgSNfE0C&pg=PA113&lpg=PA113&dq=rice+in+deepwater&source=bl&ots=_NSOFEXDso&sig=Huts2yVSqmByMl7v21ICu8k-NvM&hl=ko&sa=X&ved=0ahUKEwjys5fLpeXPAhVImpQKHT7bD4kQ6AEIVzAK#v=onepage&q=rice%20in%20deepwater&f=false




현재 심수 벼는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갠지스-브라마푸트라 강 유역과 버마(미얀마)의 이라와디 강 삼각주, 태국의 차오프라야 강,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메콩강 일대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다. 그런데, 메콩강 일대는 현재 대형 댐들이 들어설 예정이라 재배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러한 심수 벼들이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메콩강의 대형 댐 건설에 대한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192241035&code=970207)



댐=치수사업으로 이제 심수 벼들이 살기에 좋은 환경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키가 작고 수확량이 많은 녹색혁명의 볍씨들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 거기에서 생산된 그 많은 쌀은 모두 어디로 갈까? 국내에서 소비하지 못하면 수출을 할 텐데 말이다.


또 대형 댐이 건설되어 강의 흐름이 막히고 비옥한 양분이 하류로 전달되지 못하면 메콩강 삼각주에 있는 너른 들판에선 더욱더 외부투입재인 화학비료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렇게 넘치는 영양분은 다시 바다로 흘러들어가 '죽음의 구역'을 만들지 모른다.


쌀 생산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겠지만, 이런 일은 어떻게 감당할까? 

전통적으로 논은 벼만 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라, 물고기 등도 함께 키워 단백질을 공급하는 근원이기도 했다. '벼논양어'라는 형태로 말이다. http://www.fao.org/docrep/009/a0444e/a0444e04.htm




이 책이 번역 출간되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을까? 

https://www.amazon.com/Rice-Research-Development-Flood-Prone-Ecosystem/dp/971220197X/ref=sr_1_1?s=books&ie=UTF8&qid=1476825400&sr=1-1&keywords=978971220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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